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초가 되면 꼭 물가가 들먹인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 아니면 물가에 대해서 말하려면 연말이나 연중 보단 연초나 하반기 이때가 시즌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물가 하나 재대로 잡지 못하는 정부도 그렇고, 연초에 물가 가지고 떠들어대며 서민의 불안을 조장하는 언론의 보도행태도 다 마땅치 않다. 

2. 요즘 <태양의 서커스>를 조금씩 보고 있다(난 왤케 TV 보는게 점점 버거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안 보면 허전하고). 그 유명한 <퀴담>도 보고 <알레그리아>도 보고, <코르테오>도 보고 있는 중인데, 과거엔 서커스가 그야말로 기예만 보여줬다면 이건 정말 종합 예술이란 생각이 든다. 얼핏 예전에 듣기론 이 태양의 서커스가 벌어들이는 돈이 1조가 넘는다는 소릴 들은 것 같다. 과연 그럴만도 하겠다 싶다. 평생 그것을 직접 가서 보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행운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몇년 전, 중국의 기예단이 한국에 왔을 때 직접 가서 보는 행운을 얻은 적이 있다. 그건 확실히 그냥 TV에서 보는 것하고는 달랐다. 단지 TV가 좋은 것은 편집에 의해 그들이 실수하는 장면은 보지 않아 정말 그들은 실수하지 않고 완벽한 기예를 보이는 줄 알았다.  

                                          

<태양의 서커스>는 영상 또한 뛰어나다. 기존의 그것이 녹화 수준이었다면, 이것은 카메라 워크 또한 영상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특히 그들의 수준 높은 기예도 볼만하지만, 나 같이 서커스 보는 것을 그다지 흥미로워하지 않는 사람이 이것을 끝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데는 음악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알레그리아의 음악들은 하나 같이 몽환적이다. 배우의 분장은 바로크적이면서도 삐에로가 적절히 섞여있다. 역시 서커스 하면 삐에로를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커스가 묘하게 끌리는건 탄성을 자아낼만한 기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저만한 묘기를 보여주기까지 얼마나 뼈를 깎는 고역을 감내했을까? 뭔가 가슴을 쓰러내리는 연민이 있다. 어느 분야든 최고가 되려면 뼈를 깎는 노고야 감내한다지만 그래서 어느 만치의 경지에 오르면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서커스는 다르다. 그들은 뼈를 깎아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개인으로써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 부분으로써만 박수를 받을 뿐이다. 그래도 박수를 받는 그것이 좋아 그 고역을 감내하는 거겠지? 그들이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을 때 또 어떤 인생의 길을 걷게 될지 안쓰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서커스를 보게 만들기도 한다. 

3. 박칼린이 어제 <무릎팍 도사>에 나왔다. 그녀의 인생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거의 밀미에 그녀의 사랑관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단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줄을 모를 거란다. 그럼 뭐야? 짝사랑아냐? 그런데 그것을 너무나 당당하게 밝히는 그녀가 보기 좋았다. 대체로의 분위기는 자기만 사랑한다고 하면 괜히 측은하게 보고 나아가 조롱하려고 까지 하려고 하지 않는가? 왜 꼭 사랑은 둘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상대가 알아주건 못 알아주건 내가 누군가로인해 상기되고, 행복하고, 설렌다면 그것도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또한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정통하고 뭔가를 이루어낸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확실히 나와는 좀 거리가 멀다. 갑자기 새해엔 열정을 키워나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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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1-01-0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박칼린이 무릎팍에 나왔군요.
궁금해지는 걸요, 재방이라도 봐야겠어요
요즘 이 분에 대해 느무느무 궁금해집니다.
저도 그녀를 사랑하는 건가요? ㅎㅎ

stella.K 2011-01-06 14:31   좋아요 0 | URL
ㅎㅎ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잖아요.
여자인 내가 봐도 사랑스러운데.
재방 꼭 보세요, 전호인님.^^

BRINY 2011-01-0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점점 TV본방 사수가 버거워져요. 드라마같은 건 TV켜놓고 돌아다니다 뒷부분만 봐도 대충 전개이해에 지장이 없기도하구요...

stella.K 2011-01-07 10:46   좋아요 0 | URL
저는 집에서 보는 영화를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본적이 거의 없어요.
이틀이나 삼일에 걸쳐 나눠서 보죠. 한번에 본다는 건 너무 힘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영화를 본다면 주로 이슥한 밤인데
보다가 졸거나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하기 때문이죠.흐흐

cyrus 2011-01-0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꼭 봐야할 프로그램인데,, 재방이라도 사수해야겠네요.^^

stella.K 2011-01-07 10:47   좋아요 0 | URL
꼭 보세요!^^

순오기 2011-01-0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무릎팍 도사에 나왔군요. 재방하는 거 찾아서 기어이 볼래요.^^
박칼린 에세이 '그냥'을 읽고 그녀에게 반했거든요~ 칼린 페이퍼 고마워요!
새해에도 좋은 글 부탁해요~~~ 부지런히 댓글도 달아 볼게요.^^

stella.K 2011-01-07 10:48   좋아요 0 | URL
언니, 댓글 고마워요.
제가 오히려 부지런히 언니 서재 가야하는데...
저도 부지런히 댓글 달아보겠슴다.^^

