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퀸의 노인과 바다 - [초특가판]
주드 테일러 감독, 안소니퀸 외 출연 / 기타 (DVD)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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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연히 영화 <노인과 바다>를 보았다. 

원래는 스펜서 트레이시라는 배우가 출연한 <노인과 바다>가 있지만, 내가 본 영화는 안소니 퀸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2년 전쯤에 책으로 읽었는데  기자출신 헤밍웨이 특유의 건조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여러 형용사나 장황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고도 이런 명작을 쓸 수 있다니 대단하기도 하고, 좀 질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듣자하니 이런 헤밍웨이도 처음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라니 뭔가 위로를 받는 것도 씁쓸하기도 하고. 대중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헤밍웨이의 그런 건조한 문체가 나름 좋긴 하지만 웬지 모를 쓸쓸함과 고독이 베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노인과 소년만 나온다는 점에선 꼭 연극에서 2인극을 보는 것도 같고. (2인극의 대표적 작품은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될 것이다). 소설의 끝도 조금은 모호하게 끝나지 않던가?

 

하지만 그에 비하면 영화 <노인과 바다>는 오히려 원작 보다 화려하다는 생각마져 들 정도다. 무엇보다 영화엔 실제로 헤밍웨이로 추정되는 작가와 그의 아내가 나온다. 다소 슬럼프에 빠져 있는 작가가 노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되고 유심히 관찰을 하게 된다는 건, 헤밍웨이가  실제 모델인 어부 노인을 취재하고 그것을 글로 썼다는 것을 암시할 것이다.  

 

그리고 소년뿐만 아니라 어부 산티아고 노인의 딸이 나와 노인이 지난 삶을 어떻게 살아 왔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했고, 웨이터도 나오고 주변을 여행하는 사람들, 동료 어부 등을 출연시켜 스토리를 더 풍부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원작을 전혀 훼손하지 않았으니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특히 노인이 상어와 싸우는 장면을 어떤 방식으로 촬영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84일을 고기 한마리 잡지 못했다. 그렇다면 산티아고 노인의 딸에 수긍할만도 하지 않을까? 이제 아버지는 늙어서 물고기들도 아버지를 안 따르는 거라구욧! 그러니 이제 저와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란 말예요. 

 

그런데도 노인은 무슨 자존심인지 물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딸과도 같이 살 마음이 없다. 거기엔 도대체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것을 노욕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나는 누군가를 80일 넘게 기다려 본적이 있었나? 평생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두 달 이상 해 본적이 있는가를 반성하게 됐다. 특히 나 같이 포기가 빠른 인간은 84일을 기다리는 건 차라리 그 전에 죽음을 맞이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야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포기할 테니까. 

 

그렇다고 84일씩이나 기다렸음에도 노인에게 합당한 열매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처절한 사투와 고기 대신 훈장 같은 상처. 그리고 절대적인 피곤만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영화는 원작과 달라서 원작에서 노인은 피곤에 찌들어 잠에 골아 떨어졌지만, 영화는 마치 1등은 못했지만 달리기를 완주한 노약자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박수가 보냈다는 것이 좀 다르다는 정도랄까. 그것은 또 산티아고 노인에겐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씁쓸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또 웃기는 건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나의 사춘기 때 가졌던 어설픈 생각들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 시절 어설픈 염세주의가 있었다. 사람은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이렇게 힘들 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나의 엄마와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왜 나를 낳아서 이토록 어렵고 힘들 게 만드는 것인가?  나는 그저 인간이 되기 전 하나의 아베마가 되어도 좋았을 것을. 죽을 땐 또 어떤 고통 속에서 죽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생각은 나이가 들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없어지긴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나의 부모님이 알면 그건 또 얼마나 서글픈 것이 되겠는가? 그리고 삶은 과정에 있는 것이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나의 그런 생각은 경쟁속에 내몰려진 학교가 숨 막히게 싫어 나의 막히는 숨을 알아 달라는 일종의 몸부림 내지는 합리화였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동안은 우린 모두 다 시지프스의 후예다. 이즈음 결과로만 얘기 되어지는 천박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1등에게만 박수를 보낼 것이 아니라는 걸 어설피 아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또 천박한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건 그건 천박한 자본주의 보다 더 나쁜 것이 될 것이다.

 

언젠가 모 작가는 인간을 기만하는 자본주의를 끊임없이 경멸하고 고발하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멋지고, 화려하고, 예쁘고, 보암직한 것만이 아름다움의 총칭이 아니며, 인간다움의 총칭은 더 더욱 아니다.

 

청새치라고 하는 결과물을 잡아 올리지 못하고, 상처뿐인 산티아고 노인을 패배자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그걸 단순히 동정이라고 비판한다면 나는 말하리라. 언제부터 인간의 동정이란 감정을 싸구려 취급했냐고. 사실은 그 감정엔 동정 이상의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그냥 죽는 것과 도전하고, 싸우고, 상처 입고 죽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일까?  어차피 지나갈건데 사랑은 해서 뭐하냐라고 묻겠는가? 어차피 일어날 건데 잠은 자 뭐하겠냐고 묻겠는가?             

