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CAM34239.jpg
 
 
 
"자연스러움의 끝판왕 육아예능 인기 언제까지?" 라는 제목의 온라인 신문기사에 익명의 독자가 덧글을 달았다. '연예인이니까 육아예능하지, 쳇바퀴 돌듯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가능한가?'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푹 빠져 단숨에 읽고 난 후에, 살짝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딴짓 아무나 하나? 문화 자본, 학력자본 갖춘 사람이나 즐기며 딴짓하지?' 아마도 부러워서 거는 딴지겠다. 부럽다. 이 엔티크스러운 에세이의 저자 이기진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유럽 여러 국가에서 그림책을 출판한 작가이며 '깡통 로봇'을 파리의 아트페어에 진출시킨 아티스트이다. 아니,  그냥 '2NE1'의 가수 씨엘의 아버지라고 해두면 더 소개가 빠르겠다. 중년의 한국인 물리학자에게 품을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그는, 조용히 딴짓을 해왔고, 딴짓에서조차 소소한 성취를 이뤄내는 딴짓의 달인, 팔방미인이다. 그러니 부러울 수밖에.
 

CAM34240.jpg
 
이기진은 초등학교 들어가서 글 못 읽는다고 담임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아예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사남매를 두신 그의 부모님은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아들을 사립학교에 전학시켰고, 졸라대는 아들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주신다. 그렇지만 '손을 턴 도박꾼 같은 단호한 생각으로' 야구를 그만둔 그에게 천체와 우주에 대한 관심이 야구 사랑의 공백을 메워준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진로를 정한 그는, 학회장에서 만난 아르메니아 학자의 제안을 받고 내전 중이던 아르메니아로 향한다. 그 후 파리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일본에서 7년간 지낸다. 한국의 서강대 교수로 부임하여 처음엔 달랑 책상 하나뿐이었던 연구실을 지난 10여 년간 책상 4개짜리 보물창고로 변모시켜 놓았다. 말이 좋아 '보물창고'이지, 혹자는 저장강박증 '호더(hoader)'의 사무실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에 신선한 자극받으며 다 읽고 책장을 덮으려다가, 맨 마지막 장에 실린 이서진 교수 연구실 사진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으니까.....
*
이서진 교수 연구실 사진 (출처: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CAM34300.jpg
 
얼핏 '카이오스의 물리학 공간'처럼 보일지라도, 이서진 교수는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연구실 대청소를 꼭 한다고 한다. 물론, '청소시간'인 동시에 '대발견'의 시간인지라 청소가 지연되기는 한다지만.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좀체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 애당초 물건을 그냥 구하지도 않는다. 한눈에 바로 '필이 오는' 물건들을 구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서진의 애용품으로 고이 길들인다. 튀니지에서 올리브 나무를 깎아 만든 사자 한 쌍 중 암사자 조각만 사 왔다가, 그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수사자를 사 왔다는 일화가 이서진 교수 특유의 애니미즘을 보여준다.
* 
CAM34285.jpg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읽으며 이서진 교수의 연구실에 한 번 초대받아 보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그가 2000년도에 정영희 선생님께 선물 받았다는 마리아주 프레르 티를 '포루투갈 사나이 설탕그릇'에서 퍼낸 설탕을 곁들여, 모스크바에서 백화점에서 구입했다는 찻잔에 대접받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 이삿짐센터 아주머니에게 "혹시 식당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 그가 모으는 물건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이 많다.
*
 
그가 벌여온 '딴짓' 중에는 소위 '예술가'스러운 창조작업이 많다. 깡통 로봇을 철공소에 의뢰해 제작했다거나, 공간 안 차지하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왔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본문 일러스트레이션도 그가 직접 그렸다고 한다.
*
CAM34241.jpg 

