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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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노사이드는 집단학살이라고 한다. 제노사이드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은 집단학살이 만행이 벌어진 적이 있다는 뜻이 된다. 얼핏 생각하면 집단학살은 인간이 동물에게 하는 못된 행동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무섭게도 인간이 인간에게 한 집단학살도 많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다. 불행한 시대에 일본인이 저지른 관동대학살도 마찬가지이다. 관동대학살에는 광기만이 흘러 일본인이 일본인을 조선인이라고 생각하고 죽일 정도였다고 하니 집단학살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제노사이드라는 걸 하는 유일한 종족이 바로 인간이라고 한다. 다른 종족은 집단학살을 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제노사이드는 인간이 갖고 있는 욕심과 이익에 결부되는 거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노사이드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문제는 그 명령을 내리는 자는 현장에 있지 않아 그 참혹함을 명확하고도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고대부터 집단학살은 대부분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 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가혹하고도 몸서리치는 명령이자 참사이다.

 

'제노사이드'는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롭고 스펙타클한 소설이다. 폄하라고 볼 수 있지만 일본 소설가가 이렇게 방대하고도 거대한 내용을 구성하고 치밀한 내러티브를 만들었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소설에 나온 내용을 보면 우리가 흔히 블럭버스터 영화나 미드중에서도 엄청난 자본이 투자된 미드를 연상할 정도로 스피드있고 시종일관 극박하게 내용이 전개된다.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일본 소설을 보면 스펙타클한 내용보다는 아기자기하게 작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풀어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밀실사건이라는 것도 일본 추리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장치인 것처럼 대부분의 일본 소설들이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치밀하게 풀어내는 강점이 있다고 보는데 너무 세세한 측면이 있어 나랑은 잘 맞지 안 맞아 굳이 많이 보지는 않는데 이 책은 그런 일본 풍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소설이다.

 

아프리카, 일본,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시간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묘사가 저절로 머리속에 상상이 되면서 스스로 엄청난 자본이 필요로하는 미드를 찍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정도로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무엇보다 더 대단한 것은 단순히 스케일이 크고 여러 곳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용이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만든다.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초반에 신기하고 새로운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중간에서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어딘지 다음 내용이 유추 가능하고 시작할 때의 참신한 맛과 강력한 에너지가 소멸되어가는데 반해 '제노사이드'는 끝까지 어떤 결말이 될지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지면서 잘못하면 손에 침 뭍혀가며 읽을뻔 했다.

 

 

사실 이런 책은 될 수 있는한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말을 알고도 재미있게 읽는 사람도 있지만 이왕이면 뒤 내용을 모르며 읽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광고문구를 근거로 이야기하면 일본에서는 희귀병의 치료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아프리카에는 기존과 인류와는 다른 엄청난 지성을 간직한 존재(??)가 태어난다. 미국에는 초강대국으로 자신의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하려는 대통령과 관련 인물들이 있다.

 

이렇게 세 군데에서 각자 벌어지는 내용이 기본 골격이고 하이즈먼 보고서라는 곳에서 세계의 미래에 대해 예측을 했고 그 중에 신인류에 의해 지금의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소설 내용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네안타르인 같은 종족의 현재의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몰살당했다고 한다. 그들의 유골등에 단순히 늙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늘 이런 내용을 접하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사실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책 내용은 상당히 스펙타클하게 전개되면 흥미진지하지만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도 우리들에게 던져준다. 의도적으로 이 책에는 부시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자신이 하는 행동은 선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악이라는 편협한 생각이 어떤 어려움을 만드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 뽑힌다고 해도 그가 하는 정책과 외교와 군사행동은 제어할 사람이나 제도가 없는 독재자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신기하게도 이 책에는 한국인이 등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데 그 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를 그대로 책에서 알려준다.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편협한 역사관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역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특히, 단지 한국인에게 피해를 봤다고 무조건적으로 싫어하고 피해망상까지 벌이는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일본인에게 피해를 봤을 때는 왜 같은 일본인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느냐는 말에는 일본인이나 한국인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타당한 정의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보는 장르 - 그런 장르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 우리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등장하는 장르이다. 우리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존재는 늘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지 발전을 가져올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에서 몇 몇 개인들은 그런 존재에 대해 친근감을 갖지만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없애려고 한다. 한결같이 인류를 위한다는 같은 목적을 갖고 동일하 상대에게 다른 대처를 하는데 있어 보는 즐거우이 있다.

