지식 e - 시즌 4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4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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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카롭다. 서둘러 지식e 시즌 4를 펴고 읽어가면서 가장 처음 받은 느낌이다. 날선 검 하나가 비수가 되어 이 시대를 살피고 쪼개고 고발한다. 왠만한 시사 프로그램보다 더 시사적이고, 보수적인 언론들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을 철저하게 까발린다. 그래서 나는 시종일관 이 책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오직 이 책과 나 만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가운데에서 마음을 활짝 열고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의 테두리 밖에서”, “세상의 결을 따라”, “다시 삶의 테두리 속으로”라는 제목을 달고 구분된 각 부분을 따라가본다.  

  “일상의 테두리 밖에서”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세상이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흑인 운동가, 사회적인 지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앨런 튜링”,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로 충만한 세상을 벗어나 자신만의 기도를 그린 “아르노 페터스”, 1%의 미적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90%의 생존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가진 재능을 디자인에 올인하는 디자이너들, 명예가 아니라 삶의 존재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무술을 택한 이소룡, 정치풍자의 달인 샤를 필리봉 이들은 시대의 이단아들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들을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했다면, 현실에 순응했다면 평탄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겠지만 이들은 그편을 택하지 않았다. 무모하게도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프레임을 깨는 도전을 했다. 일상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시대의 돈키호테가 되었다. 그리고 무익하고 쓸데없는 상상력이라 평가를 받았지만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첫 발걸음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 일상적인 습관에 젖어 산다. 혹은 세상의 불의를 목격하지만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하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지식e 제작팀은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런 무모함이라고 말이다. 온갖 정쟁과 말도 안되는 복잡하고 기인한 현상이 일어나는 2009년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돈키호테의 무모함이라는 말이 아닐까?  

  “세상의 결을 따라”라는 부분에서는 세상의 논리와 프레임을 따라 가면서 그 모순들을 고발한다. 제주 해녀의 삶, 소통 부재의 모습들, 정권에 의해 이용당하고 강제로 불임 수술까지 당한 한센인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해 가는 독일과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일본, 온갖 토론이 난무했던 민주주의의 산실 아고라, 부자가 아닌 경제적으로 소외당한 패배자들을 위한 뉴딜정책, 공포를 매개 삼아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지는 금융자본들, 다른 이들의 위기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거대 자본들,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프레임 신봉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뒤에 달려 있는 해설들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2008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수없이 많은 정책과 이슈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마치 세상의 결을 한켜한켜 벗겨내겠다는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간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는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혹시 나는 프레임 신봉자가 되어서 이것이 삶이고, 진실이요, 불가항력이라고 나를 설득시키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그것을 묻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돈키호테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이냐?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 지지도 모욕도 아니다. 무관심이다. 돈키호테의 행동이 이슈가 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를 꺾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오늘날 한국 사회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획일화 되어 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로의존성을 버리지 못한다. 반공, 경제, 학력 등 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의존성을 버리지 못한다. 세상은 이미 그것들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돈키호테가 생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여건을 만드는데 나도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삶의 테두리 속으로”는 우리를 삶의 자리로 초대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초대된 우리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본 우리들이기 때문에 다시 삶의 한복판으로 초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과거의 내가 될 수 없다. 이미 나는 세상 밖을 경험했다. 돈키호테가 되어 보았고, 세상이 나에게 던져주는 경쟁의 논리와 효율성의 논리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을 주문처럼 외우고 신봉하며 받아들일 것을 강요받던 나였지만 그것의 허구를 깨닫는 순간 나를 골리앗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다윗이 된다. 기륭전자의 복직 투쟁자들이 된다. 감자굴의 상학이가 되고, 494,011개의 꿈을 키워가는 공고생이 된다. 세상에 가장 싼 가격에 밥을 나눌 수 있는 사장님이 된다. 세상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만이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밥을 나눌 수 있다. 부당하게 쌀직불금을 받아가는 이들이 아니라, 녹색 산업이라는 미명하에 토목 건설을 주도하는 이들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직업을 나누자면서 신입사원들의 월급을 깎는 집단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진정 내가 가진 밥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될 때 세상은 밝아질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지식e 시즌 4를 읽으면서 돈키호테를 떠올린다. 어릴 적 내 기억에 그는 우스꽝스러운 기사였다. 세상 모르는 철부지였고, 시대의 반항아였으며, 시대의 발전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했다. 그는 구닥다리가 아니다. 세상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시대의 선구자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할지라도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구닥다리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구닥다리가 한없이 소중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한 부분을 적어 본다. 내 마음 속에 남은 가장 구닥다리이지만 간직해야할 이 한말을 말이다.  

