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가장자리 - 선생님도 학부모도 모르는
모토야마 리사 지음, 하성호 옮김 / 재미주의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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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줄거리 。。。。。。。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해진 이지메를 소재로 한 일종의 교육만화다. 이 작품이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부분은 실제로 이와 관련된 일을 겪거나 지켜봤던 학생들이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들이라는 것. 총 마흔네 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는 집단따돌림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의 심리, 그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과 대처하는 방안 등을 풀어낸다.

 

 

2. 감상평 。。。。。。。  

 

     집단따돌림과 폭력 등 학교를 중심으로 한 십대들의 반사회적 행동들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였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 이 두 나라는 서로의 문제까지도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다. (물론 대개는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는 양상이지만, 이게 꼭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워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교폭력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젠 해외토픽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그 문제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이란 게 그 원인을 규정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로 돌아가기도 한다. 가해자라고 해서 무슨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도 다른 곳에서는 부모나 교사 등에 의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그저 나쁜 놈들 잡아다 혼내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이 문제의 복잡함이 있다. 물론 가해자들의 행동은 그에 따른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그 아이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뿐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을 보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를 보고 닮아가는 게 아닌가.

 

     영화들마다 폭력배들의 의리를 멋지게 묘사하기에 바쁘고, 사람을 찌르고 때리는 수위는 시간이 갈수록 원색적으로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픽션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줄서고, 불의에 눈감고, 뒷돈 받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커가는 걸 바라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책은 이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또다시 제멋대로 정의하고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게 먼저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먼저 심각했던 일본은 우리보다 좀 더 많은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화로 되어 있는 데다가, 어쭙잖은 이론과 분석 대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기에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을 넘어가는 형태의 책은 보기에 불편했다. 일본만화를 자주 보는 아이들에겐 이쪽도 익숙한 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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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계급의 경제학 - 무자식자 전성시대의 새로운 균형을 위하여 청년지성 총서 1
우석훈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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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우선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결혼을 한 커플들이 첫 아이를 낳는 비율이 이전보다 심각하게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데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의 솔로현상의 원인을 경제적인 부분에서 찾는데, 남녀의 성적 비대칭성, 엄청난 액수의 교육비, 결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부담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된다. 여기에는 가면 갈수록 힘겨워지는 (그리고 계속 힘겨울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의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이어서 저자는 이런 경향이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 대책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모처럼 돈을 쓰는 곳도 사람보다 시멘트, 즉 토건사업에 집중되고 있다. 물론 저자는 경제라는 것이 대단히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 일종의 복잡계이므로 솔로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이 현상이 다양한 충격들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책의 세 번째 부분은 이런 충격들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제안들을 담고 있다. 출산과 보육 과정에 있어서의 국가적 지원의 확대, 그리고 일종의 지원금을 통해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일, 최저임금을 현실화 또는 생활임금의 도입,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고,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일 등이 여기에서 제안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대안들을 제시하면서도 그것들이 제대로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 현실을 바꾸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는 것 같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현과 같은 청년 솔로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산업들이 어떤 식으로 전환될 것인가를 다루면서, 마지막으로 현재의 청년들에게 좀 더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재정운용을 하라고 권면한다.

 

 

2. 감상평 。。。。。。。  

 

     원래는 그냥 도서관에 책만 반납하려고 갔었는데, 이 매력적인 제목을 보고서는 도저히 손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 이제 솔로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물론 우석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그리 간단한 처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솔로 현상이 일시적이거나 단순한 원인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이런 현상이 앞으로 당분간은 좀 더 지속되고 강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개인적으로 책 마지막에 담아 놓은 조언, 즉 위기의 시대에는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재정운용이 필요하다는 그 몇 문장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오늘을 살아가는 솔로 청년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싶었다. 뭐 우리나라가 청년들이 살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이 한결 같이 토건을 중심으로 한 부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제까지도 많이 있어 왔으니까. (그 대표적인 증거가 22조 삽질이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주제다보니 책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무겁다. 그리고 이 안에서 저자가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이 고작 이것 적은 돈이라고 해서 쉽게 쓰지 말고 차곡차곡 모아놓는 것이, 버는 한도 안에서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밖에 없었으니,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고통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도 같다.

 

     여러 책들을 내면서 저자의 분석능력은 좀 더 날카로워지고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자가 사랑하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그저 희망을 잃지 말아라, 조금만 견디면 된다 는 식의 감상적인 접근이 아니다 해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 중 하나가 아직 솔로인 남성들에게 아이와 함께 빵을 구울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인데, .. 눈물 날 뻔했다.