루체오페르 2011-01-07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2011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고 지으세요~^^

stella.K 2011-01-07 10:50   좋아요 0 | URL
오, 루체님! 그렇잖아도 아주 가끔 다른이의 서재에서
루체님의 흔적을 보곤 하는데 제 서재는 언제 방문해 주시려나
기다리고 있었다능...
루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자주 뵈었으면 해요.^^

Kitty 2011-01-0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태양의 서커스 정말 좋아해요~!!!! 라스베가스 갈 때마가 상설 보고, 순회 쇼는 동네에 올 때마다 봤었는데 아무래도 상설 쇼가 무대 장치가 잘 되어있어서 순회 쇼보다 좀 더 좋은거 같아요. O가 진리, Ka도 좋고요...순회 쇼 중에서는 Varekai가 제일 좋았고 Corteo가 제일 별로였던 듯...근데 태양의 서커스는 아무래도 처음 본 쇼가 제일 임팩트 있는거 같아요. 처음 봤을 때는 진짜 세상에 이런 쇼가 있다니...! 뭐 이런 충격의 도가니 ㅋㅋ 그 다음부터는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보니까 좀 감흥이 덜한거 같아요 ㅎㅎ

stella.K 2011-01-07 15:19   좋아요 0 | URL
진짜 보셨군요. 좋으셨겠습니다.
저도 퀴담이나 알레그리아는 좋은데 코르테오부터는 그저 그렇더라구요.
그래도 어쨌든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엔 이견을 달 수 없을 것 같아요.^^

실비 2011-01-0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팍 도사에 박칼린이 나왔군요~
전 그분이 참 좋아요... 선하고 카리스마 있공.
챙겨봐야겠어욤~

stella.K 2011-01-08 11:16   좋아요 0 | URL
아, 실비님! 오랜만이어요.
좀 있으면 재방할 것 같은데, 꼭 챙겨보세요.^^

잘잘라 2011-01-0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지영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 기억나요.
자기는 쭉 같은 일을 해왔고, 늘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자의 자격 출연 이후 자기가 어느날 갑자기 짠- 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어색하다고..

저는 좀 반대 경우예요. 남격에 나오기 전에 그녀를 알았고, 매력을 느꼈고, 더 많이 알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남격 이후 너무 자주 방송에 나오고 CF도 많이 찍고 하니까 갑자기 확- 질리는 느낌마저 들더라구요.

그러나 아무튼, 그녀 말처럼 그녀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 인생을 쭈욱- 살아내고 있는 한 사람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재방 챙겨서 볼래요. ㅎㅎ

stella.K 2011-01-09 20:14   좋아요 0 | URL
좀 그렇긴 하죠? 그런데 그녀 보단 사람에 목말라하는 방송 생리 때문은 아닌가 싶어요. 저도 박칼린 좋긴한데 그녀의 책이나 강연회는 좀 주춤거리게 되요. 재방은 어제 했는데, 아무래도 인터넷에서 다운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메리포핀스님?^^

2011-01-11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2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게을렀다. 이걸 2010년이 가기 전에 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작년엔 꽤 부지런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해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도 작년 한해 기억에 남았던 책을 정리해 본다. 

일본의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 방식도 좋았지만, 정중동의 깔끔한 문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정말 거듭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이미 작년에 여러 번 말했던 책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책. 울면서 읽었던 책이다. 나로선 박범신 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제야 작가를 알았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내친김에 그의 수필도 읽었는데 수필 역시 좋았다.      

  

 

 

 

죽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애도한다는 독특한 소설이면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약간의 그로테스크한 음산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역시 작년에 나를 사로잡았던 책이다. 나는 어느 특정인에 대해 매스컴에서 떠드는 걸 다 믿지는 않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다고 그 사람을 다른 쪽에서 믿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난 오히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무기력한 것에 대해 오히려 측은하면서도 냉소했던 쪽에 속했다. 하지만 이책을 읽음으로 내가 얼마나 무지몽매했던가를 마음속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이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그건 계속 갈 것 같다. 결국 나도 한 국가의 역사를 짊어진 사람이니까. 

 

 

 

  

 지성의 거인 이어령 교수의 간증기다. 그의 신앙이 지적인 문장에 잘 녹아있다. 그는 정말 우주를 품은 사람이다. 

