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통령()에게 실망했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은 세워 뭐하나 하는 대통령 회의론에 빠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 없이는 나라를 세울 수 없는 것인가? 과연 대통령 없으면 국정은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도대체 대통령이 뭐 길래 이렇게 분노하고 배신에 치를 떨어야 하는가? 믿고 대통령을 뽑아줬더니 이젠 대통령이 나라의 위상을 흔들고, 팔아먹으려고 까지 하는구나.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게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없는 지난 몇 달 간을 살아봤더니 그도 말은 안 되겠더라. 우선 대통령이 없으니 여타의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쥐고 흔드는 느낌이 감지가 되었다. 나라가 버린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한때는 나라 없는 설움 속에 살아 본 경험이 있고 그것을 자손만대에 아로새기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한 나라에는 반드시 그 나라를 이끌 수장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해 환호할 것이고, 누구는 그것에 대해 우려와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제와 말이지만 나는 투표 때 문재인을 찍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문재인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아니어도 그 사람을 찍을 사람은 많고, 문재인이 될 거라는 예측은 그전부터도 있었다. 그리고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난 정치에 대해 잘 모르거나 회의하는 쪽이라 내가 문재인을 찍지 않은 것은 그를 견제하는 의미가 더 가깝다. 이것도 역대 대통령에게 당한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지금 저렇게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아도 퇴임 땐 어떤 성적표를 들고 청와대를 나올지 어찌 알겠는가? 못해도 지난 20년간의 대통령들의 성적표가 그것을 증명해 오지 않았던가? 물론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 또한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의 대통령이 용두사미였다면 문재인 대통령만이라도 시작은 미약하니 후일에는 창대해 줬으면 좋겠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어제 그가 했던 취임 선서대로만 하고 5년 후 청와대를 나와 주길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히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현재 어떤 종교를 갖고 있던 지간에(갖지 않을 수도 있겠지 알려진 바 없으니) 불교인들은 절에 가 지성을 드릴 것이고, 천주교인은 성당에서 기독교인은 교회에서 기도하겠지. 나 역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게 할 것이다.

 

종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야 하는 것처럼 정치와 종교 역시 분리되어야 한다. 물론 정치의 입장에선 경제와 종교는 좌청룡 우백호쯤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후보 본인은 교회를 다니지도 않으면서 교회 대표자 모임에 가 악수하고 포옹하고 하는 것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더라. 물론 그게 홍준표만 탓할 문제인가? 이 나라 보수가 교회를 지켜 줄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그를 끌어들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독교야 말로 오른쪽엔 십자가를 왼쪽엔 보수를 등에 업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우겠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달 교회의 한 정기적인 기도 모임에 참석했더니 어느 점잖은 권사님 한 분이 홍준표를 찍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을 보고 좀 깬 적이 있었다. 이유는 하나. 그 사람이 돼야 한국의 기독교가 산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믿음은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이번에 기독교인인 트럼프가 된 것도 보이지 않게 미국의 기독교인이 다 기도해서 된 것이란다. 그런 어법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한 사안을 놓고도 같은 신앙을 가졌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그래. 그것이 설혹 사실이라면 미국 기독교인은 같은 기독교인을 대통령으로 세운다는 (말도 안 되지만) 명분이라도 있지. 우리나라는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단순히 보수라는 이유만으로 그 보수가 교회를 지켜 줄 거란 막연한 믿음만으로 홍준표를 밀어줘야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도대체 그 권사님의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란 말인가?

 

그 권사님 평소 기도는 참 예쁘게 잘 하시더라. 기도를 예쁘게 하던 거룩하게 하던 우리나라 교인들의 믿음과 생각의 수준이 기도를 따라가질 못하는구나.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뭐가 두려운 걸까? 이 나라를 보수가 지배하지 않으면 교회가 탄압을 받거나 약화될까 봐? 그게 진정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 맞는가? 세계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교회사를 봐도 교회는 고난을 받을 때 더 강해졌고 담대해졌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정치인 자기 밥그릇 싸움하느라 교회는 안중에도 없다. 그런데 그런 얄팍한 정치 술수에 교회의 권력의 숟가락 하나 얹어 부흥과 성장을 모색하겠다고 한다면 교회는 얼마나 우스워지는 건지 그 권사님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믿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찮고 나약한 분이시란 말인가? 그냥 나이도 많으시니 순진하다고 봐야하는 건지.

