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을 읽다가, 커다란 통유리를 뚫고 내려 쬐이는 햇살이 강렬해서 눈을 감았다. 온통 진한 주홍빛 세상. 무한히 내어주는 태양. 원할 때 언제든지 불순물 거치지 않고 태양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내일도, 그 언제라도 태양이 불순물 없이 인간의 몸에 닿으리라는 믿음. 

[침묵의 봄]을 읽으며 처음 깨달았다. 아침에 새소리가 들리지 않고,  끈끈한 초록의 인공호수와 물고기 없는 강을 내가 편안할 만큼 익숙하게 느낀다는 것을. 레이첼 카슨이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생명의 색채와 소리가 사라져감을 나는 사실화의 일부인 양 무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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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봄]은 두 가지 지점에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첫째, 수년 전부터 별러온 책인지라 긴장하며 읽는데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레이첼 카슨의 주장마다 동조하면서도 익숙해서 새롭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둘째, 레이첼 카슨이 묘사하는 자연의 풍경은 이미 나에겐 영화적 연출로나 가능한 이질적인 것이었다. 나는 이미 새소리가 소거되고, 가을에도 코스모스 보기 어렵고, 꿀벌은 세밀화그림책에서나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침묵의 봄] 세부 내용과는 별개로, 나의 이런 반응 자체가 놀라워서 곱씹어 생각 중이다. 왜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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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 두 가지 지점이 레이첼 카슨이 진정 20세기 이후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란 것을 깨달았다. 2021년에서야 화학물질, DDT는 물론 음식이나 화장품에 첨가되는 인공향료, 잔디에 뿌리는 제초제의 유독성이 상식으로 공유된다. 하지만 [침묵의 봄]이 나온 1962년이라면, 녹색혁명으로 상징되는 과학과 기술로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녹색" 믿음이 얼마나 기세 높던 때인가! 거대 화학회사 등 봄을 침묵시켜 부를 증식하는 세력들이 레이첼 카슨을 얼마나 집중 포격했는가? 레이첼 카슨은 자연애가 묻어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과 섬세한 관찰력 때문에 도리어 "非과학적"이라는 부당한 비난을 얼마나 받았던가?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읽고, 또 읽은 [침묵의 봄]은 2021년 상식이 된 생각들의 단초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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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점. 레이첼 카슨이 그 상실을 두려워하며 묘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에게 도리어 어색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지키고 싶다,' '지켜내야만 하겠다'라는 투사 정신 대신, 그나마 태양을 쬐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소심한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영국의 정치철학자 브래드 에번스가 우려했던 '허무주의,' 인류는 머잖아 자초한 대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허무주의에 나는 이미 젖어 있는 것인가? 집합적 허무주의야말로, 봄의 침묵을 가속화시키지 않을까? Covid19라는 2021년의 전염병 X, 그리고 '전염병 Y' '전염병 Z'는 현재처럼 애그리비즈니스가 세계의 식량 생산과 흐름을 쥐락펴락하고, 나무를 쓰러뜨린 자리에 소와 바이오연료를 위한 옥수수를 심는다면 반드시 인류를 찾아올 텐데 그냥 예견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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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이 카메라에 자연을 담고, [침묵의 봄] 문장에 영혼을 담아 후대에 전하면서 나 같은 독자를 원하지를 않았을 것이다. 봄을 침묵시키려는 힘들에 짓눌리더라도 어깨 맞대고 함께 밀어내려는 투지를 독자들이 발휘하길 바랐을 것이다. 마을에서 환경 운동을 꾸준히 실천해왔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서 맥 빠진다고 투덜거리는 중이다. '에코'백 수집하듯 '에코'활동을 마일리지로 쌓고 이력서 한 줄 거리 삼으려는 사람들, 시간당 돈으로 '에코'실천 환산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고개 도리도리하기만 했다. 정작 나는 다음 단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침묵의 봄]에 수록된 경고음들은 이미 익숙히 들어왔다. 레이첼 카슨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경고음을 자장가 삼지 말라는 더 엄중한 경고. 나부터 움직이고, 내 곁을 움직이고, 또 그 곁의 곁이 파동을 일으켜 봄의 소리 출력을 키우도록 "움직이라"는 메시지. 인간은 어차피 태양 잃은 회색 하늘 아래 살 것이라는 암울한 허무주의는 버리라고! 


