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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5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진정한 승자들의 역사 한국사傳 5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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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새해가 되면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신년 정책 연설을 하셨다. 연설의 내용은 자세하기 생각나지 않지만 유달리 위기라는 말이 많았던 것 같다.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위기하고 할 수 있다.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고, 공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으며,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도무지 위기가 아닌 곳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에만 위기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이 경제이기 때문에 그렇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우리가 너무 물질에만 매여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  

  끊임없이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경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겠지만 다른 부분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언제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겠냐만 지금처럼 온 국민이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적은 IMF금융체제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가 싸늘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학 5학년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으며 청년 실업은 필수라고 한다.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의 말이 되어 버렸다. 요즘은 이퇴백(이십대에 퇴직을 결정한다.-인턴제를 비꼬는 말), 십장생(십대도 장차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을 위해 조직적으로 무엇인가 해 주지는 않는다. 그저 참으라는 말만 한다. 위기는 기회이니 실력을 닦으면서 기회를 기다리면 분명 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을 한다. 물론 기회는 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리지는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요 아픔이다.  

  각설하고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가 우리의 화두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에게 한국사전 5권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진정한 승자들의 역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어 주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의지의 문제임을 이 책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기회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의 문제임을 기억하라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이다. 홍역 치료의 달인 이헌길,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암행허사 박문수, 문화재 지킴이 전형필, 혁명주의자 허균, 세종의 손 장영실, 여자 의병장 윤희순,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삶을 하나하나 집어보면 그 어느 누구하나 쉬운 시대를 살다간 적이 없다. 개중에 가장 낫다는 장영실마저도 명의 눈치를 보면서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었던가? 기술자들이 천대받는 시기가 아니었던가? 이들이 살다간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의 광해군 시절, 혼탁한 세도 정치 시절,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긴 시절, 7년간의 왜란을 감내하던 시절, 역사상 가장 불우했던 시절이다. 이런 시기에 과연 이들은 어덯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던가?  

  이들의 굳건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이 위기의 때를 살다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다. 혼탁한 시대에, 주어진 환경에 휩쓸려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은 위기에 파묻혀 버리지만 굳건히 버티면서 자기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승천할 수 있는 좋은 때가 위기의 때이다. 단기적으로 보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서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쫓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어떤 역경에도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것 이것이 위기의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고 한다. 게임이 다 끝난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며, 이 가능성을 믿고 전력투구 하는 이들에게 실제로 꿈은 이루어졌다. 물론 오늘같은 사회에서 개인의 실력과 의지만 가지고 위기를 넘어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것 마저도 없는 사람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조용히 숨죽이고 목표를 명확히하고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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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4 - 무너진 왕실의 화려한 귀환 한국사傳 4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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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어떤 분들은 이 이야기가 역사학의 근본부터 흔드는 이야기라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국수주의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이며 역사를 부정하는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반대 예들을 들어 반박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는 순진한 발상이다. 역사는 사람들에 의하여 경험된 사실을 주관적인 관점을 통하여 해석하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순진함이다.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에는 역사를 해석하는 두 가지 방법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첫째는 객관적인 역사 서술 방식이요, 두 번째는 주관적인 역사 서술 방식이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 방식이라 함은 역사의 사실만 나열하는 서술 방식을 말함이요, 주관적인 역사 서술 방식은 이 역사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역사란 철저하게 객관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 사실만 기록한다고 할 때에도 사실 전부를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건의 경중을 가리고 취사선택을 하여 기록하게 되어 있는데 취사선택이라는 것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 이의 주관적인 해석과 판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역사는 철저하게 기록하는 이들에 의하여 그 해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승자일 확률이 크다. 물론 패자가 역사를 기록하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기록된 역사조차도 승자에 의하여 왜곡될 위험성이 너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는 기록, 즉 문자를 통하여 남는 역사를 말한다.) 

