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
켄 돌란-델 베치오.낸시 색스턴-로페즈 지음, 이지애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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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책이 작고 얇기도 해서 귀여운 애완견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려동물을 잃으면 어떻게 하라고 조언해 주는 책인데 나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 참고해 볼만하다.

 

미국엔 펫로스 상담사가 있는가 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얼마 전 반려견을 산책을 시켜주는 트레이너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말이다. 애견 미용실은 물론이고, 카페나 호텔, 유치원이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렇게 반려동물 산업은 나날이 증가 추세라고 하는데 정작 그것을 키웠던 사람을 위한 일은 얼마나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글쎄,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있어서일까? 반려동물 천만 시대라고는 하지만 위에서 말한 시설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반려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반려로 생각하고 동물들을 키우고 있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미국처럼 개에게도 재산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진정한 반려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반려라기 보단 그냥 재산 가치 목록 중 하나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펫로스 증후군이 있다고 한다. 단어가 주는 의미가 어렵지 않게 파악되듯 반려동물을 잃고 상심한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육체의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고 겪는 애도 반응과 같아 우울감, 불면, 식욕부진 같은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의사나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한다.

 

실제로 사람과의 사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상담을 받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동물을 잃었다고 상담이 필요하다면 이것에 얼마나 수긍할 수 싶기도 하다. 예전에 집에서 키우던 개는 마당에서만 키우고, 유사시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펫로스 증후군을 쉽게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모르긴 해도 펫로스 증후군은 반려동물 산업이 증가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에 대한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는 것만큼이나 동물에 (때로 과도하게)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는 이유에 대해 정확히 따져봐야겠지만, 그런 사람의 적지 않은 수가 사람에 대한 상처나 사귀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반려동물(이 경우 주로 개나 고양이가 되겠지만)은 상처를 주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세상에 대해 마음에 문을 닫은 사람이 마지막 출구로 그런 양태를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에게도 어느 날 반려견 또는 반려묘와의 마지막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들의 겪어야 할 마음의 상심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뿐인가? 그들을 여러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예를 들면, 자폐나 치매 등 치료 목적이나 소방이나 경찰업무 등에 가담시켰다 사고사 내지는 자연사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 사람은 펫로스 증후군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경우 부모의 돌봄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어떻게 펫로스 상담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또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위에서 열거한 정신적이며 육체적 증상 때문에 병원을 가야겠지만 우리나라는 역시 보수적이어서 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설혹 간다고 해도 펫로스 전문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런데 이 책을 보며 한 가지 더 느꼈던 건, 반려동물 산업이 확산되는 것만큼 과연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반려동물을 사랑했을까를 되돌아보게도 된다. 우리가 죽음을 목도한다는 건 그 당장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을 한층 더 깊고 성숙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조건 죽음을 거부한다고 해서 죽음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비롯해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다 끝이 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린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랑을 한다해도 말이다.

 

어떤 유명한 명사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는 반려견의 건강을 위해 하루에 얼마 정도의 산책을 시킨다. 그런데 그 시간이 반려견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주인이 정한 시간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려견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날은 20분이 걸릴 수도 있고, 어느 날은 40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개가 원하는 만큼의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데 우리는 20분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20분만 산책을 시키려고 한다면 그건 반려견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리 인간은 뭐든지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한다. 좀 격하게 말해서 펫로스 상담 이게 과연 필요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가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슬픔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있다. 그게 진정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 의문을 가져 보게 된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미성숙한 것이며,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죽은 망자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물론 그를 추억하는 거야 나쁜 일이 아니겠지만 언제까지고 슬픔에 빠져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다. 망자에게도 잊힐 권리라는 게 있다. 그런 것처럼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에게도 삶이 있는 것처럼 죽음이 있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 언제까지나 슬퍼한다면 그건 또 얼마나 민망한 일이 되겠는가.

 

사랑한다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의 눈높이가 돼서 바라봐 줘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내 눈높이에 맞추려고 한다. 동물조차도 말이다.