“스킨 스쿠버? 그게 있으면 한 사람이 백 명 일도 할 수 있다며? 근데 그렇게 하면 나머지 아흔 아홉은 어떻게 되나?”<물이 되는 꿈 139p>  

  기업과 정부의 Job sharing이라는 말보다 더 가슴에 깊숙이 박히는 말이다.  

후기 

1. 날카롭다. 그 날카로움이 좋다.  그러나 지난 권들에서 보여주었던 넉넉한 푸근함이 그립기도 하다.  

2. 각 장의 말미에 참고 도서 목록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도서 목록을 보고 몇 권 사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다시 목록이 추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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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전쟁 가일스 밀턴 시리즈 1
가일스 밀턴 지음, 손원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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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타니엘의 육두구"라는 원제의 책!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제목에 속았다고 할 수 있다. 원제가 나타니엘의 육두구라는 것을 미리 확인했어야 했다. 잔드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일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솔직하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고, 이 책을 왜 읽고 있는가 회의를 갖기도 했다. 철저하게 영국 중심으로 쓰여졌으며, 영국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여졌다. 영국과 향료의 판도를 놓고 벌이던 전쟁의 대상국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가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약속을 잘 어기는 존재인지 이야기하면서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영국 지상주의적인 책이 어떻게 한국에서 번역되어 주요 일간지에 실리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알 수 없다.  

  향료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전개해 나가면서 저자는 시종일관 영국은 정당한 댓가를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섬 주민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향료를 정당한 값을 주고 사왔다고 말한다. 정당한 값이 영국인 스스로도 놀랄만큼 쌌다는 것을 기록하면서 영국인의 상재를 드높이기에 열심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아마 이 책을 읽기 전에 "적도의 침묵(주강현/김영사)"이라는 책을 읽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향료 전쟁에서 원주민들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철저하게 소외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미개인으로 그려진다. 외국의 침략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영국 쪽을 선택한 현명한 사람들로 그려지던지, 아니면 미련하게 매척하며 사람을 잡아 먹는 식인종으로 그려진다. 오만함의 극치이다.  

  향료를 놓고 벌이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도 영국 선원들의 이야기는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는 그 무식한 선원들마저도 영국의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향료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영국 도한 착취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쏙 빼버린다. 게다가 영국 함선이 미국 허드슨 강을 타고 올라가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해 놓은 글을 보면서 도대체 이 글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기들 물건을 훔쳐갔다고해서, 선원 2명이 죽었다고 해서 수십명을 향하여 총을 쏘는 모습이 과연 정당한가? 자기나라 군사 2명이 죽었다고 해서 민갑인 수백명을 향하여 보복 공격을 감행하는 오만한 이스라엘과 무엇이 다른가? 차라리 이 책이 소설이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이렇게 허탈하지ㄷ 않을 것 같고, 이렇게 시간이 아깝고 돈이 아깝지도 않을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만약 앵글로 색슨인들이 얼마나 오만한 사람들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사서 보라. 이 책의 가치는 겨우 그 정도이다. 아니 그 정도도 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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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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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교회의 최고 화두는 영성일 것이다. 영성적인 삶을 위해서 예전같으면 쳐다보지 않았을 가톨릭의 전통과 중세의 수도사들, 그리고 사막의 교부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고 그들을 해석하려는 것이 요즘 기독교 내부에서 강하게 일고 있는 운동이다. 그런데 그 영성 운동을 보면서 한가지 들었던 의문은 영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지금도 물론 같은 생각을 한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영성이 충만해야 한다는데,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데 과연 영성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는것, 기도할 때 다른 사람들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영성의 전부란 말인가? 아니면 멀리 산속 깊은 기도원으로 가던지, 돈을 좀 더 들여서 사막의 교부들이 생활했던 곳으로 가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현실에서 떠나서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것이 영성이란 말인가? 교회 내부에서 일고 있는 영성 운동을 보면서 한심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내 생각에 영성은 삶이다. 신앙으로 삶을 해석하고 신앙을 삶으로 구현하는 것, 이것이 영성이 아닐까? 삶과 신앙이 분리되어 이중의 잣대를 들이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것만큼 힘든 영성은 없을 것이다.  

