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난 성석제의 소설들에 (아직) 재미를 못 붙였다. 사람들은 그가 소설을 가장 재밌게 쓰는 몇 안 되는 작가중의 한 사람으로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듯한데, 난 왜 여태 재미를 못 붙이고 있는 것일까? 하긴, 내가 좀 시니컬한 면이 없지 않아 웬만치 웃기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웃으면 거의 숨을 못 쉴 정도로 웃는데 이런 나를 만족시키는 웃김을 만남이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니면 멍청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요즘 조금씩 에세이가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부담없이(또는 별 기대없이) 그의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소설과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예의를 중시하는 작가의 내면을 읽을 수가 있었으며, 더불어 인문학적인 소양도 느낄 수가 있어서 약간의 감탄과 질투를 교차 하면서 읽었다.  

성석제가 말하는, '불개'   

책을 읽다보니 개에 대해서 쓴 글이 눈에 띈다. 그것을 그는 '불개'라고 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육식을 목적으로 키웠던 개였던 것 같고, 해나 달을 먹는 상상속의 영험한 개는 아니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개는, 주인이 먹으라면 뭐든지 먹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어린아이의 몸에서 막 배출된 배설물부터 음식찌꺼기에서 쥐까지 뭐든지 잡아 먹는 개였던 것이다. 그래도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개는 똥개는 아니라고 한다. 순종이 아닌 토종개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잠시 흔들렸다. 순종은 아닌데 똥개도 아니고 토종개라니? 토종개도 알고 보면 순종 아닌가? 그런데 그 개가 어린 아이의 몸에서 막 나온 배설물도 먹었다면 그도 똥개란 말인데, 똥개는 또 아니라니? 개가 똥을 먹으면 그게 똥개 아닌가?  우린 보통 잡견을 가리켜 '똥개'라고도 하는데, 순종이 아니라면 잡견 아닌가? 이렇게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좀 현기증이 난다. 아무래도 작가는 자신의 집에서 키운 개의 권위를 세워주고 싶어 이런 말의 유희를 썼던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 불개에 대해 말하기를,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군림하되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지나가다가 처음 보는 개를 만나면 잠깐 노려보거나 코를 벌름거리거나 잠깐 몸을 울리는 정도의 소리로 상대를 제압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름 도도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 정도면 작가의 말마따나 그 개를 키우는 주인의 품위와 위상마저 높여줄만 하다. 캬~! 하지만 그래도 좀 아쉽다. 그런 개가 어린 아이의 배설물만 먹지 않았다면 완벽한 위상을 갖췄을 텐데. ..하긴, 그 불개가 뭘 먹던 개들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불개가 어느 날 사라졌단다. 현명한 개는 늙어서 죽기 전에 조용히, 스스로 사라진다는 말을 작가는 나중에야 들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식구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뒷동산이나 마루 밑 깊은 곳에 들어가서 혼자 죽음을 맞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불개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늙지도 않았는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저 어린 동생이 눈을 다쳐 어머니와 안과에 가는 길에 떼를 써 함께 동행했을 뿐인데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안과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데, 그 기차가 타고 싶어 떼를 썼고, 결국 기차 타는데 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그 길에 불개가 자꾸만 쫓아 오더라는 것이다. 가진 방법을 다 써서 불개를 떼어 냈고,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간 안과에서도 자신을 쫓아왔던 불개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단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불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영. 들은 말에 의하면 불개는 기차에 깔려 죽었으며, 당숙은 그 개가 죽어서 하늘로 가서 진짜 불개가 되었을 거라고 작가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것은 확실히 가슴 아픈 이야기다.  그래서 작가는 그때부터 개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단다.  헤어지고 나서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통절했기 때문에. 

