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 모멘툼 vol. 01
김민하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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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의 머리말에도, 그리고 첫 번째 실린 글이 공통적으로 일베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은 분명 일베류의 극우적 언동이 점점 늘어나는 데 대한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섯 명의 저자들은 각각 한국 사회의 극우적 움직임에 관한 글들을 실고 있는데, 각각의 글의 성격이나 주제는 조금씩 다르다. 일베를 다루고 있는 첫 번째 글과 한국의 극우정당 출현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두 번째 글은 현실분석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국 개신교의 극우적 성격을 다룬 세 번째 글은 역사를 추적하는 쪽에, 그리고 나머지 글들은 극우주의나 파시즘 같은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2. 감상평 。。。。。。。  

 

     책의 가장 앞에 실려 있는 창간사라는 이름과 거기 언급되는 무크지라는 단어는 이 책이 (형태는 단행본이지만) 일종의 잡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행본과 잡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시의성인데, 잡지 쪽은 당장에 필요한 정보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담아내는 데에 무게를 더 둔다. 이 책은 최근 한국의 현실이 극우주의라는 문제를 서둘러 다뤄야 할 정도로 급박해졌음을 시사한다.

 

 

     첫 두 편의 글은 흥미로웠다. 짧은 글 안에서 일베의 성격에 관해 다양한 방향에서 분석했던 박권일의 글이나 한국의 정치지형을 분석하며 그래도 아직은 당장 극우주의 정당이 출연할 것 같지는 않다는 다행인 소식을 전해주는 김민하의 글은 읽을 맛이 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적 성격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려고 시도한 김진호의 글부터는 이런 느낌이 달라진다. 그의 다른 책(‘예수의 독설’)에서도 보여줬던 지나치게 과감, 혹은 과장된 추측과 그것을 곧 단정지어버리고 기정사실화 한 채 전개하는 논의방식은 이 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사용되는 용어들도 딱딱하거나 사상성이 깊이 묻어나오는 단어들이다.

 

     후반부의 세 개의 글은 좀 더 나아가서 아예 철학적인 논의로 접어드는데, 덕분에 책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물론 어떤 사안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적절한 철학적 기초가 있어야겠지만, 이쯤 되면 이런 글은 나 읽으라고 쓴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물론 내가 책을 잘못 선택한 거지, 저자들의 문제는 아닐지도..)

 

 

     뭐 여러 개의 글들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것만을 뽑아 읽어도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글들의 배치가 절묘했다는 느낌이 든다. 안 그랬으면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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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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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제목을 보면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자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본의 정의나 분류를 다양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저자는 간단하게 벌어놓은 돈(혹은 부)’ 정도로 정의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이 책은 21세기에 이 자본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하는 전망과 함께 여기에 문제는 없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나름의 대책)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저자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자본이 어떤 식으로 변해왔는지를 구할 수 있는 통계자료 안에서 분석한다. 우선 자본소유 구조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농경지에서 주택(부동산)과 각종 비물질적 자본으로 전환되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 시기에는 잠시 감소했으나 전반적으로 축적된 자본의 양이 소득 대비 6, 700%에 이르게 되었으며, 공공자본에 비해 민간자본의 양이 적게는 4배에서 7배 이상까지 더 많았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주요 문제점 중 하나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게 유지되어왔다는 점을 지목한다. 이 말은 이미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부자가 되는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갈수록 불평등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자본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을 꺼낸다. 기존의 소득에 부과하는 누진적 세금은 종종 역진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효용을 인정하더라도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어느 개별국가의 제도만을 통해서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2. 감상평 。。。。。。。  

 

     책을 구입해서 한참 읽고 있는데 피케티 오류 인정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몇 개의 신문 기사들의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오류의 내용이란 게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앞선다는 명제가 실제 불평등 확대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한국경제), 역시 그 명제가 21세기 소득불균형의 미래를 예측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는 것(조선일보) 같은 내용이었다. 프레시안은 여기에 소득불평등도 부의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내용을 덧붙인다.

 

     정리하자면 피케티가, 자신이 이 책에서 21세기 부의 불평등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꼽았던 지나치게 높은 자본수익률이라는 요인에, 그것이 유일한 요인은 아니며 여기에 최근 불거지고 있는 소득불평등이라는 요소도 더해야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게 과연 오류 인정이라고 불릴만한 것일까? 흥미로운 부분은 피케티 역시 책 속에서 자본수익률과 함께 임금의 불평등(소득불평등)이 미래 경제구조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498).

