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와 레몽의 집 - 알자스 작은 마을에서 맛본 조금 더 특별한 프랑스
신이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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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하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은 파리이다. 프랑스에 대해 소개하는 거의 대부분의 장소들은 파리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다. 자연스럽게 프랑스와 파리는 같은 개념이고 저절로 관련되어 있는 이미지들이 함께 떠 오른다. 우리나라도 대한민국은 서울이 떠 오르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다 서울은 아니듯 파리도 프랑스의 모든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살고 있지 않은 우리로써는 파리만 아는 것으로도 부족함이 많다.

 

결국에는 프랑스에 대해 파리가 아닌 곳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방법뿐이 없는데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알자스'이다. 7년 전에 출간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출시했다. 솔직히,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 다 읽고 마지막에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아무리 프랑스에서 지방이라 하더라도 너무 문명의 이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책 제목인 '루시'와 '레몽'은 작가의 시부모님들이다. 작가는 한국인이지만 프랑스 사람과 결혼 - 했는지 여부는 나오지 않지만 책을 읽을 때면 분명하다 - 했는데 그 분들이 사는 곳이 바로 알자스이다. 아마도,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정도 되는 것이 아닐까 유추된다. 바로 옆에는 독일이 있는데 옆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웃 친구라고 할 정도로 가까워서 프랑스 방송보다 독일 방송이 더 잘 잡히고 많이 나올 정도로 가깝다.

 

저자가 소설을 쓴 이력이 있어 그런지 수필임에도 글은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이 디테일한 묘사가 가득하다. 단순히 수필이라고 하기에는 글빨이 과하다 싶을 정도이다. 그만큼 알자스라는 곳의 이야기가 잘 나와있다. 특이하게도 책은 겨울부터 시작한다. 봄부터 시작해야 어딘지 자연스러운 데 저자의 입장에서는 겨울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니 그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였을 것이다.

 

알자스의 겨울은 한 여름에 읽는 부분이라 오히려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음식에 대한 부분만큼은 확실하고 자세하게 묘사가 된다. 무엇보다 겨울을 지나 봄과 여름 후 마지막 가을까지 계속해서 다양한 음식이 소개되고 만드는 방법과 얼마나 맛있게 식구들이 함께 모여 먹는 묘사는 상당하다. 그토록, 많은 음식종류가 있는지도 대단하게 보였고 우리나라 못지 않게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파티처럼 식사를 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루시와 레몽이 누군지 몰라 별 생각없이 읽었는데 읽으면서 점점 루시와 레몽은 시부모님이라는 것을 깨닫자 나도 모르게 루시어머니와 레몽 아버님이라는 표현없이 항상 루시와 레몽이라 호칭으로 설명을 하니 한국적인 정서로는 다소 어색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펴 낸 책이니 말이다. 그만큼 친하게 지내고 허물없이 지낸다는 표현도 되지만 늘 며느리보다는 아들 사랑이라는 언급이 있는 것을 보면 꼭 고부간의 문제는 전세계 공통인듯 하다. 책에서는 고부간의 문제까지는 아니고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긴 해도.

 

열심히 읽다보니 저자는 아예 알자스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읽어보니 파리에 살고 있던 듯 한데 책을 쓸 정도로 알자스에 자주 갔다는 뜻이 되고 그만큼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는 뜻이 되어 최소 이주일에 한 번은 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책이다 보니 2~3년에 걸쳐 간 것을 계절별로 묶어 그렇게 읽힐 수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어 보였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지내는지 우리들은 궁금해 한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서로 공유하는 점이 있지만 외국 사람들인 경우에는 큰 틀에서는 어느 사람이나 사는 것은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각자 자신의 문화와 환경과 언어등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먹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궁금한데 이 책은 그런 점에 대해서 해소를 해 준다. 나와는 다른 프랑스에 그것도 파리라는 도시도 아닌 알자스라는 시골에서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지를 알려준다.

