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부터 한 번 봐야지 해 놓고 못 읽었던 책을 선물을 받고서야 비로소 다 읽었다. 이렇게 괜찮은 책인 줄 알았으면 진작 읽을 걸. 속 보인다 싶다.

 

왜 박웅현, 박웅현(발음도 어려운 이름이다)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 그의 책 한 권쯤 읽어봐야 그의 진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광고장이가 무슨 인문학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모든 건 인문학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다는 걸 그는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강의는 웬만한 인문학자 뺨치는 수준이다. 어쩌면 구사하는 언어가 찰지고 쫀득쫀득한지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날 정도다. 특히 읽으면서 역시 직업은 못 속이는구나 싶었다. 언어의 구사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다. 또한 언어를 듣지만 동시에 보는 것도 같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 인생의 속도를 두고 10대는 10km, 20대는 20km, 30대는 30km로 간다는 말을 한다. 이러다가는 정말 인생을 후딱 살다 후딱 갈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 생의 속도를 늦춰 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박웅현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한다.

‘’‘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11시에 고양이가 내 무릎에 앉아 잠자고 있고,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이 들리고, 책 한 권 읽는 그런 순간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그것들은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기준을 잡아주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책을 씁니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으면서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31p) 

박웅현의 저런 간지는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겐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지금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또 어찌 보면 그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패기 넘치는 젊은 때 한때 할 수 있는 말이고, 행동이라면 이제 젊음을 다 보낸 어떤 사람에게까지 꼭 적용해야 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겐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음미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하루를 48시간처럼 쓰기도 한다는데 그런 재주는 내게 없는 것 같고, 그래도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붙들려면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순간순간을 생각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에 따라 책을 읽는 자세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박웅현의 저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이제까지는 남 보다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 읽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신은 의식 위에 떠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포착하게끔 회로에 설정된 레이더와 같아서, 책을 읽고 나면 그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레이더에 걸린다는 겁니다. 회로가 재설정되는 거죠.(128p)

박웅현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현재 어느 나잇대를 살던 그만큼의 책을 읽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보단 일부러 고생스럽게 암벽 타듯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인생의 속도를 늦추던 따라잡던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없다, 눈이 점점 나빠진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온갖 핑계로 책을 점점 멀리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봤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연말에 하는 것 없이 시간만 보냈다고 허탈해 하는 정도다. 나를 위한 삶은 솔직히 어렵고, 버겁고, 귀찮다. 되는대로 사는 게 제일 편하긴 한데 남는 것이 없다.

 

박웅현의은 사유가 깊다기 보단 스마트하고 상당히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문득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서 내가 읽은 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박웅현처럼 함께 나눌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럽고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알랑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을 읽을 때다. 지금까지 난 그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늘 느끼는 거지만 그는 철학자로서 소설을 얘기하지만 그 속에 철학을 얘기 해 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뭔가 부담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책은 이렇게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좀 더 좋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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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2-26 17:43   좋아요 2 | URL
맞아요. 나는 책을 안 읽어도 내 자식만큼은 하는 마음 있죠.
그래도 그나마 그건 또 나은 줄도 모르죠. 적지않은 수가
책을 왜 읽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잖아요.

기억의집 2016-12-26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에 대한 여유가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 저 이 책 읽었는데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스텔라님 말씀대로 깊이는 없었어요. 그래서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책이 꼭 깊이가 있을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읽으면 좀 더 이 책과 많은 공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stella.K 2016-12-26 18:29   좋아요 1 | URL
참고하기 좋은 책이라고 해야 하려나요?ㅋ
아무튼 전 나름 좋았다고 생각해요.

