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대표팀이 귀국했다.
그들의 수고와 고생 대문에 한동안 우리가 즐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즐거움을 줬던 그들을 반갑게 맞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문제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중 노라조가 나와서 열심히 놀고 있길래 재방송인가 싶어서 잠깐 멈추었더니 생방송이란다. KBS에서 발빠르게 그들을 초청해서 환영 파티를 열었던 것이다. 아마도 SBS에게 월드컵 중계 독점권을 빼앗긴 것이 약이 되었나 보다. 타 방송사 보다 발빠르게 그들을 초청해서 그들을 위로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이것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아마도 시청율이 꽤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20분쯤 봤을까? 나로 하여금 그 방송을 20분이나 쳐다보게 한 것은 노라조의 신명나는 공연과 어이를 상실해서 어디까지 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왜 그리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아이디어가 빈곤한지 모르겠다. 축구 대표팀을 위로한답시고 모아 놓고 한다는 짓이 유명 가수들을 불러서 공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시민들도 참여했지만 주 타깃은 축구 표팀이었다. 노라조의 신명나는 슈퍼맨 공연 중간 중간에 카메라에 잡힌 선수들의 표정은 벌레씹은 표정이다. 많이 피곤할텐데 끌려와서 뭐하는 짓이냐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박지성의 표정은 압권이었다. 어쨋든 노라조의 공연이 끝났다. 그 다음은 순서가 무엇일가 궁금해 하는데 말만 소녀인 걸그룹이 등장했다. 물론 그들의 공연 의상은 항상 그렇듯이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닌 묘한 상태의 것이다. 이런 걸그룹이 나오니 피끓은 축구선수들이 잠잠할리가 있겠는가?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졌다. 결혼한 선수들, 특히 신사라고 믿었던 이영표의 얼굴도 확 밝아졌다. 잠시후 다른 걸그룹이 장갑을 끼고 티나게 등장했다. 그들의 의상과 춤도 물론 무늬만 걸이다.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묘한 춤, 귀엽고 깜찍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처절한 모습. 물론 분위기는 한층더 훈끈 달아올랐다. 노라조가 나와서 그렇게 쑈를 했음에도 침체되었던 분위기를 두 팀의 걸그룹으로 후끈 달아 오르게 만들었다.
아내와 나는 그 방송을 보다가 어이 없어서 한마디 했다.
"이거 원,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야?"
그렇다. 딱 그 수준이다. 허정무 사단이라고, 태극 전사라고 전투적인 군대 용어를 가져다가 사용해서인지 그들의 수준을 딱 군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참석하는 사람이 축구 선수냐 병사이냐의 차이만 있지 분위기와 연출은 전형적인 위문 열차였던 것이다. 고작 피곤한 사람들을 불러서 한다는 짓거리가 위문열차인가 싶었다. 모든 군인들이 위문 열차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원되는 것이 싫어서 투덜거리는 녀석들도 있다. 군인들도 그런데 자유를 만끽하고 살아가는 축구선수들의 속내는 내심 짜증이 아니었을까?
두 팀의 걸그룹 공연후 이어지는 것은 선수들이 축구공을 들고 무대에 올라서서 한마디식 인터뷰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순서도 뻘쭘 그 자체이다. 이동국처럼 다행히 경기에 출전한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안정화 이운재 김영광 같이 전혀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은 그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혹 인터뷰 기회라도 돌아가기는 하는 것일까?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를 보는 것이 짜증이나서 인터뷰 도중에 채널을 돌렸기 때문에 그 후에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 위로회는 영 아니올시다이다.
그들을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빈곤한 상상력으로 급조된 위문 열차는 아니다. 차라리 하루 이틀 시간을 더 가진 후에 그들의 경기를 리플레이 해서 보고, 그들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땀을 흘렸는지를 조명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거기에 더하여 실제로 축구 발전을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리고 축구 협회에서, 그리고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 있었던 논의들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 다 사라질 것이다. 2002년 월드컵 3,4위 전에서 "See You @ K 리그"라는 표어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K 리그를 외면한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던 기존의 모습으로 비루어 보건 길게 잡아도 딱 한 달이다. 얼드컵 열기는 가라앉을 것이고, 국대 경기가 아닌 축구 시합은 또 다시 어둠 속으로 묻힐 것이다. 국대 경기를 제외한 축구는 우리 나라에서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다. 그나마 군대스리가의 성원에 힘입어서 조기축구회가 활성화 되고 있는 것이지 축구 선수를 키우는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하다. 진정 원정 16강을 이루어낸 축구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이런 위로회보단 차라리 "한국 축구 이대로 좋은가? 한국 축구의 미래는?" 이라는 주제하에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축구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백분 토론을 벌이는 것이 낫지 않았겠는가?
세상이 거꾸로 간다고 축구 선수들 앉혀놓고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를 외치는 것은 웃기는 짓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