 

 

     꽤 오랫동안 생각하며 쓴 책인데도 편집 상의 문제점이 몇 가지 보인다. 앞에서 이미 나왔던 내용을 처음 서술하는 것처럼 재진술 하는 부분 명절을 맞이해 귀향길에 오르는 패턴이 유신시대의 잔재라는 것 등 은 어떻게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초반부와 극후반부라는 거리감이 있긴 하니까), 한 페이지 안에 생활임금을 두 번 새롭게 소개하는 191페이지는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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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대 국가 -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허버트 스펜서 지음, 이상률 옮김 / 이책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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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사진만 봐도 왠지 영국 사람일 것 같은 정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쓴 네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국가의 통제(각종 행정조치)가 강화되는 것에 불안과 불만을 느낀 저자가 이에 반대하기 위해 쓴 것들이다.

 

     제1새로운 토리주의는 과거 왕정복고 시도 당시 왕정을 옹호하던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민의 자유에 무관심했던) 토리당에 반대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던 휘그당의 후예인 자유당이 정권을 잡자, 이제는 시민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들을 만듦으로서 사실상 과거의 토리당과 마찬가지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2다가오는 노예제에서는 각종 정부의 규제법률로 인해 시민들의 자유가 크게 제한됨으로써 사실상 노예제와 다름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제3입법자들의 죄에서는 당시 의회에서 법률을 제정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들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입법활동을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마지막 제4거대한 정치적 미신에서는 의회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2. 감상평 。。。。。。。   

     동네 도서관에 들어온 신간 코너를 돌아보다가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책을 집어 든 책이었다. 책의 본문도 본문이지만, 책머리에 수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는 번역자의 해설 부분이 흥미로웠다. 역자는 그를 저주받은 사상가라고 부르며, 그가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왔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스펜서에 대한 오해는, 그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원조를 비판하고, 적자생존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강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철학을 주장했다는 데 기인한다. 역자는 이 부분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사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런 오해가 상당부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비친다.

 

 

     물론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을 잘 읽어보면 역자의 이런 의견에 일정 부분 공감을 하게 된다. 사실 그가 시민의 자유를 이토록 주장했던 것은, 의회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불필요한 규제와 간섭이 난발되고 이로 인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이 꺾이고 나아가 오히려 손해까지 보게 되는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모든 종류의 규제를 철폐하고 완전한 자유경쟁에 맡기자고 주장한 것도 아니고, 정부 권력이 시민을 직간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종류의 구속의 필요성까지는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조치가 사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불필요한 자유의 제약일 뿐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가 그토록 공격하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부의 복지지원 문제를 두고 보자. 당장에 먹을 것조차 충분하지 않은 시민이 실제적인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역자는 스펜서의 주장이 약육강식을 옹호한 것처럼 오해된 것은 그의 이론을 원래 의도에서 멀어지도록 오용한 사람들 탓이라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다시말하면 스펜서가 자신의 이론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할 수 없었으니 그의 잘못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스펜서가 3장에서 지적했던 문제, 즉 입법자들이 그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에 비춰 생각해 본다면, 스펜서 자신도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갈수록 정부의 권한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스펜서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자유를 옹호하던 정당, 정치세력이 이제는 과도한 규제를 통해 과거 반대하던 정치세력의 태도를 닮아가고 있다는 주장과(1), 의회의 권력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제4장의 내용은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가족에서의 원리(약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주고 돕는)와 사회에서의 원리(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다는)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오랫동안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권력의 제한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가져와야 한다는 상황과, 반대로 시민의 자유를 위해 권력의 행사가 필요한 상황 사이의 조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면서도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들어가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인데, 진영논리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정치계, 학계에서 이 작업이 과연 언제쯤 제대로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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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지음, 이동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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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요약 。。。。。。。  

 

    오랜 군생활을 해왔던 저자는 흥미로운 통계로 시작한다. 전쟁에 나가 있는 군인들이 실제로 상대방을 향해 총을 발사하지 않는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이다. 통상 20% 미만의 병사들만 상대를 향해 실제로 총을 쏘았다. 저자는 제법 많은 분량을 왜 병사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가 하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서술하는데 할애한다.