기분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래도 뭐 매일 뉴스 보면 매일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요즘엔 뉴스를 아예 안 보는 게 낫잖나 싶어요.
그래도 뭐 그건 그거고 우린 또 매일 매일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마무리 잘 하시구요, 내년에 기억님도 좋은 일 많이 있길 바래요.^^

북프리쿠키 2016-12-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햐~ 전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리뷰쓰는게 젤 어렵던데..
글이 솔직하면서 쉽고 아~주 잘 읽혀요..ㅎㅎ

˝언어를 듣지만 동시에 보는 것도 같다˝란 말 근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랭드보통의 책이 뭔가 정리된다는 말씀 또한 반가웠구요..^^;

내친 김에 <다시, 책은 도끼다>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은 도끼다>가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치면 1편
<다시, 책은 도끼다>2편 정도 되겠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stella.K 2016-12-27 14:40   좋아요 0 | URL
쿠키님이 또 선물해 주시면요.ㅋㅋㅋㅋㅋㅋ
농담입니다. 솔직히 가끔 저도 책 선물을 받긴 하는데
그렇게 받자마자 읽게되진 않거든요.
현재 읽고 있는 책도 있고 사이사이 끼어드는 책도 있고.
그런데 이 책은 도무지 궁금해서 끌고 있을 새가 없더군요.
아, 그러니까 읽기는 벌써 다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야 쓴 거죠.
글치 않아도 2편도 곧 읽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제 오늘 문득 <여덞 단어>도 생각나던데
그 책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암튼 쿠키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다고 립서비스만 합니다.ㅋㅋ

cyrus 2016-12-27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하루를 24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다는 꿈을 원한 적이 있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책 읽는 삶. 그렇게 해서 24시간 풀로 사는 거죠.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 살면 명이 짧아질거예요. ㅎㅎㅎ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tella.K 2016-12-28 13: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잠이 보약이라잖냐.
잠은 충분히 자야 그 다음도 기약할 수 있는 거야.ㅋㅋ
러시아 과학자 류비세프가 생각이 나.
그 사람은 자신이 하루에 무엇을 했는지 시간과 함께 꼼꼼하게
기록했다잖아.
난 그렇게 할 자신은 없고 앞으로는 안 해 보던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 가 본델 가고, 안 해 본 습관을 들여보고,
뭐 기타 등등. 그럼 좀 인생이 알차 지려나?

고맙다. 나도 축하한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쓰고,
좋은 일만 가득가득 넘치길 바라. 건강하고. 화이팅 하자!^^

 

최근 우리나라 영화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말이 새삼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언제부터 좋아졌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까지는 상대적 개념이었다면 내가 말하는 건 거의 절대적 개념이다. 무엇보다 스토리적인면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영화는 다소 스토리 전개가 부진했던 것도 사실 아닌가? 감독이 영상이나 이미지에만 신경을 썼지 스토리는 그것들이 커버해 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런데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그들은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오락적인 면에서 성공했느냐 안했냐는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얼마나 꼼짝 못하게 만들었느냐인데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선 일단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래 전 보았던 산드라 블록와 카아누 리브스가 나왔던 <스피드>란 영화가 생각이 났다. 난 그때 단지 달리기만 하는 버스란 밀폐된 공간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여줄 건지 의문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가 한 방 먹은 느낌을 받았더랬다. 이렇게도 긴박하고 위험천만한 영화라니.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기차라는 밀폐된 공간속에서 등장인물을 얼마나 위험에 빠트리며 관객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보게 만들어 놓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솔직히 이 영화의 구도는 간단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좀비가 되기 시작했으며 그 좀비가  또 사람을 좀비로 만들려고 하고, 사람들은 좀비가 되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며, 밀폐된 공간 여기서 저기까지를 뚫고 지나가는 게임을 한다. 그럴수밖에 없는 건 그 끝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하나 하나 좀비가 되어가고, 거의 다 왔을 때는 사람과 사람끼리 싸워야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살신성인의 마음 또는 사랑 때문에 좀비가 되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마동석과 공유)을 그렸다. 그만한 구도라면 꽤 괜찮은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  민폐 캐릭터 꼭 있다. 이 영화에선 용석 역을 맡은 김의성이다. 좀비에 의해 좀비가 되어가는 것도 모자라 그럴수록 인간끼리 똘똘 뭉쳐야할 판에 싸움을 부추기니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화가 나게도 만든다. 지금까지의 그의 필모를 봤을 때 김의성이 그 역할을 믿는 건 거의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 사람은 어쩌면 그리도 미운 7살의 어른 버전을 그리도 잘도 소화해내는지. 

