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딸들 1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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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고통이 느슨해지면 죽은 듯이 잠에 빠지고, 그러다 새로운 통증의 파도가 밀려오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중략)... 다시 통증이 찾아왔고, 나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턱턱 막히는 숨을 참으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멀리서 순록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얇고 노란 초승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순록의 달(Reindeer Moon)'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 2편 332~333쪽.

한국에서는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어, 특히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많이 읽힌 소설의 클라이맥스 대목이다. 원제 『 Riendeer Moon 』에 등장한 초승달 아래, 홀로 아기를 낳는 주인공 야난의 고독과 생존본능은 처절하다 못해 비장하다. 저 독백을 조아리던 한 사람, 여성, 초산 중인 10대 소녀, 야난의 숨은 천천히 멈추었다. 그녀의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야난은 그렇게 죽어갔고, 아기는 태어났다.





벚꽃 만개한 4월의 환한 대낮, 스타벅스 매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눈물을 어찌 억제할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으며 콧날이 시큰해지다 뜨거운 눈물의 강둑이 몇 번이나 터지려는 걸 어찌 막으랴.

K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다. 그녀는 출산의 고통 속에서 짧은 혼절과 진통 주기를 반복하면서 내내 "칼라하리 사막의 니사도, 나의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이렇게 생명을 낳았어."를 되뇌며 감격스러워했다고 한다. '진통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그런 낭만적 생각을? 에라!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야난이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 아기를 낳는 그 장면에서 바로 K가 전해준 그 '짧은 잠과 진통의 반복' 대목이 등장했다. '소설이 아니었구나. 경외했던 것이구나. K는 야난, 아니 생명을 낳고 지켜온 이 땅의 그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격했기에 진통을 감사해하며 견뎠구나.



『세상의 모든 딸들』은 20,000년전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매머드, 여우, 늑대, 호랑이, 순록, 하이에나가 등장하고 파카(기능성 방한 아웃도어가 아니라, Inuit언어에 등장하는 가죽옷의 이름이다)를 입은 수렵채집 부족들이 등장한다. 원서로는 393쪽, 번역판으로는700쪽에 이르며 무려 2만년 전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21세기 넷플리스 SF마냥 빠른 전개와 생동감 있는 묘사로 쓰여진 건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인생이력과 관련 있다. 그녀는 부시맨(San族) 탐사대였던 아버지를 따라 20대에(1950~1956) 칼라하리 사막에서 지내며 그 곳 사람들과 자연물,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인류학자로서 그녀는 이 경험에 기반해 『The Old Way』, 『The Harmless People』 등을 썼다. 부시맨이 따뜻한 지역의 수렵채집민이라면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묘사한 수렵채집민들은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를 견뎌내야하는 지역 사람들인데, 많은 부분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부시맨의 생활양식, 종교의례, 약혼과 결혼, 선물 교환의 규칙 등을 반영해서 상상해냈다.


예를 들어, 이 가계도만 보아도 약혼과 결혼으로서 집단의 연망이 어떻게 맺어지고 유지되는지 이것이 혹독한 환경에서의 생존에 어떤 잇점을 가져오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좁은 사회, 면대면 관계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상상한 20000년전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체면, 윗 어른에 대한 공경, 서열짓기보다는 공동체성, 공동육아, 연대 등의 정서와 가치가 발달했다. 주인공 야난은 이 사회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 비한다면 더 충동적이고,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고, 독립적이다.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때린 남편 티무에게 발끈해서 바로 이혼을 선언하고, 어린 여동생 메리와 함께 집단을 떠나 홀로 이동하는 길을 택한 에피소드가 야난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야난은 어쩌면 겪지 않을 수도 있었을 생존에의 압박을 더 크게 느끼고 고난과 마주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동생도 살아 남긴다.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페미니즘의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던 1980년, 90년대에 학술서가 아닌 소설로서 여성의 존엄과 특히 어머니로서의 거룩함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나보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어머니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만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야난,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너는 티무의 아내로, 메리는 화이트 폭스의 아내로...



