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에 다시 보는 영환지.

다시보니 정말 좋다.

핑계겠지만 영화가 너무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웬만해서 봤던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영화는 두 번은 봐야 그 영화가 가진 참 의미와 처음 봤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하모니카인지 아코디언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주제 음악은 그동안 여기 저기 많이 인용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요즘에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래 전, 어느 영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될 것만 같다. 배우의 연기도 좋았고. 과연 이렇게 삼합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영화가 흔간가 싶은 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메타포 즉 은유를 완벽히 이해시킨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시인)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던 우체부가 너무 못 생겼다. 나도 여자이긴 하지만 이렇게 못 생긴 남자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배달에 주면서 메타포를 알게 되고, 시인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가슴에 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운 여자를 쟁취하고자 하는 열망과도 부합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후에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는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뻐꾸기(은유)를 잘 날려라는 교훈을 주는 걸까?

 

사실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방법은 시 보단 연애비법서가 훨씬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영화 자체도 어찌보면 메타포인지라 시가 매개가 되어 사랑을 이룬다는 건 영화가 뿜어내는 낭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시 가지고 사랑을 이뤘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또 다 맞는 말은 아니란 말씀.

 

그래도 사람이 시심을 품었다는 건 안 품는 것 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상하다. 이 마음 하나 품을 수 없다면 이 각박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겠는가? 그건 그야말로 못 생긴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바꾸는 기적을 낫기도 한다.

 

그건 정말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니 오래 전, 내가 교회 주일학교를 봉사하고 있었을 때 같이 봉사한 한 형제가 있었다. 그 형제는 내가 봐도 너무 볼품없게 생겼다. 왜소한 게 도무지 끌리는 데라곤 한 군데도 없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과연 저래가지고 장가는 가겠나 싶었다.

 

헉, 그런데 웬일인가? 내 예상을 깨고 어느 날 장가를 간다고 청첩장을 돌리고 있더라.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 하긴, 그 형제가 인상 하나는 참하니 착하게 생겼다. 매사에 행동이 반듯하니 확실하고. 그러니 장가를 가는 거겠지. 또 그런 자신감으로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뻐꾸기를 날렸겠는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뻐꾸기란 은유로 똘똘 뭉친 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건 사랑에 대한 믿음, 확신 같은 것이다. 그것을 계속 받고 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대가 어떻게 생겼던지 간에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한다는 교훈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우편배달부가 네루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그런 시심을 품을 수나 있었겠는가? 또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인은 위대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영화가 너무 좋아 며칠 전, 친구를 만날 겸 중고샵에 들러 혹시 영화의 원작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있나 찾아봤는데 애석하게도 없었다. 평가도 약간의 호불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원작 보단 영화가 훨씬 좋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와 원작이 다른 것은, 영화는 네루다가 노벨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고국인 칠레에서 그의 망명이 해제되 돌아가는 것으로 나오는데, 원작은 그가 칠레 대통령직을 수락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와 있는 것 같다. 원작과 영화가 다를 수 있는데, 실제로 네루다는 노벨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영화는 이렇게 네루다의 충직한 우편배달부가 헤어지고 그리움에 못 잊어하는 그의 순수한 마음을 후반부에 펼쳐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네루다가 이탈리아 섬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맡겼던 여러 물건들을 부쳐달라는 내용을 네루다의 비서로부터 명 받았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고 어떻게 이렇게 쌀쌀 맞을 수 있나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우편배달부는 그것에 아랑곳않고 네루다가 머물렀던 곳의 여러 가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함께 보내준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라면 결코 있을 법 하지 않을 일이다. 암튼 그건 당신은 나를 잊었을지 몰라도 나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선물은 가끔 그렇게도 쓰인다.

 

사람의 모든 인연은 다 우연 아닐까? 인공적인 인연은 거의 없다. 설혹 있다고 해도 그 끝은 자연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연이다. 그래서 인연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우며 각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 만나고 헤어졌던지 간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서 그렇게 헤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서운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인연은 또 온다.  외롭고 쓸쓸할 때 보면 좋을 영화 같다.

