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어찌보면 좀 덤덤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4대에 걸쳐 자신의 집을 돌봐주던 가장부 아주머니가 뇌졸중에 걸렸다.
4대에 걸쳤다면 가족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가족들은 이민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잘 나가는 영화제작자가 된 로저(유덕화)만이 고국에 남아 이 가정부 아주머니의 돌봄을 받고 있다. 더 이상 로저를 봐줄 수 없는 아타오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낮선 요양원 사람들과 적응을 해야한다. 또한 그때부터 로저는 아타오를 양어머니라 생각하고 그녀를 돌봐준다. 영화는 바로 로저가 아타오를 돌봐주는 길지 않은 기간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아타오가 어떻게 로저의 가족과 인연을 맺으며 4대에 걸쳐 가정부 일을 해 왔는지는 잘 나와있지는 않다. 하지만 짐작이 전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홍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뭐 그 나라도 나름 어려운 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과정에서 로저의 어머니와 인연을 맺고 그 집일을 돌봐주며 개인사를 쌓아 갔겠지.
그런데 이 덤덤한 영화에 자꾸 침잠해 들어가게 된 것은 아타오의 얼마 남지 않은 삶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곧 나의 두 번의 가족과의 사별과 오버랩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린 시절, 사람이 어느 땐가는 죽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람이 죽는다고? 어떻게..? 하지만 난 운이 좋았는지 그런 말을 듣고도 꽤 오랫동안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 목도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애써 그런 건 남의 이야기고 적어도 먼 장래의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집에선 가장 연장이시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중년이었다. 그전에 나는 아버지는 장수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유전자가 나의 친할머니 쪽이었다면 장수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버진 그러지 못하셨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간은 총 2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었다.
4년 전 오빠가 돌아갔다. 그동안 나도 나이를 먹고 직간접으로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으니 익숙할(?)법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오빠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다 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나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충격적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지금도 나는 가끔씩 오빠의 죽음과 관련된 꿈을 꾼다.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질기게 나의 의식을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2년 전엔 엄마를 암으로 잃을 뻔했다. 엄마야 이미 노령이고, 적어도 아버지나 오빠 보다는 오래 살았으니 일견 쉽게 보내드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도 않았다. 누구와 얼마를 살았던 마지막에 이르면 그 세월이 결코 길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사람은 어리석다. 건강하게 살아있을 땐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죽음을 앞두고야 비로소 이 사람을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를 깨달으니. 영화속 로저도 그랬을 것이다. 아타오가 건강할 땐 그녀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 가까이 이르고 보니 자신이 친엄마 보다 더 많이 의지하고 살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겠지.
영화에서 보면 아타오가 요양원에서 진패라는 노인을 알게 된다. 밝고 춤을 좋아하는데 얼굴을 좀 익혔다하면 돈을 꾸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돈으로 사창가를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인을 보는 시각이 로저와 아타오가 다르다. 로저는 꿔 준 자신의 돈이 그런 식으로 흘러드니 당연 불쾌했겠지. 하지만 아타오는 그것도 살아 있음이고 죽으면 못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관용의 마음을 갖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일까?
좀 별개의 얘기지만, 얼마 전 노인의 성을 다룬 뉴스 보도를 본적이 있다. 요지는 노인이라고 해서 성욕은 감퇴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더 이상 이 문제를 음성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였는데 보도 자체가 문제가 됐던 건 아닌데 (다소) 남성 위주의 편향적인 보도 같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남자 노인의 성욕은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한데 그에 비해 여자 노인은 성욕이 현저히 줄어드니 어찌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암묵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맞혀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문제 아니냐는 그런 뉘앙스였다. 그로 인해 노인의 성폭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게다가 오래된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을 문제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 옳고 그름을 떠나 선택의 문제 아닌가? 남자들 중엔 부인과 보낼 밤을 두려워 하는 사람도 있다.
나이 많은 여자가 남편을 거부하는 건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성욕이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젊은 날 존중 받아야 할 부부관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소외되지는 않았을까? 그것에 대한 보복내지는 결과일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남자는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자신을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징징대고, 아직도 아랫도리 힘을 해결하지 못해 한숨이나 쉬고 있다면 자신이 오랜 세월 아내에게 어떻게 해 왔는지부터 돌아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아무튼 적어도 영감의 아랫도리의 문제를 여자의 책임 양하는 보도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모르긴 해도 같은 남자가 봐도 기분 나빴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것 또한 편향적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렇다. 결혼을 했으면 주도권 가지고 싸우지 말고 서로 영문도 모르고 잘 해 주라는 것. 무조건 배우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그게 지금 당장은 몰라도 덕을 쌓는 길이고 늙어서도 대우 받는 길이다.
아무튼 이 영화 시크하게 괜찮다. 영화제작자라면서 에어컨 기술자 같이 소탈한 유덕화가 다소 놀랍다. 사는 집도 별로 영화제작자가 살 것 같지 않은 집에서 산다. 그래서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홍콩은 그런가 보지.
별점은 세 개 반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