 

           

원래 배우라는 게 참 피곤한 직업이고 그러자고 배우가 되기도 하지만 여기선 흔치 않은 좀비역을 감당해야 하는 수 많은 조연들 역시 꽤 피곤했을 것 같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하면서 영화 내내 끊임없이 이상한 포즈로 꿈틀거리고 물어 뜯고 별 미친 포즈를 다 취해야 했으니. 

 

좀비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의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그 집단 무의식에 빠진 인간을 깨우는데 좋은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영화를 어디에 적용하면 좋을까? 파벌을 만들고 그 안에서도 분열을 일삼는 오늘 날의 정치 세력들은 아닐까?

 

마지막 엔딩은 시나리오는 공학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긴 한데 보기에 따라선 너무 의도적이란 게 느껴져 효과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어디선가 본듯하다. 공유가 좀 더 이기적인 인물로 나와도 좋았을 텐데 감독은 이 잘 생긴 배우에게 나쁜 캐릭터를 맡기기가 차마 어려웠나 보다. 아니면 원래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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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2-26 13:27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근데 어떤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선
좋은 영화긴한데 조금 더 짜임새있고 스펙타클하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나 그런 아쉬움도 남아요.
그래서 차마 별 네 개는 못 주겠더군요.

2016-12-2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6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12-2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6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저는 달인 못 되었어요. ㅋ

stella.K 2016-12-26 15:5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같이 됐으면 좋았을 텐데...ㅠ

그래도 뭐 그렇게 기쁘진 않아요.
올해도 컵과 달력, 다이어리 준다는데
달력을 제외하곤 나머진 별로 거든요.
제가 한꺼번에 책을 뭉텅뭉텅 사서 할인혜택을 많이 받을 것도 아니고.ㅋ
 
안희정의 함께, 혁명
안희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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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또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모양이다. 이번엔, 난데없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조기 대선이 불가피한 가운데 정치권 역시 대선 준비가 앞당겨질 모양이다. 정치의 계절을 실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언제부턴가 대선 후보들 저마다 책을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시기가 우연히 그렇게 맞아 떨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책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난 안희정 씨에 대해선 듣기는 많이 들어도 그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안다면 한때 노무현의 사람이었다는 정도? 하지만 아직도 정가에서는 그 리더십이 꽤 인정받는가 보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 1989년 김덕룡 의원실로 출근을 하면서 제도권 정치와 처음 마주했고 이듬해 3당 합당을 하는 것을 보면서 회의를 느껴 정계를 떠났다고 했다. 그런 그가 노무현을 만나면서 다시 정계로 복귀를 했고 지금까지 이르렀다. 떠났다 다시 돌아왔으니 그 마음이나 각오가 어떨지 가히 짐작도 간다.

 