 

그런데 귀환하는 산티아고 노인의 표정을 보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그것은 단순히 청새치를 잡지 못해 아쉬운 것마는 아닐 것이다. 피곤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간섭도 도움도 귀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극도로 피곤한 몸 잠깐 누군가를 의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누군가의 격려와 박수를 받는 것도 어색한 일이었겠지. 청새치를 잡지 못해 속상한 건 사그러지지 않는다. 거기에 존재를 느끼는 것과 보는 것의 간극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이 해 왔던 일인데 새삼 박수 받을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래봐야 자존심만 더 상하지. 

 

인생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칭찬을 받던 비난을 받던 온전히 내 것으로 살아내는 것. 그러니 엄살 피우지 말아야 한다. 핑계대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그럴지라도 후에 산티아고 노인은 소년과 함께 희희낙낙 한다. 어쩌면 그때 노인은 자신을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늙었다는 걸. 그래서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노인의 존재론적 삶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신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느끼는 삶의 여유로움이란 능선을 넘어 봐야 아는 일인가 보다.

 

나도 그렇다. 난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이젠 젊지도 않다. 이것을 인정하기는 또 얼마나 싫은 것인가? 그래서 한 번은 크게 앓고, 한 번은 바닥을 치고, 또 한 번은 크게 체념하면 뭔지모를 조바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그러면서 넓어지고 여유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팝 가수 마돈나가 보그 지와의 인터뷰에서,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성공하게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두려움이라고 대답했단다.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구는 그것을 대단한 것으로 볼지 모르겠는데, 난 왠지 그녀가 행복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것도 그녀가 선택한 삶이라면 그것으로 인정은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산타이고 노인이 행복했을까?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아 보인다. 비록 청새치를 잡아 올리지는 못해도 소년과 함께 나누는 웃음이 싫지 않았을 것이고, 죽을지도 모르는 고래와의 싸움에서 살아 돌아와 저녁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그때 바라 본 하늘은 그 이전에 바라 본 저녁 하늘과 달랐을 것이라는 걸 우린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그 하늘을 보면서 평생 고기잡이로 가정을 일구었으니 그만하면 흉잡힐 삶은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는지도 모른다. 요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잘 했다고 칭찬할 수 있는 것이 남에게서 받는 위로와 격려 보다  값질 것이다. 또 그래야 남이 해 주는 격려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헤밍웨이가 허무주의자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은 꼭 허무주의를 닮고 있지마는 않다. 오히려 실존이 더 많이 느껴지고, 영화는 소설 보다 더 밝은 느낌이다. 영화든 책으로든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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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2-0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를 오래전에 읽었어요.
이 작품으로 떠오르는 건 노인의 투지, 승부욕.
이 작품에서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자신은 자살을 함으로써 패배했으니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 게 인생인 듯...

그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소설을 쓸 수도 있는 거구나, 감탄했어요.

이 소설을 오늘 읽으면 좋을 것 같군요. 오늘 첫 눈 오신 걸 아시는지요?

stella.K 2014-12-01 11:4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어요. 이렇게 좋은 소설을 쓰고 본인은 그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노인과 바다>가 너무 좋아 전작 읽기를 해야지 해 놓고
여전히 못하고 있네요.ㅠ

오늘이 저에겐 첫눈이네요. 며칠 전 첫눈이 내렸다는데
저는 본적이 없으니 시침 뚝 떼고.ㅋㅋ
벌써 12월이어요.
이런 생각 안하고 그냥 살려구요. 그래봤자 내 남은 살지 않은 첫날이잖아요.^^
 

도서정가제 이후 각 인터넷 서점마다 새로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고객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가 보다.

알라딘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가지 개편을 시도하고 있는가 본데,

그중 눈에 띄는 건, 예전에 <추천>에서 <공감>으로 바뀌더니 이젠  '좋아요'바뀌었다.

난 첨에 갑자기 <공감> 기능이 없어져서 '어, 이거 뭐지?' 당황했다는.

나중에 오른쪽에 '좋아요'가 생겼다는 거 알았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데, 좀 누르고 싶도록 뭔가 디자인을 새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언젠가 그러긴 하겠지?

 

팔로잉이니 팔로워니 하는 기능도 해 놨다.

이거 네이버에서 따온 것 같은데,

나도 필요해서 네이버를 쓰고 있긴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블로그에 가끔 

서로이웃을 하자고 신청해 오는 블로거가 있다. 

난 이게 좀 불편했다. 

나 좋다고 해서 이웃하는 거야 고마운 일이긴 하다만 왠지

서로 이웃하면 '이거 꼭 해야하는 거야?' 찜찜해진다.

왜 혼자 못하고 같이 해야하는 거지? 

뭔가 같이 안하면 저쪽에서 짝사랑하는 것 같아 싫어할 것 같다고 네이버에서 지레

생각하는 걸까?

