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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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 큰 화두를 던졌던 마이클 센델의 최근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이미 펴 낸 책들이 우추죽순식으로 출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실제로 미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덧 우리나라가 사랑하는 미국 교수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정의에 대해서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었던 시대상황과 잘 맞아 떨어져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본다. 누군가에게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정의가 아니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비롯하여 도대체 우리가 정의라고 믿었던 것들이 정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서 우리나라에 제시하는 임팩트는 약하지 않나한는 생각도 들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언급되고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는 논제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경우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 공통의 정의를 정의하고 있는 실정이니 공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좀 더 성숙해야 다음 논제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기도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당연히 많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널리고 널렸다.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면 분명히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죽음과 같은 절대적인 명제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돈으로 죽음을 최소한 연기할 수는 있다.

 

한 가족의 부모가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놀이공원에 가서 즐겁게 놀고 왔다면 그건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닐까? 어렵고 힘들게 돈을 모으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내어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하는데 이건 돈과 결부시킬 수 있다. 충분히. 그렇다면 이 행위는 행복을 돈으로 산 것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마이클 샌델이 참으로 대단하게 답이 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는 것이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나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이야기중에는 생각을 해야 하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과 사유를 통해 내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새치기, 인센티브,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삶과 죽음의 시장, 명명권이라는 총 다섯개의 주제를 갖고 대답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상황에 대해 당신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나마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는 아주 조금이라도 마이클 샌델의 가치판단이 적용되어 우리가 내리는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이데올로기중에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평정하고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남아있다.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명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들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함축적으로 말할 때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점점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새치기라는 단어에 그 누구도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새치기라는 단어가 고급스럽게 포장되고 분명히 새치기인데 새치기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돈으로 새치기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말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게 또 복잡해서 딱 부러지게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센티브를 허락하거나 요구하면 상식적으로는 누군가를 움직이는 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센티브는 돈과 결부된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돈을 더 주거나 잘 한만큼 추가적으로 지급한다면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센티브를 근거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건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상하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최고인데 꼭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돈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이성을 유혹하는데 돈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감정과 정성이 없는 돈의 유혹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도 이상하다. 절실하다고 하면 절실한 돈을 받는데도 도덕이 결부된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상대방의 감정과 정성과 상관없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보험과 도박은 한 끗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사망으로 돈을 받는냐는 동일하다. 책에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 조기에 보험금을 받는 제도는 있다 - 남은 여생을 근거로 보험금을 사고 파는 합법적인 시장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가치판단의 결정이 어렵다. 수익으로 접근하면 한 마디로 인간의 생명을 갖고 수익률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철저히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관점에서는 오로지 수익률로만 판단하게 된다. 읽으면서 모기지를 채권으로 엮어 판 것처럼 사망 보험금도 조금씩 금융화하여 거래되면서 혹시나 금융사태처럼 나중에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끝으로 명명권이라 하여 이름을 사고 파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업의 광고와 관련이 되어 있다. 기업은 어떻게 하든 자신의 존재이유는 많은 제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점점 한계상황이 다가오고 있으니 여러가지 기발한 방법을 통해 기업 광고를 한다. 방송에도 나온 것처럼 인간의 몸을 이용하여 광고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점점 인격과 자아를 갖고 있는 인간이 흡사 로봇처럼 광고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지만 겉으로 볼 때 민주사회를 살고 있는 평등한 사람이라고 보이는데 갈수록 최소한 평등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의 양반과 사농공상으로 나눠져 있던 것처럼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 편하고 기회를 먼저 갖게 되고 가난한 사람과의 접촉은 사라지고 있다. 물론 사회지도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하지만 그건 신분사회가 고착회되어 있던 조선시대에도 정치의 한 모습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난 것과 차이가 없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에 대해 공정과 부패로 설명을 할 수 있다. 과연, 이것은 공정한 것인가? 부패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고급스럽게 부패한 장면들이고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정해야 한다. 이것도 힘든 것이 똑같이 공정한 기회를 주게 되면 각자가 처한 상황과 지위와 자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니, 공정도 점점 무엇이 제대로 모든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따라야 한다.

