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폭염, 땡볕이라는 이름이 경박하게 느껴질만큼 뜨거움, 순수한 뜨거움의 8월 태양. 

자외선 차단제도 모자도 없이 온 몸으로 그 뜨거움을 받는데 이 끓어오르는 희열, 인간을 고개 숙여 감사하게 만드는 경건한 힘. 태양의 열기.

8월 오후 3시의 햇볕은 너무도 강렬해서 몸 겉과 내면이 멸균시켜주는 듯 했다. 

도심 아스팔트에서의 땡볕이 아니라, 

시골, 농지에서의 땡볕. 그 볕에 익은 벼로 밥을 지어 먹었다.  뜨거움을 기억하기에 더욱 감동인 그 밥. 



벼는 뜨거운 햇살과 기어올라 집(쥐가 논에 집을 짓는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을 짓는 쥐의 간지럽힘, 여름의 태풍 모두 감내하고 맺은 열매를 인간에게 내어주고, 몸통, 볏짚까지 다 가져가라 한다. 

복조리를 만들어 왔다.



합성화합물들을 다 걷어내리라는 듯 뜨겁게 내리쬐이던 그 8월의 태양. 

2019년, 내 감각의 문이 가장 살아 열리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글로도 뜨거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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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동료가 선물해준 책이 [종의 기원]. 멕시코 친구였는데 당연히 영어 원서였다. 친구 성의엔 미안했지만 점차 서가 뒤편으로 밀려난 그 책은 지금 지적으로 태만한 주인의 애정을 갈구하며 숨죽이고 있다. 


책을 좋아하지만, 편식이 심해서 철학책을 잘 못 읽는다. 편식이 아니라 그냥 취향도 없이 참을성이 부족한 거다. 엉덩이 붙이 고 앉아서 한시간에 한장을 읽더라도 곱씹어 문장을 삼킬 참을성도, 아밀라아제도 없는 거다. 그냥 마음이 급해서 영양제 뚜껑이 열려 있어도 못 꺼내는. 


몇 달 전, 선물받았는데 결단만했지 아직 시도도 못한 책이 있다. [정신의 삶 (The Life of Mind)] 한나 아렌트. 책 읽다 이해가 안 가면, 바닥을 뒹굴며 제 분을 못참아하던 초딩시절이 떠오르며, 나 이러다 머리카락 웅큼웅큼 빠지는 거 아냐? 싶어서 시도도 못한다. 



그래서 살짝 비껴가기. 입문서 격으로 그녀의 삶을 다룬 책부터 접한다. 그것도 이왕 소프트하게 하는 거, 소프트하게 그래픽 노블로. 




"한나 아렌트를 읽는 법"


아렌트는 의식 있는 파리아pariah이자 풍자가로서 어떠한 규칙에도 얽메인 적이 없으며,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래서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아렌트에 관해 쓴 글을 읽으면 우리는 아렌트보다 글쓴이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다시 아렌트로 돌아가자. 그리고 다시.비평가의 글을 읽고, 아렌트로 돌아가기를.반복하면 된다(238쪽).


두 번의 탈출,

from 독일.

from 프랑스.

그런데 층위가 다른 그 세번째 탈출은? 한국아렌트학회 회장 김선욱교수가 이 책의 방점이 세 번째 탈출에 있다 하는데, 읽고도 확실히 문장으로 설며하기가 어렵다. 이래서야 [정신의 삶]에 입문할 수 있을까? 2020년이 가기 전에 [정신의 삶] 읽기를 새해목표 중 하나로 미리 올려놓고. 리뷰 끝! "우리는 아렌트보다 글쓴이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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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9-12-1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나 아렌트 좋아하는데 책은 논문 하나 읽은 게 전부이네요, 불성실함에 자책하며 내년에는 꼬옥 이렇게 다시 약속을 해봅니다. :)

2019-12-2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3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은 너무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해. 지구상 개체 수 젤 많은 게 뭔데? 곤충이야말로 지구의 주인!"

