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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 치유 - 우리 안의 나쁜 유전자, 광신주의를 이기는 상상력의 힘
아모스 오즈 지음, 노만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몇 가지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 아모스 오즈란 작가를 난 이 책에서 처음 접한다.
책이 얇아서 아모스 오즈를 아는데 용이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또한 나는 현재 교회 세계 선교 기도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여러 지역 중 중동 지역을 위한 기도 모임에 나가고 있다.
물론 주로 그곳에 파견된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참석하다 보면 중동 지역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할 수가 있다.
같은 선상에서 이 책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나는 아모스 모즈가 말하고 있는 것에 동의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존중하며 평등하게 잘 살자는 것.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제 한 세기가 넘어갔는데도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나라 한반도도 문제고, 유럽 난민도 문제다.
역사상 신의 이름으로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 없다.
그것이 기독교가 됐던, 무슬림이 됐던 아니면 제3의 신이 됐던 말이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없느니만 못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광신과 신앙 그리고 신념은 서로 구분되어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광신을 비판하고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
원래 신앙은 원초적이고 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거기에 인간의 신념과 권력이 수반이 되면 그 신앙은 변질되고
광신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변질된 신앙심을 이용한 살육과 영토 전쟁.
이것이 광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앙은 인간의 권력을 위한 필요악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중동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만큼 그렇게 과격하지 않다.
오히려 현지인들과 상호호혜의 원칙에 따라 잘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복음은 언제 전할 것인가 서두는 것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 따라 사랑을 실천할 뿐이다.
그리고 과격하게 복음을 전할 환경이 되지도 못한다.
물론 그들도 인간이니 사소한 갈등은 있을 수도 있겠지.
그것을 확대해석하거나 곡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아모스 오즈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일까?
당연 세상의 권력자들에게다. 그리고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들.
무고한 양민을 조정하는 악의 세력을 향해.
우린 확실히 이성을 되잖을 필요가 있다.
사실 오즈는 광신을 치유하는 건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글쎄, 내가 너무 문학을 얕보는 걸까?
그게 그렇게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
문학이 언제 그러리만큼 대중적이고 파급력이 강했던가?
그러나 오즈가 가진 힘은 믿고 싶다.
사람은 무엇이 됐던 어떤 힘을 가졌든 인류의 안녕과 번영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가진 꿈이 그저 돈이나 벌고 권력을 위한 것이라면
그건 얼마나 허무하고 동시에 위험한 것이 될까?
그럼 점에서 오즈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자신이 가진
재능과 권력을 세계 평화를 위해 외쳤다.
그는 불을 끄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말했다.
하나는 방화자를 쫓아 응징하는 것이고,
아니면 여기 불났다고 신고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세 번째는 불에 직접 뛰어들어 끄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게 설혹 티스푼의 물이어도 말이다.
티스푼 가지고 무슨 불을 끄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티스푼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너도 나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불은 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꼭 오즈 같이 유명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바람이 그러하면 언젠가
이룰 날이 온다는 말도 되겠지.
그렇다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저 북한의 짧은 머리 광신자의 우두머리도 어느 땐가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인간의 희망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조금만 더 힘을내고 갈망하자.
그가 어떻게 이성을 되찾고 굴복하게될지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