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침묵 - 해양문명의 교차로, 적도태평양을 가다
주강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의 게임 중에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최고 백미는 싼 값에 물건들을 사다가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그것을 되파는 무역과 닥치는대로 상대방의 선박을 강탈하는 해적질이랄까? 한때 이 게임에 빠져서 밤을 며칠씩 새운 적도 있었다. 그당시에는 참 재미있게 했던 게임인데 철이들 무렵 재미와는 상관없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항해하는 그 어디에도 아프리카 국적의 캐릭터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의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게임이 서양의 대항해시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던 게임인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중에 일본과 중국 국적의 캐릭터가 보태지긴했지만(그것도 최근작의 최근작인 대항해시대4PK에서나) 여러모로 보아도 중심캐릭터가 아닌 보조 캐릭터 였음은 분명하다. 물론 그 가운데에도 한국 국적의 캐릭터는 없었다. 아주 황당하게 항해사 한명이 나중에 추가됐을 뿐이다. 게임 하나 가지고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 반문하겠지만,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과 동남아시의 국가들이 세계 해양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하나의 증거일 것이다. 그래도 항해사라도 캐릭터가 추가 되었음에 감사해야 하는것일까? "적도의 침묵"이라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도시들의 캐릭터는 아주 찾아볼 수도 없다. 캐릭터가 무엇이란 말인가? 항구 조차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가끔 외국식 이름의 보급항 정도로만 몇 개가 등장할 뿐이다. 이들이 아예 항해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모르지만 이들의 항해 문명은 오히려 중세 유럽보다 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강현씨는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라는 책으로 이미 한번 접해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했지만 솔직하게 책을 읽기가 참 어려웠다는 생각을 한다. 분류상으로는 역사가 분명한데, 기행문이라고도 할수 있는 책의 구조가 이 책을 재미없게 만드는 이유였을 것이다. 적도의 바다를 연구하는 온누리호를 얻어탄 저자가 적도에 있는 섬들을 거치면서 자기가 도착한 섬들의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역사에 대하여 서술하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르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낯선 문명에 관한 이야기에 대하여 저자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으며 그때문에 읽이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흔히 남양군도로 알려져있던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제국주의가 맞부딪혔던 역사의 현장이 실은 강제 징용당한 우리 선조들의 눈물과 애환이 깃든 땅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솔직하게 이 책 가운데 등장하는 섬 가운데 이름을 들어 본 것은 하와이아 난마돌 유적 정도가 전부이다. 물론 하와이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주강현씨가 그렇게도 비판하던 미국에 의하여 상품화된 훌라춤과 가짜 하와이 박물관 정도? 난마돌 유적은 얼핏 텔레비전을 통하여 봤을뿐 더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왜 찬란한 문화 전통에 비하여 이렇게 그들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았는가? 저자는 이들의 역사가 침묵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이들의 해양사는 대항해시대라는 철저하게 유럽 중심적인 사관에 밀려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으며 침묵하길 강요당했다. 문자로 남기지 못한 역사는 식민주의라는 침략 행위에 의하여 취사 선택되어 적절하게 변형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 또한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에 의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모계사회라든지, 왕권 사회에 대한 정치 체제 또한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하여 급속하게 몰락되어 오늘날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황폐화 되었다.  

  이 책은 침묵당하길 강요받은 적도의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강현씨가 침략국인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아니라 침략당하고 역사의 변형과 왜곡, 그리고 침묵할 것을 강요받았던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그가 적고 있는 명칭이라든지, 그가 지나오면서 겪었던 오늘날의 모습들이 철저하게 미국에 의하여 재편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주강현씨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현재 그들의 국가와 삶은 서구 열강에 의하여 정형화된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잊혀진 역사의 아픔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주강현씨의 기독교에 의한 문화의 파괴라는 측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구 열강이 건네 준 것이 다 나쁜 것일까?(물론 그네들의 의도가 불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기독교가 전통 문화를 파괴해서 이들의 삶을 피폐화 시킨 것 뿐일까?"라는 의문을 품어보게 된다.   

  철저하게 서양적인 사고로 동남아시아를 바라보고 해석한 "향료전쟁(가일스 밀턴/생각의 나무)"와 함께 읽어 본다면 더 흥미 진진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타가 많은 것도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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