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부터는 리뷰중에 몇 몇 책은 기존과는 다른 형식으로 리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 첫 번째로 선정된 책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이다. 워낙 독서와 관련되어 독보적인 존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지는 모르겠다. 일본어라는 한계가 있었을테니.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이 책의 저자인 '다치바나 다카시'를 뛰어넘을 독서가는 없을 듯 하다. 이를테면, 누군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그가 저술한 모든 책과 논문까지 전부 다 읽은 후에 만난다.

 

어떤 분야이든 흥미가 생기면 사람 높이 정도되는 책을 읽는다. 나같은 사람이 그나마 읽는 것으로 그친다면 관련 종사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관련 전문가에게 질문을 하고 의견을 정취하지만 아니다싶으면 반론을 한다. 전문가는 깊게 보는 장점이 있지만 좁게 보는 단점이 있다. 전문가만큼의 해당 분야의 식견은 없어도 넓게 다른 측면까지 고려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의견에 전문가가 제대로 대처를 못하기도 할 정도다.

 

이 정도의 독서가라면 진정으로 책으로 모든 것을 배웠다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책으로 학습하고 스스로 정리할 정도의 지식을 만들어낸다. 관련 분야의 책까지 펴 낼 정도로. 이런 사람이 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이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고 내가 쓴 <책으로 변한 내 인생>에서 언급한 내용과 흡사(감히 비교자체가 황송하지만)해서 깜짝놀라기도 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인 독서, 또 하나는 독서를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략) 목적으로서의 독서란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자 즐거움인 책 읽기인데, 대표적인 예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단으로서의 독서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독서를 통해 책 속에 담겨 있는 지식이라든가 정보 혹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41페이지

 저는 오늘날의 문학 부진 현상의 근본 원인을, 독자가 문학 작품에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현대 문학 속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데서 찾고 싶습니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독자가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는 상황을 전혀 엉뚱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4~45페이지


과거에는 독서가 그 자체로써 목적이었다. 수단으로 활용할 만한 독서에 해당하는 책이 없었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는 세상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낼 좋은 시간이 독서였다. 아무나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책을 살 수 있는 능력과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SNS를 비롯한 스타들의 가쉽거리도 결국에는 그 자체가 목적인 독서와 다를바가 없다. 


과거에도 시간 때우기를 위한 책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에 써져 있던 책중에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고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등을 알 수 있는 몇 몇 작품들이 당시에는 대중 소설이었는데 살아남아 고전이 되었다. 당시에는 읽을꺼리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문학작품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독서였다. 그 중에서도 문학작품이 아니었을까?


시대가 변해서 과거처럼 문학작품이 사람들에게 선택되지 않는다. 문학작품보다는 수단으로 활용할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고 사람들에게 선택된다. 이런 현상을 개탄하는 식자층이 있다. 이들은 혹시 자신의 밥그릇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닐까? 책은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단순히 목적으로 독서는 TV와 영화를 비롯해서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것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점점 사람들은 현실에서 충분히 직접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문학작품보다 더 신기하고 흥미롭고 오감을 충족하는 것들을.



 


 

지금까지 출판은 항상 일과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49페이지

독서론에서 고전을 읽으라고 할 경우(중략) 19세기 전형적인 문학이 주류를 이룹니다. (중략) 19세기 문학은 기껏해야 100여 년 전의 출판물에 불과할 뿐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고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500년이나 1,000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검증을 받고 후세에 남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1페이지

독자들이 문학작품으로부터 멀어지고(중략) 고전이라고 단언할 수 없음이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명된 셈입니다. (중략) 철학 관련 서적에도 적용됩니다. 