 

 

 

  

 

나의 스무 살을 생각하면 너무 해 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할 줄도 몰랐던 시절. 이 책을 읽는다고 나의 스무 살이 보상되는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의 문장이 깔끔하니 좋다.  

  

 

 

 

작년 9월 저자의 타계로 다시 읽은 책이다. 생존 땐 그다지 와 닿지 않았던 저자의 설교가 왜 그리도 그리운지. 저자는 탁월한 설교가며 존경받는 지도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지인 한 분은 이 책의 김연수와 김중혁의 콤비가 마치 그 옛날 장소팔과 고춘자의 만담이 생각나리만큼 재밌다고 했다. 과연 누가 장소팔이고, 누가 고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 책은 재밌다. 모름지기 친구사이라면 서로 지그시 밟아주는 그 지근하고도 끈끈한 관계의 매력(?)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둘이 서로 밟아주지 못해 발바닥이 근질근질할 것 같은 입담이 정말 재밌다. 또한 역시 작가가 영화를 보는 것은 이렇게 다른 거구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재미도 있고, 생각할 꺼리도 간간히 던져주면서 부담없이 독서하기엔 이만한 책도 없는 듯 싶다. 

 

고종석을 좋아한다. 읽고 있으면 게으른 나의 일기 쓰기를 다시 부활시켜야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최인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줘서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난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안에 소개한 저작물이나 저저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그런 책을 좋아한다. 올해는 어떻게든 최인훈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게된다. 

    

 

 

그밖에, 

 

이책이 나에게 갖는 의미가 조금은 남다르긴 하지만 그런 걸 접어두고라도 이책의 미덕은, 그동안 전문 서평이라면 뭔가 전문가의 영역처럼 느껴졌던 걸 한단계 끌어내린 것에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전혀 질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숨어있는 독자들 중엔 이런데 독서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구나, 오히려 나의 시야의 좁음을 탓해야했던 나름 유익한 독서 길라잡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이책은 5권이 한 세트인 시리즈다. 깔끔하고 손안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느낌의 책이긴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뭐랄까? 가볍게 보기엔 무겁고, 무겁게 보기엔 좀 가벼운 책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가 뭉뚱그려서는 조선시대를 안다고는 해도 그 세밀한 것 까지는 알 수 없다고 봐지는데, 그런 점에서 단편적으로나마 조선의 미시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엔 또 이만한 책도 없는 듯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 세 책중의 한 권은 나에게 행운을 안겨주기도 했다.     

올해는 또 어떤 책들이 나올지 그리고 그중 몇 권이나 읽고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나 자신도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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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4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소개하신 책 중에서 그나마 읽은게 조선인의 유토피아 뿐이네요^^;;
혹시 문학동네 한국사 시리즈와 관련된 행운이라면 작년에 있었던 이벤트를
말씀하시는건지요? 그 때 받은 1권이 뭔지 궁금하네요^^

stella.K 2011-01-04 11:38   좋아요 0 | URL
설마 그렇다고 낙담하시거나 그런 건 아니죠?
책은 시루스님이 더 많이 읽으시잖아요.
시루스님도 리스트 뽑으면 저는 급좌절할걸요?ㅋ

그게 말입니다, 작년에 제가 문학동네에서 재미 좀 봤거든요.
그런데 그게 2번인지, 3번인지 분간이 안 가요.
<정조의 비밀편지>랑 <애도하는 사람>에서 행운이 있었는데
또 한번 더 있었던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능.^^


감은빛 2011-01-0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은 1권 밖에 없네요.(어떤 책인지 아시죠? ^^)
예전에는 소설을 참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일과 관련된 책을 읽기에도 늘 시간이 모자라서,
소실을 읽고 싶어도 손을 대질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좀 읽어보고 싶어요.

스텔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1-01-04 16:29   좋아요 0 | URL
아, 감은빛님!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은빛님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잖아요.
올해도 좋은 책 많이 읽으세요.^^

자하(紫霞) 2011-01-0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큐에게 물어라>가 계속 눈에 띄는군요~
읽으라는 계시인가?ㅎㅎ

stella.K 2011-01-06 10:53   좋아요 0 | URL
정중동의 문체를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에도 시대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면..아, 일본에 대해 관심 많으시죠?
그렇다면 후회 안하실 것 같아요.^^
 
 전출처 : stella.K > 우리가 김훈 작가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에 관해

2010년, 내가 마지막으로 강연회에 참석했던 건 작가 김훈의 강연회였다. 12월 21일, 정독도서관에서 열렸는데, 작가의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빈자리가 없어 몇몇은 서서 강연을 들을 정도였다. 사실 나는 김훈 작가의 강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전쯤이던가? 작가가 <남한산성>을 펴냈을 때 참석한 적이 있었다. 김훈 작가의 강연회의 특징은 작가는 늘 혼자 강단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3년 전에 어느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강연에 임했는데, 이날 역시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강연이 시작됐다. 