이러다 나중에 정말 같이 안하면 저쪽에서 보복 돌아 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왜 마치 '나는 너 좋아하는데 너는 왜 나 안 좋아하는 거야?' 해서

자기 호의 무시했다고 폭행에 살인까지 하는 얼빠진 사이코들의 환영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 살아 보겠다고 좋아하는 척 해야하는 그 상황이 연상이 돼서

찝찝한 것이다. 

 

물론 혼자 짝사랑 하는 것이 안쓰러워 친구맺기를 주선해 준다는

뭐 그런 선한 의도가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 같아 사용자로선 불편하다는 것이다.

 

어젠 도대체 이 '서로이웃'은 뭔가 해서 설명을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네이버 같은 경우 저쪽에서 '서로이웃' 신청했다 거절 당해도 

자신이 거절 당한 것을 알지 못하며, 내 블로그가 이웃 추가가 이미 된 것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더 웃기지 않나? 상대가 까인 것도 모르다니.

그럼 서로이웃은 왜 만든 건데? 사람 원숭이 되는 것 순식간이란 생각든다.)

여튼 그러니 내쪽에서 서로 이웃에 동의하지 않아도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같은 날 알라딘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보니 좀 짜증이 났다.

알라딘, "좀 신선해질 수는 없는 거니? 남들 한다고 나도 따라할 필요있니?"

라고 묻고 싶어졌다.

누가 누구와 친구를 맺던 또 맺다가 헤어지던 그런 건 그냥

알라디너의 자발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남겨 둬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미 즐겨찾기 한 알리디너의 친구맺기 배너 보고 참 이걸 새로 눌러야 할지

말아야할지 대충난감해졌다. 물론 다시 누를 필요를 못 느껴 그냥 내버려뒀지만.

 

나 같은 경우 오래 전부터 이러 저러한 이유로 즐찾을 했다가 빼기도 하고,

다시 추가하기도 하고(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새로 추가하기도 하고 그래 왔다.

그런데 서로 이웃하면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이러 저러한 이유로 멀어진 알라디너의 글을 브리핑룸에서 여전히

봐야하고, 별로 친하지 않은데 알은 척 해야하고... 

이건 알라딘의 또 다른 감시기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알라딘이 그렇게 한가한 곳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

다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고객을 위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불편해서야 알라딘에서 새로 알라디너를 사귀기도 쉽지 않고

(물론 거의 안하긴 하지만) 싫어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아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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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11-2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의 즐겨찾기를 상대에게 공개했던 상태라서 팔로워를 모두 팔로잉하기로 했습니다. 200번 넘께 클릭하니 지루하더라고요. 거절과 공개에 관해 `즐겨차기`를 공개로 할지 비공개를 할지 논의가 있었고, 사용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의미로 공개, 비공개 선택을 주었었죠. 오늘 서재지기님께 문의하니, 알라딘 서재 운영팀에서 친구-팔로잉-팔로워 서비스를 통해 공개로 방향을 이끄는 것 같습니다.

stella09 님이 지적하신 신선하지 않다는 것과 알라딘 서재만의 특색이 옅어진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서비스도 작은 우위가 다양성을 훼손하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14-11-25 18:22   좋아요 0 | URL
저는 오래 전부터 알라딘에 마음이 안 가서 이 동네가 뭘 하든
신경 안 쓰기로 하긴 했는데 이게 너무 네이버와 같아서
그렇지 않아도 네이버가 은근 신경 쓰였거든요.
여기서조차 이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좀 그렇더라구요.
물론 알라딘이 강제성을 두지 않을 거라는 건 압니다만
이미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강제성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알라디너의 자발성을 유도하지는 못할 거란 말이죠.
뭐 알라딘과 고객이 멀어질수도 있고 가까워질 수도 있고 그렇긴 한데
알라디너끼리 제도적인 허점에 걸려 멀어지는 건 원치 않는데
전 점점 어떠한 매력도 못 느낀다는 겁니다. 참 알라딘은...쩝

마립간 2014-11-26 09:15   좋아요 0 | URL
저는 북플을 통해 즉흥적이고 얕은 사고의 짧은 글들이 당분간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만, 알라딘의 특성상 결국에는 제자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알라디너의 상호 관계는 깊고 좁은 관계를 택할 것이나 넓고 얕은 관계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알라딘에서 시스템으로는 후자를 택한 것이겠죠.

stella.K 2014-11-26 12:15   좋아요 0 | URL
아, 알라딘이 이러는 게 결국 북플 때문이겠군요.
제자리로 돌아가 주면 다행이죠.
예전의 알라딘이 참 좋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제가 알라딘을 완전히 못 떠나는 건
제 개인적 필요도 있긴 하지만
마립간님 같은 옛 지인분들이 알라딘에 계시기 때문이어요.ㅠ

곰곰생각하는발 2014-11-2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런 게 있나요 ? 어라, 내 눈에는 왜 아무 것도 안 보이죠 ? 앗.. 좋아요가 있네 ???! 오호... 이거 무슨... ㅎㅎㅎㅎㅎ

stella.K 2014-11-25 18:24   좋아요 0 | URL
잘 안 보이죠? 저도 어제 한참 찾았다는 거 아닙니까?
전 옛날 사람이 되나서 그런지 예전에 `추천`이 좋았고.
그나마 공감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좋아요`가 뭡니까? 좋아요가...
싸 보이잖아요. ㅎㅎ

새아의서재 2014-11-2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공감요.. ˝좋아요˝는 여기 글들과 고민들에 비해..가벼운 느낌이 드네요. 차라리..˝좋소˝로 하던가.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11-25 21:47   좋아요 0 | URL
좋아요. 보다 ˝ 타인이 당신에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 요건 어떤가요 ?

