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부터 한 번 봐야지 해 놓고 못 읽었던 책을 선물을 받고서야 비로소 다 읽었다. 이렇게 괜찮은 책인 줄 알았으면 진작 읽을 걸. 속 보인다 싶다.

 

왜 박웅현, 박웅현(발음도 어려운 이름이다)하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 그의 책 한 권쯤 읽어봐야 그의 진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광고장이가 무슨 인문학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모든 건 인문학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다는 걸 그는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강의는 웬만한 인문학자 뺨치는 수준이다. 어쩌면 구사하는 언어가 찰지고 쫀득쫀득한지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날 정도다. 특히 읽으면서 역시 직업은 못 속이는구나 싶었다. 언어의 구사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다. 또한 언어를 듣지만 동시에 보는 것도 같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 인생의 속도를 두고 10대는 10km, 20대는 20km, 30대는 30km로 간다는 말을 한다. 이러다가는 정말 인생을 후딱 살다 후딱 갈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 생의 속도를 늦춰 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박웅현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한다.

‘’‘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11시에 고양이가 내 무릎에 앉아 잠자고 있고, 제이슨 므라즈의 음악이 들리고, 책 한 권 읽는 그런 순간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그것들은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기준을 잡아주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책을 씁니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으면서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31p) 

박웅현의 저런 간지는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겐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지금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또 어찌 보면 그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패기 넘치는 젊은 때 한때 할 수 있는 말이고, 행동이라면 이제 젊음을 다 보낸 어떤 사람에게까지 꼭 적용해야 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겐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음미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하루를 48시간처럼 쓰기도 한다는데 그런 재주는 내게 없는 것 같고, 그래도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붙들려면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순간순간을 생각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에 따라 책을 읽는 자세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박웅현의 저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이제까지는 남 보다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 읽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신은 의식 위에 떠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포착하게끔 회로에 설정된 레이더와 같아서, 책을 읽고 나면 그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레이더에 걸린다는 겁니다. 회로가 재설정되는 거죠.(128p)

박웅현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현재 어느 나잇대를 살던 그만큼의 책을 읽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보단 일부러 고생스럽게 암벽 타듯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인생의 속도를 늦추던 따라잡던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없다, 눈이 점점 나빠진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온갖 핑계로 책을 점점 멀리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봤자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연말에 하는 것 없이 시간만 보냈다고 허탈해 하는 정도다. 나를 위한 삶은 솔직히 어렵고, 버겁고, 귀찮다. 되는대로 사는 게 제일 편하긴 한데 남는 것이 없다.

 

박웅현의은 사유가 깊다기 보단 스마트하고 상당히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문득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서 내가 읽은 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박웅현처럼 함께 나눌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럽고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알랑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을 읽을 때다. 지금까지 난 그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늘 느끼는 거지만 그는 철학자로서 소설을 얘기하지만 그 속에 철학을 얘기 해 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뭔가 부담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책은 이렇게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좀 더 좋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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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6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2-26 17:43   좋아요 2 | URL
맞아요. 나는 책을 안 읽어도 내 자식만큼은 하는 마음 있죠.
그래도 그나마 그건 또 나은 줄도 모르죠. 적지않은 수가
책을 왜 읽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잖아요.

기억의집 2016-12-26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에 대한 여유가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 저 이 책 읽었는데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스텔라님 말씀대로 깊이는 없었어요. 그래서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책이 꼭 깊이가 있을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읽으면 좀 더 이 책과 많은 공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stella.K 2016-12-26 18:29   좋아요 1 | URL
참고하기 좋은 책이라고 해야 하려나요?ㅋ
아무튼 전 나름 좋았다고 생각해요.

기분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래도 뭐 매일 뉴스 보면 매일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요즘엔 뉴스를 아예 안 보는 게 낫잖나 싶어요.
그래도 뭐 그건 그거고 우린 또 매일 매일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마무리 잘 하시구요, 내년에 기억님도 좋은 일 많이 있길 바래요.^^

북프리쿠키 2016-12-2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햐~ 전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리뷰쓰는게 젤 어렵던데..
글이 솔직하면서 쉽고 아~주 잘 읽혀요..ㅎㅎ

˝언어를 듣지만 동시에 보는 것도 같다˝란 말 근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랭드보통의 책이 뭔가 정리된다는 말씀 또한 반가웠구요..^^;

내친 김에 <다시, 책은 도끼다>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은 도끼다>가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치면 1편
<다시, 책은 도끼다>2편 정도 되겠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stella.K 2016-12-27 14:40   좋아요 0 | URL
쿠키님이 또 선물해 주시면요.ㅋㅋㅋㅋㅋㅋ
농담입니다. 솔직히 가끔 저도 책 선물을 받긴 하는데
그렇게 받자마자 읽게되진 않거든요.
현재 읽고 있는 책도 있고 사이사이 끼어드는 책도 있고.
그런데 이 책은 도무지 궁금해서 끌고 있을 새가 없더군요.
아, 그러니까 읽기는 벌써 다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야 쓴 거죠.
글치 않아도 2편도 곧 읽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제 오늘 문득 <여덞 단어>도 생각나던데
그 책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암튼 쿠키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다고 립서비스만 합니다.ㅋㅋ

cyrus 2016-12-27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하루를 24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다는 꿈을 원한 적이 있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책 읽는 삶. 그렇게 해서 24시간 풀로 사는 거죠.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 살면 명이 짧아질거예요. ㅎㅎㅎ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tella.K 2016-12-28 13: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잠이 보약이라잖냐.
잠은 충분히 자야 그 다음도 기약할 수 있는 거야.ㅋㅋ
러시아 과학자 류비세프가 생각이 나.
그 사람은 자신이 하루에 무엇을 했는지 시간과 함께 꼼꼼하게
기록했다잖아.
난 그렇게 할 자신은 없고 앞으로는 안 해 보던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 가 본델 가고, 안 해 본 습관을 들여보고,
뭐 기타 등등. 그럼 좀 인생이 알차 지려나?

고맙다. 나도 축하한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쓰고,
좋은 일만 가득가득 넘치길 바라. 건강하고. 화이팅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