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의 심부름도 할 겸 들어오는 길에 안경을 했다.
새삼 내가 왜 이걸 이렇게 미뤄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앉은 자리에서 뚝딱하면 되는 걸.
30분이나 걸렸을라나?
이걸 하기를 1년도 더 별렀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안경점 주인은 정말 순박한 충청도 아저씨였다.
악의라곤 전혀 없는 구수한 인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순간 뭔가 무장이 해제되는 느낌이었다.
안경점 주인은 왠지 깔끔하고 젠틀한 이미지거나
멋을 잔뜩낸 기생오라비 같은 이미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긴, 갈 때부터 왜 난 안경점 주인이 그런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여자일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역시 여자는 아니었지만 그런 순박한 인상의 아저씨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거지.
역시 기대는 예상 밖에 있다고나 할까?
간단한 시력 검사를 하더니 내가 시력이 좋단다.
속으로 안경점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했다.
내 시력이 얼마냐고 물어보긴 했는데 잘못 들은 것 같다. 2.5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시력도 있었나?
아무튼 먼곳을 보는 시력은 좋은데 가까운 특히 책을 보는 시력은 안 좋다는 말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좋다고 하니 좋아해야 하는 거 맞지?
지난 달 만난 아는 지인도 내가 지금까지 안경을 안 쓰고 산 것에 대해 부러움을 사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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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안경을 미치도록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순전히 겉멋이었겠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게 나의 마음을 끓었다.
하지만 난 이내 비교적 오랫동안 안경 없이도 살 수 있는 삶에 안도하며 살았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몸의 변화를 겪을 때마다 생각나는 소설 제목이 있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다.
그는 왜 이런 소설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자주 이 소설을 떠올렸고 앞으로도 자주 생각날 것 같다란 생각을 했다(소설 제목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땐가 꼭 한 번을 읽어봐야 할 책 같다. 늙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러나 이 책은 현재 서점에서 품절 상태다.)
그러니까 어제 또 한 번 저 책의 제목이 생각나더란 말이지.
소원풀이 한 것이지 뭐.
사춘기 시절부터 생각한 거잖아.
그동안 안경 없이 살아 온 것도 기특한 거고.
하지만 역시 익숙하지는 않다.
남의 옷 입은 것 같고.
이제부턴 안경테에 갇혀 그안에서 책을 봐야한다.
언제부턴가 책을 보는데 게슴츠레 눈을 뜨고 봐야했는데
그런 거 없으니 좋지 뭐.
다시 옆으로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글자가 잘 보이니 몇 시간이고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나도 그런 능력 좀 생기려나?
눈 좋을 때도 집중력은 저질이라 그런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안경 낀 사람이 책을 보고 있으면 뭔가 뇌 속에 책을 스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상상도 해 봤다.
뭐 그런 건 고사하고 집중력이나 좋아지면 좋겠다.
여기서 나의 이상형 하나 밝힌다.
여자들은 남자들 차 후진하느라 핸들 꺾는 거 좋아한다고 하는데
난 그런 거 잘 모르겠다.
그 보다 난 안경 끼고 책 읽는 사람 좋아한다.
안경 다리 붙들고 뭔가의 생각에 꼴똘히 잠긴 모습도 좋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