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 걸스
M.M. 쉬나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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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세대의 사람이라 그런지 웹상에서 누군가와 채팅을 통해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는 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그 사람을 뭘 보고?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 뿐 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프라이빗 한 정보를 웹 상의 그 누군가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보이는 걸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자신과 취미가 맞고 코드가 비슷하면 그 사람을 어디에서 만나든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않다.

어쩌면 내 생각은 요즘 시대에 뒤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밑바탕에 사람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깔려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내 우려를 키우는 건 언제나 즐겨 읽는 이런 스릴러 책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호텔방에서 이상한 모습...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목 졸려 죽은 여자의 시신이 나온다.

경찰들의 조사로 그녀가 이날 처음 이곳으로 왔을 뿐 아니라 회사 세미나 참석 차 온 커리어 우먼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살해당한 그녀가 묻지 마 살인의 피해자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같이 호텔방으로 들어 간 후 금방 나왔던 한 남자의 존재가 거슬린다.

모두의 의견이 그녀가 재수없게 묻지마 살인에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조 푸르니에 경위는 그렇게 쉽게 이 사건을 놓을 마음이 없다.

언제나 현장에서 범인을 찾는 것이 좋았던 조는 경위로 진급된 후 현장에서 멀어져 항상 서류 작업만 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던 차에 이 사건을 맡게 되었고 그래서 더 반드시 범인을 잡고 싶다는 열망이 큰 상태였다.

하지만 남편을 비롯해 직장 동료까지 모두 조사를 해도 죽은 여자가 살해당할 뚜렷한 이유도 용의자도 특정 짓지 못한 채 사건이 덮일 뻔한 순간 휴가차 간 뉴올리언스에서 자신이 맡았던 사건과 모든 것이 비슷한 또 다른 살인사건을 알게 된다.

사건에 관한 정보를 보면서 순식간에 같은 놈에 의한 살인임을 직감하는 조

누군가가 회사의 일로 낯선 곳으로 온 유부녀를 노린다... 그리고 범인과 피해자는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죽은 피해자 주변을 아무리 훑어봐도 떠오르는 사람은 없고 처음의 살인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은밀하게 이루어져서 사건 추적이 쉽지 않다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닮아 있는 두 건의 살인사건을 보면서 조 경위는 분명히 이와 유사한 사건이 더 있을 거라는 걸 예감하고 그녀의 이런 짐작은 맞아 떨어진다.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특징 지어가는 단계를 보여주는 조 경위의 시점과 자신이 다음 희생자를 어떻게 선정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꼬시는지... 그리고 손아귀에 쥔 다음 희생자를 어떻게 원하는 곳으로 오게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범인의 방법을 보여주는 범인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댄싱 걸스는 요즘 뉴스에서도 자주 다루는 온라인 범죄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이런저런 사이트에 미끼를 던져놓고 살살 꼬드겨서 원하는 정보를 취한 후 그 사람이 은연중에 원하는 걸 보여줘 환심을 사 친밀감을 형성한 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단박에 낚아채는 것

여기에서는 피해자들 대부분 일상생활에 지치고 현실과 꿈꾸던 이상과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중년의 유부녀였고 범인은 그런 그녀들이 꿈꾸는 로맨스를 제시함으로써 여자들에게 꿈과 환상이라는 판타지를 선물해 환심을 사서 원하는 걸 얻는다.

웹상에서 만난 이성에게 빠져 자신의 돈을 몇 차례나 송금하고 뒤늦게야 자신이 당했다고 호소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허술한 범죄에 당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 범인이 보여주는 치밀함이라면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납득하게 된다.

초반부터 범인이 어떤 심리로 여자들에게 접근했는지부터 범죄의 수단까지 모든 걸 보여주는 댄싱 걸스는 중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위험을 의외의 반전을 통해 분위기를 다시 바꿔준다.

조 푸르니에 경위가 범죄를 알아보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 책 댄싱 걸즈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소설의 첫 편이라는 설명을 보고 납득이 갔다.

아마도 다음 편에서 그녀의 뛰어난 재능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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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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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주 어릴 때 tv로 방영된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만화영화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소년의 엄마가 멀리 일하러 간 건지 왜 엄마랑 헤어져서 지내게 된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그 보고 싶던 엄마를 찾아 어린 소년이 계속 길을 떠나 온갖 사람을 만나고 헤맸던... 그 과정이 슬프고 안타까워서 울기도 했던 그런 추억의 만화였고 당연히 미국 소년이었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아르헨티나 소년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시간이 한참 흐른 후였다.