 

신앙인은 기본적으로 기도에 빚진 자고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같은 신앙을 가졌든지 안 가졌든지 그를 위해 기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난 지난 번 이명박 때도 기도했고, 박근혜 때도 기도했다. 그가 나라를 잘 이끌어주길,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그러나 나라는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그렇게 됐으니 새롭게 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할까? 이명박 때도 그렇고 박근혜 때도 그렇고 기도를 안 했으면 안 했지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다. 편안하자고 기도하면 그건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그거야 말로 우상에 기도하는 것이고, 샤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고통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마음에 좀 더 가까운 기도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하셨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정치를 잘 못해 기도가 필요한 사람으로 일찌감치 귀착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라를 잘 이끌어줘서 걱정하는 마음으로가 아니라 힘을 실어주는 기도를 하고 살아 봤으면 좋겠다.

 

좋던 싫던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또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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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딴 얘긴데,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이 이번엔 하루 연기돼서 오늘 발표가 났다. 물론 난 이번에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이젠, 갈수록 눈이 안 좋아지니 적립금 욕심내 뭐하나 책 밖에 더 사겠나 포기 반,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반 한다. 안 그래도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민데 이걸 다 읽고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으려나 싶다.

 

뭐 거기까지는 마음을 비우는 게 가능해졌는데 그렇다고 내가 알라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리뷰와 페이퍼를 양분해 특정인 몇몇에게 적립금 몰아주기 관행 언제까지 할 건지? 물론 어쩌다 그런 행운이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런데 그 사람에게 매달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강박이 알라딘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관행 보는 사람 입장도 좀 고려해 주면 안 되는 걸까?

 

작년이었나? 이달의 당선작에 문제제기가 있고 언젠가 알라딘은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공감하고 체계개편을 하겠다고 했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말만 했다뿐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말은 그 후 말이 없다. 이대로 변죽만 울리고 마는 것일까? 알라딘이 되게 바쁘긴 바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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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5-11 17:35   좋아요 1 | URL
ㅎㅎ 에이, 님은 거의 매달 되시면서 뭘요.
매달 받다 안 받으면 섭섭하실 걸요?
자각증상 같은 있을 겁니다.ㅋ

이젠 공약 안 지키면 퇴출시켜야 해요.
자신이 한 말을 자신이 못 지킨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삶아 먹든 데쳐 먹든 관심없는 거 그것처럼 서러운 거 없습니다.ㅠ

2017-05-16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6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은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 된다
황상민 지음 / 푸른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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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적이 또 있을까?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는 확실히 충격적이다. 그러면서 정치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나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을 챙겨보곤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 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선거가 될 것이고, 그 어느 때 보다 투표 참여율이 높을 거라고. 왜 안 그러겠는가? 이전까지 사람들은 후보들을 보고 대충 마음 끌리는 대로 한 사람에게 투표를 하였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대충 알아서 잘 해 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줄만 알았던 대통령들이 대를 거듭할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래서야 쓰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위기감, 문제의식은 가져야하는 걸 알겠는데 대통령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그냥 싸잡아서 비난하고, 무슨 문제만 있으면 광화문에 나가 촛불시위나 하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다하는 걸까?

 

선거 때만 되면 각 후보들마다 앞 다퉈 자서전 내지는 자전에세이들을 출간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고 자신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선전한다. 물론 이 방법이 아니면 자신을 알릴 방법이 없어서 하는 줄은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치자. 그래서 나라꼴이 어찌됐단 말인가? 그런 애국지사가 어디 그 사람 한 사람이겠는가? 그러면 좀 나아져야 할 텐데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물론 아직도 그런 책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책 보다는 이 국가적 위기를 타고 우리는 나라에 대하여 또는 대통령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책들이 눈에 띄게 많이 나왔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들 끊다가 당선인이 확정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돼서 좋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원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그가 잘 해 줄 줄 믿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2, 3년차만 되면 여기저기서 못마땅한 비판의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가 정치 평론가라고. 정치를 비판할 줄 모르면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지간에 항상 대통령을 저격한다. 그런데 저자가 책에도 언급했지만, 그렇다면 어떤 대통령, 어떤 정부가 되길 바라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을 보더라도 대통령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처음엔 정말 나라를 구할 영웅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임기를 마치고 나온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한간엔 그런 말도 있었다. 국민들이 정치 평론가가 돼서 하도 욕을 들어먹는 바람에 기가 쪼그라져 나오는 거라고. 그 말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국민의 공통분모는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