-55페이지



어떤 책도 수 십년과 수 백년이 지나도 존재할 것이라 여기며 출간되지 않는다. 당장 베스트셀러로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책이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라지기도 하고 몇 십년이 지나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지만 어떤 책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살아남는다. 거룩한 척 하지만 책도 TV와 똑같이 일과성의 매체다. 영화도 고전이라 하는 영화들은 수 십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언급되고 찾아 본다. TV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책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고전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은 저력과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점은 간과할 수 없고 인류에게 큰 보탬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작품들을 꼭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현재 당장 읽는 모든 책에서는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에서 언급한 모든 사상과 지식이 존재한다. 그것도 쉬운 표현으로 이해하기 편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고전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는 고전이 갖고 있던 매력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고전이라 불린 책들에서 말한 것들은 현대인들에게 사용가치가 사라졌기에 읽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고전에서 말한 가치를 모르는가? 고전은 읽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꼭 고전을 읽어야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아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형식과 방법과  매체를 통해 현대인들은 고전이 출간되었던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필요없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가 사실이다. 이제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와 똑같다. 고전이라고 해도 그 가치가 현대에 와서도 꼭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용도폐기되는 것이다. 특정 몇몇 부류가 아닌 전체 다수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그 저서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 자체가 토론의 대상이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적절한 책만이 결국 진정한 의미의 고전으로서 살아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중략)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거의 지의 총체'라면, 현재 직전까지의 모든 것이 과거의 지인 셈이므로 현재 완료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과거 완료의 고전이 모든 지의 총체를 포괄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과거의 지에 관한 총체는 언제나 최신 보고서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55~56페이지

각 영역에 존재하는 지의 가장 선두에서 현재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은 그 영역과 관련된 전문서들입니다. (중략) 현재 인류의 지와 관련하여 최첨단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59페이지


책을 읽는 이유가 목적과 수단이 있는데 사람들은 수단에 좀 더 집중한다. 문제는 그 수단이 지적인 탐구의 수단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더 많다. 딱히 탓할 노릇은 아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알맞는 독서가 진행되는 것이니 시대상황에 맞는 독서가 이어지는거다. 독서법을 알려주는 사람들마저 이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좀 문제다. 성공을 위한 책읽기를 독려하고 이에 대한 실천방법을 알려준다. 책읽기를 통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성공하고 어떻게 해야 빨리 책을 읽을 수 있고 책과 함께 수단으로써 책을 읽으려면 관련된 책을 읽으면 된다. 독서를 통해 빠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과장되게 표현하면 다 사기다. 책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진짜로 그 수단에 맞는 책을 읽는 것이 정답이다.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읽는 것이 맞다. 정작 독서에 대한 그런 방법을 알려주는 저자 자신이 냉정하게 수단으로써 읽은 책이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목적과 수단을 구별해서 읽었는지 따져보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라고 딱히 다르지 않겠지만. 독서에 대한 책을 출간한 사람으로써. 


무섭도록 인류의 지적 영역은 확대되고 있다. 과거에 알고 있는 것은 어느덧 지나가고 굳이 그 모든 것을 전부 다 읽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최신의 책에 이 모든 토대 위에 이뤄졌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꼭 읽어야만 진화론에 해박하고 정통한 지식을 얻는 것일까? 그 이후 엄청난 지식의 축적으로 변경되기도 했고 잘못된 결과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최신 책을 통해 이런 점을 알게 된다. 꼭 읽지 않아도 그 당시의 사람들보다 훨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고전을 읽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읽고 싶은 사람은 읽으면 된다. 그걸 강압하고 읽지 않으면 덜 떨어진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과거에 갇혀있는 사람일수도 있다.


To be continue...


함께 읽을 책(사진클릭)      

 

내가 전하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사진클릭하면 구매 페이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개월 안에 유창해지는 법 - 외국어, 이번엔 진짜 끝낸다!
베니 루이스 지음, 신예경 옮김 / 알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수능세대는 아닌데 수능시험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 이유가 있어 수능을 준비했다. 수능이 11월이었는데 8월부터 준비를 했다. 당시에 비디오가게 알바를 하며 했다. 암기과목은 교육방송 교재를 구입하여 한 권씩 몇 십페이지를 오전에 쭈우욱 읽었다. 저녁에 집에 가서 국어와 영어공부는 따로 했고 수학은 포기했고. 아마도 200점 만점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129점을 맞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보다 점수가 참 잘 나왔다.