태곳적부터 정치인은 권력을 등에 업은 입신양명의 표상으로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은 싸움의 아이콘이고, 여론 몰이의 달인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식은 늘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어느 정도 명예와 돈이 있으면 여의도 쪽을 바라본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랄까. 저자 안희정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빗대어 두 가지 유형의 정치인이 있다고 했다. 정치를 위해서살아가는 정치인과 정치에 의해서살아가는 정치인. 그중 정치에 의해서살아가는 정치인은 많이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뭔가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정계를 떠났다 다시 돌아왔으니 그런 식별이 남다를지 몰라도 우리네 일반인들은 누가 정치에 의한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그런 사람 있으면 증권가 정보지에라도 살짝 흘려주시라). 그게 아니더라도 언론이 정치인들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으니 누가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인지, 누가 정치꾼인지 식별이 어렵다. 게다가 늘 싸우기만 하니 혐오스럽고. 오늘 날처럼 정치인들이 저평가된 시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안희정이란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나 같이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된 것엔 나의 잘못도 없진 않으나 나는 정치와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자시 쇄신의 노력이 없고, 언론은 정치적 이슈만을 쫓다보니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나는 정치인들을 실제로 만나 본적이 없는데 누구라도 만나면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긴 하다.정치는 그렇게 싸워야 하는 것인지. 싸우지 않고 정치할 수는 없는 것인지. 상생의 정치 그것의 실체는 고사하고 그림자만이라도 보여줄 수 없는 건지 묻고 싶다. 그것에 대해 저자도 모르지는 않는가 보다. 정치인들은 왜 싸우는가에 대해 그는 말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치는 자기 지지자를 결집시켜서 51퍼센트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에 싸운다. 그러니까 51퍼센트의 확률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49퍼센트의 반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싸움. 이게 정치라는 것이다. 이 싸움을 위해 반대와 증오가 넘실거리는 언어를 구사하고 과거 식민지, 분단의 기억들을 헤집어 낸다(101~102p). 내가 알기론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원칙이 아니라 소수를 무시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49%의 반대는 결코 적지 않은 수치임에도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51퍼센트를 먼저 장악했다고 그게 과연 잘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 그들은 이 51퍼센트를 위해 장외투쟁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또한 서로 싸우느라 국회 회기 동안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건수가 부지기수다. 대화와 타협이라고 해 놓고 이것을 역행했다. 이제는 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번에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박근혜 대통령 규탄 집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아름답고 단호한 집회라고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결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딜 가도 반대파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파와도 충돌이 없다고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100퍼센트 찬성한다면 그건 독재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린 이제 서로 틀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니 욕먹더라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게 사공이 많은 배와 같다. 그 사공들이 합의해서 규칙을 정하고, 한번 정한 그 규칙에 따라 한 방향으로 노를 저을 때, 그 배는 사공이 하나인 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안정적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다(102p).

 국민들은 이미 그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치인들이 그것을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이번 박근혜 하야를 누구보다도 반겨 맞이할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은 국민들과 한마음이라며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훗날 그들은 또 어느 때 자기 색깔을 드러내며 아전인수 격으로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제 이런 모사꾼은 좀 집에서 푹 쉬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 우린 이미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이 봐왔으니 말이다. 

 

정치에 의해 살아가는 정치인은 과연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 안희정은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보면 우리의 지식이라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 신영복 선생은 반성적 사고를 통해 현실의 토대 위에 다시 세울 줄 아는 힘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 정치인에게 지식이 발로 간다는 것은 땀 흘려 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해석해낼 수 있는 힘, 또는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낼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여기서 미래상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내가 정치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 일이다(96~97p).

이게 안희정이 말하는 정치에 의한 정치인은 아닐까?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 가운데 벌써 몇 주째 광장으로 모여든 시민들을 보면서 속으로라도 미소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 아닌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벌써 몇 주째 황금 같은 주말을 집회에 바치고 있으니. 그들은 평일 내내 노동을 하고 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다. 국민을 피곤하게 만드는 정치가 제대로 된 정치인가 묻고 싶다.

 

저자는 노무현의 사람답게 그를 회상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비록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서민을 이해하려고 했던 대통령으로 이만한 대통령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롤모델이 될 만하고 안희정를 가리켜 리틀 노무현이라고 한단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대통령이 되려고 노무현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냥 안희정은 안희정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해나갔으면 좋겠다. 말미에 보면 그가 했던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치적을 위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으나 새삼 드는 생각은 정치란 바로 이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권력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나라 살림 잘 하는 것. 이게 정치다. 뭐 하나를 추진하려면 거치는 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제 정치는 51%의 장악이 아니라 49%를 위한 설득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에 의한 사람의 자세는 아닐까? 그런 점에서 안희정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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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20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텔라님 정치의 정짜도 모르신담서
이 책은 어찌 만나셨는지..~
여자분치곤 (여성비하아님ㅎㅎ) 꽤 다양한 책을 읽으시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만.
요즘 고전문학 읽기도 시간이 빠듯한 저 기죽습니다ㅎㅎㅎ

stella.K 2016-12-20 14:21   좋아요 1 | URL
아유, 대신 저는 고전을 많이 못 읽고 있잖아요.ㅠ
좀 잡식성이긴 하죠.
제가 정치의 정자도 몰라 읽은 책인데
여전히 모르겠더군요.하하.