 

미국에서도 천재라고 불리며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성보다 뛰어난 사람보다 더 뛰어난 지성을 갖고 태어난 존재가 등장하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엄청난 지성을 갖고 있다고 인류를 굴복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들었다. 지성만으로 모든 사람들을 굴복시키거나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책에서는 뛰어난 지성으로 사이버세상을 통제하는 것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인류를 능가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지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발전과 개선을 시켰지만 그에 반해 지성이 없는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인류역사가 발전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지성은 없어도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발견하거나 인류역사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보면 꼭 온 인류보다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인류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은 우리 인류를 너무 무시한 처사가 아닐까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생각한 뜬금없는 것들을 논외로 치고 '제노사이드'는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가며 읽었다. 초반에는 그렇고 그런 일본 추리 소설류의 책이라 생각하고 읽었지만 소설 중반부로 가면서 점점 책 내용에 흠뻑 젖어들게 된다. 분명히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되었다면 미드나 영화로 - 영화보다는 미드가 제격일 듯 - 만들어 질것이라는 데에 격렬하게 동의한다.

 

 

큰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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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서른 살이 된다면 - 세계 최고 석학이 들려주는 서른과 성공 사이
마이클 J. 모부신 지음, 서정아 옮김 / 토네이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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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서른 살이 된다면'에서 가장 큰 불만은 제목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책 제목이 나이가 들어간 제목들이라 유행에 편승하는 제목을 한 것 같다. 실제로 영어 원제를 보면 '성공 공식'이라고 하는 제목이 좋을 듯 하다. 책 내용에도 저자가 다른 책에서 저자가 원한 제목과 편집자가 원한 제목이 달랐는데 편집자가 반대한 이유가 출판사에서 바로 전 출판한 책 제목과 유사한 이유라고 이유였다고 한다. 결국에 저자가 원하는 제목으로 다수의 투표를 통해 뽑혔다고 하는 것처럼 책 제목이 원제나 내용에 비해 책 제목이 다소 뜬금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책 내용은 아주 훌륭하고 만족스럽다.

 

책에 서두에 저자가 어떤 식으로 첫 직장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며 시작한다. 입사 면접에서 최고 결정자의 휴지통에서 본 미식축구팀과의 팜플렛에 의해 연관성을 서로 이야기한 결과로 취직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반대했지마 최고 결정자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입사되었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운에 의해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며 과연 그렇다며 우리는 순수하게 실력으로 성공하는 것인지 운에 의해 성공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개인적으로 사업이나 투자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운이 작용한 결과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 - 책에서는 능력이나 실력보다는 기량이라 표현한다 - 이 성공하는데 중요한 요소임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운에 따라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믿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실제로 커다란 노력없이 성공할 수 있냐는 반문이 나오지만 우리가 흔히 운도 노력하는자에게 따라온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노력과 운이 결합될 때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쪽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그 쪽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을 읽어보면 성공한 사람이 갖고 있는 기량도 중요하지만 운이라는 요소가 일정 부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일 때가 많다. 다만, 이 점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역설적으로 자신의 성공을 오래도록 유지하느냐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보인다. 오로지 자신의 성공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실력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어김없이 머지않아 성공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자신의 성공에서 운이라는 요소가 다수 결합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고수(??)들이 그 자리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딘지 무척이나 성공이 하찮게 보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운에 결부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니 그저 운이라는 놈을 어떻게 해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마디로 비관론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된다. 한 마디로 날때부터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나면 된다는 뜻이라는 자조적인 의미를 내품게 된다. 

 

책에 나온 예문중에 한 학생이 나온다. 이 학생은 선생님이 내는 100개의 문제중에 정확하게 80개를 외운다. 그래도 자신의 성적에는 큰 지장이 없다. 총 100문제가 나오는데 그 중에 80문제는 정확히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기량이다. 여기서 선생님이 문제를 20개만 낸다면 갑자기 자신의 기량만으로는 정확하게 점수가 나올 수 없다. 재수없게 자신이 외우지 않은 20개에서 문제를 낸다면 0점이 되어 버린다. 외우고 있는 80개 내에서 낸다면 100점도 가능하다. 이럴 때 바로 운이라는 요소가 개입을 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기량을 길러 100개 중에 보통 60~80개 정도를 외운다. 이런 후에 나오는 문제가 어떻게 되는냐에 따라 자신의 기량과 상관없이 운이라는 요소가 결부될 수 밖에 없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100개를 다 외우면 되겠지만 우리 인생에 있어 그럴 수 있는 분야가 극히 제한적이다. 순수하게 기량으로만 성공이 정해지는 분야는 극히 드물다. 