 

저자가 그런 말을 한다. 정치는 결혼과 같은 거라고. 결혼할 때 상대에 대해 콩깍지가 씌는 것처럼 대통령도 그렇단다. 거의 맹목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한다. 결혼할 때 무작정 이유 없이 좋아서 결혼하지 말라고.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냐고 말하는 쪽은 주로 낭만주의자나 사랑의 순수함을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좀 합리적일 필요가 있긴 하다. 우리나라가 유교문화권이 되놔서 그런지 자기 욕망을 웬만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잘 모를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단다. 자기 욕망을 확실히 드러내면 나중에 그 욕망이 바뀌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무엇에 만족했는지 분명히 알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도 그러지 않을까? 그저 막연하게 이미지가 대통령을 잘 할 것 같아서 그런 걸로 투표하지 말고 원하는 바를 확실히 드러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뽑히는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전적이 있어서 그 어느 때 보다 대통령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우린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치와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이 높아졌다. 그러니 앞으로의 대통령은 얼마나 잘 할 것인지 일거수일투족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일까?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면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적어도 국정을 농단하지 않을 것. 소통할 것. 민의가 무엇인지를 무시로 살필 줄만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5년 후 퇴임 때 수고하였노라고 박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먹고사는 데 열심히 신경 쓸 수 있다면, 적어도 내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거기에만 초점을 두고 잘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건 정치인이 정치를 아주 잘한다는 뜻이란다. 그건 맞는 얘기다. 추운 날 열일을 제쳐두고,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지방에서 버스와 기차 타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게 좋은 나라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뭐 여야가 서로 싸울 거 싸우고, 시정할 거 시정하고 국민을 위해 대신 일해 주는데 무슨 정치 걱정을 하겠는가. 우리도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나라에 대한 공이 정치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 같아 좀 그런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문제다. 지도자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붕괴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가끔은 대통령이 이렇게 문제니 대통령은 꼭 있어야 하는 건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 없는 나라도 있단 말인가? 이번에도 후보들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 공략 쏟아내더만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건 과연 대통령되면 다 지킬 건가 의문이다. 그리고 설혹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한 말을 지켜 행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건 복 받은 나라일 것이다. 저자 말마따나 나라를 하나의 큰 기업으로 보자면 국민은 주주다. 어느 기업이든 주주가 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이 슈퍼 을이다. 이거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한다. 근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제왕이 들으면 억울하지 않을까? 제왕이라면 제왕이 되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학문과 덕망을 갖춘 제상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박근혜에게 그것을 가르친 스승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말인데, 대통령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 아니 입성한 후에도 이것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어느 대통령이건 자기 전공과 업적 가지고 권좌를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대통령이 돼서는 끝내 무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역사도 짧은데 긍지로 여기는 대통령은 몇이나 배출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뭔가? 추억삼아 얘기할 대통령은 있어도 정신적 사표가 될 만한 위대한 대통령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언제쯤이면 그런 대통령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용두사미의 대통령 보단 처음은 미약하나 후일엔 창대한 대통령이 더 보기 좋은 거 아닌가? 이번에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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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가 드라마 보느라 공부를 했겠어요. ㅎㅎㅎ

예전에 서울국제도서전 때 박근혜가 책을 산 적이 있었잖아요. 과연 박근혜는 그 책들을 읽었을까요? 알라딘이 ‘대통령이 읽는 책‘이라고 홍보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stella.K 2017-05-03 13:50   좋아요 0 | URL
헉, 그런 일이 있었니? 근데 왜 난 몰랐지?ㅋㅋ
알라딘도 참...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들 공부 잘 안하나 봐.
김대중 대통령은 늘 책을 가까이 했다는데 말야.
암튼 박근혜에게 제왕적 어쩌구 하는 거 언어 선택을
잘못 하는 거라고 생각해.
 

 

영화가 어찌보면 좀 덤덤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4대에 걸쳐 자신의 집을 돌봐주던 가장부 아주머니가 뇌졸중에 걸렸다.