그중에서 깜짝 놀란 것은 영어가 40점 만점에 2~3개만 틀렸다는 것이다. 나도 채점을 하고서는 깜짝 놀랐는데 점수를 받고 사실이라 두번 놀랐다. 영어는 별 거 없었다. 결국에는 지문읽고 문제의 답을 찍거나 어색한 표현(문법문제)를 푸는 것이었는데 재수좋게도 찍는것 마저 정답이었다. 듣기도 거의 찍었지만. 여전히 엄청난 내 점수에 뿌듯하다. 내 인생에 그토록 고득점을 찍은 적은 전무후무하다.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 이후 '영절하'라는 책이 유행했다.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줄임말이었다. 삼성 근무 하던 분이 출간했는데 - 그리고 보니 삼성출신들이 유능하기 하나보다 삼성출신이라고 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 설득력있었고 맞는 말이라 여겼다. 열심히 청취를 했다. 가볍게 얇게 읽을 수 있는 영어소설도 읽었다. 아직까지 AFKN이 TV에서 나오던 시절이라 시청을 했는데 어떤 날은 기가 막히게 다 들렸고 어떤 날은 전혀 들리지 않고 컨디션에 따라 들렸다 안 들렸다는 반복했다.


곰곰히 보니 결국 들리는 것이 많을 때는 아는 단어가 많을 때였다. 영어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단어를 근거로 내용을 유추한 후에 문제를 풀었다. 결론은 영어는 단어만 많이 알면 공부든 회화든 다 가능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갔을 때도 여하튼 단어만 알면 단어만 조합해서 상대방에게 대화하면 상대방이 다 알아듣고 응대를 했다. 이미 영어와 담싸고 지낸지가 너무 오래 되어 이제는 아는 단어도 거의 전멸이지만.


개인적으로 영어와 관련되어서는 외국인과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미드나 영어 영화를 자막없이 보는 게 목표였다. 아울러 영어 원서를 읽는 것. 늘 마음만 있고 실천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내 평생의 프로젝트중에 하나로 계속 남아 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만 하는 작업이라 생각해서 지금은 뒤로 미뤘고 나중에 꼭 영어를 다시 공부해서 미드나 영화를 원어로 듣는 것이 목표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모든 사람은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노력을 하지만 다들 실패하는. 그렇기에 여전히 영어와 관련된 광고가 나오고 사람들은 영어 학원을 다니고 관련 사업은 불황이라고 해도 여전히 유지되고 스타까지 탄생한다. 어떻게 보면 참 웃긴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인생까지 논하며 상대방에게 선생이라고 훈계를 하는 것은 우습게도 보인다.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 정확하게는 아일랜드 계열 - 저자가 3개월이면 외국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스스로 외국어에 문외한이었고 관심도 없었고 절망에 점철된 삶을 살았다. 외국어 시험을 보면 낙오자였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노력을 하더니 외국어를 마스터했다.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대화가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다. 어떤 일이 저자에게 일어난 것일까. 번개에 맞아 뇌가 변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무려 10개 국어를 할 수 있다. 당연히 언어 천재라고 불러야겠지만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노력의 결과일뿐. 더구나 자신은 외국어에 낙오자였으니 더더욱. 막상 책의 내용은 길고 길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영어를 잘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두려움을 갖지 않고 도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꼭 외국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과감히 외국인을 만나 이야기를 한다. 그 전에 최소한 기본적인 단어와 말할 수 있는 문장정도를 외운다.


어차피 상대방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전부 다 알아듣는다. 너무 잘못된 말을 하면 정정도 해주니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무조건 외국인과 만나 이야기를 하도록 노력한다.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집중적으로 습득하도록 노력한다. 하루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전부 투자한다. 생각도 배우는 외국어로 생각한다. 막히면 해당하는 단어를 찾아보며 외국어로 생각한다. 3개월 만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한 단계에 도달한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외국인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굳이 거리로 나가 외국인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찾아 대화를 한다. 그런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끼리 대화를 할 수 있게 주선해주는 사이트도 있고 저자가 만든 사이트를 통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랍어와 중국어까지 그렇게 습득했다고 한다. 외국인들에게 중국어는 어려운가보다. 아무래도 한자때문이 듯 했다. 단어를 외우기 위해서는 연상방법을 써서 외운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듯 하지만 처음에 힘들어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금방 연상으로 자연스럽게 단어가 떠오를 수 있다고 한다.


