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어 고독에 세 들어 살고있다. -림태주
시를 읽을 때, 아름다운 글을 오랜만에 접할 때 한동안 무뎌졌던 나의 정서가 가늠이 되어 좋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분명 살아 있구나 실감한다. 이전보다 조금은 말랑말랑해진 그 마음에는 온갖 생각들이,기억들이 출몰하는건 덤이다. 자꾸 뭐라도 끄적이고 싶어진다. 이 책은 그런면에서 탁월했다. 북마크를 여러곳에 붙이느라 힘이 들었고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메모해두고 셋길로 빠지는 바람에 두께에 비해 읽는 시간이 더뎠다. 그래도 그 시간을 즐겼다.
혼자 있을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을 돌보고 아낄 줄 안다는 뜻이다. 혼자일 때도 완전히 혼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워하느라 미워하느라 밀어내느라 누군가와 있기도 한다. 치열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애써 자기를 긍정하느라 사투를 벌이는 혼자도 있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약해지고, 또 강해진다. 고독은 어쨌든 강렬하게 나를 느끼는 것이고, 그런 혼자의 느낌은 살아 있는 동안의 ‘선물‘ 이다.
- P41
해마다 날이 추워지면 생존본능이 움트면서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절감한다. 그만큼 이 춥고 커다란 세상에 방치되어 혼자인 나를 느낀다. 가을과 겨울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놓았던 정신줄, 놓쳐버린 다짐들을 뒤늦게 나마 수습하기도 하니까. 특히 요럴땐 달콤 따뜻한 코코아가 오감을 녹여 바짝 곤두선 나를 위로해준다. (광고 카피같이 좀 유치하긴 하다.) 올해도 이렇게 떠나보내고 있다.
사는 동안 사람은 한 권의 사전이 된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생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어휘와 정의 내린개념들이 빼곡히 세포에 기록된다. 기록한 페이지들을 한번도 펼쳐보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그 단어들을간추려 자신만의 문장으로 엮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 엮인 문장들의 졸가리와 고갱이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 P210
림태주님의 이 에세이를 읽으며 김소현의 '마음사전'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석원의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이 생각나기도 했다.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고 때로 혀를 차며 읽었다. 깊이 있는 글은 글 쓴이의 심사숙고와 반복된 사색의 결과물로 여겨져 읽고나면 고맙기도 하고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이런 빚은 김장김치를 담아두듯 마음에 잘 담아두었다가 적절할 때 나누어야 갚아낼 수 있다. 정곡도 여러번 찔렸다. 찔린 정곡들은 기존에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잡생각일 때가 많아서 미숙하고 여린 곳의 찔림이 약한 곳에 맞는 좋은 침 같다. 든든하고 치료받은 기분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훈훈한 에세이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