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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우리가 알고 있는 햄릿의 내용은 세익스피어가 초연 당시나 그 이후에 했던 극본과 100%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극장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자산이라 생각하여 대본을 극장에서 소유하고 있어 외부로 유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걔중에 기억력과 암기력이 좋은 사람들에 의지해서 대본이 돌아 다녔다고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대본이외에 세익스피어 사후에 극장 내부에 있던 극본까지 합해서 지금 돌아다니고 있어 영국에서도 햄릿의 대본은 3가지 정도가 된다고 한다.
문제는 3가지의 극본이 전체적인 극의 흐름이나 내용은 비슷할 지 몰라도 대사등이 달라 캐릭터들의 심리와 생각이 현저하게 다를 수 있어 지금도 햄릿의 내용은 언제든지 새로운 내용으로 선 보일 수 있다고 한다. 햄릿은 저절로 입체적인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극본에 따라 약간은 햄릿이 하는 행동과 생각이 달라진다면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어 더 풍부해지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도 햄릿이라는 작품은 알고 있고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도 알고 있고, 세익스피어라는 인물도 알고 있다. 일부러 재미삼아 햄릿과 세익스피어를 연결짓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연출할 정도로 햄릿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조금만 아는 사람은 햄릿의 대략적인 내용도 알고 있을 정도로 햄릿의 내용은 유명하다.
특히, 연극으로는 수시로 지금도 공연이 올려지고 있고 영화로도 꽤 많은 작품이 상영이 되었다. 꼭 햄릿이 아니라도 햄릿이 변용되거나 차용되어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햄릿작품도 오리지널 작품은 아니라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일이다. 세익스피어는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는 이미 기존에 있는 내용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발표하는 데 천재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햄릿의 작품도 거의 유사한 내용이 시중에 있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세익스피어만의 세계에 편입하여 새롭게 창조한 작품이 바로 햄릿이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작품이 있어도 그걸 뛰어넘는 작품의 완성도가 있다면 사람들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그것이 예술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세계에 모두 골고루 적용된다.

햄릿을 연기한 배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예외없이 연기력을 인정받고 스타로 발돋움을 한다. 그만큼 햄릿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햄릿이 하는 행동이나 대사를 보면 절대로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고 엄청나게 입체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번뇌하면서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진실을 알아가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베타랑 배우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도전으로 보인다.
다른 역할들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햄릿이 번뇌하고 좌충우돌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고민과 행동이다. 왕이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양심상의 고민이고 왕비의 고민은 그나마 엄마로써의 고민과 지아비를 잃고 동생의 부인이 된 고민이 있어 보다 쉽게 표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햄릿에 나온 배우들은 어느 한 명 쉽게 나왔다가 들어 갈 수 있는 인물들이 없다. 그런 이유는 아마도 대사에 있을 것이다. 등장 인물마다 각자 뱉어야 하는 대사가 범상치 않기에 흔히 말하는 엑스트라마저 그 의미처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의미없이 나와 의미없는 대사를 뱉고 나가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읽다보니 어느 순간 왕의 행동은 왕비를 사랑한 행동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 왕의 권력에 대한 욕심보다는 - 왕비의 행동도 마찬가지로 왕의 동생을 더 사랑했기에 선택한 결과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햄릿마저도 엄마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그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하는 다소 동 떨어진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햄릿이 미치광이 흉내를 내며 타인을 속이지만 실제로는 미친 것이 아닐까 싶다. 정말로 유령은 있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아버지의 죽음에 의심을 가졌을 것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이 사실을 밝힐 방법이 없어 같은 편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줄곧 줄다리기를 하며 실제로 행동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말이다. 그가 한 행동들이 실제로 이성에 근거한 행동이 아니라 반 미친 상태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한 행동 말이다.
아니면, 편집증에 사로 잡힌 것이 아닐까한다. 왕이 자신의 왕을 죽였다는 사실은 왕의 독백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그 외에 일들은 하나같이 햄릿의 편협적인 사고라 볼 수도 있다. 왕비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한 선택일 수 있으면 플로니어스는 왕의 신하로써 의당 해야할 행동을 했고 친구들은 친구로써 햄릿을 아끼는 마음과 왕의 부탁을 받아 한 행동말고는 없다. 햄릿은 점점 오해에 오해를 더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에 빠져 버려 다른 생각이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아 플로니어스를 죽이게 되고 이 후에 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햄릿은 무척이나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아주 단순한 인물이다. 비록, 그가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다양한 것이 교육을 통해 주입받았지만 그가 하는 행동은 오로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너무나 일직선으로만 행동한다. 영약하지도 않고 치밀하지도 않고 좌, 우는 살피지도 않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햄릿이 정말 똑똑한 인물일까라는 생각은 든다. 확실히 지혜로운 인물은 아닌듯도 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햄릿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분명히 작품은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돠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생각한 것들을 남들이 읽으면 아주 아주 우습지도 않게 볼 수 있겠지만.
햄릿 작품은 이미 1~2번은 읽은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시대적 배경같은 것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읽었고 읽으면서도 우리나라 말임에도 읽는 것도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 번연극은 예전부터 대사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 말과는 다른 표현으로 인해 고상하다고 좋게 표현할지 몰라도 입에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표현들이 많다.
이 책도 읽어보면 비록 극본이라 할지라도 어색한 표현이나 대사가 많이 보인다. 심지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도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표현되어 있다. 'to be or not to be'라는 영어 표현으로 하면 후자가 좀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할 때 몇 십년 전이라고 해도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표현을 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러한 번역극이 아마도 햄릿과 같은 세익스피어 작품이 번안되며 남긴 유산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이런 점이 개선되어 새롭게 번역이 되고 있는 듯 한다. 그 부분은 연극뿐만 아니라 일반 책에서도 볼 수 있다.
햄릿은 결국 죽는다. 왕도 죽는다. 왕비도 죽는다. 햄릿이 사랑했던 - 정말로 사랑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 오필리아도 죽는다. 오필리아의 아빠인 플로니어스와 레어티즈도 죽고 친구인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도 죽는다. 햄릿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관계에 있던 인물중에 유일한 생존자는 호레이쇼이다. 호레이쇼만이 유일하게 이 모든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햄릿이 아니라 호레이쇼가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도 한 번 구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철저하게 호레이쇼의 관점에서 말이다.
햄릿은 그다지 길지 않는 분량이지만 다양한 면으로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전부 각자의 사연과 사고를 갖고 움직이기에 더욱 그렇다. 햄릿이 과거에도 지금도 그렇듯이 미래에도 끊임없이 공연되는 것은 이와같이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