<3개월 안에 유창해 지는 법>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책은 내용에 비해서는 분량이 좀 많다. 중간에 각 언어를 공부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는데 전혀 관심도 없는 언어는 대략 읽었다. 어차피 그걸 읽는다고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배울 생각도 없는 언어라서. 그래도 머리속으로 습득해야 할 방법을 다시 한 번 입력하는 시간이었다. 틈틈히 하는 것보다는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고로 지금은 집중적으로 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기억만 하고 있어야 겠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영어를 알아야 무궁무진한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한국어로 된 정보는 개미똥구멍만큼이다.(참, 아름다운 표현!@@) 현재 아주 아주 불안정한 정보만 취득하고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큰 불만과 아쉬울 것은 없지만 앞서가는 사람과 남이 알려주는 가공된 정보가 아닌 나만의 정보를 융합하려면 역시나 영어는 배워야만 하는 언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병완의 책 쓰기 혁명 - 독서보다 10배 더 강력한 명품 인생 프로젝트
김병완 지음 / 아템포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호불호가 많은 작가이다. 열광하는 사람도 있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인기의 척도가 안티라 보면 인기가 많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안티도 인기가 있어야 생기는 거다. 처음 나올 때 타이틀이 3년에 만 권이었다.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절대로 무리라고 보는게 내 입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책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서로 책을 읽는 스타일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이유도 다르다보니 그러려니 한다.


그럼에도 1년에 3,000권은 기본적으로 읽는다고 할 수 있는데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믿지만 믿음으로는 가능하다고 본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신기한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해서 3년에 만 권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몇 권을 읽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1년에 3,000권을 읽을 정도면 지금은 무척 바쁘다고 해도 1,000권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도 아무리 바뻐져도 1년에 50권 이상은 기본적으로 읽을 듯 하다. 그렇다면 대략적으로 최소한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보니 가능할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어느정도의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대신 새롭게 등장한 문구가 2년에 50권을 출간했단다. 이 마저도 놀랄 일이다. 책읽기와 책 쓰기를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놀랄 일인데 나처럼 책읽기와 책쓰기를 해 봤고 어디가서 적게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책 출간속도도 제법 빠르다고 하는 나도 감히 명험도 못 꺼낸다.


2년에 50권이면 한 달에 2권씩 펴 냈다는 뜻이고 보름에 한 권씩 책을 출간했다. 이게 가능하냐고 묻는다고 다른 것은 몰라도 책은 출판이 되었을테니 가능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서점에 가면 저자의 책이 상당히 많다. 비록, 분야는 특정분야에 치중되어 있다. 책 읽기와 글(책) 쓰기 분야가 거의 대다수고 그 이외의 분야는 펴내기는 했는데 특별한 반응은 없었던 듯 하다. 저자가 유명해진 것과는 다소 동떨어진 분야라 그럴 수 있겠다.


어느덧 저자의 책을 꽤 읽었다. 대략 4~5권 된다. 이 책까지 포함해서. 개인적으로 놀랍기는 하다. 이토록 많은 책을 짧은 시간에 쏟아낸 점이. 책의 완성도와 내용의 충실도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것이 무리는 분명히 아니다. 책의 내용이 어떠하냐가 핵심인데 그 부분에 있어 저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떳떳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는데 있어 질보다 양이 중요하기에 안 좋은 글과 책이 있어도 상관이 없다. 저자는 쓸 뿐이다.

 

 

책을 읽어보면 여러 책에서 나온 내용이 많이 중복되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 말한다. 상관없다. 책은 창작이 아니라 편집이기에 다른 책에서 좋은 내용이 있으면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편집해서 쓰면 된다. 본인 스스로 자신에게 사람들에게 하는 비판과 비난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책에서는 그동안 자신에게 사람들이 하는 비판과 비난에 대한 자신의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많다.


책의 제목이 '책쓰기 혁명'인데 정작 책쓰기에 대한 언급은 내가 볼 때 책 분량의 5분의 1을 넘지 않는다. 그 보다는 글을 쓴다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책쓰기와 글쓰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교집합이다. 글을 쓰지 않고 책이 나올 수 없다. 글을 써야 책이 나오든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제일 좋은 전제조건은 읽기다. 읽기가 없더라도 인풋이 훌륭하면 된다. 독서는 간접경험이니 직접 경험이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하다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말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지만 글만의 고유한 형식과 성질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의 전제조건 중에 제일 중요한 부분은 읽기라 생각한다. 저자도 읽기로 자신이 변했지만 정작 본격적으로 변한 것은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 것이라 고백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은 여전히 책만 읽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나도 경험한 부분이니 맞는 말이다.


