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래트닝 Unflattening]

온라인 친구분의 책 곳간에서 소개받은 후, 시간차를 두고 두 번 읽었습니다.

매우 놀랍게도 저자 닉 수재니스(Nick Sousanis)는 이 만화 형식의 논문으로 컬럼비아 대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생각하는 방식, 제도권에서 학문하고 학위로 인정하는 방식, 텍스트와 시각 우위로 위계 세우는 방식 등등에 도전하는 비주류의 시도가 'PhD dissertation'으로 인정받았다니, 솔직히 충격입니다. 그 과정에 관여하고 협업한 많은 이들의 유연성에도 감탄합니다. 




저자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수이자 인정받는 예술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https://spinweaveandcut.com/

닉 수제니스는, 이름뿐인 "융합"조차도 잘 팔리는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언플래트닝" 융합을 보여줍니다. 번역자 배충효는 "Unflattening"을 "입체화"로 옮겼는데, 저는  "Unflattening"은 예측 가능하고 단조로운 평면성과 이분적 사고를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2차원 평면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 [플랫랜드 Flatland](1984)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습니다.



 











모든 작품이 그러하지만, [언플래트닝]은 특히나 더 직접 책장을 넘겨 보셔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본문 외, "작가노트"와 "참고문헌"을 샅샅이 훑으며 행복했습니다.

세상 해석하는 방식이 독창적이고 다름을 밀어내지 않고 부드럽게 포용하는 어른을 만나면 항상, '당신은 어떤 환경에서, 무엇(누구)의 영향받으며 자랐나요?' 이 질문이 떠오릅니다. 쉬운 말로, '엄마아빠가 어떤 분이세요?'


그 궁금증이 [언플래트닝] "작가노트"를 읽으며 상당히  해소되었거든요. 작가노트에는 저자의 형아, 엄마, 아빠가, 등장한답니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제도권 교육현장에서 혁신적 방식으로 교육하려 고군분투하셨던 분이고, 어머니도 평범하신 분은 아닐 겁니다. 닉 수제니스가 그린 배는, 부모님이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드신 카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하니까요. 형아 존 수재니스 역시 어린이 닉에게 '원더랜드'급 상상력을 키워준 짝꿍입니다. 


[언플래트닝]

마지막에는 3페이지에 걸쳐 스케치가 담겨 있습니다. 본격 집필 전, 전체적인 구상을 했던 흔적인가 봅니다. 텍스트와 길게 나열된 인용에서 권위를 얻는 기존 방식과 얼마나 구별되게 박사 논문을 구상하고, 실물로 완성해냈는지 추정하게 해줍니다. 

이 소중한 책을 알게 해준 온라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2-12-15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읽고 싶네요!! 멋지다!! 마지막 올려주신 스케치는 우리 막내 생각이 나네요. 좀 과장해서.^^;;;

얄라알라 2022-12-15 23:24   좋아요 0 | URL
^^ 아! 라로님, 저는 라로님의 자제분께 ˝엄마아빠가 어떤 분이세요?˝ 묻지 않아도 되겠네요.
라로님께서 길러내신 어머니이시니까요.

전 그림을 안 그려봤고, 그래서 못 그리기 때문에 더욱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질투나게 부럽습니다^^;

서니데이 2022-12-15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알라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12-19 11:2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저는 북플마니아는 아니고, 서재의 달인에 뽑아주셨어요.
이렇게나 저렇게나 모두 감사드릴 일이지요. 덕분입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꾸준히 포스팅 쉼 없이 올리시는 와중에 이웃님들 살뜰하게 챙겨주셨으니 북플 마을을 따뜻하게 한 공로상도 받으셨음 좋겠네요^^

해피 월요일 보내세요

서곡 2022-12-15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이 책 읽었어요 전자책으로 봤습니다 꼼꼼하게 읽지는 못 했는데 쓰신 글 참고해야겠습니다!