  

 

 

 

 

 

 

 

 

                                                                                                 (사진 출처: 마담웬디님) 

권희철 문학평론가가의  작가 소개로 강연이 시작됐는데, 그 소개가 나름 재밌다. 김훈 작가는 서울 출생이란다. 그런데 여기서 꼭 밝히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서울 출신 치고 사대문 안이냐, 밖이냐가 중요한데, 당연 작가는 사대문 안에서 출생하셨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대로 작가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특기겸 이력에 자전거 레이서라고 밝힌단다. 사실 자전거 레이서란 공식 직함은 없다.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김훈 작가가 자전거 말고도 등산을 좋아해 알피니스트란 직함을 갖게되길 원했는데, 알피니스트라면 적어도 히말리야는 다녀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다녀와 본 적은 없고, 북한산이나 도봉산은 완주 했는데, 그것 가지고는 알피니스트라 명함도 내밀 수가 없어 자전거 레이서로 만족하기로 했단다. 이로써 또 한 번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왜 작가가 되었는가 관해

사실 강연회라고는 하지만 김훈 작가는 말을 아끼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따로 준비해서 들려줄 강연은 없고, 바로 질의응답식으로 들어갔는데, 사이 사이 사회를 맡은 권희철 씨가 보충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작가는 제일 먼저, 왜 작가가 되었으며,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질문은 작가가 어딜 가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닐까 싶다. 그 질문에 대해 그는 본래 소설가는 자신이 원하던 삶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오히려 대기업의 생산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는 말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자신은 1950년대생으로서 바로 자신의 시대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까지는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굶어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처럼 밥을 못 먹는 나라에서 밥을 먹는 나라로 발전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의 비리, 즉 밑바닥에 깔린 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 했다. 그 질문을 했던 사람은 20대 후반의 작가지망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한 가지의 꿈을 가지고도 이룰까 말까인데, 원하지 않았는데 어찌하다 보니 무엇이 되어있더라 하면 좀 좌절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 김훈에게도 그 같은 뚜렷한 동기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나라 밑바닥에 깔린 악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동기. 희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동기. 무엇이든 그런 강력한 동기가 그 사람을 가장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김훈 작가에 대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에 관해

김훈 문학의 화두는 역시 '남자'일 것이다. 또 그러니만큼 그를 두고 '마초'니 '가부장'이니 말이 많은 것에 대해, 그는 가부장은 인정하지만 마초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가부장이란 단어가 부정적 이미지로 씌여서 그렇지 원래 그것은 한 가정을 지키고, 부인과 아이를 돌보는 상당히 신사적인 의미라며 자신은 그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초는 남자의 허세를 뜻하는 말로써, 자신은 그 단어를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이상한 이론들, 이를테면 아들은 엄마를 좋아하고, 아빠는 딸을 좋아한다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니 일렉트라 컴플렉스에 대해서 작가는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아버지와 아들은 몰라도 딸과 어머니는 대체로 잘 지내잖냐며 반문한다. 작가의 그런 말을 들으니 나 역시 엄마하고 잘 지냈나? 왠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는 정말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일까?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현의 노래>등을 보면 정말 그런 것도 같다. 게다가 지금 소설로 쓸지 안 쓸지 모르겠는데(내가 볼 땐 곧 쓰지 않을까 한다. 단지 말을 극히 아끼는 작가의 성정을 보면, 독자들과도 함부로 약속 같은 건 안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느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를 공부 중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볼 때 작가는 역사에 천착을 하고 그것을 소설로 쓰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부인했다. 단지 자신에게 있어 역사란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재료일뿐 역사 소설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남한산성>은 그 시대의 야만성을 얘기하려고 했고, <칼의 노래>는 남자의 고독을, <현의 노래>는 무기와 악기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 것처럼 소설을 쓰는 전략적 판단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만일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를 소설로 쓰게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키는 쪽이 아닌 목숨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신앙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작가는 좋은 문장을 쓰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도 그렇지만 그의 문학을 읽는 거의 대부분의 독자는 그가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알고 싶어했다. 특히 그의 간결하고도 시적 문체를 보면 정말 시를 많이 읽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어떤 독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떤 시를 읽냐고.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의외였다. 작가는 시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읽는 것은 의외로, 법전이나 소방실무지침 같은 책이라고 한다. 법전은  진화된 언어면서 그 언어가 갖는 명석함과 문장의 선명함 때문에 좋아하고, 소방실무지침 같은 책은 실제로 (위기상황에서) 사는 방법을 설명해 놓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좋아한다고 한다(과연 생각이 많은 사람에겐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구나 싶다). 단지 <칼의 노래> 같은 작품은 문장을 생각할 때 한 칼에 쓰는 문장을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빨리 쓰는 문장 즉 음악에서 휘모리나 자진모리를 생각했고, 전쟁소설이었던만큼 무사의 문체와 비장미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연 따라오는 어디서 영감을 얻을까란 의문에 그는 부러 언급을 회피했다. 영감 같은 것은 없다. 단지 노동만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확실히 작가다운 명확한 대답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선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는 이 질문이 작가의 속내를 알고 싶어하는 얄팍하고도 진부한 질문일수도 있을 터. 작가에게 있어 이 대답외에 할 수 있는 말이 달리 또 있을까 싶다.    

