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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정조
김용관 지음 / 오늘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정조 이산!
요 근래에 들어 재평가가 시작되면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 이와는 상관없이 아버지 사도세자와 할아버지 영조의 비극적인 스캔들은 정조를 책과 드라마, 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비운의 주인공으로 재발견되게 만들었다. 드라마 이산도 이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이서진과 한지민이라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해지는 선남선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정조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는 정조라는 인물을 친근하게 만드는데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율에 좌우되는 드라마라는 특성상 역사를 상당부분 왜곡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비단 이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역사 드라마가 일정부분, 때론 상당 부분 역사를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왜곡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의 역사적인 배경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드라마와 관련된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물론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하여 판매부수를 늘리려는 얄팍한 상술이 없지는 않다.) 이 때 어떤 책을 선정하느냐가 중요하다. 자칫 잘못해서 역사적인 부분에서 드라마와 오십보 백보인 책을 선택하게 되면 안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저자가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꼭 그런 책으로 평가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저자가 영조실록과 정조실록을 꼼꼼하게 여러번 읽었다는 저자가 듣기에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역사서라기보다는 팩션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역사서가 일정부분 저자의 상상력을 가미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고 해석해서 읽어야하기 때문에 팩션의 느낌이 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서가 팩션이 아니라 역사서로, 단순한 추정이나 소설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론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입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실록은 물론이고, 당시 사람들이 기록한 여러 서적들을 동시에 읽고 분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덕일씨의 책이 상당히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적이 역사책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저자는 영조실록과 정조실록을 꼼꼼이 여러분 읽었는지는 몰라도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당히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철저하게 실록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지배층에게 유리하게 실록이 편집될 수도 있음을 감안한다면 실록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실록에만 의존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의도하지 않았지만 역사적인 부분들을 잘못 해석하여 책의 신뢰도가 많이 반감되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저자는 정조에 의한 홍국영의 퇴출에 대하여 아름다운 토사구팽이라는 말로 이렇게 적고 있다.
권력은 언제나 사냥개를 원하지 않는다. '시대가 다르면 하는 일도 달라야 한다.' 홍국영은 똑똑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둔했다. 그가 영리해서 그나마 군주와 헤어질 때를 너무 멋지게 헤어진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7년 동안 홍국영이 있어 집권이 가능했지만 이젠 헤어질 마당에서는 두 사람 모두 아름다운 이별을 연출한 것이다. 두 사람의 이별이 그저 토사구팽이라 치부하기에는 장면이 너무도 문학적이다. 그건 정조의 마음 그 깊은 곳에 부드러움 때문이다. 공자의 "논어"를 정밀하게 읽다보면 공자처럼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든다. 정조는 공자를 좋아했고 그의 말을 실천하려 노력했다.(p 118~119)
과연 홍국영과 정조의 헤어짐이 이렇게 아름다운 헤어짐일까? 홍국영은 정조를 위하여 기꺼이 물러나 줬던 것일까? 드라마라면 모르겠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절대 아니다. 다음의 브리태니커 사전에는 홍국영에 대하여 이렇게 등록되어 있다.
정조의 신임을 바탕으로 최초의 세도정권(勢道政權)을 이루었으나 기반이 약해 곧 실각했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덕로(德老). 아버지는 판돈녕부사 낙춘(樂春)이다.
1771년(영조 47) 정시문과에 급제,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었다. 이어 세자시강원사서로서 서명선(徐命善)·정민시(鄭民始) 등과 함께 세손(뒤의 정조)을 보호하는 데 힘써 세손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776년 노론 청명당(淸名黨) 계열의 김종수(金鍾秀) 등과 연계하여 세손의 승명대리(承命代理)를 반대하던 정후겸(鄭厚謙)·홍인한(洪麟漢)·김귀주(金龜柱) 등을 탄핵하여 실각시키고, 홍상간(洪相簡)·윤양로(尹養老) 등을 처형시켰다. 그해 정조가 즉위하자 동부승지로 숙위대장을 겸임했고 곧 도승지에 올라 정책 결정을 통제했으며, 금위대장·훈련대장 등을 거쳐 오영도총숙위(五營都摠宿衛)가 되어 군사권을 장악했다. 정조의 두터운 신임에 힘입어 모든 소계(疏啓)·장첩(狀牒)·차제(差除)를 총람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백관을 맹종하게 함으로써 최초의 세도정권을 이루었다.
1778년(정조 2)에는 누이를 원빈(元嬪)으로 삼게 하여 정권을 굳게 다졌다. 그러나 원빈이 1년 만에 죽자 김시묵(金時默)의 딸인 효의왕후(孝懿王后)를 의심하여 핍박함으로써 왕실세력의 미움을 받았으며, 은언군(恩彦君)의 아들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完豊君)에 봉하고 세자로 책봉시키려다가 여의치 않자 모반죄로 몰아 제거하는 등 세도정권의 유지에 급급했다. 이조참의·대제학·이조참판·대사헌을 역임하다가 1779년 9월 정조의 은퇴 권유로 조정에서 물러나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1780년 왕후 독살기도에 연루되었다 하여 정민시·서명선·유언호(兪彦鎬)·김종수 등의 탄핵을 받아 가산을 몰수당하고 강릉(江陵)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실의에 잠겨 지내다가 34세로 병사했다. 송시열(宋時烈)의 후손인 송덕상(宋德相), 민우수(閔遇洙)의 문인 김종후(金鍾厚) 등의 지원을 받아 노론 청류(淸流)를 중심으로 정국을 주도했으나, 전횡을 일삼고 나아가 스스로 외척이 되어 독주함으로써 여타 외척세력 및 노론·소론·남인 모두와 대립했다. 특히 정조의 준론탕평책(峻論蕩平策) 구상 추진에 장애가 되면서 제거되었다.
홍국영은 정조의 신임을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정조가 세자 시절 그의 기지로 위험에서 벗어났던 적이 있어서 왠만한 그의 잘못에도 눈을 감아 주었지만 도가 지나친 그의 행동과 권력욕은 그를 역신으로 만들었고, 정조에 의하여 제거되었다. 정조가 차마 그를 죽일 수 없어서 물러나라는 권유를 했고, 홍국영도 버티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밀려났으며, 그 후에도 권력에 대한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다가 몇년 만에 병사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아름다운 토사구팽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드라마 작가나 할 법한 일이 아닐까?
게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정사에 기록된 부분을 이야기하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야사에 기록된 부분을 끌어 당겨 인용하면서 그것이 마치 진실인양 호도한다. 그 야사라는 것도 오늘날은 물론이요 당시에도 해석이 분분한 것도 많고 웃기지도 않는 일이라며 음담패설로 치부하는 것들도 있다. 당시 사람도 믿지 않았던 것을 가져다가 그것이 사실인양 말하는 것도 역사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ex 경종이 후사가 없는 것을 장희빈의 만행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한 가지 더! 제목에 CEO와 경영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갔어야 하나 싶다. 책의 내용은 CEO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경영은 더더욱 상관이 없다. 중간 중간에 정조의 리더십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부분들을 보고 경영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차라리 경영이 아니라 역사책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쨌거나 저자가 역사적인 사실을 충실히 다루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책이 제목도 "정조: 미완의 꿈, 사라진 희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정조를 분노와 콤플렉스라는 단어로 해석한 것은 꽤 참신한 시도이다. 그렇지만 그 참신한 시도를 적절하지 못한 접근 방법과 분류, 제목으로 인하여 묻힌 것이 아쉽다. 별 두개를 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조에 대하여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기를 권한다. 다만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읽기를 바란다.
ps.엘신님께 받은 책이다. 엘신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