얄라알라 2022-12-19 11:24   좋아요 1 | URL
네, 서곡님께서도 이미 접하셨군요. 전반부에 참신함에 ˝홀리듯˝ 읽다가, 후반부는 약간 김이 빠지는 느낌을 두 번 리딩할 때마다 느꼈지만, 그래도 놀랍고도 놀라운 시도라 평가하고 싶어요^^

다음에 또 읽으신다니 좋습니다요^^

겨울호랑이 2022-12-15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2022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선정 축하드려요. 항상 좋은 글과 따뜻한 답글로 지난 한 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얄라알라 2022-12-19 11:23   좋아요 1 | URL
^^ 겨울 호랑이님, 서재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운 겨울 실감하게 하는 날씨인데 건강 유의하시고
내년에도 자주 서재 들락날락 하겠습니다. ^^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transient-guest 2022-12-16 0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2년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논문을 만화형식으로 출간하고 학위를 받았다니 꿈처럼 들리네요. 세상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얄라알라 2022-12-19 11: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ransient님,
저 책에 담긴 활자를 타이핑 하면 A4 몇 페이지나 나올까? 생각하며 읽었는데, 짧은 글에 이처럼 심오한 생각들을 녹여냈다는 게, 그 작업을 혼자 했다는게 참 놀라웠어요.

지도교수와 커미티의 개방성에도 놀랐고요^^

transient님도 축하드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끄러운 달걀 두상에 곱상한 얼굴의 아이와 [아몬드]? 어려운 퍼즐이다. 제목과 표지의 조합만으로는 장르를 추정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100만권 판매 기념 특별판까지 나온 걸로 보아, 국민(청소년)소설인가 보다. 왜 유명하지? 호기심은 검색질을 부른다. 폭풍검색 결과 "100만"은 사설논술학원과 창비출판사의 합작 쾌거일까 싶을 정도로, [아몬드]는 초등 대상 논술학원마다 필독서로 올려 놓았다. 호기심은 더 커졌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면?


고작 3장 쯤 넘겼으려나, 벌써 7명이 죽어 나갔다. 6명은 '묻지마 칼부림'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서 죽었고, 한 초등학생은 집단폭행 당해 '맞아' 죽었다. 모두 공개된 열린 공간, 길 위에서 일어난 살인이다.

어라? 초등필독도서가 뭐 이래? 도입부에서 7명이 죽어? 그것도 칼부림과 폭행으로? [아몬드]를 읽기 시작한지 몇 분 안 되어 당혹감을 넘어, 거부감까지 느낀다.



하지만 이내, 작가가 극한 상황들을 연달아 설정한 이유를 이해한다. 주인공 선윤재의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을 극적으로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재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도, 감정표현을 하지도 못한다. 상황에 맞는 감정대응법을 수학공식처럼 익혀서 사회생활을 시도하지만, 쉽지는 않다. 남들과 좀 다르면 "괴물" 소리 듣기 쉽상인 세상이니까.



윤재 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안타까워하며, 아몬드를 먹인다. 주술적 효과라도 기대하듯, 아몬드를 먹으면 아몬드와 외형이 비슷하게 생긴 감정 관여하는 뇌 부위가 좋아질 거라고 믿으면서.....그렇게 윤재는 아몬드를 밥처럼 꼬박꼬박  먹는다.



손원평 작가는 제목을 왜 하필 아몬드로 지었을까? [아몬드]를 읽는 내내, 이 질문을 놓지 않았다. 작가는 이렇게 힌트를 주었다.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아몬드 프롤로그



막연하게, 사랑의 온기 혹은 양분일 거라고 '아몬드'의 상징성을 추측한다. 도입부의 폭력성 때문에 [아몬드]에 편견이 생길 뻔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도 '칼'과 '칼부림'은 등장한다. 피와 피해자도 등장한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생 대상 논술학원에서 이 책을 필독도서 추천하고 교재 삼는 데 대해 껄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괴물"이라고 분류된 이(들)의 성장가능성과 변신의지, 교감과 소통을 통한 성장 등 작품 기저의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


사실 [아몬드] 간략 리뷰 남긴 이유는 2022년 12월 9일자로 검색되는 [아몬드] 저작권 침해 이슈 때문이다. 백희나 작가 마음 고생에 비하면 손원평 작가가 경험한 불쾌당혹감은 낮은 수위일지 모른다. 하지만, 남의 작품 허락없이 가져다 쓰는 행위에 느슨하게 낮은 수위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력 대응이 필요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22-12-12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몬드> 이런 책이었군요. 자주 본 책이라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2-12-12 15:49   좋아요 1 | URL
고양이 라디오님,
반가우세요