 

너무 유명해 새삼 강추니 하는 말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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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26 16:28   좋아요 1 | URL
ㅎㅎ 아뇨. 저는 올레 tv로 보는데...
아직 ip tv 신청 안하셨나요?
그거하면 편하게 볼 수 있는데...
물론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올레 tv로 보면 엄청 부지런 해야해요.
볼 영화며 드라마가 엄청 많아서.
좀 힘드실 수도 있어요.ㅠㅋ

2018-06-26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18-06-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과 니르바나도 인연이지요.^^

stella.K 2018-06-26 18:22   좋아요 0 | URL
ㅎㅎ 다시 이어주세요. 항상 그리운 인연입니다.ㅠㅠ

페크pek0501 2018-06-2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책으로 읽지 못했고 팟캐스트로 들었는데 좋았어요.
메타포에 대해 말하는 부분, 표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책으로 접해 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민음사 것 있군요.

stella.K 2018-06-27 20:2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래서 외출나온 김에 혹시 중고샵에
있을까 싶어 들러보았더니 없더라구요.
읽을 책이 많이 일부러 새책 사기는 뭐하고
중고로 나온 게 있으면 사 볼까 했거든요.ㅋ

언니도 이 영화 보셨죠?
혹시 안 보셨다면 영화 먼저 보세요.
정말 좋은 영화에요.^^
 
버자이너
나오미 울프 지음, 최가영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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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는 사람은 이젠 페미니즘이 하다 하다 버자이너 가지고 울거 먹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외설스럽다고, 창피하지도 않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정말 멋모르고 하는 말이다. 여성 문제의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닌가?

 

저자는 먼저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이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했다. 전엔 잠자리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뭔가 모를 이상 증세를 느끼기 시작했고,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가 이 문제를 상담하고 그 방면의 권위 있는 의사를 소개 받아 치유를 받으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버자이너가 뇌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것은 창의력, 자신감 심지어 성격까지 형성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나아가 저자는 버자이너를 말초적 감각이 아니라 제2의 중추라고까지 주장한다. 또한 버자이너를 우린 간단하게 구멍으로까지 부르기도 하는데 그보단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이라고 불러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린 이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을 어떻게 대해 왔을까? 굳이 이 책을 리뷰한답시고 여기에 구구하게 설명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런데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역시 강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이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과연 강간과 버자이너를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린 보통 강간이라고 하면 단순히 어느 사이코가 겁탈하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가 끔찍하고 잔인한 표현을 하고 있다. 그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짐승 수컷이 자신의 오줌 가지고 여기 저기 묻히며 영역 표시를 하다더니, 강간범은 여자의 몸 그것도 버자이너를 난자하므로 자신의 존재를 문신처럼 남기는 걸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강간을 당한 여성들은 불구의 몸이 된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넘어지는 일이 많으며, 멈추는 일을 잘하지 못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비로소 멈추라고 해야 멈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자 오래 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느 건달 세 명에 술집 여자를 기어이 쫓아가 어느 후미진 곳에서 차례로 윤간하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그 영화의 감독은 남성이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긴 했지만 보기에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로 그 장면이 필요했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후 문맥을 따져 볼 때 건달은 이렇게 개 같이 논다? 뭐 그런 리얼리티,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삽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자의 대사다. 여자는 쫓겨봐야 별 수 없으니 결국 결심한 듯 돌아서서, “좋아. 한 사람씩...”하며 체념해 버린다.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는 하지만 강간에 윤간이 없을 리 없고, 아무리 천한 여자고 자신을 체념했다고는 하지만 그녀 역시 강간의 흔적이 없을 거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내 기억으론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이었던 것도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물론 이건 영화의 한 장면이고, 지금의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이 들끓기 전에 나온 오래된 영화라 관대할 필요가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문제적 장면은 그 영화만이 아니다. 난 과연 이것을 언제까지 표현의 자유로만 볼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어쨌든 이런 걸 볼 때 저자는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 건 사실이지만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편견을 갖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 주위에도 드물게 유난히 길가다 잘 넘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도 강간 피해자로 의심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이 같은 지적은 중요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무엇보다 강간을 당한 여성은 아무리 치료를 해도 강간 이전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사실 버자이너는 한때 신성시 여겨졌던 때도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 상처 받고 속박당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 예가 우리가 잘 아는 중세 십자군 원정 때 여자들의 정조대일 것이다. 여자들은 원정 떠난 남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정조대에 꼼짝없이 매어 있어야 했다. 마음대로 풀 수도 없고, 청결을 유지할 수 없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남자들이 돌아오면 행운이다. 거기서 죽은 사람의 아내들은 그 정조대를 평생 풀지 못하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밖에도 상처받고 수난 당한 예는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 오늘 날은 여성들이 상처받은 버자이너에서 항문열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항문열상이란 새로운 정조관념, 즉 기독교를 중심으로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겠다는 서약과 처녀성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과 맞물려 항문성교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렇지 항문성교는 대부분의 남성들 선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항문이 찢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을 항문열상이라고 한다.

