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손자병법 - 읽으면 힘을 얻고 깨달음을 주는 지혜의 고전 삶을 일깨우는 고전산책 시리즈 4
손무 지음, 미리내공방 엮음 / 정민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병법서가 필요할 만큼 크게 싸울 일이 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기는 하다.

뭐 총칼 들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이겠는가?

가만있는데 치고 들어오는 인간들이 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쌍욕을 장풍 같이 날려 준다고 해서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쌍욕을 찰지게 잘하면 싸움을 잘한다고 사람이 아직도 있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알면 이건 가장 낮은 수준의

싸움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백중세면 빤스 바람으로 드러눕는 사람도 있다더라.

그건 무슨 생지랄이란 말인가? 이런 승자독식과 패권주의가 난무하고,

무림고수의 세상에서. 수준 낮아 못 싸워주겠다.

알아서 남 주는 세상이 아니다. 싸움은 더더욱.

그건 나를 지키는 최고이면서 최후의 방어수단 되어야 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하긴, 빤스 바람으로라도 승리를 쟁취하거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것도 이기는 방법은 방법일 것이다.

책에 보니 미친 척 하되 진짜 미치지는 말라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은 가볍게 읽는 일종의 손자병법 안내서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렇게 싸우면 이기고, 저렇게 싸우면 진다는 걸

예를 들어가며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데 싸울 일이 별로 없고 늘 평화로운 나날을 살고 있는 사람에겐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병법서이기 전에 처세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승자독식과 패권주의의 세상이라는 걸 안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달은 점이 있다면 역시 전쟁은 역시 사람이 한다는 것이다.

사드니 핵무기니 세상에 말도 못하는 살상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게 다 소용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무기가 없고 오로지 칼과 창만 있어서 병법이 필요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또 어찌 보면 그것만 있었기 때문에 더 지혜로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사드가 있고, 핵무기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넋놓고 사는 세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 전쟁도 깜냥이 돼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병권을 쥔 높으신 분들

이런 병법서도 안 읽고 설마 그 자리를 꿰차고 계신 건 아니겠지?

장신 바짝 차리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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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19 15:1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안 싸우고 이기는 게 진짜 이기는 거라는 건데
지는 게 이기는 것이기 때문인가 봅니다.ㅋㅋ

cyrus 2017-08-1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이 책은 손자병법을 뻔한 처세술 형식으로 편집했을 것 같습니다.

stella.K 2017-08-19 15:30   좋아요 0 | URL
이걸 읽을 바엔 진짜 손자병법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해.
내가 고전 울렁증이 있잖니.특히 동양철학은.
싸움을 잘해 볼까 해서 읽어 본 건데 좀 아쉽긴 해.
그래도 요즘 사람 읽기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페크pek0501 2017-08-19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히 제게 필요한 책은 아니지만, 읽어 두면 나쁠 것 없을 책 같습니다.

stella.K 2017-08-20 11:2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손자병법이란 말에 혹해서 읽었습니다.ㅋ
 

 

 

1.

오랜만에 지인인 님을 만났다. 그녀를 만나기는 거의 1년만이다.

온라인에서 안지는 꽤 오래됐지만 작년 내 책이 나온 직후 저자 사인을 핑계 삼아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고, 이번이 두 번째다.

우리가 만난 곳은 강남역.

강남역은 한때 나의 나와바리였다. 다니던 교회가 근처에 있던 관계로 나의 청춘은 그곳에서 다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가끔 강남역을 나오곤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 나와도 교회가 있는 쪽은 웬만해서 잘 안 가게 되고 주로 중고샵과 극장이 밀집해 있는 11번 출구 쪽과 그 뒷골목을 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책을 좋아하는 탓에 누구를 만날 일이 있으면 겸해서 꼭 한 번 들릴 욕심에 그쪽을 선호하게 된다.

강남역을 그렇게 오래 다녔음에도 어디가 어디 보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에 관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강남역이면 다 강남역이지 그런 비교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보단 나의 회로가 그쪽으론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강남역이야 강북의 홍대나 신촌과 함께 젊음의 거리로 손꼽지 않던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곳을 나이 먹은 사람은 다니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젊었기 때문에 그 차이를 못 느끼는 것을 나이 들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이긴 하겠지만.

그 차이를 발견하게 된 것은 지난 달 지인 J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때도 별 생각없이 강남역 11번 출구쪽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간 2층으로 꾸며진 뭐라고 하면 알만한 유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로 갔다. 그전에도 두어 번 왔지만 그곳 화장실이 남녀를 통틀어 하나 밖에 없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순간 그곳에 대한 선호도가 확 떨어졌다. 위생도 위생이지만 뭔가 비인격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낡은 건물이라도 화장실은 남녀로 구분되어있고 그것도 몇 칸씩은 돼 있다. 어떻게 이렇게 번듯한 베이커리에서 남녀 구분 없이 딱 한군데만 있을 수 있을까? 그 상식 밖의 놀라움은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그곳을 들어가는 사람마다 놀라고 특히 여자 보단 남자들이 더 놀라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 내부는 꼭 여자용처럼 꾸며져 있었으니. 어쨌든 난 다음부턴 여길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디를 갈까?