 

펫로스에 관해서라면 나 역시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15년 키운 말티즈 제니가 드디어 마지막을 고하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언제 죽을까 병색이 완연했는데 그날은 옛날 건강했을 때의 모습을 거의 회복한 듯 했다. 눈도 초롱초롱하고 발에도 힘이 생겨 실내를 뛰어다닐 정도였다. 한동안 내 방에 와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다. 바로 그때 난 녀석의 죽음을 직감했었다. 넌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구나.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구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런지 하룬가 이틀 만에 녀석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던 새벽에 홀연히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주인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마리 개도 사람을 위할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죽은 반려동물을 놔줄 수 없다면 부끄러운 일 아닐까? 죽음이란 자연에서 왔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라지 않은가?

 

책에 보면 이제 막 펫로스가 된 사람에게 금기 사항이 있다. 이를테면 반려견은 또 데리고 오면 되는 것 아니냐 하며 섣불리 슬픔을 위로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존재는 유일한 거니까. 하지만 반려동물은 우리가 돌봐줘야 할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다. 기왕 돌봐왔다면 또 돌보게 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도 자식을 잃으면 다신 안 낳을 것 같지만 또 낳아 키우면서 슬픔을 잊기도 하지 않는가?

 

정말로 금기사항이 있다면 이것이다. 이미 죽은 반려동물을 박제로 만드는 것. 우리가 정말 사랑했다면 그 짓마는 하지 않기로 하자. 말했지만 사람에게도 잊힐 권리가 있는 것처럼 동물도 잊힐 권리가 있다. 또 하나 금기사항이 있다면 그건 학대하는 것, 키우다 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책은 아픔을 나누는 방법을 적극 활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슬픔을 나누고 정신적인 지지를 받으라고 한다. 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위로자가 되기도 한다.

 

책은 이 분야에 대한 소개 정도여서 좀 아쉽긴 한데 한번쯤 읽어 볼만하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정말 성숙한 태도로 키운다면 펫로스 상담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것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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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만 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 같아요. ^^
죽은 반려동물을 박제화하는 건, 진짜 심각하고 잘못된 일이에요.

stella.K 2017-06-16 13:2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말야. 하지만 뭐 흔한 일도 아니겠지.
아무튼 반려동물 좋아만 하지 말고 그것을 키우는 사람들의
의식부터 성숙해졌으면 해.

yamoo 2017-06-1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르던 개와 고양이 버리는 넘들은 무슨 생각으로 키우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버려지는 개를 본 적이 꽤 있는데요. 참으로 인간으로 못할짓이라 생각합니다. 덜덜 떨면서 울부짓는 개들...그런 개들을 버린 넘들은 참으로 개보다 못한넘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놀라운 게 상당히 많이 버려진다네요...유기동물 관리하는 곳에서 그러더라구요..그래서 저런 책이 필요한 거겠죠..

stella.K 2017-06-18 18:10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반려 반려 하지만 반려의 의미도
모르고 있는 거죠. 끝까지 책임진다, 함께한다 이런 생각이
가능해야 비로소 반려동물인 거 아니겠습니까?
돈 주고 살 땐 언제고.
문제인 대통령 공약중에 반려동물 복지에 관한 공약도 있는 것 같던데
앞으론 반려동물 키유려면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 심사도 하고 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반려동물 보육원도 좀 세우고.ㅋ
 

 

어제, 엄마의 심부름도 할 겸 들어오는 길에 안경을 했다.

새삼 내가 왜 이걸 이렇게 미뤄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앉은 자리에서 뚝딱하면 되는 걸.

30분이나 걸렸을라나?

이걸 하기를 1년도 더 별렀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안경점 주인은 정말 순박한 충청도 아저씨였다.

악의라곤 전혀 없는 구수한 인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순간 뭔가 무장이 해제되는 느낌이었다.

