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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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동네 서점이 같은 구역에 한 두개쯤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점이나 교보문고를 나가려면 버스타고 시내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동네 서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무작정 높이 쌓은 책더미 속에서 내가 원하는 책이름을 대면 그 서점주인은 사다리를 놓고라도 기어이 내가 원하는 책을 코앞에 내려놓는다. 나는 도저히 찾을 것 같지 않은 높이 쌓은 책들 속에 주인은 용케 잘도 찾아 대령해 놓은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정겹던지. 또 그뿐인가?  주인 아저씨 잘 사귀어 놓으면 막걸리 한 사발은 그냥 얻어 마실 수도 있었다.(물론 그 옛날 권하는 막걸리 한 사발은 내가 술을 잘 못하는 관계로 정중히 사양을 했지만) 어차피 책은 정찰제라 에누리 없는 장사고 그런 막걸리라도 권함을 받은 때가 있었으니 얼마나 정겨우랴?

깔끔하기로는 디스플레이가 잘된 대형 서점만 하겠는가? 특히나 요즘 같이 더운 날은 그런 대형 서점 같은 곳에 죽치고 앉아 마냥 책을 고르고 만지는 기쁨도 솔솔하다. 하지만 그곳 매장 직원은 친절하기는한데 정감은 없다. 정감 넘치기로야 동네 서점만 같겠는가? 그런 서점이 지금은 없어져 아쉬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8년 전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먼저 동네에 큰 길가에 동네 서점이 있었다. 그 서점을 지나치노라면 옛날 내가 단골로 다녔던 서점의 운치가 생각이나 좋았다. 그런데 그곳이 어느 날 없어졌다. 지금의 동네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서점이 있었는데 버스를 암만 타고 다녀도 그 서점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곳은 바로 몇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학교가 멀지 않으니 애들 참고서는 팔리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없다. 아쉽다.

요즘에도 그런 동네 서점이 있을까? 그나마 옛 향수를 그대로 간직하기론 헌책방이 아직 대안인 것 같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설마 이것이 없어지지는 않겠지? 고질적인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재한 것을 보면 다행이다 못해 대견하다 싶기도 하다. 물론 그나마 헌책방도 아무대나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이용하는 것도 아니지만.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책<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는 저자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곳의 서점을 소개하는 조금은 특이한 기행문이다. 특이하다고 하는 것은 책방을 소재로 했다는 것인데, 보통 기행문인 경우 시장이나 이색 명물이 있는 곳을 소개하건만 이 책은 서점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점점 사라져 가는 동네 서점을 저자는 유럽 각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간히 문학이나 예술가의 삶 등을 소개하므로 그 책이 거기 존재하게 된 경위와 역사 등을 말해줌으로 흥미를 배가 시켰다. 또한 사진도 꽤 낭만적으로 보여지고 있어 읽는대는 부담없이 손쉽게 읽혀진다.

그러고 보니 저자더러 우리나라 서점 기행문은 써 줄 수 없느냐고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과연 이 책만큼이나 동네 서점이 곳곳에 있을지 그래서 그만큼의 분량의 나올 수 있을런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도대체 그 많던 서점은 어디로 간 것일까?

사춘기 시절 한때는 책이 너무 좋아 서점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말에 의하면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면 오히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낭만적인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모든 건 대형서점 아니면 인터넷 서점이 점유해 버리지 않았던가? 낭만적인 생각에 동네에 서점 차렸다고 배곯는 건 고사하고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나라에선 서점을 소재로한 기행문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다.

유럽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국가적 지원 시스템이라도 있는 걸까? 어쨌거나 이렇게 한권의 책이 되어 나오리만큼 그곳에 서점이 있다는 게 부럽고 우리나라엔 그 많던 서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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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서평단 알림
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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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지금까지 한번도 서울을 떠나 산적이 없다. 그래서 일까? 어렸을 땐 가끔 명절 때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고, 시골에 외가나 친가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것은 내 어린 마음에도 서울은 너무 삭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나마 어렸을 적 외가가 부천에 있었기 때문에 방학 때 놀러가는 재미가 좋았다. 그래도 부천은 서울과 가까운 편이라 내가 시골에 갖는 동경을 완전히 채워 주지는 못했다.