가만 생각해 보니 같은 강남역이라고 해도 11번 출구 쪽이 젊은이들이 더 많이 출몰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건물도 좀 더 촘촘하고. 그나마 조금 트인 곳이 옛 교회 건물이 있는 10번 출구 쪽이다. ,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전에도 그쪽을 안 다녀 본 것도 아닌데.

    

 

2.

상가 밀집 지역은 하룻밤에도 몇 개의 점포가 새로 생기고 새로 문을 닫는다. 더구나 역세권은. 강남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꼭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새로 문을 열고 닫는 것 같아도 주요 거점 상가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곳도 많다. 그중 하나가 ㅁㄷ 칼국수.

칼국수 마니이던 아니던 한번쯤 들어 본 상호일 것이다. 그게 강남역 10번 출구 뒤쪽에 자리 잡은 게 언제쯤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못해도 15, 아니 그 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을까? 어디 가서 점심을 먹나 고민했었는데 여전히 건재한 걸 보고 조금은 반갑기도 했다.

토요일 점심시간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았다.

얼마만인가? 그동안 한 번도 수리를 안했는지 내부가 그대로다. 의자도 식탁도. 계산대에서 돈을 받는 주인장도 낮이 익다. 하다못해 일본에서는 돈을 내야 먹을 수 있다던 김치도 수저통 옆에 비치 되어있었다. 설렁탕집에 항상 파를 잘게 썬 통이 비치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손님이 제법 많은 중에도 우리 두 사람 정도는 앉을 곳은 있었다.

은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 탓에 멋모르고 칼국수와 만두국을 시키려 하는 것을 내가 얼른 칼국수와 만두로 정정했다. 물론 만두국도 나쁘지 않지만 그곳의 주 메뉴는 칼국수와 만두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음식이 국물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둘 중 하나 정도는 국물이 없는 걸 시켜줘도 좋지 않을까?

누가 칼국수를 먹고, 누가 만두를 먹을 것이냐 정하지도 않는다. 의례히 딸려 나오는 조그만 앞접시가 있고 중앙에 칼국수와 만두를 놓고 조금씩 덜어 먹으면 그만이다. 중국집에 둘이 들어가면 하나는 짜장면을 시키고 하나는 짬뽕을 시켜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처럼 그곳은 그렇게 먹는 것이 거의 상식처럼 통한다.

 

맛은 곳 기억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꼭 주인공만이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으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니다. 나도 만두 한 점과 칼국수 한 젓가락을 먹는 순간 옛 기억으로 빠져 들었다.

교회에서 연극을 하던 30대 시절 함께했던 수가 생각났다.

그녀를 꽃으로 표현하자면 코스모스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그녀는 어딘가 수수하면서도 내면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강인함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후배였다.

한때 팀을 이끌기도 했던 그녀는 나와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스타일이 다른 사람과 굳이 친한 척 할 필요가 있을까, 난 애초부터 그녀와 잘 지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물론 나쁘게 지낼 생각도 없었지만. 사람 사귀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상대가 하는 것만큼 나도 한다가 아닐까?

그녀는 확실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면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잘 챙기고 먼저 다가가는 끈끈한 친화력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굳이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린 한동안 친하게 지냈다.

서로 친했으니 잘 맞쳐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109개를 맞추고도 하나가 맞지 않으면 결코 좋은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만남이고 관계는 아닐까? 하긴, 어떤 경우는 9개가 맞지 않는데도 유독 한 가지가 맞아 못 떠나고 맞춰 사는 사람도 있다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아이러니한 존재다. 그런 것처럼 그렇게 완벽한 만남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멀어졌던 수가 그것을 먹는 순간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녀는 겉으론 명랑한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 그도 그럴 것이 6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비교적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20대 후반으로 어머니를 여읜지 3년 됐다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 보다 조금 더 일찍 돌아가시고.

보수적인 아버지는 딸이 연극하는 것을 반대해 집에 감금당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연극에 미쳐있었고, 또 뭐 때문인지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트라우마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교회에 연극 팀이 처음 생겼고 뭐 때문인지 그런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뭔가 도움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서 온 것 같았다.

처음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는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어느 틈엔가 팀을 장악해 버렸다. 워낙에 몸이 재고, 전에 소위 있어 본경험도 있으니 팀을 장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초기엔 간식을 담당했다. 나야 팀에 나와도 별로 할 일이 없으니 그런 일이라도 맡는 것도 나름 보람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격상 오래 할 건 아니고, 적당히 나이 어린 후배가 들어오면 넘겨 줄 생각이었다.