  “무너진 왕실의 화려한 귀환”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한국사전 4권을 받았을 때 갑자기 영화 반지의 제왕 3편이 떠올랐다. 왕이 귀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화려하게 귀환하는 아라곤을 그리고 있는 통쾌함이 이 책에 담겨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열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러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역사의 저 너머로 사라져간 왕실 사람들의 고뇌와 슬픔을 접하게 되었다. 4권에 기록된 사람들의 면면은 “광해군, 위덕왕, 우씨 왕후, 공민왕과 노국공주, 혜경궁 홍씨, 흥성대원군”이다. 이들의 특징이 있다면 분명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사람들임에도 이상하리만치 역사적인 평가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폭군의 대명사 광해군, 이름조차 희미한 위덕왕과 우씨 왕후, 사랑놀음으로 정신 이상이 되어 고려를 말아먹은 공민왕과 노국공주, 슬픈 인생을 살면서 가슴 속에 한을 쌓다간 혜경궁 홍씨, 시대착오적이며 독선적인 흥선대원군! 이상이 위에 기록된 사람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사적인 평가이다.  

  이 책에서는 “과연 그런가? 이것이 이들의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들을 재조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매장되었던 이들의 존재가치를 다시 살려내기 시작한다. 현실정치, 국가를 위한 대의 명분, 정치적인 파트너를 잃은 슬픔 등 이들이 가지고 있었지만 역사의 저편으로 매장당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살려낸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사전 4권은 참 볼만한 책이다. 우리로 하여금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 인물을 해석하는 가운데 있어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주인공을 미화하려는 인위적인 모습들이 들어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은 책을 만든 출판사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원래부터 한국사전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 가운데에서 나타난 문제점일 것이다. 주인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려다 보니 그들의 실책과 냉정함까지 바라보지 못했으며, 이로 인하여 또 다른 승자의 역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혜경궁 홍씨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혜경궁 홍씨만큼 논란의 대상이 될만한 사람이 없다. 책에서는 혜경궁 홍씨를 왕실의 여인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현실 가운데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친정이 역적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살다 한중록을 남긴 한 많은 비운의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혜경궁 홍씨에 대한 정반대의 시각이 존재한다. 혜경궁 홍씨는 세자비로 간택되어 왕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철저하게 친정의 이익을 위하여 정치력을 발휘한 사람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도세자가 소론이었다면 혜경궁 홍씨는 노론의 중심이었다. 노론이 소론을 없애기 위하여 사도세자를 몰락시켰어야 했으며(물론 몰락은 죽음을 말한다.) 이 과정 가운데 큰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이 헤경궁 홍씨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사도세자를 몰락시키기 위하여 애썼으며 정조를 세자의 직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하여 세자는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는 발칙한 이야기를 거론한 것도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었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물론 이 책에서는 이런 부분들은 축소하였지만 말이다. 반대 의견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대체로 역사가 이렇다. 역사는 해석이다. 우리가 역사를 읽고 즐기는 이유도, 역사에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이유도 역사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저 받아들이려하면 역사는 죽어 박제화 되어 버린다. 그러나 즐기려고 하고 해석하려고 한다면 역사는 살아 숨쉬며 우리의 일상으로 걸어들어 올 것이다. 역사를 즐기게 해준 한국사전 4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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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사로 산다는 것 -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배우는 것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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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에 글을 기고한 모든 선생님들의 고민일 것이다. 물론 이 고민은 이 선생님들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일 것이다. 도대체 역사란 나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이것을 해석할 수 있어야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된다. 만일 역사를 시험에 나온다고 달달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책을 암기하는 사람일뿐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요, 어느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오늘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과거의 사건을 돌아봄으로 인하여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학생들에게 역사적인 사실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관을 세워가도록 도와주려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이런 선생님들 밑에서 역사를 배운다면 그 아이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일 것이다. 지금이야 비록 티가 나지 않고, 시험에 나지 않아 점수에 반영이 되지 않지만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교사는 단순히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역사관을 정립시켜주는 사람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외우게만 시키는 것이 역사 교사의 전부라면 오히려 민영화하여서 학원 강사를 학교를 불러 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물론 충격적이게도 지금 이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역사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뒹굴면서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얼굴 표정 하나에도 역사에 대한 진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역사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역사 선생님이 사라지고 있다. 역사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는 여전히 많은데 치열한 고민을 가지고 역사관을 정립시켜주는 교사는 멸종되어 가고 있다. "시험에 안나와요." 한마디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아이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그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인 줄 아는 아이들, 황조가 하나 모르면서 연속극 주몽의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태사기의 배용준을 보면서 열광하지만 중원 고구려비를 모르는 아이들, 바람의 나라를 보며 빠져들지만 정작 자명고는 모르는 아이들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까닭은 나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오늘날 나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이듯이, 성경을 오늘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해야 하는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오랫만에 영혼의 양식이 될만한 책을 한권 만났고, 진지한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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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 중국 제국 시스템의 형성에서 몰락까지, 거대 중국의 정치제도 비판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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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단 책이 어렵다. 중국 사람이 중국 고사를 가지고 쓴 책이기 대문에 어렵다. 거기에다가 그 주제가 "과연 이 책을 역사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켜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사회정체에 관한 문제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에 훨씬 더 가까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어려운 고비를 한 순간 넘겼다라는 안도감임을 부인할 수 없다. 440페이지 분량의 책을 2주에 걸쳐서 읽었다는 것은(물론 요즘 바쁜 일들이 많아서 책을 잡고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이 책이 얼마나 일기 난해하고 진도가 안나가는 책인지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읽기 어렵다기 보다는 읽기 싫다고 할까?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참 박식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국의 역사에 대하여 이정도로 꿰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랍고, 중국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는 제국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용기가 부럽다.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떠받들었던 것들이 사실은 백성을 착취하기 위해 고도로 발전된, 그리고 은밀한 계략이요, 통치술이라고 정면에서 비판하는 그의 식견도 존경스럽다.