스마트폰이나 족보가 없던 20000년 전, 사람들은 피부 냄새와 음성으로 서로를 식별하고 이야기의 타래에 엮어 이름을 기억하고, 황홀경에 이르는 춤을 추어 천상의 존재와 소통하고 자신의 육체성을 초월하고자 한다. 마블에서 이야기하는 다중 유니버스가 아니어도, 이들은 원초적 생명력과 상상력의 힘으로 이 불가해한 우주의 거룩함을 만난다.『세상의 모든 딸들 』을 꼭 여성, 어머니의 시각에서만 읽으려하지 말고 인간의 위대함, 그 거룩한 생존력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읽어 볼 수도 있겠다. 인류학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를 비단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란 육체성으로 살지만 나는, 너는, 우리는(심지어는 늑대와 순록까지도) 연결되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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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 알라딘, 책 덕후님들 서재 기웃거리느라 매일 로그인합니다. 덕분에 지나칠뻔한 보물을 발굴합니다. 2018년에는 이언 매큐언 이름을 텄으니, 2019년에는 『시녀 이야기』를 내 서재에도 옮겨놓고 싶어졌습니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를 읽은 날, 우연히 대여해온 『시녀 이야기』 . 각각 21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느 사게르, 20세기 캐나다 영문학자 마거릿 에트우트가 썼는데 '여성'을 교집합 원소로 꼽아야겠네요. 그런데 『시녀 이야기』에서 여성은 '자궁'과 동의어 취급 당하기 쉬운 범주를 의미하는 것도 같습니다. 원제 "The Handmaid's Tale"에서 "tale"과 유사한 "tail"이 '여성의 질, 혹은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서 중의적이라는 설명도 소설 에 제시되니, 저만의 억측은 아니겠지요.

 

황금가지 출판사가 펴낸 recover 1판 1쇄의 후면에는 "영미 페미니즘 문학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대표작! 전체주의 사회 속에 갇혀버린 한 여성의 독백을 통해 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파헤친 섬뜩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시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인공 이름이 오브프레드(Offred), 주인공처럼 붉은 유니폼을 입은 여성 이름은 오브글렌, 그 '오브'가 소유격의 'of'임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정자 제공자로서의 고위층 간부 남성 이름에 "of"만 접두사처럼 붙인것이지요. 그녀들의 이름에서 개성과 인격이 지워지고, 소유관계만 부각되듯 그들의 몸, 특히 재생산 능력은 철저히 국가 관리 대상 아래 있습니다. 섬뜩했습니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시녀,' 1인칭 시점을 택했기에 그 굴욕적이고도 절망적인 심정이 더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혹자는 애트우트의 문장에 반했다고 하는데, 저는 결말이 궁금한 나머지 잔가지를 쳐내고 속독으로 내달리는 바람에 문장의 매력에 빠질 틈이 없었네요. 길리아드의 강압적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지하여성도(The Underground Femaleroad)'는 과연 시스템을 뒤엎었을까? 길리아드 사회의 강압적 출산정책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데,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었을까? 망할 길리아드 사회를 전복시켜버리는 결말이 나오기만 기대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결말에 해당하는 "『시녀 이야기』의 역사적 주해" 파트는, 500여 페이지를 지나온 보상으로 흡족했습니다. 이전 챕터와 달리, 마지막 챕터는 한참 뒤로 가서 2195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길리어드 시대는 끝난듯 한데, 22세기말 '국제역사학회 총회'에서 20, 21세기 기록 보관소 소장인 파익소토 교수가 『시녀 이야기』 원본의 진위에 대해, 자료 해석을 더해 강의합니다. 소설에서는 파익소토 교수를 '코카서스 인류학과' 소속 교수가 소개하는 설정인데, 처음에 저는 '코카서스'가 지명이나 고유명사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읽어보니

내부 증거로 볼 때 그녀가 출산을 위해 징집된 최초의 여성들 중 한명 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중략)...이런 여성들의 자질은 급락하던 코카서스 인종 출산율에 비추어볼 때 매우 바람직했으며...

『시녀 이야기』 중

쉽게 이해하자니, 인종차별적 출산정책이었군요. 영화 매드 맥스에서 임모탄의 상대적으로 오염 덜 된 여성을 통해서 소위 우성 자식을 얻으려했던 것과 비슷한. '코카서스' 가 우성이며 여성은 국가를 위한 출산도구라는 생각이 길리어드 사회 출산 정책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신체 통제권을 비롯 감정까지 억눌리고 조종당하는 '시녀'집단이 분노와 절망을 표출하고 죄의식을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참여처형" 방식만큼 "인종주의"적 정책을 집단을 결집시키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길리어드 사회의 통치전략 중 일부를 정리해보았는데 마거리 애트우트가 이 소설을 쓰며 어떤 사전 조사 작업을 하고 자료를 모았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에미상을 받았다는 미드 "The Handmaid's Tale"도 보고 싶고요.