나의 그런 생각을 알았을까 아니면 연장자로서 나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설까,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자신이 모임에 나오는 길에 간식을 사 가지고 오겠다며 말하자면 내 일을 빼앗아버렸다. 그녀는 나름 나를 배려하겠다고 한 것이겠지만 나는 좀 섭섭했다. 이걸 넘겨주고 나면 난 팀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작가는 그런 존재였다. 글을 다 쓰고 연출가에게 대본을 넘겨주고 나면 할 일이 없는 존재. 그래서 늘 연극판 주위를 배회하는 존재. 그나마 내가 사 온 간식을 팀원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도 즐거웠는데 이제 난 뭘 해야 하나 좀 막막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하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성격상 거절을 잘 못하는 것도 있지만 모임 때마다 이번엔 무슨 간식을 준비해야할까 고민하는 것도 일이긴 했다. 그런데 비해 이런 일을 일상다반사로 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수가 그랬다. 당시 그녀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기도 했으니 그런 거 준비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엄마는 평소, 작가는 그림 같이 책상 앞에 들어앉아 글이나 쓸 줄 알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말이 옳은 것도 같았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지기 전에 이렇게 누군가가 하겠다고 할 때 넘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것이 그녀가 팀을 장악했던 첫 번째 일은 아니었을까?

 

 

3.

전에 연극을 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면서 이렇게 적극적이어도 되는 걸까 싶게 그녀는 열심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녀만 찾는 것 같았다. 그게 상대적으로 나를 외롭게도 했다. 하긴 난 어딜 가도 그렇게 적극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니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그녀는 교회에서 하는 연극은 여타의 그것과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교회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자신의 상처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봤을 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교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건 즐겁고 기쁜 일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는 이미 얼고 있었던지라 그녀가 처음부터 너무 섣부른 낭만적인 생각은 안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안 하고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자유지 그것을 내가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저 바라기는 여기서 잘 견뎌주면 앞으로 어딜 가서도 잘 해내지 않을까?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그녀는 다른 어딜 가서도 다시 연극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저 이를 다소 불안하게 지켜 볼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일을 해오는 동안 그녀는 알게 모르게 힘들어하고 지쳐했다. 하지만 아주 많이 그랬던 것도 아니다. 버텨볼만하게 힘들어 했고, 버틸만하게 지쳐했다. 그건 아마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힘들고 지쳤으면 나동그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때론 그녀가 그래줬으면 할 때도 있었다. 차라리 나동그라지고, 못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어줬으면 할 때가. 공연을 앞두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을 보는 건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함부로 그녀를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런 상처 중에도 이만큼 해내는데 어떻게 입바른 소리로 소금을 뿌릴 델 수 있겠는가. 누구라도 그런 입바른 소리에 그럼 어디 한 번 해 보라고 부메랑을 날리게 되면 그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받아주는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막 추워지기 시작했을 때 나와 수 그리고 KE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먹으러 이 집을 찾았다. 약간 늦은 저녁 시간이라 우린 약간의 허기져 있었고 습관처럼 칼국수와 만두를 시켰다.

오랜만에 먹으니 그도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나와 같이 칼국수를 먹던 K가 무슨 배려심이인지 다 먹지 않고 수에게 내밀면서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덴 스스럼이 없어 찌개도 같이 먹고, 술잔도 돌려먹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먹던 칼국수를 먹으라고 권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기도 했다. 난 어렸을 때 외엔 같은 집안 식구라도 남이 먹던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특히 국물 음식은.

나는 과연 K가 권하는 그 칼국수를 수가 먹을까? 속으로 의문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그녀는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특히 무슨 향순지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평소 그녀가 잘 쓰는 향수는 그런 그녀의 깔끔한 이미지를 더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설마 남이 먹던 음식을 먹을까 싶었다.

그런데 웬걸, 기다렸다는 듯이 K가 내민 칼국수 그릇을 자기 앞으로 끌더니 어깨에 닿을 듯한 생머리를 한쪽 귀 뒤로 몰아 넘기고 그것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건 확실히 반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늘 입맛이 없다며 먹는 것에 별로 욕심을 내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래서 일까? 처음 만났을 땐 나름 통통하니 보기 좋았는데 몇 년 새 살이 빠져 턱선이 갸름하다 못해 다소 날카로워져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통은 살이 찐다고 하던데 그녀는 그 반대였다. 낮엔 직장에 나가고 밤엔 연극 연습하랴 귀찮다며 먹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그런 그녀가 그때는 정말 허기가 졌던지 K가 먹던 칼국수를 남김없이 다 먹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까지 근래에 보기 드문 그녀의 먹는 모습이었다.

나는 차츰 그 먹는 모습에서 처음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예의 그녀 특유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누구나 그렇긴 하겠지만 그녀에겐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그만의 외로움과 고독이 있을 것이다. 또한 혼자 먹었을 식사는 얼마나 될까? 비록 남이 먹던 칼국수라도 잠시나마 허기를 달래주고, 이렇게 함께 먹어줄 사람이 있어 위로를 받는다면 나의 그런 판단과 편견은 잠시 접어둬도 좋지 않을까? 그날 먹었던 칼국수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그 누구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수는 만날 수 없다.