 

괜히 우리의 시골은 촌 스럽고 외국의 시골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낸다는 착각을 하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확실히 우리네와는 다른 그들의 삶과 인생이 나오는 재미를 읽게 된다. 한편으로는 그들이나 우리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프랑스 사람이라고하면 합리적으로 남녀평등에 있어 우리보다 앞서있다고 생각되지만 루시와 레몽이 하는 이야기나 행동을 보고 있자만 우리네 어르신들과 다를 바가 없다. 주로 여자가 집 안 일을 남자가 바깐 일을 하며 식당이나 음식등에 대해서도 우리가 사는 것과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책을 보면 사진이 가득한데 음식 사진과 풍경사진으로 나눌 수 있다. 풍경은 우리나라가 아니기에 이국적인 전원의 느낌이 나고 음식은 평소에 우리가 먹지 못하는 것이라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에게도 음식이 될 수도 못 먹는 음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내용도 책에는 언급된다. 각자 고유의 문화에 따라 음식이 되고 흉물이 되는 차이가 어찌보면 참 재미있지만 얼토당토않게도 느껴진다.

 

재미있지만 약간은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서 매번 새롭게 적응하며 읽어야 하는 어려움은 조금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 책이 7년 만에 다시 재출간되었다는 글과 함께 책 제목중의 한 사람인 루시가 7년이라는 기간동안 세상을 떠났고 저자는 지금 한국에서 생활하고 레몽은 평생을 루시가 주는 밥과 디저트만 먹다가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에필로그에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담없이 가볍게 '루시와 레몽의 집'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하고 함께 모여 음식먹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 함께 동참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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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at Spine 알고 싶은 척추의 모든 것
올댓스토리 지음 / 이야기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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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부분 책은 저자 한 명이나 여러 명이 공동 저자로 저술되어 출판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책은 여러 명이 공동으로 저술한 것은 맞는데 올댓스토리라는 창작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다.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책이라는 매체로 자신의 주장만 잘 전달하고 알찬 내용을 전달하면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책은 건강분야의 책인데 이렇게 되면 헬스종류의 몸을 가꾸는 것이나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전문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나올 텐데 이 책은 가볍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척추에 대해 알려주는 책인데 재미있게도 척추는 모든 인간에게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근본인데 어느 누구도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도, 디스크라는 표현으로 늘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축구를 할 때면 몇 몇 사람이 허리가 안 좋다며 조심하는 경우를 본다. 이런 경우에 수술을 한다고 해도 완치라는 개념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고 병원에서도 어지간하면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특정 병원은 무조건 수술을 권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어떤 병원에서는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몇 시간동안 있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독일에서 건너온 치료방법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허리가 아프거나 디스크 문제로 고생을 한 기억은 없다. 잠을 잘 못 자서 목이 뻣뻣해진 적인 몇 번 있었는데 며칠 지나면 일상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감사할 일이다. 무조건, 건강은 좋으면 장 땡이다. 건강할 때는 그 가치를 잊고 모르지만 건강을 잃고나서야 후회해도 건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데 척추도 마찬가지이다. 척추라는 것이 한 번 망가지면 그대로 평생 안고 사는 것이다. 축구할 때도 병원에서 이야기를 듣고는 조심해서 공을 차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물론, 병원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재미있게 책을 구성하다보니 딱딱하지 않게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논리적이고 의학적인 용어들보다는 친숙하고 읽기에 부담이 없는 글들로 구성했다. 단지, 의학지식을 알려주는데 치중한 것이 아니라 에세이도 있고 소설도 있고 정보전달하는 글도 있다. 이런 글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척추라는 것에 대한 정보를 얻게 척추가 무척이나 중요하다라는 지식도 함께 얻게 된다.

카이로프랙틱이라는 민간요법을 소개하는데 미국에서는 의료로 포함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아직 포함이 되지 않았다. 친구 녀석이 대학을 들어간 후에 미국으로 유학인지 이민을 간 후에 배운 것이 바로 카이로프랙티이다. 사실, 그거인지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확한 용어를 알게 되었다. 친구 형이 먼저 배우고 나중에 배우게 된 것인데 그 형은 한국에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혼자 하면 불법이라 의사를 끼고 강남에서 끼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의사와 협의가 잘 안 된 듯 했다.

 

그 형도 나름 제대로 된 교육을 다 받았는데 종속되어 치료를 해야 하니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에는 몇 년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친구 녀석은 한국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고 미국에서 카이로프랙틱을 하는데 2명의 고용해서 자신이 원장으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정도면 성공한 것이 아닐까한다. 그렇게 척추책을 읽다 뜻하지 않게 옛 기억과 추억이 떠오르게 되었다. 만난지도 10년도 훨씬 넘었다. 한국에 온 적이 10년도 넘었으니.