4대에 걸쳤다면 가족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가족들은 이민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잘 나가는 영화제작자가 된 로저(유덕화)만이 고국에 남아 이 가정부 아주머니의 돌봄을 받고 있다. 더 이상 로저를 봐줄 수 없는 아타오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낮선 요양원 사람들과 적응을 해야한다. 또한 그때부터 로저는 아타오를 양어머니라 생각하고 그녀를 돌봐준다. 영화는 바로 로저가 아타오를 돌봐주는 길지 않은 기간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아타오가 어떻게 로저의 가족과 인연을 맺으며 4대에 걸쳐 가정부 일을 해 왔는지는 잘 나와있지는 않다. 하지만 짐작이 전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홍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뭐 그 나라도 나름 어려운 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과정에서 로저의 어머니와 인연을 맺고 그 집일을 돌봐주며 개인사를 쌓아 갔겠지.

 

그런데 이 덤덤한 영화에 자꾸 침잠해 들어가게 된 것은 아타오의 얼마 남지 않은 삶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곧 나의 두 번의 가족과의 사별과 오버랩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린 시절, 사람이 어느 땐가는 죽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람이 죽는다고? 어떻게..?  하지만 난 운이 좋았는지 그런 말을 듣고도 꽤 오랫동안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 목도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애써 그런 건 남의 이야기고 적어도 먼 장래의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집에선 가장 연장이시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중년이었다. 그전에 나는 아버지는 장수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유전자가 나의 친할머니 쪽이었다면 장수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버진 그러지 못하셨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간은 총 2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었다.

 

4년 전 오빠가 돌아갔다. 그동안 나도 나이를 먹고 직간접으로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으니 익숙할(?)법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오빠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다 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나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충격적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지금도 나는 가끔씩 오빠의 죽음과 관련된 꿈을 꾼다.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질기게 나의 의식을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2년 전엔 엄마를 암으로 잃을 뻔했다. 엄마야 이미 노령이고, 적어도 아버지나 오빠 보다는 오래 살았으니 일견 쉽게 보내드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도 않았다. 누구와 얼마를 살았던 마지막에 이르면 그 세월이 결코 길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사람은 어리석다. 건강하게 살아있을 땐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죽음을 앞두고야 비로소 이 사람을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를 깨달으니. 영화속 로저도 그랬을 것이다. 아타오가 건강할 땐 그녀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 가까이 이르고 보니 자신이 친엄마 보다 더 많이 의지하고 살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겠지. 

 

영화에서 보면 아타오가 요양원에서 진패라는 노인을 알게 된다. 밝고 춤을 좋아하는데 얼굴을 좀 익혔다하면 돈을 꾸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돈으로 사창가를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인을 보는 시각이 로저와 아타오가 다르다. 로저는 꿔 준 자신의 돈이 그런 식으로 흘러드니 당연 불쾌했겠지. 하지만 아타오는 그것도 살아 있음이고 죽으면 못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관용의 마음을 갖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일까?

 

좀 별개의 얘기지만, 얼마 전 노인의 성을 다룬 뉴스 보도를 본적이 있다. 요지는 노인이라고 해서 성욕은 감퇴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더 이상 이 문제를 음성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였는데 보도 자체가 문제가 됐던 건 아닌데 (다소) 남성 위주의 편향적인 보도 같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남자 노인의 성욕은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데 그에 비해 여자 노인은 성욕이 현저히 줄어드니 어찌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암묵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맞혀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문제 아니냐는 그런 뉘앙스였다. 그로 인해 노인의 성폭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게다가 오래된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을 문제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 옳고 그름을 떠나 선택의 문제 아닌가? 남자들 중엔 부인과 보낼 밤을 두려워 하는 사람도 있다.  

 

나이 많은 여자가 남편을 거부하는 건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성욕이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젊은 날 존중 받아야 할 부부관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소외되지는 않았을까? 그것에 대한 보복내지는 결과일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남자는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자신을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징징대고, 아직도 아랫도리 힘을 해결하지 못해 한숨이나 쉬고 있다면 자신이 오랜 세월 아내에게 어떻게 해 왔는지부터 돌아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아무튼 적어도 영감의 아랫도리의 문제를 여자의 책임 양하는 보도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모르긴 해도 같은 남자가 봐도 기분 나빴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것 또한 편향적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렇다. 결혼을 했으면 주도권 가지고 싸우지 말고 서로 영문도 모르고 잘 해 주라는 것. 무조건 배우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그게 지금 당장은 몰라도 덕을 쌓는 길이고 늙어서도 대우 받는 길이다.

