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어 고독에 세 들어 살고있다. -림태주


시를 읽을 때, 아름다운 글을 오랜만에 접할 때 한동안 무뎌졌던 나의 정서가 가늠이 되어 좋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분명 살아 있구나 실감한다. 이전보다 조금은 말랑말랑해진 그 마음에는 온갖 생각들이,기억들이 출몰하는건 덤이다. 자꾸 뭐라도 끄적이고 싶어진다. 이 책은 그런면에서 탁월했다. 북마크를 여러곳에 붙이느라 힘이 들었고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메모해두고 셋길로 빠지는 바람에 두께에 비해 읽는 시간이 더뎠다. 그래도 그 시간을 즐겼다.


혼자 있을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을 돌보고 아낄 줄 안다는 뜻이다. 혼자일 때도 완전히 혼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워하느라 미워하느라 밀어내느라 누군가와 있기도 한다. 치열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애써 자기를 긍정하느라 사투를 벌이는 혼자도 있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약해지고, 또 강해진다. 고독은 어쨌든 강렬하게 나를 느끼는 것이고, 그런 혼자의 느낌은 살아 있는 동안의 ‘선물‘ 이다.
- P41


해마다 날이 추워지면 생존본능이 움트면서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절감한다. 그만큼 이 춥고 커다란 세상에 방치되어 혼자인 나를 느낀다. 가을과 겨울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놓았던 정신줄, 놓쳐버린 다짐들을 뒤늦게 나마 수습하기도 하니까. 특히 요럴땐 달콤 따뜻한 코코아가 오감을 녹여 바짝 곤두선 나를 위로해준다. (광고 카피같이 좀 유치하긴 하다.) 올해도 이렇게 떠나보내고 있다. 




사는 동안 사람은 한 권의 사전이 된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생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어휘와 정의 내린개념들이 빼곡히 세포에 기록된다. 기록한 페이지들을 한번도 펼쳐보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그 단어들을간추려 자신만의 문장으로 엮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 엮인 문장들의 졸가리와 고갱이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 P210


림태주님의 이 에세이를 읽으며 김소현의 '마음사전'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석원의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이 생각나기도 했다.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고 때로 혀를 차며 읽었다. 깊이 있는 글은 글 쓴이의 심사숙고와 반복된 사색의 결과물로 여겨져 읽고나면 고맙기도 하고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이런 빚은 김장김치를 담아두듯 마음에 잘 담아두었다가 적절할 때 나누어야 갚아낼 수 있다. 정곡도 여러번 찔렸다. 찔린 정곡들은 기존에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잡생각일 때가 많아서 미숙하고 여린 곳의 찔림이 약한 곳에 맞는 좋은 침 같다. 든든하고 치료받은 기분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훈훈한 에세이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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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11-24 18:2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좋은 침 맞고 싶네요! 엄청난 플래그~~ 코코아 한잔 하고 싶어지는 따끈한 리뷰😘

청아 2021-11-24 18:44   좋아요 4 | URL
간만에 가득차는 감성 놓치기 싫더라구요.ㅎㅎ 침 많이 맞아 월동준비 완료^^*♡

새파랑 2021-11-24 18: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북마크네요 ㅋ 따뜻한 차가 생각나는 에세이가 맞는거 같아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따뜻함을 느꼈는데 공감이 가네요 ^^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딱 어울리는 📚

청아 2021-11-24 18:46   좋아요 5 | URL
네! 완전 딱이었어요^^*👍여기 담긴 몇가지 이야기는 눈물 나더라구요.가위바위보할때 보만 내는 친구얘기같은~♡

scott 2021-11-24 19:35   좋아요 3 | URL
보 .🖐 ^^

청아 2021-11-24 20:00   좋아요 3 | URL
저도 보🖐ㅋㅋㅋㅋ

오거서 2021-11-24 21:48   좋아요 3 | URL
저도 보🖐 ㅋㅋㅋㅋㅋ

mini74 2021-11-24 18: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앗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와요 ~ 미미님의 말랑말랑한 맘이 느껴집니다 *^^*

청아 2021-11-24 18:59   좋아요 5 | URL
미니님~♡ 이 책은 추위에 뜨끈한 코코아. 저는 마시멜로가 되어 녹아버림요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11-24 21: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밑줄만큼 많은 태그이네요~~
겨울밤 언 마음을 녹여줄 문장이 가득할 것 같아요^^
페크님께서 ‘것‘,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페이퍼가 하나의 작품입니다.

