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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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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짐
요즘은 B급이 트렌드인가 보다. 우석훈씨도 그렇고, 봉준호 감독도 그렇고, 김규항씨까지. 무엇인가 책을 내 놓을 때 자신들은 A급이 아니라 B급이라고 한다. 그런데 왠지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보 이지만은 않는다. 뭐랄까?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는 겸양의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자기 생각에 대해서 일정부분 채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마케팅의 일환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말이다. 여하튼 B급 좌파 김규항이라는 말에 이 책을 살짝 머뭇거렸다. 몇 번의 고민 끝에 책을 사서 읽게 되었는데, 글쎄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왜 센세이션을 일으켜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 책이 왜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질타와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는 한 이 책은 상당히 가볍게 쓴 책이다. 인간의 예수만 부상시켰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게 부상시킨 것도 아니다. 이정도면 인간예수를 논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하다 싶은데. 오히려 양호하달까? 인간의 예수를 조명하는 책이라면 적어도 한국기독교 연구소에서 나오는 역사적 예수시리즈들을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적절한 마케팅과 얇은 분량과 기독교 비판이 적절하게 만나서 이루어진 우연의 산물이 아닐까? 학적으로도, 그렇다고 논리적으로도 다른 책들에 비하여 많이 빠진다는 것은 일단 집고 넘어가자. 저자가 스스로 B급이라고 하지 않던가?(절대 저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단지 다른 책들에 비하여 떨어짐을 지적하는 것일뿐!)
예수에게는 두 가지 측면의 모습이 공존한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즉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이다. 다른 하나는 200년 전 갈릴리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피억압민족의 아들로서 살았던 역사적인 예수이다. 전자가 그리스도라면 후자는 예수요, 전자가 믿음의 대상이라면 후자는 따라감의 대상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 이 바른 신앙의 모습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예수를 믿기는 쉬워도 예수를 살기는 어렵다. 전도의 초기 이제 막 탄생한 한국 교회는 두 가지를 모두 지고 갈 수 없었을 것이고, 포교에 조금은 더 쉬운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복신앙마저 함께 내세웠다. 그 결과 만들어진 구호가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지만, 복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들을 무시했고 산업시대를 겪으면서 삼박자 축복을 통하여 활짝 꽃을 피웠다. 그리고 산업화가 정리되어 가는 지금에 와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 한국 교회는 포기하였던 예수 살기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르렀다. 누가 봐도 답은 뻔하다. 예수 살기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매몰비용이라고 할까. 아니면 신앙의 경로 의존성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따라왔던 B급 신앙을 버리지 못하면 이 땅의 한국 교회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 것임에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하는 오만을 보면서 절망을 느끼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더군다나 장로 대통령이라는 미명하에 친정부적인 설교를 행하고 정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더 절실히 예수 살기에 대하여 갈망하게 된다.
예수는 분명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당에 왔고 십자가를 졌다. 이러한 모습을 비난해서는 안될 것이다. 종교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타종교에 대하여 관용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 기독교를 비판하는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독교의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차라리 죽으라는 것과 같다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라. 이슬람에게 알라를, 불교도에게 부처를, 일본인에게 천황을 부인하라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임을 기억하라. 그러나 기독교인들 또한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반복음적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 놓을 것이 아니라 약자들과 함께 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을 기억해내고 따라가야 할 것이다. 단지 이것만이 B급 신앙에서 A급 신앙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10년 후 한국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 약자와 호흡하는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인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 시대의 구레네 시몬이 많아지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