마립간 2014-11-26 08:37   좋아요 0 | URL
추천, 공감, 좋아요, 맞장구 중에서 `맞장구`가 가장 마음에 드네요.

`좋아요`의 문제점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동감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감`도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좋아요가 유지된다면 `좋아요/위로`를 만들어야 할 듯 합니다.

러브굿 2014-11-26 09:41   좋아요 0 | URL
`좋소` ㅋㅋ 뿜었습니다요.

stella.K 2014-11-26 11:52   좋아요 0 | URL
전 개인적으로 이 `좋아요`가 좀 묘한 뉘앙스가 있는 것 같아서
영 껄적지근 합니다. 끈끈하잖아요. 나만 그런가?ㅋㅋ

cyrus 2014-11-26 15:40   좋아요 0 | URL
`좋지 아니한가`는 어떻습니까?

2014-11-25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11-26 15:01   좋아요 0 | URL
오, 나의 존경하옵는 님,
그렇다면 이건 뭐 알라딘의 네이버화쯤 되는 건가요?
왜 이렇게 중심이 없는 겁니까? 특화된 뭔가가 없이 따라하기나 하구.
디지털의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대센데 말입니다.
알라딘은 가만 있어도 알라디너들이 알아서 다 자리찾아 갈 텐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알라딘이 좋은 건 아직도 서로간의 소통이 다른 타 커뮤니티 보다
활발하다는 건데 그걸 스스로 깍아 먹는 것 같아요.
이번에 바뀐 `좋아요`도 타 커뮤니티는 그렇게 활성화 되있지 않아요.
그나마 남아 있는 불씨마저 끄려는 건지..

도서정가제도 일괄적으로 10%활인에 5% 적립이라니까 구매 의욕이
확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웬지 이것도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약하긴 하지만 재정가도서가 나오고 있거든요.
지금은 미약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재정가도서로 전환된 도서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러면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도서정가제가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책을 현실화할 수만
있다면...근데 이게 이상론 같기도 하고.
아무튼 단통법도 그렇고, 도서정가제도 그렇고 우리나라는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노마 2014-11-26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친구신청할때 달리 할 게 없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어요. 싸이 일촌신청하던 시절이 너무너무 힘들었던 1인...ㅡㅡ;;

stella.K 2014-11-26 12:12   좋아요 0 | URL
싸이도 그렇군요. 자주 보면 어차피 친구 먹게 돼 있어요.
네이버 같은 경우 서로 이웃하자고 해놓고 신청만 했지
그 사람네들이 제 블로그에 댓글 남기고 그러진 않더라구요.
그러면 내가 이런 사람한테까지 서로이웃을 맺어야 하나? 그런 생각들어요.
저쪽에서도 내가 반응하질 않으니 반응 없는 블로거한테
삽질해 뭐하나 뭐 그럴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성실한 태도겠죠.ㅠ

cyrus 2014-11-2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북도 마찬가지예요. 상대방이 먼저 친구 요청하거나 내가 상대방을 친구 요청을 하게 되면 정말 온라인 관계가 뜨뜻미지근하고, 오프라인에서도 한 번도 만날 일이 없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라 남남이에요. 저는 요즘 페북에 친구 신청 맺은 사람들 중에 친밀도가 낮은 분은 제가 일부러 친구 관계를 끊어요. 일단 친구 맺어보고 상대방과의 친밀함의 깊이가 더 이상 진전이 없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오래 붙잡고 혼자 끙끙댈 이유는 없다고 봐요.


2014-11-27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12-07 13:4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건 여전히 온라인 서점 살려주기지
동네서점 살려주기는 아니죠. 뭔가 실질적인 대안이 나와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 같은 고객은 꼭 불가피하게 사 봐야할 책이 아니라면
책 안 살 것 같아요. 그동안 사 놓은 책이나 보고,
요즘엔 또 심심찮게 도서 이벤트 하는데도 많고,
중고서점 어디 좋은 책 없나? 뒤져 보겠죠.
이 당연한 고객심리를 도서정가제에만 묶어 둔다는 게 역부족이다 못해
말도 안 되는 거죠.
알라딘도 그렇습니다. 저는 예전에 주급 5천원 주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뭐 깡통 페이퍼에게까지 주급 줘서 말이 되냐 안 되냐 가지고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시절 오고 가는 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페이퍼 퀄리티 높이겠다고 하니 뭐 그래서 퀄리티가 높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정이 옛날만 같지 않아졌잖아요.
그렇다고 알라딘이 특별히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당선작 하나 받아 보겠다고 하루종일 컴 앞에 앉아 있으면
이거 내가 뭐 하나 싶기도 해요.
물론 그래서 지금은 아주 감동 받은 책 아니면 리뷰도 대충 씁니다만...
썼다하면 당선작 되는 사람 보면 상실감까지는 아니어도
뭔지 모를 비애감 같은 게 느껴지죠. 결국 애증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신경 안 쓰려고 하다보니 내가 내 서재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안 쓰자니 그렇고.
그래서 딴곳에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헉, 제가 지금 뭔 말을 지껄인데유...ㅠㅠ
 