 

앞으로의 세계는 과거의 가장 나쁜 두 세계가 결합된 모습일 것이다. 즉 상속자산의 불평등도 극심하고, 매우 심한 임금의 불평등은 능력과 생산선 측면에서 정당화되는(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실에 거의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세계다.

 

     일부 언론도 이 포인트를 오류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던지, 그렇게 되면 다른 학자들이 주장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어지므로 피케티의 독특성이 사라진다는 식으로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피케티 개인이 노벨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는 큰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가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부의 불평등 문제 그리고 그 원인으로서의 과잉 자본수익 라는 논점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 지적되는 부분은 피케티가 그의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자료가 조작되었다는 점인데, 이게 사실이라면 앞서의 공격보다 훨씬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신문기사들을 보면 그가 자료를 종합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논지에 맞는 부분들을 취사선택했으며, 일부에는 수치적인 오류 혹은 조작(어떤 이들은 엑셀 연산상 오류라고 말하기도)이 있었다는 것. 결과적으로 실제로 자본수익률이 늘 경제성장률보다 높지는 않으며, 최상위층이 보유한 부의 비율 역시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 역시 책 속에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인용하는 기사는 전혀 없었다는 게 함정(428).

 

요약하자면 부등식 r>g는 특정한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만, 다른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불확정적인 역사적 명제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피케티의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내며 인용했던 파이낸셜타임즈의 자체조사 역시 피케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해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래프를 보면, 소득상위 10%에 해당하는 이들의 소득 비중은 거의 차이가 없으며, 상위 1%의 경우 약 10%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10%라는 차이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상위 1%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전체 부의 30%가 아니라 20%를 가져간다는 말이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30%는 문제가 있는데 20%는 괜찮다는 뜻인가?

 

     물론 그래프는 지난 100년 동안 부의 격차가 점점 낮아지는 듯한 추이를 보여주고 있고, 이는 부의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피케티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그래프를 정확하게 살피면 1900년대 초반 두 차례의 큰 전쟁 덕분에 소득상위 1%의 소득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그 이후에는 큰 변동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큰 기간을 두고 보면 이 5, 60년 사이의 변동이 어떤 큰 흐름의 일부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며, 피케티의 말처럼 오늘날 부가 과거만큼 불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1945년 이후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임이 증명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오히려 책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해 가장 많이 떠들어 대던 글로벌 자본세라는 주제가 생각보다 훨씬 적은 분량만 등장하고 있고, 또 그 자체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피케티는 자본세를 국가 재원 조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 분야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때문에 그가 제시하는 세율도 100만 유로(12억원) 이하의 부에 대해서는 0%, 100~500만 유로(12~60)에 대해서는 1%, 500만 유로 이상에는 2%에 불과하다.

 

     평균자본 수익률이 약 4~5%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지도 않을 것이고, 부자들의 경우 그걸 다 내고도 수익을 낼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고, 이것은 향후 자본주의의 중요한 폐단 중 하나인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다만 이 주장이 실제로 가능한가 하는 부분에는 좀 회의적이다. 우선은 이를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고(아니 안 될 것 같다), 나아가 각국의 정부가 늘 옳은 판단만을 하는 정의로운 정부가 아니라는 점 또한 집고 넘어가야 할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광범위한 세무조사가 필요할 텐데 여기에 들어가는 자원과 노력도 만만치 않을 테니..

 

 

     피케티는 이 책이 진리를 담고 있는 거룩한 문서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과학적 연구 자체가 정밀과학이 아니며, 끈기 있는 연구를 통해 패턴을 찾아내고 분석함으로써 민주적인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10). 그렇다면 최근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부의 불평등문제, 그리고 자본소득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나오고, 또 한 편으로는 이 책을 반박하는 논리들이 개발되고 하는 현상 자체를 피케티는 반가워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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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식품의 숨겨진 비밀 -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가져온 악몽!
후나세 슌스케 지음, 고선윤 옮김 / 중앙생활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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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킹콘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농업회사인 미국의 몬산토에서 만들어낸 유전자 조작 옥수수인 킹콘을 먹인 실험용 쥐에 자신의 몸집만한 크기의 암 종양이 생긴 사진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미국산 옥수수는 콘 시럽과 사료 등으로 가공되어 현재 전 세계의 먹거리를 거의 지배하고 있다시피 하다. 책에서는 몬산토사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저지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음모들 회전문 인사를 통해 정부정책에 직접 관여하거나 생물특허를 통해 농민들을 지배하고, 나아가 유전자조작으로 자가 재생산이 불가능한 터미네이터 종자를 만들어내기까지 이 소개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유전자 조작 식품들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물실험에서 이미 여러 차례 문제가 나타난 바 있고, FDA같은 관계당국에서 내주는 승인은 회사에서 낸 자료를 가지고만 평가를 하기 때문에 반쪽짜리일뿐더러,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하게 발현되는 독성이 아닌 장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시험된 바 없다는 이유들이 여기에 등장한다.

