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 - 사르담호 살인 사건
스튜어트 터튼 지음, 한정훈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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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럽은 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유럽 밖으로 눈을 돌려 식민지를 크게 확대해 부를 축적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향신료로 떼돈을 벌수 있었던 인도차이나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대립은 치열했고 그중에서도 동인도 주식회사는 세계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봄직한 이름이었다.

이 책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은 그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중 하나인 동인도 제도의 바타비아에서 사르담호를 포함해 7척의 배가 출항을 앞두고 있다.

이 배에는 바타비아를 지배했던 총독과 그 가족을 비롯해 재판을 받기 위해 네덜란드로 가는 유명한 탐정도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문둥병 환자로 보이는 남자가 이 배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는 눈앞에서 불타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르담호를 비롯해 7척의 배는 찜찜한 기운을 품고 출항을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여덟 번째 불빛이 나타났다 깜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 모두를 불안하게 한다.

그 여덟 번째 불빛이 나타나는 날에는 배 안의 가축들이 모두 도살당하기도 하고 눈앞에서 죽었던 문둥 병자가 나타나 배 안을 배회하기도 하는 등 불안을 고조시키다 마침내는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선 이 모든 일을 시작한 건 악마인 올드 톰의 소행이며 악마에게 씌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 사이에서 누가 올드 톰의 명령을 받고 있는지 색출하려 하지만 이미 두려움에 잠식된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할 뿐... 누구도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채 긴장감만 높아진다.

배에 승선한 사람들 중 이들을 제대로 통솔하고 지휘해야 할 총독의 태도도 이상하기만 하다.

사람들의 불안을 제대로 제거하기보다 본인 스스로가 뭔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사람인 탐정을 풀어줘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탐정 역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배 안의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선뜻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용병으로 기용했던 아렌트 헤이즈를 내세워 사건 수사를 맡길 뿐이었다.

이렇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르담 호의 분위기는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채 그 분위기만으로도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누군가가 어떤 불순한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다수의 사람들을 조종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더 흥미로웠다.

소개 글에서 유명한 소설인 파리대왕에 견주고 있는데 섬과 배라는 장소만 다를 뿐...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들의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소설이 비슷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작가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종교를 빙자한 종교재판 혹은 마녀재판이 처음의 목적과 달리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 그리고 식민지에서의 벌어지는 잔혹한 일들에 대한 고발 등 잔혹하지만 매력적인 소재를 섞어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뒤로 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과 긴박한 상황의 묘사로 한시도 눈을 떼기 힘들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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