 

앞서도 영화 얘기를 했지만, 포르노의 폐해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포르노 산업과 그로인한 폐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하다. 책은 흥미롭게도 빅토리아 시대에 문학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에 관해 다루도 하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D.H 로렌스를 얼른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사춘기 시절 읽었는데 물론 그 특유의 찌릿한 감흥도 있긴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참 아름답더란 생각을 하게도 된다.

 

그렇다면 에로스와 포르노의 차이는 뭘까? 안타깝게도, 알 것 같지만 실상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자는 전희를 해야 비로소 버자이너 즉 여신의 형상을 한 구멍이 열린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성교는 여성 보단 남성이 유리하도록 맞춰졌다. 그래서 여성은 이런 전희를 과정 없이 바로 이루어진다. 남자들이 이런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지해야 하는데 오랜 세월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여성의 버자이너에 끊임없이 오해하도록 조장되어져 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동양의 도가사상과 특별히 인도의 탄트라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서양은 이미 포르노에 점령당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성의식에 이 두 가지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하다. 이것의 유익이 얼마만한 것인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할애하고 있다. 또한 버자이너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12가지 원리를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싣기도 했는데 참고해 볼만하다.

 

이 책은 무려 500 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인데 저자는 버자이너에 대해 이만한 책 두 권을 합쳐도 못 다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이는 이것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이 부분은 꾹꾹 감춰져 있고 억압되어 있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엊그제도 우리나라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남성의 성범죄에 피해를 당해 본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중 또 적지 않은 수가 말을 하지 않거나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어찌 보면 여성은 피해를 보면서 그 죄를 방조한 셈이기도 한데, 그것에 관해서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자 보다 힘이 세고, 세상의 모든 프레임은 남성에 유리하도록 태곳적부터 맞춰져 있다. 거기서 여성이 해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여성조차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인식 없이 살아 온 세월이 얼마인가?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버자이너임을 저자는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저자가 도교와 탄트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것의 관해서는 한없는 관심을 보이면서, 남성들의 잘못된 성의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왜 상대와의 조화가 중요한지에 관해서는 다소 설명이 미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뭐 그런 거야 다른 책에서 보충할 수도 있고, 이 책이 의미하는 바와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고 보인다. 여성 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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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건 옛날 방식이에요. 20세기 초 온건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방식으로 여성 운동을 했어요. 이게 안 먹히니까 거리에 나가고, 목소리 높이는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

stella.K 2018-06-22 09:43   좋아요 0 | URL
그랬겠지.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더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있어.
사람의 인식이 쉽게 바뀌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거든.
물론 그만큼 반페미니즘도 들끊겠지.
그럴지라도...ㅋ

페크pek0501 2018-06-2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이, 지적이 좋네요.
꼭 읽어야 할 사람이 사실은 읽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미투 운동도 그렇고 세상을 바꾸는 사건들은 일어나는데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문제예요. 인간을 변화시키는 속도는 느린지라...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지요.

참, 언제부터 말하고 싶었는데요,
서재 이미지가 보기 좋네요. 파란색이 시원해 보이고 예쁩니다. 바다인가요?

stella.K 2018-06-23 19:00   좋아요 0 | URL
ㅎㅎ 저 이미지 예전에 한 번 썼어요.
그런데 다시 봐도 좋긴하죠?
여름 한철 계속 써야겠군요.^^
 

저에겐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있습니다.

아이들 다 키워 놓고 늦게 상담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맘 때쯤 종강하고 기말고사 체제로 돌입하겠구나 싶어 응원차 문자로 피이팅을 외쳐 주었는데 아까 저녁나절에 전화가 왔습니다.저는 제 문자의 답례 차원에서 전화를 한 줄 알았더니 일주일 전쯤 남편이 심한 화상을 입은 것을 알았습니다.

 

아, 왜 그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부부에게 죄가 있다면 열심히 아이 키우며 산 죄 밖에 없는데.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밖거나, 누구에게 사기친 적도 없이 정말 선량하게 산 죄 밖에 없는데 왜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들어도 두 아이 자라는 것과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 하나 이루며 사는 것을 위로겸 낙을 삼아 살았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지인은 사고가 일어나고 1주일쯤 지나서 그런지 많이 이성을 되찾은 느낌이었는데, 듣는 저는 너무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파 어떻게, 어떻게를 연발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습니다.

