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주인공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미나 뤼스타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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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죽 로맨스류(소설 영화 만화 일체)에 관심이 없었으면, 한 번은 장안의 화제라는 순정만화를 떠밀려 읽다가 맨 마지막 장에서야 거꾸로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고, 그 캐릭터나 저 캐릭터나 눈동자에는 다이아몬드 박혀 초롱초롱한 까닭에 이해할 의지도 없었나 보다.


그러나, [소문의 주인공]을 읽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로맨스류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첫사랑 이야기라면 더욱. 청소년 소설 [소문의 주인공]을 어찌나 재미나게 읽었는지, '아! 중학생 시절로 다시 한번' 의 라떼 멘트가 나오려는 걸 자기 검열했을 만큼. [소문의 주인공]의 작가 미나 뤼스타는 첫사랑만으로 모자란 지 아예 삼각관계 상황을 설정했다. 신문사 칼럼니스트이자 기자인 마리에, 마리에의 취재원이자 모델 외모의 타리예이 선배, 마리에가 어려서부터 연정을 품었던 오랜 친구 예스펜. 이들은 중학교 2, 3학년들이다. 어린 친구들 가슴 콩닥거려하는 이야기에 설렐 수 있다니, '아, 내 마음이 맑은 것일까? 아니면 미나 뤼스타가 글을 너무 잘 쓰는 것일까?


[소문의 주인공]이 단지 연애 초기의 밀당 에피소드로만 채워졌더라면, 미나 뤼스타에게 별 넷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전작 <#좋아요의 맛>에서도 SNS의 허와실을 지적하더니 이번 [소문의 주인공]에서도 가짜뉴스,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를 보여준다. 바로 주인공을 둘러싼 소문 에피소드를 통해서. 또한 단순히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가해자, 피해자의 이분 구도를 넘어 "가짜"의 최종 책임은 분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가짜 뉴스를 소비하고, 침묵으로 동조하는 이들을 포함해서. [소문의 주인공]을 읽으니, 노르웨이 청소년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미나 뤼스타의 소설 두 편을 읽었지만, 학원 다니고 시험 보느라 어깨 처진 초등, 중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회수 올리려는 가짜 저널리즘에 맞서는 신념 있는 기자나, 현상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꿰뚫으며 글을 쓰는 대견한 예비작가가 등장한다. 참신했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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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 번역을 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사는 날들
이상원 지음 / 황소자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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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출판번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어와 영어 출판물 번역을 줄곧 해온 이상원 번역가. 대학에서 번역과 인문학 글쓰기 강의도 진행한다. 이런 이력을 쌓으며 고민해온 번역이라는 현상을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번역을 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사는 날들]이라는 에세이로 엮어냈다. 



에피소드 중에, 개강 첫 주에 고등학교 때 하던 영어해석이 번역과 뭐가 다르냐고 질문한 대학 신입생이 등장하는 데 흠칫했다. 내가 이상원 교수 강의를 수강했다면 오리엔테이션 때 물어봤을 질문이기 때문이다. 노련하고 지혜로운 스승은 즉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 1학년 학생을 포함 제자와 독자들에게 다양한 번역 연습을 시키고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옮긴다'는 것이 뭔지, 누구를 위해 왜 옮기는 것인지, 무엇이 좋은 번역인지. 이상원 교수 스스로 자신의 교수법을 질문은 많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것으로 특징 짓던데, 이 책을 읽으며 동감했다. 수십 년 번역과 연애해온 전문가로서 집적해온 아젠다를 독자와 나누려고 (번역학에?) 초대하려는 의도를. 덕분에 나도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를 읽기 "전/후"로 번역에 대한 마음가짐, 번역가의 처우(?)에 대한 실상 파악의 정도가 달라졌다. 저자 스스로 "골 빠지게 힘든" 번역이라 하면서도 번역에 소명의식에 충만한 이유를 생각해본다. 번역은 생각의 회로를 뜯어내 재배치하는, 그 경로를 보여줌으로써 소통하는 작업이기 때문일까?



"번역 수업의 목적은 정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답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92쪽)"


"내 한국어가 안녕하다는 안이한 생각을 떨쳐내고 한국어를 계속 닦아 나가는 노력, 이는 번역 수업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룬다 (120쪽)." 


