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세계사 1 -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피의 백작부인까지, 우아하고 잔혹한 유럽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1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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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가십거리처럼 전달해주는 책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비록, 깊이와 전체적인 맥락을 집어가며 역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알기는 힘들어도 이미 알고 있었던 지식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거나 가볍게 다양한 사례를 대체적으로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특정 시기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책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알려주고 이를 배우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전공자가 아니라도 스스로 자발적인 공부를 통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의 특징은 특정 사상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스승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사사받은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씩 알아가며 체득한 지식이라 특정 사상에 함몰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전공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깊이 아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지식이 과거에는 스스로 터득하고 책으로 펴 낸 적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자신이 공부하고 배우면서 알게 된 지식을 토대로 블로그라는 공간에 올리면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사랑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 후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책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나같은 경우에는 능력이 안 되어 내가 직접 출판사에 연락해서 책을 나왔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주은씨는 '눈숑눈숑 말푀유'라는 블로그에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유럽사에 대해 올린 것이 이처럼 책으로까지 나오게 되었다.

 

특정 시기나 인물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어려울 지 이 책처럼 여러 분야의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더 어려운지 모르겠지만 전자가 깊이 파고들어 세세하게 알려줘야 한다면 후자는 여러 시기의 여러 인물에 대해 전체를 아우르며 재미라는 측면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알려줘야 하기에 더 박학다식하게 내용을 읽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전달해 준다는 측면에서 한 인물뿐만 아니라 주변인물과 역사적 흐름까지 알려줘야 하니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전공자들이 아닌 사람들이 쓴 글은 일단 재미있다. 전공자가 쓴 글들이 꼭 재미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역사와 같은 분야는 너무 세세하게 들어가고 일반 대중들에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책보다는 자신의 업적이나 논문과 같은 내용을 좀 더 보강해서 책으로 펴 내는 경우가 많아 가독성이나 흥미보다는 다소 따분하고 학구적인 내용으로 점철되어 나같은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다소 힘든 것이 사실이다.

 

역사에 대해 비전공자인 저자가 유연하게 자신이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커피 숍에서 테이블위에 얼굴을 묻거나 의자 깊숙히 몸을 누이고 흡사 비밀이야기를 전달하듯이 소삭이는 소리에 귀기울여 듣는 느낌이다. 어릴 때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와서 그런지 단순히 특정 인물에 대해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쉽성으로 언어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전달해 줘서 그런 것을 읽는 재미도 있다.

 

책의 반 정도는 영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고 나머지는 이곳 저곳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영국 인물과 프랑스 인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영국 같은 경우에는 인물에 따라 연대순으로 차례 차례로 한 명씩 알려준다. 연대순으로 나열식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책의 제목인 '스캔들 세계사'라는 제목처럼 흥미위주로 사람들이 관심있어야 할 내용을 갖고 알려준다.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외우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이야기 형식으로 읽는다면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처럼 심각하고 역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쉽거리나 스캔들이라는 제목처럼 남녀가의 치정에 보다 초점을 맞춰 각 시대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드라마도 막장 드라마를 보면 욕을 하면서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역사 이야기도 남녀간의 문제로 파고 들어가 알려주니 보다 흥이 동한다.

 

비록, 스캔들이라고 하는 내용을 통해 역사를 알려준다고 해도 영국 역사를 거의 연대순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특정 시기의 영국 역사는 스캔들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될 정도로 막장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과거의 상류층은 막장의 연속이다. 지금이 오히려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일부일처제가 확실하지만 과거에는 말로만 일부일처제에다 근친상간과 같이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태연스럽게 일상적으로 벌어졌기에 서로간에 얽히고 섥힌 것들로 인해 치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귀족들과 왕족들은 끊임없이 난봉꾼으로써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했고 - 능력이 되는 남자가 자유마저 획득한다면 그렇지 않는 것도 신기할 수 있다 - 여성들은 이를 감수하는 시기였다. 고상하게 어쩌구 저쩌구 해도 그들이 난잡한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왕들중에서도 난잡한 성생활로 성병에 많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중세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고 남자로 태어나면 어떠한 인생을 살았을 것인지에 대해 유추하면서 알려주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었고 세익스피어의 정체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읽으면서 혹하게 만들었고, 중세 시대에 첫날밤에 성주에게 여성의 초야권을 선사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였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논거는 타당성으로 아하..를 외쳤고 태양왕 루이 14세가 병치례한 이야기는 고통이 장난이 아니였을 듯 하다. 절대 군주였던 사람이 병을 고치겠다고 고문과 다름없이 마취도 없이 이를 다 빼버리고 불로 지지고 하는 내용은 저런 끔찍한 고통을 참고 살다니 대단하다는 감정마저 생겼다.