 

공정이나 정의나 뜻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비슷하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부패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부패한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부패하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부패는 누가봐도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 보인다. 본인 스스로 떳떳하고 부패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있을 듯 하다. 너도 하고 나도 하는 것들은 어느 순간 부패가 아니라 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얼핏 생각해도 무궁무진하지만 갈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고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어지간하면 돈으로 살 수 있게 되고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무전무죄 유전유죄가 아니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잣대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 질뿐만 아니라 어느사이에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돈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세상의 본질을 보게 된다면 올바른 공정과 정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부패를 부패라고 손가락질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워낙 철학이라는 것이 답이 없는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이렇게 고착화되어 간다면 인류 역사를 볼 때는 새로운 힘이 등장하고 정반합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곳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기 힘들고 느끼게 힘들지만 긴긴 역사라는 시간을 볼 때면 분명히 점점 개선점이 나오고 찾지 못한다면 늘 역사는 반복된다는 깨우침을 다시 한 번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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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수익 부자들
김종선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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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임대수익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두번째로는 아무리 그래도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니 이들은 어떤 이유로 실패했는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세번째는 저자 자신이 직접 수도권에서 임대수익을 할 만한 장소를 선정해서 그곳의 매매가와 임대가를 알려주고 투자판단에 도움을 준다.

 

먼저 임대수익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읽으면서 무엇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책에서 성공하기 위해 단순하게 얼마의 월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만 하지 그에 따라 임대관리와 세금부분과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소탐대실을 하면 안된다. 실제로 매 월 300만원 정도의 순수한 임대수익이 생긴다면 그 외에 벌어지는 것들은 기꺼이 웃으면서 감수해야 한다. 그정도도 하지 않으면서 매월 300만원이 들어오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욕심이 큰 것이라 본다만 그래도 그런 부분에 대해 언급도 같이 해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이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종류의 책들은 대부분 수익에 대해서 조금은 두리뭉실하게 알려준다.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 다가 아니다. 정확하게 월 300만원이 들어온다고 해도 이런 저런 시설관리비와 같은 비용이 들고 세금부분도 있고 또한 매입을 한 후에 어지간하면 약간의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주택과의 변별성이 없기때문이다.

 

이런 세사한 부분까지 제대로 설명을 해주는 책이 거의 없어 그런 부분이 아쉽지만 그런 부분까지 다루기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 하기는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온 실패사례들을 더욱 주목하고 유념해서 봐야 할 것으로 본다.

 

성공사례들은 어떻게 보면 뻔한다.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여기 저기서 알 수 있다. 부동산이 갈수록 시세차익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어 시세차익보다는 임대수익을 권하고 매입하려고 한다. 트랜드에 따라 임대수익에 초점을 맞춘 책들도 상당히 많이 나와있다.

 

어느정도 베스트셀러가 된 부동산 책들은 거의 대부분 읽어 봤는데 이런 책들을 읽으면 도움이 분명히 된다. 특히, 부동산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라는 힌트를 얻을 수 있어 도움이 된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 책을 읽고 실천하기에는 힘들기는 하겠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부동산 임대수익에 관한 책들이 거의 전부 종자돈은 1억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1억이면 레버레지를 통해 2억까지 가능하고 보증금까지 받는다는 것을 가능하면 상당히 큰 돈이다. 현금 1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실 거의 없다시피하다고 보이지만 의외로 꽤 많다.

