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난 성석제의 소설들에 (아직) 재미를 못 붙였다. 사람들은 그가 소설을 가장 재밌게 쓰는 몇 안 되는 작가중의 한 사람으로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듯한데, 난 왜 여태 재미를 못 붙이고 있는 것일까? 하긴, 내가 좀 시니컬한 면이 없지 않아 웬만치 웃기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웃으면 거의 숨을 못 쉴 정도로 웃는데 이런 나를 만족시키는 웃김을 만남이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니면 멍청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요즘 조금씩 에세이가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부담없이(또는 별 기대없이) 그의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소설과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예의를 중시하는 작가의 내면을 읽을 수가 있었으며, 더불어 인문학적인 소양도 느낄 수가 있어서 약간의 감탄과 질투를 교차 하면서 읽었다.  

성석제가 말하는, '불개'   

책을 읽다보니 개에 대해서 쓴 글이 눈에 띈다. 그것을 그는 '불개'라고 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육식을 목적으로 키웠던 개였던 것 같고, 해나 달을 먹는 상상속의 영험한 개는 아니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개는, 주인이 먹으라면 뭐든지 먹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어린아이의 몸에서 막 배출된 배설물부터 음식찌꺼기에서 쥐까지 뭐든지 잡아 먹는 개였던 것이다. 그래도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개는 똥개는 아니라고 한다. 순종이 아닌 토종개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잠시 흔들렸다. 순종은 아닌데 똥개도 아니고 토종개라니? 토종개도 알고 보면 순종 아닌가? 그런데 그 개가 어린 아이의 몸에서 막 나온 배설물도 먹었다면 그도 똥개란 말인데, 똥개는 또 아니라니? 개가 똥을 먹으면 그게 똥개 아닌가?  우린 보통 잡견을 가리켜 '똥개'라고도 하는데, 순종이 아니라면 잡견 아닌가? 이렇게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좀 현기증이 난다. 아무래도 작가는 자신의 집에서 키운 개의 권위를 세워주고 싶어 이런 말의 유희를 썼던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 불개에 대해 말하기를,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군림하되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지나가다가 처음 보는 개를 만나면 잠깐 노려보거나 코를 벌름거리거나 잠깐 몸을 울리는 정도의 소리로 상대를 제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름 도도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 정도면 작가의 말마따나 그 개를 키우는 주인의 품위와 위상마저 높여줄만 하다. 캬~! 하지만 그래도 좀 아쉽다. 그런 개가 어린 아이의 배설물만 먹지 않았다면 완벽한 위상을 갖췄을 텐데. ..하긴, 그 불개가 뭘 먹던 개들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불개가 어느 날 사라졌단다. 현명한 개는 늙어서 죽기 전에 조용히, 스스로 사라진다는 말을 작가는 나중에야 들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식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뒷동산이나 마루 밑 깊은 곳에 들어가서 혼자 죽음을 맞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불개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늙지도 않았는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저 어린 동생이 눈을 다쳐 어머니와 안과에 가는 길에 떼를 써 함께 동행했을 뿐인데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안과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데, 그 기차가 타고 싶어 떼를 썼고, 결국 기차 타는데 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그 길에 불개가 자꾸만 쫓아 오더라는 것이다. 가진 방법을 다 써서 불개를 떼어 냈고,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간 안과에서도 자신을 쫓아왔던 불개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단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불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영. 들은 말에 의하면 불개는 기차에 깔려 죽었으며, 당숙은 그 개가 죽어서 하늘로 가서 진짜 불개가 되었을 거라고 작가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것은 확실히 가슴 아픈 이야기다.  그래서 작가는 그때부터 개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단다.  헤어지고 나서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통절했기 때문에. 

내 인생의 개들 

책의 그 부분을 읽고 보니 우리집을 거쳐 간 개들이 생각이 났다.  나의 경우, 아버지가 워낙에 개를 좋아하셔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3년 정도의 기간을 제외하고, 내 인생에 있어서 개와 함께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그 3년이라는 것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처음 3년이라는 것인데, 지금의 집이 빌라란 공동주택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전까지 우린 개인주택에서 살았다. 그 불개가 작가의 첫번째 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인생의 첫번째 개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가 말한 불개와 비슷하게 닮은 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이 좀 흐리게 나와 민망하긴한데, 이것은 사진에 사진을 찍어서가 아닐까 싶다. 양해 바란다. 그런데 오른쪽 소년 상대적으로 너무 크게 나왔네. 울오빠다.ㅋ) 맨 왼쪽의 개의 이름은 '캐츠'였다. 웬 개한테 그런 이름을 붙여줬는지 지금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 무렵 TV에서는 <명견 레시>라는 외화 프로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 덕에 좀 점잖고 괜찮은 이름을 고르다 그런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요즘은 옹알이만 끝나면 바로 영어 공부를 시키겠지만, 나 어렸을 때만해도 영어공부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니 뜻은 둘째치고 그냥 부르기만 좋으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어느 날, 집을 나갔던 것이다. 그 전까지 한번도 풀어준 적이 없는데, 그 무렵 운동삼아 아버지가 풀어주곤 했는데 처음 한두번은 집을 곧 잘 찾아 들어왔다. 알아서 잘 들어오겠지 싶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이 녀석이 나에겐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서 작가와 달리, 나는 오히려 녀석을 잡으러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뛰면 뛸수록 저만치 달아났다. 그리고 그 저녁 해가 저물도록 들어오지 않았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는 개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고, 오히려 집 나간 개를 그리워 하는 것은 사람답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의연하려고 했다. 말에 의하면, 수놈은 그렇게 죽을 때가 되면 나가서 안 들어온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고, 또 귀소본능이 없고 방향 감각도 없어 한번 집을 나가면 찾기 어렵다고 해서 일찌감치 포기를 했던 것도 같다. 게다가 사진에서 보다시피, 오른쪽의 개가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집나간 '캐츠'를 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저 오른쪽의 개는 암캐였다. 어떻게든 같이 살아 볼 생각은 안하고 집을 나가다니. 어찌보면 그 개로선, 우리집에 암캐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보라. 잡견이라곤 하지만 얼마나 의젓하고 잘 생겼는지. 누구에게나 '첫번째'의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얼떨결에 같이 살게되 사랑이란 걸 그다지 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참 많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 오른쪽의 개의 이름은 '뽀삐'였다. 그 시절 흔하게 개한테 붙여 준 이름이 아니었나 한다. '캐츠'보다는 격하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도그의 일본식 이름 '도꾸' 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이 녀석 역시 잡견이긴 했지만 똑똑하기가 웬만한 순종 못지 않았다. 뽀삐는 처음 우리집에 올 때부터 변훈련이 잘 됐으니까. 그런 녀석이 이사해서 얼마 안있다 집을 나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나간다는 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주인이 자신의 시신을 치우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후에도 또 여러 마리의 개가 우리집에 왔다가 사라져갔다.   