 

아무튼 이 영화 시크하게 괜찮다. 영화제작자라면서 에어컨 기술자 같이 소탈한 유덕화가 다소 놀랍다. 사는 집도 별로 영화제작자가 살 것 같지 않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홍콩은 그런가 보지.

별점은 세 개 반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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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5-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뉴스를 보았습니다. 남자는 여자와 달라서 노인이 되어도 성욕은 줄지 않는다는 것.
남녀가 비슷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님이 예리하게 지적하신 게 있네요. - ˝하지만 젊은 날 존중 받아야 할 부부관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소외되지는 않았을까? 그것에 대한 보복내지는 결과일지 알 수 없다.˝

부부란, 훗날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게 맞는 것 같아요. 결국 자식들이 다 결혼해 떠나고 나면 둘만 남게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으니 말이죠.

stella.K 2017-05-02 13:50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 보도도 생각해 보면 그리 정확한 것 같지도않더라구요.
남녀가 늙으면 남자에게선 여성 호르몬이 나오고,
여자에게선 남성 호르몬이 나온다잖아요.
그렇다면 여성이 성적으로 왕성해질 확률이 높은 건데
실제로 그런 분석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거든요.
암튼 부부의 성이라는 건 성 자체만으로만 판단하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전생애적인 측면에서 고려해 봐야죠.
그 보도는 정말 좀 깨는 것 같아요.ㅉ
 
[수입] Virna Lisi Anthony Quinn - The 25th Hour (25시)(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DVD-R)
Virna Lisi Anthony Quinn / Warner Archives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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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5시>를 읽었던 건 학창시절이었다. 조금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TV에서 이 영화를 방영해 줘서 본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하루아침에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서 아내가 경찰서장인가 하는 사람을 찾아가 남편의 신원을 얘기했더니 심각하게 받아 적는 듯 하는데 사실은 꽃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지막 엔딩 장면. 카메라 앞에서 웃으면 웃을수록 슬퍼지는 주인공을 맡았던 안소니  퀸의 얼굴. 그리고 얼마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던 걸까? 다시 보니 역시 명작이란 생각이 든다.

   

                              

웃픈 영화 몇 편이 있다. 뭔가 웃기고 어처구니 없지만 슬픈 영화. 아마도 대표적인 영화가 채플린의 일련의 영화들이 아닐까 싶다. 뭔가 영화는 웃긴 것 같긴한데 보고나면 (아니 보는 중에도) 뭔가 썩소를 짓게 만드는 영화. 그래서 채플린을 천재라고 하지 않던가. 

 

웃겨서 웃는 건 그냥 코미디나 개그다. 근데 슬픈데 웃게 만들거나, 웃기는데 슬픈 건 드라마다. 하긴 난 웃겨서 웃는 코미디나 개그도 웬만해서 잘 웃지 않는다. 똑같은 패턴이 보이면 별로 웃을 게 없는 이유도 있지만, 청중에게 웃음을 주기위해 망가져야 하고, 때로 자신의 치부가 될만한 것도 웃음거리와 맞바꾸는 것을 보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에겐 역으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에겐 웃음만이 전분데 이렇게까지 망가져 주는데 웃고 있지 않다니. 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묘하게도 <인생은 아름다워>와 겹쳐졌다. 그 영화도 시종 밝음을 유지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슬프지 않는가. 또 같은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그렇고. 그런 것을 보면 인류 역사에 나치 시대가 있었다는 건 불행하긴 하지만, 불행한 것을 불행하게만 그리지 않는 인간의 창의력은 가히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를 조금도 폄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인간의 모순과 그 시대를 통렬히 비판한다. 

 

우리나라는 좀 이런 걸 적극 배울 필요가 있다. 지금도 간간히 만들어지는 일제 치하와 광주사태 같은 이야기는 그것의 일면을 액면 그대로 그리려고만 하지 아직 그런 작품성은 뚜렷히 보이지 않고 있다.

