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와 목회의 실제 - 큐티에서 설교까지
로렌 커닝햄.이동원.하용조 외 지음 / 두란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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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온누리교회에서 행했던 QT에 관한 세미나를 정리하여 엮은 책. 

  신앙인에게 QT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통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내 삶을 돌아 보는 것, 그리고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는 것, 이것이 QT가 아닐까?  

  이 책은 QT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전해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으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QT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과 간단한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고, 어떻게 교회 안에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만들었으나 왠지 QT를 목회의 한 기술 정도로 전락시켜버리지 않았는가하는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큰 교회, 성장한 교회의 목회자들을 불러 모아 "우리 교회는 QT로 성장했다."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려 준다면 일반적으로 어떤 생각이들까? "우리도 QT하면 성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내가 너무 삐딱하다고 하지 말라. 책을 읽어보면 충분히 할 법한 생각이니. QT로 성공한 교회 이야기는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이 실제로 QT를 어떻게 나누었는지에 대한, 그리고 실제로 어덯게 인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례는 전혀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유명한 목회자들을 불러 모아 하게 만들다니 왠지 빛좋은 개살구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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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 - 세상을 이기는 하늘의 힘 전병욱 두나미스 북스 1
전병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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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병욱 목사의 책은 꾸준히 사서본다.  

  그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전병욱 목사의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는 90%의 사람들이 책이 너무 비싸다 말한다. 

  돈주고 사보기에는 아깝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 바야한다는 것이 딜레마라면 딜레마랄까? 청년부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봐야하는 답답함을 다시한번 느껴본다. 

  여전히 그의 설교는 확신에 차 있다. 그러나 그 확신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는 와닿지 않는다. 설교 자체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다. 그러나 왠지 마음을 치지 못한다. 디즈니의 만화영화나 스포츠영화보다도 내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도행전이라는 강력한 텍스트를 다루면서도 말이다. 내가 너무 교만한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이 너무 강퍅한 것인지. 솔직하게 때론 부럽기도 하다. 이렇게 평범한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그 많은 청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이런게 먹히는 것인가?  

  권능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에, 일반적인 내용, 그리고 적은 분령과 성긴 구성, 내용에 비하여 비싼 가격. 전병욱이라는 이름 값이 아니라면 팔리지 않았을 책인지도 모른다. 규장에서 너무 막 찍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유앙겔리온 북에 더 많은 노력을 쏟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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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있는 교회는 첫인상부터 다르다
마크 L. 왈츠 지음, 서진희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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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사람들. 

  혹은 지나가다가 들른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어떻게 첫인상을 만들 것인가? 

  교회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가 전도라면 처음으로 교회에 인도되어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편안하게, 그리고 어떻게 친근하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례를 제시한 책이다.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을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소비자를 배려하듯이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교회로부터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결론이다. 

  교회를 성장의 측면에서, 그리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교회를 방문한 이들을 소비자로 이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대형교회에 더 적합한 시스템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긴하지만 교회의 안내팀이나 새신자 맞이팀에게 꼭 한번은 읽혀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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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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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짐 

  요즘은 B급이 트렌드인가 보다. 우석훈씨도 그렇고, 봉준호 감독도 그렇고, 김규항씨까지. 무엇인가 책을 내 놓을 때 자신들은 A급이 아니라 B급이라고 한다. 그런데 왠지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보 이지만은 않는다. 뭐랄까?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는 겸양의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자기 생각에 대해서 일정부분 채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마케팅의 일환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말이다. 여하튼 B급 좌파 김규항이라는 말에 이 책을 살짝 머뭇거렸다. 몇 번의 고민 끝에 책을 사서 읽게 되었는데, 글쎄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왜 센세이션을 일으켜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 책이 왜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질타와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는 한 이 책은 상당히 가볍게 쓴 책이다. 인간의 예수만 부상시켰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게 부상시킨 것도 아니다. 이정도면 인간예수를 논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하다 싶은데. 오히려 양호하달까? 인간의 예수를 조명하는 책이라면 적어도 한국기독교 연구소에서 나오는 역사적 예수시리즈들을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적절한 마케팅과 얇은 분량과 기독교 비판이 적절하게 만나서 이루어진 우연의 산물이 아닐까? 학적으로도, 그렇다고 논리적으로도 다른 책들에 비하여 많이 빠진다는 것은 일단 집고 넘어가자. 저자가 스스로 B급이라고 하지 않던가?(절대 저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단지 다른 책들에 비하여 떨어짐을 지적하는 것일뿐!) 