개의 모성에 관하여

80년 대 중반무렵부터 우리나라에 애견시장이 확대된 것 같다. 그전에 애견이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건 정말 있는 사람의 전유물 같은 거였고, 그렇게 잡견만 키우다 보면 은연중에 애견을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 무렵 그 물결을 타고 우리집도 애견이란 걸 키우기 시작했다.  몇번의 실패와 갈림끝에 말티즈 '제니'가 태어나고 1주년 생일을 맞고 찍은 사진이다(이것 역시 화질이 좀 거시기 하다). 우리와는 거의 15년을 산 같이 산 개다. 어릴 적, 개가 흘레를 하는 모습도 보고, 새끼를 낳을 때 어떻게 해 줘야하는지도 알지만, 개의 모성이 얼마만한 것인지를 나는 이 녀석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당시 우리집 안방엔 조그만 벽장이 하나가 있었는데, 제니가 새끼를 낳을 즈음엔 그 벽장을 통째로 전세를 내어줘야 했다. 당시 새끼를 그곳에 모셔두고 어찌나 사납게 굴던지 사람은 근처엔 오지도 못하게 했다.  

마지막은 언제나 슬프다

성 작가처럼 죽는 것이 마음이 안 좋아 새끼를 더 이상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 역시 인력으로는 안 되는가 보다. 녀석이 또 임신을 하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집을 새로 짓는다고 잠시 남의 집 세를 들어 산 적이 있었다. 그 집엔 조그만 욕실이 있었는데 턱이 좀 높았다. 사람이 한 다름에도 올라서기 힘든 턱을 제니는 변훈련을 한 덕에 임신한 몸으로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런 채로 얼마를 지내고 났더니, 녀석의 항문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물질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추 녀석의 산통과 겹쳐 병원에 갔더니, 해산을 하긴 했지만 뱃속의 새끼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알고 봤더니, 힘들게 욕실을 오르내리게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새끼들이 사산이 됐던 것이다. 우리가 녀석에게 시킨 변훈련이 이런 참변을 가져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녀석은 끊임없이 또 극악스럽게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녀석의 새끼였다. 녀석은 새끼를 낳은 것만을 기억할 뿐, 그 새끼가 죽었다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찾고 또 찾았지만 우린 새끼를 닮은 인형조차 녀석의 품에 안겨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삼 깨달은 건,  모성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그때 이후로 우린 녀석에게 다시는 임신을 시키지 않았다.  

잡견이 좋은 건, 애견만큼 정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 게다. 그것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잡견은 주인이 거하는 실내를 들어올 수 없으며,  오직 마당에서만 생활해야 한다는 계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가 죽는 것을 보더라도 덜 슬프다. 하지만 애견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므로 애정이 더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시 그 생의 마지막을 지켜봐줘야 한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사실 생의 마지막을 담담히 지켜봐줘야 했던 건 제니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기력이 쇠해진 제니는 잔병치레도 많았고, 잘 놀지도 않았다. 마지막을 알고 있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에 한번 실패의 경험도 있었으니 별로 슬프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슬프다.  

그렇게 빌빌거리던 녀석이, 하루는 생생해져서 이 방 저 방을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했다. 나는 그때 직감 했다. 진짜 마지막이겠구나.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전에 없이 맑고 초롱했지만 안녕을 고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저 이제 조금 있으면 가요. 인사하러 왔어요.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웠어요. 잊지않을게요.' 녀석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그러고 하룬가 이틀만에 천국으로 가버렸다. 새벽이었다. 간다는 어떤 기척도 없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녀석 역시 잠자듯 죽었고, 우리가 발견했을 땐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우린 이럴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일단 마당 그늘진 구석에 묻어 주었다. 하지만 사람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또 공교롭게도 우리집이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이사를 하고나면 집이 곧 헐리게 되어 있었다. 적어도 제니의 골육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있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만한 충분한 기간이 흐른 뒤였을까?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제니에겐 미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뿐인가? 마당에서 키운 개는 막내 이모가 가져갔지만, 옛 주인인 우리를 잊지 못해 탈출에 성공했지만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고 객사 내지는 개장수가 데려갔을 것이다. 그 개들은 작가의 당숙이 말했던대로 지금쯤 불개가 되었을까?                               

 여전히 키우고, 여전히 사랑한다

 3년쯤 개 없이 살았으면 어느 정도 익숙할만도 할텐데, 이 개 없는 삶이란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허전하고 공허함이란 참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이사하고 3년쯤 됐을 때 먼 친척이 개를 주겠다는 말을 했다. 경험상 죽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개를 받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우리가 받지 않으면 지금의 개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개도 키워 본 사람이 키운다고, 우리를 믿었기에 그 친척은 우리에게 반 강제로 개를 맡겼고, 우린 또 못 이기는 척 그 개를 받아서 지금까지 키우고 있다(그 개는 요크셔테리어 수컷인데, 녀석 키우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성격이 나름 지랄맞고, 수컷이라 그런지 목청도 커서 이웃으로부터 눈총도 많이 받고,  수술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사실, 작가의 말처럼 헤어지고 나서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통절하게 깨달았음에도 더 열심히 사랑하며 키우고 있다. 솔직히 그 통절함 때문에 개를 키우지 않는다는 건 또 얼마나 큰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인가? 그것들은 거의 선천적으로 사람의 사랑이 없으면 자기 스스로 살아갈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지금은 애견인구가 넘쳐나 버림을 당하는 애견도 많고, 학대당하는 개도 많다고 한다. 인간은 참 죄가 많은 존재다.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버림받고 내치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물론 나는 그런 개를 불쌍히 여겨 부러 키울 여력은 없다. 하지만 개의 생명력, 개의 모성, 삶과 죽음을 어려서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키워달라는 걸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온 것도 어떤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살아있는 날까지 사랑으로 키워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게 헤어짐을 두려워 하는 것 보다 후회가 덜 남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기에.  

개가 불개가 된다는 건, 어떤 면에선 불교에서 나온 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기에 인간을 그만큼 잘 아는 동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개가 불개가 된다면, 그런 개를 키우는 사람은 성불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인간이 원래 이기적인 줄은 알지만, 한번 정도는 개의 편에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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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3-2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쉽고 재미나고 의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농담, 삶을 가볍게 날려주는 글들이요.
내 인생의 개, 잘 읽었어요, 스텔라님.
흑백사진 너무 풋풋해요.^^

stella.K 2011-03-25 10:22   좋아요 0 | URL
ㅎㅎ 풋풋하죠?
좀 흐려서 거시기하긴 하지만 저 정도는 저에겐
다행이다 싶어요. 저때나 지금이나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터라
아스라하니 흐린 게 오히려 낫더라구요.^^

무스탕 2011-03-2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서부터, 기억도 나지 않던 시절부터 개를 키우기 시작해서 지금 아파트로 이사올때까지 계속 키웠었는데(친정에서 키운거죠 ^^) 이젠 아버지가 개나 고양이를 안키우시겠대요.
헤어질때 힘들다고요. 10년전쯤 키운 흰색 푸들로 저희집 개의 역사는 막을 내렸어요.
스텔라님네 멍멍이들은 그래도 주인 잘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거에요 :)

stella.K 2011-03-25 10: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아마도 저희 엄니한테도 지금 키우고 있는 개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개가 주는 위로가 만만치 않지만 귀찮기도 하거든요.
저는 더 키울 의향이 있는데 말이죠.^^

cyrus 2011-03-2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몇 년 전에 개를 키운 적이 있어서
많이 공감을 느꼈어요. 두 마리나 키웠는데 처음에는 집에 개를 들여놓는 것에
가족 중에서 가장 반대를 했었는데,, 막상 키우고 몇 달동안 살다보니
정 들게 되더라구요,, 두 마리의 개를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떠나보내게 되었는데
집이 허전하더군요, 개를 보내고 난 뒤에 몇 주동안은 가족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요.ㅎㅎ

