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비즈니스는 침대에서 시작된다 - 1% 부자들의 탈무드 실천법
테시마 유로 지음, 한양심 옮김 / 가디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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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은 늘 연구의 대상이다. 외국에서 살아 본 적이 없어 증명할 방법은 없으나 설마 우리나라에서만 이토록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될리가 없고 외국 책이 번역되어 들어온 것 중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역사와 음모론, 실 생활등에 대한 책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하다고 본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볼 때도 유대인과 관련되어 있는 많은 사건이 벌어졌고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많은 활약을 펼치는 것을 넘어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는 곳을 볼 때마다 그렇고 역사상 강대국에서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고 나오고 지금 가장 강력한 미국에서도 좌지우지 하는 자리에 유대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유대인의 위치를 무시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가 있고, 유대인들 자신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어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들도 많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이야기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교육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이 배우려고 한다. 첫째는 그들이 쌓아 올린 부의 관점이고 두 번째는 그들의 교육적인 측면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유대인에 대해서 배울 때는 가장 깨끗하고 깔끔하다. 어떤 식으로 유대인들이 지금과 같은 위대한 민족이 되었는지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라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켰고 행했는지에 대해 참고하여 따라 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 이런 부분은 대체적으로 음모론이나 소설에서 알려준다 - 부를 형성한 과정이나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의 숫자는 1,40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정도 되는 숫자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좌지우지 할 정도라고 한다면 정말로 대단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모든 나라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나라의 중요 자리에 있다면 세계의 막후를 조정한다는 음모론이 설득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유대인의 부에 대한 책은 우리나라에도 꽤 많이 소개가 되었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유대인의 생활습관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무작정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거의 틀림없이 토라와 탈무드에 근거한다. 추가적으로 랍비들의 사례가 추가된다. 결국, 유대인들의 알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토라와 탈무드라는 것이다.

 

토라는 모세5경이라고 하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다. 탈무드는 굳이 비슷한 사레는 이솝우화나 논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이들을 배우는 것이 바로 유대인의 모든 것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의 행동과 사고는 바로 토라와 탈무드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탈무드에는 단순한 지혜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살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판단을 내려주는 지침이 되는데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이익과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되는 유대인들이 당연히 다른 민족보다 철저하고 확실하게 금전적인 부분까지 앞서나가는 경우가 아닌가한다.

 

'유대인의 비즈니스는 침대에서 시작된다'는 탈무드의 몇몇 경구를 알려준 후에 이에 대한 자세한 사례를 보여줘서 유대인들이 부를 형성한 방법에 대해 알려준 책이다. 추가로 이솝우화와 같은 간단한 우화를 통해 유대인들이 실제 삶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데 일부 우화는 패러독서와 같은 상황이라 웃음을 짓게도 만든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대인들에 대한 사례를 알려 현실에서 성공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배운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득하여 실 생활에서 활용하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인데 한 편으로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알려준다고 보여준다.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소설이 써진 이유는 분명히 유대인들의 이미지때문일 수는 있어도 그런 모습들이 타 민족에 비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라 보는데 그런 면은 빠져 있다.

 

세계에 가장 똑똑하고 자랑할 업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소수인 유대인들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여타의 민족들도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인구 구성 대비로 볼 때는 비율로 보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성과를 유대인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유대인의 비즈니스는 침대에서 시작된다'는 부담없이 가볍게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유대인의 사고와 습관에 대해 알게되면서 짧게 짧게 우화까지 곁들여 지루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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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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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스릴러 장르로 들어가면 상당히 두꺼운 팬층을 자랑하고 책들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추리, 스릴러 장르의 작가들은 거의 1년에 한 편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듯 하다. 이러다보니 한 번 인지도를 획득하고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을 발표하면 그때부터는 매년 독자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듯 하다.

 

