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어쩌다 어른>에 이동진이 나왔다.
책 읽기에 관한 강연을 했는데 흥미로웠다.
지금은 많이 벗어나려고 하지만 난 아직도 완독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으면 읽었다고 보기 어려운. 그런데 이동진은 완독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고 한다.
이건 뭐 이동진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독서법의 추세가 그런 것 같긴하다. 심지어 나는 내 책에서 조차 그런 얘기를 하긴 했다. 작가를 거스르라면서.
그래놓고 완독의 강박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니. 내가 학창 시절 때만 해도 완독을 해야 비로소 책을 다 읽은 거라고 가르치는 풍조가 있었다. 그게 워낙 강하게 뇌리에 박혀 무슨 혼령처럼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이건 또 소설 읽기 버릇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중간지점에서부터 읽을 수 있을까? 뭔가 재미가 있던 없던 처음부터 읽어줘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비소설도 그렇게 읽는 것이다. 하지만 비소설이나 에세이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디든 자기 읽고 싶은 데부터 읽어도 좋다는 것이다. 어머, 정말 그러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지?
특히 이동진은 책의 2/3 지점을 주목한다.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글을 쓸 때 가장 지치고 힘들어 하는 지점이란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습작이지만 나도 어떤 이야기든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한다. 그렇게 쓰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너무 쓰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만일 책으로 나온다면 2/3 지점인지는 알수 없지만 아무튼 그 지점만 통과하면 또 다시 힘을 내서 잘 쓸 것만 같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러니 하루키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소설을 쓴다는 건 얼마만한 의지의 산물인지 알 것도 같다. 나는 이 성실함을 몸에 익히고자 10분도 안 되는 단편 연극 대본을 썼는데 결과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것을 쓰지 않게되자 따라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쓴다고 해도 호흡이 짧아 그 이상을 쓰면 헉헉 거린다.ㅠ
다시, 이동진이 말하는 책의 2/3 지점은 독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는 이걸 영업비밀이라고 까지 했는데, 독자의 입장에선 그 지점을 주목해서 보고 그 부분이 좋다 싶으면 그 책은 정말 좋은 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책 선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책 선택엔 서문과 목차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데 그 법칙이 사실이라면 소설도 굳이 안될 건 뭐가 있겠는가? 사실 나는 얼마 전부터 <장 크리스토프> 1권을 읽고 있는 중인데 알다시피 이 책은 1, 2권 모두 합쳐서 1500 페이지 정도되는 장편소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2/3 지점이라면 1권의 3/4 지점쯤 되지 않을까? 그 지점부터 읽고 마음에 들면 다시 처음부터 읽는 방식이었다면 좀 수월하게 읽지 않았을까? 아님 이 소설은 성장소설인데 유년시절은 솔직히 좀 재미가 없다. 속도가 나질 않는다. 적어도 청년 시절 정도가 돼야 재밌지 않을까?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애초부터 청년 시절부터 읽었더라면(그건 또 1권의 1/4을 지나야 한다) 좀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겠지만 그 시기가 또 여러모로 피 끓는 시기 아닌가?(그런데 로맹 롤랑 참 대단하다 싶다. 문장이 특별히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한땀 한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읽기는 간단치 않지만 꼼꼼한 게 대단하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확실히 새겨둘만 하다. 이것에 동의한다면 작가도 자기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의 2/3 지점이 어딘지를 그려보고 거기를 급소라고 여겨야 한다. 그곳을 독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사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부터 재밌는 책도 있지만(사실 그런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책은 끝에 가서 남는 게 없을 확률도 많고.) 어느 정도 능선을 타야 재밌는 책도 있다. 그때부턴 언제 읽는지도 모르게 몰입해서 읽게 된다. 아마도 그 경험이 좋아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이동진은 말한다. TV나 게임은 처음부터 재미있다. 하지만 독서는 천천히 재미를 들여 오래도록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고. 그건 맞는 말이다. 이 맛에 책을 읽는다.
참, 오늘 책 한권이 도착했다. 이번의 책은 과학에 관한 책이니만큼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된다. 2/3 지점부터 읽어 볼 것이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