청아 2021-11-24 21:50   좋아요 4 | URL
페크님 글 읽은 덕분인가봐요^^♡ 때로 중독 수준인데ㅋㅋㅋ 페넬로페님 말씀에 믿기지않아 다시 읽어봤네요. 칭찬고맙습니다🙆‍♀️

2021-11-24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4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4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4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21-11-25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 님 사진까지도 좋으네요^^
커피 한잔과 함께 페이퍼 맛나게 마셨어요.

청아 2021-11-25 12:22   좋아요 2 | URL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프레이야님^^*♡ 맛집이되도록 노력할께요ㅎㅎ

페크pek0501 2021-11-25 1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들이 꼬리를 무는 것, 참 좋은 거지요. ^^

청아 2021-11-25 15:36   좋아요 1 | URL
네~♡♡ 시나 에세이 읽을때 이런점이 가장 좋아요!😄

서니데이 2021-11-25 1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생각하니 저희집에 김소연님의 마음사전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읽은지 조금 되었네요.
오늘 같은 날은 따뜻하고 달콤한 코코아 맛있을 것 같은 저녁이예요.
미미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청아 2021-11-25 19:1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도 마음사전 갖고 계신가봐요. 읽을 땐 제법 공부가 되고 좋은데 어렵기도 해서 읽다 말았어요ㅎㅎ 추울땐 역시 코코아죠!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저녁시간 되세요^^*♡
 

꿈은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 P160

인간의 삶은 분명하기보다는 오히려 모호하고, 특별하기보다는 일상적이고, 가득하기보다는 허허롭고 외로운 조건에 속해 있다. 나는 식물을 기르면서 자주 생각한다. 나라는생명체도 자연이 기르는 식물에 불과하다고, 우주의 어느한 귀퉁이에 스스로 살아내도록 바깥에 방치해둔 것이라고, 자연이나 신이 내게 그런 메시지를 준 적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며 산다. 자연이 내게 부여한 특별한 의미가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생명을 얻었으므로 목숨을 다해 외로운 조건들과 싸우며 살아간다. 나에게 집사가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 자신일 것이다.
- P164

도끼로 장작을 팰 때도 절단목을 세워놓고 나무의 결대로 내려치면 힘들이지 않고도 쩍 쪼개진다. 경험 없는 자가나무를 가로로 눕혀놓고 도끼질을 하면 나무가 도끼날을사정없이 튕겨낸다. 힘을 쓸수록 도끼날이 망가진다. 순리를 거스르면 쇠도 죽은 나무 하나를 이겨내지 못한다.
- P166

문장과 문장 사이에도 멈칫하는 사월이 있다. 행간이라고 한다. 바로 읽히지 않고 생각해봐야 속뜻이 드러나는 구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런 사월의 행간이 필요하다. 모든 관계가 직선 구간처럼 시원하게 거침없이 뚫려 있으면좋겠는데, 조금 돌아가야 하고 조금 참아줘야 하고 조금 기다려줘야 하는 커브 구간이 있다. 지리 시간에 배운 게 있다. 기름진 삼각주는 유속이 빠른 강 상류가 아니라 하류의느린 커브 지대에 형성된다.  - P171

국수나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 나무의 꽃은 국수 가락처럼 희다. 조팝나무는 작고 하얀 꽃들이 다닥다닥 붙은모양이 좁쌀을 튀겨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배를 끓던 시절에 꽃도 국수나 밥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쌀밥을 묘사한 나무도 있다. 이팝나무의 꽃은 쌀밥이 사기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듯한 모습이다.
- P174

당신이 타인에게 보여준 언어가 되돌아와 당신이 된다.당신이 별을 보여줬기 때문에 우주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당신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인 걸 나는 안다. 당신이 꽃을 들고 왔기 때문에 향기로운 사람인 걸 나는 안다. 당신이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정한 사람인 걸 나는 안다. - P197

생활은 의식의 표면이고 삶의 깊이를 반영한다.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이고, 이성과 감성을 결합하는 지점이다. 생활은 속일 수 없는 그 사람의 진실이다.
- P200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사전은 문장의 신을 만나기 위한 경전과 같다. - P207

사는 동안 사람은 한 권의 사전이 된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생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어휘와 정의 내린개념들이 빼곡히 세포에 기록된다. 기록한 페이지들을 한번도 펼쳐보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그 단어들을간추려 자신만의 문장으로 엮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 엮인 문장들의 졸가리와 고갱이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 P210