2016-12-20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2-20 14:25   좋아요 1 | URL
정말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나라살림 잘하는 거더군요.
광역자치단체의 빚이 3000억이라니 정말 억소리 나네요.
그러니 얼마나 방만한 살림을 해왔는지 알 것도 같고.
내 빚 아니라고 그래도 되는 건지 원...
그걸 안희정이 900억으로 줄여다면 상당한 능력자네요.
썼지만 정말 누가 누가 일 잘하나 명단공개 좀 했으면 좋겠어요.
언론에선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만 다루고 있으니...ㅠ
 

한달 전, 둘째 조카 지0이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다녀갔다. 뭐 딴 일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고 언니네가 강릉에 살고 있고, 서울 서 친구들이랑 자취를 하고 있으니 일 년에 한두 차례 언니를 시켜 철 지난 옷들과 당장 입어야 할 옷들을 교체해 가는 모양이었다. 그에 대한 맞교환 장소를 이번엔 녀석의 외가인 우리 집으로 정한 것그럴수밖에 없었던 건, 언니는 얼마 전 집에서 쓰던 믹서기가 고장났고 마침 우리 집엔 안 쓰는 믹서기가 있어서 그것도 얻어 갈겸 하루 날 잡아 온 것이다. 그외 다른 볼 일도 있고.  

 

형부와 우리집이 절연되지만 않았어도 녀석과 내가 이렇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언니와 같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집은 형부를 무던히 품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내 집 식구도 때론 품어지지 않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의 집 사람을 품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형부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형부와 절연이 되니 언니도 멀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조카 녀석들만큼은 그렇게 되길 원치 않았다. 솔직히 미운 거야 언니 내외지 아이들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애들이 부모 따라가지 누굴 따라가겠는가. 하지만 녀석들이 외가를 나몰라라 하니 섭섭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차치하고라도 외할머니와 두 외삼촌들이 녀석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이러고 나오나 옛말이 하나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싶었다. 하늘로 둔 머리 검은 짐승 거두지 말라는.

그래도 그렇게 되고 한동안 지0이한테만큼은 몇 번 문자를 보내긴 했었다. 성격대로라면 할머니와 외삼촌들이 너희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본데없이 구냐고 야단을 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고, 나름 점잖게 외할머니에게 전화 좀 하라고만 했다. 물론 녀석들이 그렇게 나오겠다면 외가고 뭐고 다 끊어야 하는 것 같기는한데 엄마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는 오빠가 생각지도 않게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고, 그런 와중에 맏딸 내외와 절연을 해야했으니 노인네가 참 복도 지지리도 없다 싶었다. 그러니 이럴 때 조카 녀석들이라도 가끔씩 전화라도 하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질 텐데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문자를 보냈는데도 녀석은 답신은커녕 아예 내 문자를 씹는 것이었다. 나도 참 오지랖이다 싶었다. 물론 오기로 녀석에게 문자를 보낸 것도 사실이다. 과연 녀석이 얼마만에 연락을 할 건지 두고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건 또 무슨 스토킹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대신 어떻게 애들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았을까 언니와 형부한테 더 강한 혐오와 증오심을 불태웠다. 


그러던 중 작년엔 느닷없이 엄마가 대장암에 걸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래도 요즘엔 의술이 좋아서 좀 늦게 발견해서 그렇지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수술 직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동생을 시켜서 언니한테만큼은 이 사실을 알리라고 했다. 물론 처음엔 연락하지 말라고 단속을 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딸에게 알려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사위에게까지 알려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장모도 부몬데 사위가 알면 뭐가 어때서 그러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위를 홀대해서 장모가 벌받는 거라고 생각할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런 식으로 엄마는 원망인지 자책인지도 모를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엄마가 막상 수술을 받고 나오자 생각이 바뀐 것이다. 당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위가 미운 거지 딸이 무슨 죄인가, 사위 때문에 딸조차 못 봐서야 쓰겠는가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땐 또 뭐 때문인지 동생도 크게 반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찬성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엄마가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고비를 넘겼는데 이제와 새삼 무슨 연락인가 싶었다. 하긴 저렇게 고비를 넘겼어도 노인네 밤새 안녕이라고 엄마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반대하기도 뭐했다. 나야 언니와 한 배에서 나왔지만 엄마야 언니를 직접 낳지 않았는가. 
 