CAM34242.jpg

사실 대한민국의 평균적 소시민에게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이기진처럼 "피로감이 물들 때면 아무도 몰래 프라리옹에" 가서 "과거를 잊고, 현재의 나를 찾으려 노력했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다듬"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르딘 깡통에서 정어리를 꺼내먹는 프랑스 사람들의 곁눈질을 받아가면 한국서 공수해간 컵라면을 즐기며 알프스 등반할 중년의 한국 남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서촌에 집을 사서 한옥을 수리하여 '창성동 실험실'이라는 실험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도 쉽지 않겠지? 그런데 이기진 교수는 다 해냈다. 조용조용, 차분차분 원하는 딴짓들을 하나씩 현실화 시켜왔다. 그렇다고 그가 경제력이 남다르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 듯하다. 유명세나 돈을 바라고 딴짓하지도 않았고. 그는 단지 원하면 실천으로 옮기고, 남달리 엔티크한 감성으로 깊이 있게 생각해온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한 경제력이나, 시간의 무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지도 모른다. 꿈꾸고 행동하면 가까워지리라! 무엇보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교수 연구실에 개집을 들여놓으면 좀 어떠냐!

*

 
CAM34294.jpg
 

CAM34244.jp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간의 위로 - 삶을 바꾸는 나만의 집
소린 밸브스 지음, 윤서인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을 바꾸는 나만의 집
공간의 위로

 

 

book-cover.jpg


 

<공간의 위로>의 원제, <SOULSPACE : Transform Your Home, Transform Your Life>. '사는 곳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지리라'는 메세지가 처음엔 다소 홍보문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10년 이상을 오롯이 공간의 리디자인(redesign)에 헌신해왔다는 소린 벨브스 (Xorin Balbes) 의 진정성에 공감하면서 어느새, 나 또한  내가 사는 공간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단순히 '먹고 자고 쉬어가는'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이들의 열망을 자극하고 꿈을 현실화시켜줄 공간으로.......

<공간의 위로>를 단순히 '인테리어' 실용서적으로 분류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종교서적에 버금가도록 자아성찰을 유도하는 명상서이자 삶의 지혜를 담은  철학서 같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서적이 '타인에게 과시할만한, 혹은 보여주기 위한 공간'에 포커스를 둔다면, <공간의 위로>의 접근법은 사뭇 다르다. 바로 그 공간에 사는 이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소린 벨브스에게 집은 단순히 소유물을 놔두는 장소가 아닌, 사는 사람이 스스로의 열망을 탐구하고, 영감을 얻고 고양시킬 곳이다. 동시에 과거와 현재 모습을 표현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내면의 거울이다. 소린 벨브스는 손님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내면의 욕구를 거부하며 거실만 부각시켜 놓는다거나, 과시용 고급 인테리어 소품들을 진열하라는 등의 팁을 적어 놓지 않았다. 대신 구체적인 8단계 과정을 통해 집을 영혼의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CAM33886.jpg


 

 *

소린 밸브스가 제안하는 소울스페이스(soulspace) 창조 여덟과정에서 가장 기초단계에서는 스스로의 과거, 심지어는 무의식적 애착까지 파악한다. 과거를 알기 위해서는 "1단계 평가하라 / 2단계 방출하라 / 3단계 청소하라"의 과정을 거친다. 쉽게 말해,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왜 그렇게 꾸몄는지를 검토하고 불필요한 짐들을 과감히 방출함으로서 마음의 짐까지 벗어버린다. 청소를 하면서 기억과 소유물을 예우하고, 공간을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일깨운다.

2장에서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즉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4단계 꿈꾸라/ 5단계 발견하라 /6단계 창조하라"의 과정을 거치며, 꿈과 목표에 가깝에 해줄 공간으로 집을 거듭 탄생시킨다. 다시 3장에서는 꿈을 추구하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는 공간을 고민한다. 구체적으로는 "7단계 향상하라 / 8단계 축하하라"의 과정을 거친다.