ㅂㅂㅌㅌ님, ㄱㅇㅇㄹㄷㅇ님^^

저는 [침묵의 봄]을 끝까지 다 읽었는데, 어째 리뷰는 감정에 호소하는 일기가 되어 버려서 책 내용이 없네요. 저에게 [침묵의 봄]은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정서적 충격을 크게 주었어요. 내용 자체는 평소에 늘 생각하는 부분과 겹쳐서, 도리어 그런 제 태도를 자기분석했습니다.

 다음 2차 리뷰에서는 책 내용에 집중한 글을 쓰겠습니다. 같이 이 소중한 책을 읽고 이야기할 기회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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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11-16 20: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북사랑님~~~~ 감정 호소 일기형이시라 명명한 이 리뷰가 저는 넘 맘에 듭니다. 북사랑님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얻어 가는지 잘 드러나 있어 읽지 않은 저도 그 정서를 느낄 수 있었어요.^^ 시린 겨울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지금, 볼륨 끝까지 올린 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감솨!!!^^

scott 2021-11-16 21:13   좋아요 5 | URL
동감합니다!🖐^^

[인간은 어차피 태양 잃은 회색 하늘 아래 살 것이라는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상 ㅜ.ㅜ
새들이 사라진 곳은 더이상 어떤 생명체도 싹을 틔우거나 숨을 쉬고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북사랑님에 이어서 담번 리뷰는 북플의 셀럽 툐툐님 !^^

붕붕툐툐 2021-11-16 22: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슨 너무 멋진 수필 한 편이네요~ 같은 작품 다른 리뷰고 다 읽어버리셨다니 너무 놀라워요! 아, 진짜 북사랑님의 넓은 시야를 본받아야겠습니당~ 그나저나 ㄱㅇㅇㄹㄷㅇ님은 풀네임 적어주시고, 저는 왜 ㅌㅌ죠? 저도 ㅂㅂㅌㅌ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사진도 너무 좋아요! 흐엉흐엉~~

얄라알라 2021-11-16 23:59   좋아요 2 | URL
^^ 저 사진은 바로 ˝지혜의 숲˝에서 찍었답니다^^ 넘 잘어울리죠? 붕붕툐툐님^^ 제가 맘 속으로 항상 툐툐님 하고생각했더니 ㅌㅌ라고 한거 같아요, 의식도 못하고 있었네요^^

˝지혜의 숲˝ 파스쿠치 커피숍 한쪽 창가, 정말 끝내주는 일광욕 자리더라고요! 붕붕툐툐님께서는 산에서 더 순수한 빛을 만나시겠지만 순도 높은 빛을 경험하고 왔어요^^

coolcat329 2021-11-16 23: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감정호소라뇨~~ 읽으면서 너무나 공감했고 나라면 이런 생각 못했을텐데 ...생각도 했어요.
멋진 한 편의 수필 저도 한표!

얄라알라 2021-11-17 00:01   좋아요 2 | URL
쿨켓님^^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항상 머릿 속은, 플라스틱 많이 쓰는 회사 고객센터에 연락할 일, 분리수거장 순례하며 사진 찍고 글 쓸 일, 동네 꼬마들과 줍줍할 일, 머릿 속은 항상 바쁜데 10분의 1이나 실천하나봅니다.

쿨캣님, 좋은 밤 되세요~

책읽는나무 2021-11-17 08: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러한 리뷰!! 너무나 제 스탈이라 좋아합니다.책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책을 읽고 내 생활에 스며들어 개인의 의식을 변화시켜 주는 그런 삶이 바로 진정한 책 읽기가 아닌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북사랑님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느꼈습니다♡
환경 오염,기후 위기 때문에 저도 참 걱정입니다.지난 달에는 그래도 플로킹을 좀 했었는데 무릎 아프다는 핑계,귀찮다는 핑계로 플로킹 휴식기간이네요ㅜㅜ
환경에 관한 책도 자주 읽어 자극을 줄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북사랑님께도 소중한 같이 책 읽기시간 되셨겠어요^^


혹시 저기 카페가 그 한 자리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연이어 마신다는 그 맛집 카페인가요????ㅋㅋㅋ

얄라알라 2021-11-17 09: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있는 나무님께.바로댓글 하지못해서 여긴 남깁니다^^저곳은 아마 책읽는 나무님께서도 다녀오셨을 지혜의 숲 건물 내 까페랍니다^^ 제가 애정하는 카페 저 어제 2잔 웟샷하고 새벽4시까지 똘망똘망 괴로웠어요 ㅎ

고양이라디오 2021-11-17 1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혜의 숲은 파주 지혜의 숲인가요?