안경점 주인은 왠지 깔끔하고 젠틀한 이미지거나

멋을 잔뜩낸 기생오라비 같은 이미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긴, 갈 때부터 왜 난 안경점 주인이 그런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여자일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역시 여자는 아니었지만 그런 순박한 인상의 아저씨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거지.

역시 기대는 예상 밖에 있다고나 할까?

 

간단한 시력 검사를 하더니 내가 시력이 좋단다.

속으로 안경점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했다.

내 시력이 얼마냐고 물어보긴 했는데 잘못 들은 것 같다. 2.5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시력도 있었나?

 

아무튼 먼곳을 보는 시력은 좋은데 가까운 특히 책을 보는 시력은 안 좋다는 말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좋다고 하니 좋아해야 하는 거 맞지?

지난 달 만난 아는 지인도 내가 지금까지 안경을 안 쓰고 산 것에 대해 부러움을 사지 않았던가?

 

 

사춘기 시절 안경을 미치도록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순전히 겉멋이었겠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게 나의 마음을 끓었다.

하지만 난 이내 비교적 오랫동안 안경 없이도 살 수 있는 삶에 안도하며 살았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몸의 변화를 겪을 때마다 생각나는 소설 제목이 있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다.

그는 왜 이런 소설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자주 이 소설을 떠올렸고 앞으로도 자주 생각날 것 같다란 생각을 했다(소설 제목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땐가 꼭 한 번을 읽어봐야 할 책 같다. 늙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러나 이 책은 현재 서점에서 품절 상태다.) 

 

그러니까 어제 또 한 번 저 책의 제목이 생각나더란 말이지.

소원풀이 한 것이지 뭐.

사춘기 시절부터 생각한 거잖아.

그동안 안경 없이 살아 온 것도 기특한 거고.

 

하지만 역시 익숙하지는 않다.

남의 옷 입은 것 같고.

이제부턴 안경테에 갇혀 그안에서 책을 봐야한다.

언제부턴가 책을 보는데 게슴츠레 눈을 뜨고 봐야했는데

그런 거 없으니 좋지 뭐.

다시 옆으로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글자가 잘 보이니 몇 시간이고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나도 그런 능력 좀 생기려나?

눈 좋을 때도 집중력은 저질이라 그런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안경 낀 사람이 책을 보고 있으면 뭔가 뇌 속에 책을 스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상상도 해 봤다.

뭐 그런 건 고사하고 집중력이나 좋아지면 좋겠다.

 

여기서 나의 이상형 하나 밝힌다.

여자들은 남자들 차 후진하느라 핸들 꺾는 거 좋아한다고 하는데

난 그런 거 잘 모르겠다.

그 보다 난 안경 끼고 책 읽는 사람 좋아한다.

안경 다리 붙들고 뭔가의 생각에 꼴똘히 잠긴 모습도 좋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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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6-12 17:47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생각해요.
눈이 나빠 책을 못 읽게되면 어쩌나 하는.
그런데 당분간은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정말 출판사에서 책 편집 좀 신경 써 줬으면 좋겠어요.
책 예쁘게 만들겠다고 글자에 색깔 집어넣고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ㅠ

qualia 2017-06-0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원시원하네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안경 하나 해야 하는데 말이죠~

stella.K 2017-06-08 17:58   좋아요 0 | URL
앗, 아직 안경 안 쓰시는군요.
복입니다. 그게 눈 나빠보면 알겠더군요.ㅋ

hnine 2017-06-0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경점에서 말한 시력은 아마 디옵터가 아닐까 하는데요.
눈이 좋으시다니 말씀하신대로 지금까지 안경 없이 지내신 것이 신기할 뿐이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안경없으면 안되는 사람이라서요. 그나마 예전엔 안경이 하나만 있으면 되었는데 지금은 자그마치 세개의 안경을 용도에 따라 바꿔가며 쓰고 있어요 ㅠㅠ

stella.K 2017-06-08 18:0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학창시절엔 학교에서 신체검사 하면서 알게 되는데
모르고 산지가 꽤 되어요.
그런데 세개 가지나 쓰신다니 눈이 많이 안 좋으신가 봅니다.
저의 어머니도 눈이 많이 안 좋으셔서 수술을 권유 받기도 하셨는데
안하는 것 보다는 좋다는 말을 들어 신중하게 고려중이어요.
물론 실제로 받으실지 모르겠지만.