 

이렇게 저렇게해서 1억이라는 돈을 모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돈을 어떤식으로 써야 - 아니, 투자해야 하는지 -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이 책을 읽고선 용기를 얻어 쉽게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1억이라는 돈을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으면 전문가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질때까지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바로 임대수익을 받는 것이다. 연금을 통해서 받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임대수익을 더 선호하는 것은 혹시나 임대수익이외에 시세차익이라는 덤까지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임대수익이 좋다는 것은 시세차익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읽으면 뻔하다하면 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런 책을 읽는 이유중에 하나는 분명히 나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리라 본다. 순수익이으로 월 300만원 정도 받는 임대수입이라면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부자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도 좋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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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사냥꾼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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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착각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존 그리샴의 이 책을 보고선 '이 사람 사망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은 최근에 나온 것으로 보이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 이제서야 들어온 작품인가보네.'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이상하게 이 책이 여러 곳에서 자주 내 눈에 띄웠다. 그러다보니 '그럼 한 번 읽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책을 펴 들자마자 깨달았다. 내가 시드니 셀던과 존 그리샴을 혼동했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 시드니 셀던이 엄청 유명했는데 왜 착각을 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좀 그리샴의 작품은 타임투킬을 영화로 본 것을 비롯하여 우습게도 전부 영화로만 봤지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그래도 법정 소설이니 어느정도 재미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법정 소설은 서로 심리를 통해 내 주장이 옳고 상대방 주장이 틀리다는 내용이 전개 되는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굳이 꼭 법정 소설이나 드라마를 골라 읽거나 보지는 않더라도 읽거나 보게 되면 기본은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읽거나 보게 된다.

 

정작 이 작품을 읽을 때 중간까지 그러한 내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중간부분까지 읽어도 특별하게 긴장된 장면이나 치밀한 법정 드라마의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내용이 계속되고 조금은 찌질한 변호사들이 등장하여 이기지 못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거대한 제약사의 약에 탐욕에 눈 먼 사람들이 달려들어 어떻게든 단 한 푼이라도 - 그 한 푼이 백만달러이긴 하지만 - 뜯어 먹으려고 이전투구하는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책의 주인공을 비롯한 진영은 가난하고 힘도 없고 소송할 능력이 부족하고 거대한 로펌은 어떻게 하든 이 사건으로 한 밑천잡으려고 하고 상대방 거대제약사는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여 자신들의 약 성능을 더 높히려고 한다.

 

큰 줄거리는 이렇지만 실제로 이 줄거리는 책에서 역설적으로 재미없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데이비드라는 주인공이 기계처럼 반복되는 생활 - 그래도 연봉이 후덜덜하다 - 이 지겨워서 포기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서 겪는 약자들의 편에서 소송을 하는 모습이 더 좋은 것은 전형적인 모습이기는 하다.

 

그래도 무려 5년이나 변호사를 했지만 단 한번도 법정 근처도 가지 않은 주인공이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발전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성장스토리로 보는 사람들로 조금씩 조금씩 빠져 들게 만든다. 중간까지 특별하게 익사이팅한 내용없이 전개되지만 읽다보니 어느순간부터 책의 주인공과 그 친구들에게 한국적인 정이 들어버렸다.

 

굳이 다음 이야기가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하는 것의 무서움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읽다보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저절로 계속 읽게 되는 흡수력을 갖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 읽고 있는 나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지만 소설이다보니 계속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갖게 되지만 역시나 작가는 냉정하게 마무리를 하지만 다른 곳에서 주인공이 살아갈 희망을 준다.

 

'소송 사냥꾼'은 법정 소설치고는 특별한 흡인력을 보여주는 사건이 없다. 그런데, 읽다보면 미니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계속 읽게된다.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는 작가의 필력이 이런 곳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역시, 법정 드라마와 소설은 최소한 기본은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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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 ㅣ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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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 마초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고 음모술수가 판을 치는 모습이 반복되다보니 재미가 덜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4권에서는 열심히 싸우는 모습이 나온다. 싸우는 모습이 마초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초적인 모습은 사실 실제 행동보다는 보이는 모습에 가까운 묘사일테니.