서로 티격태격은 많이 했어도 언니, 언니하면서 잘 따랐던 후배였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내가 여길 안 오는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다녀갔을까? 왔다면 얼마나 맛있게 먹고 갔으며 연극과 인간관계의 치열함으로 살았던 인생의 한때가 있었음을 지금의 나처럼 느끼고 돌아갔을지 알 수가 없다.

사실 그날 과 함께 먹었던 칼국수와 만두는 예전에 먹던 그 맛이긴 하지만 나에겐 다소 짰다. 그것은 그 집 탓만은 아닐 것이다. 평소 외식을 자주하지 않는 나의 혀가 그것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그 집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입구 맞은 편 벽에 서울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입니다란 글귀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겸손이라고 하기엔 뭔가 작위적이란 느낌도 들고 뭔가 의미가 있는 말일 텐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우스웠다. 그 집을 자주 다녔던 시절에 몰랐던 것을 이렇게 한참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오니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그만도 내가 많이 똑똑해졌다는 건가? 인간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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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의 맛 다음으로 중요한 게 음식을 먹을 때의 분위기입니다. 혼자 가서 맛집에 음식을 먹는 일보다 친구 여러 명 같이 맛집에 가는 일이 더 기억에 남았어요. 혼자 가든 여러 명 같이 가든 음식이 맛있는 건 똑같아요. 그래도 친한 사람이랑 같이 먹는 게 기분 좋죠. 술집도 그래요. 술집에 여러 명 같이 가면 좋은 추억, 나쁜 추억이 될 만한 일이 하나쯤은 생겨요. 그래서 그 문제의 술집을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

stella.K 2017-08-17 18:07   좋아요 0 | URL
그렇지. 사실 나도 미맹이 오는지 맛집이라고 가지만
맛은 있지만 다음에도 생각나는 궁극의 맛?
그런 건 없는 것 같아. 다 분위기고.
누구와 어디 가서 무엇을 먹었다는 뭐 그런.
그래. 술집도 잊을 수가 없지. 그러고 보니 나도 기억이 나네.^^

qualia 2017-08-18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독특한 글맛을 느꼈습니다. 옛 추억도 더듬게 되었고요. 흐음... 오정희 작가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가 읽은 여성 작가 중 기억나는 작가는 오정희 작가밖에 없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분명 오정희 작가의 분위기 혹은 문체 같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밀(內密)한 혹은 사밀(私密)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소설 혹은 수필(에세이)이라는 형식을 빌어 오히려 가감없이 풀어놓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stella.K라는 한 존재의 사적 공간에 들어가 이것저것 몰래 구경하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이런 글은 독특한 그 무엇이 있어요. 미지의 타인에게서 섬세한 감정의 체취를 맡는 느낌이랄까, 비밀스런 내적 고백을 엿듣는 느낌이랄까 그런 것 말이죠. 제가 워낙에 제 관심 분야 글들만 골라 읽는 타입이랄 수 있는데요. 윗글은 희미하게 잊혀진 제 옛 취향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데자뷔일 수도 있죠. 칼국수, 저도 좋아합니다. 칼국수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추억들이 저도 있어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셨던 수제비 칼국수의 원초적인 그 맛, 일터 동료가 사줬던 잊지 못할 진국의 칼국수, eastT와 오붓하게 맞상하고 먹었던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그 따끈한 칼국수... 근데 칼국수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을 둥근 멍석처럼 펴는 나무 방망이하고 나무 판자를 뭐라고 하죠? 따로 이름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네요. 꼭 칼국수가 아니더라도 언제 한번 stella.K 님 같은 글을 써보고 싶네요. 시간만 여유가 더 있다면 제 특유의 썰렁하고 뜨악한 얘기를 더 풀어놓을 수도 있겠지만서도 stella.K 님 칼국수 이야기 때문에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인’ 상태입니다. 오늘, 아 시간을 보니 어제네요. 어제는 라면 한 끼로만 때웠는데 배고파 죽겠네요ㅎㅎㅎ 오뚜기 진라면 순한맛 끓여 먹어야겠습니다. stella.K 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제 기억과 추억을 더듬고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셨네요.

stella.K 2017-08-18 13:39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이거 쓰면서 문체가 누군가 닮았지 했습니다.
그런데 님은 오정희 작가라고 알려주시네요.ㅋㅋ
저도 좀 통통 튀게 쓰면 좋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오래된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괜히 차분해지더라구요.