cyrus 2017-06-0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도 시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제가 지금까지 안경, 콘택트렌즈 구입에 들어간 비용 정도면 책 서 너권 정도는 살 수 있었을거예요. ^^;;

stella.K 2017-06-08 18:04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근데 각을 잘 잡아 봐.
누가 아니? 안경 끼고 책 읽는 모습에 반할 사람이 있을지.ㅎㅎ

yamoo 2017-06-0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디옵터 11.5와 12입니다. 안경을 안 쓰면 걷기도 힘들죠. 하지만 제가 안경을 선택하는 기준은 테입니다. 테가 가장 중요해서 수십가지를 전전한 끝에 라운드형으로 최종 타협을 보았습니다. 안경알값도 눈이 나빠 만만치 않죠. 여러군대를 돌아다닌 결과 남대문보다 싼 안경점을 알고, 거기서만 맞추고 있습니다. 저도 조만간 안경 다시 맞춰야하는데...이 참에 안경에 관한 포스팅을 해야 겠습니다.

근데, 안경테를 불테로 하셨네요. 요즘 저런 라운드 모양이 대세인 가 봅니다. 헌데, 알이 너무 큰거 같아 저는 기피하는 스타일이네요^^;;

stella.K 2017-06-09 14: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디옵터 숫자가 높을수록 눈이 안 좋은 건가 보죠?
그럼 2.5면 정말 좋다고 봐야겠네요.
저의 엄니도 남대문 발품 팔아 안경을 맞추곤 하십니다.
저는 그냥 동네에서 했죠.
안경알은 생각 보다 큰 건 아니어요.
사진이라 커 보이는 것뿐.
사실 저 안경테는 별로여요.
그나마 써 본 것 중에 제일 나서 선택한 거지.
사진이 어두워 잘 안 나타나지만 빨간색이 들어가 있어요.
테가 약간 굵었으면 했는데 그런 게 없더라구요.
썬그라스는 있던데.
썬그라스보니까 사고 싶더군요.
가지고 있는 썬그라스는 너무 오래되서 바꾸긴 해야하거든요.
아무래도 조만간 사야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어쩌다 어른>에 이동진이 나왔다.

책 읽기에 관한 강연을 했는데 흥미로웠다.

 

지금은 많이 벗어나려고 하지만 난 아직도 완독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으면 읽었다고 보기 어려운. 그런데 이동진은 완독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고 한다.

 

이건 뭐 이동진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독서법의 추세가  그런 것 같긴하다. 심지어 나는 내 책에서 조차 그런 얘기를 하긴 했다. 작가를 거스르라면서.

 

그래놓고 완독의 강박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니. 내가 학창 시절 때만 해도 완독을 해야 비로소 책을 다 읽은 거라고 가르치는 풍조가 있었다. 그게 워낙 강하게 뇌리에 박혀 무슨 혼령처럼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이건 또 소설 읽기 버릇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중간지점에서부터 읽을 수 있을까? 뭔가 재미가 있던 없던 처음부터 읽어줘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비소설도 그렇게 읽는 것이다. 하지만 비소설이나 에세이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디든 자기 읽고 싶은 데부터 읽어도 좋다는 것이다. 어머, 정말 그러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지?  