 

    결국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전장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저항 없이 공격을 가하도록 할 수 있는지 그 사회/심리학적 조건을 연구하는 책인가보다 할 즈음, 거의 결말부에 이른 저자는 갑자기 시선을 바꿔 미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강력범죄라는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주요한 이유들로 미디어와 게임 각종 영상물 등을 통해 살인에 대해 지나치게 익숙해져가고 있기 때문(사실 이것들은 앞서 나왔던 사격비율을 올리기 위한 새로운 훈련프로그램과도 비슷하다)이며, 장기적으로 이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2. 감상평 。。。。。。。 

 

 

    저자는 전장에서 살해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고,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는 요인들은 무엇이고,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또 어떤 것인지를 분석하는, 군사학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살해라는 극단적인 행동이 단지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그 강도가 좀 약해졌다 뿐이지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공격적 행동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다양한 차원에서 적용할 만한 부분들이 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군인들이 실제로 상대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드물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전쟁을 일으킨 윗대가리들이 어떤 식으로 미쳐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전선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병사들의 차원에서는 아직 인간성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일 테니까. (하지만 이 부분도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시킨 결과 베트남전에선 90% 이상의 병사들이 실제로 발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다양한 거리는 이런 살해행위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상대방도 나와 같은 인간이란 점을 인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쉽게 살해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상대에게 모욕적인 별칭을 붙이는 건 그가 나와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도록 만들어 더 쉽게 공격하게 만드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서 자칭 보수진영에서 종종 사용하는 좌빨이니 좌좀이니 하는 딱지붙이기도 그런 예다. 상대의 인간성을 말살시킴으로써 그를 공격하는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려는 행동이다.(가련한 인간들..)

 

 

    저자는 진지하게 사람들이 영화나 텔레비전, 각종 미디어들을 통해 폭력적인 장면들에 반복적으로 쉽게 노출되는 것을 우려한다. 영화 속 장면들처럼 상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난사를 하고, 찌르고 베어 죽이는 일은 실제 전장에선 잘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사실 그런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 실제 군대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살해행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만드는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심지어 효과까지 증명되었다!!) 폭력적인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분명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영화들에도 액션이나 스릴러를 표방하면서 거의 슬래셔 무비에 가까운 장면들을 잔뜩 등장시키는 것이 거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의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특히 젊은(그리고 어린) 세대들에게 좀 더 사람들을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는 셈. 어차피 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미디어의 속성 상 스스로 자제하고 정화할 리는 만무한데, 폭력성에 관해 지적을 할라치면 검열이니 뭐니 하며 펄쩍 뛴다. (뭐 다 같이 죽자는 거지)

 

 

    꽤나 충실하게 연구를 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종류의 사회학적 성격의 연구는 그 특성상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가 필요한 법인데, 꽤 묵직한 내용의 책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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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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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2000년 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정치실험의 중심에 있었던 유시민의 에세이집이다. 1부에서는 헌법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2부는 좀 더 주제에 있어서 자유도를 높여서 장관과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이 느꼈던 것들, 또 특별히 참여정부와 자신의 정치적 이력에 대한 일종의 변명 등이 실려 있다.

 

 

 

2. 감상평 。。。。。。。  

    책이 나온 2009년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1년 쯤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책을 한창 쓰고 있었을 무렵은 2008년이었을 테고, 책이 정식으로 출판된 지 몇 달 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적어도 이 당시에는 고향에 내려가 농사지으면 방문객들과 함께 잠시 여유를 즐기기도 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정치계에 남아 있었던 유시민은 현실적인 이유에 있어서도 좀 더 치열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을 테고, 그 고민 중 하나는 그 당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헌법에 대한 애정을 물씬 드러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뭐 어디다 내놔도 크게 꿇리지 않을 수준의 헌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헌법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헌법 따위를 딱히 자신의 직무 수행에 있어서 준거의 틀로 여기지 않는 (아니, 헌법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통치자와 그에 봉사하는 하수인들이 있는 한 좋은 헌법은 유명무실해질 뿐이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자는 한 가지 더 덧붙인다. 한국 사회가 헌법의 내용을 실현할 만큼의 충분한 비용을 아직 지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헌법은 갑작스럽게 주어진 것인지, 대가를 치루고 얻어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비용은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성격의 것이기에,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재앙(물론 여기에서 재앙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파탄을 의미한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

 

 

    메인아이디어는 꽤 흥미롭지만, 나머지 모든 부분의 퀄리티는 좀 아쉽다.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야 어느 정도 벗어났겠지만, 그가 속해 있던 당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고 결국 탈당까지 해야 했으니 어지간히 고민이 많았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사정들 때문인지 칼럼들에는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수식문장들이 많아 전반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이다.

 

    예컨대 이즈음 도킨스에 빠졌었는지 뜬금없는 문화유전자 타령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새겨진 지도자에 대한 절대 충성이라는 가치관을 타파해야한다는 식의 논리 전개(p. 44)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여전히 정치적인 부분에 관한 관점들은 날카롭지만, 그 외의 부분들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동설(?) 같은 기본적인 실수(p, 40)까지 퇴고되지 않은 채 나올 정도로 여유가 없어 보였다. 하나의 책으로서는 내가 읽은 유시민의 책 중에는 가장 완성도가 낮지 않았나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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