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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세트 - 전10권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꽤 좋아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나에게 한국 현대사에게 대해서, 사람의 아들은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삼국지를 삼국지 중 최악의 작품이라고 일컫지만 한국 작가 중에 삼국지를 꽤 재미있게, 그리고 자신의 비평을 곁들이면서(거기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기록한 이들 중에 대중들에게 이만큼 인지도를 얻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그의 삼국지를 통하여 평역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서 역사 소설이라는 것을 이렇게 읽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거이구나 생각을 했다. 중고등학생 때 삼국지를, 조금 더 커서는 사람의 아들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여러번 읽었고, 끝까지 읽는 것이 고문이리만치 힘들었던 선택이라는 책, 그외에도 수호지를 비롯하여 틈틈히 그의 책들을 읽어 왔으니 나를 이문열 키드라고 불러도 그렇게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문열 키드라고 자칭한 것처럼 그의 책은 내 사고 형성에 꽤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선택이라는 책은 그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퇴색시켰다. 그래도 이문열이 실수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았지만, 몇년전 그의 극우적인 발언들은 그가 실수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한가닥 희망만큼은 잃지 않았기에 이문열 책 장례식을 펼치는 이들을 보면서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비판했었다.
그러다가 이문열의 초한지가 나왔고 초한지와 이문열이라는 조합에 한번 사볼까라는 생각으로 품었다. 그러나 반값 할인을 했던 기회를 놓치고 난 후에 정가를 주고 사기 아깝다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내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받아냈다. 책박스 채로 않고 그대로 두길 몇 주... 20권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두번째로 이 책을 읽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기대감으로 책을 폈다가 괜히 폈다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책은 삼국지에 비해서 진도가 안나가긴 하지만 이문열의 글솜씨가 쇠퇴해서가 아니다. 여전히 이문열이구나, 썩어도 준치구나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 정도로 꽤 재미있다. 다만 삼국지에 비해서 스토리 자체가 가지는 힘이 많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괜히라는 후회를 했던 이유는 한가지다. 그의 서문 때문이다. 서문의 내용을 정리하기 보다는 그 대목들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없을 것 같아서 간략하게 옮겨본다.
5년이 넘는 중국사 장정이 드디어 끝났다. 돌이켜 보면 이 장정은 내 문학의 어둡고 쓸쓸했던 한 계절을 어렵게 헤쳐 나온 궤적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내 문학을 조여 오던 묵살(默殺)의 카르텔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일방적인 단죄의 선고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판 홍위병들이 그 선고의 어설픈 집행자로서 내 문학의 장례식을 되풀이 거행하자 나도 격렬하게 응전하였다. 그러나 득세하는 인터넷 대자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나날이 괴물이 되어 가던 나는 갈수록 더 흉흉해지는 전의(戰意)만큼이나 주체 못할 피로와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중략)...