 

책에서는 체스가 기량으로 승부하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체스는 기량을 제외한 운이라는 요소가 거의 제한적인 분야이다. 이 중에서 투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기량만으로 다른 사람과 승부를 벌이는 게임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기량에 더하여 더이상 알 수 없는 수 많은 개수중에 무작위로 펼쳐지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분야이다. 이러다보니 초심자의 행운도 통용이 되는 것이다. 딱 하나만 알고 있었는데 운 좋게 그 문제가 등장하여 100점을 맞출 수도 있는 거다. 이런 상황에 처음에는 행운이라 치부하지만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도 있다. 이러다보니 스스로 자신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운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작용하는지 결코 알 수 없는 게 바로 투자라는 분야이다.

 

아무리 기량을 올리고 올려도 100개를 다 외울 수 없는 게 투자이다. 투자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이 그렇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온갖 요소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완벽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투자는 그나마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직업에 있어서는 더더욱 어느 정도의 수준만 되면 굳이 더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흔한 말로 굴러갈 수 있게 된다. 이래서 자신의 기량은 더이상 늘지 않고 정체되지만 여전히 큰 무리가 따르지 않아 무난하게 넘어간다.

 

여기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량을 더욱 완벽하게 다듬고 올리려고 노력한다. 이 순간부터 진정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고도의 집중과 끊임없는 인내와 반복이라는 고통을 거쳐야만 한 단계 겨우 올라 설 수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이상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으니. 그 정도로도 먹고 살 수 있고 익숙해지면서 다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80개를 외우고 있으니 이 정도로도 적당한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거다. 어쩌다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운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전부 아는 문제가 나오면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라고 치부한다. 이런 모든 일들이 운이라는 요소가 결부된 결과인데.

 

이런한 이유로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기량과 운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기량과 운이 결합할 수 밖에 없으니 어디까지 본인의 기량인지 어디서부터 운인지 아는 것은 자신이 일을 하는데 있어 냉정하게 자신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어디까지 기량으로 올라 갈 수 있는지를 파악하면서 운이라는 놈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복권은 운에 속한 영역이지 기량에 속한 영역이 아니다. 체스와 같은 기량을 승부하는 분야는 철저하게 자신의 노력만큼 성공을 보장한다. 물론, 타고난 개인의 능력은 인정해야 한다. 운에 속한 영역에서 재수없게 블랙스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철저하게 숙지해야 한다. 기량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 블랙스와에게 잡혀 먹힐 수 있다. 또한, 사후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늘 평균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평균을 올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균의 편차가 크다면 어느 순간 운이 재수없게 작용해서 완전히 낙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성공이라는 걸 단순하게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어떻게 보면 좀 막연한 이야기를 꽤 설득력있게 과학적으로 풀어 설명했다는 것이다. 어째서 운이 작용하는지를 알려주고 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기량에 많은 부분을 할애 해야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도 설명한다. 이를테면 다윗은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가 골리앗에게 달려들어 일대일로 싸우려 했다면 백전백패였겠지만 최대한 원거리에서 골리앗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해서 성공한 것처럼 자신이 키워야 기량을 키우는 것이 올바른 성공의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운은 노력하는 자에게 찾아온다고 말한다. 100개의 문제에서 80개를 외운 사람과 60개를 외운 사람과 20개를 외운 사람은 몇 문제가 나오느냐에 따라 운이라는 요소가 작용을 하지만 딱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여러 번 시험을 치게 되면 결국에는 80개 외운 사람의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운이 어느정도 작용 하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자신의 기량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문제가 100개가 아니라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자신의 기량과 상관없이 운에 의해 백점을 맞을 수 있지만 지속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량을 올리면 올릴수록 보다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다만, 순수하게 기량으로 승부하는 분야가 - 음악 콩코르, 테니스 시합과 같은 운동종목등등 -  아닌 다음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점수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책관 관련된 내용의 책들     

 

 