 

코골이도 잘못된 척추의 영향이고 위장도 잘못된 척추의 영향으로 안 좋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우리 인체와 관련되어 있는 척추다. 척추에 다양한 인체의 기능들이 연결되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척추가 휘어지거나 조금이라도 압력을 받는 것과 같은 일로 인해 우리의 인체는 어떻게 하든 그 영향으로 몸이 안 좋은게 표출된다. 척추는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다보니 다른 곳과 달리 인간에게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주에 가면 키가 크는 이유나 코르셋으로 죽은 사람도 있지만 - 과도한 압박으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작용 -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게 만드는 역할도 했는데 그만큼 척추가 우리 인간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해준다. 건강에 대한 책들은 대체적으로 다소 딱딱하고 재미없다. 그러다보니 될 수 있는 한 재미있게 만드는 책들이 정보와 지식과 재미를 함께 추구하며 더 인기를 끈다.

 

잘 알지 못하는 생소한 분야인 건강중에서도 척추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척추에 대해 알게 된 점은 역시나 책을 읽는 효과인 듯 하다. 책을 읽어 몰랐던 지식을 얻고 이를 생활에서 적용하면 가장 최상일텐데.. 솔직히, 얼마나 생활에서 적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책을 통해 척추에 대한 것을 꽤 많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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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별한 재수강 - 자네, 참삶을 살고 있나?
곽수일.신영욱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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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출판된 책 중에 '하워드의 선물'이 있었다. 노교수와 제자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죽음까지 갔다 온 세계적인 교수와의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상당한 인기를 밈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경험이 쌓였다는 것이고 지식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삶의 지혜를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책은 두 명이 서로 특정 주제에 대해 함께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 인물이 자신에게 기억에 남았던 교수를 찾아가서 현재 자신이 힘들어 하는 고민과 삶에 있어 선택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교수에게 물어보고 그 답을 듣는 내용이다. 마침, 교수가 나무를 기르고 있어 함께 농장에 가서 나무를 가꾸기도 하고 모종을 심기도 하면서 나무를 보며 관련 주제를 나무와 연결시켜 주는 비유는 색다르고 참신했다.

 

솔직히,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하는 사람이 꼭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유명한 사람이여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원하는 답을 알려주거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깨닫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된다. 상대방이 어떤 지위와 학식이 있느냐는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다만, 단순히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으면서 쌓은 경험만으로는 사람들이 그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만큼 무엇인가 살아온 세월이 남과는 달라야 된다.

 

책에 나온 노 교수는 유명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관련분야가 아닌 나에게는 완전히 처음 듣는 이름이고 사람이다. 그렇다해도 그가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울림이 있고 삶의 지혜를 알려주느냐가 이 책을 읽는 목적이니 문제 될 것은 없다. 다양한 질문이 오고 간다.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정답이나 즉답이나 직설적인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하는 이야기는 바로 본질에 대한 언급이다.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갖가지 현상에 시선이 집중되어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우리는 너무 많다. 정작,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만 쫓아간다. 그로 인해 성공했다는 착각이 든다. 게다가 타인들까지 나에게 칭찬을 하니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은 더욱 강해진다. 점점 어느 순간부터 무엇인가 이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무시하고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그게 다라고 믿으며 만족하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속에는 만족스럽지 않는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생이 그러하다. 과연, 나는 올바로 내 갈 길을 가고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과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 길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해 무시하고 살아간다. 

 

계속 공허한 마음은 나를 짓누르지만 사는게 다 그런 것라며 애써 자위하며 살아간다. '어느 특별한 재수강'은 대학교때에 지식을 얻기 위해 들었던 수업을 이제는 사회에 나가기 위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구하는 수업이 되었다. 질문을 하는 당사자도 결코 녹록치 않은 인생을 살았고 사회에서도 그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의 위치에 속하지만 부족함을 깨닫고 삶의 지혜를 억지로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경청한다.