한입 가득 불평을 물고 앙앙불락 지내는 사이에 한 시대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바라노니, 이제 더는 시대의 아이들과 불화하고 싶지 않구나.(이문열의 서문 중에서)
그의 생각이 나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가 극우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의 발언을 가지고 그의 문학적인 성과들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의 문학적인 성과들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면 논리적인 평을 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요즘 힙합 뮤지션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디스를 하던지 하면 될 것을 그의 책들을 모아서 불태우는 것은 도가 지나치지 않았는가 싶다. 이런 견지에서 보자면 이문열의 분노가 이해가 안될 것도 없지만 문제는 그의 홍위병 발언이 자기의 책을 불태운 이들에 대한 분노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부모에게 받은 소중한 머리칼을 자르느니 차라리 내 목을 베라."는 말이 단순히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겠다는 멋쟁이의 고집이 아니듯이 그의 홍위병 발언은 자기 문학적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다. 그의 발언은 이것과는 상관없는 정치적인 발언이다. 이미 홍위병 발언은 그 전에 있었고, 전라도 발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여러번 있었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일의 전후가 뒤집어지게 되며 이문열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일의 전후를 뒤바꾸어서 자기를 억울한 희생양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과 다투지 않고 홀로 독야청청하는 탈속한 사람으로 만드는 기술을 보면 이 사람의 글솜씨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서문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할말이 많지만 이 정도에서 줄이고, 왜 하필 고전, 그 중에서도 초한지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뜬금없다 여기지 말라. 모든 일에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 있고, 그 의도라는 것이 글솜씨가 좋은 사람일수록 더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술렁술렁 넘어가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고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초한지는 이미 말했듯이 삼국지에 비해서 재미가 없다. 삼국지가 수많은 등장인물과 전략과 전술, 계략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면 초한지는 무협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항우라는 걸출한 절대 지존이 등장한다. 그는 초반부터 넘사벽이다. 그의 주변에는 기막히 스펙을 자랑하는 그의 부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그의 반대편에 출신도 미천하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하층민이 등장한다. 그가 어울리는 친구들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개장수, 곡소리꾼, 건달, 하급관리 등등 뛰어난 능력도 든든한 배경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넘사벽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의 주인이 된다. 아마도 이문열은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 시대에 우리를 이끌어갈 영웅을 간절히 소원했는지도 모른다. 일반 시민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현실 앞에서 이건 아니라면서 우리를 이끌어줄 영웅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문열의 기다링 때문일까? 그 영웅이 등장했다. 물론 그 영웅이 진짜 영웅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일단 이것은 뒤로 젖혀두고 이문열이 기다리던 영웅의 행적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다. 아마도 이문열은 항우형보다는 유방형을, 가능하면 항우형과 유방형을 섞은 타입의 영웅이었으면 생각했을 것이다. 이문열은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서 모든 보수 세력을 아우르고 진보진영과 한판의 싸움을 벌리고 최후에 권력의 승자가 되는 영웅을 기다렸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면 이 영웅의 출신이 운동권도 아니고, 장돌뱅이도 아니고 둘째가면 서러워할 그런 가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문열의 기다림이 결실을 맺었던 것일까? 이에 부합하는 한 인물이 등장했고 권력 쟁투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겉보기는 이문열의 바람대로 된 것 같지만 그 실상은 이문열이 제일 꺼려하던 형태로 나타났다. 유방을 베이스로 하여 항우의 스펙이 뒤덮인 것이 아니라, 항우를 베이스로 하여 유방의 교활함이 가미된 것이다. 유방의 교활함과 권력에의 의지라는 것도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고 인재를 받아들이고, 몇번을 실패해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전제가 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비교할 수 없는 항우와 유방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외연의 확장 능력 때문임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지도자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에게, 한 진영을 이끌고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람들에게 맹박이, 쥐박이, MB라는 명칭으로 조롱을 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소통의 부재가 아닌가? 명박 산성이라는 컨테이너 차폐물이 그의 소통 방식의 상징이 아니던가?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많이 거론했지만 수첩공주라는 그의 별명이 의미하듯이 그 또한 소통에 취약하다. 페북을 하고, 여러가지 SNS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이란 다른 이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타작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소통이라고 한다면 항우는 소통의 달인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의 생각을 타자에게 전달하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초한지를 읽으면서 여러모로 생각할 만한 사안들이 많았다. 이게 고전이 가지는 힘인가 보다. 아마도 이것이 이문열이 고전으로 피했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홍위병 운운하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스탠스와 변명을 저자의 서문에 실어 놨다는 것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꼰대 정신으로 똘똘 뭉쳐 나는 시대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작가의 자존심이 있다면 초한지 서문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나는 시대를 잘못만난 피해자다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작가다운 다른 방법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차라리 안도현처럼 절필 선언이라도 했다면 논란은 있겠지만 덜 구차하지 않았을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서문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변신은 김지하의 변신만큼이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