                                                         협찬 받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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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사
리처드 실라.시드니 호머 지음, 이은주 옮김, 홍춘욱 감수 / 리딩리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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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는 것에 있어 주저함이 있는 책이다. 한 눈에 봐도 쉽지 않은 책인데 책의 두께마저 절망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선택의 순간에 읽자는 생각을 1년도 더 된 예전에 결정을 했지만 결정을 하는 것과 직접 들고 읽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 차일 피일 미루다 이번에 도서관에 40일 정도 여유로 대여가 가능하여 빌렸는데 책욕심에 다른 책들도 열심히 대여해서 보다 그만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이 책을 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 읽을 수 있는데까지 읽자는 생각으로 읽다 결국에는 19세기까지 읽었다. 본격적으로 금리가 제대로 금융이라는 꽃을 피우기 시작할 즈음전까지 읽었다.

 

'금리의 역사'는 고대부터 시작한 방대한 서사시(?)이다. 시대에 따라 이자율이 어떻게 변하고 금리라고 할 수 있지는 않을지라도 비슷한 제도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금융적인 거래를 했는지 알려주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연체를 하거나 이에 따른 신용불량자가 되었을 때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하는 행동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돈을 주고 받고 이자를 주는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 알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을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문서기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문서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갖지 못한 자보다는 가진자의 입장과 가진자들의 기록을 근거로 하기때문에 100% 정확한 기록이라고 할 수 는 없다.

 

이를테면, 책에는 거의 대부분 금리와 이자부분에 있어 일반 국민들의 자세한 거래는 알 수 없지만 왕이나 교황이나 국가들이 남긴 법정 이자율이라는 것을 근거로 해서 예측을 하기도 하고 기록의 부족함으로 정확한 금리는 알 수 없지만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할 때가 있다. 그렇다해도 역사중에 딱 한 부분만 짤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몇 년이나 몇 십년도 아니고 몇 천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엄청나고도 크게 차이가 있지 않다면 이 책의 제목인 '금리의 역사'를 추적하고 알아보는 데 있어 큰 지장은 없다.

 

곡식의 씨앗을 빌려주고 추수한 후에 돌려 줄 때 빌려준 것에 근거하여 더 돌려받은 것이 최초의 이자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도 그런 개념으로 빌려주고 돌려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신용이라는 것을 근거로 빌려준다는 것을 잘 상상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더 신용으로 빌려 주었다. 이웃에 무엇인가 필요할 때 아무런 대가없이 빌려 주었다가 후에 받는 행위는 분명히 상대방의 신용만 보고 믿고 빌려 준 것이다. 이처럼 신용에 따른 대출(?)은 역사가 엄청 길다.

 

함무라비 법전이 생긴 후에 본격적인 역사탐구에 있어 제대로 된 이자에 대한 역사가 시작된다. 이런 걸 보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소한 기록도 나중에는 다 역사가 된다. 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돈을 빌려 준 후에 얼마 이상 받으면 안된다는 기록을 통해 유추가 가능한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표현을 하는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이자가 상당히 고이자였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자라는 것이 국가나 은행이라는 개념의 단체를 통해 이뤄지기 보다는 거의 대부분 개인과 개인들이 물건을 주고 받거나 돈을 빌릴 때 생기는 벌금 형태가 강하다 보니 상당한 고이자였는데 그런 이유는 갚지 못할 때 생기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관점에서 이자가 높다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이자가 높다는 생각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구나, 이자를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되는 상황이니 이자가 높다 낮다의 관점보다는 갚을 수 있다 없다의 개념이 좀 더 강했으리라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할 때는 이자율이 낮고 흔들리고 한참 국가라는 개념으로 볼 때 건설중이면 이자율은 높다. 내가 살고 있는 시기가 언제냐에 따라 고 이자나 저 이자로 빌릴 수 있는 시기가 달라진다. 어찌보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라 이자율이 변하니 부강한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이자는 기독교가 유럽을 대표하는 종교가 되면서 고리대금을 죄악시한다. 살아남기 위해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으로 진출을 하여 지금까지 금융을 장악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런 유대인들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역사가 되어버린다. 중세에 센서스라고 하여 토지등에서 나오는 수익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인데 분명히 이것도 이자개념이지만 그 당시에는 합법적인 일로 평생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지금의 연금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이 시대가 시대인지라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이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러다 종교개혁과 맞물리며 고리대금에 대한 개념도 갑론을박이 벌어져 결국에는 교리가 변화하게 된다. 중세시대에는 특별히 이자와 관련되어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특이한 것은 이 당시에 템플기사단이나 성당기사단도 고리대금을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십자가 전쟁에 참여한 존재로만 알았는데 고리대금까지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이들도 귀족들의 연합체이고 오합지졸을 넘어 각 성의 성주들을 연합해서 불른 명칭이라 생각할 때 일견 이상하지 않게도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며 지금의 베네치아나 앤드워프같은 곳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상업이 발달하며 그에 따른 돈이 필요하니 서로간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지며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이자를 받을 때 군주들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고이자라는 것이다. 얼핏보면 군주라면 신용도 믿을 만하고 군주들도 그처럼 많은 이자를 감수한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군주들은 확실한 신분일지라도 위험 요소가 너무 큰 존재이다. 그 이유는 군주들은 고이자를 감수하고 돈을 빌리지만 여차하면 돈을 갚지 않아 버릴 수 있다. 심지어 돈을 빌려준 사람을 추방할 수도 있다. 그러니, 고이자로 돈을 빌려도 상관이 없다. 이런 이유로 군주들에게 고이자로 대출이 행해졌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롭게 재미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똑같이 행동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차라리 그때는 고이자였는데 지금은 반대로 저이자로 빌려주고 돈을 막 퍼주기까지 한다는 점이 다르지 않나 싶다.

