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 라임 어린이 문학 34
오언 콜퍼 지음, P. J. 린치 그림, 이보미 옮김 / 라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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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하기 싫을 땐, 기분이 어떤 거지?"

예상했던 대로, 주인공들은 슬펐다. 적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슬픔에 푹 젖었던 경험이 있다. 동화의 중반까지는 사람에게 학대 당해 슬픈 강아지를 주인공 소년이 '사랑의 힘'으로 다시 '컹컹- 컹' 짖게 해주는 내용인 줄 알았다. 만약 사랑이 일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였다면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의 이처럼 감동적이진 않았을 것 같다.

강아지 오즈는 한 때 슬픔과 두려움 때문에 '컹컹' 짖지를 못했다. '짖고 싶은' 본능을 누를만큼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이 컸다. 하지만 자신을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와 온 마음으로 보살펴준 패트릭 덕분에 케이지 밖으로 나왔고, 세상 냄새를 맡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오즈는 자신을 애써 외면하고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 패트릭에게서 한 때 자신이 풍기던 냄새를 맡았다. 바로 '슬픔'의 냄새였다. 영리한 강아지 오즈는, 음악가 출신 집안의 패트릭이 자신에게 했던 음악의 마법을 패트릭에게도 시도해본다. 현을 켤 수도, 건반을 두드릴 수도 없는 오즈가 택한 영리한 방법은 직접 책을 읽고 확인해보시길...(리뷰를 쓰다보니, 스포일러 같아서 예비독자에게 죄송한 마음에 급 수습 중)


강아지의 '컹컹'처럼, 사람 아이 패트릭 역시 슬픔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고, 사람 어른인 패트릭의 엄마 역시 엉엉 울며 감정을 뿜어낸다. 울고 '컹컹'하며 감정이 격하게 소용돌이 칠때, 패트릭의 외할아버지께서 남하신 말씀이 명언이었다. "여기서 다들 뭐 해? 왜들 그렇게 울어? 세상이 끝나기라도 했대? 아무리 세상이 끝났어도 일은 해야지." 생활 속 평범한 대화일텐데,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의 저자 오언 콜퍼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So Cool!


나는 동물과 교감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차가운 독자였지만, 인간이나 강아지나  마찬가지로 음악의 마력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교감함으로써 서로 일으켜 세워준다는 설정에 설레임마저 느낀다. 사랑은 도는 거구나. 구비구비 S자 강물처럼 감싸안듯 돌며 흐르는 구나. 꼭 인간끼리만 아니라, 인간 종 밖의 존재들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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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 - 자신이 이상한 줄 모르는 사람들
니시다 마사키 지음, 김지윤 옮김 / 행성B(행성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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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채 몇달 안 지난 유혹적인 새책들을 쌓아만 놓고 지붕 위 닭보듯 했다. 근 3개월간, 종이책을 넘겨가며 수액 맞는 힐링의 시간은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이책과도 거리를 두었었다. 생각의 진폭이 좁아지니 덜 산만해지는 감은 있어도 확실히 둔해졌다. 그래서 간만에 집어든 가벼운 책이 [나는 괜찮은데, 그들은 내가 아프다고 한다]였다. 오롯이 임상에 몸담은 경력만도 20년, 의사가 된지 24년차의 의학박사 니시다 마사키의 에세이집이다. 부제는 "자신이 이상한 줄 모르는 사람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이상한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나 치료 모험담이 주가 아니라, 어쩌면 이런 분석을 하고 있는 정신과의사 자신 역시 정상/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지 모른다는 솔직한 자기 성찰이다.

더하기,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해준다고 (21세기 일본 사회에서) 여겨지는 정신과 의사가 실은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취약한 사람들임을 드러낸다. 의도적이라고 저자가 후기에서 적고 있다.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요즘 세대 아이들이 반드시 알아두었으면 하는, 의사라는 직업의 혹독한 일면"(245)을 의학 전공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꼭 읽어주기를 당부까지 했다.


나는 이 책에 환자와 의료진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공이건 실존이건 모두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국에서도 최근 '시사 in'이 수행한 설문조사를 보니, 응답자(한국인)의 높은 비중이 마스크 쓰는 이유가 자기보호보다는 '타인을 감염시킬까하는 우려' 때문이라 했다. 이 책에 등장 일본인들은 굉장한 수위로 타인의 기대와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하는 체화된 예의바름을 바닥 정서로 탑재하고 있었다.