 

일, 성공, 리더, 선택, 삶, 사람, 사랑, 부부, 자녀, 나이, 헤어짐, 인생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형식이다. 억지로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생긴 고민을 노교수에게 찾아간 날 이야기를 하는 형식인데 1년이라는 기간동안 하나씩 하났기 풀어낸다.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부 다 본질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노교수는 한다. 

 

내가 사는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흘러가듯이 만나고 헤어진다. 인생에 대해 딱히 거창하고 위대한 목표를 세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자연스럽게 큰 목표를 세우고 이를 얻기위해 노력하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사는 삶이 펼쳐진다. 그나마, 이런 삶은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이라도 있지만 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삶의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는 책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책이 모든 것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 있더라도 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책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떤 시선과 마음으로 읽느냐는 중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혹시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뻥 뚫릴지도 모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뻔하다고 하면 뻔한 내용이 책에 나와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본질이 아닌가한다. 성공을 해도 불행할 수 있고 사람을 만나도 불행할 수 있고 사람과 헤어져도 행복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서 본질을 만족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다. 거기에 만족한다면 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책에는 인생의 지식과 지혜가 담겨있다. 물론, 꼭 이 책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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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니컬러스 웝숏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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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잘 읽고 어떤 식으로 리뷰를 써야 할 지 난감할 때가 있다. 책 내용이 나쁘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이 그럴 때면 과연 이 책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무엇인가에 대한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된다. 아마도, 아직 내가 수준이 미진하다보니 그에 따라 리뷰를 쓴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부담으로 작용해서 그런 덧 하다. 더구나, 이 책은 반납을 해야 하는 이유로 반납 전 날에 무려 350페이지나 집중해서 읽었다. 하루 종일 읽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읽었다.


반납은 하루 남았고 500페이지 중에 전 날에 100페이지를 읽어 포기하고 반납을 고려했지만 내 독서 역사에 그런 일은 극히 드문데다가 끝까지 읽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결국에는 읽었다. 책은 나처럼 경제에 문외한이 읽는 것보다는 경제관련 학부생(3학년 이상??)이나 대학원생이나 경제 관련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 하다. 무엇보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사전 지식이 있어야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케인스가 누구인지 하이에크가 누군인지도 모르고 둘이 어떤 영향을 세상에 끼쳤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좋겠지만 그 전에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처럼 제대로 기초부터 경제에 대해 공부하고 지식을 쌓지 못한 사람은 조금 버거울 수 있는데 책에서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해 자세한 언급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교체로 두 사람에 대한 비교와 살던 당시의 이야기가 진행되어 혼동스럽기도 하다.


케인스는 정부가 일거리를 창출하고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하이에크는 정부는 국민들이 알아서 하도록 최소한으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이에크는 자신의 주장이 확고해서 절대불변에 가깝지만 케인스는 꼭 그렇지는 않다.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이야기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점은 두 사람의 인생에서도 묻어 나온다. 동성애를 포함해서 몇 십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부인을 둔 케인스와 옹고집스럽게 한 여자를 사랑하고 산 하이에크의 차이만큼이나. 재미있는 것은 하이에크는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진 후 비슷한 느낌의 여성과 결혼 한 후에 사랑하는 여자를 다시 만난 후에는 전처를 버리고 다시 결혼해서 살았다는 것이다. 물론, 전처와 전처의 자식들에게 양육비를 주려 수입때문에 고생했지만.


책은 케인스와 삶과 하이에크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세기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유명인사였던 케인스에게 하이에크가 후발주자로 도전하는 형국이였지만 점차 하이에크가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며 케인스와 대등해진 것까지의 역사를 그리고 있고 현재까지 두 사람의 사상 대결이 정치와 경제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쳐 세상의 변화와 조정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케인스와 관련된 인물들과 하이에크와 관련된 인물들까지 소개하며 두 진영이 서로 박터지게 싸운 경과를 시간순서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소개한다. 거의 대부분 케인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케인스의 사상을 통해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관계한 것을 보면 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라고 해도 국가가 개입해야 할 부문은 개입했으니 말이다. 사회주의적인 요소라고 비판을 받는 다양한 제도를 각 국가가 활용한 것을 보면 케인스의 주장이 훨씬 시대에 맞는 방법이였던 듯 하다.