  유진피터슨은 다윗의 일생을 이러한 영성의 눈으로 해석한다. 다윗이 들판에 있을 때에도, 사울의 궁정에 있을 때에도, 사울을 피하여 망명 생활을 할 때에도, 그리고 왕이 되어 승승장구할 때에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죄값을 치를 때에도, 죽음이 임박한 인생의 말년에도 신앙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다윗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유진 피터슨은 훌륭한 스토리 텔러이다. 그것도 영성의 깊이를 간직한 스토리 텔러이다. 다윗의 삶에 역사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내 삶으로 시선을 돌린다.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어떻게 발견하고 고백하는가? 영성을 두고 고민하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던져주는 책이다. 다윗에 관한 책 중 가장 탁월한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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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의 침묵 - 해양문명의 교차로, 적도태평양을 가다
주강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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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게임 중에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최고 백미는 싼 값에 물건들을 사다가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그것을 되파는 무역과 닥치는대로 상대방의 선박을 강탈하는 해적질이랄까? 한때 이 게임에 빠져서 밤을 며칠씩 새운 적도 있었다. 그당시에는 참 재미있게 했던 게임인데 철이들 무렵 재미와는 상관없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항해하는 그 어디에도 아프리카 국적의 캐릭터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의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게임이 서양의 대항해시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던 게임인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중에 일본과 중국 국적의 캐릭터가 보태지긴했지만(그것도 최근작의 최근작인 대항해시대4PK에서나) 여러모로 보아도 중심캐릭터가 아닌 보조 캐릭터 였음은 분명하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한국 국적의 캐릭터는 없었다. 아주 황당하게 항해사 한명이 나중에 추가됐을 뿐이다. 게임 하나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 반문하겠지만,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과 동남아시의 국가들이 세계 해양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그래도 항해사라도 캐릭터가 추가 되었음에 감사해야 하는것일까? "적도의 침묵"이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도시들의 캐릭터는 아주 찾아볼 수도 없다. 캐릭터가 무엇이란 말인가? 항구 조차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가끔 외국식 이름의 보급항 정도로만 몇 개가 등장할 뿐이다. 이들이 아예 항해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모르지만 이들의 항해 문명은 오히려 중세 유럽보다 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강현씨는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라는 책으로 이미 한번 접해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했지만 솔직하게 책을 읽기가 참 어려웠다는 생각을 한다. 분류상으로는 역사가 분명한데, 기행문이라고도 할수 있는 책의 구조가 이 책을 재미없게 만드는 이유였을 것이다. 적도의 바다를 연구하는 온누리호를 얻어탄 저자가 적도에 있는 섬들을 거치면서 자기가 도착한 섬들의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역사에 대하여 서술하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르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낯선 문명에 관한 이야기에 대하여 저자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으며 그때문에 읽이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흔히 남양군도로 알려져있던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제국주의가 맞부딪혔던 역사의 현장이 실은 강제 징용당한 우리 선조들의 눈물과 애환이 깃든 땅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솔직하게 이 책 가운데 등장하는 섬 가운데 이름을 들어 본 것은 하와이아 난마돌 유적 정도가 전부이다. 물론 하와이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주강현씨가 그렇게도 비판하던 미국에 의하여 상품화된 훌라춤과 가짜 하와이 박물관 정도? 난마돌 유적은 얼핏 텔레비전을 통하여 봤을뿐 더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왜 찬란한 문화 전통에 비하여 이렇게 그들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는가? 저자는 이들의 역사가 침묵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이들의 해양사는 대항해시대라는 철저하게 유럽 중심적인 사관에 밀려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으며 침묵하길 강요당했다. 문자로 남기지 못한 역사는 식민주의라는 침략 행위에 의하여 취사 선택되어 적절하게 변형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 또한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에 의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모계사회라든지, 왕권 사회에 대한 정치 체제 또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하여 급속하게 몰락되어 오늘날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황폐화 되었다.  