그런 작가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도 이쪽 관련 분야의 책이 무척 많다는 것을 보게 되고 특히 어떤 작가는 발표된 작품이 많아서 이정도로 작품이 발표될 정도면 재미있으니 독자로 부터 선택을 받는 것이라 보여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재미있는 것이 이쪽 분야는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은 읽게 되어 있다. 워낙 읽는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지적 호기심마저 - 읽으면서 함께 추리하는 - 전달해주다보니 열광적인 지지층은 판타지 소설쪽보다는 다소 드물더라도 워낙 넓고 방대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나도, 그런 의미에선 정말로 재미있는 추리, 스릴러 소설을 읽게 되면 눈이 가고 읽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그런 작가들이 워낙 많지만 몇 몇 작가들의 소설은 읽었고 전작을 노력하지만 다 읽지는 못해도 읽으려고 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미국, 일본, 유럽까지 가세하면서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다보니 오히려 선택하는 데 힘들기는 해도 거의 대부분 그 나라에서 검증된 작품들이 넘어오는 것들이라 어지간해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많은 작품들이 소개된 작가들도 꽤 많은 데 그 중에 퍼트르샤 콘웰도 한 명이다. 지금까지 도서관에 가거나 서점에서 자주 눈에 띄였는데 여러 작품이 있으니 재미는 어느정도 보장될 것이라는 판단이 드는데 개인적인 편집증까지는 아니라도 이왕이면 그 작가의 가장 대표작이나 초기작을 보려 한다.

 

이러다보니 어떤 작품이 가장 대표작인지 굳이 조사해서 알아보지 않다보니 선택을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초기작부터 읽으려고 하다보니 없어서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의 1편이 새롭게 재판으로 출판이 된 것을 발견하고 주저없이 집어 들었다.

 

재미가 있는 작품은 언제 어느 때에 읽어도 그 가치와 향기는 변하지 않지만 너무 오래되면 현재의 트렌드에 익숙해져 약간 감흥이 별로일 때가 있다. '법의관'은 스카페타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인데 솔직히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는데 책의 소개를 보니 무려 1억부나 팔렸다고 하니 장난이 아니다. 특히, 작가의 소개를 읽어보니 장난이 아니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여 받는 인세만으로도 대단한데 이것도 모잘라 계약금만으로도 몇 백만 달러를 넘어 천만달러까지 이야기가 될 정도의 작가라고 하니 도대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책이 팔리기에 이런 부를 획득했는지 대단한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단순히 책만이 아니라 부가상품까지 염두에 두고 그런 계약을 맺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법의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CSI라고 보면 되는데 아직 드라마가 세상에 나오기도 훨씬 전에 - 대략 10년 전 -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경찰내의 법의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주인공을 삼아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추리하는 모습을 보여 준것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과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지 않았을까 한다.

 

워낙, 초기 작품이라 최근의 트렌드만큼 스피드하게 사건이 전개되지는 않는다. 다소 느릿하고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사건이 전개되고 풀어낸다. 물론, 가장 중요한 범인은 끝까지 오리무중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늘 추리소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고 결국에는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비해 연쇄살인범인 경우에는 아무런 고리도 연결시킬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법의관'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이 작품의 작가가 여자라 그런지 주인공도 여자라는 점이 소설을 더욱 색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비록, 느릿하게 진행은 된다고 해도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게 점점 촘촘하게 사건에 몰입하게 만들어 점점 집중하면서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여부에 흥미를 갖고 읽게 만들어준다.

 

최근에 읽었던 유럽 쪽의 추리, 스릴러 장르보다는 다소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부분은 초기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얼마든지 감안할 수 있다. 향후에 지속적으로 시리즈를 읽을 수 있는 시작으로 읽게 된 작품으로 좋아보인다. 무려 20년이나 전에 만든 작품이라 템포가 다소 느린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래도, 충분히 추리 소설로 읽는데 지장이 올 정도는 아니다.

 

'법의관'을 통해 퍼트리샤 콘웰의 작품 세계에 한 발을 넣었고 스카페타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는 개인적으로 있을 듯 하다. 향후에는 어떤 작품을 선택하든지 굳이 순서에 신경쓰지 않고 읽으면 될 듯 하다. 역순으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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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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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는가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 앉으면서 든 생각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다.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다. 한 달만에 무려 8쇄나 인쇄가 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한 책이다.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만큼 당시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진 측면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님였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촉발된 정의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아니지만 저자인 셀리 케이건의 우리나라에 직접 찾아와 강연을 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렇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그렇지만 과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변화를 갖게 되었고 사회를 보는 시선이 변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 것인지에 대해 괜한 궁금증이 생긴다.