 

그런 점에서 이 책에는 마초적인 남자들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역설적으로 그런 남성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용하고 전혀 마초스럽지 못한 남성들이 권력을 잡아 더 큰 국가를 이룩한다. 몇 몇 사람들에게만 인기남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의미는 철저하게 서양인의 관점에서 나온 용어일 것이다. 이슬람 쪽에서 보자면 십자군란이나 도적들의 땅빼앗기정도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국가가 성립되어 있고 대부분의 땅들이 국가에 편입되어 있지만 이 당시만 해도 정확하게 내 땅 네땅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 살고 있는 성을 기준으로 각자의 영역이 세워졌을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내 땅이다라는 개념이 확고하지 않았으니 굳이 십자군들이 아랍인들에게서 땅을 빼았다는 표현은 옳지 않을 수 있지만 십자군 당시에는 분명히 아랍사람들에게서 유럽인들이 땅을 빼았은 것이 맞다. 고로, 그들 입장에서 십자군은 나쁜놈이고 몰아낼 놈들이였다.

 

3권까지 그래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은 하지만 그래도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십자군 이야기다 보니 이슬람보다는 유럽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좀 더 감정이입이 되게 되어있다. 4권에서는 이와 반대로 이슬람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입장때문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은 이슬람에서 서서히 힘을 규합하고 자각한다.

 

아무리 적의 적은 내 편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이 생겼을 때 일단 공동의 적부터 헤치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슬람쪽에서는 십자군을 물리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십자군측에서도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다지 뛰어난 인물도 없었고 대단한 정책을 펴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2차 십자군 원정은 겨우 며칠만에 패배해서 퇴각한 것을 보면 말 다 했다. 실력은 몰라도 지체높은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 점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십자군 원정대는 다들 한 구역씩 차지하고 있었지만 불안 불안한 줄을 타는 심정이였을 것이다.

 

이럴 때 이슬람쪽에서는 단순히 정복야욕만 있는 인물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대한 인물들이 나와 흔히 말하는 여론을 이슬람쪽에 유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때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샬라딘인데 이 인물의 이름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다. 책 소개에서는 상당하게 위대한 인물로 나오는데 정작 김태권은 그다지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책에 나온 살라딘은 너무 과하게 그렸는지 영웅은 커녕 존재감자체가 미비하다 억지로 권력을 맡게 되는 인물로 보인다.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은하영웅전설의 양 웬리와 같은 인물이나 나같은 - 김태권식의 유머~!!! - 인물이라 오히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살라딘이 거대한 국가를 형성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도저히 그럴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 권에서 좀더 확실한 활약상이 예고되어 있으니 좀 달라지리라 본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좋아보인다. 그렇다고 인간인 이상 어느 쪽으로 조금이라도 치우쳐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은 한쪽을 선택하면 한 쪽은 악으로 규정하거나 말할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보수니 진보니 여당이나 야당이니 하면서 자신의 편이 아니면 악이라는 흑백논리가 우리처럼 오랫동안 공산당이라는 눈에 보이는 악당을 눈 앞에 마주보는 나라가 갖게 된 가장 큰 철학적 논리적 아쉬움이 아닐까 한다.

 

지금 일본과 우리가 여러 문제로 반목하고 있지만 그걸 빌미로 한류를 탄압(??)한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미국을 싫어해도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을 같은 관점으로 올려놓으니 문제가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십자군 이야기에서 단순하게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십자군 이야기가 아니라 이슬람쪽에서 본 십자군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게 사고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도움이 된다. 이제 나나미 아줌마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 될 듯 한데 개략적인 내용을 머리속에 넣었으니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나나미의 책은 읽는데 부담이 덜 할 듯 하다.

 

그나저나, 이왕이면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완결이 된 다음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6권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한데 언제 5권, 6권이 나올지 모르겠다. 덕분에 역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십자군 이야기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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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ㅣ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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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2권은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자세하고도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특히, 찜찜하다면 찜찜할 수 있는 이슬람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유익했다.