 

18~19세기가 되면서 유럽과 미국이 국가라는 개념으로 탄생을 하며 지금과 같은 금융에 따른 이자들이 거래되기 시작한다. 여전히 지금과 같은 중앙은행이나 국가의 통제하에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금융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산업과 상업에 지대한 도움과 족쇄가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당시의 이자율을 보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자율이 5~6%라면 지금 관점에서도 그다지 높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데 이 당시가 그랬다. 특히, 뒤로 갈수록 각나라들의 이자율은 점점 내려가면서 2%대까지 갔다. 이자가 낮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돈을 마음놓고 빌려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이니 사회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돈을 빌려 무엇인가 하면서 산업이 발달하고 상업이 꽃을 피우면서 국가가 발전을 한다.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저 이자가 재미없을지라도 돈을 빌려 무엇인가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없이 벤처정신으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당시에 유럽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한다. 책에서는 각 나라마다 이자율의 변화에 대해 표로 보여주는데 어느 나라나 빠짐없이 동일하게 20세기로 갈수록 이자율이 낮아진다. 다만, 지금도 강대국이 더 이자율이 낮은 것처럼 당시에는 영국이 가장 낮은 이자율을 보여주는 국가였다. 이런 시기를 오랫동안 거쳤기 때문에 영국이 여전히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금융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할 시기가 되는 토대인 20세기 직전에 읽는 것을 멈췄다. 후에 다시 빌려 20세기부터 읽을 생각이다. 읽다보니 고대부터 그리스 로마까지는 나름 신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걸 읽을 수 있었는데 중세를 넘어 18~19세기부터는 더 많은 자료와 페이지에 걸쳐 알려주지만 크게 보면 이자율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이야기인데 반복되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20세기로 넘어가면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는 이야기까지 나올 것이라 판단된다.

 

솔직히, 읽는데 있어 중세까지는 재미있었는데 18~19세기는 재미없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걸 읽는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읽으면서 몰랐던 몇 가지 지식도 알게되었으니 바로 이런 이유로 어렵지만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싶다. 

 

p.s: 반 정도만 읽어 리뷰가 좀 그렇지만 나중에 올리도록 하면 연결하겠습니다.

 

 

연관이 있기도 없기도 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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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 위험, 기회, 미래가 공존하는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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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어려운 내용인지 쉬운 내용인지와 상관없이 이상하게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 아무래도 어려운 내용이라 저절로 안 읽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렵다고 해도 의외로 재미있고 집중해서 읽게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딴 생각만 나고 읽는게 고역인 책이 아주 가끔 있다.

 

특히, 이번처럼 책을 읽어야 하는 시간상의 한계까지 있으면 더더욱 마음은 초조하고 읽히지는 않고 서서히 대강 읽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도 한 꺼번에 책을 왕창 빌리고도 다른 도서관에서도 빌려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게다가 어려운 책을 몇 권 골라 더더욱 힘들었다. 솔직히 이 책을 300페이지까지는 집중해서 읽었지만 - 그래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 남은 200페이지 정도는 좀 날림으로 읽었다.