 

특히 이동진은 책의 2/3 지점을 주목한다.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글을 쓸 때 가장 지치고 힘들어 하는 지점이란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습작이지만 나도 어떤 이야기든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한다. 그렇게 쓰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너무 쓰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만일 책으로 나온다면 2/3 지점인지는 알수 없지만 아무튼 그 지점만 통과하면 또 다시 힘을 내서 잘 쓸 것만 같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러니 하루키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소설을 쓴다는 건 얼마만한 의지의 산물인지 알 것도 같다. 나는 이 성실함을 몸에 익히고자 10분도 안 되는 단편 연극 대본을 썼는데 결과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것을 쓰지 않게되자 따라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쓴다고 해도 호흡이 짧아 그 이상을 쓰면 헉헉 거린다.ㅠ

 

다시, 이동진이 말하는 책의 2/3 지점은 독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는 이걸 영업비밀이라고 까지 했는데, 독자의 입장에선 그 지점을 주목해서 보고 그 부분이 좋다 싶으면 그 책은 정말 좋은 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책 선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책 선택엔 서문과 목차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데 그 법칙이 사실이라면 소설도 굳이 안될 건 뭐가 있겠는가? 사실 나는 얼마 전부터 <장 크리스토프> 1권을 읽고 있는 중인데 알다시피 이 책은 1, 2권 모두 합쳐서 1500 페이지 정도되는 장편소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2/3 지점이라면 1권의 3/4 지점쯤 되지 않을까? 그 지점부터 읽고 마음에 들면 다시 처음부터 읽는 방식이었다면 좀 수월하게 읽지 않았을까? 아님 이 소설은 성장소설인데 유년시절은 솔직히 좀 재미가 없다. 속도가 나질 않는다. 적어도 청년 시절 정도가 돼야 재밌지 않을까?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애초부터 청년 시절부터 읽었더라면(그건 또 1권의 1/4을 지나야 한다) 좀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겠지만 그 시기가 또 여러모로 피 끓는 시기 아닌가?(그런데 로맹 롤랑 참 대단하다 싶다. 문장이 특별히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한땀 한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읽기는 간단치 않지만 꼼꼼한 게 대단하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확실히 새겨둘만 하다. 이것에 동의한다면 작가도 자기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의 2/3 지점이 어딘지를 그려보고 거기를 급소라고 여겨야 한다. 그곳을 독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사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부터 재밌는 책도 있지만(사실 그런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책은 끝에 가서 남는 게 없을 확률도 많고.) 어느 정도 능선을 타야 재밌는 책도 있다.  그때부턴 언제 읽는지도 모르게 몰입해서 읽게 된다. 아마도 그 경험이 좋아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이동진은 말한다. TV나 게임은 처음부터 재미있다. 하지만 독서는 천천히 재미를 들여 오래도록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고. 그건 맞는 말이다. 이 맛에 책을 읽는다.    

 

참, 오늘 책 한권이 도착했다. 이번의 책은 과학에 관한 책이니만큼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된다. 2/3 지점부터 읽어 볼 것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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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6-05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독주의 ^^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이동진이야 워낙 직업상 정독보다 다독이 필요한 경우가 많을테니 자기 나름의 요령을 터득한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제 경우엔 책 읽기 시작해서 100페이지까지가 문턱 같아요. 100페이지까지는 뭔 소린지 모르고 읽다가 100페이지 정도 넘어가야 겨우 감을 잡는다고 할까요.
오늘 도착한 과학 관련 책은 무엇일까요? 궁금 궁금 ^^

stella.K 2017-06-05 19: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겠죠?
패턴을 알면 정말 어떤 책은 굳이 완독이
필요없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끝까지 안 읽으면 찜찜할까요?ㅋㅋ

오늘 도착한 책 쫌만 기다리세요.
리뷰 올라 갈 겁니다.^^

cyrus 2017-06-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내용은 반드시 읽고, 어렵거나 흥미를 느끼지 않는 내용은 패스해요. 패스한 내용은 언젠가는 다시 읽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현재 홈즈 번역본 4/9를 읽었어요. 평소대로 읽고, 리뷰 쓰면 한 달 내에 다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번역문 비교하고, 베껴서 쓰는 일이 하게 되니까 속도를 못 내고 있어요. 사실 이때쯤이면 지치기 시작해요. 다른 책에 눈이 가게 되고요. ^^;;

stella.K 2017-06-06 15:01   좋아요 0 | URL
ㅎㅎ 4/9면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되는 건가?
잘 쓰지 않는 분수 표기 같아 한참 웃었다.