결국 엄마는 수술 직후 언니와 지0이를 병실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그때 나는 집을 지키고 있느라 감격적인 상봉(?)에 동참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그렇게 지0이와 엄마를 만나게 해 주려고 문자질을 해도 안 되더니 때 되면 이렇게도 만나는 걸  그동안 나는 무슨 뻘짓을 했던 걸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 후 오래지 않아 나도 언니를 곧 만나긴 했지만,  지0이를 만나기까지는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녀석은 뭐 하느라고 바쁜 건지 그때 병원을 다녀간 이후 외가엔 도무지 코빼기도 비치 않았다. 솔직히 언니와 난 자매지간이어도 어렸을 때부터 그리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만났다고 반가울 리는 없었고, 녀석에 대해선 막상 만나면 반가울 수도 있을텐데 그 때 내가 했던 뻘짓 때문인지 녀석은 선뜻 외가엘 못 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언니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동안 녀석은 나름 바쁘게 살았던 모양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던 관계로 그동안 미처 다 이수하지 못한 과목의 학점을 따느라 비번 때면 그 먼 강릉을 오르내려야 했고, 그런 와중에 갑상선 항진증에도 걸려 그야말로 피똥을 싸고 살았나 보다. 그러니 외가에 언제 오겠느냐는 거다.    

 

그런데 지난봄, 엄마의 생일을 맞아 녀석이 축하전화를 했다. 물론 내가 받은 건 아니지만 곁에서 들으니, 우리들이 돈을 모아 할머니께 부쳐 드렸으니 찾아 쓰시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말에 엄마는 입이 귀에 걸린 것이 안 봐도 보였다. 그런데 녀석의 그 말이 왠지 나에겐 들어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도 이렇게 할머니 생각하고 있다구요.'라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전화를 끊을 때쯤 뜬금없이 이모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엄마는 위로 반, 이해시키는 것 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순간 마음이 묘했다. 그동안 그 뻘짓으로 인해 내가 녀석에게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까 싶었던 것이다. 단순히 짐작으로 아는 것과 이렇게 정확히 말로 들으니 가슴이 서늘해지는 게 어른 노릇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가끔씩 녀석을 생각나면 불쾌해지곤 했다. 자식도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이 있듯이, 이모 조카 지간도 다 어렸을 때나 그런 거지 크면 별것도 아니다 싶었다. 어떻게 제 따위가 나를 두고 감히 외할머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괘씸하면 지는 거다. 지금쯤 녀석은 외할머니 생신 날 이모인 나를 두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날 녀석은 불쑥 우리 집엘 쳐들어 온 것이다.

 

4년만에 만났지만 녀석은 여전히 예뻤다. 어느덧 20대 말에 접어들었는데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큼하고 싱그러웠다. 그래도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 나이 때 내가 더 이상 젊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부디 녀석의 젊음이 오래가기를 빌어주고 싶었다. 녀석은 조카 셋 중 제 엄마도 아버지도 닮지 않은 유일한 아이이기도 했다. 닮았다면 제 친할머니를 닮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사돈어른을 두 번 정도 뵌적이 있는데, 여성스럽고 고운 인상이 젊었을 때 미인이란 소리 꽤 듣고 살았을 것 같았다. 물론 난 형부도 언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둘 중 아무도 닮지 않은 녀석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나머지 두 녀석도 싫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만큼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맏이는 남자아이라 멀쑥했고, 막내는 늦둥이로 태어나 제 부모는 어떨지 몰라도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조카라 그런지 특별히 정이 갔던 것은 아니다. 성격도 제 부모를 닮아 어딘지 뚝뚝하기도 하고. 그런데 비해 녀석은 상냥하고 싹싹했다. 