 

안소니 퀸이 연기한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루마니아인이고 유대인도 아니면서 영문도 모르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한때는 유대인으로 또 한때는 독일인으로 또 어느 땐 독일인이 아닌 것으로 살다가 세월이 한참 흐르고 그리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로선 어처구니 없지만 보는 사람은 웃음이 난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가? 나라가 (힘이 없으면) 개인을 지켜 줄 수가 없다. 그의 인생 유전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 이 사람도 됐다 저 사람도 됐다. 그건 또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하지만 영화는 또 그다지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장 큰 정체성은 엔딩 이후의 요한 모리츠의 삶이 아닐까? 집을 떠나 올 때 그의 슬하의 두 아들은 이제 막 발을 떼기 시작한 꼬마거나 갓난 아기였다. 10년 넘게 떠돌다 가족을 보니 아이들은 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아이들의 중요한 순간에 아빠가 있어줘야 하는데 그 세월의 갭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본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남자들 자기 아내될 사람 너무 미인이냐 아니냐 따지지 마라. 물론 소설이나 영화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모리츠의 아내가 경국지색이다. 그러다 보니 모리츠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받아야 할 때 받지 못하고 끌려가지 않는가. 모리츠가 그렇게 집에 없는 것을 틈타 아내를 겁탈하는 늑대가 더욱 기세가 등등해지는 것이고. 물론 미인은 누가 지켜주겠는가를 따지면 모리츠 같은 짐승남이 지켜줘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만. 

 

아무튼 이 영화는 진짜 명작이다. 한번쯤 보면 좋겠다.

소설도 읽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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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4-29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도 좋아요 ^^

stella.K 2017-04-30 18:10   좋아요 0 | URL
h님도 읽으셨군요.
영화 본 김에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yureka01 2017-04-29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선명하게 남는 장면..맨 마지막에 안소니 퀸의 웃는듯 우는듯한 묘한 미소...이게 뇌리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영화~로 기억합니다~

stella.K 2017-04-30 18: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참 그 사진 기자 안소니 퀸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물론 그의 인생유전을 알 리 없겠지만
그래도 잠작은 가잖아요.
언론이 문제입니다. 언론이...ㅉ
 
여혐민국
양파(주한나) 지음 / 베리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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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사람(물론 남자)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지지 광화문 촛불집회가 거의 종반을 향해 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촛불집회 초기 때부터 참석했었고, 나는 그때까지 탄핵은 지지했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을 못했기 때문에 집회도 참석할 겸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약속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가 되면 내가 안 됐고, 내가 되면 그가 안 되고. 아무튼 그렇게 어렵게 잡은 약속인데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이 뒤집어진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이유가 좀 걸작이다. 그때 내가 무슨 말 끝에 그날 맛있는 것 사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순간 어찌나 어이없고 당황스럽던지.

 

그런데 왜 나의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일까?

(그것도 나중에 알았던 건데) 그의 말이,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쉬지도 못하고 추위를 무릅써 가며 참석하고 있는지, 하다못해 몸이 불편한 장애자조차도 들것에 실려서까지 참석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그렇게 (속편하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에게 나는 그리 친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아양이나 떠는 개념 없 여자였던 것이다.

 

말이란 원래 앞뒤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 같은 말이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난 새삼 깨달았다. 앞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밥 먹고 집회에 참석하자고 하기에 난 그저 마무리조로 그 말 한마디를 보탰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개념 없는 여자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 곡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그 힘으로 곡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에겐 현 시국이 밥도 편하게 못 먹을 시국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밥 소리나 하지 말지.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려다 못 구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때 그는 자신의 말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느껴야 했던 건 (애석하게도) 그가 바랐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일치할 수 없었다. 원래 상처 주는 사람은 잘 모른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안 주는지. 주면 얼마나 주는지. 받는 사람만 아는 문제다. 만일 정 내키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액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찾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난 참혹하게도 그에게서 맨스플레인을 보았으니까.