내 인생의 개들 

책의 그 부분을 읽고 보니 우리집을 거쳐 간 개들이 생각이 났다.  나의 경우, 아버지가 워낙에 개를 좋아하셔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3년 정도의 기간을 제외하고, 내 인생에 있어서 개와 함께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그 3년이라는 것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처음 3년이라는 것인데, 지금의 집이 빌라란 공동주택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전까지 우린 개인주택에서 살았다. 그 불개가 작가의 첫번째 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인생의 첫번째 개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가 말한 불개와 비슷하게 닮은 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이 좀 흐리게 나와 민망하긴한데, 이것은 사진에 사진을 찍어서가 아닐까 싶다. 양해 바란다. 그런데 오른쪽 소년 상대적으로 너무 크게 나왔네. 울오빠다.ㅋ) 맨 왼쪽의 개의 이름은 '캐츠'였다. 웬 개한테 그런 이름을 붙여줬는지 지금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 무렵 TV에서는 <명견 레시>라는 외화 프로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 덕에 좀 점잖고 괜찮은 이름을 고르다 그런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요즘은 옹알이만 끝나면 바로 영어 공부를 시키겠지만, 나 어렸을 때만해도 영어공부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니 뜻은 둘째치고 그냥 부르기만 좋으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어느 날, 집을 나갔던 것이다. 그 전까지 한번도 풀어준 적이 없는데, 그 무렵 운동삼아 아버지가 풀어주곤 했는데 처음 한두번은 집을 곧 잘 찾아 들어왔다. 알아서 잘 들어오겠지 싶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이 녀석이 나에겐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서 작가와 달리, 나는 오히려 녀석을 잡으러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뛰면 뛸수록 저만치 달아났다. 그리고 그 저녁 해가 저물도록 들어오지 않았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는 개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고, 오히려 집 나간 개를 그리워 하는 것은 사람답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의연하려고 했다. 말에 의하면, 수놈은 그렇게 죽을 때가 되면 나가서 안 들어온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고, 또 귀소본능이 없고 방향 감각도 없어 한번 집을 나가면 찾기 어렵다고 해서 일찌감치 포기를 했던 것도 같다. 게다가 사진에서 보다시피, 오른쪽의 개가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그렇게 집나간 '캐츠'를 쉽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저 오른쪽의 개는 암캐였다. 어떻게든 같이 살아 볼 생각은 안하고 집을 나가다니. 어찌보면 그 개로선, 우리집에 암캐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보라. 잡견이라곤 하지만 얼마나 의젓하고 잘 생겼는지. 누구에게나 '첫번째'의 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얼떨결에 같이 살게되 사랑이란 걸 그다지 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참 많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 오른쪽의 개의 이름은 '뽀삐'였다. 그 시절 흔하게 개한테 붙여 준 이름이 아니었나 한다. '캐츠'보다는 격하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도그의 일본식 이름 '도꾸' 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이 녀석 역시 잡견이긴 했지만 똑똑하기가 웬만한 순종 못지 않았다. 뽀삐는 처음 우리집에 올 때부터 변훈련이 잘 됐으니까. 그런 녀석이 이사해서 얼마 안있다 집을 나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나간다는 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주인이 자신의 시신을 치우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후에도 또 여러 마리의 개가 우리집에 왔다가 사라져갔다.   

개의 모성에 관하여

80년 대 중반무렵부터 우리나라에 애견시장이 확대된 것 같다. 그전에 애견이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건 정말 있는 사람의 전유물 같은 거였고, 그렇게 잡견만 키우다 보면 은연중에 애견을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 무렵 그 물결을 타고 우리집도 애견이란 걸 키우기 시작했다.  몇번의 실패와 갈림끝에 말티즈 '제니'가 태어나고 1주년 생일을 맞고 찍은 사진이다(이것 역시 화질이 좀 거시기 하다). 우리와는 거의 15년을 산 같이 산 개다. 어릴 적, 개가 흘레를 하는 모습도 보고, 새끼를 낳을 때 어떻게 해 줘야하는지도 알지만, 개의 모성이 얼마만한 것인지를 나는 이 녀석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당시 우리집 안방엔 조그만 벽장이 하나가 있었는데, 제니가 새끼를 낳을 즈음엔 그 벽장을 통째로 전세를 내어줘야 했다. 당시 새끼를 그곳에 모셔두고 어찌나 사납게 굴던지 사람은 근처엔 오지도 못하게 했다.  

