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는지 좀 아이러니 하다. 원제도 그럴까? 독일어는 까막 눈이니 알길이 없다(그렇다고 다른 언어는 알고 있는 게 있냐마는...). 요즘에는 좀 파격적이고 음산하고 특이해야 먹어주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던가? '메디컬 스캔들'라. 뭐 그것까지는 봐 줄만하다. 사실 병원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함이야 모르는 바 아니니 스캔들은 스캔들이지. 하지만 스캔들도 나름 넓은 의미에서 이렇게 써 볼 수는 있겠지만 보통은 이만한데 쓰지는 않지 않는가? 그래도 뭐 은유로 받아 주자.  원래 이 '스캔들'이라는 단어는 부조리하며 그것이 또한 파격적일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그런데 작은 글씨로 '읽기 두려운'이란 수식어를 썼다. 하지만 뭐 정말 읽기가 두려운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저자가 왜 이 글을 썼는지 그 의도를 모르지는 않겠다. 문장도 위트있게 써서 나름 괴로운 독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정한 저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읽다보면 "의사는 사실 그다지 똑똑하지도, 지성적이지도 않으며, 실수투성이고, 비양심적이기도 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그 정도는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도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을 이 책은 좀 더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근데 읽으면서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더 불신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난 웬지 저자의 문투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위트 있게 쓰려고 했다는 것은 나름 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의사의 입장에서 의사를 까려니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겠지. 그래서 최대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려고 하다보니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의사는 사실 알고보면 이래요 하며 나열식의 건조함이 느껴진다. 물론 그 배후엔 이러지 말자는 각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찌보면 무책임하게도 느껴진다. 뭘 어쩌라는 건지? 굳이 이해하지면 뭐든 양면성이 존재하니만큼 의사라는 직업의 어두운 면을 들춰냈다는 성과는 있을 것이다.

조금 생각해 볼만한 대목 하나는  어느 수녀의 눈물이었다. 수녀가 진찰을 받기 위해 알몸이 되고, 생리적 현상까지 참지 못해 결국 수치감에 울어야 했다는 내용이다. 사실 어린 아이가 병원에 가기 싫은 건 딱 한가지 이유다. 주사 맞기 싫은 것. 그러나 성인이 되서 병원에 가기 싫은 건 바로 이 수치감 때문이다. 오래 전, 내 후배가 유방 검사를 받기 위해 윗통을 벗어야했을 때를 얘기해 준적이 있다. 그냥 의사대 환자라고 생각하고 안면몰수하고 벗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수치가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솔직히 나도 한때는 의사 앞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어느 돌팔이 지압사에게서 속옷바람으로 지압을 받아야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린 아이라고 수치감이 없겠는가? 있다.

난 그래서 지금도 아픈 것이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의사 앞에 내 몸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솔직히 병원에 가면 얼마나 초라해지는지는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만이 아는 거니까. 그리고 오진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말해 뭐하겠는가?  

어쨌거나 병원이 오히려 병을 더 키운다는 말은 오랜 정설처럼 되어있다. 같은 선상에서 이 책은 나왔을 것이다. 각성하고 좀 더 나은 의료 행위를 위해 썼을 것이다. 사실 저자는 환자를 환자라 부르지 않고 '고객'이라고 부르자고 촉구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병원의 잠재적 고객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이야기 보다 아예 고백적이거나 아니면 의료 행위의 휴머니즘적 보고서를 읽었다면 좀 더 책 읽는 맛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읽고나니 뭔가가 모호해졌다. 왜 이런 식으로 기획을 했는지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이 책을 고른 내가 문제인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차라리 의학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괜히 아쉬운 마음을 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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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랑 2008-06-1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아서 뭐라고 평 할 수는 없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서평을 약간 비판적으로 하셨는데 용기가 부럽군요^^

2008-06-15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