조금 기다리면 라디오님의 ˝아바타2˝리뷰가 올라오겠지요? 저도 개봉만 기다립니다

아몬드는 하도 그동안 추천을 많이 받아서 기대치가 과도히 높았나봐요

손원평 작가 후속작 [튜브] 좋았어요^^

고양이라디오 2022-12-12 21:44   좋아요 0 | URL
아이맥스로 보고 싶은데 매진이네요ㅜ

저도 기대됩니다 아바타ㅎ

얄라알라 2022-12-12 23:38   좋아요 1 | URL
와....저도 고양이라디오님 댓글 보고 바로 예매사이트 들어가봤는데

후아!!! 놀랍네요!
 

2022년 가을은 조지 오웰, 에릭 아서 블레어에 입덕 시즌으로 기억될 예정. 대표작 [동물 농장]과 [1984]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래픽노블 평전 [조지오웰]과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다시 읽다](김욱동, 2012)까지 읽었다. 영문학자 김욱동의 얇은 설명서는 조지 오웰 입덕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작가와 작품을 쉽게 풀어줄 뿐 아니라, 여러 출판사의 번역판 문장들을 대차비교 해준다. 예를 들어, "매너(혹은 메이너) 농장"으로 통했던 the Manor Farm" 의 제대로 된 번역은 "장원 莊園 농장"임을 명확히 한다.



김욱동은 또한, [동물 농장]을 정치풍자 우화가 아닌 생태주의적 관점의 "녹색 소설"(106쪽)로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발전주의의 상징, 풍차. 다른 종의 생존과 번식 과정에 개입하여 (우유와 계란을) 슬쩍 슬쩍 취하기만 하는 인간, 소비만 할 뿐 내어놓을 줄 모르는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며 읽어보라는 권고이다.

*

"녹색소설" 얘기가 나왔으니, 작품 구상 계기를 언급해야 겠다.

1889년 어느 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을 껴안고 울었던 게 과연 정신착란 때문이었을까? 김욱동은, 니체가 마부의 가혹한 채찍질에 당하는 말을 가여워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조지 오웰 역시 학대당하는 동물을 가엽게 생각했다. "저런 짐승들이 자신의 힘을 깨닫게만 된다면 우리(인간)은 그들을 통제할 힘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유산자가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똑같이 인간이 동물을 착취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뇌리에 스쳤다." 이것이 [동물 농장] 구상 계기였다. 하지만, 구상 후 6년이 지나서야, 조지 오웰에게는 집필에 몰두할 여유가 생겼다. 1943년 11월부터 44년 2월까지 넉 달 집중적으로 썼다고 한다. 탈고 이후, 조지 오웰은 출판사를 찾느라 고생 했는데 심지어 고국에서조차 책 내기가 어려웠다(영국 정보부의 압력으로...). [동물 농장]은 1945년 8월 17일에서야 출간되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alstaff 2022-11-14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이 자리에 있던 댓글은 삭제합니다. 좀 과했습니다.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내용은 김욱동 선생을 까는 거였는데, 까도 까는 정도가 문제지, 너무 깠습니다. 혹시 고소당하까봐서리......
^^;;;;

2022-11-1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5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2-11-15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밀 답글을 썼는데, 제 글에 비밀답글이라 얄라님이 읽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2-11-2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동장을 인상적으로 읽은 1인입니다. 기발한 소설이죠.
알라 님과 책이 겹치는 신기한 날, 오늘은... 그래서 좋은 날!!!
 
내 아버지의 집
파코 로카 지음, 강미란 옮김 / 우리나비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름: 지워진 기억] 읽은 후, 파코 로카 작품이라면 더 찾아 읽기로 맘 먹었고 바로 실행. 과장 없는 일상성, 친근한 에피소드와 정서, 열린 결말 그리고 잔잔한 감동 안겨주기가 작가의.특기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