 

 

CAM33887.jpg


CAM33888.jpg


 

 

8단계를 나열하고 나니 소울스페이스 창조의 과정이 다소 건조하게 보여지지만, <공간의 위로>의 서정적 문체와 고무적인 실제 사례를 접하면 각 단계가 얼마나 중요하고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절감할 것이다. 소린 벨브스 스스로도 이 과정을 통해 로이드 라이트(Lloyd Wright)가 1926년에 설계한  그 유명한 소든 하우스(Sowden House)를 새로운 공간으로 리디자인했으며, 최근에는 마우이섬 에 위치한 프레드 볼드윈 추모관(Fred Baldwin Memorial Home)을 복원하여 힐링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놓았다. (홈페이지에서 각 건물의 이미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 소든 하우스 http://lumeriamaui.com/ & 마우이 리조트 http://soulspace.com/book/ )

소린 벨브스가 얼마나 예민한 감성의 아티스트인지를 보여주는 사례 하나를 소개해보자. 소든 하우스를 개조하여 남자친구이자 애인과 삶터로 삼은 그는, 이사하고 한 달이 지나서도 유난히 피하고 싶은 음울한 공간이 있어 고민스러웠다고 한다. 그 무렵 출간된 <블랙 달리아 Black Dahlia>란 책을 읽고 그는, 이 집이 1947년 있었던 끔찍하고 엽기스러운 범죄의 범인일지도 모르는 외과 의사가 실제 살았던 집임을 알게된다. 소든 벨브스는 이 공간에서 음울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아메리카 인디언 샤먼을 고용해서 정화 의례를 치르고, 엑소시스트까지 불러서 성수를 뿌리게 했다.

 

images.jpg

 

 

 

요가와 명상을 즐기는 소린 벨브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를 적극 공간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그는 집 안에 흙 불 물 공기의 4요소를 갖추라고 제안하는데, 실제 자신의 공간에 크리스털 원석이나 수족관, 자쿠지, 유기농 텃밭과 수영장 등을 들여놓았다 (2-40평형대의 아파트 생활을 주로할 한국의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제안이기는 하다).

<공간의 위로>에는 소린 벨브스의 조언으로 실제 인생의 물꼬를 새롭게 틀어, 적극 현재를 살고 미래를 꿈꾸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읽다보면, 슬금슬금 내 집의 거실, 욕실, 침실이 달리 보이고, 나의 꿈을 위해 어떤 공간을 집중적으로 만들거나 확장할지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고무적이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로 간 그림책 - 최은희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창이 환한 교실 4
최은희 지음 / 상상의힘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로 간 그림책

최2.jpg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들었다가 단숨에 다 읽고, 이후 여러 독서 모임에서 열렬히 소개하고 다니던 책이 있다. 바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림책>. "시집을 내는 대신 시집만 갔다"는 그녀는 "아이를 업은 서른의 여자가 비 오는 저녁.....퇴근길에 앞집에 맡겨 두었던 아이를 들춰 업고, 한 손에는 저녁 찬거리를 들고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었다........그러면서 시를 포기했다.(<학교로 간 그림책> pp. 211-2)" 며 다소 자조적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녀가 얼마나 열렬히 시인이기를 꿈꿔왔는지, 여전히 시 쓰기를 갈망하고 문학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학교로 간 그림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그림책으로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아이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교생일기처럼 상세하게 아이들과의 소통의 흔적을 담은 이 책은, 숱하게 쏟아져 나온 "그림책읽기 교육서"와도 다르고 현학적으로 그림책에 대한 전문지식을 늘어놓는 책과도 차별된다. 최은희 선생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생각이 살아 숨쉬고 아이들이 그림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나 색다른 재미를 준다. 단, 이 책에서 소개된 그림책에 대해 사전정보가 없거나 아이들의 폭포처럼 좔좔 쏟아지는 말의 향연에 인내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따분할 수도 있겠다.
 

최1.jpg


 작가는 '가르치기 위해 그림책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 그림책을 보여 준다.'는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정신적 탈피를 계속할 수 있는지 <학교로 간 그림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30권의 그림책 중 3권의 소개로 리뷰를 대신한다.

*


 

최3.jpg

 

 

 


891102743x_1.jpg 예전에 읽어보았던 그림책이다.  <열한 번째 양은 누굴까?>  어린 생명들을 진도 앞 바다로 영영 떠나보내고 '선내에 있으라"는 명령이 저주처럼 대한민국 국민의 귀 속에 파고든 최근, 최은희 선생의 해석으로 다시 읽으니 새롭게 다가온다. 작가는 이 책을 세월호 참사 이전에 집필하였을까? 미국산 쇠고기를 예로 들어, 믿고 의지할래야 할 수 없는 어른들의 경박한 무책임감을 이야기한다. 열마리의 양들 사이 숨어 있는 늑대를 못 알아보고 우리로 들여 놓은 양치기 샘, 이와 대조적으로 늑대 다리의 털과 날카로운 이빨을 알아보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양들의 모습에서 세월호가 겹친다.