흑백사진에 오른쪽 오빠 분의 얼굴이 크게 나왔네요 ㅎㅎ
중간에 스텔라님 귀여우면서도 풋풋해보여요. ^^

stella.K 2011-03-26 13:02   좋아요 0 | URL
ㅎㅎ 중요한 건 개를 봐주세요.
둘 다 잘 생기지 않았나요?
사람은 너무 흐릿하게나와 별로 볼게 없죠.
근데 오뉴월 하루볕이 다르다고 자라나는 어린이는
정말 차이가 많이 나나봐요.
저도 이번에 다시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ㅋㅋ

정말 개 없으면 집이 초상집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제니 어미를 잠시 딴집에 보낸 적이 있는데
하도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엄마가 다시 데려다 놓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어이없이 죽었죠.
병원에서 가망없다고 안락사시켰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ㅠ

oren 2011-03-2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에서도 요크를 키우는데(8년째), 새끼를 낳게 하고 싶은 생각이 참 여러번이었다가, 사람한테나 개한테나 '이별'(새끼를 낳아서 다른 데 보낼 때의 어미와 자식간의 생이별)의 고통이 너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여태껏 '싱글'로 키우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프답니다.

먼 훗날 키우던 애완견이 죽고 사라질 때의 슬픔 역시 크겠지만, 아직은 모두 그런 걱정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영원할 순 없으니까 때가 되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싶습니다.

stella.K 2011-03-28 18:43   좋아요 0 | URL
아, 근데요 오렌님, 키우시는 개가 암캐인가 본데
한번 정도는 새끼를 낳게 해 주셔야 합니다.
암컷은 생리 구조상 새끼를 낳아야 몸이 좋아진다네요.
안 그러면 몸에 혹이 생길 수 있데요.
저의 이모가 새끼를 한번도 안 냈다가 그렇게 됐거든요.
한번 의사와 상담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개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알겠는데 그게 또 알고보면 인간의 마음일뿐
개의 입장은 아닐 수도 있거든요.^^
 
아버지, 옥한흠
옥성호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부자의 관계는, 부전자전의 관계  

우선, 저자 옥성호 씨를 뭐라고 불러야할까? 그는 이미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를 통해 기독교내에서는 알아주는 저술가 되었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책은 오늘날의 교회에 가차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공식직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교회평론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아버지 영정에 바치는 '사부곡'을 썼다.  아버지 옥한흠과 아들 옥성호의 관계는, 작년 9월초 옥한흠 목사님이 작고를 하면서 그를 추모하는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그러면서 저자의 이런 가차없는 성정이 과연 누구에게로부터 왔을까를 생각해 볼 때, 그건 확실히 아버지 옥한흠 목사에게서 그대로 나왔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옥한흠 목사님은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빈틈이 없고, 때론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기도 한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그의 하는 일에 자신의 성정이 스며있는 법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어른이시다. 오늘 날, 부드러움과 유연함, 융통성, 타협, 관용 등이 요구되어지는 세계관에서 그것은 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가? 정말 비타협적이고, 융통성없는 인물로 낙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은 항상 옳은 것만을 외쳤다. 잘못되었으면 잘못됐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이건 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듯한 세상에서 얼마나 청량제 같은 구실을 하였던가? 

하지만 그분의 그런 성정이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역시 쉽게 받아드려질만한 건 아닌듯 싶다. 그런 성정을 아드님들이 그대로 이어받았다면 그것은 분명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고슴도치 같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나는 옥함흠 목사님 타계 직후 모 잡지에 나온 추모글을 읽는 가운데, 그분의 세 아들 중 하나가, 그분의 저서 중 하나인 <예수 믿는 가정 무엇이 다른가?>란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아버지는 이런 책을 내실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사역 가운데 바빠 가정을 돌볼 틈이 없으셨던 분이셨기에 아들 역시 아버지를 닮아 둘러 말할 줄 몰랐나 보다. 그러니 목사님으로선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 우리네 같으면 그렇게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있다면 속은 어떨지 몰라도 인정상 위로를 했을지 모를 일인데 말이다. 그러기에 같은 극끼리는 통하지 못한다고 했는가 보다. 하지만 또 그런 아버지의 성정을 그대로 이어받았기에 세상에 나가선 아버지 같이 그 역할 그대로를 닮아 살게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두고 부전자전이라고 하는 것일게다.  

아버지의 삶을 말한다는 것에 관하여

이 책 초두에 보면, 저자가 이 책을 써야했던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의 소천 이후 주위에서 그런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로만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저자로 하여금 좀 더 쓰지 않으면 안 될 강력한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프랭크 쉐퍼가 쓴 Crazy for God를 읽고 나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프랭크 쉐퍼는 저명한 기독교 철학자 프랜시스 쉐퍼의 아들이다. 프랜시스 쉐퍼가 말년에 림프암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아들 프랭크는 아버지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미술에 재능은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림을 그만 둔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버지에 관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쓴 게  Crazy for God이고,  그것은 어찌보면 저자와 그의 아버지 옥한흠과 비슷해 보인다.  

프랜시스 쉐퍼는 아들의 미술적 재능을 높이 사 늘 그림을 다시 그리길 바랬지만, 자신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 아들에 대해 늘 마음 아파했었다고 한다. 옥한흠 목사 역시도 살아생전 아들의 책을 읽으면서 목회의 길을 가게 되길 바랬지만, 그것을 따라주지 않는 것에 늘 아쉬움을 가졌다고 한다. 프랭크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해 아버지의 병실을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었던 것처럼, 저자 역시 옥한흠 목사의 임종을 앞두고 목회의 길을 갈 것과 아버지의 삶에 관해 쓸 것을 다짐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삶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떤 의밀까? 모르긴 해도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 두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평범치 않은 삶을 사시고, 사회의 존망을 받으셨던 분이며 더구나 당신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록(옥한흠 목사님은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나마 있던 몇 권 되지 않는 일기조차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을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저자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했다. 앞으로 아버지의 평전을 누군가 쓰게 된다면 그것에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쓴다고.  