진정성은 자성이 있어서 사람을 끌어당긴다.
- P215

에린 헨슨ㅡ아닌것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 P224

당신은 당신의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 P225

가만히 있어서 아무는 상처란 없다. 그러니 나는 그런 나로 인해 또 얼마나 덧나고 곪았겠는가. 당신의 슬픔은 가만하지 않고 환한 대낮에 터트린 농담 같기를 바란다. 검은색말고 흰색의 울음 같은 것으로.
- P232

인생은 원하지 않아도, 한 줄의 묘비명으로 요약된다. 죽어서 살이 흩어지고 뼈만 남으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다고몇 마디의 평판으로 간추려진다. 그는 참 다정한 사람이었지, 그는 좋은 의사였지, 그는 무자비한 독재자였지, 그는돈밖에 모르는 구두쇠였지, 그는 유쾌하고 위트 있는 사람이었지,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으로 그의 일생을 추억하고 한 줄의 촌평으로 남긴다. - P239

산다는 건 무엇에 의미를 두고, 무엇에 의미를 두지 않을까를 정하는 일이다.
- P242

한 소녀에게 고백을 한다.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어른이 되면 우린 결혼할 거라고, 가진 낱말이 많아 완벽한문장으로 말한다. 그런데 부잣집 아이 말고 소녀를 좋아하는 가난한 집 아이도 있었다. 아이가 가진 낱말은 세 개뿐이다. 그것도 공중에 떠다니는 낱말을 곤충채집망으로 붙잡은 것이었다. 아이는 소녀에게 가서 자기가 가진 전부를 말한다. "체리, 먼지, 의자." 문장이 되지 못한 불완전한 낱말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녀는 말이 아니라마음을 보았으므로, 소녀는 아이에게 다가가 입을 맞춘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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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24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 책의 모든 문장을 💖하신다 ㅎㅎㅎ
올해의 책으로 🖐^^

청아 2021-11-24 16:52   좋아요 1 | URL
좋은 문장이 많아서 북마크 붙이느라 낑낑댔어요ㅎㅎㅎ🤦‍♀️🙆‍♀️

페크pek0501 2021-11-25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건 무엇에 의미를 두고, 무엇에 의미를 두지 않을까를 정하는 일이다.
- P242
정말 그럴까요?
저는, 산다는 건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며 사는 문제인 것 같아요. ^^

청아 2021-11-25 15:38   좋아요 0 | URL
결국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게 인생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페크님 말씀도 정답^^*👍
 

이게 다 프롤로그 속 말들이다.
읽는 동안 자꾸 나도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림태주 시인을 내가 왜 여태 몰랐지?
내가 모르는 대단한 분들이 물론 넘쳐나겠지만..
중학교때 좋아하던 국어 쌤 이름하고 비슷하다.ㅎ
몇년전 내가 다니던 중학교 인근에서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꾸벅 인사하자
아직도 내 눈에 너무나 근사한 아우라를 뿜던
선생님은 네가 누구냐 물으셨다. 나는 선생님도 기억하실만한 우리반 인기스타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선생님은 우리의 담임이셨다. 조금씩 기억난다며 활짝 웃으셨다. 시험에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 찾는다‘를
‘목마른 사람이 숭늉찾는다‘로 적어내 교실을 발칵뒤집어 놓던 친구는 분위기 메이커였고 내 절친이었다. 선생님은 잘 지내느냐고 이런저런 안부를 물어봐주셨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는데 선생님 품이 너무 따뜻해서, 여러 기억들이 그 안에서 몰아쳐 왈칵 눈물을 쏟을뻔했다. 임태*선생님! 그당시 선생님이 시를 읽어주실때 소설을 읽어주실때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어버렸다.












"시인 한 사람이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별자리에 특이한 움직임이 있다는말은 사실인 것 같다. 독일 시인 노발리스의 말이다. 시인들은 말수가 적으면서도 은유하는 말로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종족이다. 별은 무선조종장치 같은 걸로 사람의 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 P5

별이 말의 무덤, 혹은 말의 영혼이라는 증거는 또 있다.
알퐁스 도데의 『별』 첫 문장은 외로움이 짙게 묻어난다.
"뤼브롱산에서 양치기를 하던 시절, 나는 몇 주 동안이나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나의 개 라브리와 양들을 데리고 목장에서 혼자 지냈다."
작가가 제목으로 내세운 ‘별‘은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과 고립된 말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메타포가 아닐까. 별과말은 분명 하나의 운명이다.
- P5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어 고독에 세 들어살고 있다.  - P6