 

백설공주의 원작을 알려줘서 알고 있던 내용과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 아마도 디즈니의 영향일 것이다 - 키 큰 병사들만 뽑은 왕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재미난 단편들의 이야기로써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을 획득하는 면에서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흥미위주로 재미있게 역사의 이면을 알게되고 인간 군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우연히, 스캔들 세계사를 읽게 되었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현재 2편까지 나왔다. 확실히, 흥미롭게 역사를 알려주는 내용은 재미가 있다. 딱딱하게 나열식으로 주절 주절 하는 것보다는 이처럼 전체내용은 이어지지 않을 지라도 각 인물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특정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알려주는 내용의 훨씬 지루하지 않게 흥미위주일지라도 보탬도 되고 기억에도 남는다. 스캔들을 통해 역사를 알게 된다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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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인가 - 세계의 중심이 된 근대 유럽 1500~1850
잭 골드스톤 지음, 조지형.김서형 옮김 / 서해문집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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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현재 지구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이 밤에 지구를 촬영하면 명확하게 환한 곳과 어두운 곳이 보인다. 몇 몇 사진을 통해 유럽을 비롯해 밝게 빛나는 곳과 깜깜한 곳이 나오는데 밤에도 환하다는 것은 문명의 발달과 영향이 있다.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곳에서는 밤이 밝지만 아직까지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곳은 빛이 사라져 움직임이 제한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단순히 밤에 어두운가의 여부를 갖고도 경제 발전을 알 수 있다.

 

1500년에서 1850년에도 인공위성이 있었다는 가정하에 지구를 밤에 찍고 있다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겠지만 현재와는 반대로 동양은 서양에 비해 훨씬 더 밝게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밤에 밝게 빛을 발한다는 점만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어도 충분히 경제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이겠지만 당시의 동양은 지금의 서양보다 인구도 많고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가 있다. 서양인의 관점으로 동양을 바라보는 것으로써 존경이나 존중의 느낌이 아니라 '너네가 그런 것도~!'하는 정도로 약간 낮춰보는 느낌이다. 서양이 동양보다 문물이나 문명에서 앞서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렇게 된데에는 현재 동양보다 서양이 경제가 앞서있고 문화가 앞서있다는 현실에 바탕을 둔 우월감이라 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원래부터 서양이 동양을 앞 서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왜 유럽인가'이다.

 

원래부터 서양이 동양을 앞서 있었는지 최근에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원래부터 서양이 동양을 앞서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실제로 확인한 적은 없지만 그리스, 로마 문화부터 소크라테스를 위시한 철학자하며 로마의 법체계와 중세를 넘어오며 르네상스시대와 더불어 일어난 유럽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이어진 산업혁명을 통해 지구라는 땅덩어리를 지배했고 아직까지 절대적인 위력을 갖고 있는 서양의 지배력을 감안할 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동양에도 자랑할 만한 것들은 있다. 극동아시아 나라들을 보더라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위안을 하지만 전반적인 면을 볼 때 서양의 문명만큼 찬란하게 내세울만한 것은 없다는 선입견이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서양인들에게 전파된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스스로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어 자기도 모르게 서양것은 좋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것은 별로라고 여긴다. 한국이 잘나가도 한국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양이라 통칭되는 유럽은 언제부터 이렇게 동양을 앞서 있었고 대단한 문명을 갖고 있었는지를 굳이 알려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 서 있는 지역이라는 믿음 아닌 믿음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씩 대입해도 동양보다는 서양이 전부 앞 서 있다고 생각되니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무엇인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실제로 서양에서도 점점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넘어 존경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서양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동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차근 차근 하나씩 유럽이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었던것이 무엇인지 조목 조목 짚어주는데 이상하다. 분명히 유럽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문명을 갖고 있고 지속적으로 앞서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데 책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중에 유럽이 확실하게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시기나 문명은 극히 드물다. 책의 분량중에서도 유럽이 여타의 지역을 앞서 있었 시기나 문명은 50페이지를 넘지 않을 정도로 보여주는 듯 하다.