언니 모녀는 바통터치라도 하듯 하나는 들어오고 하나는 나가는 형상으로, 언니는 일찌감치 안녕을 고했고 
녀석도 바쁜 건 마찬가지긴 했지만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했다. 그날은 또 엄마가 때이른 김장을 해 김치 속 쌈을 따로 떼어 놓고 수육 대신 돼지고기를 구워 같이 곁들여 먹었다. 녀석은 젓갈이 적당히 들어간 외할머니나 제 엄마가 한 김치를 좋아했다. 하지만 같이 지내는 친구들은 젓갈 들어간 김치를 안 좋아해 오랜만에 할머니의 김치 속 쌈을 빠져들듯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지난여름 책을 낸 사실을 녀석에게 불쑥 꺼내고 말았다. 이건 아직 언니한테도 알리지 못한 거였다. 그걸 녀석한테만큼은 털어놓는 것을 보면 내가 아직도 녀석을 좋아하긴 좋아하는가 보다.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 마음은 또 어쩌고.  사실 지난번 추석 때 왔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언니한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이건 엄마도 아직 몰라." 
그러자 녀석은 시쳇말로 대박사건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했다.
 "책 제목이 뭐예요?"
 "네 멋대로 읽어라."
 "오, 제목 좋은데요? 절대로 안 잊어버리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그런 말 많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녀석을 깔깔대며,
 "에이, 그 말 제가 제일 먼저 했었어야 하는 건데... 이모 책 서점에서도 팔겠죠?"
녀석이 그렇게 묻는 것을 보면 저자 증정본에 저자는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자신의 책을 살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긴 나도 몰랐다. 책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 되지도 않은 원고료를 내 책을 사는데 다 탕진해 버려야 하는 건 아닌가 했었으니까.  

 "꼭 한 번 사 볼게요."
녀석은 예의가 바른 건지 아니면 내가 어려운 건지 웬만하면 이모인 나에게 책 동냥을 할 만도 한데 그러질 않았다. 그게 또 왠지 섭섭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과연 말대로 녀석은 자기 돈을 내고 내 책을 사 볼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 축하는 해도 아직까지 사 보겠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친분있는 블로거들이 사서 보겠다고 해서 좀 놀랐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작가에게 공짜로 책 선물 받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녀석이 그러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꼭 읽겠다고 하면 한 권 줄 수도 있어."
 그러자 녀석은 눈을 더욱 빛내며 그제야 한 권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표정을 지었다.
 "늦더라도 꼭 읽을게요. 제가 원래 책을 빨리 읽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나는 속으로 그건 나를 닮았구나 했다. 나는 결국 온전히 내 책으로만 담겨 있는 책 박스에서 한 권을 꺼내 첫 장에, '사랑하는 조카 지0에게. 이모가.' 그리고 그날의 날짜를 적어 한 권 줬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이란 닭살 돋는 멘트를 쉽게 날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녀석한테만큼은 하고 싶었고, 속으로 이로써 이모와 조카 지간의 지난날의 어색함은 퉁치자 했다. 나는 책을 녀석의 손에 넘겨 주면서,
 "SNS에 꼭 올려라. 친구들한테도 이모가 책을 냈다고 선전도 하고."
녀석은 방금 내 책의 홍보 요원이 된 것도 모르고 그러겠다며 좋아라 하며 친구를 만나야한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언니와 그다지 친하진 않지만 언니가 한 가지 잘한 일이 있다면 조카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정말 그것 하나만큼은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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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7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7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6-12-17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솔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조카처럼 저도 작가님과 이렇게 sns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stella.K 2016-12-17 18:03   좋아요 1 | URL
아유, 쑥스럽습니다.
전 쿠키님처럼 겸손하시고 친절하신 분을
이웃으로 둬서 그저 감읍할 다름입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6-12-17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근 차근 정경을 그리며 읽게 돼요. 그 어떤 미화된 표현보다 스텔라님의 조카에 대한 마음이 진솔하게 다가왔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제 조카 이름도 지~이라서 더 와닿아요.^^

stella.K 2016-12-18 17:4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쓰고 보니 제가 그 조카를 참 좋아하고 있었더라구요.
어른도 똑같은 마음이란 걸 그 조카가 훗날에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어른도 사랑에 반응이 없으면 아무리 나이 어린 조카에게라도
삐질 수 있다는 걸.ㅋㅋㅋㅋ
짧지 않은 글 읽어 줘서 고마워요.
브랑카님 조카님도 지자가 들어간다니 저도 반갑네요.^^
 

 