일상의 언어로 나긋나긋 자분자분 쓰려고 마음을 기울였다. 물론 내 말이 정답은 아니다. 산다는 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언어로 삶을 정의하는 일이라서, 나는 나의 생각과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정의를 내렸을 따름이다. - P8

줄 긋기는 인간의 오랜 습벽이다. 별들을 가만두지 못하고 줄을 그어 별자리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신화를 지어낸다. 그뿐인가. 이 개념과 저 개념에 줄을 그어 없던 학문을 만들어내고 진보를 거듭한다. 전 지구인을 ‘랜선‘으로 연결해 새로운 국경,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낸다. 인생이란 어떤 사람에게 선을 잇고 어떤 언어에 줄을 그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세상의 많고 많은 말들 중에 내가 밑줄을 그은 말들이 나의 언어가 된다. 이 책 안에 쓸모 있는 문장들이 있어서 단 몇 줄이라도 그대의 것이 된다면, 나는 메밀꽃처럼 환히 흐드러지겠다.
- P8

정말 사랑한다면 그에게 일 순위로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분산되지 않는 목숨의 몰입이 있어야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그에게 시간을 쓰고 있다면 그가 알아주는 몰라주는 나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마음만큼 진짜가 없고, 그 시간만큼 정말인 것은 없다. 시간이 진심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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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Schatten 2021-11-23 12: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와 좋아요. 이런 책 놔두고 왜 저는 흥분하고 성을 내면서 읽을 책을 자꾸 고르는 걸까요? ㅋㅋㅋ

청아 2021-11-23 13:05   좋아요 4 | URL
페르소나님 읽고 계신 책들도 흥미로워요~♡ 저 배수아 책 따라서 구매🙋‍♀️ㅋㅋㅋ

PersonaSchatten 2021-11-23 13:10   좋아요 5 | URL
그책 주인공의 행복이나 행보랑 상관없이 정말 힐링책이에요. 아직까지는. _ 제가 오죽하면 고기 한동안 먹고 싶지 않았다가 요즘 오리고기 땡겨서 닭가슴살을 어제 지져먹지 않았겠어요? 음식이랑 거리 묘사 나오는 거 너무 좋은데 그것도 아주 문장이 번역문 같으면서도 아닌 게 그런 것도 다 좋더라고요. ㅠㅠ

청아 2021-11-23 13:17   좋아요 5 | URL
배송된날 살짝 들춰봤는데 페소아의 불안의 서 분위기도 풍기는 듯 해서 좋더라구요. 페르소나님 말씀에 더 기대됩니다^^♡

scott 2021-11-23 12: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습니다. 서점 매대가 아닌 유리벽에 전부 붙여 놔여 하능 ㅋㅋㅋ 미미님 첫 문장 부터 밑 줄 쫘악~~५✍⋆*

청아 2021-11-23 13:08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ㅋㅋㅋㅋ북마크 엄청 붙이는 중! 이런 저런 추억소환되는 감미로움👍

페넬로페 2021-11-23 1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계절에는 시를 한 편 읽어야 하는데, 그죠! 제목도 좋고 인용하신 글들이 다 느낌 있습니다^^

청아 2021-11-23 14:04   좋아요 4 | URL
문장들이 다 느낌있죠!! 추운날 읽기에 그만이네요^^♡

페넬로페 2021-11-23 16:08   좋아요 2 | URL
저, 국어선생님 등장하는 페이퍼 쓰고 있는데 마침, 미미님도~~
성질은 좀 다르지만요^^

청아 2021-11-23 16:19   좋아요 2 | URL
오~페넬로페님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요!!ㅎㅎ😍

새파랑 2021-11-23 14: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름에 ‘태‘가 들어가야 멋진사람 인가 봅니다 ^^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미미님은 책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이 책 좋아요~!!

청아 2021-11-23 14:47   좋아요 2 | URL
ㅋㅋㅋ이석원님 에세이하고도 비슷하면서 또 다른것 같아요~^^♡

독서괭 2021-11-23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미미님도 이 책이 좋으셨나 봅니다. 람태주,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읽어본 게 없네요. 찜해둬야겠습니다~^^