느닷없이 이 만화영화를 소환한 이유는 이 책 빅티켓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찾는 대상이 엄마가 아닌 동생이라는 것만 다를 뿐...

잭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전염병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누이와 함께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친척 집으로 가던 날 악당들과 마주치면서 할아버지는 악당들 손에 죽임을 당하고 누이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악당들에게 끌려간 동생을 찾고 할아버지를 죽인 악당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자신이 물려받을 유산으로 추적팀을 구성해 그들을 쫓는다.

동생 룰라를 끌고 간 악당 무리들은 인근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중 우두머리는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들의 목을 그어버리는 걸로 유명해 일명 컷스로트 힐로 불리는 잔인한 놈이었고 인근 은행을 털어 달아나던 길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뚜렷하게 나오지 않지만 책을 읽다 보면 사방에는 총질이 난무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죽여서 빼앗는 일이 예사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봐왔던 혼란스러운 서부시대의 모습 그대로를 닮아있다.

잭이 만든 일명 추적팀의 면면을 보면 작가가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썼는지를 조금 알 수 있는데... 일단 동생을 찾기 위해 수색팀을 꾸린 잭은 아직 열여 섯 살밖에 되지 않은 미성년자이고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 역시 평범하지 않다.

사랑을 믿지 않고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자 기질의 난쟁이와 거구의 흑인 총잡이 그리고 도중에 그들과 함께하는 여자는 매춘부였다.

이 들의 세상에는 유색인종과 함께는 술도 마시지 않을 뿐 아니라 파는 것조차 거부하기 예사고 난쟁이는 서커스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여겨지는 걸 당연시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부속이나 노리개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오로지 백인의 남자들만이 모든 걸 갖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이렇게 불평등한 세상에서 비록 악당이지만 그들이 쫓는 사람은 백인의 남자였고 추적하는 잭의 일행은 그들의 시선으로 봐선 루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잭 역시 처음 그들 즉 난쟁이 쇼티와 흑인 유스티스를 만났을 때 그들을 미덥지 못하게 생각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잭의 이런 생각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바뀌게 된다.

쇼티와 유스티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추적에 진심이었고 심지어는 그 일을 잘 해냈을 뿐만 아니라 선택의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현상금 사냥꾼 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룰라를 찾기 위해 악당들의 뒤를 쫓으면서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과의 잔인하지만 거침없는 혈투도 그렇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나 쉽게 이뤄지는 모습에 잭은 이제까지 믿어왔던 종교관과 양심의 가책 때문에 내내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쇼티와 유스티스와 함께 하는 동안 잭 역시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작가는 세상이 선과 악 두 가지로 만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쇼티의 입을 빌려 사람들이 가진 이중적인 잣대를 비꼬고 있다.

사방에 총질이 난무하고 살인이 예사로 이뤄지는 무법천지 같은 세상에서 신을 믿고 정의를 믿었던 소년 잭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자신이 가진 외모적 특징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 못했던 쇼티와의 대화를 보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염세적이지만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인물로 묘사된 쇼티라는 인물이 가진 반전 매력도 그렇고 종교적이고 금욕적인 인물로 보였던 잭의 할아버지가 숨기고 있었던 비밀도 그렇고 나오는 인물들 모두의 캐릭터가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한편의 서부영화를 보는듯한 재미를 줬다.

알고 보니 작가가 아주 오래전 인상적으로 읽은 밑바닥의 작가였는 데 그 책에서도 인종차별에 대한 고발이 있었던 걸 보면 작가가 어떤 부분에 관심이 많은지를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책을 두 권 읽었는데 둘 다 마음에 드는 걸로 봐서 다음 책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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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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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도 소개 글에 언급했지만 오래전 본 영화 양들의 침묵은 정말 엄청 무서웠고 소재도 그로테스크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

잔인하게 사람의 귀를 물어뜯고 피 칠갑을 해서도 우아하게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그 무서울 정도로 대비되는 모습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미치광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일련의 과정을 너무나 빠르면서도 거칠지 않고 오히려 우아함이 느껴질 정도로 능숙하게 하는 모습이 더 섬뜩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게다가 그런 그를 찾아온 FBI 수사관과의 지적인 대화는 그때까지 알고 있던 살인마들과는 너무나 달라서 더 강렬하게 기억되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살인마도 한니발 렉터를 연상케한다.

갇혀있으면서도 뛰어난 두뇌와 그 두뇌를 사용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 내는 능력까지...