인간, 옥한흠             

옛 속담에,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꼭 그 사람의 성공을 점칠 때만 쓰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건, 어디에 될성 부르냐는 것인데  인간 옥한흠은 확실히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에서의 될성 부른 떡닢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 살아생전 가톨릭에 일정 정도 호의적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마더 데레사 수녀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인도에서 삶을 헌신한 테레사 수녀에 대해 존경을 넘어 일종의 열등감 내지는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89p)  그만큼 인간 옥한흠은 자신이 한 가정의 가장이고, 교회와 교단을 대표하는 중책을 맡은 것에 대해 늘 부담스러워 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마더 데레사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헌신적인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옥한흠 목사의 사후 그의 삶을 증언하는 다른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부름과 그에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아버지의 장례 때, 아버지를 가리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고백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나이와 상관없이, 신분의 고하와 상관없이 늘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솔직했던 바로 그 점 그리고 그 점을 채우려고 어린아이와 같이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라고 했다.(94p)  

목사, 옥한흠  

옥한흠 목사님은 자주 강단에서 자신의 이름의 뜻을 설명하시곤 했다. 물론 원래 가지고 있는 함자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누구도 동명이인이 되는 것을 선뜻 허락하지 않을만큼 독특하기도 하다. 그런데 목사님은, 한없이 흠이 많은 사람을  하늘 나라에선 옥에 티 한 점없이, 흠없이 들어 사용하여 주셔서 옥한흠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풀이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분은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분에 넘치도록 사용해 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에겐 얼마나 못 믿을 말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일지 짐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신됨을 증명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비워 자신의 자신됨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독특한' 인생관일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으로 유명하고, 평생 그것을 목회철학으로 삶아 목회를 하신 분으로 유명한데, 그것 말고도 그분에겐 평생 짊어지신 십자가 있었다. 그것은 사분오열 갈라진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를 하나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것은 생각보다 골이 깊고 치유 불가능한 것처럼도 보인다.  이때문에 그분은 오래 전부터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를 창립에 교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셨다. 또한  지난 2007년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 설교에서, 이미 암에게 자신의 폐가 점령 당하도록 내어준 상태에서 그는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설교했고, 기도했다. (114p~115p)  

그분은 제자훈련을 너무나 열심히 한 나머지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변절하고 돌아서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스트레스로 몸을 해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매번 설교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아 붙곤 했는데, 그가 정년보다 일찍 퇴임을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설교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기 위함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을 목회의 길로 내어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성호야, 목회자에게 필요한 건 딱 하나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목사는 딱 두 종류가 있다. 은혜를 아는 목사와 은혜를 모르는 목사다. 은혜를 알아도 은혜를 깊이 라는 목사와 피상적으로 아는 목사로 또 나눌 수 있다. 은혜를 모르는 목사가 설교를 하면 그럴듯하기는 한데, 그 설교는 결코 듣는 사람의 영혼을 때리는 울림이 없다. 성령의 감동이 없다. 너는 그런 설교가 어떤 것인지 가장 잘 알지 않니? 그게 바로 은혜의 차이 때문이다.(82p) 

 
   

  한마디로 은혜를 알고, 은혜를 끼치는 목사가 되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항상 교회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걱정을 했다. 원래 제자훈련이란 게 사람이 많아서 좋은 성질의 것이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많아져 버리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할 수 없다고 걱정을 했던 것이다.  

옥한흠 목사님이 숨을 거두시기 직전, 아들과 나눈 필담에서(인공 호흡기를 찬 상태였기 때문에) 특별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자, 그분은 힘들게 칠판에 쓰셨다고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즉 그가 평생 사랑하던 교인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목회자 옥한흠이었던 것이다. 

아버지, 옥한흠    

사실 일개의 교인으로서 나에게 그분의 이미지는'근엄함' 그 보다 더 적절한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감히 그분 곁에 다가설 수 없고, 그분의 그림자조차도 차마 밟을 수 없는 그런 분으로 인식된다. 그런 목사님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나마 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그분도 한 가정에서는 천상 아버지였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소 엄한 아버지.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딸 보다 기가 세다. 그런 아들을 슬하에 셋씩이나 두셨으니 보통 엄해 가지고 되겠는가? 더구나 명망있는 집안의 자제들이고 보면 그 이름에 누가 될까봐 엄하게 다스리지 않고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세도에 반기를 드는 자식은 어느 집이나 다 있다. 공교롭게도 옥 목사님에겐 큰아들 ,바로 이 책의 저자였는가 보다. 저자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를, 삼형제중 자신이 가장 공부를 못했으며, 아버지의 속을 가장 많이 썩혀 드렸다고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성정을 가장 많이 닮았기에 가장 많이 아버지를 안타깝게 해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가장 가깝게 또 가장 깊이 이해하는 아들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책 면면을 살펴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사안을 가지고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기도 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걱정하는지를 볼 수가 있다.  자식의 기를 살려주겠다고 무조건 잘한다고 박수만 쳐주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오늘 날의 아버지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잘할 땐 칭찬도 해 주지만, 그 칭찬 뒤엔 뼈있는 조언, 엄한 훈계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저자의 비판적 성향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나왔을 터. 그러나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고 보면 아들의 이런 자세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야를 가지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건, 중학교 시절 저자가 공부에 흥미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 때 매번 아버지에게 꾸중과 잔소리만 듣던 중 한번은 그런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성호야, 이 아빠한테 사랑의 교회가 중요한 것 같니, 아니면 네가 더 중요한 것 같니?" 이에 아들은 교회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성호야, 아빠는 너를 위해서라면 사랑의 교회도 포기할 수 있어." (123p~124P) 같은 교회 교인이라면 섭섭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가 중학교의 나이었다면 목사님의 목회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고 한창 바쁠 시기였을 때 과연 목회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가 그분의 아들이었다면, 난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분은 결코 허언을 하시지 않으시거니와 난 그분의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어찌 그 아비의 아들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아버지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옥한흠 목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도 세차게 불었다. 

                   

이 사진은 저자가 영정사진으로 고른 사진이라고 한다.  저 사진을 골랐을 때 한 소리 듣기도 했었나 보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 사진을 자세히 보라고 말한다. 이 사진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웃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울고 있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울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웃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저자 역시도 이 사진은 울고 있으면서 동시에 웃고 있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즐겨하셨던 목사님이셨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상당한 수준급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분은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지만 백 퍼센트 만족한 사진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의 렌즈에게 그만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고 한다.(171p) 그렇다면 저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야하는 건 마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분 한 평생의 삶이 저 표정속에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눈을 감으시던 날 새벽은 바람이 몹시도 세차게 불었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그날 태풍의 여파로 그런 것이었겠지만, 그날 하나님이 그분을 데려 가시기 위해 그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나 보다고 우리들은 말했었다. 마치 선지자 엘리아처럼.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는 그 다음 날 조문을 위해 저 영상사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따로있다.  바로 이 사진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그분의 사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지금쯤 천국에선 저렇게 환하게 웃고 계시겠지.  

지금까지 책을 보다 울어버린 책은 고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란 책과 이 책이다. 앞의 책은 고인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 울었다면, 이 책은 고인이 너무 그리워 울었다. 그리고 공통점은 내가 이 분들이 살아계실 땐 관심없다가 작고하고나니 마음이 가는구나 싶다. 이제 내 인생에 있어 가급적 후회를 남기지 말고 살자 했는데 또 후회를 남기고 만다. 언제쯤 나는 똑똑해지려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비교적 얇은 책은 책이다. 옥한흠 목사님의 삶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 책은 도무지 성에 안 차는 책이다.   아무리 아들이라하여 겸손하느라 그런다고는 하지만 책도 언제 다 읽었을까 싶게 다 읽어버렸다. 아쉬운 일이다. 이제 저자는 교회를 평론하는 일에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목회의 길을 기기위해 신학교에 들어간 모양이다. 이 모습을 아버지가 천국에서 지켜 보고 얼마나 대견해 하셨을까? 당신은 참 좋은 아버지를 두셨다고 저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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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윅의 마녀들 - The Witches Of Eastwic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의 정확한 제작년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우리나라 개봉관에선 개봉을 안했던 것 같다.  왜 이런 명작을 개봉을 안했던 걸까? 인터넷을 뒤지고 뒤진 끝에 저기 구석진 곳에서 결국 알아냈다. 1987년 작이다.  