 

이 사람뿐이 아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페미니즘을 옹호하든 그렇지 않든 맨스플레인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그 상황에서 그 사람처럼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런 그의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의미로든)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왕 말나온 김에) 알다시피 같은 시간 서울역에선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죄상이 이렇게 명백한데 어떻게 탄핵을 반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한 가지 깨달았던 건, 모든 것엔 절대적이라 건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죄상을 바라보는 시각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상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을 강요하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은 또 너와 내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배타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탄핵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며 한 가지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서로의 다름을 우린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하며 사는 걸까?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탄핵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그녀는 비교적 확고해 보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자신도 언젠가 한 번 탄핵지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지지자들 중엔 정말 지지해서라기 보단 알바들이 대거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등 뒤에서 불평과 앓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그것이 사실이라면 탄핵 반대 측에도 그런 알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건 아무래도 정치꾼들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는 걸까? 문득 그의 나를 향한 맨스플레인도 그렇지만 약속을 뒤집을 만큼 탄핵을 지지했던 그의 투쟁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좋은 의미는 아니다.)

 

나의 지인은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여서 당하는 설움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건 거의 절대적여 보였는데, 자신이 여자로 일하면서 남자들에게 당했던 설움을 그런 식으로 투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을 농단한 죄가 가벼울 수 있다는 걸까? 그래서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을 농단한 적은 없는가?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정 비리를 바로 잡기 위해 박근혜가 필요했다면 그것을 피해갔던 전직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장애자로서 들것에 몸을 의지하면서까지 광장으로 모여들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디 있었는가.

 

탄핵 지지자들 중엔 역대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이고도 역사적인 비리와 농단을 생각하면 박근혜를 감방에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다못해 그냥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가택연금 정도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탄핵 반대자들은 아직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러는 건 너무 심하다는 건 당연한 거고. 그밖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면상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나는 정치에 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일까?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보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확고할 수 있을까?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기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선택을 하고 노선을 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대다수의 바람대로 박근혜는 구속이 됐다. 그러면 된 건가? 나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던 중 나는 며칠 전, 오랜만에 어떤 책의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그것은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을 최초 보도한 한 명의 방송 기자와 두 명의 작가로 구성된 공동 저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했던 건 거리상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밝힌 것처럼 난 아직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어서일까? 왠지 모르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부조리한 것들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시종 진지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훌륭했다고 본다. 공동저자 3인방은 스마트함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아주 좋아 보이지만은 않은 건 뭐 때문일까?

 

그들은 자기네들만 소개 받는 것이 멋쩍었는지 두 명의 저자가 더 있다며 젊은 여성 작가 둘을 더 소개했다. 그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모르긴 해도 보조 작가였나 보다. 물론 나이가 그 3인방 보다는 어렸으니 같이 앉아 있기가 뭐했나 보지. 자리도 비좁고. 또 어떤 부분 나대지 않는 겸손의 미덕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래서 일의 강도는 그 테이블의 3인방 보다 덜 했을까? 이것도 짐작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단순히 여자고 나이가 젊었으니 그러고 지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언제나 여자는 보조 역할이다.

 

그들은 그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유머와 여유로움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특별히 정부수립 이후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헌법에 관련된 책들은 모조리 훑었다는 말에 과연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인정해 줄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이번 기회에 헌법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는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또 방송에서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전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번 국정농단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그 시간 조금이라도 떨어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깊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지금의 혼란스러움은 아무래도 국정농단과 박근혜를 같이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국정농단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도 이것을 피해 가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자라고 해서 봐줘야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법과 제도는 누가 만들었는가? 하다못해 한 나라의 엄중한 헌법조차도. 탄핵 반대자들 중에 그들이 결코 놓지 못하는 프레임 중 하나는 박근혜가 바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었을 이 법과 제도에서 작두(?)를 탓다는 것일 게다.

 

물론 이 말을 간단히 무시해도 좋다. 여자이기 때문에 동정을 받아야 하는 건 여자인 나도 원치 않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짚어 들어가면 정의란 아예 존재치 않는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린 헌정 사상 그 유래가 없는 일을 겪으면서 (겨우) 헌법의 엄중함을 깨닫는 기회를 가졌다. 어떻게 갖게 된 기회인가? 그것은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촉구한다. 어물쩍 덮어갔던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의 재임시절 국정 비리와 농단사건을 헌법이란 이름으로 재수사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을 재수사하는 것이 합당하냐 하지 않느냐를 위해 또 헌법 책을 뒤져야하는 것이 두려운가? 오늘 날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공동저자 3인방)은 이번 대통령 투표 팁도 더불어 알려줬는데 간단하다.