마지막은 언제나 슬프다

성 작가처럼 죽는 것이 마음이 안 좋아 새끼를 더 이상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 역시 인력으로는 안 되는가 보다. 녀석이 또 임신을 하고, 공교롭게도 우리는 집을 새로 짓는다고 잠시 남의 집 세를 들어 산 적이 있었다. 그 집엔 조그만 욕실이 있었는데 턱이 좀 높았다. 사람이 한 다름에도 올라서기 힘든 턱을 제니는 변훈련을 한 덕에 임신한 몸으로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런 채로 얼마를 지내고 났더니, 녀석의 항문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물질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추 녀석의 산통과 겹쳐 병원에 갔더니, 해산을 하긴 했지만 뱃속의 새끼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알고 봤더니, 힘들게 욕실을 오르내리게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새끼들이 사산이 됐던 것이다. 우리가 녀석에게 시킨 변훈련이 이런 참변을 가져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녀석은 끊임없이 또 극악스럽게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녀석의 새끼였다. 녀석은 새끼를 낳은 것만을 기억할 뿐, 그 새끼가 죽었다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찾고 또 찾았지만 우린 새끼를 닮은 인형조차 녀석의 품에 안겨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삼 깨달은 건,  모성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그때 이후로 우린 녀석에게 다시는 임신을 시키지 않았다.  

잡견이 좋은 건, 애견만큼 정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 게다. 그것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잡견은 주인이 거하는 실내를 들어올 수 없으며,  오직 마당에서만 생활해야 한다는 계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가 죽는 것을 보더라도 덜 슬프다. 하지만 애견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므로 애정이 더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시 그 생의 마지막을 지켜봐줘야 한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사실 생의 마지막을 담담히 지켜봐줘야 했던 건 제니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기력이 쇠해진 제니는 잔병치레도 많았고, 잘 놀지도 않았다. 마지막을 알고 있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에 한번 실패의 경험도 있었으니 별로 슬프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슬프다.  

그렇게 빌빌거리던 녀석이, 하루는 생생해져서 이 방 저 방을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했다. 나는 그때 직감 했다. 진짜 마지막이겠구나.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전에 없이 맑고 초롱했지만 안녕을 고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저 이제 조금 있으면 가요. 인사하러 왔어요.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웠어요. 잊지않을게요.' 녀석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그러고 하룬가 이틀만에 천국으로 가버렸다. 새벽이었다. 간다는 어떤 기척도 없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녀석 역시 잠자듯 죽었고, 우리가 발견했을 땐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우린 이럴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일단 마당 그늘진 구석에 묻어 주었다. 하지만 사람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또 공교롭게도 우리집이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이사를 하고나면 집이 곧 헐리게 되어 있었다. 적어도 제니의 골육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있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만한 충분한 기간이 흐른 뒤였을까?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제니에겐 미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뿐인가? 마당에서 키운 개는 막내 이모가 가져갔지만, 옛 주인인 우리를 잊지 못해 탈출에 성공했지만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고 객사 내지는 개장수가 데려갔을 것이다. 그 개들은 작가의 당숙이 말했던대로 지금쯤 불개가 되었을까?                               

 여전히 키우고, 여전히 사랑한다

 3년쯤 개 없이 살았으면 어느 정도 익숙할만도 할텐데, 이 개 없는 삶이란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허전하고 공허함이란 참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이사하고 3년쯤 됐을 때 먼 친척이 개를 주겠다는 말을 했다. 경험상 죽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개를 받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우리가 받지 않으면 지금의 개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개도 키워 본 사람이 키운다고, 우리를 믿었기에 그 친척은 우리에게 반 강제로 개를 맡겼고, 우린 또 못 이기는 척 그 개를 받아서 지금까지 키우고 있다(그 개는 요크셔테리어 수컷인데, 녀석 키우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성격이 나름 지랄맞고, 수컷이라 그런지 목청도 커서 이웃으로부터 눈총도 많이 받고,  수술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사실, 작가의 말처럼 헤어지고 나서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통절하게 깨달았음에도 더 열심히 사랑하며 키우고 있다. 솔직히 그 통절함 때문에 개를 키우지 않는다는 건 또 얼마나 큰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인가? 그것들은 거의 선천적으로 사람의 사랑이 없으면 자기 스스로 살아갈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지금은 애견인구가 넘쳐나 버림을 당하는 애견도 많고, 학대당하는 개도 많다고 한다. 인간은 참 죄가 많은 존재다.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버림받고 내치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물론 나는 그런 개를 불쌍히 여겨 부러 키울 여력은 없다. 하지만 개의 생명력, 개의 모성, 삶과 죽음을 어려서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키워달라는 걸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온 것도 어떤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살아있는 날까지 사랑으로 키워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게 헤어짐을 두려워 하는 것 보다 후회가 덜 남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기에.  