심리에 미치는 문화의 영향을 연구한다는 "문화심리학자"라는 김정운 교수라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리뷰를 쓸지 궁금하다. 일본의 문화적 특색이 어떻게 독특한 집단적 정신상태에 기여한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간만에 책 잡으니 집중력 하나는 reset 수준이어서 책 다 읽는데 1시간이 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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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Wow 그래픽노블
케이티 오닐 지음,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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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살까지 '산타 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코의 실존을 믿었다. 친구들이 다 아니라 하는데도, 클리스마스 선물로 받아보았던 책 포장지에 동네 서점 이름이 찍혀 있어서 의아해하긴 했어도, 굳게 믿었다. 소원 적은 편지를 냉동실에 숨겨 두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염력(?)+ 투시력(?)으로 다 찾아낼 거니까

20살 생일날, 딱 그 시점으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이런 순진무구한 생각의 오류 중 압권은, 스무 살 넘어가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해도 다 옳은 줄 알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혼내기만 하지, 혼나지는 않으니까. 이런 어린이가 어찌 공주왕자 등장하는 동화에서 결말 이후를 궁금해했겠는가.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라고 하면 그냥 믿었지. 게다가 "오래오래 행복하게"의 바로 앞문장에 늘 "결혼"이 등장하는 것을 눈치챌 만큼 똘똘하지도 않았으니





[공주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 의도적으로 전복적 캐릭터를 설정하고 비주류성을 표방하는 줄거리를 내세운 그래픽 노블입니다. 제목에 드러나죠? “왕자와 공주 아니라, “공주와 공주 만났습니다. 마녀가 성에 가둬 공주를 구하러 이가 왕자가 아니라 공주라는 설정을 했지요. 물론 갇힌 공주를 자유로운 공주가 구해줍니다.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둘은 최종적으로 결혼하며 동화를 끝맺습니다.

 




소위 낭만적 사랑의 주체들이 여성-여성 패라서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책은 미국도서관협회 레인보우 북리스트 TOP10 추천된  있습니다). 이들의 짝패는 여전히 기존 동화의 문법처럼, ‘자기 해방의 욕구가 강렬하고 모험을 즐기는  자존감 낮아서 현실에 안주하는  일깨워 감옥에서 벗어나게 합니다게다가 구출 당하는 공주 세이디는  뚱뚱해뚱뚱하고  생겼어.”라는 말에 주눅이 들어서 자기 비하가 심합니다비난이 온통 외모에 집중됩니다심지어 세이디 공주에게 저주를 거는 마녀가 바로 공주의 친언니입니다귀여운 동생이 백성들의 사랑을 받자 질투가 나서 뚱뚱하고 멍청하다며 동생을 세뇌시킵니다여자들간 질투와 모함이라는 사극의 단골 양념이죠여기서도 여성을 옭죄는 언어가 온통 외모에 집중되는  역시 단골 양념이고요. “뚱뚱해멍청해.”

 






아무튼 마무리는  다시 결혼입니다그토록 용감했던 흑발 공주는 금발의 미녀 공주와 결혼하면서 떨어요.  ‘ 혹시 떨고 있니?’ 그토록 용맹한 캐릭터가 금발의 파트너 앞에서 떠느라고 식은땀을 흘립니다만 결혼식은 성대히 진행됩니다이야기 전복 시도는 좋았지만전형성 투성이인데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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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인, 아마조니언 되다 - 삼성, 아마존 모두를 경험한 한 남자의 생존 보고서
김태강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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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이라는 90살까지 커리어( 거의 없지만) 극적으로 뒤엎는다 해도,  "삼성인더군다나 "아마조니언" 평생 나와 인연이 없을 것이다. 30여개국 아마조니언들을 대상으로 "영어로세법 관련 회의를 주재하거나 2020 아마존의 PM(Product Manager) 역할을 일도 없다. [삼성인아마조니언 되다] 내게 실용적 도움을 책이 아닌 데도 읽었다. "내부자의 시선(emic view)"이라는 문구에 혹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김태강"이 그 내부자이다. 그는 영국 런던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귀국 후 20대 초반이었던 2011, 삼성에 "막내"로 입사했을 때는 한국어가 어색해서 메일 쓸 때마다 '네이버 맞춤법'에 문의했다는 전설도 있다. “김태강을 사진으로 보았을 때 직관적으로 "영민함, 성실함"의 인상을 받았는데, 실제 그는 AMAZON의 다면평가 결과 "신뢰 얻기(Earn Trust)"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삼성인, 아마조니언 되다]는 평소 한국의 대학생 및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로 상담과 해외 취업 멘토링을 해왔다는 그의 이력과 닿아 있다이 책은 한국과 미국의 기업 문화(회사 조직)을 경험한 내부자로서 두 회사를 생생한 에피소드를 엮어 비교한다나아가그 조직 안에서 성공하는 사람의 자질을 분석하고 어떻게 모방 혹은 능가할지를 제시한다




김태강이 경험한 아마존 기업문화는 근간이 고객 니즈 우선이다아마존의 CEO 아니었지만스티브 잡스의 Customers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weve shown them’이라는 말까지 인용을 했는데그래서인지 김태강의 책은 독자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준다영어권 다국적기업의 조직 문화는 어떠 한지위계와 동시에 화합을 중시하는 조직에 있던 사람이 개인의 자율성과 권한을 크게 부여해주는 조직에서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아무튼 책은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배울 , ‘아하!’하며 재미있어 소소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의 1장에서 아마존이 PPT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문서로써 소통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활자로 기웃거려본 다른 직업군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글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또한 김태강이 까는 문화(118)”라고 표현한 수평주의실용주의의 조직 문화가 흥미로웠다.

