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 나영석에서 김태호까지 예능PD 6인에게 배우는 창의적으로 일하는 법
정덕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 프로듀서란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자.

프로듀서(producer)

[명사] <연영> 연극, 영화, 방송 따위에서 제작의 모든 관리를 책임지는 사람.

유의어: 연출자. 제작자 

                                                <네이버 사전에서>

 그것을 줄여서 우린 흔히 PD라고 부른다. 

이 책은 특별히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이나 종편에서 활약하는 예능 PD 6인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예능PD일까?   

 

사실 난 예능 프로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보더라도 그냥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그 중 한토막을 조금 보다가 말뿐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예능 프로의 PD들의 이야기란 말에 관심있어 덜컥 손에 들고 읽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그 프로에 관심이 없다고 그 프로를 만든 사람까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일에 대한 노하우를 알 수 있는 기횐데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한때는 연극 현장에 있었고, 연극이든 예능이든 사람을 상대하고, (작품이나)프로그램을 위한다는 건 똑같다. 그래서 혹시 앞으로 내 생애 이런 노하우가 필요할지 모를 일이고,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프로듀서란 무엇인지 저 6인을 통해 아는 것도 내 인생 사는데 도움이 안 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생애에 프로듀서가 아닌가?

 

오프로드의 삶에서 배운다

 

나는 길치다. 항상 자주 가는 길은 그렇지 않은데 처음 가는 길이나 드문드문 가는 길은 영낙없이 헤멘다. 처음 가는 길이야 길치니 그런다고 해도 지난 번에 가 본 곳을 한 번에 찾아내지 못하고 여전히 헤메는 나를 보면 얼마나 한심하고 짜증이 나던지. 그래서 낯선 길은겁부터 난다. 잃어버리면 어느 길로 갈까 막막해지니까. 어디서부터 다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나? 너무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한다. 확실히 아는 길 남이 가는 길을 나도 가려고 한다. 그래야 뭔가 헤메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 땐가 그 길에서 낙오한다.  그 길은 포화상태니까 언제가 누군가는 반드시 밀려나게 되있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밀려나는 대상이 내가 안 되기를 바랄 뿐이지.

 

그런데 문제는 밀려 난다고 다 낙오가 되는 것일까? 왜 낙오라고 하는 것일까? 나오의 기준이 뭘까? 남들이 가는 대오에서 벗어나면 낙오하는 것일까? 이 낙오의 기준은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낙오는 내가 받아들여을 때나 낙오가 되는 것이지 받아 들이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겠구나를 나는 나영석 PD편에서 읽는다. 그는 <1박2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그는 촬영지를 갈 때는 일부러 내비게이션을 끄고 간단다. 이는 출연자들이 빤히 아는 길로 가면 재미없을 테니 모르는 길로 가게 해 그들 가운데서 벌어지는 고생담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그렇게 모르는 길로 갔을 때가 전인미답의 신천지를 발견할 공산이 더 큰 것이다. 헤메게 될 불안은 발견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영석 PD는 바로 이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의 완전하지 않은 큰 그림만 그려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복불복을 즐기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PD로 성공하려면 인간관계, 리더십, 카리스마 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오히려 좋은 기획과 좋은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는 직업(40쪽)이라고.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용을 해 보자. 내가 내 인생의 PD가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좋은 인간관계, 리더십, 카리스마를 갖는 것 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가치있게 만들 것이냐가 더 관건이라는 말일 것이다. 

 

 

일 보다는 조직, 조직 보다는 사람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을 했던 건 바로 서수민 PD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개그 콘서트> PD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 놀라운 건 <개그 콘서트> 출연진만해도 100명이 넘는단다.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솔할까 궁금했던 것이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 나오는 얘기고, 더 읽어 나가면서 공감도 되고 감동도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쌈닭이라는 것이다. 공중파 첫 여자 PD가 돼서 처음엔 안 싸우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연극판에 작가로 있으면서 안 싸우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는 쌈닭이 됐다. 그것도 신성한 교회에서. 글쎄, 연극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교회 평화에 이바지 하며, 교회가 그저 평화롭고 거룩한 곳으로만 인식하고 다녔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찌보면 평화는 투쟁없이는 지켜질 수 없는 것이니, 적어도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싸우게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녀는 그렇게 싸우다 얼떨결에 <개그 콘서트>를 맞게 됐고, 조직관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게되었으며, 나아가 개그(우먼을  포함한 통칭)맨들이 보다 합리적인 조건 속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연예계 스타 시스템에 희생양이 됐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또  이것이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그들의 노예 계약이 이슈가 된 적도 있지 않았던가? 개그맨들이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연예 기획사들의 횡포의 고리를 끊어보고자 서수민 PD는 개그맨 김준호와 함께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연애 기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그녀는 예능계의 잔 다르크인지도 모르겠다. 돈을 많이 벌 생각하지 말고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던데, PD가 할 수 있는 일엔 사람의 권익 보호도 포함이 되는 거라는 걸 이 사람을 보며 깨달았다.

 

사실 내가 부럽다고 했던 건, 작년에 내가 쓴 뮤지컬을 대학로 무대에 올리면서(나는 이것으로 한동안 떠나 있던 이 바닥을 다시 기어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배우들이 아르바이트 보다 못한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좋아라 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좀 찡했다.

 

서수민 PD가 애초에 가졌던 꿈이 개그맨들이 개그만 해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73쪽)는 거였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는 물론 연출자도 아니고, 제작자도 아니지만 연극인들이 연극 하나만 해서 밥 먹고 살 수는 없는 걸까를 생각해 본다. 연극 현실은 연예 현실 보다 더 어렵다.     