 

'투자 아이디어'라는 책과 어떻게 보면 연관성도 있고 비슷한 흐름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투자 아이디어'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 '리스크'는 무척 고역스럽게 읽었다. 펀드에 대한 역사를 자세하게 알 수 있는 '투자 아이디어'는 읽으면서 펀드가 지금과 같이 다양한 용어와 체계가 만들어진 이야기에 푹 빠졌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리스크'와 관련된 이야기를 과거부터 최근 현대까지 관련된 인물을 한 명씩 소개하는데 반대로 잘 들어오지 않았다.

 

리스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험이라는 단어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리스크'는 위험이라는 단어와는 약간 핀트가 어긋난다. 차라리 불확실성에 근접한 의미다. 어찌보면 '블랙스완'이라는 단어가 최근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블랙스완'과 같은 연상작용을 하는 것이 리스크에 가깝지 않나 한다.

 

특히, 리스크를 단순히 위험으로 치부한다면 지금까지 리스크를 연구한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일이 아닐까 싶다. 리스크를 알아내기 위해 확률부터 시작을 한다. 우리는 리스크를 숫자로 치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어떤 것이든 궁금한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밝혀낸다는 것이다. 위대한 천재가 나타나도 그가 갖고 있는 생각과 상상의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러한 한계를 세대가 이어지며 다음 세대가 전 세대가 풀지 못한 한계를 하나 둘씩 격파해 나가며 발전해 온 것이 바로 인류 역사의 위대함일 것이다.

 

리스크라는 것을 측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체념하고 순응한 사람들에 비해서 숫자에 푹 빠진 사람들은 리스크를 숫자로 풀어내서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런 끝에 나온 것이 확률이라고 할 수 있다. 확률이라는 것은 애매모호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숫자로 그보다 잘 나타내는 것은 없다. 

 

무엇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몇프로라는 표현이나 누군가 당선될 확률이 몇 프로라고 하고 표준오차 몇 프로 차이를 근거로 사람들의 생각을 유추하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하면 대략적으로 큰 범위내에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일기예보도 몇 프로라는 확률을 근거로 내일 날씨에 대해 예측을 한다. 

 

내가 주사위를 던져 숫자가 어떤 것이 나올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주사위가 총 여섯개의 숫자로 이뤄져 있다면 결국에는 6분의 1로 좁혀 진다. 어떤 숫자가 연속으로 나올수도 있지만 확률로 볼 때는 평균에 수렴한다. 다만, 그 평균이라는 것이 워낙 많은 던지기를 해야만 나올 수 있는 확률이라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확률과는 큰 괴리감이 생겨 잘 믿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이 어떤 숫자를 기입하거나 로또로 당첨될 확률은 똑같다. 연속된 숫자를 기입하거나 무작위로 컴퓨터가 선택한 숫자나 확률로는 똑같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신중하게 숫자를 고르거나 점을 쳐서 고르거나 하는 행동은 쓸데없는 행동이지만 인간은 어딘가 패턴을 만들기 좋아하고 의미를 부여하기에 확률을 무시하거나 믿지 못하고 자신의 직감을 믿는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행동할 때 직감대로 되면 그때부터 그는 확률이라는 걸 절대로 믿지 못한다.

 

아무리 위대하고 대단한 학자나 천재들이 확률을 연구하고 확률로 결과를 도출해도 그들의 결과를 사람들이 한 쪽 뒤로 흘려 버리는 것은 이러한 리스크의 측정불가능성에 있다. 아무리 리스크를 측정한다고 해도 측정할 수 없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리스크는 위험보다 불확실성에 더 가깝고 예측 가능하지 않다.

 

아마도 리스크 책에는 우리가 위대하다고 들었던 온갖 수학자들은 다 나오는 것 같다. 그들이 어떻게 숫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봤고 그 숫자들을 통해 우리들은 유념하지 않았던 일들을 숫자로 풀어냈는지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를 해 주는데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무척 지겨웠다. 조금은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다루다보니 책의 내용이 약간 산으로 가는 느낌도 들고 곁가지 이야기가 본 이야기보다 더 많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위대한 수학자 - 당시에는 철학자나 과학자에 가까웠을 - 들이 연구한 내용을 다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태어난 이야기도 하고 자라온 환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다지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에피소드까지 다루니 가뜩이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내용에 더더욱 집중하지 못하고 집중도가 떨어졌다. 집중할만 하면 다른 사람이 나와 또 다시 곁가지 이야기하다 본론으로 들어오는 식이니 익숙하지도 않은 분야 - 특히 수학쪽은 나에게 쥐약이다 - 이야기라 읽는게 더욱 고역이 아니였을까 한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런 책을 저술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경외감마저 든다. 리스크라는 주제를 갖고 온갖 사람들을 끌여들여 그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리스크라는 의미가 어떤 식으로 지속적으로 조금씩 발전하고 측정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이런 긴 이야기를 머리속에 이미 전체적인 윤곽을 갖고서 저술했다는 생각을 하니 존경마저 든다.