 

느낌상으로는 3권부터는 무엇인가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가 되는 것이 일반 소설류의 패턴일텐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답보상태가 된다. 김태권의 의도 한것이 아니라 역사가 그러하니 역사를 서술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리라 본다. 그렇다고 역사를 갑자기 입맛에 맞게 제단하거나 생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사건 전의 역사는 필수적인 요소이니.

 

3권이 1,2권에 비해 재미라는 요소가 떨어진 것이 어쩌면 책에도 나온 것처럼 전쟁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기때문일 수도 있다. 십자군 이야기에서 싸움은 당연히 필수요소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그러나, 3권의 제목이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라는 것에 이 책이 나아갈 바를 보여준다.

 

예루살렘 왕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미 이곳을 십자군 진영에서 차지하고 있고 이슬람진영은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방치(??)되어 있었다. 멜리장드라는 여인이 주인공이 된 것은 그만큼 전쟁이야기보다는 정치이야기가 나올 것을 예측하게 한다.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는 위대한(???) 왕이나 장군이 될 수 있겠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도 그런 경우가 드문데 지금부터 1000년 전에 이러한 여성이 있었다면 당연히 클레오파트라나 잔다르크처럼 분명히 유명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이 되었을 것이나 전혀 생소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음모, 간계, 암살, 배반과 같은 단어들은 정치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저절로 나오게 된다. 과거에 정치를 위해서 저런 단어들은 당연히 위정자들에게는 익숙하고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다. 지금은 매스미디어와 발달과 집단이성의 발전으로 대놓고 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적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출전을 했지만 결국에는 근처도 못 간 것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근처의 다수의 땅을 차지하고 나름 국가라는 이름으로 통치도 하고 있었다. 아마도, 2차 십자군 전쟁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 그건 계속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권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보에몽이다. 1권에서 간략하게 언급되고 2권에서는 맹렬한 활약을 하고 3권에서는 그의 아들이 나와 감초역할을 한다. 그만큼 십자군 전쟁 초기게 보에몽이라는 인물과 가문의 활약상은 당대에도 후대에도 주목할 만 한듯하다. 다만, 그 활약상이라는 것이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이고 약간 조롱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역사를 보게 되면 하루 단위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한달이나 1년 단위로 보게된다. 1,000년 전의 이야기를 하루단위로 서술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단순하게 볼 때 전쟁을 하고 전쟁이 끝나면 승자들끼리 온갖 음모와 계략과 배반과 줄세우기가 활발하면서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이합집산이 끝나 줄세우기가 정해지면 그것으로 한동안 자기들끼리 수염만지면서 희희낙락하다 조금씩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만 그 당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큰 틀에서 보기에 보일 뿐이다.

 

이처럼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들끼리 공치사를 수렴하여 어느 정도 안정화 된 것은 전적으로 이슬람측이 자신들의 문제가 우선이라 그런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모르고 십자군측은 여전히 자신들이 잘 났다고 서로 내 땅, 네 땅하면서 땅 따먹기에 치중하고 있었다.

 

만화로 그려져 있어 자세한 설명보다는 여백의 미가 많아 그 간극을 약간은 추측으로 머리속에 마저 채워넣게 되는데 십자군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조금은 아둔하고 욕심만 많고 현명하게 처신을 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 보인다. 똑똑한 인물들은 다들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권토중래를 노렸는지 무위도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십자군 원정은 눈에 보일정도로 기회의 땅이였을 것이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거나 죽기 아니면 내 땅먹기를 노리고 갈 만한 곳이였으며, 아직까지 뚜렷하게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절대 군주가 없다보니 군웅할거의 시대가 바로 십자군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정학 위치와 정치적 시기가 아니였을까 한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권에 나오는 내용이 대부분 지들끼리 싸우고 다투는 모습이다. 나름 머리를 쓴다고 써서 권력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결국에 실패하고 다시 또 다른 놈이 나타나서 새롭게 머리를 써서 다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다보니 좀 재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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