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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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가족!

 

  한때 삼성이 밀었던 모토다. 고객을 가족처럼, 사원을 가족처럼 여기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져서 "오..저런 금쪽같은 슬로건을..."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삼성이 말하는 가족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막말 김용민 선생께서는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을 "또 하나의 가좆"이라는 말로 패러디 하실 것이 분명하다. 김용민이라면 하고도 남았을 농담이니 분명히 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들어보지 못했겠지.

 

  잠시 19금 이야기로 흐를지도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가좆"이라는 말을 통해서 삼성이 사원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좆"이라는 말은 남성의 성기를 속된 표현으로 부르는 말이다. 정력에 좋다면 뭐든지 먹어치우려는 습성이 있는 남성들에게, 특히 한국의 남성들에게 "ZOT"라는 것은 참 중요한 신체의 일부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면 어떨까? 만약 남자가 태어나면서 여분으로 "ZOT"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할까? 물론 보호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여분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가차없이 포기해버릴 것이다.

 

  왜 내가 19금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 "ZOT"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 삼성에게 노동자가, 고객이 꼭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많은 대기업들이, 특히 삼성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과 동시에 욕을 먹는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는 포기할 수 있다"는 태도에 있다. 기업에게 고객은 자기의 물건을 사주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의 need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 행여라도 고객이 클레임을 건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고객들의 불만에 대처할 것이다. 기업이 작을수록 더욱 이런 불만에 민감한 태도를 취한다. 그렇지만 선두 기업이 되면, 대기업이 되면 그러 불만에 대해서도 둔감해지게 된다. 왜 그런가? 굳이 그 고객이 아니더라도 대체할 수 있는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국제 무역이 활발한 시대라면 국민기업이라는 말이 무상하게 자국의 고객들에게는 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왜냐구? 단순하게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산다는 차원이 아니라 애국심이라든, 국민을 먹여살린다든지 하면서 다른 돌파구를 찾을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기업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이것이 기우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돈을 주고 자기 물건을 사는 고객에게도 그런데 자기가 돈을 주고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것을 막는 투쟁의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조직이 노조다. 그러니 이 노조라는 것이 기업가에게 얼마나 불편한 존재이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불편하다고 해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 또한 기업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족이 아니던가? 물론 자기들이 돈을 주고 고용한 노동자들이 자기업의 물건을 사주는 고객이 된다는 이해타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애증의 관계 속에서 공생하는 것이 기업과 노조의 관계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자회사의 노동자를 가족이 아니라 기계 부품으로 생각한다면, 그래서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굳이 그 사람들이 물건을 사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고객을 충분히 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면, 아니 그런 똥배짱이 있다면 둘 사이의 관계를 매우 달라진다.

 

  여기에 삼성 나아가 대기업이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의 비밀이 숨어 있다. 과거에는 자기 회사의 노동자들이 물건을 사주는 주 고객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우대하고, 보호해야했지만, 이젠 그들이 고객으로서 차지하는 비중과 구매력이 과거에 비하여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가족이라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가좆이라는 개념으로 사원들을 대하기 시작한다. 보호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포기할 수 있다. 이것이 대기업들이 사원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이다. 다만 삼성은 그 정도가 유달리 더 심할 뿐이다.

 

  과거의 기업의 태도로 본다면, 현대라는 기업에 밀렸던 그 시절의 삼성을 기억한다면 오늘날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라는 허울 속에서 행하여 지는 미행과 노조파괴와 해고가 이렇게 대놓고 행하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후의 보루요,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다른 대안이 있다. 그러니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 거리면서 버릴까 말까 고민할 이유가 없다. 설령 고민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만지작거릴 이유가 없다. 그냥  한번 쓰고 버리면 된다.

 

  이것을 장기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 장기를 둘 줄 아는 사람들은 졸과 차의 중요성이 다른다는 것을 안다. 차는 2개다. 위력도 막강하다. 졸은 5개다. 졸 개개의 능력은 정말 약하다. 그러니 둘 줄에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차대신 졸을 포기한다. 이것이 장기의 기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기를 오래두다보면 졸을 포기하는 것이 처음과 많이 달라진다. 처음 장기를 배울 때는 졸 하나를 포기할 때에도 심사 숙고를 한다. 그러나 몇 번 장기를 두면 습관적으로 졸을 포기하게 된다. 대용품이 많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막판에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졸이다. 졸이 몇개 남아 있는가에 따라서 판세가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그때 가서 후회를 하기 시작한다. 왜 일찍 그렇게 버렸을까? 지금 삼성에게 사원은 쉽게 포기해도 되는 졸이다. 대용품이 아직 많이 있다. 그러나 막판에 이 졸의 무게는 전혀 달라지듯이 위기를 겪을 때 사원의 무게는 달라진다.

 

  삼성이 지금 잘나간다. 정말 잘나간다. 그래서 사원을 가족이 아니라 대용품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영 마뜩치 않다. 세련되기는 했는데 사람냄새가 안난다. 수더분하다고 하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온통 수치만 가득한 것 같다. 수출 얼마 달성, 한 주에 얼마 등등. 그래서 더 사람 냄새를 지우기 위하여 경영혁신이라는 향수를 뿌린다. 사람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삼성에 입사한 사람들은 오직 한가지만 생각한다. 젊을 때 바짝 벌어서 내 사업을 차려야겠다. 여기에 미래가 있을까? 삼성이 사원을 가좆으로 생각하지 사원도 삼성을 가좆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내겐 이 포장이 또 하나의 가족으로 대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을 구하겠으니 너를 포기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백혈병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다. 대상자들에게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지만, 관망자에게는 백혈병 문제는 병의 본질이 아니라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연대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문제의 본질을 바로 잡아야 한다. 안그러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냄새 나지 않는 기업에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부품으로 취급받게 될 것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대체될 것이다. 난 삼성에서 사람 냄새가 나길 원한다. 삼성은 물론이고 다른 기업에서도 사람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세상, 경제 민주화? 어려운 말로 빙빙 둘러서 표현하지 말자. 사람냄새라는 말, 이외에 무슨 말이 필요한가?

 

  머리가 복잡해서 두서 없이 적다보니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의자 놀이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보면서 울컥 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꼭 한번씩은 읽혔으면 좋겠다. 황상기씨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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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1-1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어쩜 이리 깔끔, 완벽, 임팩트 강한 글을 쓰시는지...
음미하면서 읽게 되는... 사람냄새 나라 하시는데,전 님의 인간적 글 냄새에 취해 그만^^*
내공 장난 아닌 게 보이니 또 한 수 배우고 갑니다.

saint236 2013-01-13 17: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두서없이 썼는데 못다한 말들이 많네요. 시사인 삼성 백혈병은 산재가 맞다는 기사를 링크하려다가 그것도 못하고 말았네요.

transient-guest 2013-01-15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력한 법제와 실행이 필요한데, 지금 한국의 법은 기득권의 것이죠. 이런 이슈는 결국 시민의식이 더 성숙해지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삼성제품이 좋아도 쓰기 싫어지는 이유가, 사원과 구매자를 그렇게 취급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saint236 2013-01-16 10:42   좋아요 0 | URL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노회찬 의원의 말이 가슴 속에 확 박힙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01-1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중에 삼성 다니시다가 퇴직하신 분이 있는데
삼성 드만두시고 거의 폐인이 되셨어요 ㅠ.ㅠ
그냥 갑자기 글을 읽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군요 ..멋진 서평 잘 보고 갑니다 ^^

saint236 2013-01-17 18:14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도 삼성을 다니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 모두 공통적으로 삼성을 평생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기업이 대우하는대로 직원들이 기업을 생각하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