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 인생의 힘든 고비에서 나를 잡아준 책들 인문낙서 1
홍정 지음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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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처음을 보니, 저자가 어떻게 철학을 하게 되었는가가 기술되어 있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사고사와 함께 동생의 자살이 저자로 하여금 철학을 하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저자에게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그것은 저자의 모든 것을 멈추게 했으며 축사로 침잠해 들어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확실히 인간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이 인간의 삶을 깊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도 오래 전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고, 또 얼마 전 오빠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내 삶 또한 진지해지고, 겸허해질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천수를 누릴 거라고 생각한다. 젊은 날 나의 아버지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실 거라고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버지는 또 그럴 수는 있어도 설마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았던 오빠는 그렇게 빨리 허망하게 가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한다는 건 저자나 저자의 책을 읽었던 나나 당시로는 충격이고 아픔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과제로 남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과제 말이다. 

 

그 문제에 답을 달아 보고자 저자는 축사로 들어갔다. 축사라면 가축을 가두는 건물 같은 것을 의미할 텐데 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불편하고 외따로 떨어진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때 저자에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책을 읽으니 문득 왜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는지 새삼 알 것도 같다. 

 

개나 돼지는 짐승이고 죽으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죽으면 흔적이 남는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삶의 흔적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물어지지 않는다면 그 영혼이 개나 돼지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이렇게 인간이 겪는 고난이나 고통이 인간의 삶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고난이 철학을 하게 했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의지했던 기독교 신앙이 깊어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저자가 철학에 나름 깊이 천착한 흔적이 역력하긴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제가 '인생의 힘든 고비에서 나를 잡아준 책들'이라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사유는 깊지만 영혼의 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어 보인다. 

 

책은, 어차피 인간은 고난을 피해 갈 수 없으니 고난이 닥쳤을 때 피해가지 말고 맞닥트려 보라고 권면하는 책 같다. 이 책에 소개된 몇 백 년을 견딘 고전의 저자들도 그 고난을 피해가지 않고 맞닥트리므로 그러한 위대한 저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렇게도 어려워마지 않았던 니체의 생애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 것도 적지 않은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좀 독특하다. 고백적 철학 개론서쯤으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읽기엔 녹록치는 않다. 하긴 철학이 원래 녹록한 학문은 아니지 않는가. 철학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이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읽을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잘근잘근 씹듯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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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 나영석에서 김태호까지 예능PD 6인에게 배우는 창의적으로 일하는 법
정덕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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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선 프로듀서란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자.

프로듀서(producer)

[명사] <연영> 연극, 영화, 방송 따위에서 제작의 모든 관리를 책임지는 사람.

유의어: 연출자. 제작자 

                                                <네이버 사전에서>

 그것을 줄여서 우린 흔히 PD라고 부른다. 

이 책은 특별히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이나 종편에서 활약하는 예능 PD 6인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예능PD일까?   

 

사실 난 예능 프로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보더라도 그냥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그 중 한토막을 조금 보다가 말뿐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예능 프로의 PD들의 이야기란 말에 관심있어 덜컥 손에 들고 읽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그 프로에 관심이 없다고 그 프로를 만든 사람까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일에 대한 노하우를 알 수 있는 기횐데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한때는 연극 현장에 있었고, 연극이든 예능이든 사람을 상대하고, (작품이나)프로그램을 위한다는 건 똑같다. 그래서 혹시 앞으로 내 생애 이런 노하우가 필요할지 모를 일이고,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프로듀서란 무엇인지 저 6인을 통해 아는 것도 내 인생 사는데 도움이 안 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생애에 프로듀서가 아닌가?

 

오프로드의 삶에서 배운다

 

나는 길치다. 항상 자주 가는 길은 그렇지 않은데 처음 가는 길이나 드문드문 가는 길은 영낙없이 헤멘다. 처음 가는 길이야 길치니 그런다고 해도 지난 번에 가 본 곳을 한 번에 찾아내지 못하고 여전히 헤메는 나를 보면 얼마나 한심하고 짜증이 나던지. 그래서 낯선 길은겁부터 난다. 잃어버리면 어느 길로 갈까 막막해지니까. 어디서부터 다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나? 너무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한다. 확실히 아는 길 남이 가는 길을 나도 가려고 한다. 그래야 뭔가 헤메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 땐가 그 길에서 낙오한다.  그 길은 포화상태니까 언제가 누군가는 반드시 밀려나게 되있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밀려나는 대상이 내가 안 되기를 바랄 뿐이지.