김훈 작가, 스피드를 권하는 오늘날의 세태에 대해     

강연 도중  작가는 상당히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이를테면 그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면서, 복지의 무조건적 확장에 대해 반대했다. 기율 즉 무상으로 먹는 밥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무상으로 밥을 먹게 해 주기 보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의 청소년들이 왜 그토록 스피드에 목숨거는지 아냐며, 예를들면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그런데 배달에 조금 늦기라도 하면 배달시킨 집에서 득달같이 주인에게 항의가 들어가고 그러면 주인은 배달나간 그 아이의 알바비에서 천원을 깎는다고 한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그렇게 스피드에 목을 매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렇게 피자배달을 오면 배달 온 그에게 반드시 팁을 줘서 보내라고 당부했다. 술집에 가면 전혀 생면부지의 여자들에게 팁을 잘 찔러주면서 왜 그런 아이들에겐 팁을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호응을 받았다. 그것은 확실히 생각해 볼 사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마무리...

그날의 강연회 분위기는 정말 활기찼다. 특히 작가는 사람을 그다지 잘 기억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일까? 권희철 문학평론가도 작가를 사석에서 만나고 또 얼마만에 다시 만나면 누구냐고 그러고, 뭐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작가의 어느 열혈독자가 전에 작품 하나를 필사하고 보여드렸더니 잘했다고 칭찬했었는데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억한다고 했다. 바로 그가 이번에는 <내 젊은 날의 숲>에 나오는 꽃 하나를 책에 나온 설명 그대로 그려서 액자에 넣어 작가에게 선물을 해 박수를 받았다. 나도 얼핏 그림을 보았는데 작품속에 나오는 조연주의 세밀화만큼이나 꼼꼼하게 잘 그렸다. 과연 열혈 독자라면 이 정도의 열의가 있어야하는 거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김훈 작가를 보면 쉽게 말을 섞기가 어려운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을 때 그는 일일이 사인 받으러 온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사인을 했다. 내 이름도 그의 입에서 불렸는데, 그때 잠깐 친절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선입견은 또 말그대로 선입견은 아닐지? 의문 겸 기대를 가져본다. 지금도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자신은 지금 이렇게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것이 좋다고. 인생을 다시 살아도 실수와 방황이 많은 젊을 때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러고 보면 이제 더 이상 젊다고만 할 수 없는 나에게도 남은 건 어떻게 하면 회춘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작가는 현재 60대 초반인데 70이되면 글을 못 쓸 거라고 말하며 앞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작품의 수는 고작해야 두 세 작품이 될거라고 했다. '고작해야'는 적어도의 또 다른 말이 아닐까? 나는 작가의 이번 작품을 대했을 때야 비로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도 같았다. 소재는 다양하지만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아보인다. 부디 강건해서 그의 생의 나날이 다하기까지 좋은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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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칼의 노래>랑 <개><남한산성>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금 나온 신작을
포함해서 나머지 소설들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작가의 소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지 못한 저의 무지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김훈의 문학에 대해서
약간 어려워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스텔라님의 강연회 후기를 통해서
김훈의 문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스텔라님 서재에
처음 찜한 글이 되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1-01-03 11:33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하신 3권의 책 참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개'는 지금 생각해도 참 독특하고 김훈 작가의 작품과는
또다른 느낌을 갖게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젊은 사람들은 김훈의 작품 읽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젊은 신세대 소설을 못 읽어주듯이.
전 아무래도 기성세대 맞는가 봅니다.ㅎ
근데 시루스님, 제 글을 찜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일일이 다 옮기지 못하고 더러는 빠진 것도 있어요.
이 강연회 후기글 올라오는 것 봤는데 내용에 많이 못 미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리할겸 저도 후기를 써 봤습니다. 역시 정리를 하니 좀 낫더군요.
읽어줘서 고마워요.^^

2011-01-18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책에 대한 평가가 꽤 괜찮은가 보다. 어느 님의 서재에 들어갔더니 이 책을 소장할 수 있게돼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는 글까지 읽었으니까. 그러니까 내심 욕심이 났다. 하지만 당장 사서 읽기엔 별로 현실적이기도 못하다.(읽으려고 샀다가 산더미처럼 쌓아논 책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또 나름 이렇게 궁시렁 거리고 있었는데, 어떤 착한 님께서 원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덥석 받기가 뭐해, "어머, 다른 분은 이 책을 소장할 수 있게돼서 기쁘다고까지 하는데 보내주시고 후회하시면 어떻게요. 오늘 하루 신중히 생각하시고 마음 바꾸지 않으실 자신 있으시면 보내주세요." 했다.