사실 이 글은 애초부터 쓰려고 마음 먹은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오래 전 칼국수집을 다시 갔더니 생각이 마구마구 떠올랐고
며칠에 걸려 썼죠. 이렇게 qualia님 칭찬을 받고 보니
공들여 쓴 보람이 있네요.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하신 거, 홍두깨와 밀대는 아닌가 싶어요.
밀대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홍두깨가 맞을 걸요?
아, 그러고 보니 뭐하나 정확히 아는 게 없네요.ㅠㅋ

qualia 2017-08-18 21:37   좋아요 2 | URL
주로 오정희 작가의 문학소녀 혹은 데뷔 시절 작품을 읽었더랬죠. 그때의 오정희 작가 비슷한 분위기를 stella.K 님 윗글에서 느꼈습니다. 오정희 작가의 젊은 시절 싱그러운 이미지의 사진이 작품집마다 실려 있었는데요. 윗글 읽는데 자꾸 그런 이미지가 미지의 stella.K 님 이미지로 오버랩되더라고요. ㅋㅋ 왠지 꼭 그럴 것 같다는... 뭐 제가 암것도 모르는 stella.K 님한테 오히려 실수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느낌이니까 용서해주세요. 오정희 작가 특징이 섬세하고 깊은 묘사가 압권이었던 것 같아요. 시각적 표피를 뚫고 들어가 존재와 세계의 숨어 있는 진실과 접촉하는 그런 묘사 말이죠. 세상과 인간 삶에 대한 다부지고 야무진 인식이 예사로운 작가완 많이 달랐죠.

오, 맞아요. 홍두깨가 맞습니다. 그리고 나무 판자는 걍 도마 혹은 칼도마라고 통칭했나봐요. 밀가루 반죽 밀 때 도마를 썼으니까요. 어머니께 전화해 여쭤보니까 그렇게 알려주시네요. 밀대는 홍두깨와 같은 도구를 가리키기도 하고 다른 도구도 가리키는 것으로 네이버 사전에 나오네요. ‘밀개’라는 명칭은 어렸을 때 들어본 것도 같아요. 아래에 인용해 놓을게요.

밀대 [발음 : 밀ː때]

1. 물건을 밀어젖힐 때 쓰는 막대.

[예문] 박 첨지 며느리는 됫박 위에 수북이 메밀을 담아 놓고 있었다. 밀대로 싹 밀어 되는 것이 아니다. 출처 : 안수길, 북간도

2. <군사> 소총 따위에서 노리쇠 뭉치와 연결되어 밀었다 당겼다 하는 긴 쇠. 큰 밀대와 작은 밀대가 있다.

3. ‘대걸레(긴 막대 자루가 달린 걸레)’의 잘못.

4. [방언] ‘밀개(1. 밀가루 반죽 따위를 밀어서 얇고 넓게 만드는 기구)’의 방언(충북).

관련 규범 해설

‘대걸레’의 의미로 ‘밀대’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대걸레’만 표준어로 삼고, ‘밀대’는 버린다.

관련조항 : 표준어 규정 3장 4절 25항

이렇게 작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군요. 인간 세상사 인연이 그렇게 맺어지는 것이겠죠. 아무튼 흥미진진한 세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stella.K 2017-08-19 15:08   좋아요 2 | URL
그래도 둘중 하나는 맞혔군요. 홍두깨.
전에 TV에서 들어 본 것 같아 그냥 한번 찔러 본 건데 말입니다.ㅎㅎ

오정희 작가 그랬군요.
모름지기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하는지 qualia님이 팁을
알려주신 것 같아 저는 오히려 고맙네요.
저도 글을 쓸 때 그렇게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시각적 표피를 뚫고 들어가 존재와 세계의 숨어 있는 진실과 접촉하는 그런 묘사 말이죠. 세상과 인간 삶에 대한 다부지고 야무진 인식˝이라.
명심하겠습니다.

qualia님 싱그럽게 느끼신 건 저의 젊었을 때의 한 일화를
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 친구가 싱그럽기도 해서일 겁니다.^^

blanca 2017-08-28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글도 좋고...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칼국수 얘기를 하시니 지금 감당이 안 되네요...한때 칼국수집에서 약속을 하면 전날 밤 칼국수를 생각하며 잠들고는 했었는데.... 저는 요새 드는 생각이 사람간의 관계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인연이 다하면 굳이 서로가 노력하거나 노력하지 않거나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평생 함께 하는 줄 알았는데...이젠 그럴 수도 없고 그런다고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stella.K 2017-08-28 15:37   좋아요 0 | URL
앗, 브랑카님이 이리 말씀해 주시니 제가 글을 잘 쓰긴 했나 봅니다.
뭐 칭찬은 이미 들어 알고는 있었습니다만.ㅎㅎㅎ

브랑카님도 칼국수 좋아하시는군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그렇네요. 관계의 유효기간.
저도 한때 브랑카님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런 생각 때문에 어떻게든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내보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그 생각을 못했네요.
세월이 흘러가듯 관계도 흘러가는 법인데 말입니다.
고마워요.^^
 
로리타 SE (1999) - [초특가판]
애드리안 라인 감독, 멜라니 그리피스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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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은, 명작은 누가 결정하는가였다.