 

그런데 문제는 밀려 난다고 다 낙오가 되는 것일까? 왜 낙오라고 하는 것일까? 나오의 기준이 뭘까? 남들이 가는 대오에서 벗어나면 낙오하는 것일까? 이 낙오의 기준은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낙오는 내가 받아들여을 때나 낙오가 되는 것이지 받아 들이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겠구나를 나는 나영석 PD편에서 읽는다. 그는 <1박2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그는 촬영지를 갈 때는 일부러 내비게이션을 끄고 간단다. 이는 출연자들이 빤히 아는 길로 가면 재미없을 테니 모르는 길로 가게 해 그들 가운데서 벌어지는 고생담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그렇게 모르는 길로 갔을 때가 전인미답의 신천지를 발견할 공산이 더 큰 것이다. 헤메게 될 불안은 발견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영석 PD는 바로 이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의 완전하지 않은 큰 그림만 그려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복불복을 즐기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PD로 성공하려면 인간관계, 리더십, 카리스마 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오히려 좋은 기획과 좋은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는 직업(40쪽)이라고.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용을 해 보자. 내가 내 인생의 PD가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좋은 인간관계, 리더십, 카리스마를 갖는 것 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가치있게 만들 것이냐가 더 관건이라는 말일 것이다. 

 

 

일 보다는 조직, 조직 보다는 사람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을 했던 건 바로 서수민 PD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개그 콘서트> PD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 놀라운 건 <개그 콘서트> 출연진만해도 100명이 넘는단다.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솔할까 궁금했던 것이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 나오는 얘기고, 더 읽어 나가면서 공감도 되고 감동도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쌈닭이라는 것이다. 공중파 첫 여자 PD가 돼서 처음엔 안 싸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연극판에 작가로 있으면서 안 싸우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는 쌈닭이 됐다. 그것도 신성한 교회에서. 글쎄, 연극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교회 평화에 이바지 하며, 교회가 그저 평화롭고 거룩한 곳으로만 인식하고 다녔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찌보면 평화는 투쟁없이는 지켜질 수 없는 것이니, 적어도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싸우게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싸우다 얼떨결에 <개그 콘서트>를 맞게 됐고, 조직관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게되었으며, 나아가 개그(우먼을  포함한 통칭)맨들이 보다 합리적인 조건 속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연예계 스타 시스템에 희생양이 됐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또  이것이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그들의 노예 계약이 이슈가 된 적도 있지 않았던가? 개그맨들이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연예 기획사들의 횡포의 고리를 끊어보고자 서수민 PD는 개그맨 김준호와 함께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연애 기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그녀는 예능계의 잔 다르크인지도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벌 생각하지 말고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던데, PD가 할 수 있는 일엔 사람의 권익 보호도 포함이 되는 거라는 걸 이 사람을 보며 깨달았다.

 

사실 내가 부럽다고 했던 건, 작년에 내가 쓴 뮤지컬을 대학로 무대에 올리면서(나는 이것으로 한동안 떠나 있던 이 바닥을 다시 기어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배우들이 아르바이트 보다 못한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좋아라 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좀 찡했다.

 

서수민 PD가 애초에 가졌던 꿈이 개그맨들이 개그만 해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73쪽)는 거였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는 물론 연출자도 아니고, 제작자도 아니지만 연극인들이 연극 하나만 해서 밥 먹고 살 수는 없는 걸까를 생각해 본다. 연극 현실은 연예 현실 보다 더 어렵다.     

 

좋은 작품을 쓰면 우리나라 공연계가 좋아질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없이 그 분야의 발전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되기 전에 내가 내 인생에 기획자가 되어야 하고 프로듀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사람이 궁극적으로 무엇이 되든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정해진대로 일하지 않는다

 

옛날의 예능과 오늘 날의 예능이 다른 것은 옛날의 예능은 드라마 제작과 비슷해서 정해진 포멧과 대사, 마무리 등이 대본에 나온대로 해야만 했다. 물론 약간의 애드리브가 약간의 자유로움을 보장해 주는 게 르다면 다를까?

 

하지만 요즘의 예능의 제작은 그렇지가 않다. 그냥 기본적인 틀 내지는 아주 소극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만 해 줄 뿐 출연진들이 자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방법을 과감하게 드라마에 접목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응답하라> 1994와 1997 두 시리즈를 성공시킨 신원호 PD다. 