 

이 책의 제목은 '리스크'이고 리스크는 불확실성에 근접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때 신기하게도 다른 책과 달리 유난히 이 책의 책 페이지 사이에는 머리카락이 많이 있었다. 이 책을 읽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하고 이 책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책을 계속 읽는 것이 지식에는 보탬이 되었겠지만 본인의 머리카락이 이렇게 엄청나게 책으로 쏟아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과연 끝까지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어쩌면 지식보다 머리카락을 보존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리스크'라는 책을 읽어 지식을 넓히는 것에 비해 '리스크'라는 책을 읽어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 더 큰 리스크라고 보인다. 지식을 넓히는 것은 너무 불확실하지만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볼 때 읽지 않는 것이 '리스크'라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으로 해야 할 행동이 아니였을까? 특히, 어떤 페이지에서는 거의 15페이지에 걸쳐서 계속 머리카락이 나올 정도라 읽으면서 그 머리카락을 계속 제거하며 읽었다.

 

이 책의 타이틀은 위험, 기회, 미래가 공존하는 리스크라고 한다. 이 책을 읽었던 사람은 책을 읽어 머리카락이 빠지는 위험에 빠졌고 스스로 머리카락이 이제 본격적으로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제는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흑채를 사고 두피를 가꾸는 등의 행동을 해야 리스크를 감소시킬 것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책에 나온 학자들처럼 리스크를 확률로 풀어낼 능력도 갖지 못했고 투자를 하기에 앞서 리스크를 측정할 수 있는 감각도 없고 오히려 책에 나온 것과는 정 반대로 대략적인 리스크를 감수하고 감각적으로 투자하는 것에 가까운 행동을 지금처럼 앞으로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불확실성이 크다면 하지 않는 것이 잃지 않는 투자이다. 모르면 하지 않으면 된다. 남이 알지 못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에는 엄청난 기회가 존재한다. 그럴 능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남들이 알지 못하고 나만 알고 있는 기회라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역으로 볼 때 실패하지 않는 지름길이다. 

 

리스크라는 책을 통해 고대부터 시작하는 역사를 배울 수 있지만 차라리 최근에 나오는 행동경제학 책을 비롯한 조금은 말랑말랑한 - 상대적으로 - 책을 읽어 리스크라는 개념을 아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을 듯 하다.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아니, 올바른 투자의 자세라 생각한다. 

 

어지간해서는 집중해서 읽는 정독까지는 아니라도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날림으로 읽지 않는 스타일인데 하다보니 '리스크'는 후반 200페이지 정도는 좀 날림으로 읽어 읽었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약간 낯뜨겁지만 그래도 후반 200페이지는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이 아니라 이런 저런 책을 통해 알았던 내용들이라 그걸로 괜히 위안을 삼는다.

 

 

저자의 다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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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트 망구엘이라는 작가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보르헤스라고 하는 유명한 작가가 눈이 점점 멀어 더이상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에 왔을 때 망구엘이 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 망구엘은 본인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되었다고 하니 거장은 거장을 알아본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위대한 스승 밑에서 위대한 제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일인듯 하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책을 통해 알베르트 망구엘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인상깊었는지 머리속에 남아 있어 이 책을 보고 작가의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알베르트 망구엘이 맞았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게 되었는데 정확하게는 책보다는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만의 도서관을 갖고 싶어하는 소박한(??) 꿈을 갖는다. 도서관 정도는 힘들어도 온전히 자신만의 책으로된 서재를 갖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책은 계속 생기고 책을 놓을 때는 점점 사라지면 책을 어떤 식으로 처분할 것인지 내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책들을 구별해서 정리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고민은 행복할 수 있지만 일부 책을 처분해야 한다는 고통을 책 주인에게 안겨주기도 한다.