  제국이 무엇인가? 누구나 제국을 꿈꾼다. 제국은 힘의 상징이다. 권력의 상징이다. 하늘로 대변되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지만 절대 권력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한번은 갖고 싶은 정말 달콤한 유혹이다. 물론 그 끝은 결국 죽음이라는 커다란 대가를 치뤄야 하지만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제국은 농경민족이나 유목민족 같은 무력과 권력을 숭상하는 민족에게서부터 유래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점령하고 천하를 호령한 민족은 여지없이 농경민족이 아니면 유목민족이었다. 권력을 숭상하고 무력을 숭상하는 호전적인 사람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시스템이 제국이다. 물론 하늘은 황제에게, 혹은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국은 하늘을 빙자하며 정당성을 획득한 절대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명천자라는 말 가운데 그 특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제국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대대로 우리 민족은 세계로 뻗어 나갈 수도 있고, 침략을 받을 수도 있는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를 점하고 살았다. 한반도라는 곳에 터를 닦고 살았다. 로마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반도 국가가 되었지만, 우리 나라는 세계로부터 침략당하는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껴왔다. 대략 천번에 육박하는 침략을 당해왔지만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위하고 살아가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것은 약소국의 설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에게 있어서 제국이란 꿈에서도 그리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중국이라는 제국의 밑에서 오랜 세월 관계를 맺어 온,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우리 나라는 본능적으로 제국을 그리워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하나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렇게 제국을 숭상하는 마음에 미국이 없으면 죽는 줄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제국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때문에 우리나라 민족은 국익이라는 말 앞에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는 아프간 파병과 이라크 파병을 찬성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양심을 지키려고 하고, 윤리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도 국익이라는 말 앞에서는 황빠가 될 수밖에 없다. 강한 국가 제국을 희망하기 대문에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공존하는 것이 서툴기만 하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제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미쿡 사람들이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친구를 만들어야 하고 코쟁이 말이라면 어린 시절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한이 있어라도 배워야 하며 쏼라쏼라 혀 꼬부라진 말을 잘 하기 위해서라면 어린 자식의 혀를 째는 수술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렇게 제국을 갈망하면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엇을 위해 제국을 갈망하는가?