그런데 그 분 성미도 급하시지, 나중에 후회할 때 후회하더라도 일단 한번 정한 마음이니 마음 바뀌기 전에 어디로 보내면 좋을지 알려 달란다. 

그분은 알라딘 서평단의 한 사람이었고, 이미 자신은 다 읽었으니 이렇게 나누는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책 머리에 '알리딘 증정' 왕 여전하다. 참고로 나는 2기 서평단이었다. 어떤 이는 '알라딘 증정'이란 책도장 싫어 내가 책을 준데도 사양했었다. 앰블럼도 바꾸면서 왜 이 책도장은 안 바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받고 보니 이 책은 SF 장르다. 책 편식이 심한 나로선 그쪽 방면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편에 속하는데 과연 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감사의 쪽지를 보내면서 앓는 소리 한 마디 보탰다. 그러자 그분은 책을 잘 받았다니 다행이라며,  "sf로 읽기보다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간결하지만 친절한 글 한 줄을 보내주셨다. 격려의 댓글이 사람에게 힘을 내게 한다고, 나에게 보내주는 이 한 줄의 글이 이 책을 읽을 용기가 나게 만든다. 그것은 확실히 긴 리뷰 보다 읽어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갖게 한다. 그분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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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12-2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SF라고 하니 관심이 생기는 걸요!
스텔라님 다 읽으시고 저 좀 빌려주세요! ^^

stella.K 2010-12-29 14:1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죠.^^

cyrus 2010-12-2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리뷰의 말씀처럼 이 책은 선 리뷰 후 독서 보다는
선 독서를 해야지 차페크의 매력을 알 수 있을겁니다.
사실 저도 지금도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아서 속으로 아쉬워했답니다. ^^;;
정말 이런 재미있는 책은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꼭 읽어봐야할 책입니다.^^

stella.K 2010-12-30 11:35   좋아요 0 | URL
전 사실 잘 안 빌려주는 편이죠.
아예 그냥 주던가 아니면 사서 보라고 하죠.
제가 그냥 주는 경우는 책이 좋긴한데
나하고는 번짓수가 안 맞는 경우랍니다.
기다려 보세요. 일단 읽고 아니다 싶으면 감은빛님
먼저 빌려드리고 시루스님께 갈수도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제가 언제 읽을지 모른다는 거죠.
흐흑~ 이런 하나마나한 얘기를 왜 하는 걸까요? 이런 내가 미워요.ㅠㅠ


sslmo 2010-12-30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는 있는데, 아직 못 읽고 있네요.
물만두님 리뷰 대회 랑 겸사겸사 장르소설을 좀 쑥쑥~빼 읽어줘야 할 것 같아요~^^

stella.K 2010-12-30 11: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1월 달도 책 읽느라 바쁘겠어요.
어쩌면 좋아요.ㅠㅠ

lo초우ve 2010-12-3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올만에 방글 ^^
12월 마감하는 날 하루 남았어요
마무리 잘하시구요 ^^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stella.K 2010-12-31 10:49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시죠?
그러게요. 벌써 마지막 날이어요. 흐흑~
가는 해가 아쉽긴 하지만 이젠 밝아오는 새해를 맞을 때죠?
안개섬님도 올해 수고 많이 하셨어요.
내년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 아름답게 이루시기 바랄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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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에게 있어 화두는 늘 '남자'였다. 

가끔 그런 책을 만난다. 작가가 남잔데 작품 속 주인공이나 화자를 여자로 쓰는 경우. 또 그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여잔데 남자로 쓰는 경우. 그럴 경우 난 그 책을 의심부터 하고 본다. 여자를 잘 알고 쓰는 걸까? 또는 남자를 잘 알고 쓰는 걸까? 그냥 주인공을(또는 화자를) 그렇게 산정할 뿐 그것이 꼭 서로 다른 성을 잘 알아서 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성(性)을 바꿔서 쓰는 것일까?  그럴 때 작품의 완성도는 얼마나 더 할 수 있는 것일까?