개가 불개가 된다는 건, 어떤 면에선 불교에서 나온 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기에 인간을 그만큼 잘 아는 동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개가 불개가 된다면, 그런 개를 키우는 사람은 성불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인간이 원래 이기적인 줄은 알지만, 한번 정도는 개의 편에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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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3-2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쉽고 재미나고 의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농담, 삶을 가볍게 날려주는 글들이요.
내 인생의 개, 잘 읽었어요, 스텔라님.
흑백사진 너무 풋풋해요.^^

stella.K 2011-03-25 10:22   좋아요 0 | URL
ㅎㅎ 풋풋하죠?
좀 흐려서 거시기하긴 하지만 저 정도는 저에겐
다행이다 싶어요. 저때나 지금이나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터라
아스라하니 흐린 게 오히려 낫더라구요.^^

무스탕 2011-03-2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서부터, 기억도 나지 않던 시절부터 개를 키우기 시작해서 지금 아파트로 이사올때까지 계속 키웠었는데(친정에서 키운거죠 ^^) 이젠 아버지가 개나 고양이를 안키우시겠대요.
헤어질때 힘들다고요. 10년전쯤 키운 흰색 푸들로 저희집 개의 역사는 막을 내렸어요.
스텔라님네 멍멍이들은 그래도 주인 잘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거에요 :)

stella.K 2011-03-25 10: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아마도 저희 엄니한테도 지금 키우고 있는 개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개가 주는 위로가 만만치 않지만 귀찮기도 하거든요.
저는 더 키울 의향이 있는데 말이죠.^^

cyrus 2011-03-2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몇 년 전에 개를 키운 적이 있어서
많이 공감을 느꼈어요. 두 마리나 키웠는데 처음에는 집에 개를 들여놓는 것에
가족 중에서 가장 반대를 했었는데,, 막상 키우고 몇 달동안 살다보니
정 들게 되더라구요,, 두 마리의 개를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떠나보내게 되었는데
집이 허전하더군요, 개를 보내고 난 뒤에 몇 주동안은 가족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요.ㅎㅎ

흑백사진에 오른쪽 오빠 분의 얼굴이 크게 나왔네요 ㅎㅎ
중간에 스텔라님 귀여우면서도 풋풋해보여요. ^^

stella.K 2011-03-26 13:02   좋아요 0 | URL
ㅎㅎ 중요한 건 개를 봐주세요.
둘 다 잘 생기지 않았나요?
사람은 너무 흐릿하게나와 별로 볼게 없죠.
근데 오뉴월 하루볕이 다르다고 자라나는 어린이는
정말 차이가 많이 나나봐요.
저도 이번에 다시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ㅋㅋ

정말 개 없으면 집이 초상집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제니 어미를 잠시 딴집에 보낸 적이 있는데
하도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엄마가 다시 데려다 놓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어이없이 죽었죠.
병원에서 가망없다고 안락사시켰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ㅠ

oren 2011-03-2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에서도 요크를 키우는데(8년째), 새끼를 낳게 하고 싶은 생각이 참 여러번이었다가, 사람한테나 개한테나 '이별'(새끼를 낳아서 다른 데 보낼 때의 어미와 자식간의 생이별)의 고통이 너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여태껏 '싱글'로 키우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프답니다.

먼 훗날 키우던 애완견이 죽고 사라질 때의 슬픔 역시 크겠지만, 아직은 모두 그런 걱정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영원할 순 없으니까 때가 되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싶습니다.

stella.K 2011-03-28 18:43   좋아요 0 | URL
아, 근데요 오렌님, 키우시는 개가 암캐인가 본데
한번 정도는 새끼를 낳게 해 주셔야 합니다.
암컷은 생리 구조상 새끼를 낳아야 몸이 좋아진다네요.
안 그러면 몸에 혹이 생길 수 있데요.
저의 이모가 새끼를 한번도 안 냈다가 그렇게 됐거든요.
한번 의사와 상담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개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알겠는데 그게 또 알고보면 인간의 마음일뿐
개의 입장은 아닐 수도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