"원문 존중이냐, 독자 고려나 하는 논쟁은 사실 번역과 번역학 역사를 꿰뚫고 있다. 기원전 1세기의 키케로와 기원후 4세기 말의 성 제롬도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이런 고민을 했고 독자 고려를 중시한 자기 번역을 옹호하는 글을 남겼을 정도이다 (162쪽)."


"번역을 하면서, 또 번역을 가르치면서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녀'이다. 나는 '그녀'라는 대명사를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우선 '그녀'라는 단어가 우리말에 언제 등장했는지 살펴보자. 국어학자들은 대체로 '그녀'가 20세기 초에 서구의 3인칭 여성 대명사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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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12-21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을 쓸 때 ‘~것이다’로 끝나는 문장을 안 쓰려고 해요. 번역과 작문의 기본자세는 고치고, 또 고쳐 쓰는 과정이에요. ‘독자 고려를 중시한 번역’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가요. 원문이나 단어의 의미와 다른 번역문이라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역을 한 것이라면 저는 이런 시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역자의 과감한 시도로 볼 수 있어요. ^^

scott 2020-12-21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를 위해 왜 옮기는 것인지, 무엇이 좋은 번역인지]
읽는 독자들, 읽혀지는 살아있는 문장을 위한것이네요.
결국엔 번역은 영혼을 갈아넣는 기술인가봐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0-12-24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선사 만난 번역인가 반역인가
란 문장이 생각나네요.

완벽한 번역이 존재하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2020-12-24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 서재를 기웃거리다가 [모비딕] 피규어까지 사진 올린 리뷰를 보았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었으면....' 좋다! 다시 읽어보자! 


청소년기에 읽고, '엥?' 했던 싸늘한 마음, 이젠 다를 거야.


BUT 


표지에 혹해서 그래픽 노블로 읽은 게 실수 였나?  원전의 묵직한 알맹이를 체가 큰 거름망에 다 거른 셈인가? 어째. 전율해오는 감동이 찾아와야할 타이밍에도, 허,헛, 허무하도다! 


왜 에이헤브에게 "고귀한 선장이시어"라고 예를 갖추는 걸까? 자멸의 블랙홀 에너지가 공멸을 재촉하는 데, 왜 '고귀한 선장'이라 할까? 바다에서의 40년, 말리고 소금에 절인 음식을 먹으며 작살을 준비한 40년, 이 억울함은 뭐지? '한 배' 탔다는 이유로 운명의 닻에 꿰인 뱃사람들은 뭐지?  희생된 사람 수, 이렇게 계산해가며 읽는 책이 아닐 텐데, 2021년에는 원전으로 다시 읽어야겠다. 아직까지 한 번도 읽지 못했던 소설로 다시 비워두고. 고래 콧등만 핥고 '엥?'한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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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19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내년에 한번 읽어보려고, 독서 목록에 적어두었어요 ^^

scott 2020-12-1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은 사랑입니다.^*^

페크pek0501 2020-12-1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성이 자자한 모비딕. 아직도 갖고 있지 않은 1인입니다. 두껍지 않아 좋군요.
새해에 도전!할까 생각하게 되네요.

레삭매냐 2020-12-2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 <모비 딕>은 고대로
사랑입니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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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깨알 활자로 찍힌 [분노의 포도] 마지막 장을 덮으니 새벽이었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629쪽까지 읽으니, 3시 30분이었다. 불편해서 자세를 바꾸긴 했지만 고개 한 번 안 (못) 들었다. 새벽에는 리뷰에 옮기고 싶은 문장이 넘쳤지만, 낮의 이성은 대신 저자 버나딘 에바리스토(Bernardine Evaristo)의 인터뷰를 탐색시킨다. 