 

그러니까 이건 정해진대로의 드마가 아니라 형식을 파괴한 드라마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친구로부터 요즘 예능 PD들이 드라마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신원호 PD일 줄을 몰랐다(솔직히 난 <응답하라>를 보지 못 했다). 예능 PD들이 드라마를 만든다니. 순간 예능 PD가 드라마를 점령하기 시작했다면 드라마 PD들은 뭘 해 먹고 살지? 그런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신원호 PD 편을 읽으니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놀랍기도 했다. 사실 내가 연극 대본을 쓰고 있었을 때 난 언젠가 꼭 한 번은 이런 연극을 해 보고 싶었다. 즉 상황만 주고 나머지 대사는 배우가 하는 뭐 그런 거 말이다. 내가 암기력이 제로에 가까워서 그런지 배우에게 내 대사를 암기하도록 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들에게 그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른 채 떠밀리듯 다음 작품을 생각하고, 나의 일은 늘 그렇게 해 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로 귀결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솔직히 그렇게 한 것엔 사람들이 작가로서의 본분을 유기시켰다 내지는 요령 피운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그런데 이걸 실제로 과감하게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니 살짝 배가 아프려고 한다. 나 역시 아웃사이더고, 중심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언제부턴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손가락질 받고, 이상한 눈으로 볼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아 가는 것이다. 나영석 부분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여기 신원호의 부분을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신원호를 가리켜, 그는 누군가 그어놓은 구별 짓기의 선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이리 넘고 저리 넘는다고 했다. 그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경계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일 뿐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다(99쪽)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앞서 말한 낙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그것과 일맥상통 해 보인다.        

 

     

프로듀서가 되는 건 마니아가 되는 것

 

신형관 PD편을 읽으면 조금은 섬짓해진다.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했을 때 이런 이벤트가 있었다고 한다. 입장권을 가장 많이 모아 온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는. 도대체 얼마를 모으면 가장 많은 것이 되는 것일까? 몇백 장 또는 천 장 가까이거나 그 보다 좀 많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1982년의 신형관은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그때 그가 모은 것만 해도 6천 장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뭐든 몇 백은 성에 차지도 않는다. 몇 천은 돼야 마니아란 소릴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 음악 방송의 PD인 그는 LP와 CD가 7천 장 이상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70년 대 중반 TV에서 방영한 <마징가Z>에 홀딱 빠져 30여 년간이나 피규어를 모았는데 그의 마장가에 대한 해석이 남다르다. 그것은 마귀 '마(魔)', 귀신 '신(神)', 나 '아(我)'가 결합됐다며, 결국 내 안에 악마와 신이 함께 있다는 얘기다(155쪽). 즉 마니아는 바로 이런 사람이며, 그런 근성이 프로듀서가 되는 덕목 중 하나라는 말이다.

 

어찌보면 마니아는 전문가와는 또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는 어떤 한 분야에 올인해서 자격증도 따고 그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개척하는 뭐 다소 의도적인 의미가 있다면 마니아는 자연발생적으로 미쳐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몰입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태. 그러면서 그는 뭔가를 해내려면 자기 자신에게 특히 독해지라고 조언한다(161쪽) 그래서일까? 그는 이례적으로 프로듀서로서 상무의 자리까지 올랐다.

 

결국 평범과 비범을 가르는 건 이런 것이 아닐까? 독한 것과 독하지 않을 것. 미친 것과 미치지 않은 것. 몰입할 줄 아는 것과 몰입하지 않는 것 등 말이다.     

 

     

프로듀서란 무엇인가?

 

사실 이 책은 프로듀서란 일을 소개하기 위해서만 쓴 책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거시적이고, 철학적인 안목에서 일이란 무엇인가를 짚어보기 위해 쓴 책인 것 같다.

 

사실 여기에 소개 된 6명의 PD들을 보면 어느 누구도 평범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뭔가 아웃사이더적이면서, 성향도 독특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자학하며 맞추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의 길,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특히 나는 프로듀서란 직업이 그 어렵다던 기자와 겹쳐 보여서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이 직업도 상당히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자신 안에 야성과 창조성만 있다면 도전할만한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6명의 PD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 그런 생각을 더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책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대중문화 평론가라면서 벤야민이나 맥루한 같은 철학자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문장이 가볍지 않고, 나름 생각해 볼만한 여지를 많이 준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우린 어쩌면 이미 프로듀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은 개척하지 않으면, 내가 내 인생을 제작하고, 책임져 나가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 개인적으로 좀 남다르게 다가 온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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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2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정가제를 2주 정도 앞두고 각 서점마다 더욱 경쟁적으로 책을 싸게 팔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어느 방송의 경제부 기자가 이 부분을 얘기한 것을 보았다.

그 역시 단통법의 예를 들어 이것 역시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건 그 기자만 보는 시각이 아니다. 시행되기도 전에 실효성 논란이 커보인다. 

무엇보다 우리네 인식이, 우리나라 서점계는 이미 인터넷 서점이 꽉 잡고 있어서 솔직히 동네 서점이 과연 우리 동네에 있기나 한 건가? 있다고 해도 왠지 낮선 느낌마저 든다. 설마 저 서점의 주인은 저걸로 돈 벌어 먹고 살겠다는 건 아니겠지? 오히려 희안한 눈으로 보지 않을까?

 

또한 도서정가제를 동네 서점 주인장들이 반기고 있는지 그것도 궁금하긴 하다. 정부에선 도서정가제 만들어 놨으니 우린 할 거 다했다 손 놓고 있을 건지 그것도 궁금하다. 도서정가제를 만들기 전에 동네서점 주인장들의 말을 충분히 듣기나 한 걸까? 출판사의 목소리는?