  제국이 될 수 없는 나라에서, 왜 그렇게 시대에 퇴행하면서 제국을 갈망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힘은 곧 생존이며, 돈과 무력은 자기를 생존시켜 주는 원동력을 오랜 세월 침략을 통하여 몸에 자연스럽게 익혀 온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절대 강자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장려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과의 공조라는 미명하에 미국을 등에 없고 호가호위하기 위해서 미국에 돈을 퍼 주고, 국민 건강을 내어주고, 부시의 차를 운전해 주는 것이 이 나라의 실상이 아니던가?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꼬부랑말로 큰소리로 외치며 기도하는 모습은 호가호위라는 말, 제국에 대한 충성이라는 말을 제외하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제국을 경험해 본 저자는 제국은 멸망을 늦추는 제도일 뿐 멸망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뒤로 늦추는 만큼 멸망할 때에는 급속도로 망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제도라고 설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공화를 이야기하고 민주의 길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나가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과연 민주국가인가? 헌법이 모든 것 위에 있는 헌정국가인가? 일단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심스럽게 뜯어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천자는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는 말로, 천하위공이라는 감언이설로 백성을 침탈하였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역사의 부름 앞에, 국민을 위하여라는 말로 사리사욕을 챙기고 국민을 침탈한다. 삼권분립이 법제화 되어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의 한마디가 국회를 움직이고, 사상을 검열하고, 국가의 부을 사유화한다. 인터넷을 검열하고, 국가 시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감옥에 넣는 것은 진시황이나 행했던 분서갱유가 아닌가? 측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자기 사람 심기가 아니던가? 그저 황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관리들을 만들어 내듯이 대통령의 은혜에 감지덕지하는 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던가? 그 어떤 법으로도 천자를 제어할 수 없듯이 그 어떤 법으로도 대통령을 제어할 수는 없다. 주권재민을 외치는 국가에서 국민의 의견으로도 말이다. 죄기조를 반포해 천자가 덕이 없어 하늘의 노여움을 사 천재가 발생했다는 정치 쇼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풍랑이나 저항이 거세면 그저 죄송하다고, 덕이 없어서 그렇다고 국민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하며 조금 지나 가라앉으면 강경대응하는 것과 죄기조가 무엇이 다른가? 평화 시위는 보장하지만 불법 시위는 엄단하겠다 말하는데 평화 시위와 불법 시위를 가르는 심판은 누가 보는가? 결국 책임지지 않는 권력자가 아니던가? 이 모든 불만을 유학으로 통일시켰듯이 조중동으로 사상통일시키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중텐 교수가 지적한 제국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말 흡사할 정도로 품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니던가? 君貴民賤의 실상을 天下爲公으로 교묘히 감추었듯이 집권층의 사욕을 국민의 뜻이라는 말로 교묘히 감추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지막으로 묻는다. 대한민국은 헌정국가인가? 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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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傳 3 -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 한국사傳 3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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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가? 비단 E.H.Carr의 책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란 특별한 존재이다. 인류가 살아 남는 이상 역사 또한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살아 남을 것이다. 역사가 인류에게 있어서 가지는 위상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역사가 재미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역사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다. 종교개혁을 설명하기 위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배경을 설명을 하다가 고3 학생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녀석들에게 학교에서 안배우냐고 물었더니 당당하게 하는 말이 안배운다는 것이다. 상식인데 모르냐는 말에 그런건 시험에 안나온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설명을 포기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역사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시험에 나오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쓸데 없이 외울 것이 많다는 것이 역사에 대한 우리나라 문교부(지금은 과학 기술부)의 평가이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말하지만 순수 인문학은 이미 위기의 단계를 넘어 멸종의 단계로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니 뉴라이트 도라에몽님들께서 그 말도 안되는 역사책을 펴내신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묘사하는 도라에몽님들. 하나님의 이름이 그런데 사용된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뿐이다. 그냥 자기들의 태생이 그러니 자기들은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노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곧 죽어도 자신들은 애국 애민하는 부류라고 말하는 것이 가소로울 뿐이다. 왜 그런가?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역사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거 시험 점수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수학공식 외우듯이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다. 해석하고, 그 이면의 깊은 곳을 살펴봐야 하는 고등의 사고력을 요하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대한민국 교육부의 정책이 가소로울 뿐이다.

