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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타 SE (1999) - [초특가판]
애드리안 라인 감독, 멜라니 그리피스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3월
평점 :
이 영화를 보며 드는 생각은, 명작은 누가 결정하는가였다.
언젠가 난 영화 <대부>를 (다시)보고 이 영화가 아무리 대단한 영화라고 해도
페미니즘 시각에서 보면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한 적이다.
아무리 느와르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하지만 그 영화는 철저하게 여성을 무시한다.
그 영화를 보고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건 남성 평론가를 포함한 남성 관객들일 것이다.
어떤 여성이 그 영화를 보고 나같은 혹평을 한다면,
이를테면 이건 피의 제전이고, 피의 예술일 뿐이라고 한다면
남성들은 영화를 볼 줄 모른다고 비아냥 거릴 것이다.
어떻게 세기의 명작을 볼 줄 모르냐며 수준이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아닐까?
물론 이 영화는 영상이나 스토리면에서 나무랄 때 없다.
더구나 세계적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를 전면에 기용했다.
그가 보여준 소녀를 향한 사랑과 불안, 절망과 증오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보코프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영화제작자들이
탐낼만한 하다고 생각한다.

험버트를 연기한 제레미 아이언스도 호연을 하긴 했지만 로리타를 연기한
도미니크 스웨인도 못지 않은 좋은 연기를 펼쳤다.
지금은 아줌마가 돼버렸지만 로리타를 연기했을 때만해도 저렇게 소녀티가
아직 남아 있다.
더구나 첫 등장씬이 더운 여름 날 스프링쿨러의 물을 맞아 젖은 착달라 옷을 입고
그위로 소녀의 몸매가 드러난다. 남자들이 경탄할만도 하겠다.
무엇보다 이 소녀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험버트는 저 모습에 한 눈에 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럴수밖에 없어 보이는 것도 로리타는 14살이다.
성에 눈을 뜨고 자신이 성적으로 얼마나 어필할 수 있는지를
험버트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천진난만한 소녀티를 벗지 못했다.
그래서 험버트를 아버지로도 느끼고 싶어했을 것이다.
이 양단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이 천진난만은 또 잘못 보이면 천박하거나
허술해 보일 수도 있다.
소아성애가 나타내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겠지만
바로 이 점도 있지 않을까?
너무 허술해 보여 정복하기에 쉬워보이는 대상인 점.
그렇지 않아도 로리타는 엄마의 죽음 이후 급격하게 허물어진다.
아빠겸 애인겸 아저씨인 험버트에게 너무 버릇없이 굴고,
지극히 미워하다가도 지나치게 집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원작은 문체의 맛이라는 게 있긴 한데
작품이 유명한 건 나보코프의 문체가 아니라 그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소아성애자를 다루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소설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그때까지 없었던 인물을 창조내는 것,
그런 점에선 탁월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이 작품 역시 여자를 희생시켜야만 했다.
다시 한 번 보라.
로리타가 험버트에 의해 어떻게 혹사당하고 망가지는지를.
이걸 보고도 명작이란 말이 나올까?
그렇다면 역사가 히스토리 즉 남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만큼이나
명작은 남자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을 오랫동안 학습한 결과는 아닐까?
그렇다면 명작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재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난 이 작품이 문제작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명작이라고 보는 건 남성주의에 편향된 시작이라고 본다.
난 왜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이 소위 이런 텍스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명작이 아닌 것에 왜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로리타는 험버트를 통해 자신이 여성임을 증명해 보고자하지만
세상에 모든 소녀들이 다 로리타 같지는 않다.
여자들은 아이 때부터 생래적으로 남자를 두려워하는 심리적 기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시절 여름에 외갓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때 고등학교에 다니던 외삼촌 친구가 와 있었고,
뭐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집엔 나와 그 달랑 둘이만 남겨진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고등학생은 청소년에 불과하지만
조그만 계집아이가 볼 때 그는 아저씨다.
외삼촌 친구는 친절하게 나에게 주산 놓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내가 속으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건 내가 그 나이에도 여자로서 자기보호본능이
있었다는 것일 게다.
물론 로리타 같은 아이가 없으라는 법은 없겠지만 매우 특수한 경우고
대부분은 나와 같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리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로리타가 보편적인 인물일 수도 있다는 암시가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남성적 시각일 것이다.
또한 감독이 여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알아서 임신 능력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험버트라는 수컷과 성관계를 가졌으니 로리타는 훨씬 오래 전에 임신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행방불명 된지 3년만에 로리타는 어떤 남자와 결혼해 임신을 했다.
말이 되는가?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지만 좀 무책임하다.
물론 험버트가 콘돔을 사용했는데 그 부분이 생략됐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초반에 보면 로리타의 엄마와 결혼하고 무려 6주 동안 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던가?
당시엔 콘돔이 없던가 험버트가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남자들 중엔 여자가 생리를 참으면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래서 왜 그런 것도 참지 못하느냐고 화를 낸단다.
(이 좇같은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처럼 이 영화가 얼마나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만들어졌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 가지가 더 있는데, 험버트가 모텔에 로리타를 혼자두고
잠시 뭘 사러 다녀 간 사이 로리타에게 뭔가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한다.
영화는 로리타가 자발적으로 밖에 나가 성관계를 하고 돌아온 것으로
설정하지만 로리타는 성폭력을 당했다.
보는 사람은 성폭력인데 영화는 자발적인 성관계로 표현했다.
그것을 험버트가 보호자라면 당연 응급 처치를 했던가
괜찮냐고 물어 보는 게 정상이지
말마따나 방금 성관계를 하고 들어 온 여자 아이를 상대로 절망적인 섹스를 한다는
설정이 가당키나 한가?
아무리 영화가 감성에 호소하고자 그런 설정을 한다고 하지만 상식을 저버리고
감성 호소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미친 개 쓰레기다.
영화가 이렇다면 원작이라고 별로 다를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성이 여성적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듯
남성 역시 남성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렇게 보는 것이 다인 양, 진리인 양,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명작이나 걸작으로 남을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