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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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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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움의 끝판왕 육아예능 인기 언제까지?" 라는 제목의 온라인 신문기사에 익명의 독자가 덧글을 달았다. '연예인이니까 육아예능하지, 쳇바퀴 돌듯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가능한가?'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푹 빠져 단숨에 읽고 난 후에, 살짝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딴짓 아무나 하나? 문화 자본, 학력자본 갖춘 사람이나 즐기며 딴짓하지?' 아마도 부러워서 거는 딴지겠다. 부럽다. 이 엔티크스러운 에세이의 저자 이기진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유럽 여러 국가에서 그림책을 출판한 작가이며 '깡통 로봇'을 파리의 아트페어에 진출시킨 아티스트이다. 아니,  그냥 '2NE1'의 가수 씨엘의 아버지라고 해두면 더 소개가 빠르겠다. 중년의 한국인 물리학자에게 품을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그는, 조용히 딴짓을 해왔고, 딴짓에서조차 소소한 성취를 이뤄내는 딴짓의 달인, 팔방미인이다. 그러니 부러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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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은 초등학교 들어가서 글 못 읽는다고 담임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아예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사남매를 두신 그의 부모님은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아들을 사립학교에 전학시켰고, 졸라대는 아들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주신다. 그렇지만 '손을 턴 도박꾼 같은 단호한 생각으로' 야구를 그만둔 그에게 천체와 우주에 대한 관심이 야구 사랑의 공백을 메워준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진로를 정한 그는, 학회장에서 만난 아르메니아 학자의 제안을 받고 내전 중이던 아르메니아로 향한다. 그 후 파리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일본에서 7년간 지낸다. 한국의 서강대 교수로 부임하여 처음엔 달랑 책상 하나뿐이었던 연구실을 지난 10여 년간 책상 4개짜리 보물창고로 변모시켜 놓았다. 말이 좋아 '보물창고'이지, 혹자는 저장강박증 '호더(hoader)'의 사무실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에 신선한 자극받으며 다 읽고 책장을 덮으려다가, 맨 마지막 장에 실린 이서진 교수 연구실 사진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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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 교수 연구실 사진 (출처: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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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카이오스의 물리학 공간'처럼 보일지라도, 이서진 교수는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연구실 대청소를 꼭 한다고 한다. 물론, '청소시간'인 동시에 '대발견'의 시간인지라 청소가 지연되기는 한다지만.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좀체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 애당초 물건을 그냥 구하지도 않는다. 한눈에 바로 '필이 오는' 물건들을 구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서진의 애용품으로 고이 길들인다. 튀니지에서 올리브 나무를 깎아 만든 사자 한 쌍 중 암사자 조각만 사 왔다가, 그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수사자를 사 왔다는 일화가 이서진 교수 특유의 애니미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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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읽으며 이서진 교수의 연구실에 한 번 초대받아 보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그가 2000년도에 정영희 선생님께 선물 받았다는 마리아주 프레르 티를 '포루투갈 사나이 설탕그릇'에서 퍼낸 설탕을 곁들여, 모스크바에서 백화점에서 구입했다는 찻잔에 대접받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 이삿짐센터 아주머니에게 "혹시 식당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 그가 모으는 물건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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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벌여온 '딴짓' 중에는 소위 '예술가'스러운 창조작업이 많다. 깡통 로봇을 철공소에 의뢰해 제작했다거나, 공간 안 차지하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왔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본문 일러스트레이션도 그가 직접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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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한민국의 평균적 소시민에게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이기진처럼 "피로감이 물들 때면 아무도 몰래 프라리옹에" 가서 "과거를 잊고, 현재의 나를 찾으려 노력했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다듬"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르딘 깡통에서 정어리를 꺼내먹는 프랑스 사람들의 곁눈질을 받아가면 한국서 공수해간 컵라면을 즐기며 알프스 등반할 중년의 한국 남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서촌에 집을 사서 한옥을 수리하여 '창성동 실험실'이라는 실험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도 쉽지 않겠지? 그런데 이기진 교수는 다 해냈다. 조용조용, 차분차분 원하는 딴짓들을 하나씩 현실화 시켜왔다. 그렇다고 그가 경제력이 남다르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 듯하다. 유명세나 돈을 바라고 딴짓하지도 않았고. 그는 단지 원하면 실천으로 옮기고, 남달리 엔티크한 감성으로 깊이 있게 생각해온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한 경제력이나, 시간의 무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지도 모른다. 꿈꾸고 행동하면 가까워지리라! 무엇보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교수 연구실에 개집을 들여놓으면 좀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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