얄미울 정도로 철저히 계산된 그 모습을 보면서 그를 상대했던 FBI를 비롯해 로버트 헌터까지 그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수사팀이 심정이 이해가 갔다.

비가 내리던 국도에서 달리던 트럭이 사고를 일으킨다.

그때 그 자리엔 경찰이 식사를 위해 와있었고 교통사고 현장처리를 하던 중 주차된 한 차의 트렁크에서 목이 잘린 두 여성의 시신 일부를 발견하면서 오랜 시간 아무도 그 존재조차 몰랐던 천하의 사이코패스의 존재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굳게 입을 닫은 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외부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치 평범한 날처럼 일상을 규칙적으로 보내는 모습을 보여 모두를 질리게 만든다.

그렇게 굳게 입을 닫았던 그가 입을 열고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LA 경찰국 강력 범죄 수사대의 로버트 헌터 형사가 휴가까지 취소하고 급하게 불려온 이유다.

로버트는 그를 보자마자 한눈에 자신과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던 친구 루시엔이라는 걸 알아봤고 루시엔은 그에게 자신이 누명을 썼음을 호소한다.

그리고 루시엔의 주장한 대로 그의 무죄를 증명할 장소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보게 된다.

자신들과 대학 때 같이 어울려 다녔던 또 다른 친구의 문신을 벗겨낸 피부가 마치 기념품처럼 액자에 넣어져 보관된 걸 보고서 이 모든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루시엔의 짓이며 그는 로버트가 이걸 눈으로 확인하길 원했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제대로 섞이지 못했던 자신을 이끌어주고 같이 토론하며 공부했던 친구 루시엔은 없다는 걸... 여러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면서도 어떤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는 괴물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 로버트는 그가 원하는 대로 게임의 룰을 따라 서로에게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살해되었지만 누구도 어디에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던 실종자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루시엔이 원하던 답이자 자신에겐 죽을 만큼 큰 고통과 상실을 준 마음 깊은 곳의 상처와 비밀을 들려준다.

연쇄살인마가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을 듣기 위해서 서로에게 하나씩 질문을 한다는 형식에서 양들의 침묵이 단박에 연상된다.

게다가 이토록 철저히 자기 억제적이면서도 계획적인 살인마라니...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어서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거나 하진 않지만 루시엔이라는 인물이 가진 악의와 철저하게 인간성이 말살된 채 도구처럼 사람을 다루는 모습에서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심리 스릴러답게 서서히 조여오는 긴장감을 제대로 살린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 역시 영상으로 보면 더 섬뜩하고 무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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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스
나가우라 교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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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dog... 이기거나 성공할 확률이 적은 약자를 일컫는 말

그런 약자들이 모여 개인이 아닌 국가를 배경으로 한 집단과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처럼 이 책 언더독스는 일단 스케일이 크고 사방에는 총질이 난무하는 하드보일드 한 작품이다.

마치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듯한 작품이랄지...

그래서일까 일본보다는 좀 더 폭력에 어울리는 장소인 홍콩을 배경으로 해서 스토리의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고

시대적 배경으로는 홍콩의 중국 반환 시점인 1997년으로 해 당시의 혼란스럽던 국제정세와 각국의 첨예한 대립이 맞물려 더 흥미진진하게 해준다.

평범했던 직장인 고바 게이타는 직장의 vip 고객인 이탈리아 기업가 마시모 조르지아니의 거절할 수 없는 의뢰를 받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진다.

이탈리아에서 잘나가던 마시모는 자신의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어떤 음모로 인해 자신이 일궜던 회사를 뺏긴 걸로 모자라 하나뿐인 아들마저 자살에 이른 아픈 과거가 있었다.

이 과정에 국가조직이 간여한 걸 알게 된 마시모는 복수를 다짐하게 되고 이에 고바를 비롯한 팀을 결성,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어수선한 시기를 노려 홍콩의 지하은행에 숨겨진 국가기밀을 가로채 그들을 파멸시키고자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하나

이렇게 위험부담이 크고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큰 게임에 왜 특공대 출신이나 전문 스파이도 아니고 특출한 능력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고바를 선택했을까?

사실 고바는 일본의 농림성에서 일했던 전직 관료였고 그의 과거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평범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눈치챘을 것이다.

당연히 고바를 비롯한 사람들이 겉보기완 달리 선택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뭔가 남다른 능력이나 사연이 있음을...