 

거꾸로, 서양보다는 동양이 훨씬 앞선 문명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 잘 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생각해도 딱히 유럽보다 더 잘 살았을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다라는 감정은 책을 읽으며 하나씩 해소된다. 현재, 전 세계는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양이 지배하고 있다. 서양에서 시작된 문물과 사상과 문명등이 우리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다.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퍼지며 널리 알려진 의도된 사상에 우리는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쓰던 것들보다 더 앞 선 문물을 갖고 오니 더욱더 그런 영향은 클 수 밖에 없었다.

 

1500년 전에 유럽과 동양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만 활동을 했기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받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 환경이나 생활 수준과 과학을 비롯한 문화를 볼 때 동양이 서양보다 뒤졌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잘 살았고 더 앞 선 문명과 과학을 갖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아직까지 알지도 못했던 숫자개념이 있었고 농업기반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그렇기에 인구도 더 많을 수 있었다.

 

역사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보다는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뜻하지 않는 발견이나 발명이나 인간들의 의지를 만들어 낸 경우가 너무 많다. 유럽이 그렇다. 그들은 동양보다 문명이나 문물이 앞서 있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유럽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은 못 살았기 때문에(??) 앞 서 있는 동양의 문명과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을 한 결과로 뜻하지 않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중동 지역의 거대한 제국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문화와 과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뒤쳐져 있던 유럽이 이슬람을 만나 드디어 다양한 문화와 과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기존 사고의 체계가 깨지고 새로운 사고를 받아 들이게 되었다. 그전까지 믿고 있었던 사회관과 세계관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신에 대한 관점이 놀랍도록 빠른 시간내에 깨닫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1500~1850년이라는 기간동안 누적되고 축적되어 유럽이 모든 면에서 훨씬 앞서 있었다는 조작(??)과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길고 길게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면서 결코 서양이 동양을 모든 면에서 항상 앞서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오히려 동양이 서양을 앞 서 있었다는 증거를 다양하게 보여주는데 최근에 들어 무슨 이유로 유럽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무엇보다 서양인들이 그때까지 갖고 있었던 신에 대한 사고에서 탈출이 첫번째 모멘텀을 제공했고 이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획득하고 과학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때 숫자개념을 새롭게 얻고 과학에 접목하면서 철학에 머물고 있던 과학이 경험과 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사고의 전환이 유럽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이제는 유럽이 앞 서 있고 동양이 뒤쳐져 있다. 동양은 많은 부분에서 서양에 뒤쳐져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재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자학성도 갖고 있지만 서서히 유럽을 능가하는 분야가 나오고 있고 본연의 문화와 결합되고 융합되면서 서양을 능가하는 시절이 다시 오게 될 것이라 보인다. 그게 바로 역사의 과정이고 결과이다. 워낙 오랜 시간동안 (몇 백년이라는 시간) 이뤄지고 있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쉽게 깨닫지 못하고 알 수 없지만 후대에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가 다시 동양이 서양을 앞서 가기 시작한 시점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동양이 앞서고 서양이 뒤쳐진다라고 하거나 서양이 앞서가 동양이 뒤쳐진다라는 표현은 하지 못한다. 유럽이 지금처럼 전 세계를 지배할 정도의 위력을 갖게 된 것도 특정 분야만을 선택해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야기다. 많은 것들이 얽히고 섥히고 우연과 필연이 섞여 유럽은 여러 면에서 전 세계에 종교와 사상과 과학과 문명을 전파하게 되었다. 어떤 면이였는지는 끝으로 책의 설명을 쓰면서 끝낸다.