얄라님의 이런 에세이 스타일의 리뷰 너무 좋은데요ㅎ?? 얄라님의 글에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허무주의‘ 에서 벗어나서 ‘봄의 소리‘ 를 키우도록 움직이자! 라는 메시지! 멋져요^^ㅎ

얄라알라 2021-11-17 11:57   좋아요 3 | URL
네에~^^ 파주 맞습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절로 졸음도 왔다는 건 비밀^^

저 어제 새벽 4시까지 Rachel Carson을 인용한 Covid19사태 진단하는 글들 뒤져봤어요.
21세기에도 계속 인용되고 영감을 주는 학자시더라고요^^ 조만간 15장까지 내용 자체를 정리한 리뷰 올리도록 할게요^^

고양이라디오 2021-11-18 11:39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해요. 레이첼 카슨을 인용한 코로나19사태 글들이요^^

저도 파주 지혜의 숲 가봤는데 좋더라고요. 또 가고 싶네요ㅎ

독서괭 2021-11-17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바로 레이첼 카슨이 독자에게 바랐던 반응이 아닐까요? 60년 뒤의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정서적 충격과 함께 현실을 다시 인식했다는 걸 알면 기뻐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이 책 참 좋았는데.. 실천은.. 실천은.. ㅠㅠ 텀블러 사용, 설거지바 사용, 고체치약 사용으로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어봅니다.

얄라알라 2021-11-30 23:38   좋아요 1 | URL
샴푸바는 많이 쓰시던데, 설거지바는 설거지용 비누인가봐요? 저도 모르던 아이템이네요. 플라스틱을 어떻게 해서든 줄이려고 눈에 불을 켜다 보면, ‘일상 상비용품‘들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독서괭님 말씀처럼, 치약 케이스도 문제고, 플라스틱 용기 담긴 샴푸나 린스통은 그 안에 스프링이 들어 있어 재활용이 안 된다 하더라고요...저도 친환경 샴푸만 쓰지만, 결국 용기만 놓고보면 친환경이 아닌지라 고민입니다.

독서괭님 좋은 12월 시작하시길^^

독서괭 2021-12-01 06:44   좋아요 1 | URL
네 고체형 설거지비누입니다^^ 동구밭 거 쓰는데, 좋아요!

서니데이 2021-11-18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얄라알라북사랑님, 좋은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1-11-30 23:38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많이 늦었지만
좋은 12월 시작하시라고 인사 드립니다^^

2021-11-22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30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30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11-23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못 봤지만, 여기 나온 것에서 많은 게 현실이 됐을 듯합니다 벌은 아주 많이 줄기도 했지요 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살지 못한다고 하는데... 새도 많이 줄었겠습니다 이번주는 춥지만 지난주가 이상했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따듯한 십일월... 겨울 추워서 안 좋다 해도 추운 겨울이 있어야 따듯한 봄이 오죠


희선

얄라알라 2021-11-30 23:3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침묵의 봄]을 첫 몇 챕터만 읽으시던 지인 분과 대화를 최근 나누었어요. 그 분은 실제, 벌들이 농약 등 유해화학물질 때문에 빙빙뱅뱅 돌다가 죽어가는 걸 보신 적이 있었고, 그래서 [침묵의 봄]을 끝까지 한 번에 읽으실 수 없었다 하시더라고요.....자연에 대한 감각이, 오감으로 경험했던 이와 상상으로만 벌을 만났던 세대와 상당히 다를 것 같아요. 희선님 말씀 덕분에 제가 마지막으로 벌들을 본 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봅니다.

2021-11-25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30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