젠가 난 영화 <대부>를 (다시)보고 이 영화가 아무리 대단한 영화라고 해도 

페미니즘 시각에서 보면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한 적이다.

아무리 느와르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하지만 그 영화는 철저하게 여성을 무시한다.

그 영화를 보고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건 남성 평론가를 포함한 남성 관객들일 것이다.

어떤 여성이 그 영화를 보고 나같은 혹평을 한다면,

이를테면 이건 피의 제전이고, 피의 예술일 뿐이라고 한다면

남성들은 영화를 볼 줄 모른다고 비아냥 거릴 것이다.

어떻게 세기의 명작을 볼 줄 모르냐며 수준이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아닐까?

물론 이 영화는 영상이나 스토리면에서 나무랄 때 없다.

더구나 세계적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를 전면에 기용했다.

그가 보여준 소녀를 향한 사랑과 불안, 절망과 증오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보코프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영화제작자들이

탐낼만한 하다고 생각한다.

 

 

험버트를 연기한 제레미 아이언스도 호연을 하긴 했지만 로리타를 연기한

도미니크 스웨인도 못지 않은 좋은 연기를 펼쳤다.

지금은 아줌마가 돼버렸지만 로리타를 연기했을 때만해도 저렇게 소녀티가

아직 남아 있다.

더구나 첫 등장씬이 더운 여름 날 스프링쿨러의 물을 맞아 젖은 착달라 옷을 입고

그위로 소녀의 몸매가 드러난다. 남자들이 경탄할만도 하겠다.

 

무엇보다 이 소녀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험버트는 저 모습에 한 눈에 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럴수밖에 없어 보이는 것도 로리타는 14살이다.

성에 눈을 뜨고 자신이 성적으로 얼마나 어필할 수 있는지를

험버트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천진난만한 소녀티를 벗지 못했다.

그래서 험버트를 아버지로도 느끼고 싶어했을 것이다.

이 양단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이 천진난만은 또 잘못 보이면 천박하거나

허술해 보일 수도 있다.

소아성애가 나타내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겠지만

바로 이 점도 있지 않을까?

너무 허술해 보여 정복하기에 쉬워보이는 대상인 점.

 

그렇지 않아도 로리타는 엄마의 죽음 이후 급격하게 허물어진다.

아빠겸 애인겸 아저씨인 험버트에게 너무 버릇없이 굴고,

지극히 미워하다가도  지나치게 집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원작은 문체의 맛이라는 게 있긴 한데

작품이 유명한 건 나보코프의 문체가 아니라 그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소아성애자를  다루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소설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그때까지 없었던 인물을 창조내는 것,

그런 점에선 탁월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 작품 역시 여자를 희생시켜야만 했다.

 

다시 한 번 보라.

로리타가 험버트에 의해 어떻게 혹사당하고 망가지는지를.

이걸 보고도 명작이란 말이 나올까?

그렇다면 역사가 히스토리 즉 남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만큼이나

명작은 남자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을 오랫동안 학습한 결과는 아닐까?

 

그렇다면 명작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재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난 이 작품이 문제작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명작이라고 보는 건 남성주의에 편향된 시작이라고 본다.

난 왜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이 소위 이런 텍스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명작이 아닌 것에 왜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로리타는 험버트를 통해 자신이 여성임을 증명해 보고자하지만

세상에 모든 소녀들이 다 로리타 같지는 않다.

여자들은 아이 때부터 생래적으로 남자를 두려워하는 심리적 기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시절 여름에 외갓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때 고등학교에 다니던 외삼촌 친구가 와 있었고,

뭐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집엔 나와 그 달랑 둘이만 남겨진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고등학생은 청소년에 불과하지만

조그만 계집아이가 볼 때 그는 아저씨다.

외삼촌 친구는 친절하게 나에게 주산 놓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내가 속으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건 내가 그 나이에도 여자로서 자기보호본능이

있었다는 것일 게다.

물론 로리타 같은 아이가 없으라는 법은 없겠지만 매우 특수한 경우고

대부분은 나와 같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리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로리타가 보편적인 인물일 수도 있다는 암시가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남성적 시각일 것이다.

 

또한 감독이 여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알아서 임신 능력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험버트라는 수컷과 성관계를 가졌으니 로리타는 훨씬 오래 전에 임신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행방불명 된지 3년만에 로리타는 어떤 남자와 결혼해 임신을 했다.

말이 되는가?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지만 좀 무책임하다.  

물론 험버트가 콘돔을 사용했는데 그 부분이 생략됐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초반에 보면 로리타의 엄마와 결혼하고 무려 6주 동안 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던가?

당시엔 콘돔이 없던가 험버트가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남자들 중엔 여자가 생리를 참으면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래서 왜 그런 것도 참지 못하느냐고 화를 낸단다.