 


★ 연속적 일부다처제 → 동시적 일부다처제

★ "참여 처형"를 공동체 의식으로 분기별 시행

★ "여성을 통제하는 최고의, 가장 비용이 절감되는 방식은 여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것" (526쪽) 이기에 '아주머니' 봉사단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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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김 써르 -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 1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 1
김규현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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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마스떼! 김 써르(Namaste! Kim Sir)』의 부제는 "다정 김규현의 히말라야의 꿈1"이다. 저자 김 써르, 김규현은 칠순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네팔의 역사와 문화산책』 와 『티베트와의 인연, 4반세기』도 근간 준비 중이다. 나마스떼! 김 써르』만해도 330여 페이지 분량인데, 그 왕성한 창작욕구는 어디에서 나온걸까? 속된 말로 역맛살이 대단해서 젊어서부터 티베트와 친숙했고 여생을 네팔에서 보내는 저자의 경험세계가 이야기 거리를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리라고 추측해본다. 더 근원적으로는 그가 아내를 떠나보내며 바뀐 에너지 덕분이라고 상상해 본다. 저자는 네팔에 미술 선생님, 그러니까 김 써르(김 선생님)으로 봉사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내 한평생을 돌아보니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 세월들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삶이었다... (중략)... 이제는 남은 여생이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나아가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결기가 가슴속 깊숙한 곳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본문 77쪽)  

 

다정 김규현은 헌신 어린 봉사를 향한 결의라고 정리하지만, 나마스떼! 김 써르』는 이 작가의 마음에 여전히 인연 동심원의 잔물결이 쉼 없이 파동침을 드러낸다.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추억을 정리한 1부,  ‘영원한 이별 그리고 비우고 떠나기’를 읽다 보면 '애잔'하다고밖에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독자의 마음에 올라온다. 자신을 취재하러 온 띠동갑 여기자와 결혼, 손수 지은 집 '수리재'에서의 신혼과 가정확대기, 하지만 아내에게 찾아온 병마, 꿈을 펼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아내 유품 중 발견한 창작노트. 남편 김규현은 문학가를 꿈꿨던 아내 노력을 뒤늦게(재능은 진작에) 발견하고 정성을 담아 출간해냈대. 이렇게 1부에서 독자는 마치 김규현 저자가 상주로 있는 장례식에 경건한 마음으로 조문온 기분을 느낀다.


나마스떼! 김 써르』본문에서

2부부터 저자는 더 아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미술 선생님으로 몸담은 네팔 비렌탄띠 마을의 '스리 비렌탄띠 세컨더리 휴먼스쿨'과 그 학생들 이야기부터, 산악인이라면 특히 좋아할 안나뿌르나 트레킹 이야기, 네팔의 종교와 먹거리 문화를 소개한다. 아마도 저자 자신과 "글로벌콘텐츠" 출판사 편집자가 많은 내용을 덜어냈겠지만, 김규현의 경험세계가 워낙 폭넓고 깊기 때문에 이야기는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다.  네팔을 아끼는 반semi내부자로서 뼈가 든 충고도 하고, 네팔과 한국과의 여러 연계(지원, 문화교류 등)에 대해 구체적 소개를 하며 향후의 소통 채널을 열어주는 일도 한다.

저자 김규현은 어떤 이들을 독자로 상상하며 글을 썼던 것일까? 1부에서는 아내 추모행사에 자리를 함께 해준 이들을 상세히 언급하고, 2부에서는 이례적으로 긴 지면을 할애하여 '세칸더리 휴먼스쿨' 염소 후원자의 실명과 기관명을 빼곡하게 적고 있다. 마찬가지로 3부에서는 안나뿌르나 트레킹을 계획한 이들을 위한 여행 코스를 상세하게 제시한다. 마치 김규현의 일기, 가까운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반 떠나려는 후배에게 전하는 쪽지글, 네팔 현지문화 전문가로서의 에세이를 동시에 섞어놓은 글을 읽는 듯하다.

염소 기증자 명단

나마스떼! 김 써르』는, 다른 어떤 네팔 안내서와도 차별되는 개성으로 네팔을 소개하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랬다. 김규현이라는 영혼과 발이 자유로운 구도자, 의미의 여행자, 그 만의 렌즈로 세상을 걸러 보여주기에 이 책은 충분히 그 기대를 충족시킨다. 끝으로 본문의 몇 문장을 옮겨 적는다. 다정 김규현 선생 덕분에 처음 듣게 된 '옴 Aum,' 뭘까? 궁금타.


히말라야는 분명 인간의 영역 밖이다. 그것은 히말라야의 깊이 모를 경이로움 앞에 마주서 본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인하는 바일 것이다. 그 앞에 서면 '옴 (Aum)'이라는 신비로운 파장이 자신도 모르게 전율같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155쪽).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산 밑에 서면 우리는 두려움과 함꼐 안온함도, 마치 모태에 다시 들어가 앉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160쪽).