오래 전, 지금은 절판된 <시네마 클래식>이란 책을 산적이 있는데 부록으로 CD가 한 장 끼어 있었다. 그중 첫번째 트랙에 바로 이 영화에 삽입되었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나온다. 책 보다는 CD가 좋아 한동안 줄창 들었던 적이 있다.  역시 클래식은 클래식 자체로 듣기 보다 이렇게 영화의 삽입곡으로 들으면 더 관심이 간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볼 수 없으니, 어떤 장면에서 이 음악이 사용됐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주일, 드디어 그것을 확인해 볼 수가 있었다.  영화에서 '다산의 여왕'이라 할 만한 여자가 나오는데(그 역은 미셸 파이퍼가 맡았다), 그녀의 아이들이 풍선에 파묻혀 놀 때 이 음악이 나온다. 다소 실망이다. 누가 뭐래도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이루고'는 구애를 할 때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고작 애들이 놀 때 이 음악이 나오다니... 그래도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용서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어느 크림치즈 CF에도 사용했는데 뭐. 

감독이 조지 밀러다. 조지 밀러라면 전에 재밌게 본 <해피 피트>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오호! 이제야 이 감독의 취향을 알 것도 같다. 이 영화는 다분히 판타지 요소가 강하며, 동화적이기도 하다. 어딘가 이 영화에 대한 정보에 범죄, 호러물이라고 하던데 이건 전혀 맞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어린 아이도 생각외로 많이 나오고 조지 밀러는 모르긴 해도, 피터팬 취향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해피 피트>와는 좀 달라서 너무 어린 아이가 보는 건 조금은 조심스럽다.   

그런데 영화가 동화적이긴 해도 다분히 페미니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자 셋이 모이면 뭐가 어떻다고 하지만, 영화를 보면 확실히 여자 셋은 강한 연대의식과 놀라운 파워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여자들이 당대 유명한 수잔 서랜든과 미셸 파이퍼와 셰어이고 보면,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도 영화에서 묵직한 균형미를 잡아주는 건 역시 잭 니콜슨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눈매며 눈빛을 보면 그다지 성한 사람은 아니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젊었을 때 그는 정상적인 배역을 맡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특히 <샤이닝> 같은 영화를 보면 섬뜩하지 않는가? 그나마 나이들고 인간미있는 노장역을 맡아 다행이긴 하지만 확실히 악역을 맡는다는 건 배우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만큼 악역을 잘 소화해낼 사람이 과연 있을까? 지금은 그 계보를 잇는 배우가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그를 좋게 보기 시작한 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부터인데, 이 영화가 90년대 초에 만들어지고, <이스트윅의 마녀들>은 87년에 만들어진 것을 보면 확실히 그때 그는 아직도 악역이 좋았나 보다.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놀라운 건, 보통 책이나 영화는 악마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남성으로 그리고 있으며 그것을 바로 잭 니콜슨이 맞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여성이 얼마나 소외되고 비하되어 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테고, 악한 남자는 그릴 수는 있어도, 악마에게 직접적으로 남성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마녀'는 있지만 '마남'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금기를 깼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백만장자를 가장한 악마다.  남자에게도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겠지만, 여자 또한 그런 로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백마 탄 왕자와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는 것. 하지만 이미 결혼은 했으나 이혼을 하거나 과부인 인생에 이런 일은 더 멀게만 느껴지지만 한편 그래서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점을 공략해 도입을 삼았다.

그렇지만 감독은 마녀란 말을 빼고 싶지 않았나 보다. 제목 조차 그렇게 붙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마녀'는 그 부정적인 이미지는 없고, 오히려 착한 이미지며, 어찌보면 등장한 세 여자(셰어와 수잔 서랜든, 미셸 파이퍼)들은 여성성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의 고상함과 열정과 자유, 모성애 등. 그런데 이것이 다릴 벤혼이란 남자(잭 니콜슨)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이런 점이 있다는 걸 몰랐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에게 마법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가 유혹을 했을 때야 비로소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는 것은 확실히 사랑의 힘이며, 혼자나 동성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연애를 해야하는 줄도 모른다. 사랑해야 비로소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게도 되니고, 자신을 긍정도 하게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이성을 만났다고 해서 자신의 잠자던 좋은 면만 일깨워지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한 남자를 두고 세 여자가 동시에 좋아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질투도 함께 일어나는 법. 그래도 나중에는 세 여자가 한 남자를 똑같이 공유한다는 것은 글쎄, 영화니까 봐 줄 만한 설정이지 그다지 바람직한 현실은 못 된다.   

그런데 이성의 구애를 받을 때 이런 상대는 주의하자. 상대의 약점을 잡아 나를 사랑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될 거라는 망상을 심어주는 약장사 같은 구애. 그것은 어찌보면 상대로 하여금 나의 약점을 사랑해 줄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의 또 다른 방법이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는 사람이 좋다. 그것은 영화에서 다릴이 어떻게 여자를 유혹하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세 여자가 강한 연대의식을 발휘하게 되는 건, 사고로 계단에서 구른 마을의 여자가 영이 밝아져  다릴의 악마성과 여자들의 죄를 폭로하고 심판하려 할 때다. 여자가 자꾸 다릴을 방해를 하니 죽여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런데 이 남자 얼마나 똑똑한지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고 세 여자를 통해 죽게 만든다.  영화는 다분히 주술적이기도 한데,  여자 셋이 어떤 행동을 하면 그 여자가 그대로 화를 입는다는 설정이다. 예를들면, 남자의 저택에서 여자 셋이 체리를 먹는데 그것을 먹을 때마다 마을의 여자는 토악질을 하는데 그것이 체리를 먹은 토사물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남편에 의해 살해 된다. 그녀들은 이 모든 것이 다릴의 짓이라는 걸 알고 복수극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확실히 통쾌하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하다. 영화에선 여자가 체리를 먹은 토사물을 내뱉았던 것처럼, 세 여자는 그대로 다릴에게 그 방법을 쓴다. 솔직히 남이 토악질을 하는 걸 보는 건 보통 괴롭고 역겨운 일이 아닌데, 여기선 다릴이 너무 심하게 정신없이 토를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무엇보다 이 이스트윅의 세 마녀들은 자신의 동족이 남자의 교활한 수법에 의해 죽었다는 것에 복수를 감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그야말로 여자를 우습게 보는 처사에 대한 응징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한꺼번에 여자 셋을 자기 휘하에 두게 됐다고 마냥 좋아할 것은 못 된다. 그 후한은 몇 배다. 더구나 양초를 녹여 다릴을 의미하는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송곳으로 찔러대고 때문에 다릴이 괴로워 하는 장면은 동서양이 참 똑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도 사극에서 보면 그 비슷한 장면을 가끔 보게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여자를 우습게 여기는 자, 저주를 받을지어다!다.  