 

 

첫째, 일련의 주목할 만한 새로운 발견으로 유럽은 어떤 다른 주요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고대 그리고 종교적 문헌의 권위를 의문시하고 결국에는 부정하기 이르렀다.


둘째, 유럽은 자연 세계에 대한 실험 연구의 수학적 분석을 결합한 과학적 접근 방법을 발전시켰다.


셋째, 증거, 논증 그리고 과학 탐구의 목적에 관한 영국 대법관 프랜스시 베이컨의 생각이 주입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기구에 기반한 실험과 관찰의 접근 방법을 개발했다.


다섯째, 국가가 강요하는 전통 신앙과 복종의 분위기보다 관용과 다윈주의의 풍토 그리고 새로운 과학에 대한 영국국교회의 지원이다.


여섯째, 기업가 정신에 대한 관대한 지원과 기업가. 과학자. 기술자. 장인 사이의 긴밀한 사회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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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남았다면 - 죽기 전에 후회하는 7가지
카렌 와이어트 지음, 이은경 옮김 / 예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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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죽음은 경외의 대상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이 인간에게는 영원한 미지의 대상이 된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존재하지만 그들은 죽었던 것이 아니라 잠시 눈을 감았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알려주지 못한다. 인간은 최소한 누군가 경험을 해야 그 경험을 토대로 간접경험으로 지식을 쌓고 대처를 하고 슬기롭고 현명한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어느 누구도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자신이 직접 죽음을 경험하지는 못해도 타인의 죽음을 경험한다. 죽음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다 처음으로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알게 될 때의 감정은 신비스럽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죽음이란 피하고 싶고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게 된다. 특히,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보게 된다는 것은 말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나온다.

 

무섭기만 하고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타인의 죽음이 익숙해진다. 나이를 먹어가며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보이지 않고 연락할 수 없게 된다. 단순히, 연락을 주고 받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가 생존해 있지 않다는 부존재의 사실은 먹먹한 심정이 든다. 죽음이 점점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타인의 죽음이 익숙해지는 것이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남의 일로 느껴진다. 과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익숙해 질 수 있을까?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진리이고 피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이 점을 잊고 산다.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점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할까? 많은 것들이 변화될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행동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마저도 변화될 것이다. 죽는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의 인간을 만든 배경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죽음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언제 죽을지 알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몇 월 몇 시에 죽을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라도 얼마 정도 후에 죽게 될 지 안다는 사실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자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에게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인생과는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똑같은 생활을 한다고 해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변화를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도 느끼게 된다. 

 

그 변화는 바로 내일을 준비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를 희생하고 참는 이유는 내일은 지금보다 더 좋았으면 하는 이유다. 내일이 없다고 하면 현재를 희생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내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사는 것이다. 굳이 돈을 모아야 할 이유도 없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도 없고 감정을 속일 필요도 없다. 내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일이 있지만 내일을 기약하지 않게 되었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좌절하기도 하고 저주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남아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 이 상황 자체는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 세상을 살아 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자각은 - 이것도 똑같다 - 서서히 상황을 인정하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바로 지금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책 제목인 '일주일이 남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내일, 내달, 내년등으로 우리는 장기간의 계획을 세운다. 몇 십년 후까지는 설계하지 않아도 몇 년 후까지는 감안하면서 일을 한다.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일주일만 남았다고 해도 그런 행동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될까? 여전히, 그럴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정에 충실하고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할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삶을 살라고 독력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내가 왜 회사를 위해 충성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기쁜 경험과 즐거운 경험, 행복한 경험들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내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기에도 바쁜 하루가 될 것인데 말이다. 상사의 지시는 무시할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는 듣지 않을테고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만족스러운 일만 해도 하루가 짧게 될 것이다.

 

'사랑' '용서' '행복' '포용' '열정' '여유' '감사'라는 7가지가 바로 죽기 전에 후회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고 나와 다른사람을 용서하고 슬픈 감정보다는 행복한 감정으로 바라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전부 포용으로 받아주고 하고자 했던 것을 열심히 하고 긴장된 삶을 살기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생활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한다.

