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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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 큰 화두를 던졌던 마이클 센델의 최근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이미 펴 낸 책들이 우추죽순식으로 출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실제로 미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덧 우리나라가 사랑하는 미국 교수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정의에 대해서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었던 시대상황과 잘 맞아 떨어져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본다. 누군가에게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정의가 아니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비롯하여 도대체 우리가 정의라고 믿었던 것들이 정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서 우리나라에 제시하는 임팩트는 약하지 않나한는 생각도 들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언급되고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는 논제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경우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 공통의 정의를 정의하고 있는 실정이니 공정과 부패에 대해서는 좀 더 성숙해야 다음 논제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기도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당연히 많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널리고 널렸다.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면 분명히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죽음과 같은 절대적인 명제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돈으로 죽음을 최소한 연기할 수는 있다.

 

한 가족의 부모가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놀이공원에 가서 즐겁게 놀고 왔다면 그건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닐까? 어렵고 힘들게 돈을 모으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내어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하는데 이건 돈과 결부시킬 수 있다. 충분히. 그렇다면 이 행위는 행복을 돈으로 산 것일까하는 생각도 든다.

 

마이클 샌델이 참으로 대단하게 답이 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는 것이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나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하는 이야기중에는 생각을 해야 하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과 사유를 통해 내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새치기, 인센티브,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삶과 죽음의 시장, 명명권이라는 총 다섯개의 주제를 갖고 대답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상황에 대해 당신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나마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는 아주 조금이라도 마이클 샌델의 가치판단이 적용되어 우리가 내리는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이데올로기중에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평정하고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남아있다.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명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들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함축적으로 말할 때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점점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새치기라는 단어에 그 누구도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새치기라는 단어가 고급스럽게 포장되고 분명히 새치기인데 새치기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돈으로 새치기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말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게 또 복잡해서 딱 부러지게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센티브를 허락하거나 요구하면 상식적으로는 누군가를 움직이는 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센티브는 돈과 결부된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돈을 더 주거나 잘 한만큼 추가적으로 지급한다면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센티브를 근거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건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상하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최고인데 꼭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돈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이성을 유혹하는데 돈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감정과 정성이 없는 돈의 유혹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도 이상하다. 절실하다고 하면 절실한 돈을 받는데도 도덕이 결부된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상대방의 감정과 정성과 상관없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보험과 도박은 한 끗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사망으로 돈을 받는냐는 동일하다. 책에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 조기에 보험금을 받는 제도는 있다 - 남은 여생을 근거로 보험금을 사고 파는 합법적인 시장이 존재한다. 이 부분은 가치판단의 결정이 어렵다. 수익으로 접근하면 한 마디로 인간의 생명을 갖고 수익률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철저히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관점에서는 오로지 수익률로만 판단하게 된다. 읽으면서 모기지를 채권으로 엮어 판 것처럼 사망 보험금도 조금씩 금융화하여 거래되면서 혹시나 금융사태처럼 나중에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끝으로 명명권이라 하여 이름을 사고 파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업의 광고와 관련이 되어 있다. 기업은 어떻게 하든 자신의 존재이유는 많은 제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점점 한계상황이 다가오고 있으니 여러가지 기발한 방법을 통해 기업 광고를 한다. 방송에도 나온 것처럼 인간의 몸을 이용하여 광고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점점 인격과 자아를 갖고 있는 인간이 흡사 로봇처럼 광고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지만 겉으로 볼 때 민주사회를 살고 있는 평등한 사람이라고 보이는데 갈수록 최소한 평등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의 양반과 사농공상으로 나눠져 있던 것처럼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 편하고 기회를 먼저 갖게 되고 가난한 사람과의 접촉은 사라지고 있다. 물론 사회지도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하지만 그건 신분사회가 고착회되어 있던 조선시대에도 정치의 한 모습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난 것과 차이가 없다.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에 대해 공정과 부패로 설명을 할 수 있다. 과연, 이것은 공정한 것인가? 부패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고급스럽게 부패한 장면들이고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정해야 한다. 이것도 힘든 것이 똑같이 공정한 기회를 주게 되면 각자가 처한 상황과 지위와 자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니, 공정도 점점 무엇이 제대로 모든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따라야 한다.

 

공정이나 정의나 뜻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비슷하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부패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부패한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부패하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부패는 누가봐도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 보인다. 본인 스스로 떳떳하고 부패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있을 듯 하다. 너도 하고 나도 하는 것들은 어느 순간 부패가 아니라 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얼핏 생각해도 무궁무진하지만 갈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고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어지간하면 돈으로 살 수 있게 되고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무전무죄 유전유죄가 아니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잣대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 질뿐만 아니라 어느사이에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돈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세상의 본질을 보게 된다면 올바른 공정과 정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부패를 부패라고 손가락질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워낙 철학이라는 것이 답이 없는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이렇게 고착화되어 간다면 인류 역사를 볼 때는 새로운 힘이 등장하고 정반합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곳을 살고 있는 우리는 알기 힘들고 느끼게 힘들지만 긴긴 역사라는 시간을 볼 때면 분명히 점점 개선점이 나오고 찾지 못한다면 늘 역사는 반복된다는 깨우침을 다시 한 번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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