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이 엄청난 책을 펴 내며 인기를 얻으며 그에 따른 비판을 이 책을 통해 왜 그랬는지를 설명하고 자신말고도 우리들이 우러러 보는 선현들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내용으로 설득한다는 느낌. 김병완 작가가 쓴 책 내용은 나쁘지 않다. 워낙 여러 책을 많이 펴 내다보니 여러 책들이 중복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실제로도 그렇다. 자신을 위해 출간을 좀 더 줄였으면 한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다른 책에서 언급된 것들이 많고 이미 여러 글쓰기와 책쓰기에 있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저자처럼 1시간내로 읽을까하다가 평소처럼 정독으로 읽었다. 도저히 1시간내로 읽을 수는 없다. 책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고 쉽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만고불변의 법칙은 없다. 뭐든지 예외는 있고 극단값에 존재하는 인물은 있다. 저자는 본인이 극단값에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나보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은 다행히 나에게도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글의 내용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그저 감사할 일이다.

 

 

 

 

함께 읽을 책(사진클릭)       

 

 

 



 

호불호가 많은 작가이다. 열광하는 사람도 있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인기의 척도가 안티라 보면 인기가 많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안티도 인기가 있어야 생기는 거다. 처음 나올 때 타이틀이 3년에 만 권이었다.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절대로 무리라고 보는게 내 입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책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서로 책을 읽는 스타일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이유도 다르다보니 그러려니 한다.


그럼에도 1년에 3,000권은 기본적으로 읽는다고 할 수 있는데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믿지만 믿음으로는 가능하다고 본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신기한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해서 3년에 만 권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몇 권을 읽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1년에 3,000권을 읽을 정도면 지금은 무척 바쁘다고 해도 1,000권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도 아무리 바뻐져도 1년에 50권 이상은 기본적으로 읽을 듯 하다. 그렇다면 대략적으로 최소한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보니 가능할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어느정도의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대신 새롭게 등장한 문구가 2년에 50권을 출간했단다. 이 마저도 놀랄 일이다. 책읽기와 책 쓰기를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놀랄 일인데 나처럼 책읽기와 책쓰기를 해 봤고 어디가서 적게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책 출간속도도 제법 빠르다고 하는 나도 감히 명험도 못 꺼낸다.


2년에 50권이면 한 달에 2권씩 펴 냈다는 뜻이고 보름에 한 권씩 책을 출간했다. 이게 가능하냐고 묻는다고 다른 것은 몰라도 책은 출판이 되었을테니 가능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서점에 가면 저자의 책이 상당히 많다. 비록, 분야는 특정분야에 치중되어 있다. 책 읽기와 글(책) 쓰기 분야가 거의 대다수고 그 이외의 분야는 펴내기는 했는데 특별한 반응은 없었던 듯 하다. 저자가 유명해진 것과는 다소 동떨어진 분야라 그럴 수 있겠다.


어느덧 저자의 책을 꽤 읽었다. 대략 4~5권 된다. 이 책까지 포함해서. 개인적으로 놀랍기는 하다. 이토록 많은 책을 짧은 시간에 쏟아낸 점이. 책의 완성도와 내용의 충실도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것이 무리는 분명히 아니다. 책의 내용이 어떠하냐가 핵심인데 그 부분에 있어 저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떳떳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는데 있어 질보다 양이 중요하기에 안 좋은 글과 책이 있어도 상관이 없다. 저자는 쓸 뿐이다.

 


 

책을 읽어보면 여러 책에서 나온 내용이 많이 중복되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 말한다. 상관없다. 책은 창작이 아니라 편집이기에 다른 책에서 좋은 내용이 있으면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편집해서 쓰면 된다. 본인 스스로 자신에게 사람들에게 하는 비판과 비난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책에서는 그동안 자신에게 사람들이 하는 비판과 비난에 대한 자신의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많다.