 

책에는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각 챕터에 맞는 인물이 등장하여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호스피스로 생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고 지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그들이 후회하는 감정을 알려주는데 하나같이 마지막에 가서는 편안하게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후회되는 행동과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감정의 찌꺼기를 소각시키고 마지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꼭 죽기전에 감정의 찌꺼기를 없애야 할까?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없고 감정의 찌꺼기가 존재해도 약간 불편하면 불편한 정도로 인내하고 살아간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응어리가 되어 병으로 변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아니, 나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매일 매일 감정의 찌꺼기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고 쌓인다. 그중에 자연스럽게 날아가는 것도 있겠지만.

 

울림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원래대로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 알면서도 감정을 솔직하게 밝히지 못한다. 내일, 내일하면서 미루다가 끝내는 전달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해 끝내 늦었다고 생각해서 할 생각조차 안한다. 뭐, 이런 말을 할 자격조차 없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될 수 있는 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살지는 못해도 감정에 솔직해지려 노력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은 너무 많이 희생하지 말고 살면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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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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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라는 제목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떠 오른다. 그만큼 롤리타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롤리타가 어떤 이미지로 세상 사람들에게 소구되고 있고 활용하고 있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된다. 워낙에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이미지들이 나온 세상이 되어버려 예전만큼 롤리타라는 이미지는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아도 여전히 롤리타는 우리들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롤리타 신드룸'이라고 한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간의 관계까지 접근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남성들이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의 본능이다. 남자는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씨를 안전하고 튼튼하게 키워줄 어린 여성을 선호한다고 한다. 롤리타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러한 학문적인 연구는 아직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 학문적인 연구가 있다고 해도 그다지 자연스럽고 좋게 보지 않는다.

 

롤리타에 나온 여성은 단순히 젊은 여성을 넘어 어린 여성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따지면 중학생 정도의 아이일 것이다. 60대 남성이 20대의 여성을 만나는 것은 꼬깝게 보고 자연스럽게 보지 않는데 40대가 10대를 만난다고 하면 이건 무조건 천일 공노할 나쁜놈이 되어버린다. 그 이유는 20대는 자신의 의지를 갖고 남성을 접근하거나 남성과의 관계를 결정할 수 있지만 10대의 여성은 아직까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강요와 강압에 의한 폭력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 생활에서는 그런 경우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가공의 상상력으로 보여주는 여러 사진이나 소설이나 영화등을 포함한 곳에서는 10대의 여성이 자발적으로 나이 든 남성과 관계를 맺는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기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나이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일반 연인과 별 차이점이 없는 모습을 그려준다. 이런 영향으로 아직까지 뇌성숙(??)을 이루지 못한 남성들은 현실과 가공의 현실을 착각한다. 더구나, 자신이 얼마든지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어린 아이들에게 표출해서 절대자로써 행동하게 된다.

 

어린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준 최초의 작품이 바로 '롤리타'이다. 책을 읽어보면 현대에 못된 남성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알게된다. 오로지, 단 하나 성적인 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온갖 미디어가 만들었다. 이런, 이미지에 남성들은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손사래를 치고 아니라고 부정해도 젊은 여성이 더 눈에 들어간다는 것이 솔직한 감정이다. 거기에 어린 여성을 훔쳐보는 시선은 남성의 본능이다. 이성으로 억누르고 도덕적인 감정으로 외면할 뿐.

 

꼭, 모든 남성이 그럴 것이라는 판단도 잘못되어 있다. 그저, 귀엽게 볼 뿐이다. '롤리타'의 남성은 단순히 어린 여성을 좋아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이상한 감정을 지닌 삐뚫어진 남성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 롤리타라는 어린 여성을 좋아한 것만이 아니라 소설에서 그가 만난 모든 여성들은 롤리타를 포함하여 평범하고 보통의 여자들은 단 한명도 없다.