  각설하고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가졌던 생각이다. 논어 팔일편에 이런 말이 있다.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공자가 말하길, 주는 이대를 살펴보아 그 문화가 찬란하다. 그래서 나는 주를 따르련다.)"

  또한 조선시대 대학자 徐居正(서거정1420-1488)은 동국통감을 지어 올리면서 箋(전- 책의서문)에 "나라의부흥과 패망에 있어서 이미 지난 것에서 거울삼을 것이니 , 거짓으로 미화하지 말고 악한 일도 감추지도 말아야 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줌이 마땅하다" 라고 밝혔다. 이 두가지 이야기는 역사의 역할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역사는 거울이다. 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면 교사 삼고, 과거의 치적은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 하여 본으로 삼을 것인가 판단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과거 사관에 대한 왕들의 핍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실정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관들에게 압력을 가하였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관들이 목숨 내걸고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이만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가급적이면 후대에 남겨주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다. 물론 거기에 정치적인 해석이 들어가 있지만 후대는 여러가지 사료를 살펴보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일단 사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에는 사료를 남기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들이 자기 정권이 끝나고 나면 모든 기록들을 말소하고 리셋하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5년후 리셋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정책이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오늘날 벌어지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바라보면서 사료조차 남기길 원하지 않는 파쇼라는 생각이 든다. 잘하든 못하든 후대에 기록은 남겨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파쇼를 하려면 적어도 박정희처럼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배포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박정희가 잘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배포도 없고,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아 배워온 검찰과 경찰을 움직이는 강압정치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권의 한계가 아니던가? 답답한 마음 뿐이다. 도대체 역사에서 무엇을 거울 삼아 배웠는가? 이 책을 다시 한번 열어보길 바란다. 오늘날 논란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여기 다 들어 있다.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라는 부제에 맞게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어떻게 그런 언행을 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책은 바로 거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백제를 부흥스킨 무령왕, 개인의 아픔은 뒤로 하고 수렴청정하여 조선의 기초를 다진 정희왕후,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 김성립과 결혼한 불운의 여인 난설헌, 왜가 아닌 조선 정부에 의하여 꺾여버린 곽재우, 닫힌 시대 자생 천주교의 리더이나 천주교로부터 배교자로 평가받는 이벽, 황제의 연호를 쓰면서 당대 최고의 제국 당과 맞짱 뜬, 그리고 당도 함부로 하지 못한 발해의 무왕과 문왕, 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당쟁의 진흙탕으로 내려간 정철, 왕이 하늘인 시기에 밥이 백성의 하늘이라 말한 세종, 조선의 사대부들과 싸워서 한국의 소리를 뿌리 내린 세종!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지금가지 우리 역사 교육의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당장 세종만 해도 한글 창제와 집현전이라는 부분에만 집중했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장영실을 등용하면서까지 과학기술에 목메었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과만 놓고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의 한계였을 것이다.

  당과 맞장뜨는 당당함과 국제 관계에서 적절하게 실리를 챙기는 외교는 오늘날 관료들이, 특히 농수산부 협상팀과 6자회담 실무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프렌들리 비지니스를 외치면서 기간 사업을 민영화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이미 남미에서는 이것들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좌파 정권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10년만에 다시 찾은 정권이라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국민들의 밥을 빼앗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것이 국제화 시대에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외국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얼빠진 사대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여자라서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이들은 난설헌의 이야기를 거울 삼으면 된다.

  정말 주옥같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 책의 내용이 쉬워 쭉쭉 넘어가지만 그 내용은 결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두고두고 음미해볼 내용들이다. 책을 덮고 벌써 4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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