 

 

 

 최은희 작가는 놀랄만큼 솔직하게 유년기의 궁핍하고 암울했던 기억을 툴툴 털어 보여준다. 막내를 낳고 산후조리는 커녕 남의 집 밭매주러 다니다 한 밤중 요강에서 볼일을 마치고 그대로 쓰러져 흰자위를 드러내던 엄마에 대한 기억,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산골 외딴 집에서 언니들과 엄마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밤마다 울었던 기억을 툭툭 던져 보여준다. 작가는 <벽 속에 늑대가 있어>에서 소통이 없어 숨 막힐 듯한 집에서 숨 눌려가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유년기를 고백한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소통과 교감의 온기로 야생의 늑대를 쫓아 버려야 한다."고......

 

 

 <학교로 간 그림책>의 4장에서 최은희 작가는 우리 그림책을 집중 소개한다. 그 중에서 <혼자 가야 해>에 얽힌 에피소드가 인상깊다. 오토바이 역주행 사고로 즉사한 작가의 큰 아들이 부들부들 떨며, "엄마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지?"라 연거푸 묻자 시인을 꿈꿨던 엄마는 시적으로 죽음을 설명하려 든다. "제주도에서는 예전에 혼례복과 수의가 똑같았대. 제주도 사람들은 결혼이나 죽음을 똑같이 하나의 통과의례로 여긴 거지."라 하자 아들이 최은희 작가를 향해, "뭔 소리여. 엄마는 내가 죽으면 어떨 거 같아. 지금 한 말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어?" 라며 정곡을 찌른다.

 

 
 

*p.96 그림책 표지 이미지 사진 밑 캡션 오류 :  <날쌘돌이> 대신 P.90의 <치킨 마스크>정보를 잘못 넣으셨네요. 2판 인쇄에서 수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잠형 인간
로맹 모네리 지음, 양진성 옮김 / 문학테라피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낮잠형 인간

 

 


 

CAM31935.jpg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교수가 <낮잠형 인간>의 리뷰를 쓴다면? 궁금해졌다. 소설 속 청춘은 "새벽형 인간"은 커녕, "아침형 인간"이 되려는 노력도 없이 자발적 "낮잠형 인간군"에 속한다. 번번이 퇴짜맞는 이력서 취미란에는 '자위'와 '낮잠'을 적어넣을 정도로 무식하게 솔직하다.


 

그럼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지냈을까? 그런 질문을 받게 될 것 같았다. 내가 간단히 계산한 바에 따르면,

-천 시간 넘게 잠을 잤다.(낮잠 포함)

-텔레비전 앞에서 500시간을 보냈다.(뮤직비디오, 광고, 드라마)

-34권을 읽었다.(전부 포켓판)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272번 자문해 보았다.

-20시간 동안 자위를 했다.(물론 여러 번에 나눠서)

 

 

<낮잠형 인간> 본문 중에서

 

주인공은 우울과 무기력이 극에 이르자 방문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아서 페트병에 소변을 처리한다. 창문을 활용하여 폐기한다. 양치질조차 안해서 구내염이 생길 지경인 이 '낮잠형 인간'은 스물 아홉살이다. "여우같은 마누라랑 결혼해서 토끼같은 자식 한 둘"은 낳았을 나이건만, 스스로를 아직 "어른으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프랑스 젊은이는 석사 학위까지 소지한 고학력자여도,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저통합수당 (RMI-무소득자가 받는 수당)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하우스메이트이자 동변상련의 실업자 브뤼노가 받았던 불합격 통지서의 이름을 위조해 RMI 상담원을 속여 돈을 타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묘사하고 나면, 이 '낮잠형 인간' 한심한 인간 말종같아 보이리라.