 

주 메인이 롤리타이고 2명의 여자들이 추가로 더 나와 험버트와 함께 살때 어떤 여성도 익히 알려진 여성의 이미지는 없다. 험버트가 자신의 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이용하여 결혼하는 여성이 있고 함께 살면서 총이 눈 앞에 있는데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장난하는 여성이 있다. 근본적으로 험버트라는 남성이 제대로 된 정신을 갖고 있는 인물을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롤리타'라는 제목은 책을 읽기전에 여러 상상을 하게 만들어 주고 책의 내용이 자극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만들어준다. 책이 나왔을 당시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 단순히 어린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엄청 되었겠지만 - 지금 클릭 한 번이면 온갖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 이 시대에는 책에서 어떠한 말초적인 묘사도 느끼지 못했다. 약간의 은유와 아주 작은 묘사가 나오지만 그 정도는 '롤리타'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세계적인 문학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통속소설이 아닌 문학작품으로 취급받는(??) 분명한 점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원래부터 어린 여성에 대한 약간의 판타지를 갖고 있던 험버트는 롤리타를 보자마자 빠지게 된다. 그에게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협박한 롤리타의 엄마와 결혼을 한다. 조심하려하는데 교통사고라는 천운이 따른다. 롤리타와 단 둘이 이 세상에 남겨진다. 그것도 부녀지간이라는 묘한 관계로. 어디에 가더라도 아무런 꺼릴것이 없게 되었다. 롤리타는 결코 수동적으로 아빠라 불리는 남성에게 끌려다니거나 강압과 강요에 의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주체적으로 자신이 오히려 리드를 한다. 애달프게 만든다. 두 사람의 관계와 나이차를 제외하면 남녀간의 연애와 비슷하다.

 

험버트라는 남성의 시선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롤리타에 대한 묘사는 너무 자세하고 애절하다. 이토록, 자세하게 이성에 대한 묘사를 하는 연애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사랑이 담긴 세세하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묘사에 감탄을 하게 된다. 롤리타에 대한 외부의 모습을 숨소리마저 놓치지 않고 묘사하거나 그의 행동이나 모습을 보면서 사랑스러워 미치는 묘사는 얼마나 절절하게 롤리타를 사랑하고 있는지 진심이 분명히 느껴진다. 롤리타가 험버트의 의부딸이자 이제 겨우 한국나이로 만 10세가 넘었다는 점을 잊고 읽는다면 이토록 이성에 대한 사랑넘치는 묘사는 일찍히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롤리타도 결코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다. 왜 아니겠는가마는. 분명히 자신과 30살 정도의 차이가 나는 남성이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 사랑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애써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잘라 이용하고 놀리고 갖고 논다는 느낌마저 든다. 흔히 생각하는 어른 남성이 아이 여자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롤리타가 험버트를 조정하고 감정을 주물럭 주물럭 만지면서 자신에게 더욱 미치도록 만든다고 본다. 그런 이유로 비록, 험버트가 속으로 부르는 애칭이지만 '님펫'이라고 한다.

 

'님펫'은 롤리타를 부르는 말로써 작은 요정을 말하기도 하지만 책에서는 작은 악마라는 뜻으로 쓰인다. 롤리타가 진정으로 험버트에게는 악마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상관이 없을 세상 유일의 사랑이자 질투의 대상이고 세상이다. 끊임없이 롤리타를 혼자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롤리타에게 험버트는 그저 스쳐가는 남자였을 것이다. 아빠로써의 의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쩌면 남성을 알게 해 준 인물로써의 의미가 더 클지도 모른다. 

 