  이 책은 침묵당하길 강요받은 적도의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강현씨가 침략국인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아니라 침략당하고 역사의 변형과 왜곡, 그리고 침묵할 것을 강요받았던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그가 적고 있는 명칭이라든지, 그가 지나오면서 겪었던 오늘날의 모습들이 철저하게 미국에 의하여 재편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주강현씨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현재 그들의 국가와 삶은 서구 열강에 의하여 정형화된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잊혀진 역사의 아픔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주강현씨의 기독교에 의한 문화의 파괴라는 측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구 열강이 건네 준 것이 다 나쁜 것일까?(물론 그네들의 의도가 불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기독교가 전통 문화를 파괴해서 이들의 삶을 피폐화 시킨 것 뿐일까?"라는 의문을 품어보게 된다.   

  철저하게 서양적인 사고로 동남아시아를 바라보고 해석한 "향료전쟁(가일스 밀턴/생각의 나무)"와 함께 읽어 본다면 더 흥미 진진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타가 많은 것도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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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2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시대의창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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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돌발영상 고정화면> 

  작년 7월 경 YTN의 사장이 구본흥씨로 바뀌었다. 언론 통제라는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주주회의를 강행했고 구본흥씨를 사장으로 인선했다. 많은 기자들이 반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까만 양복을 입으신 분들을 앞에 모셔 놓고 AT필드(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그 AT필드)를 쳐가면서 사장 인선을 마쳐버렸다. 그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AT필드(Asloute Terror Field)가 저것이구나 생각을 했다. 주주총회를 지켜보면서 언론의 독립을 외치던 기자들과 노조들에게 주주총회 자리는 절대적인 공포의 장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무력감으로 당을 쳤을 것이며, 믿었던 선배들의 꺾여진 기자 정신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모든 울분 때문일까 주저앉아 서럽게 우는 젊은 기자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고 그들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구본흔 사장으로 YTN의 사장이 교체되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조만간 돌발 영상이 사라지겠는걸? PD수첩이라든지 2580이라든지 시사 프로그램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설마 가장 인기 있는 코너를 없애지는 않겠지? 본인은 뉴스채널을 YTN만 고수했으며 그 이유는 전적으로 돌발영상 때문이었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아 돌발영상은 자리를 감추었고, 나는 텔레비전 채널을 MBN으로 고정시켜 버렸다. 왜냐고? 팝콘영상 때문이다. 기자의 편집이 최소한도로 들어가 현장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전해 주는 것이 돌발영상과 팝콘영상의 매력이 아니었던가? 아마 MBN의 팝콘 영상마저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뉴스채널을 그다지 관심있게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개콘보다 더 재미있었던 돌발영상이 폐지되고 난 후 왜 그렇게도 언론탄압이라는 말을 썼었는지 알 것 같았다. YTN의 뉴스를 가만히 살펴보면서 묘하게 지금까지와는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대놓고 정부 편을 들지 않지만, 묘하게 촛불집회에 관하여 부정적인 뉘앙스를 던지는 말들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한 마음을 품고 있던 가운데 촘스키의 책을 읽게 되었다. 1권은 며칠에 걸려서 읽었지만 2권은 단숨에 읽어 내렸다. 언론에 대한 그의 생각이, 민주주의와 기업과 정권에 대한 그의 생각이 내 가슴에 막혔던 체증들과 의문들을 다 풀어 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상당히 과격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의 이야기과 생각은 그의 이름값을 할만했다. 