와, 근데 그런 일도 하니? 번역문 비교하고 베껴 쓰는!
대단하다. 평소 느끼는 거지만 넌 참 책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 같다능.
학자해도 좋을 것 같은데...ㅋ

맞아. 흥미를 느끼지 않는 부분은 나도 패스해.
그런데 저 장 크리스토프는 고전이라 그런가 지루한데도
첫장부터 꾸역꾸역 읽었어. 건너 뛸 생각도 못하고 있는 중.ㅠ

cyrus 2017-06-07 09:58   좋아요 0 | URL
홈즈 전집 전체 9권 중 4권까지 읽었다는 뜻입니다. ㅎㅎㅎ

필사로 베껴 쓰는 것이 아니고요, 컴퓨터 문서로 작성해요. 지금까지 작성된 문서를 프린터로 뽑으려면 A4 용지 스무 장 이상 필요할 거예요. ^^

stella.K 2017-06-07 18:21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

뭐 컴 문서로 하는 건 베껴 쓰는 게 아닌감?
암튼 대단해!^^

페크pek0501 2017-06-0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완독을 지향해요. 여러 책을 병행하여 읽어서 완독하지 못한 책이 많지만 언젠가는 꼭 완독하리라 마음먹어요. 그 이유는 보석 같은 문장은 어디엔가 숨어 있어서 그걸 놓치는 게 손해로 여겨져서요. 가령 책의 뒷 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거기에 내가 놓친 좋은 문장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샅샅이 뒤지며 읽는다고나 할까요? 이게 저의 독서하는 태도입니다. 지루하게 읽히는 페이지를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할 때면 쾌감을 느끼며 밑줄을 긋습니다.
저는 책 전체의 흐름보다 문장 낱개를 중시하는 모양이에요.

stella.K 2017-06-06 15:08   좋아요 0 | URL
캬~! 언니는 역시 문장 탐험가시군요.
이 페이퍼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읽을까
궁금했거든요.
이제야 비로소 밝혀지는 독서의 전모가 흥미롭네요.ㅋ
지루하게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쾌감이 느껴지신다니
웬지 유럽식 독서 스타일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ㅎ
그런 책 있죠. 지루한데 덮기엔 또 좀 아닌.
그런 책에서 발견되는 문장의 즐거움이 분명 있어요.^^

moonnight 2017-06-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독 강박;; 하여간에 꾸역꾸역 끝까지 읽게 됩니다. 어쩌다 어른에 이동진님 나오신 거 봤어요.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학하지 말라던 말씀이 참 위로가 되었습니다^^;

stella.K 2017-06-06 15:1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리고 사랑법도 한 수 썰을 풀었더랬죠?
사랑을 너무 애지중지 하지 말라고 했던가요?
그럴수록 사랑은 멀어지고 사랑을... 사랑을...
아, 뭐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더 귀에 쏙 들어왔는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나요.
다시 봐야할 것 같아요.ㅠ
아무튼 요는 책도 너무 애지중지 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말이죠.
확실히 이동진은 뇌섹남이어요.ㅋㅋ

yamoo 2017-06-0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도 아무 이유없이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동진과 김우빈이 그런 사람들인데요...저도 딱히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그냥 싫다는..ㅎ

2/3지점...저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요..어쨌거나 이동진은 너무도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같은 안티 층이 있어도 가뿐히 무시할 듯..ㅎㅎ

stella.K 2017-06-09 14:1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사람있긴 하죠.
김우빈은 저도 별로 안 좋아하는 배웁니다.
이동진은 나름 괜찮던데요. 반듯하고.
여자가 보는 것 하고 남자가 보는 것하고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참 도발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이미 세계적인 미술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이를테면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아담의 창조>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 같은 작품이 저자는 미술작품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단지 로마 교황의 권위와 성스런 의식을 위한 시각적인 은유였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로서 이 프레스코화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미술은 아니라는 것이다.