1부는 롤리타와 험버트가 역경(??)을 딛고 사랑을 이뤘다면 - 전적으로 험버트의 관점에서 - 2부는 파국을 맞이한다. 모든 관점은 롤리타를 바라보는 험버트의 관점이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가지려고 했고 갖지 못했지만 그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를 불행하게 만든 인간에게는 철저하게 복수를 하는데, 평생 지켜보며 복수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분명히 스스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것이라 알고 있지만 자신의 사랑을 멈추지 못하고 더욱 더욱 빠져든다. 금지된 사랑의 달콤함이라는 늪에 빠져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점점 빠져가는 자신을 끝까지 인정하고 나올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분명히, 롤리타는 문제적 작품이다. 롤리타의 나이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인 관념이다. 나이를 제외한다면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애절하게 사랑하는 이야기다. 문학작품이라는 표피를 쓰게 된 것은 단순히 통속적인 이야기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묘사와 내면의 변화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심경을 공감할 수 있게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근거로 아동 성적 학대와 결부시켜 합리화하는 놈들은 나오지 말았으면 한다. 험버트가 분명히 이상한 놈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남성이라는 동물의 속성과 진화론적인 본능은 인정하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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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피터 - 인생을 바꾸는 목적의 힘
호아킴 데 포사다.데이비드 S. 림 지음, 최승언 옮김 / 마시멜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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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도 모잘라 평생 먹고 살아도 될 정도의 초베스트셀러를 저술한 호아킴 데 포사다는 이 후에도 '바보 빅터'까지 그가 저술한 책들은 전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지은 모든 책이 전부 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갈수록 각박한 삶에서 무엇인가 현실을 잊고 미래를 볼 수 있는 희망을 꿈꾸기 원한다. 지금의 나는 모잘라고 부족하고 내세울 것도 없지만 미래의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고 하는 일에서 인정을 받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이 현재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비루한 인생을 버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서는 현대판 우화들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이솝우화'나 '그림형제동화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면 이제는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가벼우면서 명확하게 한 가지의 주제를 쉽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동화와 같은 이야기들이 인기를 끈다.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는 어렵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쉽게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고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면 성공이다.

 

이 분야도 나름대로 유명한 저자들이 많이 있다. 소설로 읽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자기계발서적으로 읽기에는 부담없는 책들이 바로 그런 종류이다. 편하게 한 장씩 넘기면서 서서히 저자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구성하는 책이라 언제든지 책을 선택해서 읽을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이 바로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전달하는 내용의 호소력이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스토리 작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좋은 기획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좋다고 해도 이를 풀어내는 것은 다른 분야이다. 개연성과 스토리의 자연스러움은 동기 부여 동화책들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스토리가 엉성하고 조악하다면 감동은 줄어들고 공감이 되지 않아 읽는 재미도 없을 것이다.

 

자기 계발서적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연히 도움을 받아 인생이 변화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호아킴의 마시멜로 이야기나 바보 빅터같은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하고 자신의 현재를 반추하면서 각오를 다지고 인생의 계획을 다시 세우고 미래를 위해 노력하려는 결심하는 것을 보면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써의 우월감을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어 보인다.

 

가장 좋은 문사철을 통해 자신을 가꾸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난쟁이 피터'와 같이 쉽게 읽으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책의 가치마저 폄하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잘난 사람은 잘난 책을 읽어 스스로를 가꿀 수 있겠지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은 책도 많이 읽지 않을 뿐더러, 읽는 것도 어려운데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능력도 인정해야 하고 그런 책을 통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의 존재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키가 160도 되지 않는 피터에게는 어릴 때부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없고 자라면서 불행한 일들만 가득하지만 그를 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에 대한 저주와 자포자기의 삶에서 벗어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희망적인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책은 서술한다. 책에서 여러가지로 어렵고 학교 공부도 소홀히 했지만 나중에 도서관에서 좋은 선생을 만나 뜻하지 않게 여러 책을 읽은 것이 인생에 있어 다시 출발하는데 바탕이 되어준다.

 

내가 책을 읽다보니 가재는 게편이라고 어떤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꼭 책을 읽었던 내용이 나오는 것을 늘 눈여겨 보게 된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으니 당연히 책을 어느정도 가까이 한 삶이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하게 되지만 어김없이 책은 평소에 가까이 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나 나름대로 발견하고는 한다. '난쟁이 피터'처럼 실화가 아닌 이야기에서도 말이다. 더구나, 여러 책을 소개한다.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것이 행복인지에 대해 답을 찾아가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에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고 읽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을 해 준다.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결코 틀린 이야기나 설정은 아니라고 보기에 책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읽다보면 저절로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최소한 생각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신기하게도 바로 직전에 읽은 책에도 칭기스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에서도 똑같이 그 내용이 나와 직접 그 내용을 확인하니 맞았다. 이런 경우는 또 신기해서 따로 필사를 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 먹은대로 똑같이 되지는 않아도 목적을 갖고 살다보면 최소한 비슷하게는 살아가게 된다. 그 점이 지나고 보면 신기하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도록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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