책의 제목이 '책쓰기 혁명'인데 정작 책쓰기에 대한 언급은 내가 볼 때 책 분량의 5분의 1을 넘지 않는다. 그 보다는 글을 쓴다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책쓰기와 글쓰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교집합이다. 글을 쓰지 않고 책이 나올 수 없다. 글을 써야 책이 나오든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제일 좋은 전제조건은 읽기다. 읽기가 없더라도 인풋이 훌륭하면 된다. 독서는 간접경험이니 직접 경험이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하다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말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지만 글만의 고유한 형식과 성질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의 전제조건 중에 제일 중요한 부분은 읽기라 생각한다. 저자도 읽기로 자신이 변했지만 정작 본격적으로 변한 것은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 것이라 고백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은 여전히 책만 읽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나도 경험한 부분이니 맞는 말이다.


꽤 많은 부분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이 엄청난 책을 펴 내며 인기를 얻으며 그에 따른 비판을 이 책을 통해 왜 그랬는지를 설명하고 자신말고도 우리들이 우러러 보는 선현들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내용으로 설득한다는 느낌. 김병완 작가가 쓴 책 내용은 나쁘지 않다. 워낙 여러 책을 많이 펴 내다보니 여러 책들이 중복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실제로도 그렇다. 자신을 위해 출간을 좀 더 줄였으면 한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다른 책에서 언급된 것들이 많고 이미 여러 글쓰기와 책쓰기에 있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저자처럼 1시간내로 읽을까하다가 평소처럼 정독으로 읽었다. 도저히 1시간내로 읽을 수는 없다. 책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고 쉽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만고불변의 법칙은 없다. 뭐든지 예외는 있고 극단값에 존재하는 인물은 있다. 저자는 본인이 극단값에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나보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은 다행히 나에게도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글의 내용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그저 감사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브로큰 2 - 모든 기적은 삶에 있다
로라 힐렌브랜드 지음, 신승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을 다 읽고 든 소감은 주인공의 엄청난 경험보다는 도대체 이 내용을 책으로 엮은 작가에게 더 관심이 갔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주인공인 루이스만 인터뷰해서 내용을 쓴 것이 아니라 루이스가 겪었던 경험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인물과 인터뷰를 했고 관련된 기록을 전부 조사해서 시대순으로 편집하고 그 와중에 분명히 빈 공간이 존재했을텐데 그 부분을 전부 상상력을 동원하여 메꾸는 작업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될 성질이 아니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집필한 작가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작 책의 주인공인 루이스의 삶의 그만큼 다이나믹하기에 루이스의 삶을 책으로 펴 낼 생각을 했겠지만 그렇다해도 나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작업이라 보였다. 역설적으로 얼마나 내가 편하게 글쓰기 작업을 하고 책을 펴 냈는지 반성을 할 정도이다. 아마도 자료를 수집하고 글로 쓰는데에 몇 년은 전부 투자하고도 모자랄 정도였을 것이다.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몸이 안 좋아 인터뷰를 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국가 자료를 보러 가야하는데도 움직일 수 없어 다른 사람을 보내 관련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니 작가의 그 집필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게 이와 같은 거대한 서사시가 나올 수 있었다. 단순히 한 개인의 일대기중에 특정시기를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경험하고 포로가 되어 일본 군인에게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르포형식으로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당시에 얼마나 일본군인과 민간인과 일본이 얼마나 잔인했고 사람다운 삶을 살지 않았고 포로에게 강요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단순히 포로로 잡힌 루이스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얼마나 잔혹하게 포로들을 다루고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했는지 알려준다. 그들이 지금은 부정하고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는 버젓이 살아 있다. 그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관련된 자료들도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겨우 겨우 태평양에서 살아남은 루이스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살아 일본 감옥으로 이송된다. 그곳에서는 포로로써 인간다운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일본 군인들이 폭행하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안겨주고 동물처럼 취급하는 것은 전쟁이라는 속성때문이라고 해도 음식마저 주지 않는 것은 일본군대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음식이 없어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선사한 구호품마저도 자신들이 쓰고 포로들에게는 주지 않는다.