https://youtu.be/NLgGsKJeXsQ


https://youtu.be/8TZpzw0puZk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을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보다 실제,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훨씬 길쭉하고 젊어 보였다. 61세(1959년 생)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곧추세운 척추, 둥글게 말리지 않은 어깨, 목 부위의 매끈한 피부, 위엄과 지성미가 넘치는 음색, 또렷한 눈동자를 가졌다. 2019 부커상 시상식, 인터뷰와 강연에서도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특유의 컬러 코디네이션과 카리스마로 시선을 사로잡는다(시선 흡인 마력).  작가 자신의 분신인 양 공통점 많은 캐릭터, '엠마'가 왜 소설 속에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지 알겠다. 실제 그녀를 보니.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영국 최초로 흑인여성극단을 경영하였고, '"장르, 인종, 젠더,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 (☜ 출판사 홍보 문구)"로 시작해 희곡, 비평, 소설을 쓸 뿐 아니라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친다. 산문인가, 시인가? 산문시?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를 먼저 읽은 알라디너들이 "마침표가 없다" 전했는데 그랬다. 열두 명 인물 이야기가 끝나는 마지막 문장, 그리고 피날레로서의 '뒤풀이 파티' 챕터까지 문장 부호가 한 번씩 총 열세 번 등장한다. 


열 두 명의 캐릭터를 교차 등장시키면서 정작,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캐럴'이라는 커리어 우먼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고 다른 인물들을 입체화시켰다 한다. 하지만, 나는 첫 등장 인물 엠마 위주로 관계도를 그리고 기억했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는 엠마의 절친 도미니크와 셜리, 엠마의 딸 야즈, 학교장 셜리와 그 개천 학교에서 유일한 용(옥스퍼드 대학 졸업)이 된 캐럴, 셜리의 직장 동료 페널리페, 그녀의 어머니 등등 총 열두 명 여성들의 삶이 교차한다. (솔직히 8번째~9번째쯤 가서는 계보 잇느라 기억력 회선이 타기도 했다). 그녀들의 어린시절, 가족관계, 또 백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 타기 과정에서 독자는 고난, 차별, 구조의 불평등, 기울어진 판에서도 사다리 타고 올라가기, 대의, 정의, 위선과 부조리, 다시 돌아와 결국 "사람은 사람이지," 평등한 연결성을 보게 된다. 스. 케. 일. 이 크다. 


'소수자'란 용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 열두 명은 타인의 시선에서 '소수자'로 갇힐 뻔한 이들인데, 저자는 고통의 서사에 집중해 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소설 중간중간 친구 간 논쟁 혹은 작은 강의의 형식으로 페미니즘의 다양성, 분열점, 가능성에 대한 소신을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치우치지 않는다. 스. 케. 일. 이 크다. 감히 말하자면.





2019 부커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버나딘 에바리스토를 모욕한 데 대해 BBC가 사과했다.공동 수상 소식을 전하며, "Margaret Atwood and another author"라 칭했기 때문이다. 버나딘 에버리스트는 즉각, 최초의 흑인 여성 수상자 이름을 잽싸게 자연스럽게 지워버렸다며 반격했다. 심지어 부커상을 받은 후에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된 작가가, 60년을 살면서 어떤 인물들을 상상 속에서 키웠을는지 이 또한 감히 상상한다. 



열두 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옥스퍼드 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딸, 캐럴의 엄마 부미. 나이지리아에서는 교육받은 사람대우를 받았지만 영국에서는 아니었다. 일자리 뺏는 이민자 취급. 남편을 잃고 고전분투하여 청소사업을 시작한다. 



" 버미는 사람들이 그녀의 직업(청소부)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그녀라는 사람(교육받은 여자)으로 보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이바단 대학교 수학과 졸업생임을 알리는 양피지 학위 증명서가 돌돌 말려 그녀 품에 들어 있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

 그녀 이름과 국적이 적힌 학위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채용 거절 통지서가 하도 자주 날아오는 바람에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주방 싱크대에서 태운 통지서가

재가 되어 배수구 구멍으로 씻겨 내려가는 걸 지켜보았다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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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18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밤 새워 읽은 *_* 북사랑님이 고개 한 번 못 드시고 읽으셨을 정도라니, 궁금해지네요!

비연 2020-12-18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야겠군요 ..!