 

좋은 작품을 쓰면 우리나라 공연계가 좋아질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없이 그 분야의 발전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되기 전에 내가 내 인생에 기획자가 되어야 하고 프로듀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사람이 궁극적으로 무엇이 되든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정해진대로 일하지 않는다

 

옛날의 예능과 오늘 날의 예능이 다른 것은 옛날의 예능은 드라마 제작과 비슷해서 정해진 포멧과 대사, 마무리 등이 대본에 나온대로 해야만 했다. 물론 약간의 애드리브가 약간의 자유로움을 보장해 주는 게 르다면 다를까?

 

하지만 요즘의 예능의 제작은 그렇지가 않다. 그냥 기본적인 틀 내지는 아주 소극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만 해 줄 뿐 출연진들이 자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방법을 과감하게 드라마에 접목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응답하라> 1994와 1997 두 시리즈를 성공시킨 신원호 PD다. 

 

그러니까 이건 정해진대로의 드마가 아니라 형식을 파괴한 드라마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친구로부터 요즘 예능 PD들이 드라마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신원호 PD일 줄을 몰랐다(솔직히 난 <응답하라>를 보지 못 했다). 예능 PD들이 드라마를 만든다니. 순간 예능 PD가 드라마를 점령하기 시작했다면 드라마 PD들은 뭘 해 먹고 살지? 그런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신원호 PD 편을 읽으니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놀랍기도 했다. 사실 내가 연극 대본을 쓰고 있었을 때 난 언젠가 꼭 한 번은 이런 연극을 해 보고 싶었다. 즉 상황만 주고 나머지 대사는 배우가 하는 뭐 그런 거 말이다. 내가 암기력이 제로에 가까워서 그런지 배우에게 내 대사를 암기하도록 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들에게 그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른 채 떠밀리듯 다음 작품을 생각하고, 나의 일은 늘 그렇게 해 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로 귀결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솔직히 그렇게 한 것엔 사람들이 작가로서의 본분을 유기시켰다 내지는 요령 피운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그런데 이걸 실제로 과감하게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니 살짝 배가 아프려고 한다. 나 역시 아웃사이더고, 중심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언제부턴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손가락질 받고, 이상한 눈으로 볼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아 가는 것이다. 나영석 부분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여기 신원호의 부분을 읽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신원호를 가리켜, 그는 누군가 그어놓은 구별 짓기의 선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이리 넘고 저리 넘는다고 했다. 그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경계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일 뿐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다(99쪽)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앞서 말한 낙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그것과 일맥상통 해 보인다.        

 

     

프로듀서가 되는 건 마니아가 되는 것

 

신형관 PD편을 읽으면 조금은 섬짓해진다.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했을 때 이런 이벤트가 있었다고 한다. 입장권을 가장 많이 모아 온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는. 도대체 얼마를 모으면 가장 많은 것이 되는 것일까? 몇백 장 또는 천 장 가까이거나 그 보다 좀 많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1982년의 신형관은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그때 그가 모은 것만 해도 6천 장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뭐든 몇 백은 성에 차지도 않는다. 몇 천은 돼야 마니아란 소릴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 음악 방송의 PD인 그는 LP와 CD가 7천 장 이상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70년 대 중반 TV에서 방영한 <마징가Z>에 홀딱 빠져 30여 년간이나 피규어를 모았는데 그의 마장가에 대한 해석이 남다르다. 그것은 마귀 '마(魔)', 귀신 '신(神)', 나 '아(我)'가 결합됐다며, 결국 내 안에 악마와 신이 함께 있다는 얘기다(155쪽). 즉 마니아는 바로 이런 사람이며, 그런 근성이 프로듀서가 되는 덕목 중 하나라는 말이다.

 

어찌보면 마니아는 전문가와는 또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는 어떤 한 분야에 올인해서 자격증도 따고 그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개척하는 뭐 다소 의도적인 의미가 있다면 마니아는 자연발생적으로 미쳐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몰입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태. 그러면서 그는 뭔가를 해내려면 자기 자신에게 특히 독해지라고 조언한다(161쪽) 그래서일까? 그는 이례적으로 프로듀서로서 상무의 자리까지 올랐다.

 

결국 평범과 비범을 가르는 건 이런 것이 아닐까? 독한 것과 독하지 않을 것. 미친 것과 미치지 않은 것. 몰입할 줄 아는 것과 몰입하지 않는 것 등 말이다.     

 

     

프로듀서란 무엇인가?

 

사실 이 책은 프로듀서란 일을 소개하기 위해서만 쓴 책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거시적이고, 철학적인 안목에서 일이란 무엇인가를 짚어보기 위해 쓴 책인 것 같다.

 

사실 여기에 소개 된 6명의 PD들을 보면 어느 누구도 평범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뭔가 아웃사이더적이면서, 성향도 독특하지만 그것을 일부러 자학하며 맞추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의 길,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특히 나는 프로듀서란 직업이 그 어렵다던 기자와 겹쳐 보여서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이 직업도 상당히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자신 안에 야성과 창조성만 있다면 도전할만한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6명의 PD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 그런 생각을 더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책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대중문화 평론가라면서 벤야민이나 맥루한 같은 철학자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문장이 가볍지 않고, 나름 생각해 볼만한 여지를 많이 준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우린 어쩌면 이미 프로듀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은 개척하지 않으면, 내가 내 인생을 제작하고, 책임져 나가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 개인적으로 좀 남다르게 다가 온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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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2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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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2 1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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