(이 좇같은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처럼 이 영화가 얼마나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졌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 가지가 더 있는데, 험버트가 모텔에 로리타를 혼자두고

잠시 뭘 사러 다녀 간 사이 로리타에게 뭔가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다.

영화는 로리타가 자발적으로 밖에 나가 성관계를 하고 돌아온 것으로

설정하지만 로리타는 성폭력을 당했다.

 

보는 사람은 성폭력인데 영화는 자발적인 성관계로 표현했다.

그것을 험버트가 보호자라면 당연 응급 처치를 했던가

괜찮냐고 물어 보는 게 정상이지

말마따나 방금 성관계를 하고 들어 온 여자 아이를 상대로 절망적인 섹스를 한다는

설정이 가당키나 한가?

아무리 영화가 감성에 호소하고자 그런 설정을 한다고 하지만 상식을 저버리고

감성 호소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미친 개 쓰레기다.  

 

영화가 이렇다면 원작이라고 별로 다를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성이 여성적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듯

남성 역시 남성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렇게 보는 것이 다인 양, 진리인 양,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명작이나 걸작으로 남을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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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7-08-06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이게 왜 명작인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안읽었지만..ㅠㅠ 암튼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제라면 명작의 반열에 무조건 올리는 게 관행인 건지. 그나마도 저 책이 유아성애자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준 것도 아닌 듯한데... 앞으로 명작은 스텔라K님과 제가 정해버립시다!!!!
중간에 오타요
-보는 사람은 성록력인데 --> 성폭력

stella.K 2017-08-07 14:35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봅니다.
오타 손질 하느라고 하는데도 꼭 걸려요.ㅠ

그렇죠? 누가 원작이 좋다고 해서 언제고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 보고 욕구가 확 줄더군요.
저는 안나 카레니나도 명작이란 말에 동의할 수 없더군요.
캐릭터로만 봤을 때 말입니다.
물론 톨스토이 할배의 공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뭐 그런 거는
범접할 수 없겠지만.

문제는 명작이니 고전이니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게 남성주의 편향이
많다는 건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문제일 거라는 거죠.
이건 여자들도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요.
분명 다른 시각이 있다는 걸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특히 영화감독들의 남성주의 편향은 생각보다 심각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 남자 감독들 일정 기간 여성학 강좌 좀 듣고 메가폰을 들어도
들었으면 좋겠어요.ㅠ
 
광신자 치유 - 우리 안의 나쁜 유전자, 광신주의를 이기는 상상력의 힘
아모스 오즈 지음, 노만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몇 가지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 아모스 오즈란 작가를 난 이 책에서 처음 접한다.

책이 얇아서 아모스 오즈를 아는데 용이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또한 나는 현재 교회 세계  선교 기도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여러 지역 중 중동 지역을 위한 기도 모임에 나가고 있다.

물론 주로 그곳에 파견된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참석하다 보면 중동 지역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할 수가 있다.

같은 선상에서 이 책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나는 아모스 모즈가 말하고 있는 것에 동의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며 평등하게 잘 살자는 것.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제 한 세기가 넘어갔는데도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나라 한반도도 문제고, 유럽 난민도 문제다.

 

역사상 신의 이름으로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 없다.

그것이 기독교가 됐던, 무슬림이 됐던 아니면 제3의 신이 됐던 말이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없느니만 못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광신과 신앙 그리고 신념은 서로 구분되어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광신을 비판하고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

원래 신앙은 원초적이고 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거기에 인간의 신념과 권력이 수반이 되면 그 신앙은 변질되고

광신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변질된 신앙심을 이용한 살육과 영토 전쟁.

이것이 광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앙은 인간의 권력을 위한 필요악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중동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만큼 그렇게 과격하지 않다.

오히려 현지인들과 상호호혜의 원칙에 따라 잘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복음은 언제 전할 것인가 서두는 것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 따라 사랑을 실천할 뿐이다.

그리고 과격하게 복음을 전할 환경이 되지도 못한다.

물론 그들도 인간이니 사소한 갈등은 있을 수도 있겠지.

그것을 확대해석하거나 곡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아모스 오즈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일까?

당연 세상의 권력자들에게다. 그리고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들.

무고한 양민을 조정하는 악의 세력을 향해.

우린 확실히 이성을 되잖을 필요가 있다.

 

사실 오즈는 광신을 치유하는 건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글쎄, 내가 너무 문학을 얕보는 걸까?

그게 그렇게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

문학이 언제 그러리만큼 대중적이고 파급력이 강했던가?

 

그러나 오즈가 가진 힘은 믿고 싶다.

사람은 무엇이 됐던 어떤 힘을 가졌든 인류의 안녕과 번영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가진 꿈이 그저 돈이나 벌고 권력을 위한 것이라면

그건 얼마나 허무하고 동시에 위험한 것이 될까?

그럼 점에서 오즈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자신이 가진

재능과 권력을 세계 평화를 위해 외쳤다. 