행복한책읽기 2020-12-18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개 한 번 안 들고 밤을 새다. 아직 북사랑님은 젊으시구나.^^

얄라알라 2020-12-18 22:19   좋아요 0 | URL
사정이 있어 전날 24시간 이상 수면 비축^^해둔 것으로^^;;
소설도 그만큼 재밌었고요.
작가가 경계긋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기 때문에 저런 풍성한 색감으로 인물들과 그 여백을 채우겠거니,

scott 2020-12-1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사전 두께네요 밤새서 읽으셨다니 솔깃@@

얄라알라 2020-12-18 23:07   좋아요 1 | URL
록산 게이의 소설 캐릭터들이 독자를 더 힘든 수준까지 몰아가며 힘들어지는 데 반해, 이 소설 캐릭터들은 그 층까지 내려가기 전에 먼저 다시 치고 올라오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 덜 힘들었어요. 페미니즘의 역사와 갈래(?)를 더 잘 아는 독자 눈에는 캐릭터들의 포지션이 더 잘 보이겠는데, 저는 일단은 서사를 따라가는 수준으로^^

레삭매냐 2020-12-24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커상 위업에 사두긴 했는데...
못 읽고 먼지가 쌓여 가고 있네요.

내년에 만나 보는 것으로.
 
다윈의 기원 비글호 여행
파비엥 그롤로 지음, 제레미 루아예 그림, 김두리 옮김 / 이데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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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뱃사람과는 달리 긴 항해에 익숙할 리 없는 그가 20대에 5년간(1831년~ 1836년) 비글호를 타고 여행했다. 훗날 [종의 기원]을 낳는, 그 전설적인 비글호 여행. 그러나 정작, 아는 바가 없다. 선물받고 서가 전시용으로 비치해두던 [종의 기원] 원서만큼이나 멀리 있는 비글호. 다행히 그래픽 노블로 '비글호 여행'을 전해주는 책을 찾았으니 지나치지 않았다. 제목은, [다윈의 기원, 비글호 여행].




중년의 다윈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비글호 여행담을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이다.[다윈의 기원, 비글호 여행]은 찰스 다윈이 직접 쓴 <Voyage d'un naturaliste autour du monde>을 각색했다. 그래서인지 1인칭이 아니고서는 알기 어려운 내밀한 에피소드들도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비글호 피츠로이 함장이 유럽인처럼 길들인 원주민 3인의 뒷 이야기. 피츠로이 함장은 이들을 '원주민 선교사' 역할 하기를 기대했으나, 막상 이들은 그 동안 서구인들의 시선을 내면화해 '야만'이라 여겼던 동족을 보고 마음이 돌아선다 (이후는 책을 읽고 직접 확인 하시기를).




Pehuén Editores Pehuén Editores, CC BY-SA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본문에서 서구 대비 비서구의 야만성,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성을 상징하는 부족으로 등장했던 파타고니아의 (사라진) 원주민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윈은 노예제도를 극렬히 반대했다 한다. [다윈의 기원, 비글호 여행]에서도 피츠로이 함장과 노예제를 둘러싸고 말 그대로 핏대를 세우고 논쟁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는 19세기, 백인 남성, 중산층이라는 3박자의 조건이 유도하는 시선을 보이기도 한다. 19세기 인류학자들에게 그러했듯, 다윈에게 '그들'은 유럽인과 공통 분모는 있으나 관찰대상, 학문 대상이었을 뿐 친구는 아니었다. 



여기서 갑자기 <비거닝>의 필진 김성한 교수의 에세이가 생각난다. 그의 어린 시절, '베니'라는 개를 키웠다 한다. 평생을 나무 개집에서 살았고, 가족 누구도 베니와 산책하거나 놀아주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 당시에는 개를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베니를 집 안으로 들여와 같이 자고,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는 등의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성한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렇게 반려견을 키우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 않았는데, 만약 우리 가족이 현재 실내에서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처럼 개를 대했다면 오히려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89 쪽)."

비글호 여행을 하며 만난 토착민들을 대하던 다윈의 시선, '베니'를 사랑했지만 결코 2020년의 '반려견 문화(?)'에서 합격시켜줄 만큼 '베니'를 잘 대해주지 못했다는 김성한 교수.  2020년 우리에게, 그것이 국경 너머 다른 국민이건,  한 겨울 마스크도 없이 노숙하는 누군가이건, 혹은 인간 종 외의 무엇이건...., 차별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차별하고 있음을 인식도 못하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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