  예수에게는 두 가지 측면의 모습이 공존한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즉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이다. 다른 하나는 200년 전 갈릴리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피억압민족의 아들로서 살았던 역사적인 예수이다. 전자가 그리스도라면 후자는 예수요, 전자가 믿음의 대상이라면 후자는 따라감의 대상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 이 바른 신앙의 모습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예수를 믿기는 쉬워도 예수를 살기는 어렵다. 전도의 초기 이제 막 탄생한 한국 교회는 두 가지를 모두 지고 갈 수 없었을 것이고, 포교에 조금은 더 쉬운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복신앙마저 함께 내세웠다. 그 결과 만들어진 구호가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지만, 복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들을 무시했고 산업시대를 겪으면서 삼박자 축복을 통하여 활짝 꽃을 피웠다. 그리고 산업화가 정리되어 가는 지금에 와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 한국 교회는 포기하였던 예수 살기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르렀다. 누가 봐도 답은 뻔하다. 예수 살기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매몰비용이라고 할까. 아니면 신앙의 경로 의존성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따라왔던 B급 신앙을 버리지 못하면 이 땅의 한국 교회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 것임에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하는 오만을 보면서 절망을 느끼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더군다나 장로 대통령이라는 미명하에 친정부적인 설교를 행하고 정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더 절실히 예수 살기에 대하여 갈망하게 된다. 

  예수는 분명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당에 왔고 십자가를 졌다. 이러한 모습을 비난해서는 안될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타종교에 대하여 관용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 기독교를 비판하는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독교의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차라리 죽으라는 것과 같다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라. 이슬람에게 알라를, 불교도에게 부처를, 일본인에게 천황을 부인하라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임을 기억하라. 그러나 기독교인들 또한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반복음적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 놓을 것이 아니라 약자들과 함께 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을 기억해내고 따라가야 할 것이다. 단지 이것만이 B급 신앙에서 A급 신앙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10년 후 한국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 약자와 호흡하는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인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 시대의 구레네 시몬이 많아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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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굉장히 공감가는 서평이네요!
이책은 참...기독교인으로서 보기엔 너무답답하더라구요..

saint236 2009-06-23 10:01   좋아요 0 | URL
답답하죠. 이 책이 파장을 일으키는 사실도, 또 기독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당연한 이야기가 힘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답답하죠.
 
생명력 유앙겔리온북스 1
전병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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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력!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말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데 왜 신앙만은 유독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는가? 왜 전혀 움직이지 않는가? 우리의 신앙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화석처럼 생명을 잃어버리고 박제화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철저하게 물어보고 고민해야 하는 질문일 것이다.  

  교회에 생명력이 있는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이 양분을 공급받고, 은혜를 체험하는가? 교회 때문에 세상이 생명력을 얻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인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가슴아픈 일이다. 생명력을 고사하고 "왜 교회를 통해서만이라고 말하는가?"라며 독선적이라는 세상의 질타를 받고 있지 않는가? 땅을 치며 회개할 때이다. 외형 때문에, 사이즈 때문에 생명력을 포기한 대가를 이제서야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초대 교회 교인들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불의를 보고 가만히 침묵하는 이들을 일깨우면서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삶의 증거로서 소란함을 주었던 교회가 적막함이 감돌고 있다. 이제 결단할 때가 아닐까? 진지한 질문을 던져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때문에 집중력과 돌파력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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