하이에크보다는 밀턴 프리드먼에 대해 신자유주의 사상의 거두로 알고 있었고 그 원류가 하이에크라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가 남미 국가에서 행했던 실험에 대한 글도 읽으면서 거의 무슨 악의 화두처럼 그려진 글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약간은 편향된 생각을 했던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결코 그런 인물은 아니였다는 판단을 했다. 비록, 신자유주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주장한 인물이지만 케인즈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공감했고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역시나 신자유주의 사상을 자신의 입맛에 해석해서 이용한 놈들이 나쁘다고 본다. 


특히, 현재 경제 문제들이 신자유주의 사상에 따른 경제 정책때문이라고 무조건 치부하는 것도 너무 편향된 일부의 주장과 선전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확실히, 이래서 사람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상과 인물과 세계에 대해 접해야 균형있는 시선을 갖게 되는 듯 하다. 하이에크가 자신의 동지들을 모아 일주일동안 회의를 할 때 밀터프리드먼도 함께 참여했다고 하지만 그 회는 비록 조용히 사라졌어도 그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신자유주의 사상을 세상을 널리 전파한 사람들이다.


대체적으로 하이에크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너무 자신의 주장을 외친 듯 하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한 것은 아니라도 다른 방면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버티고 올곧게 산 듯 하다. 그가 결국 노벨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사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입증을 했다고 할 수 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중에 한가지를 세상에 알려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 뉘앙스가 하이에크보다는 케인스에 좀 더 우호적이고 가깝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건 내 자신이 굳이 따지자면 - 듣보잡이 그런 것이 중요하지도 알아주지도 않을 성향이지만 - 케인스에 가깝다보니 그렇게 읽혔을 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제도와 정책과 경제뱡향을 설정해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심과 탐욕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의 여부이다.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사상은 결코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였다. 


케인스가 주장한 정부의 참여와 개입도 그 당시의 시대상을 볼 때 정부라도 나서서 경제를 살리려 했어야지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 시절이였고 하이에크가 번성하던 시절도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호황을 구가했다. 더 들어가면 그 전 시대에 했던 제도와 정책과 경제상황이 누적되어 다음 정부나 세대가 공을 누리거나 과를 짊어졌을 뿐이라 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사상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고 하나는 배제해야 할 물과 기름과 같은 성질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현대의 모든 국가는 전적으로 하이에크적이지도 않고 케인스적이지도 않다.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고 그때 그때 경제상황에 따라 조금 더 앞에서 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유행한 사상은 있기 마련이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세상을 뒤 덮으면서 아직까지 인류는 가장 적절한 사상과 제도를 만들지 못했고 이를 향해가는 과정중에 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인류를 위한 제도로 정착되고 있는 중이고 이를 보완하고 공교하게 하는 것들중에 경제와 관련되어 - 경제는 정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 두 사상은 충돌했고 서로 보완하면서 교합되는 중이라 본다.


경제를 공부하는 방법중에 경제사에 대한 역사를 읽는 방법이 꽤 좋다. 어떤 식으로 경제사상이 발전했고 인류가 그 사상에 반응했는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책들 거의 대부분이 1900년 대 초반에서 멈춘다. 현대의 사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룬 책은 없다. 아마도! 케인스 하이에크는 그런 면에서 최근 50~60년 동안 지구라는 땅 덩어리위에서 벌어진 경제현상에 대한 두 진영의 치열한 사상적인 논쟁과 이를 국가들이 어떻게 시행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교과서다.


이제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둘 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위대한 사상가처럼 둘의 사상은 인류를 지배했고 휩쓸기도 했고 현재는 다시 인류의 역사에 녹아들어가고 있는 중이라 여겨진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최근 경제에 대해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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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은 원시인 - 진화심리학으로 바라본 인간의 비이성과 원시 논리
행크 데이비스 지음, 김소희 옮김 / 지와사랑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유신론자로써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싫어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익히 알고 있었기에 굳이 더이상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몇 권의 책을 읽고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제는 대략 감이 왔기에 그에 대한 더이상의 논증이나 증명을 알려고 한다는 것이 오히려 시간 낭비에 속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신자로써 무신을 배척하고 무신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신은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은 깨달았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는 표현처럼 믿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무용지물이다. 믿으면 된다는 표현에는 모든 것을 다 지배하고 필요없게 만드는 영적인 측면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증명이 되지 않고 비과학적이는 논리로는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의 영역이다.