왜 나는 서울을 싫어했던 것일까?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이 책에서도 "내기"와 "뜨기"란 말의 어원과 구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는 한데, 사람들은 '서울내기'에 대해 안 좋은 형용사를 붙이기 좋아해서가 아닐까 한다. 그중 하는 말이 "서울 깍쟁이"란 말이다. '깍쟁이'란 말은 얌체 같고, 사리에 밝으며, 필요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 붙었다를 이를 때 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만큼 삶이 진중하지 못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나도 정말 깍쟁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세태가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서울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서울 토박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타지방과 비교해서 무엇무엇이 좋다는 비교의식이나 지방색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냥 내가 태어난 곳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이것은 내가 타지방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고 생활하는 곳을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습성이 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오래 서울에서 나고 자라도 내가 정말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사실 서울에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내가 가본 곳 보다 안 가 본 곳이 더 많으니, 세계 지도 아니 당장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서울은 한 점에 불과해도 나에겐 서울은 너무 넓어 보인다.

내가 이렇게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을 때 운 좋게도 나에게로 온 책이 <서울은 깊다>였다. 저자는 (아마도) 소장파에 속하는 역사학자이다. 그는 28개의 쳅터로 나눠 속속들이 서울의 명물로부터 시작해서 골목 골목을 누비며 지난 날 역사속에서 서울을 문화사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특히 그 글의 시작은 항상 비교적 최근의 사회적 또는 문화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사안들을 가지고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우리를 과거속 서울로 안내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가히 깊다 하겠다.

다알겠지만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고 그러니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의 역사는 깊다. 누대에 걸쳐 몇번의 개명을 거쳐 지금의 서울이 되었다. 지금의 서울이 서울로 불리기까지의 그 의미도 깊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것과 더불어 서울을 서울답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고, 생활양식이며, 건축이고, 소소한 물건에도 녹아져 있음을 필자는 전방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때 우리 가족은 서울을 떠날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서울 자체에 살기 보다 좀 더 쾌적한 삶을 위해 서울의 위성도시로 빠져나가는 추센데 우리도 그 대열에 끼일 뻔했던던 적이 있었단 말이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서울에 눌러 살고 있다. 그것이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땐 편하기도 하다. 모든 것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공존하기 마련이니 어떤 것에 의미를 둘 것이냐는 역시 선택의 문제이고 생각의 차이인 것 같다. 

한곳에 올해 살고 보니 그곳의 변화를 지켜 볼 수 있다는 게 나름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 서울은 디자인 혁신 도시로 거듭날려고 하고 있다. 그런 서울을 서울 토박이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 볼 수 있다는 게 자못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겉모양에만 관심을 갖기 보다 서울이 어떤 역사와 문화적 단계를 거쳐 발전하고 변모해 왔는가를 알고 앞으로의 서울을 지켜보는 것도 서울을 아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에 대한 교양서로 이 책은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일독을 권한다.

사족을 달자면, 나는 이 책이 도판이 많아 금방 읽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 보다 그리 만만하게 읽힐 책은 아니었다. 원래 깊은 것은 음미하게 되기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도 제목이 상징하는 바도 깊다는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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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7-13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서평단에 떨어져서 너무 섭섭했어요. 진중하게 읽히나 봐요.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가 몹시 인상 깊었는데 또 다른 느낌의 서울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stella.K 2008-07-13 17:18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만에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노아님은 더 좋은 책에 서평단 될 거예요.
그래도 <돌베게>가 저력있는 출판사잖아요. 여기서 나오는 책
다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기회되면 읽어 보셔요.^^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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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는지 좀 아이러니 하다. 원제도 그럴까? 독일어는 까막 눈이니 알길이 없다(그렇다고 다른 언어는 알고 있는 게 있냐마는...). 요즘에는 좀 파격적이고 음산하고 특이해야 먹어주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메디컬 스캔들'라. 뭐 그것까지는 봐 줄만하다. 사실 병원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함이야 모르는 바 아니니 스캔들은 스캔들이지. 하지만 스캔들도 나름 넓은 의미에서 이렇게 써 볼 수는 있겠지만 보통은 이만한데 쓰지는 않지 않는가? 그래도 뭐 은유로 받아 주자.  원래 이 '스캔들'이라는 단어는 부조리하며 그것이 또한 파격적일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그런데 작은 글씨로 '읽기 두려운'이란 수식어를 썼다. 하지만 뭐 정말 읽기가 두려운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저자가 왜 이 글을 썼는지 그 의도를 모르지는 않겠다. 문장도 위트있게 써서 나름 괴로운 독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정한 저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읽다보면 "의사는 사실 그다지 똑똑하지도, 지성적이지도 않으며, 실수투성이고, 비양심적이기도 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그 정도는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도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을 이 책은 좀 더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근데 읽으면서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더 불신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난 웬지 저자의 문투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위트 있게 쓰려고 했다는 것은 나름 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의사의 입장에서 의사를 까려니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겠지. 그래서 최대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려고 하다보니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의사는 사실 알고보면 이래요 하며 나열식의 건조함이 느껴진다. 물론 그 배후엔 이러지 말자는 각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찌보면 무책임하게도 느껴진다. 뭘 어쩌라는 건지? 굳이 이해하지면 뭐든 양면성이 존재하니만큼 의사라는 직업의 어두운 면을 들춰냈다는 성과는 있을 것이다.