루이스가 있었던 감옥에서는 새라는 명칭의 일본군인이 등장한다. 거의 시소오패스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끊임없이 루이스를 비롯한 포로들을 괴롭힌다. 꼬투리를 잡아 폭행을 한다.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일본 장교들마저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게 교도소가 편한게 운영되고 아무런 탈없이 지낼 수 있기에 장교들은 새라는 인물에게 거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긴다. 새는 그럴 수록 더더욱 교도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루이스는 특히나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올림픽에 출전했던 인물이니 더더욱 눈에 띄는 존재였다. 일본 군인이 시합을 내기해서 일부러 지게 만들기도 했다. 애인을 데리고 와서 하는 강요다. 미국인에 올림픽 선수였으니 루이스를 굴복시킬수록 더더욱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데 루이스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꼿꼿이 버틴다. 그럴수록 더욱더 폭력은 심해지고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도저히 그 끝을 모르는 상황이 반복된다.


또 다시 겨울이 오면 모든 포로들은 추위와 기근에 죽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때 다행히도 전쟁이 종료된다. 반신반의하던 포로들은 비행기와 일본군인들의 태도로 드디어 자유를 만끽한다. 대부분의 일본 군인들이 잡히지만 새는 도망을 간다. 원래대로라면 일본 전범들은 전부 처형되거나 감옥에 있어야 하지만 미국은 전략적인 목적으로 공산당을 막아야한다는 당위성때문에 일본 군인들을 사면한다. 그들은 사회의 곳곳에서 지도자다 되고 총리도 된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가 지금처럼 얽히고 섥힌 근본적인 이유는 따지고 보면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승리였다. 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일본은 그렇게 유야무야하게 전쟁 때와 차이가 없는 지도자들이 다시 권력을 잡는다. 불행의 씨앗은 그렇게 싹이 텄고 지금도 자라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온 루이스는 엄청난 환영을 받지만 외상성스트레스는 그를 놓치 않는다. 다른 포로들처럼 루이스도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


하루도 술을 먹지 않으면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눈만 감으면 새가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일본으로 가서 그를 죽일 계획까지 세운다. 아내에 의해 억지로 참가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에 감동해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과거를 절단한다. 그 후로 평화롭게 과거를 잊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 새마저도 용서한다. 새는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까지 한다. 잡히지 않고 7년을 넘게 도망다니다가 미국의 전략적인 사면정책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다. 노인이 된 그는 자신의 행동은 어쩔 수 없었고 전쟁이 만든 비극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인터뷰까지 한다. 루이스와의 만남은 끝내 거절한다.


사망처리 되었던 루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식구들중에 가장 오래 살고 있다. 책에서 사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직도 생존한 듯 하다. 그는 불후 청소년들을 돕고 여전히 늙지 않은 젊은 생활을 하며 지낸다. 포로 수용소에 가서 그 당시의 일본 군인들을 만나 직접 용서하기도 한다. 과거와 헤어진 그는 큰 욕심없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돈을 벌며 여러 사람들을 도우며 남은 여생을 산다.


한 개인의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또한 책을 읽으며 단순히 루이스라는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점때문에 일본의 잔혹성에 대해 자료를 토대로 공개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이 나 보인다. 미국에서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번에 영화도 개봉한다고 하니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일본의 반성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브로큰 1 - 모든 기적은 삶에 있다
로라 힐렌브랜드 지음, 신승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재미있다. 재미없는 소설을 읽는 경우는 없다. 무엇인가 가르치거나 지식을 알려주는 소설도 있겠지만 이런 소설마저 읽는 독자가 알려주는 지식이 재미있어 읽는다. 소설이 재미없다면 도대체 무엇때문에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우리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일을 소설을 통해 보게 된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소설이 있다. 소설 보다 더 참혹한 현실도 있다. 팩션이라 하여 현실에 적당한 상상력을 보태서 내용이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도 꽤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내용이 집중하며 읽는 소설도 있고 아주 작은 묘사를 읽으면서 감탄하는 소설도 있다. 대부분 책을 내용 위주로 읽는 편이라 묘사보다는 얼마나 내용이 흥미롭고 재미있느냐가 더 나에게는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환호는 소설이 별로인 경우도 있다. 그 책은 내용보다는 탁월한 묘사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난 별로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내용으로 엮여있느냐가 핵심이다.