scott 2021-11-23 15:13   좋아요 3 | URL
림!태주
저도 람태주로 읽고 냉큼 사들고 집에 와서 확인 해보니

림 ㅋㅋㅋㅋ

청아 2021-11-23 15:18   좋아요 3 | URL
주의사항은 읽다보면 가을 탈 수 있습니다~♡ 어떤 문장 읽다가 울뻔 했어요ㅎㅎ😭

청아 2021-11-23 15:1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스콧님~♡♡

독서괭 2021-11-23 15:21   좋아요 4 | URL
앗 림인가요? 람인 줄… 😳

책읽는나무 2021-11-23 15: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선생님♡
저는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 짝사랑 했었는데요...같이 짝사랑 했었던 친구 둘이랑 한 5 년 전이었나?찾아 뵀었죠~^^
선생님은 많이 늙으셨더라구요ㅜㅜ
아~~저도 미미님처럼 품이 따뜻해서 눈물 쏟았음 좋았을텐데...전 쌤이 예전의 센스 넘쳐 우리들 배꼽잡게 하시던 그때의 그 열정이 다 사라져 버리고 낯선 노인분이 앉아 계시는 것 같아 너무 서글퍼서 눈물 쏟을 뻔 했어요ㅜㅜ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뵙는 건 하지 말아야 겠다라고 다짐 했었네요ㅜㅜ
하지만 국어 선생님 좋아서 책 읽는 사람이 되게 해주신 점은 감사할 일이죠^^
이 책 예전에 오거서님과 스콧님 서재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책이 정말 좋은가 보군요?^^

청아 2021-11-23 15:29   좋아요 4 | URL
이 선생님 때문에 국어가 좋아져서 소설책도 더 찾아 읽었어요^^♡ 고등학교때도 담임선생님이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목소리가 역시 훌륭하셨고요. 저를 기다려주지(저 혼자 기다려달라고 상상ㅋ) 않으시고 무용수와 결혼하셔서 울었었죠ㅋㅋㅋㅋ저도 그런저런 이유로 찾아뵙질 못했는데 길에서 보자마자 달려갔어요! 선생님이 너무 고맙다고 하시고 안아주시니 뭉클하고 세상이 절 안아주는 것같이 행복했어요. 기회되면 꼭 읽어보세요. 프롤로그부터 감동받았습니다😍

하나의책장 2021-11-24 0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밤에 읽으니, 너무 좋아요^^
어쩜, 구절 하나하나 다 주옥같죠?♥

청아 2021-11-24 09:32   좋아요 3 | URL
헤헷^^ 감사해요 하나님 💕
밤아, 고맙다!ㅎㅎ

han22598 2021-11-24 0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한가봐요.
그렇지 않고선. 국어 선생님이 이렇게 멋있을 수 없잖아요. 그리고 알라딘 마을에 계신 모든 본들도 그렇고요...

미미님의 따뜻한 마음 뿌려주셔서 감사해요 ^^

청아 2021-11-24 09:36   좋아요 3 | URL
따뜻한 댓글 감사해요^^* 저도 이곳을 알고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네요. 늘 받는 것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mini74 2021-11-24 1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야기도 따뜻하고 발췌글도 따뜻하고. 넘 좋네요. 제 국어선생님은 ㅠㅠ 기억나는 거라곤 관동별곡이랑 상춘곡 다 외워야 했는데 못 외우면 손바닥 맞은 거. ㅎㅎㅎㅎ

청아 2021-11-24 14:22   좋아요 2 | URL
으앗!! 저는 수학을 그런식으로 맞으면서 배웠어요ㅋㅋㅋㅋ 뒤돌아보면 국어 선생님을 세 분이나 만났고 또 그분들이 더 기억이나요♡^^♡
미니님은 관동별곡,상춘곡 아직 외우시나요?(궁금)🙄

mini74 2021-11-24 14:57   좋아요 1 | URL
다 까먹은줄 알았는데 아이 고2때 프린트를 보는데 딱 기억이! 몸으로 외운건 오래가는 가봐요ㅠㅠ

청아 2021-11-24 15:16   좋아요 1 | URL
몸으로외운ㅋㅋ 그래두 역시 미니님👍제가 그럴것 같아 궁금했어요!! 저 당시 맞으면 잘 외웠는데 지금 수학 공식 기억 전혀 안나요😭
 

너였다. 지금껏 내가 만난 최고의 문장은, 나는 오늘도 너라는 낱말에 밑줄을 긋는다. 너라는 말에는 다정이 있어서,
진심이 있어서, 쉴 자리가 있어서, 차별이 없어서, 사람이있어서 좋았다. 나는 너를 수집했고 너에게 온전히 물들었다.
- P4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는 사람과 바쁘더라도 흔쾌히 시간을내주는 사람의 차이가 관계의 진정성을 가른다. 시간이야말로 확실한 진심의 지표다.
- P20

우리 모두는 시간앞에서 유한한 존재들이다. 내가 가진 시간의 양이 목숨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있다는 말은 내목숨의 일부를 내주고 있다는 의미다.  - P20