  이쯤해서 슬며시 주인공을 변호하자면, 그는 저주받은 비정규직 세대이다. 대학원을 졸업했어도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낮잠만 청하자, 아버지는 그를 "곰과 뱀의 유전자가 합쳐셔 생긴 괴물쯤"으로 경멸하는 듯 했다. 그래도 자립해보고자 "베개로나 써 먹을 석사 학위가 든 가방 하나 달랑 들고서" 월세를 아껴줄 하우스 쉐어에 들어간다. 최소한의 노력은 했고 스파게티 면에 케첩을 발라 먹어도 불평은 안 했다. 정규직 일자리를 위한 발판부터 다지려고 대졸자들 다 그렇듯 수습직부터 구했다. 방송국 편집보조직으로 채용되었나 싶었지만, 편집 업무대신 온갖 잔심부름에 남자상자로부터의 성상납 제의까지 받는다. 결국 그는 가혹한 사회현실에서 정서적으로 착취받으며 노동 의지를 상실해간다. 이왕 상실하는 거 아주 착실하게.....

Romain Monnery 1.jpg


 

1980년생 젊은 작가 로맹 모네리(Romain Monnery)는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체로 현대 프랑스 청년들의 위태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주목받고 있단다. <낮잠형 인간>을 원작으로 영화가 제작, 개봉되었고, 그의 두 번째 소설이라는 <상어 뛰어 넘기>역시 영화제작중이라한다. 말의 설사에 가까울 정도로 다변성의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는데 로맹 모네리의 작품 역시 프랑스 소설의 향기를 폴폴 풍긴다. 시니컬한듯 하면서도 나른하고,  오로지 자기 세계에서 말의 설사를 쏟아내는 것 같은데도 세상에 대한 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로맹 모네리의 문체를 보여주는 부분을 발췌 소개해보겠다.  웃다가 한참을 소리내어 킬킬 거렸다.

 

 

 

 

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데 브뤼노(하우스 메이트)는 액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중략).......백 명이 함꼐 있어도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거ㅏ 유통기한 지난 요구르트를 집어 들거나 개똥을 밟거나 기왓장이 떨어지는 일은 항상 브뤼노에게만 일어났다. 브뢰노는아무리 물에 빠뜨리려고 해도 다시 떠오르는 검은 고양이 같았다. 그의 조상들이 '타이타닉'호에 탔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대학교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어 와 브뤼노의 학위가 유효하지 않다며 박탈하겠다고 말했다. 또 언젠가는 브뢰노의 고향 도서과에서 어렸을 때 빌린 만화책에 대한 연체료를 요구하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계속 그런 식이다 보니 어느 날 브뢰노는 왜 그런 일이 자신한테만 일어나는지 심각하게 질문을 했다.

 

 CAM31936.jpg

<낮잠형 인간> 62쪽

 

 

 

주인공은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모터쇼 판매원 수습직으로 취직한다. "자동차를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란 거짓말 한 마디에 채용되다니! "삶은 짓궂은 농담"인가. 하긴 마력(horse power)의 의미를 몰라 "엔진에 있는 말은 뭘 먹나요?"라던 여자도 모터쇼 수습직이더라. 주인공은 "야망을 품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부모님을 향한 책임감에서) 야망을 가진 것처럼 보여야 할 의무도 있었다 (p.224)"며 우수 사원 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자동차 세일즈를 한다.  결국 우수 판매 사원 메달을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독자도 주인공도 기쁘지 않다. 씁쓸해서 더 서글프다.

 

*

로맹 모네리는 낮잠형 청춘들이나 야망과 노동의지를 포기하도록 학습시키는 사회에 대해 쓴소리도 날카로운 한 마디도 건네지 않는다. 되려 무심하다 할만큼 날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스칼렛 요한슨 닮은 여자를 찾으러 갈것인가, 우수 사원 메달을 받으러 남을 것인가를 동전을 던져 결정하는 주인공마냥........그래서 읽고 나서 더 여운이 오래 간다. <낮잠형 인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에 박힌 못 하나 - 곽금주 교수와 함께 푸는 내 안의 콤플렉스 이야기
곽금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안의 콤플렉스 이야기
마음에 박힌 못 하나
 
 