하지만, 유신이라고 하여 모든 것을 다 믿지는 않는다. 유신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엄청나게 패악무도한 일들이 버젓이 저질러지는 일들에 대해 기가 차지도 않는 심정을 갖고 있다. 또한,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일을 갖고 종교라는 이름과 영적이라는 표현으로 전부 무마하는 것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다. 초능력을 재미삼아 보기는 하지만 믿지는 않는 것과 같다. 일단, 가면 갈수록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눈에 보여도 제반사항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치부될 수 있어도 사람들이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행하는 것이 논리적인 증명이나 증거를 전부 무시하라고 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선에서 되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안되는 것을 그저 믿으라고 한다고 믿는 것이 과연 믿음일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현대는 과학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 과학이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다. 과학이 종교가 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확하게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과학적이지 못한 행동들이라 할 수 있지만. 과학이 발달한 것은 모든 것을 증명하고 밝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왜 그런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반대상황까지 감안해서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보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논리적으로 왜 그런지에 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증명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과학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라는 논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없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학에 비해 비논리적인 미신과 영적인 것들은 증거가 없어도 받아들이라고 한다. 아니, 믿으라고 한다. 이런 것들은 고대에부터 인류에게 벌어진 행동이다. 인류는 자신이 증명하지 못하는 것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만들어 믿음으로 대체를 한다. 워낙 알고 있는 것이 없다보니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지만 현대처럼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과거와 같은 패턴을 답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상식이라는 것이 풍부하지 못한 시절에는 지구는 평평하고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웠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걸 믿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그걸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지도 않고 상식이라고 표현한다.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말이다. 이토록 과거와 달리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예전과는 달리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비과학적인 일들이라 지칭하는 초자연스러운 일과 초능력, 미신, 영매등등이 전부 말도 안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것들을 믿는다.


책에서는 지구의 역사가 몇 천년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에 반하는 내용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보다는 편리하게 이해하기 쉬운 것을 믿는 편이라 몇 천년이라고 아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보니 그렇게 사람들은 믿는다고 한다. 인간은 여전히 홍적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부분이 세상에 알려지고 과학으로 비밀이 풀렸다고 해도 똑같이 이성보다는 믿음을 택한다고 한다.


특히, 여러 책에서 언급한것처럼 인간이 생존하는데 중요했던 패턴을 짓는 것이 아직도 인간의 본능에 남아 우연이 반복될 때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고 필연이라 생각하고 신의 뜻이라 규정한다. 이를테면, 동전을 50번 던지면 확률상 25번은 앞면, 25번은 뒷면이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40번이 앞 면이 나올 수 있다. 1000번을 던져도 700번이 앞면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확률상 반반이라 훨씬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이지 않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런 확률까지는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않고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우연이라 치부하거나 제대로 된 지식이 없다보니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이를 그때까지 알고 있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밝혀내지 못하다보니 무엇인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과학적이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공감대를 찾아낸 것이다.


문제는 이제 과학이 발달하여 많은 미지의 것들이 밝혀졌고 과거에 믿었던 믿음들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증거를 찾아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믿는다. 또는 믿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무신론자들과 유신론자들은 싸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종교라는 이름과 믿음으로 벌어지고 자행되는 수많은 살인과 맹목적인 복종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를 봐야 한다고 본다.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 타인을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 되는 것은 분명히 잘 못 된 것이고 나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고 그를 핍박하고 처단하는 것은 더더욱 잘 못 된 것이라 본다. 책에서 언급처럼 종교의 신들은 인간의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렇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의 신이란 말인가? 신이라면 완전히 다른 관점도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인류 최대의 히트상품이 신이라는 비아냥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책에는 리처드 도킨스와 칼 세이건이 엄청나게 자주 언급이 된다. 차라리, 그 두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실제로도 좀 더 풍부한 예화를 들어 설명하고 이해하고 읽기 쉬운 것은 칼 세이건이였고 리처드 도킨스는 너무 똑똑해서인지 읽기 쉽지는 않았다. 여하튼,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한다면 좋겠지만 인간이라 그렇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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