 

두 내외가 아르바이트도 쓰지 못하고 아침 저녁으로 번갈아 가며 3평 남짓한 공간에서 각종 주스 팔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실손 보험은 들어놨다지만 앞으로 치료비며, 고통스러운 치료를 어찌 감당할지? 이제 겨우 공부를 마쳐가는가데 공부는 마칠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또 앞으로 가게 운영은 어떻게 할지.

 

겨우 지인은 이성을 되찾고 나에게 담담히 그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으니 그도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는데, 끊으면서 생각나면 기도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나의 사랑하는 지인이 그런 고통을 당할 때 결국 부탁할 수 있는게, 또 해 줄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다는 게 서로 믿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시는 위에 계신 분의 뜻이 있으시겠지만 그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지인이 그렇게 정신없는 한 주일을 보내고 있을 때 저는 뭘 했을까요? 그 지인이 그런 일을 당할 거라고 감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늘도 난 벼르고 별러왔던 책 세 권을 (결국)주문하고 받았으며, 몇자 안 되는 글을 끄적이고, 읽고 있던 책을 마져 읽고 있던중이었습니다. 나의 하루는 그렇게 무료하게 지나가고 있었고 이런 삶은 오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그그저께도 하니 일주일 전, 한달 전에도 있어왔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을 때 나의 사랑하는 지인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지인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요?

 

미안했습니다. 남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때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화장실에 가야하고, 졸립고 피곤하면 잠을 자야하고. 이 모든 게 정말 죄스럽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속에 태어나 죄 가운데 죽는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봅니다. 본인의 당한 일도 깜깜하지만 나는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백세시대에 이제 겨우 중간에 왔을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도 해 보지만 우리 나이가 중년은 중년입니다. 이제 슬슬 노후를 준비하며 안정된 삶을 살아야할 텐데 이 나이에도 겪어내야할 고난이 있고, 헤쳐나가야 할 모험이 있다는 게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인은 부정맥이 있어 절대 안정하며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들 내외는 동갑내기로 대학 때 만나 모든 것을 함께 하기로 다짐하고 결혼했는데, 이런 일은 그들 생애에 꿈도 꾸지 않았겠지만 모든 것을 함께 하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되겠죠. 그저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나시면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게해 달라고, 그 어느 순간에도 삶에 대한 의지와 기대를 포기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들 가운데 평안이 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니 그 어떤 기도를 하셔도 좋습니다.        

 

아아, 오늘은 그 어느 때 보다 아프고, 슬픈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지인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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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20 15:18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 밖에 없네요.
친구한테만 소곤대는 글이었는데...ㅎ

지금도 마치 내가 당한 일인 양 기운이 하나도 없네요.
뭘해도 신이 안 나고.
마감 전까지 써야하는 리뷰도 있고,
특히 오늘 저녁에 하모니카스트 전제덕이 콘서트 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가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만나면 뭐라고 위로를 해 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이 이런데 본인은 어떻겠습니까?
이럴 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어쨌든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8-06-2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까운 친구가 큰 병이 나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해 줄 게 기도밖에 없더라고요.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평화로워도 내일은 어떤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스를 통해 피살이니 실종이니 화재니 하는 사건을 접하면 두려움이 느껴져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나 봐요.

stella.K 2018-06-21 09:53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병이 낫다는 말도 듣기에 힘든데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하루아침에 그런 일을 당하면
얼마나 힘들까요?
어젠 정말 아무 것도 못하겠더군요.
제가 이런데 본인들은 어떨까요?
지금은 많이 안정됐다고 하는데
처음엔 하나님 왜 이러시냐고 원망이 나오더랍니다.
모쪼록 이 시련을 잘 극복할수있도록 기도해줘야죠.^^

syo 2018-06-2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다정한 친구사이여도 남의 고통에 내 일처럼 괴로워하기는 힘든 법인데, 내 생활의 안온함이 죄스럽게 느껴질만큼 안타까워하시다니, 스텔라님 이런 다정한 사람.....