 

좋은 방법중에 하나가 책 선물을 하는 것이지만 이또한 상대방의 의중이나 책 선호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주는 선물은 무례가 될 수도 있다. 원하지 않는 책을 선물받았으니 상대방을 생각하면 읽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읽고 싶지도 않은 책을 읽어야 하는 괴로움을 선사할 수 있다. 그런 고로 책 선물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유명한 사람들중에는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어 본인만의 공간으로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곳으로 만드는 분들도 있다. 작가들중에는 자신의 집을 도서관처럼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밤의 도서관'에서는 독서가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은 평생 꿈꾸는 소원중에 하나일 수 있다.

 

망구엘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가이자 독서가이자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들어 꿈을 이룬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의 도서관을 만든다는 것은 흔하다 흔한 건물 하나가 새로 생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창의성을 발휘한 공간을 창조한다는 의미가 된다. 기존에는 없는 도서관을 건축할 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서 자신의 글을 쓴다는 사실은 창조력이 발휘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망구엘은 주로 오전이나 낮에 글을 쓰고 저녁이나 밤에 책을 읽는다고 하니 '밤의 도서관'이라는 표현은 맞는 듯 하다.


'밤의 도서관'에는 최초의 도서관부터 세계의 다양한 도서관에 대해 소개를 한다. 또한, 그 도서관들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의미에 대해 알려주고 역사에 미친 점들도 함께 잊지 않고 적어 놓았다. 자신의 도서관에 있는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펼쳐보기는 했다고 한다. 읽어보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꼭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한다. 읽지 않은 책들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상하게 만들어 준다. 꼭 읽어야 만 책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어떤 책은 그 책의 제목이나 분위기 광고를 읽고 작가의 의도와 쓴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만의 상상을 펼친다. 꼭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 일텐데 그 중에 하나가 상상력을 키워준다고 볼 때 꼭 책을 읽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다면 책을 읽지는 않았어도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책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워낙 혜박한 지식의 소유자라 그런지 대부분의 책에 대한 책이 - 비록 도서관에 대한 책이지만 -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는데 반해 결코 부담없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제법 고통을 감내하며 읽어야 한다. 움베르트 에코의 책들이 방대한 지식을 - 삐땃한 시선으로 볼 때 - 좀 잘난체 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서술하는 것처럼 망구엘 역시 자신의 지식을 한껏 뽑내면서 이야기한다.

 

초기 도서관 사서들은 방문하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감시도 하는 존재였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 책들을 분류하고 보다 책에 근접한 활동을 한다. 도서관마다 분류를 하는 방법이 약간씩 다르다. 처음 도서관들은 그런 분류가 너무 우후죽순이라 사서들도 찾는데 힘이 들었는데 지금과 같은 분류법을 통해 찾는 책을 찾을 수 있지만 지금도 나라마다 도서관마다 분류를 달리한다고 한다. 실제로 각 도서관을 가면 거의 대부분 비슷하지만 일부 책들은 도서관마다 분류를 달리 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그 부분이 도서관 고유의 정체성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밤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에 여러 종류를 설명하는데 공간과 시간의 제한이 없는 전자 도서관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만 대체적으로 좀 부정적으로 보는데 색다르고 재미있는 도서관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상상의 도서관이다. 누구에게도 존재를 들킬 염려도 없고 분류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도서관이 바로 상상의 도서관이다. 심지어 그 도서관은 아직 출판되지도 않은 책들도 서재에 진열(?)될 수 있다.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서관이 각 사람에게 탄생할 것이라 보인다.

 

독서가들의 집에는 책들이 꽤 많이 있다. 이들의 집에 어떤 책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관음증적인 재미도 제공하지만 나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책들도 발견할 때의 재미도 선사하다. 특히,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것 같아도 독서가들은 자기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책들을 요소 요소에 배치한 거다. 또한, 어떤 책이 어느 장소에 있는지 잘 찾는다. 무의식적으로도 책들이 자신의 분류에 따라 배치된 것이다. 그 어느 도서관에서도 볼 수 없는 본인만의 분류법으로.

 

책에 대한 소개를 해 주거나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책이 있는 장소에 대한 소개와 책과 관련되고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를 해 주는 책이라 색다른 재미가 있다. 다만, 책이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워낙 다양한 민족과 나라와 사람들이 나와 이에 대한 용어의 익숙함과도 서서히 친해지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 작가를 알려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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