 

갑자기 화가난다. 우리는 지금껏 그게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쇄뇌 당하다시피 배우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작품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걸 차마 입 밖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작품들은 솔직히 기독교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더구나 그런 그림의 작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작품이다. 당시는 기독교가 융성했을 때였을 것이고, 그 작품에 뭐라고 토를 달았다간 반역까지는 아니지만 무식한 사람이라고 했을 것도 같다. 그러니 더불어 작가의 이름도 권위가 있어지는 것은  아닐까? 워낙 유명해 작가의 작품을 뭐라고 하는 건 거의 불경에 가까운 일이고.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더 말해 뭐하겠는가. 더 이상 이게 왜 예술이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냥 예술이니까 예술인가 보다며 느끼기 보단 그렇게 알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 예술이 아니라니?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것 같으면 진작에 말할 일이지 이제 와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저자와 독자인 나의 입장이 너무나 다르게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작가는 그렇게 선언해 버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한 권의 책을 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기만 했을 뿐 뭐라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예술은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보고 직접 창작도 해 봐야한다. 저자는 아마도 뭔가에 갇히는 걸 거부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상상력, 자유로움을 위해 오늘 날 현대미술의 거장들 이를테면 몬드리안이나 뒤샹, 폴록과 피카소 등을 호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은가. 이 책은 나에게 스펀지 같은 책이었다. 보면 글자도 많지도 않고, 앉아서 후루룩 금방 다 읽어버릴 책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나면, 그래서 뭐? 하고 묻게 만든다. 별로 곱씹을 게 없단 말이다. 리뷰 쓸 것이 아니라면 그냥 편하게 읽고 말 책인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작품 특별히 현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오늘은 이 정도에서 리뷰를 대신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에 대해 호불호를 불허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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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6-02 17:32   좋아요 1 | URL
오, 명가명 비상명아라. 멋진 말이군요.
고맙습니다.^^

cyrus 2017-06-02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현대미술도 소개되어 있어요? 최근에 제가 눈여겨 보고 있는 책 중의 한 권입니다.

stella.K 2017-06-03 12:59   좋아요 0 | URL
응. 뒤로 갈수록 현대미술이 많이 나오긴 하지.
평점도 놓고. 하지만 내가 미술에 대해 그리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그저 그렇더군.
그냥 스펀지 같았어.ㅋ

yamoo 2017-06-08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네요. 제가 아는 것만 이 책의 표지가 4차례 바뀌었습니다. 표지 바꾸어 값 올리고...아~ 고약하네요..

stella.K 2017-06-09 14:07   좋아요 0 | URL
4차례씩이나요...?
그렇군요. 책값 너무 비싸요.
물론 전 출판사로부터 지원 받아 읽긴했지만.
근데 출판사가 나름 책은 좋은 것 같더라구요.
나름 의식있어요.ㅋ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구약 성경 창세기 가운데 나오는 요셉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께 들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그를 꿈쟁이 또는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기억하는데 알고 보면 그의 삶은 성실과 진실로 점철된 삶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것 같다. 그건, 하나님은 꿈이 없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꿈이 있는 사람을 들어 사용하신다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는 건, 나는 솔직히 삶을 살아가는데 특별한 재주가 없었다. 그나마 글쓰기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면 밥버러지나 다름없이 살았을 것이다. 성격도 지극히 소극적이어서 이불 밖 세상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되 반드시 훈련과 공부를 시키신다는 것이다. 사실 난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특별히 하나님의 일 즉 사역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그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이 일을 하면 성실함을 몸에 베게히고, 나중엔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지금은 그 일에 나름 신학적이고, 예배학적이며 연극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백판 아무 것도 없었다. 거기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공부의 연장이려니 했을 뿐이다. 공부하는데 이처럼 좋은 환경이 어디있단 말인가? 따박따박 원고료도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엔 공짜가 없다.  