 

무엇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쉽게 책을 집어 들어 읽을만한 책이 아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점에서 이 책이 끌렸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학적인 측면이 있었을 것 같고 상당 기간동안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 것을 눈여겨 보면서 친근해 진 측면도 없지 않아 있을테고 예일대에서 무려 17년 동안이나 최고의 명강의라는 타이틀에도 끌렸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책의 저자인 셀리 케이건의 모습을 볼 때 탁자 위에 앉아 강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그럴 가능성도 있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내가 얻고 자 한 것은 무엇이였을까에 대한 생각이 지금 가장 많이 든다. 아니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후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함께 머리속에서 머물고 있다. 고백하자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그저 읽고 싶었다는 점 이외에는 특별하게 얻고자 한 점은 없다. 막연하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는 생각만 하고 읽었다. 죽음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는지 죽음이라는 관점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예측도 하지 않고 읽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 생각할 때 그런대로 죽음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알려주는 선입견이 있겠지만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는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구구절절한다. 죽음이란 사람이 죽는다는 의미를 넘어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다시 두 가지 관점으로 들어간다.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라는 관점으로 말이다. 저자인 셀리 케이건은 육체의 죽음이 완전한 죽음이라고 믿지만 - 한 마디로 사후 세계란 없고 믿지 않는다 - 어떤 사람들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이원론점인 관점을 제시한다. 자신의 믿음과 판다과 달리 사람들에게 아주 아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제시하는 방법이 너무 치밀하고 집요하고 세밀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할 정도이다. 단순히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죽음이 가져다 주는 의미와 죽음이라는 사건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도 서로 대립되는 관점을 알려주고 그 관점들에 대해 또 다시 세부적으로 들어가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면서 또 다시 다른 관점을 알려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대단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려 17년동안 강연을 했다면 온갖 관점에 대해서는 전부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이렇게 길고 길게 설명을 끊임없이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어 준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한 이야기에 대해 계속해서 되돌이표를 보는 것과 같이 다시 이야기하고 반복해서 또 이야기하면서 약간 약간씩 말을 변경해 가며 죽음에 대한 여러 관점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느낌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 느낌이 맞는 이유는 저자가 무엇보다 철학교수이고 죽음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넘어가서 철학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붙잡고 매달린 주제라는 판단이 들었다.

 

예전에는 죽음에 대해 단순히 생각이라는 관점으로만 고려하고 판단하고 상상하고 철학적인 질문과 대답을 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철학은 과학과 결부가 되어 보다 고차원적인 물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물리가 그렇다. 진화론적인 관점은 인간의 변화를 생각하는 철학적인 관점을 제시한다면 죽음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연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인간이 인간인 이유와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어줬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감정이 공존하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모든 것이 끝인지 다른 시작인지의 여부는 단순하게 철학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종교까지 결부되는 아주 골치 아픈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인 관점에서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고 육체의 생체기능의 정지이지만 영혼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단순히 육체의 죽음일 뿐 영혼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후세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증명하기 힘든 부분으로 넘어가게 된다.

 

영혼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여부를 떠나 사실 이 부분은 종교를 떠나서도 결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육체적 죽음을 믿는다면 인간은 죽음으로 끝이다. 코마 상태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살아있지만 영혼이 떠난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육체의 죽음은 심장이 멈출 때를 의미하는 것인지의 여부까지 들어간다. 움직일 수 없고 눈동자로 자신의 의지를 선보이고 머리로는 생각하는 존재로써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볼 때면 죽은 존재로 볼 수도 있다. 단지, 머리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그는 죽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머리가 터져도 몸은 인식하지 못하고 한동안 자신의 행동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 과학적으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 이 상황에서 인간은 죽은 것인가 살아 있는 것인가, 살아 있다면 어떤 의미인가? 최근 유행하는 좀비로 들어갈 때 육체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지만 살아 움직이니 도대체 이 현상은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라 판단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한 편으론 좀비상태에서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책을 읽었어도 답이 없다.

 

이런, 저런 철학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괜히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지만 단순한 이야기를 배배 꼬고 말장난처럼 워낙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계속 생각만 하고 있었지 본격적으로 읽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아주 제대로 된 철학책을 읽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교묘하게 철학책이라는 점을 숨겨 책을 읽게 만든 장점이 있어도 보인다. 단순히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라는 점을 전면으로 부각시켰다면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끝까지 갈때 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으로 보인다. 책도 얼핏보면 얇아보이지만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책이다. 더구나, 책의 내용을 읽는 것도 쉽지 않은데 빼곡하게 글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글자의 향연을 함께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상, 하 2권으로 분철했으면 상권을 읽고 하권은 읽지 않았을 사람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그만큼 결코 우습게 집어 읽을 책이 결코 아니다.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게 책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읽으면서 '와~~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되는 거야?" "진짜로 이런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말이야?"라면서 읽게 된다. 죽음에 대해 알기 위한 여정이 무엇이 그리도 길고 긴지 책의 중반까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육체적인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후에야 겨우 겨우 죽음이 우리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나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다시 또 길고 길게 설명한다. 어찌보면 가볍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점을 심각하게 무게잡고 매일같이 만나 이야기하는 교수님을 만난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 영혼이 없고 죽음은 육체적 사망으로 끝이 난다는 철학적인 논리와 이성적인 전개는 참으로 수긍이 가지만 진정으로 재미없는 도출이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기에 재미있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믿기에 지금처럼 인류의 문화는 풍부하고 풍성한 유산을 후대에게 남겼다고 본다. 육체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는다면 극단적으로 볼 때 '죽으면 끝이지, 뭐..'라는 것인데, 너무 재미없고 낭만적이지 못하다.