모쪼록 스텔라님의 기도에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stella.K 2018-06-21 09:52   좋아요 0 | URL
아유, 아닙니다.
저도 아는 사람의 누가 그랬다면 그냥
혀만 끌끌 차고 말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오래 관계를 지속해 왔고
삶을 많이 나누다보니 자매 같고 친척같은 형제애
뭐 그런 게 생긴거죠.
스요님도 친한 친구가 혹시 어려운 일 당하면 저 같이했을 겁니다.
모쪼록 치료가 잘되고 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ㅠ
 
엄마의 공책 -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기억의 레시피
이성희.유경 지음 / 궁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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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봤다. 책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디테일은 많이 아쉽다. 치매 예방 홍보 영화도 아니고.
뻔한 스토리
엄마역을 맡은 이주실 씨의 연기는 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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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6-0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훗날 70대가 되어서도 책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책을 읽으면 두뇌를 쓰게 되고 그래서
저절로 치매 예방이 될 것 같거든요. 참고로 걷는 것도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두뇌 없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책과 운동을 가까이 하며 사는 걸로... ㅋ

스텔라 님은 영화 많이 보시는군요. 좋은 습관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18-06-11 14:29   좋아요 0 | URL
ㅎㅎ 요즘에 드라마 보느라고 한동안 영화를 소홀이 했어요.
뭐 봤더라...?
엇, 기억이 안 나네요.ㅠ

얼마 전,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봤거든요.
일본판 보다 훨씬 잘 만들었더군요.
그걸 봐서 그런지 이 영화가 참 별로다 싶었어요.
음식에 관한 영화도 아닌 것이, 관계에 관한 영화도 아닌 것이...
좀 뻔한 스토리더라구요.
영화 좋다고 호평 일색이라 돌 맞을 것 같아 여기에 살짝
그렇지 않다고 귓뜸하는 거예요.
이주실 씨 연기는 정말 좋더군요.^^

서니데이 2018-06-12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이 다가오니 프로필 이미지도 파란색 바다빛으로 바꾸셨군요.
오늘도 비가 와서 그런지 습도가 높은 날이었지만, 그래도 덥지 않고 바람도 가끔 불어서 좋았어요.
치매가 사람마다 증상이 많이 다르다고 해요. 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나, 내가 알던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이제 내일은 5분만 있으면 되는데, 공휴일입니다. 이번주도 금방 지나갈 것 같아요.^^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8-06-13 14:07   좋아요 1 | URL
네. 전에 쓰던 이미지이기도 한데 가운데 하얀줄이 들어가서 좀 그렇죠?ㅋ
사실은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컴퓨터 배경사진이라 그래요.
성경 말씀이죠. 조그맣게 화면을 줄이니 줄이간 것처럼.ㅎ

늦게까지 안자고 있었군요.
저는 대체로 그 시간이면 잔답니다.
나이가 드니 잠을 푹 못자겠더군요.
중간에 두번쯤 깨는 건 기본이고.
그래도 잠 자는 시간만큼은 지키려고 합니다.
잠이 보약이니까.ㅋ
서니님도 건강을 위해 충분히 주무십시오. 오늘도요...ㅋ^^

푸른기침 2018-06-1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이 곳이 떠올라 뜬금포로 안부 인사 드려요.
이쁘고 이쁜 계절 보내시고, 무엇보다 건강요^^

stella.K 2018-06-15 11:04   좋아요 0 | URL
앗, 푸른기침님!
그렇지 않아도 저도 얼마 전 님 생각이 낫는데.
잘 지내시나 하구요.
이렇게 안부 인사하시는 걸 보면 잘 지내고 계신 거 맞죠?ㅎ~
자주는 아니어도 이따금씩이라도 서로 안부 전하면 좋을텐데...
아무튼 고맙습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예쁜 계절 보내세요.^^

2018-06-16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코이즈미 타카시 감독, 후카츠 에리 (Eri Fukatsu)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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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기억이 80분만 유지된다. 물론 좋은 건 아닐테지만,
어떤 면에선 나쁜 기억은 쌓이지 않으니 그점은 좋은 거 아닌가?

왜 이제 보았을까? 수(數)가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쳐보이다니!
정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훗날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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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0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11 14:22   좋아요 1 | URL
사실은 많이 불편하죠.
그 때문에 주인공이 감정기복이 있어요.
금방 우울하다 또 금방 좋아지고.
진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잊어버릴까 봐 메모를 겉옷 여기저기에
붙여놓죠.
아무튼 이 영화 한번 보세요.
상당히 잘 만들었어요.
소설도 꽤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아는데
읽어보고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