조금 생각해 볼만한 대목 하나는  어느 수녀의 눈물이었다. 수녀가 진찰을 받기 위해 알몸이 되고, 생리적 현상까지 참지 못해 결국 수치감에 울어야 했다는 내용이다. 사실 어린 아이가 병원에 가기 싫은 건 딱 한가지 이유다. 주사 맞기 싫은 것. 그러나 성인이 되서 병원에 가기 싫은 건 바로 이 수치감 때문이다. 오래 전, 내 후배가 유방 검사를 받기 위해 윗통을 벗어야했을 때를 얘기해 준적이 있다. 그냥 의사대 환자라고 생각하고 안면몰수하고 벗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수치가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솔직히 나도 한때는 의사 앞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어느 돌팔이 지압사에게서 속옷바람으로 지압을 받아야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린 아이라고 수치감이 없겠는가? 있다.

난 그래서 지금도 아픈 것이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의사 앞에 내 몸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솔직히 병원에 가면 얼마나 초라해지는지는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만이 아는 거니까. 그리고 오진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말해 뭐하겠는가?  

어쨌거나 병원이 오히려 병을 더 키운다는 말은 오랜 정설처럼 되어있다. 같은 선상에서 이 책은 나왔을 것이다. 각성하고 좀 더 나은 의료 행위를 위해 썼을 것이다. 사실 저자는 환자를 환자라 부르지 않고 '고객'이라고 부르자고 촉구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병원의 잠재적 고객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이야기 보다 아예 고백적이거나 아니면 의료 행위의 휴머니즘적 보고서를 읽었다면 좀 더 책 읽는 맛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읽고나니 뭔가가 모호해졌다. 왜 이런 식으로 기획을 했는지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이 책을 고른 내가 문제인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차라리 의학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괜히 아쉬운 마음을 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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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랑 2008-06-1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아서 뭐라고 평 할 수는 없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서평을 약간 비판적으로 하셨는데 용기가 부럽군요^^

2008-06-15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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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하는 사람중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예외가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음악을 좋아하거나 거의 매니아 수준의 광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내가 처음 읽은 이 소설의 작가 김중혁도 음악 꽤나 좋아하는 작가임을 읽는 중에도 어렵잖게 감지해 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8편의 그의 단편을 읽어보면 어떤 식으로든 음악 행위를 하는 인간들의 삶을 얘기하고 있지만 성공한 사람의 밝고 화려한 면을 보여주기 보단 다소 마이너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있다. 만약 그랬다면  단편들의 주인공들은 고상하게 클래식을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마이너적 삶의 이미지란 무엇일까? 어찌보면 드러나지 않고, 아마추어적이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가 나름 뚜렷한 그 무엇이 아닐까?(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도 마이너겠지만) 작가는 이런 이미지들을 잘 포착해내는 작가인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젊다.