 

내가 다시 주일학교에 복귀하고, 그것이 내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의미라고 해서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축복만 예비되어 있고, 탄탄대로에 승승장구만 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보통 간증은 그렇게 한다. 어떻게 우연찮게 어떤 비전을 갖고 무슨 일을 해서 어떤 어려움과 시험을 겪고 후에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다는 식의. 그걸 일명 '욥의 서사'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 것이다(구약의 욥기를 보라. 욥은 모진 고난과 시험 끝속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므로 나중에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땐 내가 그런 간증을하기엔 너무 일렀다. 그리고 난 사람이 아직 덜 여물어서일까 지금도 그때는 오지 않은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 주님의 은혜로 산다면 그건 맞는 얘긴 것 같은데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일이란 어렵고, 살얼음을 걸으며, 지뢰 밟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지뢰는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밟지 않으면 언젠가 그 누군가는 일부러라도 밟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복귀해서 처음 2년 정도는 평탄하고 안정되게 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님이 다른 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아 가셨고, 그 밑의 목사가 승진과 함께 담당 사역자로 부임을 했다. 이 분은 먼저 목사님과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 과거 내가 제자와 갈등했던 일을 문제삼아 나를 흔들어 놓았고, 이렇게 제자와 갈등하는 선생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며 주일학교를 그만두도록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바뀌면 그 새로운 대통령에 의해 새로운 내각을 꾸리지 않는가. 하물며 새로운 리더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사람을 바꾸겠다는데 그걸 무엇으로 막겠는가. 그렇게 사람을 바꾸는 건 좋은데 그런 과정에서 한 사람의 겨우 아문 상처를 들춰 가면서까지 그만두게 만드는 것이 맞는 수순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목사는 곧잘 양을 치는 목자에 비유된다. 백 마리의 양이 있는데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다면 나머지 아흔 아홉마리 양을 놔두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다는. 적어도 그는 이 양 계산법에 함께 일하는 교사는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더구나 내가 그에 대해 실망했던 건, 내가 그를 전혀 몰랐다면 모르겠는데 그전부터 안면도 있었고, 나가 일하는 걸 보고 반색하곤 했다. 그런 그가 그렇게 안면을 바꾸고 나온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나중엔 옥신각신 하는 과정에서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아이 같이 떼를 쓰기도 했는데 점잖은 분이 그러고 나오니 그도 좀 가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삼 남자들이 일을 처리하는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구나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처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런 일을 겪어 본지라 불쾌했던 건 사실이지만 상처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때로 상처는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그땐 아이들도 학년이 바뀌는 때였던만큼 팀도 새롭게 정비해야 했는데 어느 정도 자리잡으면 나올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교사 회의 때 안녕을 고하고 나오는데 그와는 따로 인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언뜻 그의 얼굴을 보니 보니 고뇌에 찬 표정이었는데 왠지 그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다시는 그를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이로써 나는 주일학교를 완전히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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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6-05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상처받은 경험이 있겠죠.
과거, 어떤 일로 상처를 받은 기억이 나면 그게 재산 같다고 여기게 돼요. 그런 상처를 견디는 시간이 없었다면 아주 나약한 사람으로 살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일도 겪었는데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이렇게 마음먹고 살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경험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더라고요.

stella.K 2017-06-06 15:21   좋아요 0 | URL
캬~! 언니는 저를 두 번 감동시키시는군요.
사실 이 페이퍼 좀 화끈 거리는 게 있어서
하루 비공개로 했다가 전체공개로 전환한 거거든요.
그런데 용케 언니를 비롯해 세 분이 보고 가셨어요.
왠지 고맙단 생각이 들더군요.
이 별 볼 일 없는 페이퍼를 보고 가시다니 이 분들 때문이라도
얼마 안 남은 이야기 마저 완성시켜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돌아 오는 주일 날 제가 강연회를 해요.
지금까지 올린 몇 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잘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ㅠ
암튼 읽어주셔서 고맙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