 
<마음에 박힌 못 하나> 사실, 제목보다는 저자 이름에 먼저 끌렸다. 곽금주.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곽금주는 단순히 학문의 장에서 뿐 아니라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아침 방송이나 뉴스에서 자문 역할로 코멘트를 해주거나 일반 대중에게 심리학의 세계를 풀어 전해주는 책을 내는 등 팔방미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그녀의 고갈되지 않을 듯한 에너지를 생각하면 <마음에 박힌 못 하나>도 열정적으로 짧은 기간에 엮어냈으리라 상상이 된다. 저자는 "심리학을 씨실로, 신화와 문학작품을 날실로 하여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 콤플렉스를 소개 (p.18)"하는 이 책을 그 동안 KB와 SamSung에 연재했던 칼럼의 연장에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곽금주 교수는 "정상과 비정상 발달은 한끗 차이 (p. 310)"라며 인간의 정신에서 콤플렉스는 보편 발현된다고 이야기한다. 콤플렉스가 있다하여 비정상으로 몰아간다거나 당장에 전문의의 상담을 권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어서 독자로서 마음이 편해졌다.  "콤플렉스의 종류는 인류의 개체 수만큼 다양할 (p.16)" 것이라는 저자는 <마음에 박힌 못 하나>에서는 18개의 콤플렉스에 집중한다. 출판사측 부제인 '신화, 문학, 그림 그리고 당신이 있는 콤플렉스 심리학'이 말해주듯 이 책에는 주로 그리스 신화나 서양의 문학작품에서 유래한 컴플렉스를 주로 소개한다.
 
 전사가 되고 싶은 여자들에게 흔한 '다이아나 콤플렉스'(힐러리 클린턴이 대표적 예),'트롤 콤플렉스 (투덜이 스머프가 대표적 예),' '시시포스 콤플렉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가 보이는 일 중독),' '파우스트 콤플렉스 (빌 클린턴이나 타이거 우즈의 혼외정사가 그 한 예)' '휴브리스- 네메시스 콤플렉스 (닉슨 대통령),' '메데이아 콤플렉스 (아버지를 향한 증오를 가르치는 엄마들)' '크로노스 콤플렉스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와 스카이워커의 관계에 주목)' '카인 콤플렉스 (이방원)' '돈 주앙 콤플렉스'  '파에톤 콤플렉스 ('플레이보이'지의 휴 헤프너)' '몬테 크리스토 콤플렉스 (CEO 리 아이아코카)' '카산드라 콤플렉스' '플로니어스 콤플렉스,' '요나 콤플렉스' '폴리크라테스 콤플렉스' '노벨상 콤플렉스' '이카로스 콤플렉스'  


 
 
솔직담백한 화법만큼이나 편안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곽금주 교수는 18가지의 콤플렉스를 설명하며 그것들이 '남의 마음, 너의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성찰을 하게 해준다. 물로 섣부른 일반화는 경계하고, 콤플렉스가 되려 자기 성장의 쓴 약이 되기도 한다는 순기능에 대한 코멘트도 잊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의 못을 뽑아내 (p. 314)"라고 권유한다. 그 못을 부끄러워하거나 폐기하는 대신, 박혀 있는 그 못이 어쩌면 파괴자가 아닌, 나를 튼튼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열린 생각과 함꼐 하란다.  
흥미롭게 배워가며 읽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의 용어 자체가 서양에 기원을 두겠지만, <마음에 박힌 못 하나> 에 소개된 18개 컴플렉스 모두 서양의 신화와 문학작품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서 곽금주 교수는 대부분 서양의 명화, 외국의 유명인사나 서양 문화권에서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간혹 인천 부친 살해 사건이나, 이방원의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왠지 서구 학자들이 서구적 맥락에서 이미 발명해놓은 콤플렉스의 범주에 우리네 모습을 구겨 넣고 마찬가지의 이름으로 우리를 규정해야하나 싶은 보이지 않는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정신과 의사나 환자간의 비밀유지의무를 깨라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더 와닿을 수 있는 우리네 정서 우리네 특수한 문화적 풍토에서 콤플렉스에 대해 짚어주었더라면 <마음에 박힌 못 하나> 이 조금 덜 피상적이고 살갑게 다가오지 않을까도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