안식년(?) 없이 그 어마한 업무를 소화하고연애하고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와중에 이런 명쾌하고 유익한 책까지 써내다니다음번엔 김태강 저자가 시간관리법과 글로벌 기업에서 통하는 영어정복기도 서비스 차원에서 공유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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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머스 린치 외 지음, 김소정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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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들리는 알라디너 이웃님 서재에서 "말하는 사람은 계속 말하고, 듣는 사람은 계속 듣기만 한다"는 지적을 읽었다. 뜨끔했다. 당신은 어느 쪽?  "책을 쓰는 사람은 계속 쓰고, 읽는 사람은 읽기만 한다"라고 말해도 될까? 매일 잠들기 전 읽던 책 덮기로써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가끔 "써볼까?"의 치기도 솟는다. 하지만 이내, 뼛속까지 작가인 사람들의 문장을 읽다보면 "나도??"의 경솔은 겸손히 가라앉는다. [살갗 아래]를 읽으면서 딱 그랬다. 


 

 [살갗 아래]의 원제는 Beneath the Skin, 제는 "Great Writers on the Body"이다. Skin을 '피부'가 아닌 '살갗'이라 했는데도 활자 느낌 알싸하게 톡 쏙다. 한국판  부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이다. "Great Writers"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 가업을 이어 장의사 일을 하는 시인, 화가이자 시인도 있다. 이렇게 소개하니 "Great"인줄 잘 모르겠다. '맨부커상' 후보작이니 '서머싯모음 수상작' 등을 낸 작가들이라고 정보를 더하면, 그들의 클래스가 부각되겠다. 


15명의 작가가 몸의 부분, 15부분을 각각 맡아 썼다. 뇌, 피부, 폐, 대장, 피, 갑상선, 맹장 등이다. 출간 전, 작가마다 쓰고 싶은 몸의 부위에 대한 의견조율을 했을 것이다. 작가들 저마다 그 신체 부위에 얽힌 밀접한 사연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아닌가? 작가니까, 일단 소재가 주어지면 '나 아니면 못 나왔을 글' 수준으로 다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잠비아 출신의 시인인 카요 칭고니이는 "내 몸에 흐르던 것은 붉디붉은 수치심이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HIV로 부모를 잃고 일찍 고아가 된 자신이 대학시절 HIV 검사 받으며 경험했던 내적 변화를 묘사한다. 콩팥, "내밀한 윤리와 감정적 충동이 자리하는 양심의 상징"을 쓴 애니 프로이트(앞서 말한 그 그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증손녀)는 남편이 몇 년 전 악성종양으로 콩팥 수술 받았던 경험 때문에 글 소재로 콩팥을 택했다고 밝힌다. 대장, "가장 깊은 속내를 누구에게도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를 쓴 윌리엄 파인스 역시 힘든 자신의 투병 경험을 제목에 압축해냈다. 


그렇다고 이 에세이들이, 개인 차원의 경험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내는 수준에서 몸을 탐색하지는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인간, 생명, 존재의 신비 혹은 허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살갗 아래]의 서문에서 토마스 린치는 


우리는 전체이자 부분으로서, 한 종류의 일원이자 하나의 종류다. 부분은 전체의 본질에 관해 어느 정도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기에 의사와 해부학자만큼이나 작가와 독자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고뇌를 치밀하게 보여주는 부분을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을 수 있다. (22쪽)... 각각의 신체부위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지적인 동물을 이해하고, 인간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로서 잡다하지만 조금은 중요한 글들을 모아보았다. (23쪽)


이라고 이 책의 취지를 밝힌다.


 15편의 에세이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과 비슷하다. 각 작가는 개인적 에피소드를 엮어 유려한 문체로 각 신체 부위를 묘사하지만, 15편의 글을 다 꿰어보면 "놀라우나 미지의 존재, 인간"이 떠오른다. 퀼트처럼. 인간이라는 종으로서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이 느껴진다. 아날로그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를 참 잘 뽑아낸 듯 하다. 동의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마스 린치, 살갗 아래, 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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