사실 헌법은 A4 용지 열 몇 장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헌법 전문은 한 장도 되지 않는다. 누구를 뽑을지는 그 전문을 읽어보고 그것에 적합하거나 조금이라도 근접해 있는 후보를 찍으라고 한다. 쉬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번 대선에서 100%는 아니지만 98% 이상은 남자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 그리고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국민으로 하여금 헌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적어도 그것을 바로미터 삼아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며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는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 기대엔 좀 못 미쳤다. 사이다 같다고 했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좀 진보적인 느낌이 들어 어느 부분 나도 여자지만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가끔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있다. 타 보면 노약자와 임산부 보호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그게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낫긴 한데 설마 이런 것 가지고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보는 일은 없겠지 싶다. 솔직히 진짜 복지 국가가 되려면 이런 구분은 없어져야 한다. 왜 그런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좌석이 노약자 보호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언제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물론 나는 여성을 장애자로 비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여성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성학의 전제는 언젠간 없어질 학문이라고 해서 정식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페미니스트가 들으면 화날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성학이란 학문이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이거야 말로 여성 소외 아니냐며. 하지만 언젠가란 미래형 전제가 있다. 그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될 때를 말한다. 물론 요원한 일이니 여성학은 웬만해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때로 급진적이고 전사적인 행동도 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다 보면 아직도 만연한 반페미니즘과의 충돌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인간 삶의 대전제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비록 이 책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다.                     

 

미소지니(misogyny)가 여성혐오라고 번역되었는데,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한국어로 받아들이면 오해하기 좋은 어감이다. 그러나 미소지니는 실제로 혐오 보다는 ‘차별‘이나 ‘멸시‘에 가까운 의미를 담는다. 따라서 여자가 일삼는 여성혐오란 곧 자기혐오이며, 자기멸시인 것이다.(52p)

딜브레이커(deal-breaker)라는 단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 라며 포기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딜브레이커가 있다. 날 호구로 보고 이용해도 되지만 내 외모를 가지고 놀리면 안 돼. 혹은 술 마시고 날 때리는 건 괜찮지만 바람 피우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뭐 그런.
대선 후보에게도 당연히 딜브레이커는 있고,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이회창의 경우는 ‘군대‘였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유권자에게는 딜브레이커였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반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최순실이 딜브레이커였다. 아무리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대통령이 저렇다면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기준선이다(118~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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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4-28 14:18   좋아요 1 | URL
탄핵을 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더군요.
님의 생각도 맞는 얘기죠.
근데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도 생각이 든다는 거죠.^^

꼬마요정 2017-04-28 14:30   좋아요 1 | URL
아, 그냥 제 관점이구요 ㅎㅎ 폰으로 쓰다가 잠시 딴 일하고 와서 중간 문장 빠졌어요ㅠ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요거 진짜 중요한 문장인데 없어졌네요 ㅠㅠ

cyrus 2017-04-27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페미니즘이 실천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다 같은 목표로 향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점진적 방식을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 급진적 방식을 선택할 겁니다.

stella.K 2017-04-28 14:38   좋아요 0 | URL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급진은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지.

와, 근데 다시 봐야겠는데?
상황에 따라 급진을 택하겠다니.
네가 페미니스트였다는 걸 잊고 있었네.흐흐

cyrus 2017-04-29 06:53   좋아요 1 | URL
저를 페미니스트로 바라보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시선에 신경쓰지 않지만, 페미니즘 관련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와 사회를 개선하려는 과정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페미니스트인지 의심된다‘ 식으로 나오는 반응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stella.K 2017-04-29 15:34   좋아요 0 | URL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언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cyrus 2017-04-30 16:02   좋아요 0 | URL
별 일 아닙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라면 겪게 되는 상황입니다. ^^;;

stella.K 2017-04-30 18:14   좋아요 0 | URL
뭔지 짐작이 간다.ㅠ

페크pek0501 2017-04-29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치적으로 (아주 예민하게) 열을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님이 쓰신 다음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좋은 글입니다.

stella.K 2017-04-29 1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평소엔 아무 일 없는 것 같다가도 정치 얘기만 하면 돌변하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부분데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에 대해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한 가족 내에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똑같아야 한다는 거
좀 심한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