 

그는 불을 끄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말했다.

하나는 방화자를 쫓아 응징하는 것이고,

아니면 여기 불났다고 신고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세 번째는 불에 직접 뛰어들어 끄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게 설혹 티스푼의 물이어도 말이다.

티스푼 가지고 무슨 불을 끄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티스푼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너도 나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불은 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꼭 오즈 같이 유명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바람이 그러하면 언젠가

이룰 날이 온다는 말도 되겠지.

그렇다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저 북한의 짧은 머리 광신자의 우두머리도 어느 땐가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인간의 희망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조금만 더 힘을내고 갈망하자. 

그가 어떻게 이성을 되찾고 굴복하게될지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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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05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교의 광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이를 증언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진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실에 기초하되 상상력을 채워 넣은 문학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진실의 비중이 적고, 상상력이 넘치는 문학은 수면 위로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습니다.

stella.K 2017-08-05 12:49   좋아요 0 | URL
명언이군.
혼자 멋있으면 어쩌자는 건지...ㅠㅋㅋㅋ
 

<크리미널마인드: 한국판>를 보고 있다.

처음엔 이걸 볼까 말까 망설였다.

범죄수사 드라마 잔인해서 보면 내 영혼이 상처를 받을까봐.ㅎㅎ

그런데 달달한 로코를 졸업하고나니 달리 대안이 없더라.

난 정말이지 로코는 끝까지 못 봐주겠다.

 

미국에서 크리미널 마인드가 처음 방영된 건 상당히 오래다.

그걸 우리나라가 한국판으로 만들었는데,

어떤 블로거가 미국판과 한국판을 비교한 글을 봤다.

그런데 이 사람 한국판을 좀 낮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 싶어 미국판 1편을 찾아 보았다.

 

뭐 다 보지도 않고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럴지 모르겠으나

난 한국판이 더 괜찮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더 탄탄하다.

미국판도 처음 방영됐을 당시 나쁘지 않은 스토리라고 자평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표현히는데만 집중했지 등장인물에 대한 심층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이게 가면 갈수록 드러나는 구조일 수도 있을지 모르나

주요 등장인물의 음울한 과거사가 보여진다는 점에선 한국판이 더 좋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너무 늦은 시간에 해서 그게 흠이긴 하다.

물론 늦게 자는 사람에겐 11시가 아직 초저녁 일수도 있지만

어제는 정말 이걸 끝까지 볼 수 있을까? 못 보면 재방송 보면 되지만

재방송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약간은 우려됐다.

 

아니나 다를까, 눈꺼풀이 자꾸 가라앉는다.

오, 근데 어느 순간 잠이 확 달아나는 장면이 전개된다.

그건 NCI 팀장인 강기형이 리퍼에 의해 그의 아내가 죽는 걸 무능력하게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장면. 그것도 그의 집에서.

 

범인을 잡으러 도착하면 아내는 이미 죽어 있을 거라는 걸 빤히 아는 상황. 

부부는 전화로 서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피가 낭자한....  

그걸 보는데  확 깼던 것이다.

                        

나쁜 놈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죽는 상황을 대면한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는데 살해 장면을 보는 것 보다 몇 배 더 잔인하고 안타깝다.

죽는 장면의 기술력이 여기까지 왔다니 새삼 놀랍기도 하고.

 

매회 마지막에 누군가에 의해 명언을 남기는 엣지가 나름 인상적이도 하다.

잘못 쓰이면 촌스러울 수도 있는데.

악마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인간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란 말을

톨스토이가 했군. 그만큼 악마는 확실히 있다는 소리겠지.

 

이 드라마 전체적인 구성은 마음에 드는데

캐스팅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특히 문채원은 이제 아줌마 역이나 맡아야 하는 건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

분발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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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8-04 12:1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가끔 CJ 엔터가 드라마를 잘 만들어요.ㅋㅋ

페크pek0501 2017-08-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자려고 티브이 끄려다가 우연히 이걸 보게 됐는데 잠이 확 달아날 만큼 집중시키더군요.
괜찮았어요.

stella.K 2017-08-04 12:11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그 블로거 어찌나 잰척을 하던지...
끝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해한모리군 2017-08-0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사과정이 좀 잘 안보여서 아쉬웠어요. 팀원들이 협조해서 수사하는 모습을 앞으로는 많이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너무 잔인해서 반쯤 눈을 감고봐요 ㅠㅠㅠㅠㅠ

stella.K 2017-08-05 09:50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프로파일링 기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잖아요.
범인의 이상 심리를 파헤치는 그래서 딱히 수사과정이란 게
보여줄 것이 없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기존의 분석 자료 가지고 대사처리를 하고 있으니.

장면은 가면 갈수록 더 잔인해질 것 같아요.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CJ엔터가 만드는 범죄 수사 드라마가 그런 게 많더라구요.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ㅉ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