몇몇, 이미 그렇게 되기로 운명지어진 사람들은 그 부름소리를 듣고 성스러운 것에 대한 열망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일어남을 꺠달아 그 영감의 근원지를 찾아 길을 떠나게 된다. 자연에 이어진 보이지 않는 끈을 자신의 영혼에 잇기 위하여,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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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앨리슨 데이비드 지음, 이주혜 옮김 / 좋은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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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Help Your Child Love Reading 』,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정직하고도 명료한 번역이다. 어린이책 출판사 에그몬트 출판사(Egmont Publishing)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엘리슨 데이비드가 영국에서 펴낸 부모 가이드를 '좋은꿈 출판사'가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다. '좋은꿈 출판사' 역시 어린이를 책과 사랑에 빠지도록 어르고 달래고 유혹하는 출판사이니, 엘리슨 데이비드의 책을 이 출판사에서 한국판으로 출간해준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실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어떤 주장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부터 책을 늘 가까이하고, 책 읽는 가정 분위기를 조성할 것," "핸드폰 등 스마트기기를 멀리할 것," "아이에게 직접 책 읽어주거나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것," "도서관 자주 들릴 것"

뭐 비결이 딱히 있겠나? 내 아이, 책 사랑에 풍덩 빠지게 하는 데에. 어떻게 그 타오르는 책 사랑을 가르치거나 억지로 강요할 수 있겠나? 그건 느껴본 자만 알고 다시 찾는 환희의 샘물. 마셔도 기분 좋게 또다시 목마르게 하는 샘물. 극장에서 꼬마 군단과 "미녀와 야수"(2017)를 보다가, 어이없게도 눈물샘이 뻥 뚫렸었는데, 다름 아닌 서재 씬 때문이었다. 시골이라는 좁은 공간, 좁은 경험 세계에 갇혀 있던 소녀 Bell이 야수의 서재에서 책들을 보자 환희에 떠는 그 마음을 내가 아니까. 마음이 블루일 때 책이 천연 프로작이 되어주고, 몸이 지칠 때조차 책을 비타민 삼는 사람들의 그 마음을 아니까..... 책 읽다가 간혹 속해있는 시공간을 잊으니까.....

책 읽기 전 짐작한 대로 앨리슨 데이비드는 "부모부터 솔선수범 책과 친하고, 스크린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와 경험을 공유하라"라는 조언을 한다. 차별점은, 저자가 엄마이자 출판인으로 쌓아온 노하우에 기반해 자녀 연령별로 구체적인 팁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장에서는 0~4세인 '미취학 아동'을 위한 조언을, 5장에서는 자칫 부모의 손길(?)을 떠나기 쉬운 12~16세 청소년기 자녀들의 책 사랑 키우기를 위한 조언을 전개한다. 앨리슨 데이비드의 목소리에 더해, 이 분야 전문가들과 다른 교사들의 충고를 함께 들려주기에 설득력을 몇 배로 올라간다.



작년에 서민 교수의 출판기념 강연회에 참석했을 때, 자타인정 책벌레 서민 교수는 '스마트폰'의 폐해를 청중에게 인지시키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스마트 기기 사용시간과 종이책 넘기며 종이책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의 남녀노소에게 반비례 관계라는걸, 누가 몰라?"하는 이들 많았을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역시, 핵심 주장을 뒤집어보면 "화면 사용시간을 제한, 최소화하라"와 다름없다. 지키기 어려워서 그렇지, 책 사랑으로 건너가기 전 첫 장애물로 등극한 스마트폰, 절대 멀리해야만 하나보다.



엘리슨 데이비드의 충고 중 또 하나, 인상 깊은 것은 큰 아이들(소위 '중2' 전후)에게도 부모가 같이 책을 읽는다거나, 읽어주거나 역으로 아이가 책을 고르게 하여 그 책을 부모가 읽는 등 소통을 적극 꾀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이다.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는 꼬마들 베드타임용으로 끝내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부모가 많겠지만, 함께 읽기의 효과는 아이 나이를 넘어선다.