모두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얻으려고 목숨을 분산하지 마라.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내주어라. 그렇게 진실해지고 깊어지기를 원해라. 그래야 목숨이 흩어지지 않고 집약되고 축적된다. 그 집약과 축적의 관계를 사람들은 막역한 사이라거나 베스트 프렌드라거나 단짝이라거나 삼총사등과 같은 말로 부른다.
- P21

믿음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나의 유익과 기대 때문에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자신을 옭아매게 해서는 안 된다. 믿음은 내 마음을 지키고 다스리는 일이다. 나의 욕심을 잠그는 일이다.
- P25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숨은 뜻을 찾아 순례를 떠나고, 어떤이들은 은유법을 배워 시를 쓰고, 어떤 이들은 눈물바다를응고시켜 소금을 만든다.  - P28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ㅡ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중에서 - P30

제제의 말이 맞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으로 사는 게 아니다. 타인의 가슴속에서 죽으면 죽는다. 목숨의 길이는 생명공학 기술에 달려 있을지 모르지만 목숨의 깊이는 사랑의화학에 달려 있다. 누군가 당신을 흔드는 말을 한다면, 마음깊은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다른 목숨 하나가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떨림이 있고 울림이 있고 열이 나고 빛이 난다면 의심할 바 없다. 그것은 분명하고 진짜다.
- P32

넓게 보면 각 나라, 각 부족의 언어는 그들의 은어다. 그들을 다른 세계와 구분하는 중요한 징표이고 그들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우주적 차원으로 본다면 별들 하나하나가다 은어다. 반대로 미시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사람들 각자가 쓰는 말들도 다 은어다.  - P35

매혹적이지 않는가. 은어처럼 맑은 자갈돌 속에 숨는 말이 그대와 나 사이에 있다는 것. 우리 둘이서만 알아듣고 붉어지는 은어가 있다는 것,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분리되지 않은 궁극의 언어가 있다는 것.
- P37

외로움이 타인과의 관계, 외부적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라면쓸쓸함은 나와의 관계, 내부적 관계에서 오는 단절이다. 고독은 단절의 감정이 아니라 몰입의 감정에 가깝다. 몰입은중심에 집중하기 위해 주위를 거두는 상태이다. 고독은 고독을 뺀 나머지 모두를 소거한다. 그렇게 고독이 팽창하면혼자의 존재가 있음으로 가득해진다.
- P41

혼자 있을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을 돌보고 아낄 줄 안다는뜻이다. 혼자일 때도 완전히 혼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워하느라 미워하느라 밀어내느라 누군가와 있기도 한다. 치열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애써 자기를 긍정하느라 사투를벌이는 혼자도 있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약해지고, 또 강해진다. 고독은 어쨌든 강렬하게 나를 느끼는 것이고, 그런 혼자의 느낌은 살아 있는 동안의 ‘선물‘ 이다.
- P41

인간의 이성으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랑의감정이라면 더더욱 불가사의한 비합리와 비과학의 영역에있다. 차라리 우주를 이해하려고 덤비는 게 낫지 사랑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이해 불가한 것은 그냥 수용하거나 인용(認容)하거나 둘 중 하나다.
- P44

성격, 체질, 가치관, 식습관, 감수성, 말투, 취향 등등 모든것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이 정상이다. 우리는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가. 익숙한 여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와 다르지 않다면, 가서 보고 먹고 자고 만나고느낄 이유가 없다. 온갖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돈과 시간을 써가며 여행하는 이유는 여행이 다른 세계의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 P45

"말은 관계야. 관계의 핵심은 사람이고, 나는 내 필요보다상대를 먼저 생각하면서 말해, 말에 사람이 들어 있으면 금이고, 사람이 빠져 있으면 똥이야. 내가 무엇을 말할까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어떤 힘을 부여할까가 우선이야. 자부심,
자존감, 쓸모, 존중받는 느낌, 이런 게 다 힘이거든. 자기에게 힘을 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 P52

백 마디의 좋은 말 보다 나쁜 한 마디의 말에 자신의 기분을 온통 맡겨버릴 때가 있다. 이것은 생의 낭비다. 내면의 평화를 연습하지 않으면 인생은 악마의 말 한마디에도 함락될 수 있다. 인간은 우주 정거장을 건설할 수 있지만 자기 안의 감정과 마주할 탁자 하나 들여놓기가 어렵다.
- P69