 

오히려 책을 더 안 읽는 것을 포함해 독서의 하양 평준화라는 역효과를 내면 어쩔 것인가? 

난 모르긴 해도 인터넷 서점들이 앞 다퉈 책을 싸게 파는 것에 어떤 꼼수가 있지 않을까 의심해 본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책을 이 기회에 20일까지 재고 정리한다는 건 아닐까? 당연히 20일 이후 약간은 시끄러워지겠지.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고나면 뭔가의 새로운 방법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20일 이후 고객 유치를 어떻게 할 건가 뭔가 머리를 짜내고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인터넷 서점으로서도 책을 싸게 팔아 국민의 독서 진흥에 이바지 하겠다는데 왜 막느냐 그럴 것도 같다.

 

그렇지 않아도 할인폭을 15% 이내로 축소한다고 해도 할인은 할인이고 이것이 주는 유혹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료배송도 그대로 유지한단다. 그러니 도서정가제가 동네 서점을 위한다는 건 그다지 크게 작용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뭐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다는 것 외에 무엇이 동네 서점과 독자에게 이익을 준단 말인가?

 

정부가 정말로 동네 서점을 보호할 의지가 있다면 좀 더 보호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재래시장의 활성화에 대한 노력은 대형 할인매장의 상권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대형 할인매장이나 온라인 서점이나  재래시장이나 동네 서점이나 뭐 비슷한 논리 비슷한 처지 아닌가? 

 

나는 동네 서점이 좀 넋놓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라인 서점이 주는 메리트가 있다면, 동네 서점이 아니면 줄 수 없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온라인 서점이 생기기 (아주 오래)전, 내가 느낀 동네 서점의 매력은 그곳 주인과 눈을 마주치며 이런 저런 살아 가는 얘기를 자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서점은 컴퓨터 자판과 버튼 하나로 모든 결제가 이루어지고, 할인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서점 주인과의 인간적인 대화는 이웃 블로거로 대체 되었다는 거?  

 

도서정가제가 동네 서점을 보호하기 위한 그 첫발이 될지 불발이 될런지는 또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봐야겠지. 하지만 도서정가제 가지고 생색내려 하지 말고 그들의 생계를 보장해 주는 뭔가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줘야하지 않을까? 

 

도서정가제가 단통법과 다른 건, 단말기는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된지 오래지만, 책은 문화생활에 해당하는 지출항목이다. 책값이 오르고(실제적으로 아직은 오른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할인에 젖어 있어서 할인폭이 제한되면 상대적으로 오른 것처럼 느껴질 것이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책값은 언젠간 오른다), 개인의 경제 수입이 위축되면 당연 지출 항목에서 제외되는 것이 도서비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건 뭔가 합리적인 대안이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좀 다른 얘기가 될지 모르겠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독자와 저자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졌으 한다. 온라인 서점의 강점 중 또 하나는 독자와 작가가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꼭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건 아니다. 가장 합리적 아닌가? 하지만 합리적인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그런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은 주로 강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그쪽에 출판사들이 대거 밀집해 있고, 장소 대여도 강남이나 여타 다른 곳 보단 쌀 것이다. 그로인해 여타 지역은 소외되어 왔다. 

 

나는 저자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동네 서점에도 좀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그 게릴라 데이트니 게릴라 콘서트는 꼭 유명 연예인만 하라는 법이 어딨는가? 어떤 작가가 어느 동네 서점에 나타난다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릴 것 같다. 내가 작가라면 그렇게 할 것이고, 그럴 리느 없겠지만, 독자를 마다하는 작가는 적어도 좋은 작가는 아니라고 본다.

 

뭐 그런 것이 꼭 아니더라도 이젠 동네 서점이 사랑방 구실을 해야한다고 본다. 요즘엔 독서토론 모임이 심심찮게 활성화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동네 서점이 적극 유치하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동네 서점도 많지는 않더라도 할인내지는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족분을 국가가 보조해 준다든지 온라인 서점과 제휴를 하던지 뭐 이러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은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너무 닫힌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도서정가제 하나에만 의존하기엔 이건 너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이나 동네 서점이나 책값을 정부나 독자들에게만 떠넘길 생각부터 하지 말고 먼저는 좀 열린 생각부터 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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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11-0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에서 `동네서점 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을 하기는 하는데
올해까지 200만 원 지원을 열 몇 군데에만 골라서 했어요.
그런데 200만 원 가운데 100만 원은 시설투자로
100만 원은 작가 초대나 이런저런 행사를 하라고 했는데,
100만 원으로 어떤 시설투자를 하고
100만 원으로 또 작가를 한 사람 초대하고 현수막 만들고 뭐 하고 하면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크면서 거시기하더라구요.

stella.K 2014-11-07 18:15   좋아요 0 | URL
와,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는 건지...
요즘 200만원으로 겨우 먹고 사는데 너무 했군요.
차라리 동네서점 문닫으란 말과 똑같네요.
뭔가 자구책이 필요해 보일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이 없겠는지
걱정이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