늘 남자에 관해서만 쓰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가 나를 놀래켰던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언니의 폐경'과 '화장'이란 작품이었다. 그 두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 김훈이 여자에 관해서 쓴다는 것이 놀라웠고,  여자를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쓰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웠다. 그런 작가가 이 작품에서 또 한번 여자를 등장시켰다.  그런데 그것이 장편이어서 그럴까? 앞의 두 작품은 군더더기 없는 단편인데 반해, 이 작품은 뭔가 모르게 버거워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세밀하지만 다분히 우회적이고, 여성성을 대표하는 감성적인 면이 생각보다 그리 많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작들은('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의 경우)  초라한 남자의 공허하고도 처연한 울림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뭐랄까 결코 뜨겁게 덥혀지지 않은 아니 다 식어버린 밥상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작가를 떠올리면 늘, 가부장과 마초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그는 가부장이란 말은 인정하지만, 마초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사실 '가부장'이란 여성에겐 다소 권위적이고 위협적일수도 있지만 그런 요소를 제거한다면,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다스린다는 신사적 의민데 어찌 그것을 '마초'와 견줄수있냐며 정색을 했다. 마초는 남자적 허세가 아니겠냐며. 듣는 순간 그도 과연 맞는 말이다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을 비롯해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또는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나약하고 회의하는 남자다. 그리고 그것이 김훈 문학의 화두란 생각이 든다.  

관조적인 문체 

이 작품 역시 남자를 비껴가지 않는데, 이 전의 작품들은 남자가 화자가 된데 반해 이 작품에선 여자 조연주가 화자가 됐다는 것은 김훈 문학에 변화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앞서 두 편의 단편은 여자가 여자를 말하고(언니의 폐경), 남자가 여자 대해 말하는(화장) 형식을 취하지만, 이 작품에선 여성의 시선으로 남자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늘 그렇듯 관조적이다.  김훈의 문학은 늘 그랬다.  여타의 작가들은 인간의 욕망을 한 자락 펼쳐 보이고 그것을 끝간데 없이 밀어붙이다 산화해 버리거나 또는 어느 지점에선가 돌이키고 선회하고마는(그것은 분명 작가 자신과의 타협일터)   지점에서 끝나 버리는데, 김훈의 문학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산화해버린 그 지점에서 시작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실패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며,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거냐고 거듭거듭 말하고 있다.  하다못해 그의 소설에선 그 흔한 성애 장면 조차 나오지 않던가, 나오더라도 아주 건조하게 나올뿐이다 (칼의 노래). 이 작품에선 분명 누군가와의 성교로 아기를 임신했을텐데도, 여자는 끝내 임신한 채로 자살한 것으로 나오는 한 인물이 있다.   그처럼 그의 일련의 소설들엔 여자의 자리는 여간해서 없다. 사실 생각해 보면 여자에 대해 썼다는 '언니의 폐경'이나 '화장'도 정말 여자에 대해서 썼을까? 이쯤되면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언니의 폐경'은 여자의 싯점에서 여자에 대해 쓴 것처럼 보이지만 폐경에 대해 썼다는 점에서 여성의 끝자락에 관해 쓴 것이고, '화장'은 남편의 싯점에서 자기 아내를 통해 자신의 지난 삶을 반추하는 식이다. 그러니 그 외피만 달라졌을 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여기선 단 두 여자만이 나올뿐이다. 화자인 조연주와 그녀의 어머니. 그나마 조연주는 직업상 전방부대에 예속했다. 거기서 남자들 특히, 안실장과 그의 아들 신우를 관찰하고, 죄수의 신분인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귀찮으리만큼 연주에게 전화를 해 아버지에 대한 끊임없는 보고로 일관한다. 그리고 그 안엔 아버지를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내치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우유부단한 심정이 작품 전반에 건조하게 나타나 있다. 즉 작가는 이 두 여자를 통해 끊임없이 남자를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처음에 제기했던 '세밀하지만 다분히 우회적'이라는 건 어찌보면 그럴수밖에 없는 장치처럼도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엔 여성이란 애초부터 자리하고 있지 않으니까 여성성도 없는 것이다. 또한 작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여자를 모르기 때문에 감성적이지도 않다.  그러므로 김훈의 문학은 '남자의 문학'인 동시에 '관조의 문학'이다.    

결핍에서 완성으로       

애초에 작가가 작품 속에서 여자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했더라면 그의 문학은 생명을 낳았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여성에게는 자궁이 있다는 점에서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합일을 이루었을 때 생명은 탄생한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작가는  여성에겐 그다지 큰 의미도 역할도 주지 않았다. 생명 보단 죽음을 말하는 게 더 익숙하고, 충만 보단 결핍을 말하는 게 더 익숙해 보인다.  