인간은 침묵으로도 말한다. 말하기보다 침묵을 지킴으로써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말을 응축하고 닫음으로써 그 어떤 말보다 더 깊게 각인시킨다.
- P69

자주 생각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인 대상을 닮은 모습으로 삶은 물들게 마련이다.  - P70

우리는 하는 일, 하는 생각, 하는 말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신경을 집중한다. 어쩌면 인생은 하는 것이 아니라하지 않는 마음, 하지 않는 말에 진면목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사랑을 증명하기위해서 좋아하는 무엇을 하는 만큼, 싫어하는 무엇을 하지않는 것. 그 깊은 마음은 사랑을 그윽하게 만든다.
- P74

"너, 무슨 일이 있나 보구나. 거기가 어딘데?"

가슴어는 점점 사어가 되어가고 있다. 가슴어가 사라져가는 이유는 서로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의 마음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어란 말하기보다 듣기가 훨씬 중요한 언어다. 가슴어는 일상어와 같은 어휘를 써도 의미가 완전히다르고 반어법에도 능숙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메뉴를 고를 때 아무거나‘ 라고 말하면, 이는 ‘내가 늘 좋아하는 그것‘
이라는 의미다. 그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괜찮아‘ 하고 말하면, 그것은 괜찮지 않아, 나 좀 봐줘‘라는 뜻이다.
- P86

묵언은 어떻게 말할까를 배우는 과목이다. 성내지 않고들뜨지 않고 참답게 말하는 궁극의 언어다. 마음의 말에 닿으려고 수행 푯말을 내건 사람들이 저 안에 있다. 돌아서 나오면 절 마당 어귀의 후박나무도 배롱나무도 묵언 수행 중임을 눈치채게 된다. 법당 처마에 달린 풍경도 공양간을 드나드는 방문객도 구름처럼 고요를 연습하고 있다.
- P92

관행이란 해오던 대로 관례에 따라서 하면 되는 편리함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생각하고 싶지 않음‘을 실토하는말이다. 원칙이란 것도 그렇다.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고 행동을 제약한다. 처음 생겨날 때 원칙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하나의 원이었을 것이다.  - P94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은하수가 흐르고 사막을 건너는낙타가 보인다. 나는 지류의 물들을 모아 흘려보낸다. 선인장들이 붉은 꽃을 피워 올리고 체온 같은 별이 돋는다. 오목한 작은 우주, 나의 손.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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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3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11-25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주 생각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인 대상을 닮은 모습으로 삶은 물들게 마련이다. - P70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가 중요해져요. ^^

청아 2021-11-25 15:42   좋아요 1 | URL
네! 그런 의미에서 생활이 삶 전체를 반영한다는 문장도 있었는데 좋았어요. 거창하고 먼 가치들이 아니라 일상에서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는! ^^*
 


에밀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중에서 유일하게 해피엔딩인 작품이다. 지금의 백화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130년 전 파리의 화려한 백화점 모습을 디테일하게 펼쳐놓았다. 백화점은 여성들을 위한 소비무대다. 대부분의 그 안을 채우는 물건들이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으며 판매 상품 뿐 아니라 그 외의 눈부신 내부 장식들도 여성들의 허영심을 자극한다. 여성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이런 현상의 이유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저 의문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특히 맥시멀리스트인 어머니 덕분에 미니멀리스트가 된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현상을 경계하는 편이다. (올해 책 구매 기록 때문에 좀 많이 찔리지만..) 남성과 달리 주로 가정에 속한 여성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꾸미는 것과 가정을 가꾸는 방향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더욱 사회적 진출이 막힌 상황에 놓였던 여성들은 그런식으로 자신의 미적인 감각을 뽐내며 존재를 드러내고 때때로 억눌린 욕망과 슬픔을 일시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터키, 아라비아,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가 그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궁전을 모두 비워내고, 모스크와 바자르를 약탈이라도 해온 듯했다. 낡은 옛날 카펫들속에는 황갈색을 띤 금빛이 주된 색조를 이루고 있었고, 퇴색한 빛깔들은 불 꺼진 화덕의 잔해처럼 어두운 열기를 간직하고있었다. 나이 든 대가의 그림 속에서처럼 그윽하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전해주는 색조들이었다. 태양과 해충의 나라에서 온 오래된 양털이 간직한 강렬한 내음이 너른 공간을 가득 메운 가운데, 야성적인 예술이 과시하는 화려함 뒤로 동양의 꿈들이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P153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 둘을 떠안은 주인공 드니즈는 생존을 위해 파리에 상경한다. 하지만 그녀를 돌봐주기로 했던 큰아버지는 운영하는 실크매장 건너편에 생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때문에 사업이 위기를 맞은 상태로 이제 그녀를 도울 형편이 아니라고 말한다. 드니즈는 눈치가 보였지만 결국 큰아버지를 몰락시키고 있는 백화점에서 일을 하게 되고 판매원들간의 극심한 경쟁과 시기로 꾸준히 괴롭힘을 받게 된다. 프랑스의 제2제정기 철로의 확장과 함께 급속한 산업화를 상징한 백화점은 이 작품에서 사장 무레의 끝없는 욕구로 거대한 몸집을 더욱 키워나가며 주변 상권들을 거침없이 삼킨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집과 거대 자본의 횡포로 경쟁에 밀린 소상공인들은 힘없이 짓밟히며 피를 흘린다. 이 괴물의 힘은 여인들의 끝없는 사치였고 무레는 이런 여성들의 심리를 꽤뚫어보고 있었다. 