특히 나는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해 본 것인데 그 문체가 어찌보면 하루키를 연상시키는 듯 하다. 이런 독특한 문체는 비록 같지는 않을지라도 박민규도 구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확실히 요즘 젊은 작가의 추세인 것 같다. 이전 세대의 작가들이 구사하는 문체하곤 그 색채가 다르다. 확실히 이전 세대의 작가는 몸으로 부딪혀 처절한 삶을 보여준다면,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뭔가가 모호하고 이미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하나의 경향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전 세대의 문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읽는데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늘 그렇지만 작가 스스로가 추천하는 작품과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품이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나는 김중혁 작가에게 대리 서면 인터뷰를 통해 애착이 가는 작품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쑥스러워 하면서 <매뉴얼 제너레이션>을 추천했다. 그런데 나는 <비닐광 시대>가 좋았던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그 느낌이 오래 전 보았던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특근>이란 영화를 연상케 했다. 왜 좋은지, 그 두 작품의 공통점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이 지면에서는 언급을 회피하겠지만, 마틴 스코세지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감독중 하나고 나는 그 영화를 상당히 인상 깊게 봤다. 나중에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소설 <비닐광 시대>와 영화 <특근>을 볼 기회가 있다면 내가 왜 좋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8편의 소설의 특징은 단 한편도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물론 '무방향 버스'같은 경우 사라진 화자의 어머니를 그리긴 했다. 하지만 화자는 역시 남자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김훈 같이 마초적이어서라기 보단 그냥 솔직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남자 작가가 여자를 주인공으로 글을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거나 내공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여성의 심리는 워낙에 섬세하고 복잡한 것이어서 아예 피해 갔던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김중혁 같이 쓰는(작가는 정작 이런 표현을 달가와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성 작가를 나는 아직 만나보질 못했다. 이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의 문제다. 하지만 그런 작가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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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8-06-10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인본에 감동 받으셨나요? 리뷰가 정성스럽네요. ^^

stella.K 2008-06-10 13:37   좋아요 0 | URL
하하! 야클님 칭찬 들으니 어깨가 으쓱!^^
하지만 제가 언제는 리뷰를 정성스럽게 안 쓰던가요?>.<;;

루니앤 2008-07-2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문장이 참 친구처럼 느껴졌어요 : )

취향이란 참~ 호호

stella.K 2008-07-22 13:56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리앤님도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신가 보군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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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그의 책 <미학 오딧세이> 첫 권을 읽었더랬다. 워낙에 어려운 미학을 대중을 겨냥해 쉽게 풀어놓은 책이라고 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첫 권만 간신히 읽어내고 나머지는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그리고 몇년 뒤 다시 그의 책에 도전하면 조금 쉽게 읽혀지려나 싶었는데 역시 나의 무지만을 확인하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덥었다.

미술이 뭐 그리 어려운 건가? 그냥 보고 느껴주면 되는 것 아닌가? 인터넷을 시작하고부터 웬만한 그림은 서핑만으로도 충분히 많이 보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 작가 빼놓고는 서양 미술은 이렇구나 하는 정도일뿐, 거기에 어떠한 의문도 평가도 내릴 수가 없었다. 작가가 그렇게 그리겠다는데 거기에 무슨 토를 달을 수 있겠단 말인가? 다만 놀라운 건 면면히 이어오는 그림들을 보면서 인간의 무궁무진한 창의력에 놀라움과 경의를 표할뿐이지. 지금도 미술사조는 계속 생성되고 있지 않는가?    

미술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교양과 지식으로 쌓아둘려면 공부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진중권 씨가 대학 강단에서 또는 방송매체를 통해 강의하였던 것을 책으로 역은 것이라고 한다. 강의 한번 듣고, 책 한 번 읽었다고 미학이란 어려운 분야를 깨우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꾸 듣고 접하면 이 분야에 대해서도 듣는 귀가 생기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건 작품의 분할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미술작품을 볼 때 그냥 보지만 화가들은 일정 분량의 분할을 하고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술도 일정 부분 수학공식이 적용되는 것이다. 또한 그러니만큼 감성 못지 않게 이성적이라고나 할까? 또한 독일의 화가 빙켈만을 기술한 부분이 인상에 남는다.   

아무튼 미학의 대중화를 힘쓰는 진중권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언제쯤이면 애쓰는 저자의 가르침이 머리에 들어 올런지 모르겠다.  

별점이 그리 높지가 않은데 그것은 저자의 책의 가치가 미약해서가 아니다. 나의 이해도가 그쯤이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표현했을뿐이다. 미학이 이런 것이구나를 알면 이 별점은 또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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