 

     책의 후반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비정상적인 가축들에 의해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작물과 함께 세트로 판매하던 목적형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잡초들이 나타기 시작했고,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는 해충을 막는다는 몬산토산 유전자 조작 목화를 공격하는 해충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 이는 해결하기 위해 다시 독성이 높은 농약을 뿌려야 하고, 이 악순환이 계속될수록 농민들의 경제적인 부담만 늘어날 뿐이었다. 저자는 이런 예들을 통해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2. 감상평 。。。。。。。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책의 짜임새에 관해서는 한 마디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책 전체의 구성에 논리적 흐름이 약하다. 이런저런 소재들을 언급하는 것이야 좋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큰 논리 안에 잘 꿰어져 있을 때에야 가치가 있는 거지, 이렇게 산발적으로 늘어놓는 차원에서 끝내버린다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까 싶다.

 

     저자의 접근 방식도 좀 문제다.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상대방이 소위 과학적인 결과를 가지고 나온다면, 그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맞받아치는 것보다 상대 주장의 허점을 차근차근 집어 가는 게 더 효과적이다. 여기에 상대편이 가진 윤리적인 문제점들을 곁들인다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런 시도들은 아주 살짝 시도되다가 곧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감정적 도발이 차지하고 만다. 유전자 조작으로 털이 하나도 없이 부화한 닭은 분명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면 아예 극단적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동일한 감정적 비난을 방어해야 할 차례가 곧 돌아오지 않을까.

 

     책 전체에 걸쳐서 끊임없이 모종의 음모론이 등장하는 것도 좀 안타깝다. 이런 음모론에는 별다른 증거나 논리적 설명이 따라오지 못하곤 하는데, 여기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몬산토사는 손톱 끝까지 일루미나티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주장을 기정사실화 하고는, 그것이 세계 최대 비밀결사 조직인 프리메이슨의 중추 조직(51)이라는 데까지 나간다. 프리메이슨이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건지..

 

     저자는 계속해서 유전자 조작이 신의 섭리를 어긴 것이라는 식의 표현을 보이는데, 이것만 보고 저자가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 저자 자신도 밝히고 있듯 여기에서 이란 자연을 가리킬 뿐이니까(154, 180). 그런데 그러면서도 전능함이나 악마와 같은 사고들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건 또 웃기다(175).

 

     문제는 역시 책에서 공격하려고 하는 대상을 정확하게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유전자 조작 자체를 반대하는 건지, 그것이 우리가 먹는 식품과 관련된 부분을 반대하는 것인지 부터가 불분명하다. 예컨대 저자는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몇 배나 높은 강도를 지닌 최첨단 바이오 소재인데, 여기에서 착안해 거미의 유전자를 양이나 소 등에 이식해 새로운 섬유소재를 개발하려는 것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기존보다 단백질 함량이 훨씬 높은 우유를 만들어 개발도상국의 유아들에게 공급하겠다는 미국의 한 박사를 향해서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칭찬하기까지 하고 있으니(142) 이런 혼란은 저자 자신도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하나 같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다국적 종자회사의 횡포는 여러 나라들의 농민들을 파산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여기에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악의적인 국내법 조항들도 관련되어 있다. 생태계의 교란이나 안전성 등도 하나같이 중요한 문제들이다. 다만 책장을 넘길수록 신뢰감이 들지 않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정신을 자꾸 산란시키기만 한다.

 

     유전자 조작 종자회사들의 횡포를 비롯해 이 책에서 다룬 문제들에 대한 보다 상세하고 잘 정리된 접근을 원한다면, 반다나 시바의 테라, 마드레를 비롯한 책들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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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가장자리 - 선생님도 학부모도 모르는
모토야마 리사 지음, 하성호 옮김 / 재미주의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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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줄거리 。。。。。。。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해진 이지메를 소재로 한 일종의 교육만화다. 이 작품이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부분은 실제로 이와 관련된 일을 겪거나 지켜봤던 학생들이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들이라는 것. 총 마흔네 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는 집단따돌림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의 심리, 그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과 대처하는 방안 등을 풀어낸다.