사실 이 영화는 유쾌하게 볼만하지만, 남자를 초라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만큼 여자는 혼자 살아도 남자는 혼자살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고. 다릴은 그렇게 여자들에게 혼쭐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그녀들은 각각 다릴의 아기를 낳아 잘 사니 말이다.  여자는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즉 자신 안에 뭔가의 능력이 발견되면 남자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존재.  그런데 그것이 남자에 의해 발견되어진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리고 발견되어지면 남자는 버림을 받는다는 설정은 확실히 진화론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릴을 닮은 아이 셋이 여자의 품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건 뭔가 시사하는 바는 있는 것 같다. 다릴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악마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도 이채롭고. 뭐 꼭 이런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그 자체로도 지루하지 않게 볼만하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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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교회 서점을 들어갔다가 작년 9월 작고한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 옥성호씨를 봤다. 그는 최근 그의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에 관한 책을 냈고, 책을 산 사람에게 사인을 해 주기 위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여느 작가라면 사인회를 한다고 광고도 하고, 날잡아 큰 서점에서 거창하게 했을텐데, 그는 그야말로 소리 소문 없이 한 거나 다름 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평소 거창한 것을 싫어한 옥한흠 목사님과 판박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냥 소박하게 자신과 같은 교회 나가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봉사라고나 할까? 덕분에 나도 다른 책을 사러 들어갔다가 하필 돈도 넉넉치 못해 예정한 책은 후에 사기로 하고, 냉큼 이 책을 사 그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사 볼 생각이었는데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사실 옥성호씨는 그의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의 장례를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했을 때 본 적이 있다. 고인의 장남이었던만큼 장례가 끝나갈 무렵 가족을 대표하여 참석한 내빈들에게 인사를 했었다.  요즘 흔한 헤어스프레이나 무스도 안 바른 더벅머리에 검은테 안경을 쓴 것이 영낙 없는 공부벌레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만큼이나 날이 선 성격이고 보면 판사나 검사 같이도 보인다. 그런 그가 인사를 했을 때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혹시라도 아버님의 작고가 교인들에게 누가 될까봐 오히려 강한 모습으로 참석한 이들을 격려해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런 그를 어제 사인을 받을 때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건 어찌보면 나에겐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는 나와 같은 또래다. 20년 전, 내가 사랑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청년부에 들어 갔었고, 같은 또래 끼리 모이는 모임에서 옥한흠 목사님의 큰 아드님이 우리가 같은 또래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옥한흠 목사님은 살아생전 가족들에 관해선 거의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였을까? 말만 그렇게 들었을 뿐 그가 아버지의 교회를 다녔을지조차 의문스럽게 그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하지만 목사님의 둘째와 세째 아드님은 봐서 알고 있다. 둘째 아들은 한때 나와 주일학교 교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를 만나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나 할까?ㅋ 뭐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옥한흠 목사님이야 워낙에 기독교계에선 존경받은 분이시기도 하니 웬지 목사님을 알면 그의 가족들도 다 아는 것처럼 착각이 들기도 한다. 단지 안타까운 건 그들은 나를 모른다는 것이겠지만.  

또 하나 행운인 것은, 그는 유명한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오늘 날 위기에 처해있는 한국의 기독교의 문제점을 비판한 책으로 유명하다. 또한 기독교계에선 존경과 신망을 얻는 목사의 아들이 썼다는 점에서 출간 당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이러면 얼핏 아버지를 욕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겠지만, 저자는 오늘 날의 기독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정확히 짚어냈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합격점을 받았고,  오히려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 스스로가 아들의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것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모습으로 보였다. 그것은, 그런 저자의 책을 아버지가 홍보했다는 것 보다, 오늘 날 기독교는 비기독교 진영에서 더 많이 비판을 받는데, 나는 그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같은 기독교 진영이라야 맞는 것 아닌가? 비기독교는 그야말로 비판만하고 비난만 한다. 그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비판만하고, 비난만 할 뿐이지 이렇다할 대안도 각성도 촉구하지도 않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 비난을 위한 비난이야 누군들 못하겠는가? 나는 그들이 과연 기독교에 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떠드는 것이 맞는 일인가? 의문스럽다. 그러나 유명한 목사의 아들이란 걸 떠나서, 같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이런 책을 썼을 땐 비판만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성을 촉구하는 의도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건, 작년 이 맘 때 오랜만에 교회 청년부 때 같은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다 마침 옥한흠 목사와 그의 아들 옥성호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는, 옥함흠 목사님은 그렇게 복음주의 설교를 열심히 하는데, 그의 아들은 교회를 비판하는 책을 썼다고 나름 희화하면서 깔깔대고 웃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에겐 얼마나 이상하고 어색한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같으면서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그점에 있어서는 그들은 아직 생각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실제로 본 그는 인터넷 화면에서 본 것 보다 조금 더 나이들어 보이고, 거칠어도 보인다. 사실 서점엔 그다지 사람이 많지가 않았는데 거기에 사람이 많았더라면 사인하느라 바빴을텐데 자신의 책을 앞에 쌓아놓고 오도카니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다소 쓸쓸해 보였다. 손이라도 잡아주며, 같은 또래예요. 라고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었고, 사모님(옥한흠 목사님 사모)은 안녕하시냐고 묻고도 싶었다(정말 그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렸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아무 말도 못하고 사인만 받은 체 거기를 나와야 했다. 사인을 받는 것 그 이상의 태도를 취한다는 건 또 얼마나 우습고,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인가?  

지금까지 저자들의 사인을 많이 받아 온 것은 아니지만,  사인을 하는 저자들은 모습은 대체로 진지하고, 겸손하고, 때로는 상냥하기도 하다. 하지만 또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런데, 사인을 받는 그 짧은 순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람이 있다면, 하나는 노벨문학상의 르 클레지오의 사인을 받을 때이고, 또 하나는 어제 옥성호씨의 사인을 받을 때가 아닌가 한다. 르 클레지오는 무엇보다 상당히 진지하다.  그는 사인을 받으러 온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진지하게 소리내어 본다.  그 발음은 또 얼마나 어색할 것인가? 그래도 그렇게 함으로 그날 모인 독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어하는 열망 내지는 호기심 같은 것이 스며있다. 또한 그의 유난히 맑아보이는 회색빛 눈동자도 인상적이고. 그리고 옥성호 씨는 얼듯 볼 땐 차가운 것 같지만 상당히 겸손했다. 난 그저 "안녕하세요?"하며 방금 산 그의 책을 내밀었는데, 그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나의 인사를 받아줬고, 힘있게 사인을 했으며, 안녕히 가시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면 정말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어찌보면 진지함과 겸손함은 한 줄기에서 나오는 인간의 가장 탁월한 태도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의 책을 받고 나오는데 콧 끝이 찡했다. 이제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지 햇수로 7개월째다. 아직도 그게 잘 인정이 안 된다. 아직도 그분이 목회하셨던 교회엔 저리도 교인들이 북적이는데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옥한흠 목사님은 안 계시다니. 쓸쓸함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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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5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11-03-0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성호 씨 책을 저도 좋게 생각해요.
내가 꿈꾸는 교회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의 두번째 책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교회'를 읽던 중에 얼마전에 저는 아버지 장례를 치뤘지요...
처음에 제목만 보곤 비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판서인줄로만 알고 발끈했던 기억이 나네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인, 여전히 죄성이 더 강한 사람들이 성화에 이르기 위해 기도하고 애쓰는 사람들의 집단이므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자각하고 한걸음씩 하나님 말씀에 실천하여 빛과 소금으로써의 사명을 다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교회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잡은 잘못된 부분은 도려내고 고쳐나가야 하겠지요.
옥성호 씨, 한국 교회의 존망 높은 목사님의 아들로서의 삶은 평신도들이 알지 못하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그가 개인적으로 회심의 영적 체험 없는 삶을 청년시절까지 살았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부족한 교회 시리즈는 그가 그런 과정을 통과하며 거듭남을 체험한 후에 얻은 값진 결실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보니 결코 아버지 목사님께 누가 되지 않더라구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교회를 위한 자신들의 역활을 감당하는 것이겠지요.