  촘스키는 미국을 중심으로 정부와 기업과 언론의 검은 카르텔에 관하여 이미 지적한바 있다. 이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시대의 창"라는 책을 보길 권한다. 촘스키는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라 생각하는 것들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 손상되고 변질된 민주주의라고 단언한다. 그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을 따름이지 실제적인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 정치체제는 귀족주의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과거의 귀족 대신에 지금은 기업과 자본가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다르달까? 과거에는 혈통에 의하여 엘리트와 비엘리트가 구분지어졌지만 지금은 자본에 의하여 엘리트돠 비엘리트가 구분지어 진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은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어찌되었던 촘스키는 기업과 이를 지원하는 정부(사실상 기업과 정부는 한통속일 뿐이다. 사익을 대놓고 추구하느냐 공익으로 포장해서 챙기느냐의 차이만 있을뿐이지)는 현대 기술의 총아인 언론을 이용하여 국민을 세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뇌라는 말이 과격하다면 달래고 있다고 할까? 아니면 전체를 보지 못하게 일부만 보여주면서 자기들이 정해놓은 방향으로 여론이 몰리도록 통제하고 있다고 할까? 왜 이렇게 군사력과 물리력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방법을 두고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매커니즘을 사용하는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더 효과적이며 그 효과가 거의 반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그 예로 지금까지 미국이 사용해왔던 과거의 정책들을 들고 있다. 베트남, 니카라과, 브라질, 멕시코, 라오스, 칠레,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등등 이러한 예들은 수도 없이 많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면 이라크를 들 수 있을 것이며, 조만간 북한과 이란도 그 예에 들어가지 않을까? 미국은 항상 민주주의를 대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서라면 민가에 폭격을 하는 것도 허용이 된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지라도 타협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국미느이 투표에 의해서 선출된 지도자마저도 쿠데타를 통하여 갈아치워야 한다. 이것이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다. 이것이 미국이 세계에 뿌려놓은 민주주의의 실체이다. 그러나 이게 정말 민주주의인가? 이것이 정말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엘리트를 위한 민주주의인가? 그 대답은 누가 봐도 뻔하다.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민주주의, 헤지펀드를 위해 압력을 행사하는 민주주의, 이것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현실이 아니던가? 이러한 현실을 언론을 통하여 교묘하게 조작한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코 전체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러한 조작에 사람들은 쉽게 넘어간다. 그리고 언론이 선전하는 민주주의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것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자기에데 돌아올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의 사회체제는 어느새 삼각형에서 마름모를 지나 팔자형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미 제3세계에서는 실행이 완료 되었으며, 한국은 이미 많이 진행이 되었고, 미국마저도 거의 완성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는 이 현상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할뿐이다. 금융위기라고 하지만 위기는 중산층까지의 위기이지 상층의 위기는 아니다. 위기를 딛고 상층으로 올라가는 중산층은 기회가 될 것이지만 대다수의 중산층은 하층으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그렇다. 이것을 바꾸려면 촘스키는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직적인 움직임을 엘리트들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을 통하여 방해한다. 여기에 속지 말고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이 촘스키가 말하는 세상의 권력이다. 

  도킨스의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제목을 따왔다. 신 망상이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만들어진 미국식 민주주의가 되었것, 미국식 민주주의의 망상이 되었건 이대로 간다면 대안은 없다. 그저 비정치적인 모습을 가장한 권력의 포기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 대한 민국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대안을 세우는데 가장 필요한 책이 아닐까? 부디 미국식 민주주의가 만병통치라는 과대망상에서 우리가 깨어 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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