 

 

2. 감상평 。。。。。。。  

 

     집단따돌림과 폭력 등 학교를 중심으로 한 십대들의 반사회적 행동들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였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 이 두 나라는 서로의 문제까지도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다. (물론 대개는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는 양상이지만, 이게 꼭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워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교폭력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젠 해외토픽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그 문제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이란 게 그 원인을 규정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로 돌아가기도 한다. 가해자라고 해서 무슨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도 다른 곳에서는 부모나 교사 등에 의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그저 나쁜 놈들 잡아다 혼내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이 문제의 복잡함이 있다. 물론 가해자들의 행동은 그에 따른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그 아이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뿐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을 보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를 보고 닮아가는 게 아닌가.

 

     영화들마다 폭력배들의 의리를 멋지게 묘사하기에 바쁘고, 사람을 찌르고 때리는 수위는 시간이 갈수록 원색적으로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픽션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줄서고, 불의에 눈감고, 뒷돈 받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커가는 걸 바라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책은 이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또다시 제멋대로 정의하고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게 먼저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먼저 심각했던 일본은 우리보다 좀 더 많은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화로 되어 있는 데다가, 어쭙잖은 이론과 분석 대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기에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을 넘어가는 형태의 책은 보기에 불편했다. 일본만화를 자주 보는 아이들에겐 이쪽도 익숙한 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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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계급의 경제학 - 무자식자 전성시대의 새로운 균형을 위하여 청년지성 총서 1
우석훈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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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우선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결혼을 한 커플들이 첫 아이를 낳는 비율이 이전보다 심각하게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데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의 솔로현상의 원인을 경제적인 부분에서 찾는데, 남녀의 성적 비대칭성, 엄청난 액수의 교육비, 결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부담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된다. 여기에는 가면 갈수록 힘겨워지는 (그리고 계속 힘겨울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의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이어서 저자는 이런 경향이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 대책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모처럼 돈을 쓰는 곳도 사람보다 시멘트, 즉 토건사업에 집중되고 있다. 물론 저자는 경제라는 것이 대단히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 일종의 복잡계이므로 솔로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이 현상이 다양한 충격들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책의 세 번째 부분은 이런 충격들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제안들을 담고 있다. 출산과 보육 과정에 있어서의 국가적 지원의 확대, 그리고 일종의 지원금을 통해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일, 최저임금을 현실화 또는 생활임금의 도입,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고,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일 등이 여기에서 제안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대안들을 제시하면서도 그것들이 제대로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 현실을 바꾸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는 것 같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현과 같은 청년 솔로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경우 산업들이 어떤 식으로 전환될 것인가를 다루면서, 마지막으로 현재의 청년들에게 좀 더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재정운용을 하라고 권면한다.

 

 

2. 감상평 。。。。。。。  

 

     원래는 그냥 도서관에 책만 반납하려고 갔었는데, 이 매력적인 제목을 보고서는 도저히 손에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 이제 솔로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물론 우석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그리 간단한 처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솔로 현상이 일시적이거나 단순한 원인에 기인한 것이 아니며, 이런 현상이 앞으로 당분간은 좀 더 지속되고 강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개인적으로 책 마지막에 담아 놓은 조언, 즉 위기의 시대에는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재정운용이 필요하다는 그 몇 문장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오늘을 살아가는 솔로 청년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싶었다. 뭐 우리나라가 청년들이 살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이 한결 같이 토건을 중심으로 한 부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제까지도 많이 있어 왔으니까. (그 대표적인 증거가 22조 삽질이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주제다보니 책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무겁다. 그리고 이 안에서 저자가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이 고작 이것 적은 돈이라고 해서 쉽게 쓰지 말고 차곡차곡 모아놓는 것이, 버는 한도 안에서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밖에 없었으니,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고통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도 같다.

 

     여러 책들을 내면서 저자의 분석능력은 좀 더 날카로워지고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자가 사랑하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그저 희망을 잃지 말아라, 조금만 견디면 된다 는 식의 감상적인 접근이 아니다 해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 중 하나가 아직 솔로인 남성들에게 아이와 함께 빵을 구울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인데, .. 눈물 날 뻔했다.

 

 

     꽤 오랫동안 생각하며 쓴 책인데도 편집 상의 문제점이 몇 가지 보인다. 앞에서 이미 나왔던 내용을 처음 서술하는 것처럼 재진술 하는 부분 명절을 맞이해 귀향길에 오르는 패턴이 유신시대의 잔재라는 것 등 은 어떻게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초반부와 극후반부라는 거리감이 있긴 하니까), 한 페이지 안에 생활임금을 두 번 새롭게 소개하는 191페이지는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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