하지만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 작전의 핵심인 마시모가 피살되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고바를 비롯해 그의 팀원들 모두의 정보는 이미 비밀이 아닌 상태였고 그들을 노린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은 노골적으로 고바의 팀에게서 원하는 것 빼앗고자 한다.

한마디로 말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위해서 일하면서 처음 마시모의 계획대로 홍콩 은행에서 그 비밀문서를 가로채 오라는 것인데 여기서도 고바의 팀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존재 그 이상은 아니다.

이렇게 사방의 적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문제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다국적 사람들이 모인 고바의 팀원들조차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

누가 그들의 적에게 동조하고 배신했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목숨을 건 작전은 계획대로 실행되고 특별한 능력이 보이지 않는 팀원 중 가장 약한 존재인 고바의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하면서 사방에서는 총질이 난무하고 여기저기서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지옥이 펼쳐진다.

작가의 전작인 머더스에서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한 눈 뗄 틈을 주지 않는 스피디한 전개와 화려한 총격 신 장면들을 보여준다.

연이어 벌어지는 총격전과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적인 상태에서 제대로 된 무기 사용법도 모르는 고바가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지도 물론 궁금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궁금했던 건 각국의 조직들이 왜 그렇게 사활을 걸고 그 비밀문서를 손에 넣고자 했는가였다.

얼핏 생각하면 마시모가 조직한 팀이 아닌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그 문서를 손에 놓을 수도 있는데 왜 이런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고바를 어르고 달래고 겁을 줘가며 작전 수행을 할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여기에 작가의 치밀한 전략이 숨어있다.

작가는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의 구멍을 마시모를 내세워 차단해 고바를 살려두고 그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외통수를 마련했고 그 촘촘하고 치밀한 스토리에 박수를 보내게 한다.

머더스에서도 그랬지만 작가는 늘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걸로 모자라 늘 한두 단계 더 뛰어 생각지도 못한 전개를 보인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계산하고 또 계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일본 소설답지 않게 스케일이 크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웅장하고 긴박감이 넘쳤다.

하드보일드하고 누아르적인 장르를 좋아한다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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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 - 사르담호 살인 사건
스튜어트 터튼 지음, 한정훈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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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럽은 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유럽 밖으로 눈을 돌려 식민지를 크게 확대해 부를 축적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향신료로 떼돈을 벌수 있었던 인도차이나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대립은 치열했고 그중에서도 동인도 주식회사는 세계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봄직한 이름이었다.

이 책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은 그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중 하나인 동인도 제도의 바타비아에서 사르담호를 포함해 7척의 배가 출항을 앞두고 있다.

이 배에는 바타비아를 지배했던 총독과 그 가족을 비롯해 재판을 받기 위해 네덜란드로 가는 유명한 탐정도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문둥병 환자로 보이는 남자가 이 배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는 눈앞에서 불타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르담호를 비롯해 7척의 배는 찜찜한 기운을 품고 출항을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여덟 번째 불빛이 나타났다 깜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 모두를 불안하게 한다.

그 여덟 번째 불빛이 나타나는 날에는 배 안의 가축들이 모두 도살당하기도 하고 눈앞에서 죽었던 문둥 병자가 나타나 배 안을 배회하기도 하는 등 불안을 고조시키다 마침내는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선 이 모든 일을 시작한 건 악마인 올드 톰의 소행이며 악마에게 씌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 사이에서 누가 올드 톰의 명령을 받고 있는지 색출하려 하지만 이미 두려움에 잠식된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할 뿐... 누구도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채 긴장감만 높아진다.

배에 승선한 사람들 중 이들을 제대로 통솔하고 지휘해야 할 총독의 태도도 이상하기만 하다.

사람들의 불안을 제대로 제거하기보다 본인 스스로가 뭔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사람인 탐정을 풀어줘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탐정 역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배 안의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선뜻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용병으로 기용했던 아렌트 헤이즈를 내세워 사건 수사를 맡길 뿐이었다.

이렇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르담 호의 분위기는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채 그 분위기만으로도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누군가가 어떤 불순한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다수의 사람들을 조종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더 흥미로웠다.

소개 글에서 유명한 소설인 파리대왕에 견주고 있는데 섬과 배라는 장소만 다를 뿐...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들의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소설이 비슷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작가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종교를 빙자한 종교재판 혹은 마녀재판이 처음의 목적과 달리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 그리고 식민지에서의 벌어지는 잔혹한 일들에 대한 고발 등 잔혹하지만 매력적인 소재를 섞어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뒤로 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과 긴박한 상황의 묘사로 한시도 눈을 떼기 힘들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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