 별점: ★★★

 

미장센이 과히 나쁘지는 않은데 스토리 전개는 어딘가 모르게 흔한 동화적이다. 굳이 제목을 정하라면 '사랑으로도 못 막은 죽음' 아니면 '사랑은 더 이상 마법이 아니다.'이랄까? 사랑으로 안락사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 죽을 때까지 잘 살았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흔해빠진 신파가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도 끝까지 죽음의 의지를 꺾지 않기 때문에 소설이 될 수 있었고,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낭만적인 사랑이 어느 정도는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는 여전히 사랑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작품이 각광을 받았다는 건 사랑 너머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일 게다. 그중 하나가 인간답게 죽을 권리. 안락사의 문제는 이제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이 문제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다가(사실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기적절하게 나와줬을 뿐) 나왔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나 같아도 내가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죽고 싶다. 살 가망이 없다면 말이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새롭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죽을까봐 겁내하거나 생명을 경시하거나 하는 극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뭐 이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마지막 에필로그는 안 그래도 동화적인데 굳이 없어도 되는 건 아니었나 싶다. 소똥에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그 자리에 금 하나가 떡하니 놓여있더라 이런 거하고 비슷한 격 아닌가?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 준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별점: ★★★☆

 

한마디로 말하면,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쓸데없이 멋있다. 느와르가 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는 내용이나 줄거리와 상관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그냥 잘 만든다.' 그런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제목도 잘 정했다. 첩자를 밀정이라고 하지 않나? 첩자라고 그대로 썼다면 간지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내가 좋아하는 공유가 나온다. 난 아무래도 송중기 보단 남성미 물씬한 공유가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영화는 공유 보단 송강호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차신은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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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1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텔라님의 별점에 개인적으로 공감합니다.
아마 미비포유는 읽어보진 않았지만
소설이 훨씬 나았으리라 예상이 됩니다.
밀정은 송강호의 갑작스런 심경변화가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조정래의 <아리랑>에서의 밀정은 엄청 공포스런 존재에 해피엔딩은 없었으니까요.

쓸데없이 멋진 송강호를 만들려다
별점이 많이 깎였네요^^;

stella.K 2016-12-19 15:10   좋아요 1 | URL
저는 책도 그다지 안 끌리더라구요.
허리우드 영화처럼 쓰지 않았을까?
문체의 깊이 없이 영화처럼 읽히는 그렇고 그런 소설.
그런 거라면 영화로 보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참고로 남녀 주인공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송강호가 그랬나요?
저는 오히려 감독이 밀정이 누군지 관객들도 잘 못 알아 보도록
교란효과를 노렸던 건 아닌가?
아님 송강호가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놈은 아니었구나 그냥 그 정도로만
봤는데. 느와르잖아요. 깊이 생각하고 볼 영화는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그냥 김지운 감독의 똥폼이 좋았던 거죠.ㅎ

그런데 쿠키님 영화 은근 많이 보시나 봅니다.
만날 책 읽을 시간 없다고 하셔서 그런가 했는데
영화도 보시고. 하실 건 다하시는데요?ㅎㅎ

북프리쿠키 2016-12-19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텔라님~예전에 20대 초반에 똥폼잡는다고 어려운 영화들 쌓아놓고 보던 시기가 있었어요.
꾸역꾸역 보는거 있잖아요. 지겨워서 몸이 배배 꼬이는데도..ㅎㅎ
총각땐 영화 참 많이도 봤습니다.
영화나 책이나 몸을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취미라..몸을 움직이는 취미를 갖고 싶긴 한데..
타고난 게으름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직장핑계, 애핑계 이래저래 대지만 좋아하는 것은 우짜든동 시간내서 하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16-12-19 15: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 줄 알았습니다.
성격이 그런 거죠. 활동적이지 않고 정적인. 저도 그래요.ㅋ
뭐든지 한번 그러고 지나가는가 봅니다.
그래도 총각 때 영화 안 보셨으면 뭐 다른 거 하셨을 것 아닙니까?
나이 50쯤 넘어가면 또 다시 영화 보게 될 겁니다.
지금은 직장과 가정이 중요하니까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