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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원정기 - 아나바시스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8월
평점 :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를 듣다가 빵터졌던 적이 있다. 정확하게 몇회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진행자 이용이 시민에 관해서 말하면서 그리스 중장보병을 일컬어 깨시민이라 표현했었다. 그리스의 주축은 시민으로 구성된 중장보병이었고, 전시가 되면 그들은 국토 방위 혹은 영토 획득을 위한 전쟁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 댓가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발언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정치적인 발언이라는 것도 페리클레스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교묘하게 이용당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원칙상 그리스는 시민으로 구성된 민회가 도시의 정치적인 사안들을 결의하게 되었다. 그리스 시민들의 참정권은 피를 흘리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은 아테네와 같은 민주정체를 선택한 도시들에 해당되는 것이며, 스파르타와 같은 왕정을 체택한 나라들이나, 참주제와 같이 소수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들에서는 정치적인 의결이라는 것은 일부 지도층에 의해서 이루어질 뿐, 일반 시민에게까지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시민들로 구성된 중장보병들이 주축을 이루어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 중장보병들은 도시 국가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고대 그리스와 터키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대제국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경무장을 한채로 강제로 동원되는 페르시아의 군대와 중무장을 하고 진형을 갖추어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싸우는 그리스의 중장보병의 대결은 단순히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그리고 끊임없이 식민 도시들을 늘려가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그리스 민족 내부의 전쟁은 그리스 중장보병을 더욱 날카롭게 훈련시키는 장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리스 중장보병의 전투력은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의 중장보병은 향후 이어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 휘말려 더 많은 실전 경험을 쌓게 되었고, 반대 급부로 그리스 연합의 힘은 소진되었다. 그 결과 페르시아와 맞장을 뜨던 그리스의 영광은 사라져 버리고 막강한 전투력을 소지하고 있던 그리스의 중장보병은 용병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적대국 페르시아의 용병으로 말이다.
페르시아 원정기는 이렇게 그리스의 자유를 지키던 자부심으로 충만했던 그리스 중장보병이 페르시아의 반란군 퀴로스의 용병으로 전락하여 고용되었고, 하루 아침에 고용주를 잃어버리고 실업자로 전락한 이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아무리 좋게 봐줘야 위험한 전쟁을 벌이면서 이동한 기행문이고,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면 퇴각기라고 하겠다. 그렇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원정기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은 그리스 중장보병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제목이라고 하겠다. 원제 아나바시스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원정기, 혹은 소아시아 원정기라고 번역한 것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스 중장보병의 입장을 대변하기에 충실한 제목이다.
그리스 연합군의 진군로와 퇴각로를 지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쿠낙사 전투에서 그리스 군의 고용주인 퀴로스가 전사했기 때문에 쿠낙사를 기점으로 진군로와 퇴군로가 나뉘어 진다. 만약 이 책을 페르시아 원정기라고 부르고 싶다면 쿠낙사까지의 여정만을 지칭하면 되겠다.
그리스 용병의 숫자가 처음에는 1만명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1만인의 진군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그리스 용병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멀리 돌아갔던 것은 그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 갈 경우 본인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투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병력이 6,000명이라고 하니 크세노폰은 생각보다 장군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크세노폰은 이 책을 기록하면서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서 평을 한다. 그리스의 장군들, 페르시아의 왕인 아르타 크세르크세스 2세, 그의 동생인 퀴로스를 비교하면서 퀴로스를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로 평한다. 크세노폰의 인물평은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궁금하면 크세노폰이 퀴로스를 평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난 이책을 읽으면서 크세노폰의 자기 위안을 발견한다. 과거 대제국과 맞짱을 떴던 영광스러운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한낱 용병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는 크세노폰 뿐 아니라 당시의 그리스 지도층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감정이었으리라. 비록 지금은 분열하여 돈을 받고 전쟁을 대신해주는 고용인의 입장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페르시아의 지도층마저도 자신들의 전투력만은 인정해준다는 식의 서술이 책의 곳곳에 넘쳐난다. 이러한 크세노폰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인지 번역서들이 하나같이 페르시아 원정기, 혹은 소아시아 원정기라는 제목으로 이 전쟁은 패배하여 퇴각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원정을 잘 치르고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페르시아 원정기의 전쟁은 영광스럽지도, 주체적이지도 않다. 전쟁의 결정권자는 그들이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퀴로스에게 있는 것이며, 그 퀴로스가 죽은 시점에서 그들은 한낱 패배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이 적대적인 지역을 뚫고 영광스럽게 귀환했을지라도 말이다. 제갈량이 위를 정벌하러 갔다가 일사분란하게 퇴각하여 병력의 손실을 입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에서 실패한 것처럼 말이다.
묘하게도 크세노폰의 입장은 소위 말하는 오늘날의 진보 진영과 많이 닮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깨어 있다고, 시대를 변혁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 진영에 의해 복지 이슈를 빼앗기지만 않았다면 선거에서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과정이 어떻든 간에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선거라는 것이 무리수가 많았고 반칙이 많아서 오늘날 문제가 되긴 하지만 선거에서 패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인가? 선거 패배의 과정과 원인을 곱씹어 보고 다시는 패배하지 않을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부정 선거가 없었더라면, 복지 이슈를 선점 당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말로 자기 위안을 삼을 것이 아니다. 우매한 대중들이 자신들을 몰라준다고 국민을 탓할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반성이지 자위가 아니다. 국민들이 진보 진영을 지지 않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그리스 중장 보병이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한 이유는 신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연대에 있다. 그리스 중장 보병도 그렇고 로마의 중장 보병도 그렇고 기본적은 동일하다. 기병의 중요성이라는 중요한 차이는 있지만 내 옆에 있는 이의 방패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는 것이 전술의 기본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중장 보병이 승리한 전쟁은 철저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면서 대형을 흐트리지 않을 때 가능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중장 보병이 패배한 전쟁은 대개 밀집 대형이 흩어진 순간, 즉 자기 편에 대한 신뢰와 연대가 깨진 그 순간이다. 이 사실을 진보 진영에서는 눈여겨 봐야할 것이다. 과연 현재 진보 진영에는 연대가 있는가?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이유로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민주당,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서 독주하는 통진당,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진보 정의당, 오합지졸로 흩어져서 자기 목소리만 내기에 급급한 여러 진보 정당들! 신뢰와 연대가 필요한 진보진영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고, 오히려 새누리당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날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정치가 깨시민의 자기 위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진보 진영에게 필요한 것은 깨시민으로서의 딸딸이(이 말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쓴다.)가 아니라 통렬한 자기 반성과 신뢰와 진정을 바탕으로 한 연대이다. 그들이 크세노폰의 입장에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