네바다 사막으로 필드 트립을 다녀오곤 하던 곤충학 박사 친구의 말 중, 가장 충격적 발언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들 많이 읽는 책 중에서도 "돼지" 중심인 [동물농장], 토끼들의 세상 [피터 래빗], 심지어 디즈니표 쥐, [미키 마우스 & 미니 마우스] 는 있어도 제대로 곤충 동화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찰스 다윈길 36, 곤충 아파트(원서 제목: Blatt)]는 특별했다. 요즘 쏟아지는 한국 작가의 동화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학원, 핸드폰, 떡볶이, 성적 닦달해대는 엄마" 등 진부한 소재가 아니라서.


1983년생 작가가 2004년(출간 당시 고작 21세!)에 이탈리아 어린이들에게 선보인 이 동화는 이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푸른숲출판사가 무려 '이탈리아 대사관 주관 번역 문학상' 수상자인 이현경 박사에게 번역을 의뢰해 한국 어린이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바퀴벌레들, 거미, 집게벌레, 쇠파리 등의 동물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다들, 찰스 다윈길 36, 곤충아파트 입주민들인데 이들에게 무슨 위기가 닥쳤는지, 다들 초흥분상태이다. 예지몽 속에서 보았단 무시무시한 괴물은 실존했다. 바로, 털복숭이 네발 달린 짐승의 형상을 하고. 그는 다름아닌 개, "샘"이었다. 아파트 무단침입한 주제에 염치없기가 안하무인이고, 똥오줌을 무기 삼아 곤충들에게 오물 세례로 괴롭힌다.



읽으면서, 긴박한 전개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혹시 [동물왕국]처럼 어른들을 위한 정치 풍자 동화 아니야?'하면서, 캐릭터와 줄거리를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 조지 W. 브라트를 둔 브라트 소장은 꼭 미국의 전 대통령들인 부시 일가를 연상시켰으니까. 또한 거대하고 대적하기에 묘안이 없어보이는 적을 앞에 두고, 전략가 곤충들이 회의를 하는 행태가 인간들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그러나, [찰스 다윈길 36, 곤충 아파트]를 다 읽고 드는 생각인데, 이 책은 같은 일원으로 삼기에는 예외적인 구성원들을 포용하면서 진정한 공동체로 발전하는 모습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는 책이다. 어린이라면 충분히 얻어갈 게 많을 것이다. 알고 봤더니 육류 소화장애로 채식만 고집하는 들고양이에게 곤충들의 아파트 출입을 허용하고, 곤충들을 그토록 괴롭혔던 개, 샘에게도 연민과 동정의 정서를 보이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큰 갈등과 미움보다는 화해와 조화를 택하는 현명한 결론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도 위기가 대전환의 계기가 되는 경우를 막연하게 나마 느끼겠지! 좋은 동화이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간만에,  "학원, 핸드폰, 떡볶이, 성적 닦달해대는 엄마" 라는 전형적 장치들이 등장하지 않는 참신한 동화를 만나서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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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무식" "까막눈"이라 자기를 낮춰도 "TMI(정보의 설사Too Much Information) "이 되레 조롱거리가 되는 시대인만큼 겸손한 애교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서예, 그 새로운 탄생] 전시회에서 '"까막눈"은 결코 애교가 아니구나'를 제대로 느꼈다. 서예 박물관 전시에 갔더니만 화선지 위 검은 글자는 그저 기호이더라. 세종대왕님이 아니계셨던들, 나는 일상은 커녕, 조롱받을 지경으로 까막눈이었겠더라.

[서예, 그 새로운 탄생]의 1부 제목인 "법고창신法古創新" 부터 알딸딸. 네이버 검색해서 뜻 확인.


갑골문자로부터 서예가 예술화된 명청(明淸)대까지의 작품들을 벗으로 삼아, 서사적인 임서와 새로운 창조를 선보이며 서예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선질과 혼을 품고자 합니다.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서예, 그 새로운 탄생] 2부에서는 설치 작품으로서의 서예를 통해서 그 편면성을 극복하려는 실험의지를 보인다. 