세밀한 묘사업이 투박하고 사실을 나열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사건전개를 펼치기만 해도 내용이 흥미로우면 손에 땀을 쥐며 읽게 되어 있다. <언브로큰>은 소설이다. 정확하게 말하지면 팩션이라 해도 무방하다. 아니, 자서전이라고 해도 된다. 일대기는 아니라도 특정 시기동안 한 개인이 겪은 경험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왜? 그 경험이 흥미롭고 재미있고 일반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나열로도 읽힌다. 탁월한 심리묘사나 세부 묘사는 없다. 그럼에도 책의 주인공인 루이스의 이야기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경험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소설이라 할 수 없어 저자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책으로 펴 낸 것이라 봤는데 주인공은 따로 있고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보태고 책의 주인공과 인터뷰를 통해 빈 이야기들에 여백을 메웠다.


어릴 때 부터 워낙 말썽쟁이인 루이스는 개구진 것으로는 동네에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어느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경찰도 알 정도로 사고뭉치였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큰 인물이 되거나 의미 있는 인물이 될 싹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나 거짓말을 하지 않나 가출을 하지 않나 말이다. 우리는 이런 친구가 잘 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쉽게 예단하면 안 된다. 아무리 어릴 때 잘 나가도 의미없고 못 나가도 의미없다. 그 친구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인생이 변하게된다. 워낙 형을 잘 따르던 루이스는 형의 인도대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다. 숨겨진 재능이 발견되었던 것이 아니라 노력이 더해졌다. 남들이 쉴 때도 연습을 했고 더이상 뛰지 못하게 되더라도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렇게 말썽쟁이에 개구쟁이였던 루이스는 달리기 시합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동네를 넘어 지역에서 유명해 진다. 신문에서도 루이스의 이름이 나올 정도로 서서히 전국구 스타가 된다. 그보다 나이 많은 형들보다 먼저 들어온다. 미국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낸 루이스는 자신의 주 종목에서는 올림픽 참가가 좌절되지만 그보다 장거리에서 기적적인 참가를 따낸다.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해서 히틀러도 만나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입상에는 실패하고 다음 올림픽인 동경 올림픽을 꿈꾼다.


하지만, 세계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말아 올림픽의 꿈은 사라지고 공군이 되어 전투기의 전투병이 된다. 그의 슈퍼맨호는 B-24로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받지만 임무를 잘 수행하며 훌륭히 전투에 참여하여 훈장도 받는다. 당시 전투기들은 전투에서 잃어버리거나 사망하는 경우보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때 전투기가 문제가 생겨 전투기가 고장나거나 군인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루이스가 탄 비행기도 마찬가지로 전투 수행에서는 무수한 총 구멍이 비행기에 났어도 무사했는데 전투 임무 수행이 아닌 비행 후 추락하고 만다. 그들이 추락한 지역은 미군이 아닌 일본군이 다니는 길목이었다. 결국 미군은 루이스를 실종으로 처리한다. 구명정에 타 수십일을 연명한다. 늘 상어들은 자신들을 쫒아다니며 호시탐탐 먹으려고 노력한다. 일본 전투기는 그들을 발견하고는 총으로 쏴 죽이려 한다.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동료 한 명이 죽는다. 


루이스와 조종사는 수십일동안 물은 비로 해결하고 가끔 만나는 알바트로스와 물고리로 연명한다. 그들은 끝내 일본 군이 점령하는 섬에 도착할 때 몸무게는 가장 좋을 때의 반토막으로 줄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들을 돕지만 그들은 포로로 다른 곳으로 이송된다. 그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일본군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의 운명을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1권이 끝난다.


사건과 사건의 기록만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흡사 다큐를 보는 것과 같이 심리묘사보다는 연속적으로 루이즈가 했던 일련의 삶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워낙 다이나믹한 삶을 살아온 루이스의 삶은 그 자체로 역사로 보인다. 엄청나게 세세하게 루이스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대체 저 자료들을 어디서 전부 구하고 인터뷰까지 하며 책을 펴 냈는지 그 방대함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이제 일본군에 잡힌 루이스는 어떻게 될지 2권에서 확인해야 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