만약, 이 책을 읽게 될 이가 부모라면, 더 무엇 말하랴. 손 닿는 데 책을 두고 늘 읽는 모습을 보이면, 책 읽기가 곧 명상이자 힐링인 모습을 보이면 아이 역시 책을 삶의 일부로 들일 텐데.... 2019년은 아이와 나란히 채워나가는 책 일기장을 한 권 준비들 하시면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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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02-07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책이 늘 가까이에 있었던 걸 기억합니다. 사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읽었고 중간에 국민학교 3-4학년 정도 때 책을 덜 읽던 시절에는 행여 글에서 멀어질까봐 부모님이 만화책을 사주셨었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래서 사주셨다고 하시네요). 방법론은 모르지만 늘 책을 보는 환경이면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2019-02-07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 죽어야 고치는 습관, 살아서 바꾸자!
사사키 후미오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정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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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덕분에 몸살림(kg)까지는 아니더라도, 방살림은 확연히 가뿐해진 이들, 저만이 아닐 테죠? 저 역시, 이 책 읽던 날 새벽까지 분리수거 쓰레기 장을 들락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으로 일본에서뿐 아니라, 해외 21개국에 이름을 알린 사사키 후미오. '미니멀라이프' 열풍의 회오리를 일으킨 분인데 이런 유명세를 얻자 되레 침체기를 겪었나 봅니다. 속된 말로 "까라진 채" 이년반을 허송했다 하네요. 심지어는 본업인 글쓰기조차 놓았었나 봐요? 3년여 만에 새로 펴낸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에서 '글쓰기'라는 바퀴에 윤활유도 안 치고, 바퀴를 굴리지도 않았기에 신간 쓰며 고전분투했다고 반성하거든요.

자, 이번 신간도 과연 일본에서만 16만 부 팔렸던 전작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까요? 어찌 보면 "습관을 바꿔라"라는 진부하디 진부한 자기계발서 단골 주제인데 과연 독자들이 사사키 후미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까요? 읽기 전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를 다 읽고 나니, "이 책 힘이 있구나! 많이들 읽으시겠구나!" 싶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감상을 적어봅니다.



습관의 중요성, 반복의 힘을 강조하는 자기 계발서야 서가에 꽂고도 넘쳐 눕혀놓아야 할 지경으로 많겠죠. 이런 류 저자의 대다수는, 소위 '가르쳐들려는' 어투로 지시하고요. "~~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되더라." 소위, 독자 주눅 들게 하기 전략. 그런데 사사키 후미오는 다릅니다. 대놓고 가상의 독자를 이렇게 상정했습니다. "스스로 의지가 약하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게다가 어떤 소제목은 아예 "사람에게는 원래 집중력이 없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겸손을 넘어 자기비하의 경계를 넘나 싶을 만큼 자신을 '의지와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 어필합니다. 저자가 이렇게 스스로 낮추고, 허물을 드러내니 독자는 주눅과 죄책감에서 해방됩니다. 대신 독자는 '아! 사사키 후미오도 그랬구나. 남들도 다 그랬구나.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해 보자! 그래 바꿔보자!'의 뜻을 세웁니다.


사사키 후미오는 주장은 프롤로그의 제목으로 압축시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지속이다." 우리가 천재라고 믿는 이들이 번개 맞듯 영감을 얻어 큰 성취를 이룬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반복을 통해 큰 성취의 조각을 쌓아갔다는 것입니다. 인간, 심지어는 매일 달리기로 유명한 하루키나 프로 마라토너조차도 운동화 끈을 죄여 매기 전엔 '아! 하기 싫다'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걸 이겨내고 자동반사적인 습관으로 만들려면 설계를 해야 한다네요. 저자는 찰스 두히그가 "신호→ 반복행동 →보상"이 습관을 만드는 3가지 요소라고 주장하는 데 동의합니다. 나아가 깨알 팁, 아주 구체적으로 습관을 만드는 방법 50가지를 소개하는데요. 그중, 제게 인상 깊었던 전략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step 28: 남들의 시선을 이용한다. step29: 미리 선언한다." 즉, 아직 실천하지는 않았으나 마음먹은 일을 SNS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질합니다. 때로는 미래형 시제를 과거형으로 고치는 변칙도 씁니다. 탈고하지 않았는데 "탈고 후, 비엔나 커피는 달콤 그 자체"라는 식으로 완료형 문장을 과시하다 보면, 스스로 양심에 찔려서라도 그 일을 하게 된다나요? 가장 솔깃했던 팁이었습니다. 저자의 경우, 차기작으로 "즐거운 금주"를 가제로 제시하네요. 저도 뭔가를 '선언'부터 내질러버리고 싶은데요? 여러분은 어떤 '선언'을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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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3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집중력은 개인의 천부적인 능력보다는 주변 환경 등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집중력이 좋지 않다고 해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건 일종의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이야말로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

2019-01-30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