여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레의 우아한 몸짓 뒤에는 여성의 살을 파운드로 떼어 팔고자 하는 유대인 상인의잔인함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여성을 위해 신전을 세우고, 수많은 직원들로 하여금 여성을 위한 향을 피우게 함으로써 새로운 숭배 의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자나 깨나 오직 여성만을 생각했으며, 끊임없이 더 효과적이고 강렬한 유혹의 방식을 생각해내기에 바빴다. P134 . 


백화점의 연이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남의 가정이 파탄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상인들을 오히려 백화점 확장의 걸림돌로만 여기던 무자비한 무레는 여성들과 방탕한 관계를 즐기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호감을 느끼게 된 드니즈가 그를 계속해서 거부하자 재능과 열정으로 부를 쓸어모으던 삶에 점차 회의를 느끼며 그녀를 향한 욕망만이 상대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탐욕적인 백화점의 생리를 이어받아 서로를 물고 뜯는 백화점 내부의 판매 직원들간의 심화된 경쟁구도,외부의 쓰러져 가는 소상공인들의 모습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들의 면면을 오늘날과 비교하며 생각해볼 수 있었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파리의 '봉 마르셰'를 모델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사람을 살리고 또 죽이는 사랑과 욕망의 상징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드니즈는 결국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단 한번 바람피우는 인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무레의 급변이 어색했고 동생의 거짓말에 한없이 돈을 뜯기던 순진한 그녀의 갑작스러운 이런 승리도 조금 난감했지만 졸라의 완벽한 심리묘사를 따라 가느라 그런대로 재밌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 여전히 사는 게 즐겁나?" 무레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즉시 이해하지 못했다.그러다 예전에 삶의 공허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무의미한 고통에 대해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던 것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난 여태 지금처럼 삶을 충실하게 살았던 적이 없었네. "오! 이보게 친구, 날 비웃지 말게나.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은 순간조차 더없이 소중한 거니까 말일세!" 그는 눈물이 덜 닦인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면서 애써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략)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죽어야 하는 거라면, 지루해서 죽는 것보다는 무언가에 미쳐서 죽는 게 더 낫지 않겠나."그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 P537


지금까지 에밀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중에서 '목로주점','제르미날','인간짐승'그리고 이번에 읽은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으로 총 4권을 읽었는데 완성도에 있어서는 '제르미날'과 '인간짐승'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궁금해 찾아보니 시기적으로도 이 순서로 이어지며 작품이 나날이 발전해 나갔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작품의 주요 인물인 사장 '무레'의 이전 이야기가 '살림'에 나온다는데 최근에 '집구석들'이란 새 이름으로 재출간 되어 사두었는데 무척 기대된다. 문학동네에서 '대지'도 번역되어 예약구매를 해두었는데 이번주에 집으로 올 예정이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루공 마카르 총서의 일부가 하루 빨리 발행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읽을 에밀졸라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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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2-09 19:17   좋아요 3 | URL
thkang님!항상 함께해주시고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서니데이 2021-12-09 2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청아 2021-12-09 21:33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설레는목요일입니다ㅎㅎ 굿밤되세요~😉

bookholic 2021-12-09 23: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12월 되세요~~

청아 2021-12-10 00:11   좋아요 2 | URL
네~감사해요ㅋㅋㅋ 북홀릭님도 행복한 12월 되세요!!😄

건수하 2021-12-10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에밀 졸라의 책이 이렇게 많군요!
급 궁금해집니다.

청아 2021-12-10 13:53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수하님!😆 안맞으시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한 번 잡으면 놓기 힘들만큼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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