갑자기 대만 "Cloudgate Dance Theater"가 십 수년 전 시도하고, 이미 널리 알려진 현대무용으로 옮기는 서예작품이 생각났다. "관람객들이 획의 예술과 공간의 여백, 글씨의 빛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지만, 물질로서의 평면성 입체성을 떠나 비물질로서의 활자를 만들어 낼 시도까지는 어려웠을까?


https://youtu.be/nGQIrTs2FAw


[서예, 그 새로운 탄생] 3부. 실은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일테고, 1부의 점잖고 우아한 "법고창신"은 이 3부의 화려한 색조화장을 위한 밑화장으로 기획되었으리라 추정해본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의 서예가! 



예술의 전당을 동네 까페 나들이가듯 드나들던 시기에조차 "서예박물관"은 찾을 이유를 못찾았다. 작심하고 [서예, 그 새로운 탄생]를 찾으니, 그림과 글자가 하나요, 혼과 물질이 다름이 아니요, 21세기 cloud와 마찬가지로, 옛 사람들은 글자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고 초월해 통했구나.

놀라운 느낌이었다. 서예박물관 좀 더 자주 찾아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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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2-02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위의 사진이 갑골문자인가요? 오래된 문자인데 제일 조형미가 살아있는 듯 보여요. 상형문자가 유래했으니 그렇게 보이는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국립한글박물관은 가봤어도 서예박물관은 한번도 안가봤어요. 덕분에 오늘도 흥미를 더해갑니다.

2019-12-03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12-0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서예 한답시고
수도 없이 먹을 갈곤 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그만 두길 잘했다
싶기도 하구요.
 

말 해도 안 믿는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뻥튀기 뻥튀기 뻥뻥 튀기꾼' 취급 당할까 이젠 잘 꺼내지도 않지만 잡지 기사를 읽고 나서 적어본다.

한국 "데일리포스트"의 김정은 기자가 'Men'sHealth' 기사를 참조해서 쓴 듯 한데, 제목이 흥미롭다. "머리를 많이 쓰면 칼로리 소모도 늘어날까?"http://www.thedaily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71234



구소련 출신의 체스선수 아나톨리 카르포브(Anatoly Karpov)의 구글 검색 사진으로 보아, 이 위대한 체스선스에게 "쇠약"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데 기사에 따르면 그는 1984년 세계 체스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 의사의 강권으로 타이틀 매치를 중단하기 했다. 대회기간 10kg이상 체중이 줄면서 건강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


고3 때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면 학교가기 전 몸무게가 집에 와서의 몸무게가 1~1.5kg 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교복 바지가 ('줄줄 내려왔'다면 심한 뻥뻥튀기이며) 헐렁헐렁해졌다. 불과 하루 만에!!! 현기증도 나서, 마지막 교시 시험을 치르고 복도에 나왔을 때 복도에 붕붕 떠다닌다고 느꼈던 적도 몇 번이다. 건강했다. 건강하다. 그니까, 바지가 헐렁해졌다거나 현기증을 느낀 건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어렸어도 막연히 그 이유는 알았다. 고도 초집중을 오랜 시간 지속해서 몸이 반응하는구나! 

뜨거웠던10대를 기억하면 떠오르는 감각 중, 바지가 헐거워졌을 때의 묘한 성취감. 가벼운 현기증.

장시간 초집중 후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느꼈던 성취감, 희열. 아련하다.

뜨거웠던 10대 이후, 삶의 어떤 과정에서 그런 희열을 느껴본 것인지.......인간의 year단위가 무색할만큼 아득하게 느껴진다.

초집중할 무언가를 찾고 싶다. 찾는 게 문제가 아니구나...처음부터 아니었구나. 초집중할 능력을 되찾고 싶다. 아! 그렇다고 해서, 다시 고3수험 생활과 격주 모의고사 의례는, 결코 사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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