그 부자에게 아내이며 어머니인 여성의 존재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아마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 닮은꼴 부자의 결핍은 생명으로 태어난 것들의 근원적인 결핍이어서, 본래부터 결핍 속에서 태어나서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 결핍에 젖어서 살 수는 있지만 그것을 감지할 수는 없었고, 그들 부자의 결핍은 그 결핍을 인식하는 능력조차 결여된 결핍이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생명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유전적으로 파생되어나온 또다른 생명이 그 결핍의 운명을 답습함으로써, 그 결핍은 완성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 아버지와 아들의 닮음이었다.(241p) 

 하긴, 꼭 김훈 작가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대부분의 작가는 희망 보단 절망을 얘기하고,  기쁨 보다는 고통을, 드러난 것 보단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 그것은 거의 모든 작가의 생래적 특성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왜 글을 그렇게 쓰냐고 묻지 않는다. 싫으면 안 읽으면 그만인 것이지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의 문학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훈 작가 역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학적 세계를 완성에 가는데, 그야말로 그는 결핍에서 충만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결핍 그 자체를 완성해 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어줍잖은 충만, 명확하지 않은 확신, 불안한 행복, 그런 얼치기적 언어로 된 글은 쓰고 싶지 않은 그의 자존심 같은 것은 아닐지? 그런 것 보단 작가가 알고 깨달은 결핍, 공허, 허무 등을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가도 독자도.

작품, 다르게 보기 

사실 작가의 작품들은 뛰어난 문체에도 불구하고, 허무주의를 짙게 깔고 있어서 읽고나면 한동안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매번 그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다시 읽기를 감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그것은 왜 그런지 알 수 없으며, 남자 보단 여자가 더 읽기를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않을까?).  중독이다.  그렇게 읽으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작가는 왜 그리도 남자 이야기만을 하는 것일까? 물론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쯤 작품을 대하고 보니 남자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이 열린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남자 이야기 또는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일정한 패턴 내지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확실히 이것의 또 다른 측면에서 남자를 이야기 하고, 아버지를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왜 남자는 힘, 영웅 등 지구를 떠받히는 존재로 그리느냐는 것이다.  남자도 얼마나 연약한 존재고, 모든 위험을 할 수만 있으면 피하며, 자유롭고 싶어하는지를 작가는 매번 새롭지만 일관 되게 조명해 왔다. 그것은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느꼈던 건 가정과 사업을 이끌어가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가 무시로 생각 났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어렸을 때 전날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우연히 마주치게된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가끔은 만취 상태인 경우가 있고 그런 때가 되면 기도는 좀체로 하시지 않는데, 그날따라 무엇 때문인지 그러고 계셨던 것이다. 뭔가 큰 일이 아버지에게 닥친 것 같았다. 하지만 차마 물어보질 못했다. 그때 이후 아버지는 다시 평정을 되찾으신 것으로 봐서 위기는 넘기신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때가 그 이후에도 몇 번은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으셨던 때가 얼마나 많으셨을까? 남자에게는 저마다의 동굴이 있다는데 결혼과 동시에 그 동굴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가장의 책임만이 남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책임을 아는 남자는 그렇게 많지는 않아보인다.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배우지 않아도 자연히 안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낳아보면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몰라 처음부터 가장이 되지 못한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자와 여자가 합일의 경지에 이르면 생명을 잉태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불안한 것이고 결핍된 것인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완성을 향해 나가는 거라고 하지만, 무엇을 위한 완성이고, 어디로 가는 완성인지 모른다. 설혹 완성을 향해 간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먼저 죽게 되어 있고,  같이 살비비고 살면 남성성과 여성성이 마모가 돼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경우, 어머니는 아버지를 이인칭으로 보지 않고 낮선 벌레 보듯하며 시도때도 없이 딸에게 전화해 그 관찰한 바를 보고하고 있지 않는가? 이토록이나 삶은 스산한 것이다. 그렇게 애정없는 결혼 생활에도 아버지가 돌아가니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운다. 깨달음은 죽음의 순간에 온다더니 아버지가 불쌍한 존재임을 어머니는 그때 깨닫는가 보다. 이렇게 작가의 결핍을 완성시키며 나가고 있고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작품 사이 사이 나오는 곤충과 꽃들에 관한 이야기가 재밌다. 또한 아버지의 장례 장면중 화장해 타고난 뼛가루를 고슬한 밥에 소금과 함께 묻혀 새의 먹이로 주는 사찰 의례가 독특하고 새로웠다. 작가의 이런 공부와 노력이 더해져 나름 작품을 읽는 맛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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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12-2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핍을 인정하고 그걸 무엇으로 채우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게 김훈의 글에 늘 느껴져 스산한 풍경을 떠올려줍니다.
저도 별 넷으로 했지요.^^
연말 무던히 잘 보내고 계신지요.
갈수록 가고 오는 시간에 무덤덤해짐을 느껴요.ㅎㅎ

stella.K 2010-12-30 14:17   좋아요 0 | URL
이번 작품은 좀 그랬지요?
반복적인 문장도 많고.

그러게요. 제가 프레이야님께 좀 소원했죠?
죄송해요.ㅜ

sslmo 2010-12-30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님도 이 책에서 그의 결핍을 읽으셨군요~^^

stella.K 2010-12-30 11: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런데 이 작품을 보니까 비로써 그의 문학이
하나로 정리가 되더라구요. 결핍의 문학이었고, 관조의 문학이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