 

지금의 제도와 도덕과 같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발전시킨 많은 것들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에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육체로 죽는다면 한편으로는 인간들이 그렇게까지 아등바등하고 도덕적으로 살고 뒷날을 생각하며 살아야 의미와 이유가 있을까하는 판단이 든다. 이런 생각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점이 더 맞겠지만.

 

평소에 죽음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도 인식하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늘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언제 죽을지는 나이와 상관없지만 대체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죽음이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생각하지 않는다. 영생을 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죽는다는 점 때문에 우리 인생은 더 풍성하고 살만하다. 다양한 조합이 나오는 것도 역시 이에서 비롯된 것들로 보인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자살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 아주 아주 길게 설명을 하는데 조금은 쓰잘데기 없는 설명으로 보였다. 뭐, 그리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자살에 대해 설명을 하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전혀 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자살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본다. 이걸 철학적으로 살아가는데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정말로 철학자다운 논리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집어 들어 읽다보니 도저히 쉽게 며칠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거꾸로 이틀동안 남는 시간을 전부 투자해서 읽었다. 오래 잡고 있어 봤자 괜히 시간만 보내고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을 듯 하여 아예 작정하고 이틀동안 계속 책을 붙잡고 있었더니 어제는 눈알이 약간 아플정도였다. 도대체, 죽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침을 뱉어가며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약간은 현학적인 측면에서 선택해서 읽었는데 무엇이 나에게 남았는지의 여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저, 죽음에 대해 살면서 분명히 내 인생에 100% 발생할 사건이지만 제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굳이 생각하려고 한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논리를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 할 듯 한데, 이 책의 저자인 셀리 케이건도 그 정도로 만족한다고 에필로그에서 쓴 것을 보면 아주 잘 읽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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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 잠자는 열정을 깨우는 강수진의 인생수업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강수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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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자기계발 서적중에 동기부여 책들을 마구 마구 읽었던 때가 있었다. 투자라는 것을 하기에 앞 서 나라는 사람을 다스리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1년에 50권 정도는 몇 년 동안 읽지 않았나 한다. 그런 책들을 열심히 읽은 결과로 좋은 점도 많았지만 공허함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 못 할 일은 없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실천이라는 행동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그런 동기부여를 하는 당사자가 정작 그가 쓴대로 행했느냐의 문제에서 많은 부분 물음표를 갖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행동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꼭, 자신이 실천하는 것만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자신이 완벽하게 실천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을 전달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보지만 괴리감이 크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고 보인다.

 

동기 부여책들을 지금도 가끔 읽기는 하지만 너무 이론적인 면과 실천이라는 부분때문에 예전만큼의 강렬한 뜨거움도 없고 참고삼아 읽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책들은 인간의 약한 부분을 건드려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인기를 끌고 있다. 더구나, 반드시 자신이 실천하는 것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변화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다.

 

이에 반해 한 개인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책이라는 것은 자비 출판이 아닌 다음에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꺼리가 있어야만 한다. 그중에서 대중이 알고 있는 사람이든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사람이든 걸어온 인생에 충분히 무엇인가 알게되는 부분이 있게 만드는 책이라면 그 자체로 아주 아주 훌륭한 자기계발서적이 되고 동기부여 책이 된다.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창하고 대단해서 한 나라를 구한 인물이 아니라 내가 하지 못 한 일을 한 사람이거나 감히 나는 시도하지 못한 걸 하는 (한) 사람,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든 사람, 어떤 의미이든 성공한 사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걸 경험 한 사람 등등.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는 영웅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책을 읽다보면 너무 미화되어 있거나 과장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 읽다가 거부감이 들어 의외로 자주 이런 책들을 읽지 않게 된다. 정말, 겸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될 수 있는 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의 책이 드물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책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유명한 사람들의 책이 거부감이 드는 이유이다.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의 저자인 강수진씨는 아주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보여지는 직업을 갖고 있어 모든 사람들이 그의 현 상황을 알 수 있다. 그 누구도 거짓으로 꾸미거나 현혹시킬 수 없는 발레리나라서 우리는 강수진씨가 하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안다. 그가 하는 이야기와 행동이 다를 수가 없다는 사실도 안다.