stella.K 2011-03-05 11:01   좋아요 0 | URL
사실 어제 저 취지로 쓴 게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그렇게 됐어요.ㅠ
장례식 날 봤던 옥성호씨는 운동권 같은 느낌도 나요.
사실 오늘 날 운동권 이미지 별로 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이 좋아 보이더라구요.

근데 마부기 읽으시는 동안 진주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군요.
이책 나온지 얼마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버님 돌아가신지도
얼마 안 되셨겠군요. 지금도 많이 생각나시겠어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잘 지내고 계신 거죠? 힘내세요. 진주님.^^


cyrus 2011-03-0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네요.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보는 자세를 취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대단한 분이신거
같습니다.

stella.K 2011-03-05 11:05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오히려 아들을 자신의 목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돕도록 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게 옥한흠 목사님의 남다른 점이죠.
그분 때문에 기독교가 한층 품격을 갖췄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물론 그래도 한국의 기독교가 가야할 길은 멀고 험하죠.
그래서 옥 목사님 돌아가시고 참 외롭고 쉽지 않은 길을 가신 거구나
새롭게 느끼게 되요.

순오기 2011-03-0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전에 친구가 사랑의 교회를 다녀서 딱 한번 가봤어요.
옥한흠 목사님 설교를 라디오로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stella.K 2011-04-21 15:42   좋아요 0 | URL
저는 옥한흠 목사님 설교가 다소 딱딱해서 처음엔 좋은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저 옥성호 씨 만큼은 아니어도 저도 상당한 삐딱이였죠.
사랑의 교회가 왤케 마땅치 않은지...
근데 가랑비에 옷 젖는 건지, 묻어가는 건지 암튼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식각도 많이 다듬어지더라구요.
옥한흠 목사님 소천 이후 그분이 얼마나 기독교계 큰 어른이셨는지
알 것 같구요.
이책 요즘 읽고 있는데 목사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더군요. 나중에 언니도 기회되시면 읽어 보세요.^^

DMIBOOKS 2011-03-07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쎼요^O^ STELLA09님~ 스크랩해가도 될까요?^^
 

 얼마 전, 꼭 그럴 마음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알라딘 중고샵을 뒤지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마지막 로맨티스트 정영일>! 발견하는 순간 내 눈이 두 배는 커졌을 것이다. 발간 년도가 1994년이다. 물론 이미 절판된 책이다. 그 무렵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구입 시기를 놓쳐 버렸다. 그리고 세월에 밀려, 아니면 다른 책에 빌려 거의 잊고 지냈었다.  

정영일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는 알만한 사람만 알 것이다. 문학평론계에 김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영화평론계에선 정영일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만큼 그는 영화평론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7,80년 대 영화계를 풍미했고, 그 시절 KBS <명화극장>에서 방영된 영화의 해설을 맡았으며, 80년대 초중반에 원종관 아나운서와 <사랑방중계>를 맡아 그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입담을 자랑했었다.      

살아 온 모양새도 문학평론가 김현과 비슷해서, 평일엔 늘 영화계 관계자들과 대작을 즐겼고, 주말에는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읽었다고 한다. 김현과 비슷한 시기에 돌아간 것도 참 아이러니 하다(김현씨가 90년도에 작고한 것으로 알고, 정영일은 92년이다).  

 

요즘엔 영화평론가 하면 정성일씨나 이동진씨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성일은 알다시피 지금은 없어진 영화잡지 <키노>의 편집장이고, 그의 백과사전적 영화 지식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고 하지만, 내가 알기론 그런 그 조차 정영일의 영화평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을 오래 전 어디선가 들은 것을 기억한다. 그도 그렇겠지만 영화평론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분을 어찌 감히 제대로 평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기억하지만, 그가 돌아갔다고 했을 때 정말 아쉽고 허전했다. 그가 한창 <명화극장>의 해설을 맡았을 땐 너무 어렸고, 영화를 볼 줄 몰라 그가 얼마나 해설을 잘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맡은 <사랑방중계>는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의 해설을 알았더라면 나는 더 많이 그를 추앙하고, 흠모했을지 모른다. 이제 한 세대도 더 뛰어넘어 책으로 그의 영화에 대한 숨결을 느껴보게 됐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이 막상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마음 한켠이 숙연해졌다. 표지 제목 글씨를 보라. 정말 촌스럽다. 요즘 저런 체로 글씨체를 쓰지 않는다. 그래도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순간 묵념이라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받자마자 앞부분 조금 읽었다. 70년대 말, 그가 본 영화를 모 시사 월간지에 기고한 글이 보인다. 그가 본 영화들은 오늘 날로 치면 클래식에 속하는 영화들이다. 예를 들면, <포세이돈 어드벤쳐>나 <대부>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등. 물론 그 당시에는 시대에 뒤지지 않는 영화들이다.  

재밌는 건, 그때 당시엔 '스포일러'란 말이 없었던만큼 당시의 관습에 따라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가 느끼고 생각한 바들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서 한 페이지 반을 넘지 않게 썼다. 지금은 책 내용이 조금만 소개되도 몸둘바를 몰라 하는데, 모름지기 글은 좀 편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써야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스포일러 좀 소개됐다고 뭐라하지는 말자. 글쓰는 사람 무안하지 않은가?ㅋ   

아무튼 난 이 분이 잊혀진다는 게 아쉽고, 안타깝다. 정성일, 이동진도 좋지만, 정영일 같은 분은 꼭 특정시대, 특정인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분은 그럴 수 밖에 없는 태생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즘 누가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보며, <대부>를 보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겠으며, 그것에 대해 어떤 사람이 어떤 평론을 했는지 관심을 갖겠는가?  영화는 문학과 또 달라서 세월의 부침을 문학 보다 더 많이 타는 것 같다. 그러니 정영일 같은 분이 쉽게 잊혀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성일이나 이동진이 요즘의 영화를 열심히 보고 평론하겠지만, 이 사람들도 앞으로 한 세대만 지나면, 지금 한창 평론한 영화들이 클래식이 되면서 제2의 정영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영화평론가가 어떤 영화를 평론하고, 그 내용이 무엇인가만을 알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영화평론가가 어떤 시대정신으로 영화를 보고, 어떻게 사랑하며 이 세상을 떠나갔는지를 아는 것도 우리가 영화를 알아가는 중요한 길이라고 본다. 내년이면 그의 20주기다. 마땅한 평전은 고사하고, 그를 추모하는 추모집이라도 나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 더불어 이 책도 다시 재출간 됐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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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2-2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영일. 알지요 물론 ^^
표정만 봐가지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포커 페이스였고 목소리나 말의 속도 역시 감정과 무관하게 일률적이었지만 그가 하는 말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분명히 알 수있게 말을 하고 있었지요.
아 참, 사랑방 중계도 알아요. 원종배 아나운서, 오리 선생님도...