 

발레리나는 공연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라 말이 필요없다. 행동만으로도 우리는 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이런 사람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의심을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발레리나처럼 자신의 몸을 이용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수명이 짧다. 무한하지 못한 우리 몸은 특히 젊음이 사라지면서 몸이 쇠퇴하며 점점 생생한 몸을 갖고 있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전 세계에서 손 꼽힐 정도로 유명한 발레단에 속한 것도 모잘라 수석 무용가에 공연할 때마다 여전히 주연으로 활동을 하는 강수진씨의 현재 나이가 45세라는 것은 감탄을 넘어 존경해야 한다.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 정확하게는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지만 - 얼마나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는지를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도저히 존경과 존경을 금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을 점수로 따질 때 20~30점이 된다면 강수진씨는 자신의 인생을 95점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점짜리 인생은 없다는 전제하에 강수진씨는 책 제목처럼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살 뿐이다.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하고 부족하다 싶으면 만족할 때까지 끝까지 해내는 이야기를 들을면서 만약 강수진씨 앞에 있다면 무척이나 부끄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못하면 내일하자는 생각으로 살기 때문에. 

 

여러 TV프로에서 강수진씨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책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읽고 있으니 더욱 대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성공한 사람은 분명히 그 이유가 있다. 성공의 잣대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아무나 들을 수 없는 것일텐데 자신의 분야에서 이 정도로 성공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는 것도 모잘라 그의 행동과 말이 일치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이미지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극히 드물다.

 

자기 계발서적이나 동기부여책을 수 십권, 수 백권을 읽는 것보다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한 권을 읽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과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라 본다. 다만, 워낙 일반적인 나와는 다른 존재로 느껴져서 그냥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로 남게 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 문제라면 책을 읽은 사람의 문제일 수 있다. 나같은 경우에 나랑은 워낙 비교도 안 되는 치열한 삶을 살아 도저히 흉내도 내지 못할 듯 해서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강수진씨의 이야기를 꼭 들어봐야 할 이유는 있다. 분명히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저런 인생을 스스로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나 싶다. 참으로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것은 별 것 아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 된다. 그런 사람을 존경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경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 영웅(사진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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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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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케팅은 다음과 같다. 서양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다면 동양에는 이종성의 '후흑학'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마케팅을 한지는 않았지만 대략 이러하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것만 봐도 이 책의 내용이 어떨할지는 저절로 유추가 될 것이다. 실제로도 이 책을 나에게 추천한 사람도 그런 식의 책이라며 읽어보라고 했다.

 

이미, 군주론이 어떤 내용인지는 익숙하도록 알고 있지만 실제로 아직까지 군주론을 읽어 본 적은 없다. 의외로 두껍지도 않지만 너무 유명해서 차일 피일 미루게 되는 책이 되어 버렸다. '후흑학'의 책도 들은지가 어느덧 만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상당히 뜸을 들여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너무 뜸을 들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100페이지 정도를 넘어가서부터는 그다지 흥미롭게 읽지는 못했다. 편견인지는 몰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내용이 이어지면서 연관된 내용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특정 에피소드를 보여준 후 그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인데 책을 읽다보니 그런 방식의 책이였다. 

 

꼭, 후흑학 책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동양고전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이 대부분 그렇다. 한자성어를 보여 준 후 그에 맞는 내용을 언급하고 저자의 주장을 펼치는 식의 책이 꽤 인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난 그런 식의 책은 별로다. 어딘지 모르게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지 모르겠다. 고전을 보여주려면 설명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읽은 사람들이 알아서 해석하고 자기 편의대로 곡해하는 단점이 있어도 말이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다가 그에 맞는 에피소드를 끌어오는 것은 좋은데 그 반대는 싫어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이상한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중에 하나는 어딘지 억지로 갖다 부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다. 후흑학의 내용은 저자의 내용이 아니라 이종성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근거로 다시 저자가 새롭게 편집하고 각색한 책이다. 하지만, 읽어볼 때 이종성의 후흑학이라는 글을 완전히 저자가 알아서 자신의 생각으로 고쳐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작, 이종성의 후흑학에 나오는 내용은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들어나지 않고 저자인 신동준의 주장이 확고하게 나온다. 그렇다면, 해석이라는 단어를 넣는 방법으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난 전적으로 후흑학의 글 내용을 읽고 싶어 집었는데 후흑학의 내용이 나오는 것은 분명한데 원하는 것이 아니였다는 점에서 뒤로 갈수록 읽는데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후흑학은 좋게 표현하면 '네 말이 맞다' '네 말도 맞다'이다. 내가 주로 추구하는 방향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극히 드물기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그 말이 맞다. 내 입장에서는 내 말이 무조건 맞을지 몰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재 구성하면 완전히 다른 논점과 시선이 생긴다. 그렇기에 둘 다 맞는 말이다. 이런 표현을 기회주의적으로 몰아부칠 수도 있지만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가는 처세술이 될 수도 있다.

 

일명, 박쥐라고 불릴 수 있는 인물말이다. 사람들은 명확하게 내 편이나 상대편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군집 문화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런데, 이쪽도 저쪽도 아닌 행동을 하면 어느 쪽에도 가담할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다. 철저하게 자신의 처세를 현명하게 하는 사람들은 살아 남을 수 있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이쪽이나 저쪽을 선택한 후 확증편향과 닻 내림효과, 의식 고취등을 통해 무조건 우리편이 맞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의식에 사로잡힌다.

 

후흑학은 어떤 식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내 상황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비굴해도 상관없고 당당해도 상관없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 오로지 살아남아 이익을 얻으면 된다. 대의명분만을 쫓아 패가망신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개인에게는 힘들지 몰라도 한 국가에게는 필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책에서 언급되는 핵심은 와신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현재 어떤 모멸을 받더라도 참고 이겨내서 결국에는 내가 최종 승리를 하는 것이다. 까짓것 지금의 모든 고통은 최종 승리를 위해 얼마든지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이건, 보통의 사람들은 사실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음흉하다는 사람들은 피하려고 하고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 편인지도 상대편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좀 더 힘이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모습이 개인에게는 본받을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아도 국가에게는 아주 현명한 외교가 될 수 있다. 특히, 약소국일수록 이런 자세는 비록, 국민에게 욕을 좀 먹고 안쓰럽게 보여도 한 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이자 최고의 노력이 된다.

 

'후흑학'에서는 초한지, 삼국지, 춘추전국시대등에 나오는 인물들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도 동양에 대한 에피소드를 말할 때는 - 중국으로 보다 한정하자면 - 저 시대를 논하지 않고는 어떤 에피소드도 나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태평성대에는 이야기꺼리가 후대 사람들이 볼 때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당대에 살던 사람들은 참으로 힘든 시절과 세월을 겪게 되었을텐데 말이다.

 

조조는 가장 후흑학에 능한 인물로 나오는데 유비도 뒤 떨어지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만, 유비는 워낙 이미지 메이킹을 잘 한 덕분에 후흑을 펼쳐도 사람들이 인의를 중시한 행동으르 여기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계산과 상황판단에 따른 행동이였다는 것이다. 결코, 인의를 중시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의 결과를 보기 좋게 이미지 메이킹한 덕분에 유비가 조조에 비해 인의로 보여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읽어보니 맞는 말이다. 

 

인의와 충효를 중시한 인물을 대대로 칭송하지만 그들을 다른 관점에서 후흑을 실천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관점은 아주 좋았다. 똑같은 사례라도 어떤 관점에서 그 인물을 평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라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중국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걸 굳이 후흑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해서 그렇지 이미 우리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특히, 꽤 많은 분량을 현재의 국가로 치환해서 이야기해 준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대국굴기는 후흑이라는 관점에선 잘못된 것이고 도광양회가 바로 후흑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르게 나아갈 방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확실하게 후흑을 펼치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아쉬움도 토로한다. 

 

후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을 줄인 말이다. 이 두가지를 갖고 있다면 무슨 일이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둘 다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둘 중에 하나를 좀 더 잘 한 사람은 있어도 둘 다를 완벽하게 한 사람은 책에서는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나마, 조조나 사마의와 월왕 구천정도이다. 

 

기대를 워낙 갖고 봐서 생각보다는 별로였지만 후흑이라는 관점에서 개념과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책을 읽어 보다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또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중국 고전의 내용을 약간 관점을 달리해서 알려주는 것도 꽤 신선했고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난 후흑은 힘들지 않을까 한다. 대신, 후흑하려는 인간들은 잘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완벽하게 둘 다를 해 내는 인물은 거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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