stella.K 2011-02-24 11:35   좋아요 0 | URL
그래요. 우리 정도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제가 알기론 이 분이 우리나라 영화평론 1호라고 들은 것도 같아요.
근데 h님은 그를 참 자세하게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맞아요. 그랬어요.
근데 자료를 찾는 중에 원종배 아나운서가 암투병중이라던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오리 선생님도 아직 생존해 계신지 모르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2-24 16:56   좋아요 0 | URL
전택부 님은 2008년에 돌아가셨습니다.

stella.K 2011-02-24 18:02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2011-02-24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4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4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4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4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1-02-24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영일 님 알지요.
두꺼운 뿔테 안경 쓰고 항상 웅얼거렸었는데...
원종배 아나운서도 아는데, 사랑방 중계에 같이 나왔던 건 기억이 안나네요~^^

stella.K 2011-02-24 11:40   좋아요 0 | URL
ㅎㅎ 알기만 하시는군요.
그 프로 정말 유명했는데...!^^

cyrus 2011-02-2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몰랐어요.^^;;
<필사의 탐독>이랑 <언젠가 세상은,,> 책은 눈여겨봤는데 스텔라님 덕분에
정영일이라는 영화평론가를 알게 되었네요. 알고보니 유명한 분이셨군요.

2011-02-24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02-2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2/23) 새벽에 라디오를 듣다가 KBS의 '명화극장'을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을 들었답니다. 요즘 가끔씩 밤늦게 인터넷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KBS 1FM의 『전기현의 음악풍경』(93.1Mhz, 00:00~01:00)에서 그날따라 추억의 옛 영화음악을 세 개나 들려주더군요. 그날의 음악선곡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았는데, 그 중 Tara's Theme가 바로 '명화극장'의 시그널 뮤직이었죠.
- - - - - - - - - -
6.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테마 // Nino Rota 3‘23“
7. 영화 ‘닥터 지바고’ 中 Lara's Theme // Andre Rieu Orch. 3‘26“
8.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中 Tara's Theme
// London Film Festival Orch. 3‘39“
- - - - - - - - - -

그런데 오늘은 운좋게도 알라딘에서 '정영일'씨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게 되는군요.

1970년대 시골에서 자랄 땐 온갖 흥미진진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으로서, 흑백TV만큼 좋은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변변한 극장조차 없던 시골에선 MBC 『주말의 명화』와 KBS 『명화극장』은 정말 끝내주는 영화관이었죠.

시골에선 찬바람이 쎄게 불기만 하면 담벼락 감나무 곁에 높게 달아놓은 TV 안테나가 흔들리는 바람에 방송화면이 영 깨끗하지 못할 때도 많았는데(그럴 때마다 추위를 무릅쓰고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안테나를 바로잡곤 했었지요), 그래도 TV를 통해 영화를 보는 재미는 하여튼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을 며칠 앞두고 TV 프로그램 사이에 스윽~ 나타나서 멋진 해설을 던져주던 '정영일'씨의 목소리는 정말 매력적이었죠.

' ˙˙˙˙˙˙˙ 이번 주말에 만나게될 영화는 ****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하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stella.K 2011-02-24 14: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아요, 오렌님!
정말 그랬어요.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정영일씨의 그 독특한 멘트도. 캬~!

저도 전기현의 음악풍경 거의 매일 들어요. 물론 컴에서 다시듣기로 낮에.
말씀하신 세 곡 저도 들었어요. 반가운데요, 음악 동지가 여기 계셨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02-2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계뿐아니라 가요계도 세대차가 나면 서로를 모르더군요. 중장년 가수들은 아이돌 가수를 모르고 아이돌 가수는 중장년 가수들을 모르고...위계질서를 따지는 한국적 정서 때문에 젊은 연예인들이 되도록 나이든 선배들과 마주치기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stella.K 2011-02-24 18:0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가 그런 게 좀 강하긴 하죠?
아무튼 이런 분이 잊혀진다는 게 넘 안타까워요.ㅠ

blanca 2011-02-2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잘 몰랐어요. 그래도 꼼꼼히 읽게 되네요. 그런 분이었군요. 영화 평론 부분도 요새 많이 사그라들어 참 아쉬워요.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보고 자는 어린이였는데^^;; 다 옛날 얘기다 되었군요.

stella.K 2011-02-25 11:08   좋아요 0 | URL
사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정성일이나 이동진 말고도 몇은 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워낙에 평론가들이 주목을 못 받잖아요. 정말 한 둘 빼곤...
매체가 그다지 발달되지 못했던 그 시절 정영일 정도면 거의 이 분야에선
제왕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정말 안 알려진 셈이고, 더구나 지금은 잊혀지기까지 했죠.
블랑카님도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보고 자라셨군요.
그게 없어진게 작년인가, 재작년이니 그 추억이 새삼 그리워요. 그죠?^^

2011-02-24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2-25 11:55   좋아요 0 | URL
아니어요. 왕년에 영화 안 좋아했던 사람 있나요?
지금은 갈수록 안 보게되요.
그냥 예전 기억이 새로워 얼른 이 책을 집어든 거죠.
대신 전 정성일의 책은 보관함에만 담아놓고 못 읽고 있잖아요.
그런 오해 살만도 해요. 이 책의 엮은이도 같은 종씨여서
저는 진짜 형제 지간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더군요.

근데 이책 누가 빌려달라면 절대 안 빌려줄꼬예요.ㅋㅋ

2011-02-25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3-0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여고때 월요일만 되면 전날의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명화를 이야기하느라 시끄러웠어요. 그때 영화와 주연배우를 줄줄이 읊어댈 수 있어야 영화광이라 인정받았거든요.^^
정영일씨는 정말 최후의 로맨티스트였을지도 몰라요, 그 후론 그런 멋쟁이를 만나기 어렵잖아요~ 원종배 아나운서와 오리 전택부 선생이 함께 했던 사랑방 중계는 프로그램의 신기원이었어요. 아~~~~~~~ 사랑방중계 정말 추억 속의 프로그램이네요.^^

stella.K 2011-03-06 15:05   좋아요 0 | URL
언니 때도 그랬군요.
하긴 그래야 뭔가 멋있어 보이잖아요.ㅎㅎ
저도 한때는 정말 그런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영화를 안 보고 있으니...ㅠㅠ

아 옛날이여 2011-08-13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쉬 그때가 조았서
사는 맛이 나거든요 안그래요
하아 아나로그시대 정영일선생님, 사랑방중계, 주말의명화
요때만해도 멋과 낭만이 있었는데말여 순수함도 쪼께
지금은개판이지요 뭐 애들이 애들이아니고 학생이 학생이아니고
옛날이 조았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